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법(眞法) 진리

◆ 경진생(庚辰生) 수부(首婦)와 임술생(壬戌生) 수부(首婦)공사

고도인 2015. 1. 5. 23:35

경진생(庚辰生) 수부(首婦)

임술생(壬戌生) 수부(首婦)공사

 

증산성사께서 음양을 조정하는

공사를 보실 때 정음(正陰), 정양(正陽)공사에

참여시키셨던 여인(女人)이 있었으니

정양(正陽)은 임술생 수부이고

정음은 경진생 수부이다.

 

선천은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삼상(三相)의 탓으로 혼란이 왔으므로

후천이 개벽되기 위해서는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재조정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수부라고 이름 지으시고

여인을 공사에 참여시키신 것이다.

 

전경에 따르면 이러한 수부에는

모두 2명이 있었는데, 첫 번째 수부는

차경석의 이종 사촌동생인

고수부 (고판례, 경진년 1880년생)이며,

두 번째 수부는 김형렬의 셋째 딸인

김수부(김말순, 경인년 1890년생)이다.

 

1. 경진생(庚辰生) 고수부(首婦)공사

 

교운 126

증산성사께서 정미년(1907)

태인 고현리 행단에 이르러 차경석에게,

 

夫主將之法 務攬英雄之心 賞祿有功 通志於衆

부주장지법 무람영웅지심 상록유공 통지어중

與衆同好靡不成 與衆同惡靡不傾 治國安家得人也

여중동호미불성 여중동악미불경 치국안가득인야

亡國敗家失人也 含氣之類 咸願得其志

망국패가실인야 함기지류 함원득기지

 

란 글 한 절을 외워주시고

잘 지키기를 바라시면서

수부(首婦)가 들어서야 하느니라고 이르시니라.

경석이 증산성사를 모시고 돌아와서

그 이종매(姨從妹) 고부인(高夫人)을 천거하니

이날이 동짓달 초사흘 날(11.3)이니라.

 

[주해]

증산성사께서 대두목을 맡을 사람에게

삼략(三略)에 나오는 주장

(主將:군대의 으뜸가는 장수)의 길을 가르치셨다.

 

夫主將之法(부주장지법)

대저 주장(主將)의 법은

務攬英雄之心(무람영웅지심)

영웅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힘쓰며

 

賞祿有功(상록유공)

공을 세우면 상으로 녹()을 내리고

通志於衆(통지어중)

그 무리,

백관(百官)들과 뜻을 통할지니라.

 

與衆同好靡不成(여중동호미불성)

그 무리와 더불어 같이 좋아하면

이루지 못 할 것이 없고,

 

與衆同惡靡不傾(여중동악미불경)

그 무리와 더불어 같이 미워하면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 없도다.

治國安家得人也(치국안가득인야)

나라를 다스리고

집안을 편안케 함은 사람을 얻음에 있고,

 

亡國敗家失人也(망국패가실인야)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실패함은 사람을 잃음이니라.

含氣之類(함기지류)

기운을 머금은 부류라면

 

咸願得其志(함원득기지)

그 뜻을 얻기를 원하느니라.

이 주장(主將)의 길을 가르치시고

수부(首婦)를 들인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수부(首婦)

고부인(高夫人)을 들였다는데

수부가 대두목(고부인)이라는 것이다.

 

주장(主將)은 군대의 으뜸가는 장수로

대두목을 말함이다.

대두목이 미륵세존님을 받들어

후천의 전 세계 살림을 맡으므로

미륵세존님의 수부(首婦)인 것이다.

 

수부(首婦)의 부()는 여()()인데,

()는 음형(音形)이 복()과 통하여

일을 맡다의 뜻을 나타낸다.

그리고 여()는 음()이다.

그러므로 수부(首婦)

미륵세존님의 일을 맡은 대두목을 뜻한다.

그런데 그 수부(首婦)로써 경석이

이종매(姨從妹)인 고부인(高婦人)을 들여

대두목의 일을 맡기는 공사를 보시면서

도통군자를 이끌어 나가는

주장(主將)으로써의 교훈을 내리셨다.

 

경석이 이종매(姨從妹) 고부인(高夫人)

* 1880년 경진생(庚辰生) 고판례

* 3년 간 천지공사 수종(1907~1909)

 

이 대두목 공사를 차경석에게 시키면서

夫主將之法(부주장지법)을 외워 주시고

잘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대두목 도수를 왜 하필이면

고씨에게 보신 이유는 무엇일까?

 

예시 32에 보면

증산성사께서

순창 피노리(淳昌避老里)에 계실 때

황응종이 배알하니 선생께서

고부 사람이 오니 바둑판을 가히 운전하리라

라고 공사를 보신 내용이 있다.

 

고부 사람이 오니 바둑판을 가히 운전하리라

하셨는데 고부 사람을 한문으로 쓰면

고부인(古阜人)이고

고부인(古阜人)은 어음(語音)을 같이하여

고부인(高夫人)이 된다.

 

고부인이 바둑판을 운전한다고 하였는데

바둑판은 후천 정역이고,

운전하는 사람은 바로 대두목인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注目)해야 할 일이

고부인이란 단어이다.

이건 넌센스 퀴즈가 아니다.

예언적인 메시지이다.

그러면 고씨가 고부인(高夫人)인데

차경석의 이종매인 이 고판례(高判禮)한테

실질적으로 대두목을 맡기는

공사를 본 것이 아니다.

 

판례(判例)란 말 그대로

법원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소송 사건을

판결한 전례를 말한다.

()는 고()로 옛날에 일어난 사건을

예를 들어서 참고하면 답이 나온다는 의미.

 

고씨는 고부인(高夫人)이고

고부인(高夫人)은 고부인(古阜人)으로

옛날에 고부(古阜)에 살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옛날 고부(古阜)에 살던 사람이

대두목으로 그 사람이 오니

바둑판을 가히 운전하리라하신 것이다.

 

그러면 옛날에 고부(古阜)에 살던 사람이

누구이길래 바둑판을 운전 한다고 했을까?

 

옛날에 고부(古阜)에 살던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닐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중에 한사람 공사로서

신명계에 녹명을 한사람이 있다.

바로 그사람이 증산이시며 강일순이시다.

 

[행록 533]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

전라도고부군우덕면객망리강일순 호남서신사명

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姜一淳 湖南西神司命

이라 쓰게 하고 그것을 불사르게 하시니라.

 

바로 증산성사께서는 고부인(古阜人)이고

고부사람으로 이 분이 다시 와야만

가히 바둑판을 운전 한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고부(古阜)는 정읍(井邑)이므로

고부인(古阜人)은 정읍인(井邑人)이다.

