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법(眞法) 진리

오강록(烏江錄) 도수(초패왕 해원도수) 1

고도인 2015. 1. 5. 23:20

오강록(烏江錄) 도수(초패왕 해원도수)

 

전경 교운 220

 

정산성사께서 경신년(1920)에 재실에서

밤낮으로 불면 불식하면서 공부하시던 중

이월 열 이레에 둔궤가 봉안된 곳에서

벼락소리가 나더니 둔궤가 저절로

열려져 있었도다.

 

그 속에 호피 한 장과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그려있고

양피(羊血) 스물넉 점이 궤에 찍혀있고

오강록(烏江錄) 팔문둔갑 설문(舌門)이란

글자가 궤에 쓰여 있었도다.

그 후 둔궤는 정산께서 함안 반구정(伴鷗亭)에서

공부하실 때 그곳에 옮겨졌도다.

그러나 당시 심복자이던 창원 사람

조주일(曺周一)이 둔궤를 훔쳐 갔는데

훗날에 종도들이 이를 알고 매우 안타까워하니

정산께서 그 시기의 도수에 쓰였으면 족하리라.

둔궤의 둔자는 도망 둔자이도다

고 그들에게 이르셨도다.

 

주해(註解)

 

(): 천지의 주인을 산()으로 표현.

世界有而此山出(세계유이차산출)

세계가 이산에서 나왔다.

(행록 25)

 

금산(金山): 우주의 가을철에 인신(人身)으로

오시는 천지의 주인(主人)을 말함.

龜馬一道金山下 幾千年間幾萬里

구마일도금산하 기천년간기만리

(공사 339)

하도와 낙서를 합친 정역의

무극대도(無極大道)

金山(금산)아래에 있도다.

()는 기천년간 기만리를 가리라.

(후천 영원히 간다.)

 

금산사(金山寺): 금산(金山)을 모신 곳.

즉 인신으로 오신 천지의 주인을 모신 집.

 

금신사명(金神司命): 서신사명(西神司命).

 

서신사명(西神司命):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

(古阜郡) 우덕면(優德面) 객망리(客望里)

강일순서신사명(姜一淳西神司命)

 

호피 한 장: 호피는 호랑이 가죽으로

금신사명을 맡은 한 사람, 즉 증산을 말함.

나는 곧 미륵이라.” (행록 216)

 

증산성사께서 나는 곧 미륵이라하심은

 

나는 미륵의 일을 하러 왔노라하심이지

 

나의 정체가 미륵이란 뜻은 아니다.

 

 

반쯤 핀 국화 한 송이: 국화는 가을을 상징.

후천 가을 문명이 이제 반쯤 피어나기 시작함.

이제 달이 뜨기 시작함과 같은 뜻임.

보름달은 온달이요 나흘달은 반달일세

섣달이라 초나흗날 반달 보고 절을 하세

[채지가] 달노래

누가 초생달 찾아가서 소원비는사람 봤는가!

초생달보고 이치를 깨달았으면

보름달보고 소원을 빌라는 계시.

 

양피(羊血) 스물넉 점:

피는 혈통(血統)을 말함.

스물넉 점은 사철로 사방위(四方位)를 말함.

즉 양띠로 오신 증산으로부터

종통이 방, , , , 통으로

이어짐을 암시 함.

 

만물자생(萬物資生) 수치(羞恥)

 

방탕신도통(放蕩神道統)

 

춘지기방야(春之氣放也)

 

하지기탕야(夏之氣蕩也)

 

추지기신야(秋之氣神也)

 

동지기도야(冬之氣道也)

 

() 이기지주장자야(以氣之主張者也)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

 

무신십이월이십사일(戊申十二月二十四日)

 

(대순전경 p157)(교운 1:44)

 

 

오강록(烏江錄): 만고영웅 초패왕이

오강(烏江)에서 천추의 한을 품고 죽은 기록.

 

팔문둔갑(八門遁甲): 팔문둔갑(八門遁甲)

곧 기문둔갑(奇門遁甲)을 말하는 것으로서,

팔문(八門)이란 8방위(八方位)에 설립한 문으로

 

생문(生門), 상문(傷門), 두문(杜門), 경문

 

(景門), 사문(死門), 경문(驚門), 개문(開門),

 

휴문(休門)의 여덟 개의 문을 말함.

