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법(眞法) 진리

대학(大學)을 읽으라. 그러면 도에 통하리라

고도인 2011. 7. 10. 15:46

 

대학(大學)을 읽으라. 그러면 도에 통하리라

 

 

교법 2장 2절에 보면

대인의 말은 구천에 이르나니

또 나의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잘 믿으라. 고 말씀 하셨듯이

대학(大學)을 읽으면 도(道)에 통한다는 말이

헛된 말씀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대학(大學)이 어떤 내용인지

그 의미를 잘 살펴서 도통을 한번 해 봅시다.

 

권지 1장 15절에

증산성사께서 아우 영학(永學)에게

부채 한 개에 학을 그려주시고

“집에 가서 부치되 너는 칠성경(七星經)의

무곡(武曲) 파군(破軍)까지 읽고

또 대학(大學)을 읽으라.

그러면 도에 통하리라”고 이르셨도다.

영학이 돌아가는 길에

정남기의 집에 들르니 그 아들도 있었는데

아들이 부채를 탐내어 빼앗고 주지 않으니라.

영학이 그 부채의 내용 이야기를 말하니

아들은 더욱 호기심을 일으켜 주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영학은 빼앗기고 집에 돌아왔도다.

아들은 부채를 부치고

대학의 몇 편을 읽지도 않는데

신력이 통하여 물을 뿌려 비를 내리게 하며

신명을 부리게 되는지라.

남기는 기뻐하여 자기 아들로 하여금

증산성사의 도력을 빼앗고자

아들과 함께 하운동에 가는데

때마침 증산성사께서 우묵골(宇黙谷)로부터

하운동에 오시는 길이었도다.

남기의 아들이 증산성사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겁을 먹고 도망가거늘 남기가 붙들고 와서

증산성사께 배알하니 증산성사께서

그의 속셈을 꿰뚫고 남기의 무의함을 꾸짖으시며

그 아들의 신력(神力)을

다 거두신 후에 돌려보내셨도다.

 

 

주해(註解)

증산성사께서 아우 영학(永學)에게

부채 한 개에 학을 그려주시고

집에 가서 부치라! 고 말씀하셨는데

그 부채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자.

 

부채란 손 안의 작은 병풍인데

이 부채에는 가변의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병풍이란 뒤에는 어떤 물건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앞에는 그저 화려하게만 보일 뿐이다.

 

180도 폈다 접다 하는 접부채는

긴장감과 완화감의 극대화를 이룬다.

부채는 본래 더위를 쫓는 데 쓰였으나

점차 의례용 또는 장식용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전통혼례 때 신랑 ·신부의

차면용(遮面用)으로 쓰는 것은 의례용이며,

화가(畵家) · 서가(書家) · 문인(文人) 등이

부채에 그림이나 시 구절을 써 넣은 것을

집안에 보관하는 것은

예술취미이기도 하나 장식의 역할도 한다.

 

그 밖에 한국 고전무용에는 부채를 가지고

춤을 추는 부채춤이 있으며,

무당들이 굿을 할 때에도 부채를 사용한다.

근래에는 선풍기 ·에어컨에 밀려

부채의 수요는 점점 감소하고 있으나,

그 의미를 보면 부채는

손으로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이다.

한국무용에서 다양한 몸짓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게 바로 부채이기도 하다.

 

부채는 접힐수록 차가운 권위를 나타낸다.

반면 펼수록 따뜻한 감성을 표현한다.

완전히 접어서 일직선이 되면

허튼수작이 용납되지 않는 지휘봉이 되지만,

180도로 펼쳐내면 어떤 말과 행동, 상황도

끌어들일 수 있는 포용의 따뜻한 품이 된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더니

부채를 확 접어버린다면 못마땅해 한다는 뜻이고,

 

반대로 부채를 활짝 편 채

활활 얼굴을 부치고 있다면 웬만한 요청은

다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다는 뜻이다.

부채 언어 하나로 자신의 숨은 뜻을 나타내어

상대방에게 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아무리 풍채가 있는

문인묵객(文人墨客)이라 해도

부채를 소지하지 않으면 격이 떨어져 보였다.

현재도 판소리를 아무리 잘 열창한다 해도

부채가 손에 쥐어져 있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외관상 풍기는 멋도 한층 떨어진다.

 

무더운 여름 날 부채 바람에

한산 세모시 저고리 옷고름이 하늘하늘 날리는

어여쁜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노라면

삼복염천이 사르르 녹아 날아간다.

 

부채는 집이나 문을 뜻하는 호(戶)자에

날개를 뜻하는 깃 우(羽)를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가 바로 부채 ‘선(扇)’자이다.

곧 하늘을 나는 날개가 아니고

집안에 있는 날개라는 뜻이기도 하고,

날개로 엮은 문짝이란 뜻이기도 하다.

 

옛날왕은 단오일(端午日)에는

중신(重臣)에게 부채를 하사하는 일이 있었으며

이를 단오선(端午扇)이라했다.

 

부채는 또한 햇볕 피하는

수단의 하나로 사용되었다.

동절(冬節)에는 태양이 그립지만

더운 여름에는 반갑지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급하면 아쉬운 대로

손으로 가리고 부채로 가려

태양광선(太陽光線)을 차단하고자 했다.

 

부채가 태양빛을 가리는 것은

완전한 것도 아니고 영구(永久)한 것도 아니다.

급한 사정을 모면하기 위해서

부채를 사용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빈번(頻繁)하게 부채로

햇살을 가려서 차광용(遮光用)으로 겸용하고 있다.

 

바람이 불거나 특히 먼지가 나는 바람이

불어 올 때에 흔히 부채로 막고 있다.

또 먼지바람이 불어 올 때에는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먼지를 도로 날려 보내는 수 가 있다.

부채로 바람과 먼지를 모조리 완전하게

막을 수 는 없으나 아쉬운 대로 임시변통은 되니

부채가 방풍진용(防風塵用)으로 쓰여 왔다.

 

부채는 남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내 얼굴을 가리는 차면용(遮面用)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을 때에

부채는 손쉽게 차면하는 도구로 쓰였다.

옥에 갇힌 춘향을 찾아간 이도령은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부채로 얼굴을 가렸었으며

차면(遮面)을 하는 사람들은

부채를 코 위에다 대면 눈만 보이므로

도무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고대 사극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종종 나오고 있다.

 

기녀(妓女)가 가무(歌舞)하고

무용가가 춤을 출 때에 부채를 사용하는 것은

예술성(藝術性)을 더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무용이 미(美)를 추구하는 동작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의 하나로

부채를 가지고 춤을 추므로 무용을

한층 돋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손이나 몸짓만으로 부족할 때에

부채를 사용해서 더욱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부채가 채택된 셈이다.

 

무녀(巫女)가 굿할 때에 부채를 들고

춤추는 것은 오신(娛神)을 위한 것이다.