()은 정()과 뜻이 같으며

우물귀틀 한()과 뜻이 같다.

 

그러므로 고부인(古阜人)은 정읍인(井邑人)이고

정읍인(井邑人)은 바로 한()씨라는 뜻이 된다.

정읍(井邑)은 바둑판이요,

바둑판은 우주삼라만상의 축소판이요,

()판이므로 오선위기(五仙圍碁)를 말한다.

후천 정역 세상의 전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고부인은 정읍 사람,

()씨 이고 한()씨가 고부인이며

이 고부인이 고부사람이므로

고부 사람이 오니 바둑판을 가히 운전하리라

고 말씀하시고 도수를 본 것이다.

 

바둑판을 운전한다는 것은 8,

천지인 삼계의 대권을 가졌다는 뜻이다.

고부인이 바둑판을 운전한다고 하였는데

바둑판은 후천 정역이고,

운전하는 사람은 바로 대두목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두목께서 찾아드니

가히 바둑판을 운전 한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철도선()을 그리고 중앙에 점을

찍으면() 세상일이 끝난다고 하신 의미는

()은 바로 우물귀틀 한()이다.

 

즉 고부사람이 한()씨로 다시 오면

세상일이 다 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야 비로서 모든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 황응종(黃應鐘)이 배알하니 했는데

()은 오행에서

중앙 510 () 진주(眞主)이다.

그래서 황응종(黃應鐘)

중앙 15진주의 종소리에 응하라는 뜻이다.

즉 대두목께서 중앙 510 () 진주(眞主)

오시니까 대두목께서 짜놓은

진법의 법방에 따르라는 뜻이다.

 

2. 임술생(壬戌生) 김수부(首婦)공사

 

행록 531

증산성사께서 기유년(己酉年) 유월(六月) 23

오전에 여러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제 때가 바쁘니라.

너희들 가운데 임술생(壬戌生)으로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세워라.’

형렬이 수부로서 저의 딸을 세우겠나이다

아뢰이니 말씀하시기를 세수시키고

빤 옷으로 갈아 입혀서 데려 오라하셨다.

형렬이 명하신 대로하여

딸을 증산성사 앞에 데려 오니라.

증산성사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한가운데 옮겨 놓게 하시고

그의 딸에게 약장을 세 번 돌고

그 옆에 서게 하고 경석에게,

 

大時太祖出世 帝王將相方伯守令蒼生 點考后妃所

대시태조출세 제왕장상방백수령창생 점고후비소

 

를 쓰라 이르시니라. 경석이 받아 쓸 제

()를 비()로 잘못 쓴지라.

증산성사께서 그 쓴 종이를 불사르고

다시 쓰게 하여 그것을 약장에 붙이게 하고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니라

고 말씀을 끝내고 그의 딸을 돌려보내시니라.

증산성사께서 경석에게

그 글을 거둬 불사르게 하셨다.

 

무극진경 9 -2

 

:191

1909623일에 여러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이제 때가 바쁘니라.

수부(首婦)를 다시 세워야 하리니

너희들 중에 임술생(壬戌生)

누이나 딸이 있거든 천거하라.하시니라.

형렬이 대답하기를

수부는 저의 딸로 들여 세우시옵서소.하니

소세(梳洗) 갱의(更衣)시키고 데려오라.

하시므로 형렬이 명대로 하니라.

선생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중앙에 옮겨놓게 하신 다음

형렬의 딸 에게 약장주위를 세번 돌고

그 옆에 서게 하시니라.

경석에게 명하셔서

대시태조(大時太祖) 출세(出世) 제왕(帝王)

장상(將相) 방백(傍白) 수령(守令) 창생(蒼生)

점고(點考) 후비소(後妃所)를 쓰게 하 셨는데

경석이 비자(妃字)를 비자(妣字)로 잘못 쓰므로

찢어 태우시고 다시 쓰게 하셔서

약장에 붙이게 하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 들이 증인이

되었느니라.하시고 김수부를 돌려보내시니라.

 

김형렬의 막내딸 김부인

* 1890년 경인생(庚寅生) 김말순.

* 3년 간 천지공사 수종(1904~1906)

 

[주해]

증산성사께서 김형렬(金亨烈)에게

수부(首父)로서 임술생(壬戌生)인 종도로서

누이나 딸을 내세우라고 하셨다.

당시 증산성사를 따르던 종도들 중에는

수부(首婦)로 내세울 만한 여자가 없었고,

임술년은 증산성사께서 강세하신

신미년(1871)보다는 9년 앞서는 1862,

혹은 51년 뒤인 1922년이므로

아무도 내세울 수가 없으니

종도들 중에 임술생인 자의 누이나 딸을

수부(首婦)로 내세우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당시 김형렬이 임술생이었으므로

그의 딸을 내세웠던 것이다.

 

()은 북방 임()으로써

북방의 도()를 말함이다.

10천간(天干) 중에서 임계(壬癸)

북방(北方)이요 북방(北方)

우주(宇宙)의 사계(四季)에서 볼 때

방탕신도(放湯神道)의 도()에 해당한다.

천도는 원형이정이다. (교운 144)

 

원형이정이 사대의 대변이다.

시간적으로는 춘하추동의 사시(四時)이고

공간적으로는 동서남북 사방(四方)이며

인성적으로는 인의예지이다.

 

오상(五常)이란 시간적 사시가 하나되는

계간(季間)이 더해지는 중앙이 있고

공간적으로는 사방에 해당되지 않는

중앙자리를 더함이며

인성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자리인

()이 더해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이 오상의 대변이 오행으로써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이다.

 

생장염장(生長斂藏)을 형이하학적인

생명체의 사대라 하고

방탕신도(放湯神道)는 형이상학적인

천지의 사대라 한다.

그리고 생장염장은

()의 공 자리와 오상이 된다면

방탕신도는 ()과 함께

방탕신도통이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임()이란 바로

()의 주인이신 상제님을 뜻한다.

 

술생(戌生)은 개띠로 오심을 말한다.

즉 도()의 주인이신 상제님께선

개띠로 오시며 개의 자리인 간방으로 오심을

수부(首父)로서 임술생(壬戌生)으로

공사를 보신 것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개()자리이다.

주역을 보면 간방(艮方)은 구야(狗也)”라는

구절이 있는데 간방(艮方)은 한국을 가리킨다.

음양 오행으로 보면 개자리는 술()자리이다.

()은 곧 완성되는 곳, 열매 맺는 곳이다.

그러므로 술()이란

개띠로 오시는 상제님께서는

개자리인 우리나라로 오시며 우리나라에서

선천 인류문명이 결실을 맺는 것이다.