 

또 둔갑(遁甲)이란 갑()을 숨겼다는 뜻인데,

 

기문둔갑법에서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십천간(十天干)

 

중에서 갑()을 제외한 나머지

 

9개인 을병정무기경신임계

 

(乙丙丁戊己庚辛壬癸)만을 사용한다.

 

 

9개 천간을 육의삼기(六儀三奇)라고 하는데,

 

정병을(丁丙乙)이 삼기(三奇)이고,

 

무기경신임계(戊己庚辛壬癸)가 육의(六儀)이다.

 

 

기문둔갑법에서 갑()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이 육의(六儀)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둔갑(遁甲)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육의(六儀) 속에 숨어있는 원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에는 모두 6개의 갑()

 

육갑(六甲)이 있는데, 이것은

 

갑자(甲子), 갑술(甲戌), 갑신(甲申),

 

갑오(甲午), 갑진(甲辰), 갑인(甲寅)으로서,

 

60갑자(甲子)는 아래 표와 같이

 

이 육갑(六甲) 뒤를 따르고 있다.

 

 

六儀 旬首 干 支

 

六戊 甲子 乙丑 丙寅 丁卯 戊辰 己巳 庚午 辛未 壬申 癸酉

 

六己 甲戌 乙亥 丙子 丁丑 戊寅 己卯 庚辰 辛巳 壬午 癸未

 

六庚 甲申 乙酉 丙戌 丁亥 戊子 己丑 庚寅 辛卯 壬辰 癸巳

 

六辛 甲午 乙未 丙申 丁酉 戊戌 己亥 庚子 辛丑 壬寅 癸卯

 

六壬 甲辰 乙巳 丙午 丁未 戊申 己酉 庚戌 辛亥 壬子 癸丑

 

六癸 甲寅 乙卯 丙辰 丁巳 戊午 己未 庚申 辛酉 壬戌 癸亥

 

 

 

이 표를 첫 줄을 보면 선두

 

[이것을 순수(旬首)라고 부른다]

 

갑자(甲子)부터 계유(癸酉)까지 10개는

 

육의(六儀)인 육무(六戊)로 표시되고,

 

둘째 줄은 갑술(甲戌)부터 계미(癸未) 10개는

 

육기(六己)로 표시된다.

 

 

이런 식으로 각 순수(旬首) 육갑(六甲)

 

뒤를 따르는 60갑자는 모두 육의(六儀)

 

무기경신임계(戊己庚辛壬癸)로 표시가 된다.

 

따라서 60갑자는 곧 육갑(六甲)이 순수(旬首)로서

 

대표로 표시가 되고,

 

순수(旬首) 육갑(六甲)은 다시 육의(六儀)로서

 

표시가 되니 육의(六儀)

 

곧 육갑(六甲)을 품은 것이요,

 

육갑(六甲)60갑자를 품는 것이다.

 

이렇게 갑()

 

육의(六儀)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한편 정병을(丁丙乙)은 삼기(三奇)라고 하는데,

 

정기(丁奇)는 성기(星奇),

 

병기(丙奇)는 월기(月奇),

 

을기(乙奇)는 일기(日奇)라고 하고

 

이 삼기(三奇)는 귀인(貴人)으로 본다.

 

 

이렇게 기문둔갑법은 10개의 천간 중에서

 

()을 제외하고

 

나머지 9개의 천간을 사용하는데,

 

()을 포함하고 있는 육의(六儀)

 

귀인(貴人)인 삼기(三奇)

 

구궁(九宮)에 적당하게 배치시켜

 

천문과 지리, 인사의 각종 길흉을 알아볼 수 있다.

 

 

이 법에 통달하면 병법에 응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으며,

 

기문둔갑장신법(奇門遁甲藏身法)을 사용하면

 

여러 귀신들도 부릴 수 있고,

 

각종 신기한 도술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대개 기문둔갑 혹은 둔갑술이라고 하면

 

신기한 도술을 부리는 술법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기문둔갑은 동양 명리학의 최고봉이라는

 

삼식(三式) 중의 하나인데,

 

삼식(三式)은 기을임(奇乙壬)으로서

 

곧 기문(奇門), 태을수(太乙數), 육임(六任)이다.

