◆ 진법(眞法) 진리

◆ 공명지정대(孔明之正大)와 자방지종용(子房之從容)을 본받으라

고도인 2015. 5. 18. 21:08

공명지정대(孔明之正大)

자방지종용(子房之從容)을 본받으라

 

 

강증산 성사께서

천지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

자아유지(自我由之)하나니

공명지정대(孔明之正大)

자방지종용(子房之從容)을 본받으라말씀하셨다.

(교법 3:29)

 

이는 천지가 평안함도 나로부터 연유되고,

천지가 분란이 일어나는 일도 나로부터 연유된다.

 

그러므로 제갈량(諸葛亮) 공명(孔明)

읍참마속(泣斬馬謖)과 같은

정대(正大)함을 본받고,

장량(張良) 자방(子房)

자기가 처해진 상황의 기색(氣色)을 잘 살펴

조용히 천하기운의 순리를 따라갔음과 같은

종용(從容)을 본 받으라는 뜻이다.

 

자아유지(自我由之):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며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 자신이다.

 

事之從容自我由之하고

事之紛亂自我由之니라

 

모든 일이 조용하게 되는 것도 나로부터 비롯되고,

일이 시끄럽게 되는 것도 나로 말미암느니라.

 

* ‘조용하다의 우리말 어원이 종용이며

넉넉하고 여유롭고 평안하다는 뜻이다.

 

공명지정대(孔明之正大)

자방지종용(子房之從容)을 본받으라

 

공명지정대(孔明之正大)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220263)

정치가이자 전략가였던 제갈량(諸葛亮:181234)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일 처리를

높이 평가한 말이다.

 

제갈량의 공명정대한 일처리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마속과 제갈량에 관한 일화이다.

서기 228년 제갈량이 47세 되던 해의 일이다.

삼국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때를 기다리던 제갈량은

중원(中原)의 젖줄기라 할 수 있는 가정(佳亭)

점령하기 위해 직접 북정(北征)의 길에 올랐다.

 

당시 상황은 누가 먼저 가정을 점령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중대한 상황이었다.

이때 제갈량은 가장 중요한 전투에서

부하 마량(馬良)의 아우 마속(馬謖)

선봉장으로 발탁하게 된다.

 

마속은 제갈량으로부터 그의 재주를 인정받았고,

제갈량의 남정(南征)

전략의 기본방침을 제의하여

제갈량이 채용했을 정도로 제갈량과는

신의가 두터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선봉장 마속은 의기충천하여

산 위에다 진을 치지 말라는

공명의 말을 무시하고 산 위에다 진을 쳤다.

이를 기회로 적장 사마중달이 즉시 보급로를

차단시키자 마속은 전쟁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게 된다.

마속은 이전에 제갈량이

매우 신임했던 인물이었지만

제갈량은 눈물을 뿌리면서도

공명정대하게 마속을 베고 만다.

 

이와 같이 제갈량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일을 처리하였는데,

공명정대(公明正大)

편벽됨이 없이 공정하고 바르고 옳아서

사사로움이 없다는 뜻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의 한자는 다르나

공명(孔明)은 공명(公明)으로

일치(一致)하게 본다.

 

이것을 증산성사께서는

[전경] 권지 238절에 말씀하시기를

김형렬을 불러 물으셨도다.

네가 나의 사무를 담당하겠느냐.”

형렬이

재질이 둔박하와 감당치 못할까 하나이다

고 대답하는 것을 들으시고

증산성사께서 꾸짖으시니 형렬이 대하여

가르치심에 힘입어 담당하겠나이다고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라.

마속(馬謖)은 공명(孔明)의 친우로되

처사를 잘못하므로써 공명이 휘루참지(揮淚斬之)

하였으니 삼가할지어다고 일러주셨도다.

 

여기에서 증산성사께서는

김형렬 종도를 불러서 물으셨다.

네가 나의 사무를 담당하겠느냐.”

그러나 그 종도는 사양하였다.