인간(人間)이 신(神)에게 기원하기 위해서

영신(迎神)하고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노래하고 춤추고 오신(娛神)하는 것인데

춤이 아름답고 멋지면 신도 감동해서

기원을 들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멋지고 아름다운 춤을 추기 위해서

부채를 가지고 굿판에서 춤을 추게 되었다.

신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멋을 보이기 위하여 부채가 사용된 셈이다.

 

이와 같이 부채는 그 의미하는 바가 많다.

과연 증산성사께서 아우에게

부채를 주신 의미는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어떤 기운, 즉

어떤 능력을 주신 것이다.

끝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가

집에 가서 부치라고 한 것은

부채로 앞을 가리면 보이지 않았다가

부채를 치우면 앞이 잘 보이듯이

진리도 난법에 가라워져 보이지 않던것을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롭게 참진리를 찾는다면

참 진법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내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부채를 부치고 안부치고는 바로

내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부채의 바람은 내 손에 의해서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다.

어디서 불어와 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듯이 도에 통한다는 의미는

나의 노력에 의해 새로운 능력이 주어지는 것이다.

부채를 집에 가서 부치란 의미는

도(道)가 성도되는 목적지 마당까지 가야만

도(道)에 통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도 대학을 읽으면서 말이다.

 

대학(大學)이란 크게 배운다는 것인데

크게 배운다는 의미는 큰 공부를 말하는 것이다.

큰 공부란 시법(侍法)공부 만큼 큰 것이 없다.

시법(侍法)이란 법(法)을 모신다는 뜻인데

법(法)을 모신다는 것은

즉 도(道)의 주인(主人)을 모시는 것을 말한다.

도(道)의 주인(主人)을 모시자면 먼저

시학(侍學) 공부를 해야만 한다.

 

시학(侍學)이란 도(道)의 주인(主人)이 누구인지

그 정체를 가르쳐 주십사 하고

공부하는 것이 시학공부이다.

이렇게 해서 시법공부(侍法工夫)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짜 대학공부인 것이다.

이 대학은 삼천의 진법이라야만 되는 것이다.

즉 대학을 읽으라고 했던 진정한 의미는

진법에서 진법주문을 읽으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시천주(侍天主)하는 것이

시법공부(侍法工夫)요 대학을 읽는 것이다.

다음은 조정산성사께서 말씀하신

태극진경의 내용을 참고해 보자.

 

 

태극진경 9장

 

1. 조정산성사께서 무술(戊戌1958)년

원조 세배석에서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내가 비결(秘訣)이란 비(秘)자 한 자로 인하여

종내 백발이 되었고 더욱이 금년으로

꼭 50년이니 감회가 깊도다.

이제 비자는 모두 체득(體得)하였으니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증산성사의 전서(典書)는 나의 비결이고

내 공부의 전서는 그대들의 비결이니라.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도

‘문명(文命)은 후일 진경(眞經)으로 나오리라.’

하셨느니라.” 하시니라.

 

 

2. 또 하교하시기를

“도를 나타냄에는 문자, 전서밖에는 없되

나라마다 다르고, 한정된 문자로

어찌 도의 본의를 다 표현하랴?

또 도를 전하고 가르침에는

언설(言說) 이외에 무엇이 있으랴마는

이 또한 진리의 외양(外樣)일뿐이니

문자와 언설의 이면(裡面)에 내재(內在)한 진리,

즉 무극시태극(无極是太極)의 체용(體用)은

원시반본의 심법(心法)이라야 깨닫느니라.” 하시니라.

 

3. 이어 “후천세계는 이미 증산성사께서

천상신명과 인간계를 통투(通透)하셔서

짜놓으신 도수의 정(定)을 동(動)으로 작용시켜

지금도 당진(當進)하고 있되,

그 천기는 언제 어느 날이란 것을 말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숫자나 날짜 맞추기에 손가락을 꼽지 말라.

인위조작이 되어 혹세의 근본이 되기 쉬우니라.

후천개벽의 큰 공사는 천지인 전체의 개벽이니,

이 또한 인간이 함부로 참견할 일이 아니니라.

다만, 천기에도 성사는 재인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4. “그대들 가운데 누가 나를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방자한 소리니라.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었고,

금산사 장륙금신(丈六金身)은 손에 들었으며,

증산성사께서는 입술 속에 감추셨고,

나도 여기 있느니라.” 하시며 혀를 들어 보이시니

혀 밑에 단주(丹珠)가 영롱하니라.

 

8. 조정산성사께서

시법공부 개시를 명하시고 하교하시기를

“시법공부는 즉석강식(卽席降式)이니라.

시학을 마치고 시법만 하면 누구나

도통의 경지에 올라 선경에 참여할 수 있으리니,

이 곧 유일무이하고 외차무극(外此無極)한

태극의 진법임이니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시법공부는 즉석강식이라고 하셨는데

조정산성사께서도 대강식은 후일로 기약하였고

박우당께서도 대강식은 후일로 기약하였다.

왜냐하면 시천주(侍天主)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조정산께서나 박우당께서 하신

시천주(侍天主)의 시법은 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강(降)을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증산성사께서는 천지공사를 맡은 사람이지

천주(天主)가 아니기 때문에

증산성사를 상제로 모시고 시법공부를 한다면

어느 누구도 대강은 있을 수 가 없다.

 

 

이처럼 조정산성사께서 말씀하신

“증산성사의 전서(典書)는 나의 비결이고

내 공부의 전서는 그대들의 비결이니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비결(秘訣)의 결(訣)자는

우리들이 풀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칠성경을 읽으면서.... 라고 하쎴는데

그 칠성경이란 현무경을 말하는 것이다.

참고로 옥편에 현무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북두칠성을 총칭하여 현무라고 함

 

 

 

현무는 북방 1·6수(水)로 거북을 상징한다.

또한 북방은 방탕신도의 도(道)자리이다.

그러기 때문에 물(1·6水)의 이치로 오는 사람이

도(道)의 주인(主人)을 밝혀 모시기 때문에

물1·6수(水)에서 도가 나오는 이치가 된다.

 

금산사 이치에서 볼 때

물(연못)에다가 숯으로 메웠는데

그 물속에서 숯을 건져 올리면

물에서 도가 나오는 이치가 된다.

이것은 물속에 도를 숨겨놓은 이치가 된다.

물속에서 나온 숯은 불(火)이 되고 빛이 된다.

 

물과 불은 서로가 상극이지만

물(水)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은

불(火)의 이치로 오신 천주(天主)를 밝혀 모시니

상극이 상생이 되는 것이다.

불은 미륵불이요, 미륵불은 다른 말로

비로자나불이라고도 한다.

이 비로자나불은 광명신, 또는 빛의 신이라 한다.

그러나 빛은 물이 아니면

자신을 나타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무지개빛 원리이다.