 

 

 

태을수(太乙數)는 천문(天文)의 영역이요,

 

기문(奇門)은 지리(地理),

 

육임(六任)은 인사(人事) 분야라고들 하는데,

 

기문(奇門)은 지리(地理) 한 분야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구궁(九宮)이라는

 

틀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같이 구현하면서,

 

위로는 하늘의 구성(九星)을 포함하고,

 

아래로는 땅의 팔괘(八卦)를 포함하며,

 

가운데로는 사람의 팔문(八門)을 모두 아우르니

 

곧 천문과 지리, 인사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식(三式)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는 곧 기문둔갑(奇門遁甲)이라고 한다.

 

 

설문(舌門): 천지대팔문이 아니고 나의 입으로

 

말하기 때문에 설문(혀 설 문 문)이라고 함.

 

금산사 미륵전 육장금신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 

 

(행록 216)

 

 

증산께서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다

 

는 말은, 미륵 그 자체로서

 

권한을 갖고 있다는 뜻이고

 

나는 입에 물었노라하심은

 

나는 미륵은 아니지만 미륵의 권한이

 

나의 입으로부터 나오므로

 

설문(舌門)이라고 하신 비문(秘文).

                         

즉 종통의 요순우상수지심법(堯舜禹相授之心法)

 

을 말로써 전해주면 깨달으라는 뜻.

 

 

무극진경 225

 

무릇 강령(綱領)을 들면

 

조리(條理)가 펴임과 같이

 

인륜기록(人倫記錄)의 시초이며

 

원의 역사의 원초(原初)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깊은 원을 풀면,

 

그 이후 수 천년간 쌓여온

 

모든 원의 결절(結節)이 풀릴지니라.

 

대저 당요가 단주를 불초(不肖)히 여겨

 

아황(娥皇),여영(女英)두 딸을 우순(虞舜)에게

 

출가시키고 천하를 양여(讓與)하니,

 

단주는 깊이 원을 품어 그 울분(鬱憤)의 충동으로

 

마침내 우순이 창오(蒼梧)에서 붕()하고,

 

두 왕비가 소상(瀟湘)에 빠지는

 

참사(慘事)를 이루었느니라.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깊이 박히고

 

시대의 추이(推移)에 따라 모든 원이 덧붙어서

 

더욱 증가하더니, 드디어 천지에 충색(充塞)하여

 

세상을 훼파(毁破)함에 이르렀으므로

 

단주해원을 위수(爲首)로 하느니라.

 

또 천하를 청징(淸澄)하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가 이롭지 못하여 구족(九族)을 멸하는

 

참화(慘禍)를 당하고 의탁할 곳이 없어,

 

철천(徹天)의 한을 머금은 채

 

중천(中天)에 떠도는 만고역신(萬古逆神)

 

해원(解冤)을 위차(爲次)로 하여

 

각기 원앙(冤殃)과 억울(抑鬱)을 풀고,

 

행위를 심리하여 곡해(曲解)를 바르게 하거나,

 

의탁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함이

 

곧 선경건설(仙境建設)의 첫걸음이니라.”하시니라.

 

 

무극진경 제 9 -1

 

:005 또 종이에 철도선을 그려 놓으시고

 

남쪽에 점을 치셔서 정읍이라 쓰시고

 

북쪽에 점치셔서 신태인(新泰仁)을 쓰신 후에

 

그 중앙에 점을 치시려다가 멈추시기를

 

여러 번 하시더니 대흥리를 떠나실때 점을 치시며

 

이 점이 되는 때에는

 

초패왕(楚覇王)의 해원도수로

 

선천 세상일이 끝나게 되리라.하시니라.

 

          

 

                              철도선=우물 정()

 

 

 

철도선은 우물정자와 같다.

 

그런데 대흥리를 떠나실 때

 

중앙에 점을 치시며

 

이점이 되는때에 선천의

 

세상일이 끝난다고 하셨다.

 

그 그림은 이와 같은데

 

이것도 우물 정()자 이다.

 

중앙의 점은 물을 길어올리는

 

두래박(頭來朴)으로 중앙 구궁(九宮)

 

박씨로 오신 천지 주인을 우물 정()

 

이치를 갖고 오신분이 모시고나면

 

초패왕은 해원이 되고 선천의 상극세상은

 

끝난다는 초패왕 해원도수이다.

 

 

신태인(新太仁): 인류의 시조(始祖)로서

 

새롭게 인신으로오신 박성구 도전님을 뜻함.