재질이 둔박(鈍朴)하와 감당치 못할까 하나이다.”

그의 대답하는 것을 들으시고

증산성사께서 크게 꾸짖으셨다.

네가 어찌

마땅히 네가 하여야 할 일을 회피하려 하느냐!”

정신을 차린 종도는 다시 대답하였다.

가르치심에 힘입어 담당하겠나이다.”

종도의 바른 대답을 들으신 증산성사께서

그제야 가르침을 주셨다.

무한유사지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라.

마속(馬謖)은 공명(孔明)의 친우로되

처사를 잘못하므로써

공명이 휘루참지(揮淚斬之)하였으니 삼갈지어다.”

 

* ‘무한유사지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는 것은

일을 맡아 그것을 밝게 하지 못하여

()을 남기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공정의 원칙을 가장 바르게 실천한 사람으로

제갈공명(諸葛孔明)을 꼽는다.

당시 그의 형인 제갈근(諸葛瑾)

촉과 대립관계에 있던

()나라의 대신(大臣)이었다.

그렇지만 제갈공명은 공사(公私)를 엄중히 하여

형을 공적인 회의석상에서만 마주할 뿐,

사적인 만남은 일체 갖지 않아

조금도 남에게 의혹을 사지 않았다.

 

또한 공명은 친구인 마속(馬謖)

가정(街亭)전투에서 군령을 어기고 패전하여

()에 대한 원정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자,

군법에 따라 그를 휘루참지(揮淚斬之)한 바 있다. 휘루참지란 제갈량이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마속을

눈물을 흘리며 참()하여 군의 기강을

바로 세운 것을 이르는 말이다.

 

증산성사께서는 그의 공정함을

천지공사에 쓰신 것이다.

그는 모든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었던

일국의 승상이었지만 검소하고 사리사욕 없이

공리(公利)를 위해 힘썼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유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후세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처럼 제갈량이 솔선수범하여

공정함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가 누구에게 상을 줘도 시기하는 사람이 없었고

벌을 줘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모두 사정(私情)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에 지극한 제갈량의 리더십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마음 자세는 우리 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대강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를 이루기 위한

다섯 가지의 개념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공심(公心)이다.

공심은 사사로움을 멀리하고

모든 일들을 공적인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공심으로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다른 네 가지 공정의 덕목도 이뤄질 수 있다.

 

두 번째는 공정(公定)이다.

공론(公論)에 따라 정한다는 것이다.

공정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함에 있어

항상 공인의 마음으로 바르게 판단할 때,

현안들을 올바르게 결정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존경을 받고

타인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는 공평(公平)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른 것인데,

판단이나 일처리가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

공평은 어떠한 일을 해 나가거나

혜택을 나눌 때 공정하고 평등해야 불만이 없고

바르게 통솔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조직이

화합하게 되고 발전할 수 있다.

 

네 번째는 공개(公開)이다.

모든 정보가 구성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었을 때 신뢰가 생긴다.

어떤 정보를 자신만 알고 공개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의혹을 품고

나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것이다.

구성원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모든 이들이

나를 믿고 존경하며 따를 것이다.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낙마하는 이유도 이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공명(公明)이다.

하는 일이나 행동이 아주 공정하고 명백해야 한다.

위의 네 가지 조건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밝게 사물을 바라보고 화권(化權)이 열려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있다.

그럼으로써 먹줄을 겨누고 있는 신명들로부터

신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스스럼없이 자기 마음을 드러내어

편벽되지 않게 일처리를 해나갈 수 있고

우리 사회의 밝은 곳뿐만 아니라

소외된 곳에서도 사회정의가

실현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전경에서 찾아보면

 

신명은 탐내어 부당한 자리에 앉거나

일들을 편벽되게 처사하는

자들의 덜미를 쳐서 물리치나니라.

자리를 탐내지 말며 편벽된 처사를 삼가고

덕을 닦기를 힘쓰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라.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히리라.”

(교법 129)고 말씀하셨다.