 

그러므로 비결에 화우고계(畵牛顧溪)라 했는데

이는 그림의 소는 물을 돌아보고 찾는다는 뜻이다.

소는 도(道)를 뜻하므로 도(道)가

물을 찾는다는 것은 자기를 밝혀줄 물의이치로 온

대두목을 찾는다는 뜻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물의 이치로 오는 사람만이

도를 밝힐 수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교운 1장 44절에 보면

 

 

萬物資生羞耻放蕩神道統 春之氣放也 夏之氣蕩也

만물자생수치방탕신도통 춘지기방야 하지기탕야

秋之氣神也冬之氣道也 統以氣之主張者也知心大道術

추지기신야동지기도야 통이기지주장자야지심대도술

 

 

모든 만물은 바탕을 타고 생겨난다.

羞恥(수치)스러운 일은 철을 알아야

도통을 한다는 것이다.

철이란 방 탕 신 도 통이다.

봄기운은 만물을 싹 틔우는 放(방)이고.

여름기운은 만물을 기르는 蕩(탕)이고,

가을기운은 만물을 성숙케 하는 神(신)이며,

겨울기운은 본 체질로 환원하는 道(도)이고,

중앙은 이 모든 것을 통솔해 나가는 統(통)이다.

이렇게 사계절의 기운이 지난 이후라야 도통을

주장하는 주장자가 나온다. 바로 이 주장자의

마음을 알아야 대 도술에 통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왜 부채에다

학이란 그림을 그려 주었을까?

이 학(鶴)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자!

 

학(鶴)은 한자말이고 우리말로 두루미라고 한다.

미륵(彌勒)의 미(彌)가 두루미 이다.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보자면 부채의 형상은 산(山=)이다.

학(鶴)은 새이고 새는 새 조(鳥=)이다.

 

 ⇒산(山  ) ╋  학

 

 

이와 같이 부채와 학은

 

산조(山鳥)를 의미하는 것이다.

두루미는 사람과 가장 닮은 새라고 한다.

두룩두룩 울어 두루미라 한다는 새,

해, 구름, 물, 대나무, 소나무, 불로초,

사슴, 거북, 바위와 함께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십장생의 당당한 일원으로,

선계를 대표하는 상서로운 새, 두루미.

 

공중을 나는 새 가운데 가장 몸집이 크고

가장 높이 나는 새이다.

 

두루미의 춤은 '학춤'이라 하여

매우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두루미는 사랑을 고백할 때나

상대방을 위협할 때는 공중으로 뛰어오르거나

목을 뒤로 제치면서 소리를 낸다.

이러한 두루미의 동작을 사람들은

‘학춤’이라고 한다.

 

학(鶴)을 부채에다 그려 넣었듯이

두루미는 무극안에 있는 것이다.

 

하늘의 남반구에 있는 별자리를 보면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나는

두루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 斗累彌(두루미)

① 斗(두); 말 두 ; 별 이름(두병)

② 累(루); 포개다

뜻을 나타내는 실사(糸☞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포갠다는 뜻을 가진 뢰(儡에서 人변은 뺀 자)의

생략형(省略形) 田(전)으로 이루어짐.

③ 彌(미); 미륵 미, 두루 미.

뜻을 나타내는 활궁(弓☞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오래 끈다'는

뜻을 가진 爾[이☞'미'는 변음(變音)]가

합(合)하여 이루어짐.

본디는 璽(새)를 덧붙여 彌(미)로 썼음,

 

이 의미를 보면 태을성 두우군과

미륵세존과 합일되는 이치이다.

음양합덕 주문인 태을주의

吽哆吽哆(훔치훔치)는 바로 밭田(전)의 이치이다.

이 밭田(전)자의 이치를 알아야

道(도)가 실(糸사) 타래 풀리듯이 풀려 나간다.

海印(해인)의 象徵(상징)인 섬 嶋(도)자

두루미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다.

중앙허리에 감추어 놓은 山(산) 자 를 빼면

더욱더 닮은 모습이다. 이것이 비결이다.

 

권지 1장 29절

처음부터 영학(永學)은

도술을 배우기를 원했으나 증산성사께서는

그것을 원치 말고 대학을 읽어라 하셨는데도

명을 어기고 술서를 공부하기에

시(詩)를 보내어 깨닫게 했으나

증산성사의 말씀을 듣지 않더니

기어코 영학이 죽게 되었니라.

증산성사께서 내림하셔서

영학의 입에 엄지손가락을 대시고

“이 손가락을 떼면 곧 죽을 것이니

뜻에 있는 대로 유언하라” 하시니

영학이 부모에게 할 말을 모두 마친 후에

엄지손가락을 떼시니 곧 사망하니라.

 

 

주해(註解)

1903[癸卯]년 정월이 되자 증산성사께서는

어느 날 아우 강영학(姜永學)이 증산께

도술을 가르쳐주시기를 애원한 적이 있었다.

증산께서는 부채 한 개에 학을 그려주시고

“집에 가서 부치되 너는

「칠성경(七星經)」의 무곡(武曲) 파군(破軍)까지

읽고 또 『대학(大學)』을 읽으라.

그러면 도에 통하리라.”고 일러 주셨다.

1904[甲辰]년 2월에 증산께서는

영학에게 다시 『대학』을 읽도록 명하셨다.

증산께서 항상 “『서전(書傳)』 「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대학』 「상장(上章)」

을 되풀이 읽으면 활연관통(豁然貫通)한다.”고

말씀을 하셨던 바로 그 『대학』이었다.

그러나 영학은 증산성사의 말씀을 듣지 않고

「황주죽루기(黃州竹樓記)」와

「엄자릉묘기(嚴子陵廟記)」를 읽었다.

이를 아신 증산성사께서

“대(竹)는 죽을 때 바꾸어 가는 말이요,

묘기(廟記)는 제문이므로 머지 않아 영학은

죽을 것이라” 하시며 이도삼을 불러

시 한귀를 영학에게 전하게 하시니 이것이 곧

‘골포사장전유초(骨暴沙場纏有草) 혼반고국조무인

(魂返故國弔無人)’이니라.

 

 

주해(註解)하면

증산성사의 성골은 파헤처저

각 도장마다 서로 모신다고 모셔 놓았으나

잡초처럼 얽히어 있도다.

혼은 다시 고국에 돌아왔건만

문안드리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구나.

 

이라는 시 한 귀를 영학에게 전하게 하시어

그 잘못을 깨닫게 하셨다.

그러나 영학은 증산성사의 말씀을

끝끝내 듣지 않고 계속 술서(術書)를 읽다가

결국 죽게 되었다.