 

구태인(舊太仁): 태인면 대흥리 도창현에

 

조정산께서 세운 무극도장(无極道場)을 말함.

 

정읍(井邑): 우물 정()자 이치를 갖고

 

오신분이 신태인(新太仁)을 구궁(九宮)

 

모시고나면 세상일이 다 되므로

 

대흥리를 떠난다.

 

대흥리(大興理): 크게 흥한다는 이치로

 

지금의 대순진리회를 두고 암시 한것임.

 

즉 구궁(九宮 )

 

천주(天主)를 모시고 나면 때가 다 되었으므로

 

대순진리회를 떠나야 한다는 예언이다.

 

 

이것을 증거한다.(예시 45)

 

증산성사께서 태인 도창현에 있는 우물을 가리켜

 

이것이 젖()샘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즉 도()가 창성(創成)되는 시발점(始發點)

 

신태인과 구태인으로 나뉘어 진다.

 

조정산께서 창도한 무극도는 구태인 이었다.

 

구태인에서는 증산성사를 상제로 모시었다.

 

증산성사께서는 상제가 아니었으므로

 

이때가 난법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증산성사께서는

 

철도선(鐵道線)에 신태인(新太仁)으로

 

공사를 보신 이유는 구태인에서 모신

 

증산이 상제가아니라 신태인(新太仁),

 

우물 정()자의 이치를 갖고 오신 분이

 

진짜 주인을 찾아 모시게 되면 진법이 정해지고

 

때가 다 됐음을초패왕(楚覇王)의 해원도수도

 

끝나고 선천 세상일이 끝나게 되리라

 

고 공사를 보신 것이다.

 

 

태극진경 315

 

삭망도수공부 중 919일 증산성사 강세일에

 

대 치성을 올리신 다음,

 

임원들을 공부실에 시좌시키고 하교하시기를

 

나의 도통은 요순(堯舜)의 상수지법(相授之法)

 

같으니라.” 하시며 기쁜 얼굴로

 

다음의 한시(漢詩) 한 수를 읊어 주시니라.

 

 

時時默誦空山裏 夜夜閑聽潛室中

 

시시묵송공산리 야야한청잠실중

 

分明造化成功日 堯舜禹王一切同

 

분명조화성공일 요순우왕일체동

 

 

 

때때로 공산(양산)에서 조용하게

 

주문외는 소리가 밤마다 닫혀진 골방에서

 

한가로이 들려오는때에

 

분명한 조화가 성공하는 날로서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이 모두 일체로서 같도다.

 

 

공산리(空山裏):

 

 

이와 관련된 공사(교법226)

 

서전(書傳) 서문을 많이 읽으면

()에 통()하고 대학상장(大學上章)

되풀이 읽으면 활연 관통한다하셨느니라.

 

서전(書傳) 서문(序文)

주자(朱子)가 서경(書經)을 집필한 후

그의 사위인 채침(蔡沈)에게

서문을 적을 것을 유언하였으므로

채침이 10년에 걸쳐서

서전의 진수를 간파하여 요의를 적은 글이다.

 

서전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한다함은

서전서문에 요우의 심법 전수를

설명하였고 이것을 알면

도에 통한다는 의미이다.

 

精一執中 堯舜禹相授之心法

정일집중 요순우상수지심법

建中建極 商湯周武相傳之心法

건중건극 상탕주무상전지심법

 

오직 일심을 갖고 도를 잃지 않음은

· · 우가 서로 전한 심법(心法)이요,

중용의 도를 세워 만민의 삶의 푯대를 세움은

상의 탕과 주의 문이 서로 전한 심법(心法)이다.

 

심법전수(心法傳受)

강증산 성사에서부터 종통계승은

요순우상수지법(堯舜禹相授之心法)과 같이

모두 심법전수로 이루어져 내려왔으므로

일반적인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심법전수는 서로 간에 마음으로 통하여

의사를 주고받으므로 그 마음을 통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실제 예를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의

예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리달마에 의해 중국에 전해진 불교의 종맥은

오조(五祖) 홍인(弘忍)으로부터

육조(六祖) 혜능(慧能)에게로 이어졌는데,

혜능이 오조 홍인으로부터 종통의 상징인

의발(衣鉢)을 물려받을 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혜능은 중국 남방의 영남 신주 사람으로

총명하고 본성이 매우 밝았으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집안이 어려워

평소 장작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학문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

 

그가 어느 날 시장에 나갔다가

어느 사람이 금강경을 잃는 소리에 마음이 동하여

금강경을 가르치는 하북 황매산의

오조 홍인을 찾게 되었다.