 

근본적으로 공명정대란

우리 도()에서 중시하는

무자기(無自欺)가 바탕이 되었을 때에만

실현 가능하다.

무자기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즉 양심(良心)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남도 속이지 않게 된다.

인간의 마음에는

물욕에 의해 발동하는 사심(私心)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인 양심,

이 두 가지가 있다.

본래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이지만

사심에 사로잡히면 인간적 도리에서 벗어나

마음을 속이게 되어 있다.

마음을 속이는 것은 불공정(不公正)뿐만이 아니라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해야 한다.

 

증산성사께서는

공정한 마음에 장애가 되는

사곡한 마음인 사심(私心)을 경계하여,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

이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

(교법 324)고 말씀하셨다.

 

박우당께서도

()는 인심이요

()은 도심(道心)이니,

도심이 지극하면

사심(私心)은 일어나지 못하느니라.”

고 하셨으니, 도인들은 무엇보다

()가 아닌 공()에 지극한

도심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진법(眞法)의 각 도인(道人)들이

무자기를 바탕으로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해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무편무사(無偏無私)하고 공정하게 대한다면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고,

공정한 마음이 한층 깊어질 것이다.

 

이처럼 공정한 마음을 토대로

공심(公心) ? 공정(公定) ? 공평(公平) ?

공개(公開) ? 공명(公明)을 생활화할 때,

소통이 원활하고 법과 원칙이 바로 서므로써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힐 것이다.

 

* 휘루참지(揮淚斬之)

제갈공명이 신임하던 마속(馬謖)

가정의 길목을 막고 위군 한 명도

통과시키지 말라는 공명의 명령을 어기고

산 위에 진을 치므로 인하여 작전에 실패하였다.

공명은 마속과 신의가 두터웠으나

북벌 때 공명이 군율로 내린 작전 명령을

어겼으므로 군법의 준엄성을 보여주기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마속을 처형할 수밖에 없었다하여

휘루참지(揮淚斬之)

혹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 한다.

 

子房之從容 자방지종용

()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공신(功臣)이었던

장량(張良:?BC 168)은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써

권력 앞에 함부로 나서지 않고 조용히

순리를 따라 처신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량은 어떠한 경우에도

처해진 상황의 기색(氣色)을 잘 살펴서

그 기운의 순리대로 일을 처리하여

막힘이 없게 하였는데,

이러한 자방지종용(子房之從容)의 대표적인 예가

홍문(鴻門)의 연회(宴會)’ 사건이다.

 

홍문의 연회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두고 다툴 때

두 맹주 항우와 유방이 참석했던

연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유방이 진나라를 멸하고

함곡관(函谷關)에 병사를 주둔시켰을 때의 일이다.

항우도 40만 대군을 이끌고

홍문(鴻門)으로 진격해 왔다.

그때 항우의 진영에 유방의 부하가 찾아와

유방이 스스로를 관중왕(關中王)’이라

칭하고 있다고 밀고(密告) 했다.

 

이를 들은 항우는 화를 내며

유방을 치기로 결정하고 전군 총공격을 명령했다.

이때 항우의 숙부로

항백(項佰)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방이 큰 그릇임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이 사실을 유방에게 알려 주고

내일 아침 일찍 항우를 찾아가

사죄하라고 일러 주었다.

항백의 충고를 들은 유방은 항우를 찾아가

그의 오해와 노여움을 가라앉혔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항우는

홍문에서 주연을 베풀어 유방을 위로해 주었다.

이때 항우의 책사인 범증(范增)도 함께 있었는데

그는 이 기회에 유방을 죽이지 않으면

후한(後恨)이 있을 것을 걱정하여

항우에게 유방을 죽이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자신의 힘을 과시하던 항우는

유방과의 이야기에서 유방이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빈약한 존재라고 믿어버리고

유방을 죽일 마음이 없어졌다.

 

일이 이렇게 되자 마음이 초조해진 범증은

장수 항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왕은 지금 유방의 말장난에 넘어가고 있다.