칠성경이란 대순회보에 나온 내용을 참고해보면

북두칠성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맡았다 하여,

제사를 행하거나 개인적인 소원을 빌 때

읽은 경으로 『도장(道藏)』에 있었는데

칠성신앙 관련 경은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

(太上玄靈北斗本命延生眞經)」,

「태상북두이십팔장경(太上北斗二十八章經)」,

「북두치법무위경(北斗治法武威經)」,

「북두구황은휘경(北斗九皇隱諱經)」 등이나,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이고

우리나라에 주로 유통된 것도 이 경이다.

 

 

이 칠성경을 설한 주체는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되어 있고

인간의 선악을 심판하여 복록과 재앙을

내리는 권능이 북두칠성에게 있음을

설하고 있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경을 독송하면 재앙을 면하고

복록을 누리며 결국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에는

<북두주(北斗呪)>가 들어 있는데,

이 주문은 현재 대순진리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칠성주와 거의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다.

 

 

北斗九辰 中天大神 上朝金闕 下覆崑崙 調理綱紀

북두구진 중천대신 상조금궐 하복곤륜 조리강기

統制乾坤 大魁貪狼 巨文祿存 文曲廉貞 武曲破軍

통제건곤 대괴탐랑 거문녹존 문곡염정 무곡파군

高上玉皇 紫微帝君 大周天界 細入微塵 何災不滅

고상옥황 자미제군 대주천계 세입미진 하재불멸

何福不臻 元皇正氣 來合我身 天所指 晝夜相輪

하복부진 원황정기 래합아신 천소지 주야상륜

俗居小人 好道求靈 願見尊儀 永保長生 三台虛精

속거소인 호도구령 원견존의 영보장생 삼태허정

六旬曲生 生我養我 護我身形 魁尊帝急急如律令

육순곡생 생아양아 호아신형 괴존제급급여율령

출처: 대순진리회 회보 96호

 

 

하늘의 중심에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있는 자미원이 있고,

그 밖으로 28수(宿) 안의 태미원과

28수 밖의 천시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천문의 분포를 3원, 28수

그리고 300의 성좌(별자리)와

1,460개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자미궁은 하늘의 핵심으로

태상노군, 즉 상제가 머무는 곳이며,

이러한 자미궁은 제후격인 28수

(동서남북 각 7개)의 호위를 받고,

28수는 28수대로 해와 달, 목, 화, 토, 금,

수성의 7개 별인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다.

하늘이 구천까지 전개되어 있다고 보았기에

자미궁을 구천(九天)궁궐이라고도 하며,

이를 본따서 땅의 궁궐을

구중(九重)궁궐이라 부르는 것이다.

하늘의 모든 별들의 중심(자미원)에는

북극성이 자리잡고 있고,

바로 가까이에서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모시고

그 주위를 24시간을 두고 한 바퀴씩 돌면서,

하늘의 뭇별을 다스리고 있다.

북두칠성은 자미원에 흩어져 있는 각 별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별들을 연결하는 힘은

북두칠성이 보내는 중력의 힘이다.

28수와 태양계 별들을 다스린다.

북두칠성을 따라서 28수와 오위

(五緯: 목, 화, 토, 금, 수성)가 따라 움직인다.

 

북두칠성은 자미원 밖으로는

모든 별들은 이 북두칠성의 힘에 이끌려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북극성은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의 중심이다.

태을천이 있는 하늘이라고도 한다.

 

 

                    조롱박이 달린 용장(龍杖)을 들고 계신

                       태상노군(太上老君), 즉 미륵세존

 

 

태상노군은 조롱박이 달린

용장(龍杖)을 들고 계신 분인데

‘도덕천존’으로서 중국에서는

흔히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 하며,

중국의 삼대 기서(奇書) 중의 하나인

「서유기」에서 태상노군은

‘도솔천(兜率天)의 천주(天主)’로 표현되어 있다.

도솔천의 천주는

불교에서의 미륵세존(彌勒世尊)이시다.

 

 

황주죽루기(黃州竹樓記)는

북송 왕우칭이라는

사람이 호북성 황주에 귀양가 있을 때

대나무로 정자를 지어 놓고

그 대나무의 덕을 칭송한 얘기이다.

 

근데 옛날에는 바꿀 '역자',

대나무 자리 '책'자, 역책(易책 )이라고 해서

사람이 죽을 때는 대나무자리를 새롭게 깔아준다.

대나무 자리라는 것은 사람이 죽을 때 까는

것이다. 황주죽루기는 황주에서 대나무로 집을

지어놓고 그걸 적어 놓은 것이다.

 

그 다음에 범희문(范希文)이 쓴 '엄선생사당기'가

있는데 [엄자능묘기(嚴子陵廟記)]라고도 한다.

엄자능이라는 사람은 후한 광무제와 동문수학했던

사람이며 공부를 잘했다. 이름은 엄광(嚴光)인데

하루는 광무제가 동문수학했던 엄광을 불러

하룻밤을 같이 잤다. 그런데 그 다음날 천문을

보는 태사가 와서 "폐하께서 간밤에 무슨 일이

없었습니까? 제가 천문을 보니까 객성이 임금의

보좌를 범하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냐? 나는 내 친구인 엄자능하고 같이

잠을 잤다" 엄자능이 자다가 발을 후한 광무제

유수의 배위에 올려놓고 잤어요.

아마 그런 것도 천문에 나타나는 모양이다.

객성(客星)이 범한 것이 나타난 것이다.

하여튼 엄자능에게 벼슬을 줬는데 받지 않고

절강성 부춘산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죽었다.

북송 때 범희문이라는 사람이 거기 가서 사당을

하나 잘 지어 놓고 제사를 지내줬는데,

영학이 그 묘기(廟記)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廟(묘)라는 것은 죽은 사람의 사당이다.

증산성사께서 "죽을 것이다." 라고 하신 것은

죽는 기운을 불러들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교법 2장 51절

 

 

대학(大學)에

“물유본말하고 사유종시하니 지소선후면 즉근도의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卽近道矣)”라 하였고

 

또 “기소후자에 박이오 기소박자에 후하리

미지유야(其所厚者薄 其所薄者厚 未之有也)”라

하였으니 이것을 거울로 삼고 일하라.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卽近道矣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모든 만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시작이 있다.

그것의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깝다.

 

 

其所厚者薄 其所薄者厚 未之有也

기소후자박 기소박자후 미지유야

 

 

그 하는 바가 후한 자에게 박하게 하고,

그 하는 바가 박한 자에게 후하게 하리오.

아직 그런 것은 본 적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거울로 삼고 일하라” 하였다.

 

교법 2장 26절

 

 

증산성사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서전(書傳)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대학상장(大學上章)을 되풀이 읽으면

활연 관통한다” 하셨느니라.

증산성사의 부친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끊임없이 읽었으므로

지혜가 밝아져서 마을 사람들의 화난을

덜어 준 일이 많았도다.