 

홍인이 너는 어디서 왔으며 여기는 무엇하러 왔느냐?”

하니 혜능이 저는 영남 신주 사람으로

성불(成佛)하러 왔습니다.”하였다.

그러자 홍인이 대뜸 너는 오랑캐인데

어찌 성불(成佛)하랴?” 하며 꾸짖자

혜능이 불성(佛性)에 어찌 남북이 있으리요?”

하고 대답하였다.

홍인은 이러한 문답 중에 혜능의 비범함을 보았으나

홍인은 가르침을 주지 않고 후원에서 방아를 찧게 하였다.

혜능이 황매산에 온 지 여덟 달이 지났을 때,

오조 홍인은 법을 전수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깨우친 바를 시()로 적게 하였다.

이때 가장 뛰어난 제자로 알려진 신수대사(神秀大師),

 

身是菩提樹 몸 이것은 보리수 나무요

신시보제수

心如明鏡臺 마음은 명경대와 같다

심여명경대

時時勤拂式 때때로 부지런히 씻고 닦아라

시시근불식

物使惹塵埃 먼지가 어지럽히지 말게 하라

물사야진애

 

라는 뜻의 시()를 지었다.

그런데 방아 찧는 일을 맡은 혜능은

이 시를 듣고 아직 깨우치지 못한 시라며

자신의 시를 대필하게 하였는데,

 

菩提本無樹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보제본무수

明鏡亦非臺 명경은 역시 대가 아니다.

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 어느 곳에 먼지가 일어나겠는가

하처야진애

라고 읊었다.

그 날 오후에 오조 홍인은

신수와 혜능의 시를 평가해 주었다.

 

이 글을 외우면 죄에 빠지지 않고 복을 이루리라.”

이것의 신수의 시에 대한 평가이다.

홍인은 그의 시를 인정해 준 것이다.

이 시는 깨우침이 없다. 당장 지워버려라.”

이것의 혜능의 시에 대한 평가이다.

홍인은 그의 시를 혹평했다.

하지만 홍인은 그의 의중을 숨기고 있었다.

 

홍인은 잠시 후 신수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하였으니 더욱 정진하라.

내일 아침에 가르침을 줄 테니 다시 오너라.”

그리고 후원에 방아를 찧고 있는

혜능을 찾아가 말을 걸었다.

공부는 잘되어 가고 있느냐?”

혜능이 대답했다.

해가 서산 너머로 너울너울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둘이 나눈 대화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혜능의 대답을 듣고 난 홍인은

주장자로 방앗대를 세 번 치고는

주장자를 뒤로 끌며 천천히 돌아갔다.

 

홍인의 뜻을 깨우친 혜능은

그날 밤 삼경(三更)에 뒷문을 통과하여 홍인을 찾아갔다.

홍인은 그 자리에서 혜능에게 금강경을 해설하고,

가사와 바릿대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길로 너는 남쪽으로 가라.

그리고 시기가 익을 때까지 절대 법을 설하지 말라.”

 

혜능은 그 길로 야음을 틈타

이 일이 알려지면 닥쳐올 저해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다음날 아침에 신수가 오조 홍인을 찾아갔으나

홍인은 이미 열반에 든 후였고

가사와 바릿대도 없어진 후였다.

그러자 신수가 혜명(惠明)을 시켜

급히 혜능을 쫒아 가사와 바릿대를 찾아오게 하였다.

원래 장수출신이었던 혜명은 날쌘 중들을 이끌고

추격하여 마침내 혜능을 잡았다.

 

혜명이 가사와 바릿대를 내놓으라 하자

혜능이 흔쾌이 가사와 바릿대 놓아두고 가져가라 하였다.

그러나 혜명은 그 가사와 바릿대를 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혜명은 오히려 혜능을 따르게 되었다.

 

이후 혜능은 남방으로 내려가 15년 후에야

비로소 법을 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선종(禪宗)을 크게 융성시키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바릿대는 전해져 내려가지 못하였다.