그대가 검무(劍舞)를 추다 기회를 봐서

유방을 찔러 죽여라.”

범증의 지시를 받은 항장은 연회에 참석하여

유방에게 술을 따른 후 정중하게 말했다.

진중군부대 내이라

변변한 대접을 못해 드려 죄송합니다.

대신 제가 칼춤을 추어

흥을 돋우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항장은 곧바로

칼을 빼어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를 본 항백은 유방의 목숨이 위급하다고 여겨

자신도 칼을 빼어 유방을 감싸면서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유방의 목숨이 풍전등화(風前燈火)임을

안 유방의 참모 장량(張良)

얼른 밖으로 나가 장수 번쾌에게 말했다.

 

사태가 위급하다.

항장의 검무는 속임수다.

속마음은 패공을 죽이려는 것이다.”

 

번쾌는 이 말을 듣자마자 경비병을 물리치고

술자리에 뛰어들어갔다.

그 기세에 압도된 항우가

번쾌에게 술을 따라주는 사이,

장량은 유방을 불러내어 탈출했다.

이후 범증은 항우에게

유방을 뒤쫓을 것을 간하였으나

항우는 이를 무시하였고

결국은 유방의 손에 그가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외에도 장량이 행한 수많은 업적 덕분에

유방은 항우를 꺾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방은 한나라를 창업한 후

자신의 천하통일을 도운 공신들의 지략을

심히 경계하여 모두 숙청하려 하였다.

 

그러자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린 장량은

유방의 숙청이 실행되기 전에

유방에게 자기는 초야(草野)에 묻혀

조용히 도()나 닦으며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여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이렇듯 장량은

항우와 유방의 싸움에서

유방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도록 공을 세울 때나,

후에 권력의 폐해를 피해 초야로 숨을 때나

조용히 천하기운의 순리를 따라갔던 것이다.

이것이 자방의 종용(從容)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초나라와 한나라가

대립하던 시절 한왕 유방을 섬기던

장자방(장량)이 모사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한 지역을 토벌하는데

두 장수가 물망에 올라 있었다.

지역의 형세, 지략, 어느 면에서 따져 보아도

A라는 장군이 적격이어서

자방이 주군에게 고하였다,

 

주군이시여, 이 지역은

A장군을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하였다,

 

그러나 사전 B장군이 유방에게 아부를 하여

자신이 토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유방은 고민하는 척하다가 말하기를

 

내 생각에는 A장군보다는 B장군이

더 낳을 것 같군! B장군을 보내지하였다.

 

이에 자방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을 하였다.

, B장군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장량은 이미 지리, 역학은 물론

도에 통하여 있던 인물이며

B장군이 아부하였다는 상황마저 알고 있었으나

B장군을 보내는 것에 대해

마음으로 유방을 따랐다.

 

왜 그랬을까 ?

장자방도 유방을 믿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하늘이

유방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라,

유방을 믿지는 못하여도

하늘을 믿기에 유방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때론 일을 하면서

선각(先覺)이 잘 못을 해도

못 난 선각(先覺)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일이 잘 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신명(神明)의 덕화로

일이 잘 되어질 때가 있다.

이것은 순리에 따른 것이고

믿는 마음이라 할 것이다.

 

요즈음 세상을 보면

지금의 이 사회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하늘도 병들고, 땅도 병들고,

인간도 깊은 병에 들었다.

 

교법 11절에 보면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요.

하고 천지가 병들었음을 말씀하시고

이 천하창생을 살리기 위해

천하를 도모하는 자,

강증산 성사께서 말씀하셨다.

 

위천하자(爲天下者)

불고가사(不顧家事)라 하였으되

제갈량(諸葛亮)은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

박전십오경(薄田十五頃)의 탓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느니라.”