 

 

주해(註解)

서전(書傳) 서문(序文)은

주자(朱子)가 서경(書經)을 집필한 후

그의 사위인 채침(蔡沈)에게

서문을 적을 것을 유언하였으므로

채침이 10년에 걸쳐서

서전의 진수를 간파하여 요의를 적은 글이다.

 

서전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한다함은

서전서문에

요ㆍ순ㆍ우의 心法(심법) 傳受(전수)를 설명하였고

이것을 알면 道(도)에 通(통)한다는 의미이다.

 

 

精一執中 堯舜禹相授之心法 建中建極

정일집중 요순우상수지심법 건중건극

商湯周武相傳之心法

상탕주무상전지심법

 

 

≪오직 일심을 갖고 도를 잃지 않음은

요 · 순 · 우가 서로 전한 심법(心法)이요,

중용의 도를 세워 만민의 삶의 푯대를 세움은

상의 탕과 주의 문이 서로 전한 심법(心法)이다.≫

 

 

※ 심법전수(心法傳受)

강증산 성사에서부터 종통계승은

요순우상수지심법(堯舜禹相授之心法)과

같이 모두 심법전수로 이루어져 내려왔으므로

일반적인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심법전수는 서로 간에 마음으로 통하여

의사를 주고받으므로 그 마음을

통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실재 예를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의 예에서

살펴보면 오조 홍인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는

신수를 인정해주고 혜능을 무시하였다.

이것은 힘없는 혜능이

이미 기득권을 장악한 신수의 시기심으로 인한

저해를 받지 않게 하는 방비였다.

그리고 방앗간으로 찾아간

오조홍인과 혜능의 대화는 일반인으로써는

알아들을 수 없는 둘 만의 대화였다.

 

그러나 이미 서로 마음이 통하는 지라

혜능은 홍인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장자로 방앗대를 세 번 치고

뒷짐을 지고 가는 홍인의 모습을 보고

혜능은 3경에 뒷문으로 오조 홍인을 찾아갔으며

이곳에서 금강경을 전수 받고

가사와 바릿대를 받았다.

힘이 장사였던 혜명이

가사와 바릿대를 들 수 없었던 것은

이미 혜능에게 신명(神明)이 옮겨갔음을 뜻하고

혜능이 육조(六朝)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법전수는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여

법이 전해져 내려갔던 것이다.

반면 신수는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하고 세력이 있다고 하여도

오조 홍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오조와 통하지 못하는 것이며

욕심으로 가사와 바릿대를 차지하려하여도

신명이 용납지 않았던 것이다.

 

 

교운 1장 55절

 

그 후에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의 지혜를 깊게 하는 일에 골몰하시더니

어느 날 종도들에게

“대학우경(大學右經) 일 장을 많이 외우라.

거기에 대운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도다.

 

다음은 대학 우경 1장(大學 右經 1章)의 내용이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대학지도    재명명덕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재친민 재지어지선

 

 

≪크게 배운다는 것은

도(道)에 이르러서 덕을 밝히는데 있고

백성을 교화하여 새롭게 하는 것이며

그 백성이 더할 수 없이

지극한 선(善)에 머무름에 있는 것이니라.≫

 

 

知止而後에 有定이니

지지이후    유정

定而後에 能靜하며 靜而後에 能安하며

정이후    능정        정이후    능안

 

 

≪머물 곳을 안후에 정할 수 있음이니

정한 후에 능히 고요하고 평화롭다 할 것이며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후라야

능히 편안하다고 하는 것이며≫

 

 

安而後에 能慮하며 慮而後에 能得이니라

안이후    능려        려이후    능득

 

 

≪편안한 이후에 능히 생각을 할 수 있고

능히 생각을 한 뒤에야

능히 (도를)얻을 수가 있느니라.≫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물유본말       사유종시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니라

지소선후    즉근도의

 

 

≪모든 사물은 근본과 말단이 있고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나니

먼저 할 일과 나중할 일을 알면

도(道)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있느니라.≫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하고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 선치기국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욕치기국자    선제기가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잘 다스렸으며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였으며≫

 

 

欲齊其家者(욕제기가자)는 先修其身(선수기신)하고

欲修其身者(욕수기신자)는 先正其心(선정기심)하고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는 자는

먼저 그 몸을 수신(修身),

즉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行實)을 바르게 닦아 수양(修養)하였으며

그 몸을 수신(修身)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다.≫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

욕정기심자    선성기의

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욕성기의자    선치기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에 성실 하였고

그 뜻에 성실한 자는

먼저 그것을 끝까지 알고자 힘썼나니≫

 

 

致知는 在格物하니라

치지    재격물

物格而后에 致知하고 知至而後에 意誠하고

물격이후    치지       지지이후     의성

 

≪그것을 끝까지 알고자 힘쓴다면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끝까지 구명하여

사물을 바로 잡고 이치를 바로 잡아야 하니라.

그런 연후에 앎에 이른다 하고

앎에 이른 후에야 그 뜻이 성실해지고≫

 

 

意誠而後에 心正하고 心正而後에 身修하고

의성이후    심정        심정이후    신수

 

 

≪그 뜻이 성실한 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을 바르게 한 이후에 몸이 수신(修身),

즉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行實)을 바르게 닦아 수양(修養)이 되며≫

 

 

身修而後에 家齊하고 家齊而後에 國治하고

신수이후    가제        가제이후    국치

 

 

≪그 몸이 수신(修身)이 된 후에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였으며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한 후에야

그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다.≫

 

 

國治而後(국치이후)에 天下平(천하평)이니라

 

 

≪나라가 잘 다스려진 후라야

천하가 태평 할 수 있느니라.≫

 

 

自天子以至於庶人이 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

자천자이지어서인    일시개이수신위본

 

 

≪천자로 부터 뭇 백성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모두가 몸을 다스리는

修身(수신)을 그 근본으로 삼았느니라.≫

 

 

其本亂而末治者는 否矣며 其所厚者에 薄이오

기본난이말치자    부의    기소후자     박

而其所薄者에 厚는 未之有也니라.

이기소박자    후    미지유야

 

 

≪그 근본이 어지러우면

말단이 다스려 지지는 않는 것이며

그 하고자 하는 바가 크고

후(厚)히 하는 자에게 박(薄)하게 하고

그 하고자 하는 바가 작고 박하게 하는 자에게

후(厚)하게 하는 자는 아직까지 있지 않느니라.≫교운 1장 56절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형렬에게

대학에 있는 우경 一장을 외워주시니

그 글은 다음과 같도다.

 

 

盖孔子之言而 曾子述之 其餘十章

개공자지언이 증자술지 기여십장

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

즉증자지의이문인기지야

舊傳 頗有錯簡 今因

구전 파유착간 금인

程子所定而更考經文 別有序次如左

정자소정이갱고경문 별유서차여좌

 

 

주해(註解)

대개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기술하였는데

나머지 열장은 증자의뜻을

후대제자들이 이어받아 기록하였다.