 

오조 홍인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는

신수를 인정해주고 혜능을 무시하였다.

이것은 힘없는 혜능이 이미 기득권을 장악한

신수의 시기심으로 인한 저해를 받지 않게 하는 방비였다.

그리고 방앗간으로 찾아간 오조홍인과 혜능의 대화는

일반인으로써는 알아들을 수 없는 둘 만의 대화였다.

그러나 이미 서로 마음이 통하는 지라

혜능은 홍인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장자로 방앗대를 세 번 치고

뒷짐을 지고 가는 홍인의 모습을 보고

혜능은 3경에 뒷문으로 오조 홍인을 찾아갔으며

이곳에서 금강경을 전수 받고 가사와 바릿대를 받았다.

 

힘이 장사였던 혜명이 가사와 바릿대를 들 수 없었던 것은

이미 혜능에게 신명(神明)이 옮겨갔음을 뜻하고

혜능이 육조(六朝)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법전수는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여

법이 전해져 내려갔던 것이다.

반면 신수는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하고

세력이 있다고 하여도 오조 홍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오조와 통하지 못하는 것이며

욕심으로 가사와 바릿대를 차지하려하여도

신명이 용납지 않았던 것이다.

 

제순유우씨, ()임금 (B.C 2333~2184)

 

()은 기주 출신으로 농업, 어업,

 

질그릇 굽기, 가구 만들기 등을 하며 살았다.

 

순의 아버지(고수)는 장님이었는데,

 

순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후처를 맞아 상()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상은 거만하고 오만방자 하였지만

 

아버지는 상만을 편애하였고,

 

순은 현명하게 행동하여

 

아버지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였다.

 

아버지는 상과 도모하여

 

순을 없애 버리려고 기회만 엿보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순에게

 

창고위에 올라가 토벽을 바르도록 하였다.

 

 

순이 창고위에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창고에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순은 미리알고 두개의 삿갓을 옆구리에 끼고

 

뛰어내려 무사히 목숨을 구하였다.

 

 

또 순에게 우물을 파도록 하였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계책을

 

눈치 챈 순은 우물을 파면서

 

옆으로 빠져나올 구멍을 하나 더 팠다.

 

순이 깊이 파내려가자 아버지는 상과 힘을 합하여

 

위에서 흙을 부어 우물을 메워 버렸다.

 

순은 옆에 파놓은 구멍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은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아우에게 우애를 다하였다.

 

순은 마침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던 요임금에 천거되었다.

 

요임금은 자신의 두 딸 아황과 여영을

 

순에게 시집보내어 일정기간동안

 

그 품성과 재능을 관찰하고 시험하였다.

 

 

순의 정신력과 지혜를 살펴보기 위해,

 

험한 날 숲 속에 들어가게 하여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시험 하였으나,

 

심한 바람과 우뢰와 비에도 길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잘 대응하였다.

 

또한 여러 가지 직무를 맡겨

 

그 능력을 시험(행정능력과 외교수완)하였다.

 

 

10년 동안 시험하여

 

모든 방면에서 기대에 부응 했지만

 

()은 스스로 덕이 모자란다고

 

겸양(謙讓)하였다.

 

 

사마천의 사기오제본기에 보면

 

순 임금은 20살에 효도로서 빛났고

 

30살에 요임금에 등용 되었으며,

 

쉰 살에 섭정하여 쉰여덟 살에

 

요임금이 죽자 삼년 후 단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황하의 남쪽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모든 제후들이

 

단주를 찾아가지 않고 순에게 왔다.

 

사람들은 순임금을 천자로 대했던 것이다.

 

예순에 왕위에 올라 재위 39년 창오에서 죽었다.

 

 

항우(項羽) (B.C233~B.C202)

 

항우는 진()나라 말기

 

하상(下相:지금의 강소성 숙천<宿遷>서남)

 

출신으로 이름은 적(), 자는 우()이다.

 

조부 항연(項燕)은 전국 말기 초()나라의

 

명장으로 진나라 장수 왕전에게 살해되었다.

 

 

() 원년(BC 206), 항우는

 

회 왕을 의제(義帝: 명목상의 황제라는 뜻)로 삼고

 

침현(지금의 호남 성)에 도읍을 정하도록 한 다음,

 

다시 제후들을 분봉하고 자신은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에 올랐다.