(교법 2:52)

 

*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가정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

 

*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

박전십오경(薄田十五頃)

뽕나무 800그루와 천박한 밭 15.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 고사

 

제갈량이 유비를 만나 천하사를 위해 떠날 때

동생 제갈균에게 당부하여 말하길

내가 유비현덕의 세 번 찾아 주신 은혜를 받으매

아니 갈 수 없어 나갈 터이니,

너는 여기서 부지런히 밭을 갈아

땅을 묵히는 일이 없도록 해라.

내 공을 이루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제갈량에 대해

지은 시가 있으니 이러하다.

 

미처 집을 나서기 전 돌아올 일 예산했네.

그가 공명 세운 날에 응당 생각나련만

간곡한 임의 부탁 저버릴 길 없어

추풍(秋風) 오장원(五丈原)에 큰 별은 떨어졌네.

 

여기서 제갈량의 마음과 뜻을 볼 수가 있다.

제갈량이 천하사에 뜻을 두고

혼란한 시국을 평정하여

천하의 창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의(大義)를 가졌다면 다시 돌아올 날을 걱정하여

유상팔백주와 박전 15경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갈량이 유비현덕의 삼고초려에 응한 것은

천하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분연히 일어선 것이 아니라

단지 유비현덕이 세 번이나 자신을 찾아온

간곡한 부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어서이고,

또한 이로써 자신의 뛰어난 재주를 발휘하여

천하를 제패해보고자 하는데 뜻을 두고

있었음을 역력히 읽을 수가 있다.

 

천하창생을 편히 해주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재주를 세상에 한번 발휘해보고자 하는

공명심에서 나섰고 공을 세우고 나면

미련 없이 다시 돌아올 기약을

내심(內心)하고 있었으니

천하사를 하러 떠나는 마당에

동생인 제갈균에게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을 맡아

잘 간수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언제까지나

제갈량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유비에게 올린 상소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初城都有桑八百株 薄田十五頃

초성도유상팔백주 박전십오경

子孫衣食自有餘饒 不別治生

자손의식자유여요 불별치생

以長尺寸臣死之日不使廩有餘

이장척촌신사지일불사늠유여

票庫有餘財以負陛下及卒果如其言

표고유여재이부폐하급졸과여기언

 

제갈량이 표상소를 올려 가로되

신이 처음에 성도에다 뽕나무 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을 두어 자손의 의식에 여유가 있으니

달리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자

하지 않겠으며 신()이 죽을 때에

창고에 곡식을 남기고 창고에 재물을 남겨두어

폐하께 부담이 되게 하지 않으리다.

하더니 과연 그 말과 같으니라하였다.

 

이 상소에는 제갈량의 청렴결백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고는 하지만

그 마음속에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이

떠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을 남겨둔 것은

자신이 공을 이루는 날

다시 돌아가기 위한 기약이고,

자신이 죽을 때에 창고에 곡식을 남기고

창고에 재물을 남겨두어 유비현덕에게

부담이 되게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자신이 혹여 실패하더라도

자손들의 의식에는 여유를 둘 수 있으니

걱정이 없다는 말이다.

 

즉 제갈량이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

언제까지나 마음속에서 털어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것은 공명을 세우고 나면

돌아가겠다는 그 마음을 떨쳐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며, 또 자신이 혹여 실패해도

자손의 의식에 염려가 없도록

방비를 미리 갖추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제갈량의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

천하창생들을 염려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공명과 가사(家事)의 안위를 먼저

염두에 두고 있는 소극한 마음의 반영인 것이다.

 

제갈량의 모사(謀事)가 신에 가까울 만큼

뛰어났다고 하지만 이런 소극적인 마음에는

신명(神明)들이 응해줄리 만무한 것이다.

그 뜻이 천하창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의(大義)에 있지 않았기에

제갈량이 꾸민 모사에

신명이 응해주지 않게 되자 결국

천하사(天下事)를 성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제갈량이 호로곡(葫蘆谷)에서

사마의(司馬懿) 삼부자를 화공작전을 써서

꼼짝없이 죽게끔 만들었으나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려

사마의 부자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이 때 제갈량이 하늘을 우러러 한 말이

모사재인(謀事在人)이요,

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 하였다.