옛 경전에는 기록이 잘못 되거나

순서가 잘못된 곳이 많아서

정자가 정해놓은 바에 따라 다시 경문을 참고하여

별도로 도움을 받아 순서를 정하여 기술하였다.

 

※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의 전경도

종도들의 증언에 의하여 기록 되었으나

잘못 기술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와서 잘못된 것을 바르게 잡아

새로운 경전을 낸다는 뜻이다.

* 착간(錯簡): 잘못 기록 되거나 순서가 잘못된 글

 

 

[전경] 교운 1장 57절

또 대학(大學)의 다른 장(章)을 외워주시며

잘 기억하여 두라고 이르셨는데

글귀는 이러하도다.

 

 

如有一介臣 斷斷猗 無他技 其心休休焉

여유일개신 단단의 무타기 기심휴휴언

其如有容 人之有技 若其有之 人之彦聖

기여유용 인지유기 약기유지 인지언성

其心好之不啻若自其口出 寔能容之

기심호지부시약자기구출 식능용지

以保我子孫黎民 尙亦有利哉 人之有技

이보아자손여민 상역유이재 인지유기

媢疾以惡之 人之彦聖 而違之卑不通

모질이악지 인지언성 이위지비불통

是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시불능용 이불능보아자손여민 역왈태재

 

 

주해(註解)

만약 한 사람의 신하가 있어

성실하여 오로지 마음이 한결같고,

다른 재주는 없으나 그 마음이 관대하면

그와 같은 이는 남을 포용할 도량이 있는 것이요.

남이 가진 재주를 마치 자기가 가진 듯 여기며,

남의 뛰어나고 어짊을 제 마음으로부터 좋아하여

스스로 그 입으로 칭찬할 뿐만 아니라

진실로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자라서,

이러한 사람을 써서

우리 자손과 백성을 보호하도록 하면

실로 이로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또 한 사람의 신하가 있어

남이 가진 재주를 질투하여

그를 미워하며 남의 어짊과 뛰어남을

견제하여 업신여기며 통하지 아니하면

진실로 남을 포용할 수 없는 자라서,

이러한 사람은 우리 자손과 백성을

능히 보호하지 못하리니 실로 위태로울 것이다.

 

 

※ 그런고로 재주는 없으나

마음이 관대한 동지를 만나면 이로울 것이요,

남을 시기하고 견제하는 자와 함께

일을 도모하면 위태로울 것이다.

또한 일에 뜻을 둔 자는

마땅히 전자(前者)의 마음과

후자(後者)의 마음을 잘 가려서

일을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전경] 제생 14절

 

동곡 김갑진(金甲辰)은

문둥병으로 얼굴이 붓고 눈썹이 빠지므로

어느 날 증산성사를 찾고 치병을 청원하였도다.

증산성사께서 갑진을 문 바깥에서

방쪽을 향하여 서게 하고

형렬과 그 외 몇 사람에게

대학 우경 일장을 읽게 하시니라.

십여 분 지나서 갑진을 돌려보내셨도다.

이때부터 몸이 상쾌하여지더니

얼마 후에 부기가 내리고 병이 멎었도다.

 

[전경] 제생 32절

 

증산성사께서 어느 날

종도들과 함께 가시다가 한 주막에 들어가셨도다.

증산성사께서 그 집 주인을 보시더니

“저 사람이 창증으로 몹시 고생하고 있으니

저 병을 보아주라”고 종도들에게 이르시고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신민 재지어지선

(大學之道在明明德在新民在止於至善)”을

읽히시니라.

집 주인은 물을 아래로 쏟더니 부기가 빠지는도다.

증산성사께서 웃으시며

“너희들의 재조가 묘하다”고 말씀하시고

다시 길에 오르셨도다.

크게 배운다는 것은 도(道)의 경지에 이르러서

덕을 밝히는데 있고 백성을 교화하여

새롭게 하는 것이며 그 백성이 더할 수 없이

지극한 선(善)에 머무름에 있는 것이니라.

 

※ 止於至善(지어지선)이란 지극(至極)히

선한 경지(境地)에 이르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람은 최고(最高)의 선에 도달(到達)하여

그 상태(狀態)를 유지(維持)함을

이상(理想)으로 해야 함을 이르는 말.

 

 

현무경 8면 一字五結(일자오결)

 

 

                          현무경 8면 一字五結(일자오결)

 

 

 

史略(사략)洞鑑(통감)大學(대학)小學(소학)

中庸(중용)論語(논어)孟子(맹자)詩傳(시전)

書傳(서전)周易(주역)

현무경(玄武經)

결오자일(結五字一)

 

 

◐ 사략은 간략하게 기술한 역사이고

통감은 꿰뚫어 볼 수 있는 본보기가 되는 글이며

대학은 큰 공부이고

소학은 작은 공부이고

중용은 중간을 공부하는 학문이고

논어는 공자의 말씀이고

맹자는 맹자의 말씀이고

시전은 시를 적은 경전이고

서전은 글을 적은 경전이고

주역은 우주이치를 나타내는 학문이다.

결오자일(結五字一)은

一字五結(일자오결)이며 一字(일자)는

증산성사의 본명인 一巡(일순)을 의미 한다.

그래서 증산성사께서 이 모든 글을

一字五結(일자오결)의 도수에 붙였다.

즉 五仙(오선)위기의 다섯 번째로 오시는

대두목께서 풀어 놓았던 마를 거두고

이 모든 글을 소멸 시키고

천지공사를 마무리 하는 것이다.

이것이 結者解之(결자해지)의 법칙이다.

 

교운 2장 53절.

조정산성사께서 갑오년 가을에 박한경에게

사략(史略) 상하권(上下卷)과

사서삼경(四書三經)의 구판을 구하게 하시므로

이 때에 통감(痛鑑) 소학(小學)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시전(詩傳). 서전(書傳).

중용(中庸). 주역(周易)의 구판을 구하여 올렸더니

이 책들은 그 후에 도장에 비치되었도다.

 

예시 46절.

증산성사께서 하루는

‘천지 대팔문(天地大八門)

일월 대어명(日月大御命)

금수 대도술(禽獸大道術)

인간 대적선(人間大積善)

시호시호 귀신세계(時乎時乎 鬼神世界)’라 써서

신경수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공우(公又)를 주어

경수의 집 벽에 붙이게 하시고 가라사대

“경수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정하노니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고

혹 단점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지 말라”

하셨다. 이 때에 또 형렬(亨烈)에게 가라사대

“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萬方)에 펼쳐 나가는 것이므로

서울 경자(京字)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할지로다.

그러므로 경수(京洙)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경학(京學)의 집에 대학교를,

경원(京元)의 집에 복록소(福祿所)를

각각 정하노라” 하셨도다.