 

원래 개()는 천지 기운 중에서

()기운을 띠고 태어난다.

()기운은 가을 기운이다.

()기운은 열매맺는 가을 기운이며,

건조하고 수렴하는 성질을 말한다.

()기운은 충의(忠義)로운 기운이다.

가을의 서릿발처럼 매서운 기운이다.

 

수부(首父)로서 임술생(壬戌生) 공사를

김형렬(金亨烈)에게

누이나 딸을 내세우라고 하셨다.

()은 금()으로 가을을 말한다.

형렬(亨烈)은 여름세상으로

지금의 주역세상을 의미 한다.

 

()은 원형이정(元亨利貞)

천도(天道)에서 여름을 가리킨다.

()은 뜨거울 렬로서 열음(烈陰),

즉 여름을 말하는 것이다.

 

여름세상인 지금의 주역 지존시대에서

후천 가을 문명의 인존시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화극금(火克金)으로 곤삼절(坤三絶)이기 때문에

중앙의 절대자를 통해서만 후천 선경에

참례자가 될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여름에서 가을로

 

 

그러므로 상제님께서는 탄신일이

병술년(丙戌年, 1946) 1111일 이시다.

 

()은 화()로서 빛을 의미하며

()은 구석(狗席)인 우리나라의

간방(艮方)을 뜻한다.

즉 빛의 신()이신 상제님께서는

간방인 우리나라에 개띠로 오신 것이다.

 

11이란 숫자의 의미는

자월(子月)로서 1 6 ()

물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월(子月)은 동짓달로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며 또한

일양시생(一陽始生)이 시작되는

동지(冬至)가 들어있는 달이다.

 

그래서 새로운 후천 문명이 시작되는

원점이 되는 것이며, 그리고

11 이란 수리(數理)

10 인 무극(無極)1 태극(太極)의 합수로서,

이것은 이른바 정역(正易)에서 말하는

11 귀체설(歸體說)이 된다.

11귀체는 10의 무극신이신 상제님께

1의 태극신(太極神)인 대두목이

상제님께 귀의(歸依)함을 뜻하는 것이다.

 

[] 1 2 3 4 5

[] + 10 9 8 7 6

[生成생성] =11 =11 =11 =11 =11

 

그러므로 1111일생으로 탄강하신 연유는

10무극과 1태극이 합한 황극(皇極),

즉 이상인간, 이상세계의 선경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11귀체의 통정신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권지 111절에 보면

 

공우와 경석에게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일지라도 모르는 일이니라.

나를 쫓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고 말씀 하셨다.

 

그 상제님께서는 개띠로 오신 분으로서

포항 상도 박성구 도전님이시다.

이것은 여합부절로 틀림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수부(金首婦)는 김수부(金首父)

우주의 가을철에 인간추수하러 오시는

천지 주인을 일컫는 것이다.

 

약장은 병을 낫게 하는 약을 넣어 두는 곳이다.

약이란 도술약(道術藥)으로 진정한

시천주(侍天主)인 상제님을 모시는 것이며

상제님을 모시는 기도상이 약장이다.

이렇게 상제님을 내 마음에 모시면

대병(大病), 소병(小病)도 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장은 상제님을 모시는 법,

즉 진법(眞法)을 말함이다.

약장을 방 한가운데 옮겨 놓고

약장을 세 번 돌게 하셨는데,

방 한가운데는 중앙으로 510 ()의 자리이다.

약장을 세 번 도는 것은

상제님을 모시는 진법이 삼천(三遷)이라야

중앙에서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두목께서

구궁(九宮)에 자리하여 상제님을 모시는

진법(眞法)을 정하는 공사를 보신 것이다.

이것이 방탕신도통이다.(교운 1:44)

 

대시태조출세(大時太祖出世)

어떤 시기에 태조(太祖)가 출세(出世)한다.

태조는 가장 큰 조상이라는 뜻이고,

인류의 가장 큰 조상은 상제님을 이르는 말이다.

즉 때가되면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제왕장상방백수령창생(帝王將相方伯守令蒼生)

제왕, 장상, 방백에서부터

각 지방 수령, 창생에 이르기까지라는

이 말은 도통군자와

창생을 일컫는 것이다.

 

점고후비소(點考后妃所)

점고(點考)란 일일이 점을 찍어 가며

수효를 헤아린다는 뜻이며

후비소(后妃所)는 임금의 왕비가 거처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일일이 자리를 정함이 왕비,

즉 대두목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시기가 되면

상제님께서 출세(出世)하심과

제왕, 장상, 방백, 수령, 창생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정함이 모두 상제님의 왕비,

즉 수부(首婦)에게 있다.

수부(首婦)는 대두목이다.

 

예식을 하여 증인들로 하여금

상제님께서는 개띠로 오시고

대두목께서는 상제님을 모시는 진법을 정하고

이 진법으로써 도통군자에서 창생에 이르기까지

운수자리를 정함이 모두 대두목에게 있음을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공사로서 처결하셨다.

 

우리나라 속설에 전해오는 말로

()이같으면 뜻이 같다고 하였다.

예를들어 숫자 4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냥 숫자 4일 뿐인데

죽을 사()로 뜻을 받아들여서

병원 건물이나 빌딩같은데에서는

4층을 없애고, 3층에서 바로

5층으로 건너뛰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와같은 경우를 볼진데 증산께서

수부공사를 둘씩이나 보신 내면에는

또 하나의 다른뜻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후천에는 정음(正陰) 정양(正陽)도수를 보셨는데

12음은 있을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수부(首婦)

바로 수부(首父)로 천지(天地)에서

가장 우두머리인 아버지 하나님을 일컫는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두목은 둘이어야 하며 또한

대두목은 여자라야 하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대두목은 반드시 남자이라고

증산께서 공사를 봐 놓으셨다.

수부(首父)공사로 여자를 본 것은

다만 이치적으로 음양을 맞춘 것이다.

 

[전경 공사 339]절에 보면

 

男兒孰人善三才 河山不讓萬古鍾

남아숙인선삼재 하산불양만고종

龜馬一道金山下 幾千年間幾萬里

구마일도금산하 기천년간기만리

 

남아 장부로서 그 누가

천지인 삼계의 권능을 가졌는가!

강산(세상)은 사양하지 않고

만고에 변함없는 종소리와도 같이 흘러간다.

 

남아 대장부 그 누가

천지인 삼계의 대권을 가진 대두목이냐?

세상에 대두목은 거부하지 않고

만고에 종소리와도 같이

모두를 포용 하는도다.