 

 

항우는 대대로

 

초나라 장군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숙부인 항량(項梁)에게서

 

글공부와 검술을 배웠는데,

 

실력에 발전이 없어 야단을 치자 항우는

 

글공부 따위는 제 이름만 쓸 줄 알면 충분합니다.

 

검술도 결국 한 사람과 싸울 때 필요합니다.

 

배워봤자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어차피 배울 거라면 만인을 상대로 싸우는 법을

 

배워야지요.”라고 말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숙부인 항량이 병법을 가르쳤더니

 

요점만 터득하고는 집어치우고 말았다.

 

 

항우가 24세가 되던 해에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자,

 

항우도 숙부를 따라 반란군에 가담하여

 

부장으로 전쟁에 임하게 되었다.

 

항량의 군대는 각지의 반란군을 흡수하면서

 

순식간에 10만에 가까운 병력의 대군으로 커졌다.

 

 

항량은 범증(范增)이라는

 

노인을 군사로 맞이하면서

 

초나라 회왕(懷王)의 손자를 찾아

 

희왕이라는 이름으로 계승시켰다.

 

그러나 항우의 숙부인 항량은

 

이 전쟁에서 전사하였고,

 

항우는 새로운 장군 송이의 목을 치고

 

지휘권을 장악하여 스스로 상장군이 되었다.

 

 

항우가 군을 이끌고 진의 반격에 고전하는

 

조를 도우러 갔을 때이다.

 

군대가 황하를 건너자 배를 가라앉히고,

 

냄비와 솥을 부수고

 

3일분의 식량만을 휴대하게 하였다.

 

 

이것이 파부침주(破釜沈舟-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의 계략이다.

 

 

병사를 살아 돌아갈 가망이 없는

 

사지(死地)’의 상태에 두면

 

죽기를 다해 싸우게 된다'

 

손자병법사지에 빠진 다음에

 

도리어 살아난다.’는 구절과 같다할 수 있다.

 

 

거록(鉅鹿)의 전투에서

 

진나라를 쳐부수고 완전한 대승을 한 항우는

 

그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면서

 

반진(反秦) 연합군의 대장군이 되었다.

 

 

항우와 유방이 대치하고 있는 함곡관 전투에서

 

겁을 먹은 유방은 항백의 계책으로

 

항우에게 사죄하러 오게 되었다.

 

홍문(鴻門)의 만남이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유방을 죽이라는 범증의 말을

 

항우는 무시하고 놓아주고 말았다.

 

 

함양에 입성하자마자 항우는

 

항복한 자영을 죽이고 궁전을 파괴하고

 

 

시황제 묘를 파헤치고

 

미녀들을 납치하여 초로 돌아왔다.

 

 

진을 멸망케 한 항우는

 

자신을 서초(西楚)의 패왕으로 자칭하게 되었다.

 

이 전쟁의 논공행상에서

 

한중(漢中) 남쪽의 외진 땅으로 밀린 유방은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어

 

다시 시작된 항우와 유방의 전쟁은

 

3년간 계속 되는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처음엔 우세하던 항우의 군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힘만을 과시하며 신하를 무시하는

 

항우의 군사들 중 다수가

 

유방 편으로 가면서 전세는 역전되었다.

 

 

기원전 202, 결국 항우의 군대는

 

해하(垓下)에서 포위당하고 만다.

 

항우의 군사는 해하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이미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고

 

식량도 바닥나 있었다.

 

더구나 성 주위는 한 군에 의하여

 

물샐틈없이 포위당하게 되었다.

 

 

그날 밤 항우는 적의 야영지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슬프게 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四面楚歌)!

 

이게 웬일인가!

 

한 군에 투항한 초군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저놈의 노래 소리가 또 초군을 괴롭히고 있구나.’

 

침소에서 뛰쳐나온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항우에게는 한시도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우희(虞姬)라는 애첩이 있었고,

 

()라는 이름의 애마도 있었다.

 

마음이 울적해진 항 왕은

 

즉흥시 한 수를 읊으며 마음을 달랬다.

 

 

힘은 산을 뽑아 버릴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나,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네

 

추여! 너마저 걷지 않으니

 

, 우희(虞姬), 우희여

 

너를 위해 해 줄 것이 없구나.

 

 

항 왕은 이 노래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옆에 있던 우희도 노래 한곡을 불렀다.