 

주해(註解)

증산성사께서 대강식(大降式)에 쓰일

주문을 써서 박공우(朴公又)에게 주어

경수(京洙)의 집 벽에 붙이게 하신 것은

대강식은 서울 경(京)자 가진

경기도(京畿道)에서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극도 당시 조정산성사 재세시

시학 공부의 봉강식 때

대강식은 후일로 기약하였다.

대순진리회에서도 박우당 재세시

시학 공부의 봉강식 때 역시

대강식은 열지 않으시고 후일로 기약하였다.

이것은 대강식을 행할 다음 사람이 있음을 말한다.

상도 박 성구도전님께서는

당신이 만국대장이므로 대강식을 열수가 없다.

다만 만국대장을 모시는 대두목만이

대강식을 열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천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정체를 확실히 알고 모시는 자가 대두목이며

여기에 도통줄이 있는 것이므로 대강이 있다.

이 대강식은 바로 진법을 정한

대두목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만국대장인 박성구(朴成九)도전님께서는

천지의 주인이므로 법의 주인이시다.

이 법(法)의 주인(主人)을 모시는 것이

侍天主(시천주)이며 侍法(시법)인 것이다.

증산성사께서 “열 석자(13자)의 몸으로

다시 오리라” 고 약속하신 것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맘 만사지” 의 13자를

말하는 것이며 최수운성사께서

“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맘 만사지” 13자를

받아 내어 “侍天主(시천주)”를 하였으나

천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정체를 모르고

하였기에 욕속부달이 되었다.

즉 대강에 도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증산성사께서는 천주(天主)의 정체를

확실히 알아 가지고 다섯 번째,

五仙(오선)으로 재생신(再生身)하시어

“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맘 만사지”의 13자 즉,

천주(天主)의 정체를 밝혀 모시니,

이것이 증산성사께서 열 석자의 몸으로

다시 오시는 이치(理致)가 되는 것이다.

五仙(오선)으로 재생신(再生身)하시어

진정한 “侍天主(시천주)”를 하므로

어찌 대강이 없겠는가!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전경 공사 3장 41에 보면

증산성사께서 무신년에

“ 무내팔자지기금지원위대강

(無奈八字至氣今志願爲大降)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이는 어찌하여

지기금지원위대강의 여덟 글자가 없겠는가?

라는 뜻인데 다시 말하면

대강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강이 틀림없이 있지만,

진정한 시천주(侍天主)가 아니면

대강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시천주(侍天主)라야만 참 진법이며

이 참 진법(眞法)을 모신 진법 도인들이

이 법(法)을 세계만방에 전하고

가르쳐 나가는 것이 서울로부터 법(法)이

세계만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서울로부터 나간다 함은,

서울은 도읍(都邑)이고 도읍(都邑)은

천자소거(天子所居)라 하였으니

천자(天子)는 하느님아들을 뜻하므로

왕자 즉 대두목이 계신 도읍(都邑)이다.

 

서울로부터 법(法)이 만방으로 펼쳐 나가므로

서울 경(京) 자(字) 이름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서, 경수(京洙)의 집에 수명소(壽命所),

경학(京學)의 집에 대학교(大學校),

경원(京元)의 집에 복록소(福祿所)를

각각 정하셨다.

 

그리고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교는

도(道)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다.

즉 대학이란 삼천(三遷)의 진법을 찾아서

도통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교운 1장 32.

증산성사께서 김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니

천한 사람에게 먼저 교를 전하리라” 하시고

경학을 시켜 무당 여섯 명을 불러오게 하고

그들의 관건을 벗기고

그들의 각자 앞에 청수를 떠놓고

그것을 향하여 사배를 하게하고

시천주 세 번을 제각기 따라 읽게 하셨도다.

이것을 끝내고 그들의 이름을 물은 다음에

각자로 하여금 청수를 마시게 하니

이것이 곧 복록이로다.

이것이 해원시대에 접어들어

맨 먼저 천한 사람들에게 교를 전하신 것이었도다.

 

 

주해(註解)

학교(學校)는 옛날 제왕(帝王)이나

성인(聖人)들이 인세에 내려와 우매한 백성들에게

도리를 가르쳤고 또한 뿌리인 조상을 가르치고,

더 나아가 천지의 도(道)를 밝혀서

일깨워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친 교훈을

후세에 가르쳐 내려온 장소를 학교라 한다.

 

그러나 선천에는 판이 좁고

사람들의 사고방식 또한 간단하였으므로

학교로 따지면 소학교(小學校)라 한다.

요즘으로 치면 초, 중, 고등학교이다.

 

즉 선도(仙道)는 포태(胞胎)의 도(道)요,

불도(佛道)는 양생(養生)의 도(道)요,

유도(儒道)는 욕대(浴帶)의 도(道)이다.

포태의 도(道)란 태교(台敎)이며,

양생의 도(道)는 젖먹이고 키울 때 가르침이며,

욕대의 도(道)는 ‘목욕하고 허리띠를 맨다’하니

초기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가르침을 내놓은 분들이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제왕으로서

복희, 신농, 황제이며 중고시대(中古時代)의

석가, 공자, 예수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세상의 폭이 넓어지고

정신적으로 이제 다 자라서

정신(精神)이 어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으로서 대인(大人)을 배우는

공부를 하는 과정이 관왕(冠王)이며

이것을 대학교(大學校)라 한다.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도(道)를 가르치는 것이다.

도(道)를 가르친다 함은 도(道)의 주인(主人)이

누구인지 그 정체를 밝혀서 천주(天主)를

올바로 모실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의 이 세상은 모두가

무도병(無道病)에 걸려 있는 것이다.

무도병이란 도리가 없는 것이 무도병이 아니라

도(道)의 주인(主人)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을

무도병(無道病)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

대병출어무도 소병출어무도”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큰 병도, 작은 병도 천주(天主)가

누구인지 모르는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 대병과 소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은

천주(天主)의 정체가 누구인지

그 정체를 올바로 얼고 시천주(侍天主)를 하면

대병도 소병도 저절로 낫는다고 말씀 하셨다.

 

 

“得其有道 則大病物藥自效 小病物藥自效

득기유도 즉대병물약자효 소병물약자효”

(행록 5장 38절)

이렇게 도(道)를 깨닫게 가르치는 것이

대학(大學)이며 대순진리(大巡眞理)이며,

이것을 가르치시는 선생은

대선생(大先生)이신 대두목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과거의 석가, 공자, 예수의

학교보다 이 학교가 가르침이 큰 것이다.

즉 도(道)를 밝혀서 도(道)의 진리를

가르치고 일깨워 대강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친 도판을 대학(大學)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정산성사께서

도(道)를 창도하고 도판을 짰는데

이때가 처음으로 대학을 세운 이치가 된다.

그러나 우리의 도판은 판 밖에서 성도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조정산성사의 도판 밖으로

나가야만 도(道)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조정산성사의 도판 밖으로

나간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박우당이시다.