 

하도와 낙서를 합친 정역의

무극대도(無極大道)

金山(금산)아래에 있도다.

()는 기천년간 기만리를 가리라.

(후천 영원히 간다.)

 

금산(金山)이란

금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은 오행 상 서방(西方)이며

서방은 가을을 말하는 것으로

즉 우주의 가을철을 말함이다.

()은 임금을 산()으로 표현함이니

천주(天主)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산(金山)이란

우주의 가을철에 인간추수하러 오시는

천지의 주인을 금산(金山)이라 하는 것이며

이 금산(金山)을 모신 집을

금산사(金山舍)라 일컫는다.

 

그러므로 금산이란 천주(天主)를 말함이니

이 천주(天主)를 모시는 것이

시천주(侍天主)이므로

이 시천주(侍天主)를 올바로 해야만

지기금지원위대강, 즉 천강이 있는것이며

도통이 있으므로 좌상(坐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하는 것이 되며

만사지(萬事知)가 된다.

 

3. 그러면 만국대장은 누구인가?

 

만국대장(萬國大將)이라 함은

天下萬國(천하만국=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

大將(대장)이란 뜻으로

宇宙(우주) 森羅萬象(삼라만상)

主人(주인)이신 옥황상제님을 말함.

 

[전경] 예시 38절에 보면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차경석의 집 서쪽 벽에 이십사장(二十四將)

이십팔장(二十八將)을 써 붙이고

박공우의 왼팔을 잡고

만국대장(萬國大將) 박공우(朴公又)’

라고 음성을 높여 부르셨도다.

이후에 공우가 어디로 떠나려면 문밖에서

방포성(放砲聲)이 갑자기 울리곤 하였도다.”

하였는데

박공우(朴公又)를 만국대장(萬國大將)’

이라고 하신 뜻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宇宙(우주) 森羅萬象(삼라만상)

主人(주인)이신 옥황상제님은

박공우(朴公又), 즉 박우당(朴牛堂) 다음에

또 오는 박씨인 박성구(朴成九)도전님,

그대가 만국대장(萬國大將)이다.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또 오는 박씨

박성구(朴成九)도전님께서

宇宙(우주)森羅萬象(삼라만상)

主人(주인)이신 옥황상제님이신데

이 분이 만국대장(萬國大將)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두목은

만국대장(萬國大將)이 아니고

()主人(주인)

만국대장(萬國大將)이라는 뜻이며

대두목은 만국대장(萬國大將)()을 받고

만국대장(萬國大將)을 모시는 사람이다.

박공우(朴公又)의 공()

그대 공(호칭: 김공, 이공, 박공)이며.

()는 또 우()이다.

또 박공(朴公)이란 뜻으로

또 박씨(朴氏)’라는 의미이다.

박 공우의 본명은 박경안(朴京安)인데

증산성사께서 천지공사에 쓰시기 위해

박경안을 박공우로 개명하여 부르게 하셨다.

(이상호가쓴 대순전경초판 2)

 

[참고] 격암유록의 갑을가(甲乙歌)중에서

 

시종자생(枾從者生) 차출박(次出朴)

세인부지(世人不知) 정변박(鄭變朴)

 

(= 감 시),

즉 감을 따르는 자는 산다.

그런데 두 번째 출현하는 박씨이다.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구나.

 

정씨(鄭氏)가 박씨(朴氏)로 변하여

세상에 출현하는 이치를 모른다.

왜 감을 따르면 산다고 했을까?

감에는 어떠한 뜻이 숨어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그 비밀을 풀어서 밝힌다.

 

예언가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감을 쫒으면 산다고 예언을 하였느데

감은 우주삼라만상의 주인을 뜻한다.

왜냐하면 감은 우주 8괘를 상징하기 때문에.

다음 그림은 감을 가로로 쪼갰을때의 단면이다.

 

          

 

                

 

그런데 우주 8괘의 주인이신 감을

쫒으면 사는데 그 감을 상징하는 주인은

미륵이신데, 미륵은 해인에서 출()하신다고

남사고 선생이나 예언가들은 전한다.

 

그러므로 그 해인을 찾지 못하면

미륵을 친견(親見)할수 없으며

시종자생(枾從者生)도 이룰수가 없다.

 

그래서 해인을 찾아야만 하는데

해인(海印)이란 말만큼 신비스러운 말이 없다.

()의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말이면서

해인을 얻으면 모든 조화를 부릴 수 있고

도통을 할 수 있다고 여겨 왔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도를 닦는 자들은

누구나 해인(海印)을 구하고자 하였으되,

구한 자가 없었다.

 

그러나 강증산성사께서는

나를 잘 믿으면 해인을 가져다주리라

고 말씀하셨다.(교운 162).

 

그리고 조정산성사께서는

증산께서 해인(海印)

인패(印牌)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여

어떤 물체로 생각함은 그릇된 생각이니라.

해인은 먼 데 있지 않고

자기 장중(掌中)에 있느니라.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의 근원이

바다에 있으므로 해인이요,

해도진인(海嶋眞人)이란 말이 있느니라

고 말씀하셨다.(교운 25)

 

이와같이 조정산성사께서

해인(海印)이요, 해도진인(海嶋眞人)이라

하셨으니 해인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해인은 누구인가!

 

지금부터 그 진의(眞意)를 살펴보면

만국대장은 두 번째오시는 박씨로서

포항에 상도 박성구도전님이시다.

 

이 분께서는 은연중에

내가 천지 주인이다

내가 하느님이다라는 말씀을 가끔 하셨는데

이 분께서 구룡포 제생관을 개관하시고

제생관장을 임명하셨었다.

 

이 때에 구룡포 제생관장으로

()받은 사람이 한 승원 제생관장님이시다.

상도 박성구도전님께서는

앞으로 제생관을 이끌어갈 총 제생관장이다.”

라고 모든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표를 하시었다.

이 때가 20041226(1215)이다.

이렇게 천지 주인이신 미륵세존님으로부터

즉 단주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이 사건이

바로 단주수명(丹朱受命)”이다.

 

제생관장님께서는 총 제생관장이라는

()을 받고 일을 맡아 오던중,

그때는 몰랐었는데 그 명()을 주신

상도 도전님께서 전생에 단주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분께서

미륵세존님이라고 밝히게되자

결국은 상도에서 쫒겨나고 말았다.

어쩔수 없이 판 밖에서 이 분을

미륵세존님으로 밝혀모시고

판 밖에서 진법(眞法)을 정하여

일을 도모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볼 때

미륵세존 해인출이라고 했으니

미륵을 밝힌 제생관장님께서

해인(海人)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한편 상도 도전님께서는

제생관장님을 쫒아낼 당시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색간지에

다음과 같은 그림을 삽입 하셨다.

