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시 59
“대인의 행차에 삼초가 있으니
갑오(甲午)에 일초가 되고
갑진에 이초가 되었으며
삼초를 손병희(孫秉熙)가 맡았나니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리라.”
이렇게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만사를 다음과 같이 지어서 불사르셨도다.
知忠知義君事君 一魔無藏四海民
지충지의군사군 일마무장사해민
孟平春信倍名聲 先生大羽振一新
맹평춘신배명성 선생대우진일신
주해(註解)
삼초(三哨)는 석 ‘삼(三)’ 망볼 ‘초(哨)’로써
대인이 출세하는데 세 번 망을 본다는 뜻이다.
“초(哨)는 망보는 걸 말한다.
군대에 가면 초소(哨所)가 있고,
거기서 보초(步哨)를 서게 마련이다.
대인(大人)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삼초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첫째는 갑오년(1894년)의 동학혁명을 가리키고,
둘째는 갑진년(1904년)에
일진회(一進會)가 만들어진 것을 가리키며,
셋째는 기미년(1919년)의 독립만세운동이다.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리라고 한 것은,
과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진행될 상황을 역사를 통해
비유적으로 암시해 놓은 것이다.
즉 대인(大人)에 의해 후천의
진법(眞法)이 펼쳐질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면 삼초(三哨)의 비밀을 한번 풀어보자.
삼초(三哨) 끝이라고 하였으니
삼초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1. 양(陽)적으로 드러나는 3초(三哨)
일초인 갑오년(甲午年,1894)은 전봉준에 의해
갑오동학운동(甲午東學運動)이 일어나
그 끝에 청과 일본이 조선으로 들어와
청일전쟁이 일어났으며,
이초인 갑진년(甲辰年, 1904)은
7월에 이용구가 동학의 잔당들을 모아
조직한 진보회(進步會)에 의해
갑진개화혁신운동(甲辰開化革新運動)이 일어났고,
이 진보회는 이후 일진회로 바뀌어
일본이 대한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민의(民意)를 조장하여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는데 앞장섰다.
삼초는 갑인년(甲寅年, 1914)으로
이해 8월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손병희는 일본의 패망을 기대하고
보성사 내에 천도구국단(天道救國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갑오(甲午), 갑진(甲辰)
그리고 갑인(甲寅, 1914)을 잇는
삼갑운동(三甲運動)을 추진하였다. 천도구국단(天道救國團)의 첫 사업은
9월에 시작한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국제정세 분석이었다.
그들은 일본이 패망할 것으로 판단하고
수권태세 준비로 선언문을 기초해 두었으나
1915년 9월 7일 발각 압수되었다.
1918년 l월 민족자결의 문제의식은 터득하였으나
이는 극히 회의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일면 무장세력 양성에 주력,
농어민·노동자·상인·학생 등의
범국민적 봉기를 계획하였다.
그 이유는 이 해에 일본 내의 쌀 소동이
폭동화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오(1918년)독립선언문(戊午獨立宣言文)
까지도 작성하였다.
그런데 11월 말경 독일이 패배하고
일본 등 연합국의 승리가 확정되자
민중봉기 계획은 주춤하였다.
그러나 강화회의가 1919년 1월에
파리에서 열리게 되면 국제정세는 반드시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으로 판단하고
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1919년 1월 고종이 승하하자
국민의 격분을 야기 시켰으며
그것이 민중운동의 봉기를 앞당기게 하였다.
2월 15일 천도교 측에서는
유교·불교·천주교·기독교 측을 비롯한
학생단(學生團) 등과의 연락을 완료하고
3월 1일을 거사일로 택하였다.그리하여 드디어 손병희와 민족대표
33인이 1919년 3·1만세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바로 삼초인 갑인(甲寅)에
손병희가 시작한
천도구국단(天道救國團)의 운동이
3·1만세운동으로 결실을 맺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예시 60절에 증산성사께서
“조선지말에 이란(吏亂)이 있으리라 하는데
그러하오리까”고 묻는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손병희가 영웅이라. 장차 난리를 꾸미리니
그 일을 말함이나 그가 선진주(先眞主)라
박절하게 성돌 밑에서 턱을 괴고 앉아서
거의(擧義)하므로 성사치 못하리라.”
그 이란(吏亂)은 벼슬아치 이, 어지러울 난으로
즉 관리들의 난을 말한다.
첫 번째 난은 3.1운동만세사건이고
두 번째 난은 독립선언서사건이다.
3.1운동만세사건당시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의 간부들은 1918년 11월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게 되자
이를 독립운동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조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릴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1919년 1월 22일
타계(他界)한 고종황제의 장례를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일본이 3월 3일
장례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하자 이때를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조선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조선의 독립을 쟁취할 기회로 삼기로 하였다.