 

한나라가 모든 땅을 차지했네.

 

사방에 온통 초나라 노래뿐이고

 

대왕께서 힘이 다하셨으니

 

이 몸이 살아서 무엇 하리오!

 

 

항우의 뺨 위에는 굵은 눈물이 흘렀다.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도

 

그 앞에 엎드리어 소리 없이 흐느꼈다.

 

 

이 싸움에서 항우는 어둠을 뚫고

 

오강(烏江) 나루터까지 도망쳤다.

 

이제 수행하는 병사는 겨우 28명에 불과했고,

 

이를 뒤쫓는 한 군은 수천 명이었으니

 

탈출은 절망적이었다.

 

 

부하중 배를 준비한 자가

 

강동의 땅에서 다시한번 군대를 이르킵시다.”

 

라고 항우에게 말하였으나 항우는

 

아니 그만 두겠네.

 

강동의 젊은이 8천 명을 이끌고

 

이곳에서 처음 군사를 이르켰지만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니

 

이제 와서 무슨 낯으로 그들의 가족을 대하겠는가?

 

내 자신이 나를 용서 할 수 없네.”

 

이 말을 남기고 항우는 스스로 자결을 하였다.

 

이때가 그의 나이 약관 31세였다.

 

 

무극진경 647

 

     

초패왕이 25세에

 

도강이서(渡江而西) 하였으면 성공하였을 것이나,

 

24세에 도강이서 하였으므로 성공하지 못하고

 

자문이사(自刎而死)하여

 

철천의 포원을 하였느니라.”하시니라.

 

 

무극진경 822

 

 

둔궤 안에는오강록(烏江錄)”,

 

설문(舌門)”,“반구제수(半口齊水)”

,

천문지리 풍운조화(天文地理 風雲造化)”,

 

팔문둔갑 지혜용력(八門遁甲 智慧勇力)”등의

 

글을 쓰시고 글자마다 화각(火刻)하신 다음,

 

내부 정면의 문자 주위에 24점을 주사(朱砂)

 

돌려 찍으시며이 궤는 나의 도지(道旨)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遁櫃)니라.”하시니라.

 

 

반구제수(半口齊水): 철제(哲濟)를 말함.

 

반으로 꺾으면 꺾을 절()이고,

 

()자와 ()를 합치면

 

밝을 ()자가 된다.

 

()()를 합치면

 

구제할 ()가 된다.

 

 

조을시구조을시구鳥乙矢口鳥乙矢口

 

    시구시구조을시구矢口矢口鳥乙矢口

 

조씨 성을 갖고 을미생으로 오시는

 

    분알아보고 또 알아봐라.

 

좌궁우궁 궁을左弓右弓 弓乙일네

 

    궁을弓乙보고 입도入道하소

 

좌궁() + 우궁()= 합치면 궁()과 을(󰁋).

 

    궁과 을은 무극신(미륵)과 태을진인(대두목).

반구제수半口齊水 알았거든

 

    궁을弓乙보고 도통道通하소

 

철을 알았으면 궁과 을을 보고 도통하라.

 

    즉 궁()이란 궁()이며 무극신(미륵)이고

 

    을()이란 태을(󰁋)로 태을천상원군을 말함.

 

 

    다시 말해서 을미생으로 오시는

 

    조정산을 보고 깨달알았으면

 

    미륵과 대두목을 찾아서 도통하라는 뜻.

 

                            (채지가 칠월식과 중에서)

 

 

 

천문지리 풍운조화(天文地理 風雲造化)

 

천문이란 일월성신(日月星辰)

 

천체의 온갖 형상이나 움직임을 말함.

 

지리란 토지의 상태나 지구상에서의 수륙기후

 

생물도시인구 등의 상태나 변동을 말한다.

 

풍운조화는 바람이나 구름의 예측하기 어려운

 

천지 자연의 변화를 말한다.

 

 

팔문둔갑 지혜용력(八門遁甲 智慧勇力)

 

위로는 천문에 통하고 아래로는 지리에

 

달통하며 팔문둔갑을 지혜로써 용사함.

 

즉 도통군자를 이른다.

 

 

도지(道旨): 종통을 이어갈 도의 지침서.

 

글자마다 화각(火刻): 불로 소상하여

 

천지공사로서 신명계에 각인(刻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