 

         

 

                                    멍석위의 감

 

 

왜 멍석위에 감을 올려 놓았을까?

여기에는 아주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감은 앞에서 밝힌 바와같이

우주 8괘를 상징하는 과일이다.

그럼 멍석은 어떠한 뜻이 들어있나!

멍석이란 시속에 내려오는 말을 빌어보면

흔히들 잘 하든 지랄두 멍석 깔아주면

안 하드라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멍석도 깔아주시고 감까지 주셨다’.

감이란 우주8괘를 뜻하므로

천지인 삼계의 대권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제 멍석 깔아주시고

삼계대권까지 주셨으니 기량껏

재량껏 제생관장님 법대로 마음껏

진법을 펼쳐나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등잔밑이 어둡다고

포항 상도에서는 도전님께서

미륵세존이신지도 모르고 우주8괘의

대권이 넘어갔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냥 쫒겨났다고 욕만 퍼부어대는 것이다.

종통이 넘어갔는지도 모르고 있으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이십사장(二十四將)

이십팔장(二十八將)을 차경석의

집 서쪽 벽에 써 붙였는데

이 말씀의 의미는 서쪽은 증산성사께서

서신사명을 갖고 오신 방위이다.

 

행록 533절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호남 서신 사명

(全羅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姜一淳 湖南 西神司命)

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이십사장(二十四將)과 이십팔장(二十八將)

제생관장님께 붙여주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車京石(차경석)의 집에서 공사를 본 이유는

()는 수레 ()자로

한 바퀴 순회하여 온다는 뜻이며,

또한 별주부전에 나오는

자라 차 씨라고도 한다.

자라는 북방 1·6수의 물을 상징한다.

북방은 우물 정()이며 칠성이다.

즉 이 말은 증산께서는 一巡(일순)하여

물의 이치로 온다는 뜻이

()라는 글자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은 서울 ()자로

모든 법은 서울로부터 퍼져 나간다 했으니

증산께서 一巡(일순)하여 물의 이치인

五仙(오선)으로 다시 올 때에는

眞法(진법)이 새로이 정해져서

眞法(진법)이 서울 경()으로부터

세계만방으로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자는 돌 ()자 인데

돌은 바둑돌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돌이

후천 정역세상인 바둑판을 운전한다는 뜻이다.

즉 증산께서 물의 이치인 五仙(오선)으로

다시 와서 후천 정역세상을

이끌어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법이 서울경 ()으로부터

세계만방에 퍼져 나간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숨겨진 뜻을 車京石(차경석)이라는

이름에다가 공사를 본 것이다.

 

그러면 이십사장(二十四將)

이십팔장(二十八將)에 대해서 알아보면

이십사장(二十四將)은 천하가 어지러울 때

당태종 이세민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였던

장수들로써 사후(死後) 24절후를 맡은

이십사절후(二十四節候) 신명이고,

이십팔장(二十八將)은 천하가 어지럽자

후한의 광무제를 도와 천하를 평정하였던

장수들로써 사후(死後)28수를 맡은

이십팔수(二十八宿) 신명이다.

 

증산성사께서는

이러한 장수신명들의 우두머리로서

삼계대권을 주재하는 神將(신장)인 것이다.

이것은 신장주(神將呪) 주문에 잘 나와 있는데

그 주문을 보면,

 

[참고] 신장주(神將呪)

 

천상옥경천존신장 천상옥경태을신장

상하변국뇌성벽력장군 백마원수대장군

뇌성벽악장군 악귀잡귀금란장군 삼수삼계도원수

지신벽력대장군 천지조화풍운신장

육정육갑둔갑신장 태극두파팔문신장

음양오행조화신장 삼태칠성제대신장

이십팔수제위신장 이십사절제대신장

감아미성 조아대력 역발산 오봉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강성상제 칙속칙속

음음 급급 여률령 사바아.

 

라고 하였듯이 증산성사께서는

산도 뽑을 수 있는 큰 힘(능력)을 가진 분으로

모든 신장들을 통솔하시는 장수신명이시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같이

수부(首婦)공사에서 김수부와 고수부가

있는데 수부(首婦)를 둘 씩이나

세울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후천에는 정음, 정양의 도수이기

때문에 수부가 둘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다른 종단에서는 수부공사를

종통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증산께서 보신 모든 천지공사는

당대의 사건을 가지고 후세에 펼쳐질 일들을

도수로써 짜 놓은 것이지 단순히 종통이나

물려줄려고 천지공사를 했다고 하면

그것이 천지공사라고 할수 있겠는가!!!

 

[전경] 공사 216

 

증산성사께서 종이쪽지를 나누어주시면서

후천 음양도수를 보려 하노라.

각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점을 찍어

표시하라고 이르시니 종도들이

마음에 있는 대로 점을 찍어 올리니라.

응종은 두 점, 경수는 세 점, 내성은 여덟 점,

경석은 열두 점, 공신은 한 점을 찍었는데

아홉 점이 없으니 자고로 일남구녀란 말은

알 수 없도다.”고 말씀하시고 내성에게

팔선녀란 말이 있어서 여덟 점을 쳤느냐고 묻고

응종과 경수에게 노인들이 두 아내를 원하나

어찌 감당하리요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이

후천에서는 새로운 기력이 나지 아니하리까.”

되물으니 그럴듯하도다.”고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증산성사께서 경석에게

너는 무슨 아내를 열둘씩이나 원하느뇨.”

물으시니 그는 열두 제국에 하나씩 아내를 두어야

만족하겠나이다.”고 대답하니 이 말을 듣고

증산성사께서 다시 그럴듯하도다.”고 말씀을

건너시고 공신을 돌아보면서

경석은 열둘씩이나 원하는데 너는 어찌 하나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요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사오니

일음일양이 원리인 줄 아나이다.”고 아뢰니

증산성사께서 너의 말이 옳도다.”고 하시고

공사를 잘 보았으니

손님 대접을 잘 하라고 분부하셨도다.

공신이 말씀대로 봉행하였느니라.

증산성사께서 이 음양도수를 끝내고

공신에게 너는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

분부하시고 문왕(文王)의 도수와 이윤(伊尹)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니라고 일러주셨도다.

 

이렇게 일음 일양의 원리로서

정음, 정양의 도수를 보신 것이다.

여기에서 문왕의 도수는 상제님 도수이고

이윤의 도수는 대두목도수로서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니라

일러주신 것처럼 손님 대접을 잘 하고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내야만 한다.