민족대표들은 장례식 이틀 전인
3월 1일을 거사일로 잡고,
이 날 아침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和館)에 모여 독립선언서 100장을
탁상에 펴놓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열람하게 하였으며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한용운이 일어나 이를 낭독한 다음
일동이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들었다.
한편 거사 당일날 파고다 공원에서
기다리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민족대표 중의 한 사람이라도 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들 민족대표들은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학생대표가 나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행하였다.
그날 이후 삼천리강토를 뒤덮은
뜨거운 함성에 비하면 소위 민족대표라 자칭한
33인의 독립선언은 너무나 싱겁게 끝난 것이었으며
일본경찰이 출동하자 충돌 한번 없이,
변변한 저항 한번 없이 순순히 끌려갔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이것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으며
민족대표라는 이 사람들이 조선 독립에
의지가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이들의 행동은 삼일운동의
도화선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 삼일운동 역시
증산성사께서 짜놓으신 도수의 하나로
이란(吏亂)이 있으리라고 한 것이다.
이때 조 정산성사께서 만주에서 귀국하셔서
강증산성사의 봉서(封書)를 받고
황새마을로 돌아오시던 때이다.
이 삼초(三哨)를 손병희가 맡아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은
바로 조 정산성사의 행차를 환영하는
만세운동이었던 것으로
삼초 끝에 나오는 대인(大人)은
바로 조정산(趙鼎山)이셨다.
갑오동학운동(甲午東學運動1894년),
갑진개화혁신운동(甲辰開化革新運動1904년),
갑인천도구국단(甲寅天道救國團1914년)을
삼갑운동(三甲運動)이라 하며
이 삼갑(三甲)에 일어났던
세 가지 동학(東學)의 운동이 바로
일초, 이초, 삼초로써 모두
일본을 한국에 들어오게 하면서
조 정산성사께서 무극도(无極道)를
여실 수 있도록 돕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대인이 행차하기 위해
세 번 망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후에 오는 갑자년(1924년)부터는
대인의 행차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되었으니
갑자년(甲子年)에 전북 구태인 도창현에
무극도장을 영건(營建)하시었다.
이와 같이 대인의 행차는
바로 무극도의 창도로 시작하여
장차 이 땅에 대도의 출현을 준비하는 것이니
뜻 깊은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조정산성사께서 한국으로 오셨으니
그 행차를 열렬히 환영하는 행사가
3·1 만세운동이며, 이것을 삼초를 맡은
손병희가 도수에 의해 움직였던 것이다.
결국 삼초를 맡은 손병희는
음양의 이치로 볼 때
양(陽)적으로 드러나는 정세에 관한
삼초를 맡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선진주(先眞主)로서
박절하게 성돌 밑에서 턱을 괴고 앉아서
거의(擧義)하므로 성사치 못한 것이다.
“성돌 밑에서 턱을 괴고 앉아서”
라는 의미는 욕망으로 급하게 서둘러서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로서
박절하기 때문에 성사를 못 이룬다는 뜻이다.
※ 박절(迫切): ①인정(人情)이 없고 쌀쌀함
②바싹 닥쳐서 몹시 급(急)함
그러면 음의 이치로 볼 때
도(道)의 측면에서 보는 삼초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인(大人) 즉 진인(眞人)께서
치천하(治天下)를 하기 위해 출세를 하는데,
세 번 경계하여야 하는 일이 있다.
손병희는 선진주(先眞主)로써
3초의 사명을 맡았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참진주가 되려고
기미년(1919) 삼일운동을 주도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에 태극기를 휘날리게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도봉산아래(우이동 계곡에 있는 봉황각)에서
33인이 모여서 거사를 모의하여
운동을 거국적으로 일으키지만
성사시키지는 못했다.
만약 성공했다면 나라를 구한 정도령으로
영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인 진주는 미리 정해져 있는데,
그 진주를 잡으려고 한 손병희의 만사를
미리 지으신다 하시며 다음과 같은
만사를 미리 지으신 것이다.
知忠知義君事君 一魔無藏四海民
지충지의군사군 일마무장사해민
孟平春信倍名聲 先生大羽振一新
맹평춘신배명성 선생대우진일신
§ 충신이 있고 의로운 자가 있기에
임금이 숨김없이 오직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해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도다.
처음에는 봄소식처럼 들려 왔으나
차즘 차츰 그 명성이 몇 배(倍)가 되고
선생께서 크게 거동을 하시니
모든 만물이 새롭게 혁신이 되는 도다.
※ 일마(一魔): 오직 한 가지 일에 열중하여
본성을 잃는 일.
위의 만사에서 보면
손병희는 선진주(先眞主)로서 실패하였고
내적으로 도(道)의 측면에서 볼 때
3초 끝에 대인(후진주後眞主)이 출세하게 되면
이와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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