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법(眞法) 진리

정만인(鄭萬人) 살만인(殺萬人)

고도인 2016. 1. 13. 22:03

 13.     


④ 세상에 떠도는 해인도(海人圖)


▲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말이다.

염화미소(拈華微笑),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등과 의미가 같다.


▲ 심시불(心是佛)이란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말이나 의미가 같다.

다시 말해서 ‘도즉아 아즉도(道卽我 我卽道)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다.’ 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해인도(海印圖)

이심전심(以心傳心) 심시불(心是佛)은

조정산께서 해인(海印)은 심중(心中)에 있다는 말씀과 같이

마음으로 깨달아야 보인다.


또한 예부터 전해오는 해인에 관한 한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은 조선왕조가 그 운(運)을 다하는 것과 연계지어

꾸며져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조선 말기,

세도가인 안동 김씨가 정권을 좌지우지하고,

왕의 종친들은 조금이라도 잘못 보이면

역모로 몰려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 가기가 예사이던 시절,

영조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이었던 흥선군은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파락호로,

또 한편으로는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언제나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철퇴를 내리치고 정권을 잡을 야망이 불타고 있었다.

흥선군의 부친인 남연군은 그의 나이 18세 때 돌아가셨는데,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그 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정권을 잡아 왕권을 회복하겠다는 야심으로

명당자리를 구하기 위해 정만인(鄭萬人)이라는

유명한 지관(地官)을 찾아갔다.


흥선군은 “부친의 묘를 이장하려고 하는데 좋은 곳이 없겠는가?”

하고 물었다.

정만인은 말하기를, 충청도 덕산 땅에

“만대에 걸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가 있고,

또 충청도 가야산 동쪽 덕산에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자리[二代皇帝之地]”가 있는데

둘 중 한 곳을 택하라고 하였다.


흥선군이 2대황제지지를 달라고 하자,

정만인은 요구조건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흥선군이 훗날 정권을 잡으면 자신에게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인출(引出) 감독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흥선군이 그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자 그가 자리를 일러주었는데,

가서 보니 그곳은 평범한 산비탈이 아니라

가야사(伽倻寺)라는 유서 깊은 거찰이 자리잡고 있었다.

묘터는 바로 가야사 보웅전 앞

금탑(金塔)이 있는 자리라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으나,

26세의 혈기 방자한 흥선군은 일을 벌이고 말았다.

그는 우선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 묘를

500리나 떨어진 가야사 뒤쪽 절골로 옮겼다.


그리고 그는 집안의 가보(家寶)로 내려오던

단계(端溪) 벼루를 충청감사에게 뇌물로 주고는

가야사 중들을 쫓아내고 빈집으로 만든 후,

불을 질러 폐사(閉寺)시켜버렸다.

(「매천야록」에서는 흥선군이 재산을 처분한

2만 냥의 반을 주지에게 주어 불을 지르게 했다고 함).


이리하여 천년고찰 가야사는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절 뒤 금탑만 홀로 남아 있었다.


한편 탑을 헐기 전날 밤에 흥선군의 세 형들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수염이 흰 노인이 나와 “나는 탑신(塔神)이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나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느냐?

만약 끝내 이장을 한다면 너희 형제는 폭사하리니 속히 떠나라”

고 하였다.


깜짝 놀라 깬 세 형들이 꿈 이야기를 하니 모두 같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은 대원군은

“그렇다면 이곳은 진실로 명당자리입니다.

명(命)이란 타고난 것인데 어찌 탑신이 관장하겠습니까?

종실이 쇠퇴하여 안동 김씨 문전에서 옷자락을 끌며

구차한 삶을 사느니, 죽더라도 차라리 일시에

크게 일어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형들을 설득했다.


이른 아침에 산에 올라가 탑을 깨뜨리고 보니,

그 자리는 전체가 돌이었다.

도끼로 돌을 내리치니 도끼가 튀기만 할 뿐,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그러자 흥선군은 도끼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나라고 왜 왕의 아비가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하고 소리쳤다.

그 뒤 도끼를 내리치자 바위가 깨졌다.

이장을 마치고 난 후 흥선군은 나중에

다른 사람이 손댈까 염려스러워 철(鐵) 수만 근을 녹여

관곽을 눌러 덮고, 그 위에 강회를 비벼 다져서 봉분을 했다.


흥선군은 이곳에 묘를 이장한 지 7년 만에

둘째 아들 명복을 낳았으며,

명복은 12세 되던 해에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되었다.

그리고 흥선군은 임금의 아버지로 대원군(大阮君)이 되어

안동 김씨들에게 철퇴를 가했다.


이후 아들은 고종황제가 되었고,

손자는 순종황제가 되었으니 정만인의 예언대로 된 셈이다.

1865년(고종 2년), 대원군은 남연군묘 맞은편에 있는

서원산 기슭에 절을 짓고 보덕사(報德寺)라는 이름을 내렸다.

절터를 빌려서 권력을 잡았으므로 그 은덕에 보답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조선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살만인(殺萬人)해야만 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독일 무역상인 오페르트가 부친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오페르트를 안내한 자가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지자,

진노한 흥선대원군은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에 들어갔다.

그때 흥선대원군은 살만인(殺萬人)을 ‘만 명을 죽여야 한다’고

해석하여 6년에 걸쳐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을 죽였는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하기를, 부친의 묘 자리가 2대까지

황제가 내려가는 자리라면, 그후는 영속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이씨 왕조가 끊어진다는 의미였다.


이 모든 것은 정만인의 소행인지라, ‘속았다’ 하고 보니

살만인(殺萬人)은 바로 ‘정만인(鄭萬人)을 죽이라’는

뜻임을 그제야 깨닫고, 해인사로 사람을 보내

정만인을 잡아오게 하였으나 그는 이미 해인사의

보물인 해인(海印)을 훔쳐 달아난 뒤였다고 한다.


한편 정만인은 해인을 훔쳐 어느 한 해도(海島=섬)로 들어가

장차 계룡산(鷄龍山)에 도읍을 열기 위해

대사(大事)를 꾸미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은,

이것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리고자 했던 게 틀림없다. 


해인은 수도의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실로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해인은 24방위의 중심과 같은 자리가 곧 해인(海印)의 자리이며,

정역시대는 인존시대(人尊時代)인지라

사람이 위치하므로 해인(海印)이 곧 해도진인(海島眞人)이 된다.

해인이란 바다 해(海), 도장 인(印)이다.

말 그대로, 바다의 도장으로,

바다에 도장을 찍어놓은 것과 같은 증표로서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해인(海印)은 어떤 물체가 아닌 진인(眞人)을 뜻하므로,

해인을 해도진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증산 성사께서 가져다준다고 한 해인은

곧 해도진인을 만나게 해주신다는 것이니,

그를 만나야 정역시대를 맞이하여 신명(神明)을 봉함받아

새로운 운수(運數)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모든 뜻은 지상의 해도진인(海島眞人)을 통하여

표출되고 실행되어 나오므로 해인이요,

하늘의 모든 조화가 해인으로 인해 이루어짐으로

해인조화(海印造化)가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는 것이다.


또한 해인(海印)을 찾으면 「팔만대장경」에 감춰진

큰 비밀인 미륵세존(彌勒世尊)을 찾을 수 있고,

따라서 누구나 극락세상(極樂世上)으로 인도되어

무병(無病)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을 통해 볼 때, 해인(海印)을 찾는 일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바로 이 해인을 찾을 때 인류가 소망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우당 도전께서 해인사에 들러 임원들에게

이 해인(海印)을 찾아보라고 하신 것이다.
(201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