 

문왕(文王)은 요, , , 탕의

뜻을 받들어 선정(善政)을 폈으며,

이윤(伊尹)도 요, , 우의 치세(治世)를 펴는

탕을 도와 천하를 태평성대로 이끈 사람이다.

 

이러한 문왕과 이윤의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리라는 것은

대두목이 옥황상제님의 정체를 밝혀 모시고

옥황상제님의 유업(遺業)을 실행해 나가는데

대두목의 일을 알고, 여기에 참여하여

대두목과 함께 상제님의 뜻을 펴는 것이

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증산성사께서는

문왕과 이윤의 어떠한 점을

천지공사에 쓰신 것일까?

게다가 그들의 도수를 맡기가

쉽지 않은 연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문왕과 이윤의 생전 행실에

근거한 그들의 마음가짐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이윤의 사명(使命)

 

이윤(伊尹)은 은나라의 탕왕(湯王)

()왕조를 멸망시키고

()왕조를 건립하는 데 있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이윤이 처음부터

탕왕의 신하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원래 은()의 주왕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가장 포악무도한 폭군으로

손꼽히는 하나라 걸왕 밑에서

선관(膳官)으로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가 걸왕(桀王)의 신하였을 당시는

걸왕이 주변의 모든 제후국들을 통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걸왕은 정사(政事)는 뒷전으로 미룬 채

궁전을 사치스럽게 치장하고

주색에 빠져 악행만을 일삼았다.

 

그의 무도함은 도의(道義)에 어긋남을 넘어

죄 없는 백성들까지 무참히 살육(殺戮)하는 등

임금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까지

서슴없이 자행했는데, 이로 인해 백성들은

불안에 떨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이 같은 나날이 계속되자

걸의 인망(人望)은 땅에 떨어졌고,

더 이상 그를 임금으로 여기는 사람도 없었다.

백성들의 눈에 걸왕은 오직

국가의 멸망을 재촉하는 폭군이자

광인(狂人)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이때 이 같은 광경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해 걸왕에게 학정(虐政)

자제할 것을 간언한 충신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윤(伊尹)과 관룡봉(關龍逢)이었다.

먼저 관룡봉이 무너져 가는

나라의 장래를 염려해 걸왕에게

선대(先代)의 어진 임금들을 본받아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인애(仁愛)로써

백성을 잘 살게 해야 하늘이

천명(天命)을 거두지 않을 것이라고 간언하였다.

 

하지만 걸왕은 도리어

충간(忠諫)을 한 관룡봉을 참살시켰다.

이에 당시 선관의 벼슬에 있던 이윤이

죽음을 무릅쓰고 걸왕에게 또 다시 간언했다.

그는 걸왕에게 관룡봉을 참살시킨 일과 더불어

그가 정치의 상도(常道)를 어겨

천심(天心)과 민심(民心)을 잃었음을 말하고

더 이상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지 말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진언(進言)했다.

하지만 걸왕은

이윤의 간언 또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걸왕 자신으로 인해

망국의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음에도

걸왕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나날이 더 포악해져만 갔다.

걸왕의 이 같은 모습에

이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윤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은나라의 수도 安陽)으로 발길을 돌렸다.

 

걸왕을 떠나 박 땅으로 간 그는

한동안 그곳에서 평범한 농민으로 지내며

요순의 도를 즐겼다.

당시 그는 초야에 묻혀 생활하느라

행색은 비록 남루할지라도

()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천하를 녹으로 준다 해도 돌아보지 않고,

수천 필의 말을 준다 하여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정도로 성품만은 여전히 강직했다.

 

한편 이런 그의 성품을 알아본 탕은

정중히 폐백을 갖추어 그를 초빙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윤은 탕의 신하가 되는 것이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하여

처음에는 탕의 호의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 같은 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탕은

이윤 같은 어진 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수차례에 걸쳐 이윤에게

자신의 신하가 되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자 이윤도 탕의 인물됨을 알아보고는

마음을 바꾸어 요순의 도를 혼자 실천하는 것보다

탕을 요순 같은 임금으로 만들고

백성들을 요순시대의 백성들로 만들 것이라는

결의를 가지고 탕왕의 신하가 되었다.

 

한편 그가 탕의 신하가 되었을 당시

주변의 제후들도 탕이 덕을 수양한다는

사실을 알고 걸왕을 뒤로 하고 탕에게 모여들었다.

제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탕에게 귀순하였다는 것만 보아도

당시 걸왕의 폭정이 얼마나 심하였는지는

쉽게 짐작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헌데 이윤은 이들이 귀순하기 이전부터

걸왕의 폭정으로 인한 백성들의 아픔을

탕에게 고하고, 나아가

탕이 요순의 도()를 받들어

태평성대를 이룩해야 한다는 큰 계획을 상신했다.

그는 태평성대를 이룩하기 위한 방안으로

탕에게 소왕(素王)과 구주(九主)에 관해서

말하고 법술과 상벌로 탕을 보좌해

요순의 도를 재현시키려 했다.

 

탕임금 또한 그의 이 같은 점을 높이 사

그에게 우상(右相)이라는 관직을 하사했는데,

우상(右相)이 된 이후에도 그는 탕왕의

치세(治世)를 도와 탕왕이 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로써 성탕은 폭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나아가 어진 정치로써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함을 깨닫고 만백성의

숙원(宿願)이었던 대업을 성취할 수 있었다.

 

한편 그는 탕왕이 은()나라를 세우고 대업을

이룩한 뒤에도 탕왕을 뒤이은 외병(外丙)중임

(中壬) 두 왕에게서도 벼슬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탕왕 사후 그가 보좌했던

두 임금[외병중임]은 건강상의

문제로 오래 살지 못하고 단명하였다.

 

이에 이윤은 대신(大臣)들과 상의하여

탕왕의 손자인 태갑(太甲)을 왕으로 즉위시켰다.

하지만 태갑제(太甲帝)가 왕좌(王座)에 오른 지

3년 만에 나라의 법도(法道)는 무너지고

정사도 나날이 어지럽게만 되어갔다.

그는 탕왕이 만들어 놓은 법도마저 없애버리고

향락에만 빠져 점점 더 포악해져만 갔다.

 

이대로 태갑제를 방치해 두었다가는

2의 걸()왕이 되어

나라를 망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에 이윤은 태갑제를 탕왕(湯王)

묘가 있는 동궁(桐宮)으로 보내 회유케 했다.

 

이윤이 태갑제를 동궁으로 보낸 까닭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선대임금[]으로부터

지켜져 왔던 태평성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윤은 태갑제를 동궁으로 보낸 이후에도

그에게 덕치를 실현한 우()왕과

폭군 걸왕의 선례를 들며

왕으로서 지녀야 할 덕을 훈계하였다.