즉 사람이 일을 꾸며도

이루고 말고는 하늘에 있다는 말이다.

제갈량의 신과 같은 재주라도

신명이 응해 주지 않으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오장원(五丈原) 전투에서

사마의(司馬懿)가 천문을 보아

제갈량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지연작전을 써서 제갈량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제갈량이 죽자 전투를 치루어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그 아들 사마소(司馬昭)

()를 도와 촉한(蜀漢)을 멸망시키고,

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위제(魏帝)로부터

황제자리를 양위 받아

제위에 올라 동진(東晋)을 세우고

사마의를 선제(宣帝)로 받들었으니 결국

천하는 사마씨(司馬氏)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갈량의 재주는 뛰어 났으나

그가 품은 뜻이 혼란한 시국을 평정하여

창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의(大義)보다는

자신의 재주를 발휘하려는 공명심과

가사의 안위에 연연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그의 모사에 신명이 응해주지 않아

대사를 그르치고 말았던 것이다.

 

조정산께서 말씀하시길

천하사(天下事)를 도모(圖謀)하는 자는

모름지기 하우씨(夏禹氏)를 본() 받을 지니라

증산성사께서도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니라

하시고 제갈량의 성공하지 못한 고사(古事)

말씀하셨거니와 하우씨(夏禹氏)

구년치수(九年治水)하는 사이

삼과기문(三過其門)하되

불입기문(不入其門)하였으므로

왕천하(王天下)하였느니라.

하우씨(夏禹氏)인들 구년 동안

어찌 처자식이 그립지 않았으랴하셨다.

 

천하를 건지려는 뜻을 둔 자가

나의 한 개인적인 가사에 치우친다면

천하사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가사를 져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천하(天下)도 역시 하나의 큰 가정이므로

천하사의 책임을 맡은 자는

천하의 큰살림을 모두 살펴야 하는 것이지

개인적인 살림에 연연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우씨(夏禹氏)는 구년치수를 하는 동안

자기 집 앞을 세 번 지나칠 일이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것이 어찌 하우씨가

집안 식구들을 위하는 마음이 없어서이겠는가.

 

그러나 천하창생의 목숨을 책임진 자가

개인의 정에 이끌리어 마음에 편중을 두고

내 가정을 먼저 살핀다면

가정을 두고 치수(治水)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누구인들

개인의 사사로움이 없는 자가 있겠는가.

 

그 사사로움을 모두 채우고자 하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재 살 길만 챙기느라 바빠서

천하창생을 구하는 치수(治水) 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의 고사에서 보았듯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박전십오경과 유상팔백주를 두어

자손의 의식은 여유가 있으니

자신의 생활은 조금도 염려가 없다고

장담하였으니 제갈량이 과연

천하창생의 배를 불리고자 하였겠는가?

 

창생을 구하고자 하는 뜻이 없는 곳에

신명이 응할 리가 만무한 것이니

천하사를 성공시킬 수 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사를 하는 자는

천하에 공평하게 처사하는 것이지

내 가정의 안위에 우선을 두어

편중을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우씨는

천하창생을 구제하고자 하는데 뜻을 두고

천하사에 공평무사하였을 따름이요.

사사로운 감정을 조금이라도 두지 않았으므로

천하의 왕()이 되었으니

천하사에 뜻을 둔자라면

이 두 가지 고사를 잘 생각하여

마음가짐에 본()을 삼아야 할 것이다.

 

증산성사께서

이제 혼란한 세상을 바르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와야 한다.

(공사 322)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세상의 혼란을 바르려면

황극신이신 대두목께서 출현하지 않으면

혼란한 이 시국을 바로 잡을수가 없는 것이다.

 

황극(皇極)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정(中正)의 도()를 의미하며,

대두목이 천하를 다스리는

진법(眞法)의 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황극은 진법이며 이 진법은

대두목이 정한 대도(大道)인 것이며,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신명을

황극신(皇極神)이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