하지만 태갑제는 이윤의 간언을 귀담아 듣지 않고

귀찮게만 여겼는데, 이윤은 이에 연연하지 않고

태갑제를 반드시 어진 성군(聖君)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는 태갑제가 마음을 다잡을 때까지

끊임없이 찾아가 어진 임금들의 법도를 교화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고 간언했다.

 

이같이 계속된 그의 노력으로 인해

마침내 태갑제는 동궁으로 추방된 지 3년 만에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마음을 바로잡았다.

이에 이윤은 정권을 다시 태갑제에게 돌려주었고,

이윤의 간언으로 개과천선한 태갑제는

그의 훈계대로 역대 성군(聖君)들의 덕()

본받아 다시 덕을 베풀고 어진정치를 행했는데,

이에 제후들은 모두 은()에 복종하게 되었고

백성들도 평안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윤은 매사를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겨

임금을 보좌하는 재상(宰相)의 위치에서

늘 자신의 과부족을 반성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러한 그의 성품 때문인지

그가 생()을 마감한 뒤에도 그의 뜻을 높이 여긴

현자(賢者)들은 명재상 이윤을 들어

이윤이 뜻을 두었던 것에 뜻을 두고

흔들리지 않는 정심(正心)으로 이를 실천한다면

누구나가 현자(賢者)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였다.

 

일생 동안 변치 않았던 이윤의 뜻이란

아래로는 백성을 위하고, 위로는

임금을 도와 선대(先代) 성군(聖君)으로부터

이어져 온 태평성대를 지키는 것이었다.

이처럼 요순의 도를 지키는 것에

자신의 뜻을 두고 이 일을 자신의 평생사명으로

여긴 이윤은 일생 동안 어떠한 난관에 봉착해도

단 한번도 자신의 뜻을 굽히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이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

죽는 날까지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완수했다.

 

이로 인해 자신이 보좌했던 탕 임금과 태갑제는

모두 성군(聖君)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그의 덕성(德性) 때문인지

그는 임금에서부터 백성과 신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로부터 인망(人望)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이윤이 자신의 위치에서

권력과 재물만을 탐했다면 얼마든지

모든 것을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윤은 사욕(私慾)을 부리지 않고

만사(萬事)를 오직 요순의 도에 잣대를 두고

옳고 그름만을 명확하게 판단해

자신을 채찍질하여 마음부터 바로 세웠다.

그리고는 곧 이 마음을 흔들림 없는

정심(正心)으로 승화(昇華)시켜

임금과 백성에까지 이르게 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하고 나아가 자신이 보좌하는

임금이 대업(大業)을 이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그의 성품을 볼 때 그가

당대인과 후대인들에게 특별히 칭송받았던 까닭은

그의 어질고 너그러운 행실에 연유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 사실 그가 생을 마감하면서까지도

변치 않았던 그의 뜻에 더

큰 원인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이 사욕(私慾)을 부리지 않고

만사(萬事)를 오직 요순의 도에 잣대를 두고

옳고 그름만을 명확하게 판단는 이윤의 도수에

대두목 도수를 붙였으므로 이 도수를 맡기가

극히 힘들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먼저 이윤은 일생 동안 아래로는 백성을 위하고,

위로는 주군을 도와 선대(先代) 성군으로부터

이어져 온 태평성대를 지키는 것에

자신의 뜻을 두었다.

 

이처럼 요순의 도를 지키는 것에 뜻을 두고

이 일을 평생사명으로 여긴 이윤은

일생 동안 어떠한 난관에 봉착해도

뜻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이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이윤은

사욕에 빠지지 않고 죽는 날까지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완수했다.

 

이로 인해 자신이 보좌했던 탕임금과 태갑제는

모두 성군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그의 덕성 때문인지 그는 임금에서부터

백성과 신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로부터

인망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살았던 시국은 비록 난세였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요순의 도에 비추어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늘 자신의 과부족이라 여기며

천하사에 임하는 자의 마음가짐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것이다.

그의 노력은 자신의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천하사를 위해 마음을 다잡았고,

그 마음을 임금과 백성들에게까지 미치게 하였다.

 

공사 337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이윤(伊尹)이 오십이지사십구년지비

(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를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써서 물 샐 틈 없이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하셨도다.

 

난세에 요순의 도를 지켜낸 문왕

 

() 문왕(文王)

중국 신화에 나오는 기장의 왕이자

주나라의 시조인 후직(后稷)의 자손이다.

그의 선조(先祖) 후직은 요()()()

시대에 미덕(美德)을 지닌 현자(賢者)로서,

당시의 백성들에게 풍요로운 수확과 자비를 베풀어

요임금으로부터 농사(農師)로 등용된 후

후직이라는 칭호와 함께 희씨(姬氏) ()

하사받아 태() 땅에서 요순의 도를 따르고

백성들에게 땅의 일을 가르치며

어질게 생활했었다고 한다.

 

한편 문왕의 선조(先祖)

후직의 증손(曾孫)인 공류[공계(公劉)]의 대()

이르러서는 하인(夏人)의 난()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태 땅에서 빈 땅으로

도읍지를 옮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후직으로부터 대대로 지켜 온 생

활터전은 잃었지만, 도읍지를 옮긴 이후에도

공류는 끊임없이 농경에 힘쓰며 백성들을 위해

어진정치를 행하며 선인(先人)들이 세운

공업을 잘 지켰다.

 

그 결과 농업경제도 현저하게

발전하였을 뿐 아니라,

빈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누구나 할 것 없이 재물이 풍족하여 백성들로부터

한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문왕의 선조대(先祖代)에서

공류 이후 9세가 되어 고공단보

(古公亶父, 후에 태왕으로 추존)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비록 훈육과 융적의 잦은 침입 때문에

또다시 도읍지를 빈 땅에서 기산(岐山)으로

옮겼지만, 그가 후직과 공류의 사업을 다시 익혀

()을 쌓고 의()를 행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받들었다.

 

그리고 고공단보의 아들이자 문왕의 아버지인

계력공계(公季)의 시대에는

계력이 고공단보가 남긴 법도(法道)를 잘 닦고

성실하게 의()를 행했으므로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순종했었다고 한다.

 

계력이 죽은 후 이윽고 그의 아들

서백창(西伯昌) , 문왕(文王)이 즉위했는데,

문왕 또한 후직과 공류의 사업을 따르고

고공단보와 공계[계력]의 법도를 본받아

오로지 어진 정치만을 행했다.

 

그 당시에 천도에 밝고 덕망이 높아 인근 제후들의

리더로서 인정받았고 성인으로 소문이 났었다.

그 소문을 들은 은나라(상나라가 후대에 와서

국호를 은나라로 바꿈) 마지막 왕 폭군 주왕

(마구니에 비유)은 문왕을 죽이려고 하였는바

그 문왕의 아들 백읍고의 정혼녀(定婚女)인 달기를

빼앗아 취하고 백읍고를 죽여 그 인육으로

요리하여 문왕에게 보내어 먹게 하였었다.

성인이면 아들의 인육으로 만든 요리를

알고 먹지 않을 것이요, 성인이 아니면

그 요리를 먹을 것이니, 안 먹으면 죽일 것이요,

먹으면 목숨만은 살려 주리라 마음먹었었다.

폭군 주왕의 의도를 알아차린 문왕은 눈물을

머금고 먹는 척해서 목숨만은 부지하여

훗날을 기약하였다.

그의 이 같은 면모는 지금까지도 전해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천자(聖天者)를 떠올릴 때면

요순우탕(堯舜禹湯)과 더불어 손에 꼽힐 정도이다.

 

하지만 문왕에게는 역대(歷代) 임금들과 대비되는

차이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자신의 대()에서

왕으로 불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가 왕으로 불리게 된 것은

()에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창건한 뒤부터인데,

무왕이 서백을 문왕으로 추존한 까닭은

그가 폭군(暴君) 주왕의 제후국으로 있으면서도

그와는 달리 선조들로부터 이어져온

사업과 법도를 지켜 대대로 이어져온

왕업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왕은 왕업이 계속하여 승계되어 온

까닭도 자신의 역대 어진 선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여겨 어진 선조들에게

모두 왕의 시호를 내려 추존했다.

무왕(武王)이 자신의 아버지를 문왕(文王)으로

추존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왕이 아닌

은나라의 삼공(三公)가운데 한 사람으로

서기서쪽의 기산(岐山)이라는 땅에서

자신의 독자적 영토을 가지고 서쪽의

모든 제후들을 관할하는 우두머리에 불과했다.

그가 우리에게 두 호칭 즉,

문왕이라는 호칭과 더불어

서백후(西伯侯)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이 당시는 하나라의 걸왕과 더불어

폭군으로 익히 알려진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당시 주왕은 달기()라는 미녀에 빠져서

호화로운 궁궐인 녹대를 짓고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어

장야음(長夜飮)을 즐기면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는 황음무도(荒淫無道)하였을 뿐 아니라

포락지형(炮烙之刑)과 같은 잔혹한 형벌로

신하들과 백성들을 괴롭히는 폭정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주왕은

백성과 신하들에게 더 이상 지혜롭고

어진 임금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백성을 괴롭히는

희대의 폭군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하지만 문왕[서백후]은 주왕과는 반대로

철저하게 어진 정치를 베풀었는데,

그는 어진 사람에게는 예의와 겸손으로

대하였을 뿐 아니라 항상 늙은이를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했으며, 낮에는

현인(賢人)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느라

밥 먹는 시간까지 아까워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당시 숭국(崇國)의 제후

숭후호(崇侯虎)의 모함으로 유리옥에 갇혀

자신의 아들백읍고의 살점을 먹어야 하는 고통

감내하면서도 백성들을 위해 384효를 지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제후들의 도움으로 인해

주왕으로부터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에도

자신을 모함한 숭후호를 벌하기보다는 먼저

주왕의 폭정에 시달리는 신하와 백성들을 염려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주왕에게 그가 만든

가혹한 형벌을 폐지시켜 달라고 간언하여

이를 폐지시키기도 했다.

 

이에 현인(賢人)들이 모두 서백에게 몰려들었는데,

당시 그를 칭송해 따르고자 했던 현인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백이(伯夷숙제(叔齊

대전(大顚굉천(산의생(宜生육자(

신갑(辛甲태공망(太公望) 등이다.

 

이처럼 문왕은 폭군 주왕이 통치하던 난세에도

결코 요순의 도와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온

법도를 잊지 않고 항상 의()를 행하고

모든 일을 예()에 합당하게 처리하여

모든 이로부터 인망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현자들과 가까이하여

정사를 토론하고 신하의 자리에는 항상 어질고

뛰어난 인재만을 선용하여 덕()이 있는

자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했다.

 

이 같은 문왕의 행적은 후에 서경書經

주공과 성왕과의 대화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이 때 주공은 성왕에게 아뢰기를

모든 일을 문왕을 본받아 행한다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한편 이윤이 어지러운 난세에

변치않는 마음으로 천도를 지켜낸 것처럼,

문왕 또한 시대는 다르지만 주왕의 폭정에

온 백성이 신음하던 시대에 난세를 극복하고

천도를 따랐다.

 

그는 자신의 어진 선조인 후직과

공류의 사업을 따르고 고공단보와

공계(公季)의 법도를 본받아 오로지

어진 정치를 행하여 후에 자신의 아들 무왕이

태평성대를 실현할 수 있도록 밑거름을 닦았다.

 

이처럼 문왕은 선조들의 법도를 이어받아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의 실현을 위해

일심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어진 사람을 예로써 대하고

사람들에게 관대하여 많은 민심을

얻었을 뿐 아니라 주위로부터 인덕(人德) 있는

군주(君主)로 신망(信望)을 받아

천하 제후의 대부분이 그를 따랐다.

 

이처럼 중국 역사인물에서

성천자와 명재상을 꼽으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인 문왕과 이윤.

그들의 삶은 비록 가시밭길과 같이 험준하였지만,

그들이 죽음도 불사할 각오로 지키고자 한 뜻은

오직 태평성대의 실현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래서 문왕을 상제님 도수에 붙이신 것이다.

 

증산께서 후천 음양도수에 관한 공사를 보시며

문공신에게 문왕과 이윤의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리라고 말씀하신 까닭도

문왕과 이윤처럼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굴하지 않는 마음으로 천하사에 임하여

천도를 지켜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일러주신 것이다.

문왕도 처음부터 문왕이 된 것은 아니고

나중에 문왕으로 추대댄것처럼

상제님께서도 나중에 상제님의 신위가 밝혀진다.

 

문왕은 문왕 8괘를 지어

천도를 밝히고 주역64괘의 괘사를 썼다.

이번에도 상제님께서는 상도를 잃고

진멸지경에 빠진 인류의 천도를 밝히고

후천을 열어주시려고 오시기 때문에

증산께서는 문왕이 태평성대를 실현한 예를들어

어렵고 힘들지만 이 도수를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