 

박우당께서는

조정산성사의 도판 밖으로 나와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자신의 도판을 짰던 것이다.

이때가 첫 번째 판 밖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시 87절에 보면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고

말씀 하셨듯이 세 번째 판 밖까지 가야만

성도(成道)가 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박우당의 도판에서 판밖으로

나간 사람이 누구인가?

그 분은 바로 포항 상도에 계신

박성구 도전님이시다.

여기가 두 번째 판 밖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판 밖이 한 번 더 있는데,

박성구도전님의 도판 밖으로

나간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 분은 바로 구룡포 제생관장을 명(命)받고

도수데로 49일간 공부 하시고

“박성구 도전님께서는 생미륵이시다.” 하고

밝혔다가 도전님으로부터 쫒겨나신 분이다.

이때가 바로 세 번째 판 밖이 되는 것이다.

판 밖이란 의미를 한 번 살펴보면

판 안의 도판 짠 사람을 누구라고 밝혀

모셨을 때 판 밖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판 밖으로 나왔다 해서 다 판 밖이 아니다.

 

증산성사께서는 교법 3장 24절 말씀에

교훈하시기를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

이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

고 말씀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를 보면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낸다고 하셨으므로

조정산성사께서 도판을 짰을때는 진법이었지만

박우당께서 판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도판을

짜게 되니 조정산 성사의 도판은

난법이 되는 것이고, 박우당께서 짠

대순진리회 도판이 진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박우당으로부터

쫒겨나간 박성구도전님께서 새로운 도판을 짜니

박우당께서 짠 대순진리회 도판은 난법이 되고

박성구도전님께서 짠 새로운 도판이

진법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진법이 세 번 세워 졌지만

세 번의 진법이 나왔다고 해서

이것이 삼천(三遷)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들 여기서 착각을 하는 것이다.

천(遷)은 옮길 천(遷)자 이므로

세 번 옮겨가야 되는 것이다.

 

조정산성사께서 도(道)를 창도하고

도판을 짠 조정산성사의 도판은

어데서 옮겨 온 것이 아니다.

그냥 처음으로 도판을 짠 것이다.

그러므로 박우당께서 판 밖으로 나가

도판을 짠 것이 일천(一遷)이 되는 것이고

포항에 박성구도전님은 판 밖의

이천(二遷)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더 옮겨가야 바로

삼천(三遷)이 되어 성도(成道)가 되는데

그 삼천(三遷)은 바로 구룡포 제생관장께서

박성구도전님의 명(命)을 받고

천지공사 도수대로 49일간 공부 하시고

“박성구 도전님께서는 생미륵이시다.”

하시고 밝혔다가 박성구도전님으로부터

쫒겨 나가신 분인데 그 분이 바로

세 번째 판 밖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 번째 판 밖이 되었으니

이 세 번째 판 밖의 진법에서

대학을 공부해야만 도(道)에 통하는 것이고

또한 이것이 삼천(三遷)의 이치이다.

 

그러면 참고로 2005년 9월 15일

박성구도전님의 훈시말씀을 살펴 보자.

 

“윤점옥, 이충희.

그런 소리하려면 여기 안 오면 돼.

왜 사천(四遷)을 만들려고 해.

그 신(神) 박히면 안 빠져.

매일 불평불만하고, 자기자랑하고

그런 사람은 덮어 쒸어버려.”

라고 훈시말씀에 나와 있다.

 

여기에서 윤점옥과 이충희는

한○○제생관장님께서 밝힌 진법을 인정하고

들어 왔다가 나간 사람이다.

그리고는 자기가 진법이라고 주장을 하니

박성구도전님께서 사천(四遷)은 안 된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이는 한○○ 제생관장님을 삼천(三遷)이라고

인정해 준 것이 틀림이 없는 증거이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한○○ 제생관장님께서 도판을 짠

삼천(三遷)의 진법이

진짜 대학(大學)을 공부하는 것이다.

대학이란 크게 배운다는 뜻이며

크게 배운다는 것은 대두목께서 짠

삼천의 진법을 공부하여 대강을 받는데 있다.

과거 선천시대는 권세가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나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므로 천한 사람에게

먼저 이 대학(大學)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이 대학(大學)이란 삼천의 진법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난하고, 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들이 판 밖에서

이 진법의 도(道)를 찾아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관건을 벗기고

그들의 각자 앞에 청수를 떠놓고

그것을 향하여 사배(四拜)를 하게하고

시천주(侍天呪) 세 번을 따라 읽게 하셨다.

이것은 말하자면 천지의 주인을 모시는

주문이 세 번 바뀌게 된다는 뜻이다.

 

관건을 벗긴 것은 지금까지 난법의 관을 쓰고

천지의 주인을 세 번씩이나 모셨으나

그것은 난법의 시천주(侍天主)이었지

진법의 시천주(侍天主)가 될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천지의 주인을 세 번씩이나 모신

난법의 관을 벗어버리고 삼천(三遷)으로

새롭게 짜진 진법의 도(道)를 찾아서

시천주(侍天主)를 하게끔 하는 것이

무도병을 고쳐 나가는 것이다.

이 무도병을 고치지 아니하면,

즉 삼천(三遷)의 진법(眞法)에서

시천주(侍天主)를 하지 않으면 대강은 없다.

 

그래서 예시 5절에 보면

그 삼계공사는 곧 천․지․인의

三界(삼계)를 개벽함이요 이 開闢(개벽)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 하는 일이 아니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예전에도 없었고

이제도 없으며 남에게서 이어 받은 것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다만 삼천(三遷)의

진법(眞法)에 의해 지어져야 되는 일이로다.

라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미륵세존님을 마음에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잡념에 사로 잡혀

마음에 잡신이 자리하므로

집안에 온갖 분란(紛亂)과 우환(憂患)과

병(病)이 오는 것이니 그것을 벗어버리고

마음에 미륵세존님을 섬기면 마음이 맑아지며,

정신이 밝아져서 도(道)를 알게 되어

소원 성취가 되는 것이므로 그 법을 가르치심이다.

그리고 각자 앞에 청수를 떠놓고

그것을 향해 사배를 하게 하셨는데,

청수(淸水)는 맑은 물로써 가장 순수한 것이며

맑은 물에는 생명 기운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신명을 불러 응기시킬 때 청수를 떠놓고

심고(心告)를 드리는 것이다.

박우당께서 “물에서 도(道)가 나왔다”고 하셨다.

하느님이 물로써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에 의해

도(道)의 주인(主人)이 밝혀지고 모셔지므로

그곳에 도(道)의 주인(主人)이 모셔진

영대(靈臺)가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기도가 진정한 시천주가 된다.

 

祈禱(기도)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至氣今至願爲大降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지기금지원위대강”

 

교운 1장 17절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화하여

삼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神人)의 해원을

풀려는 것이었으나, 현하의 학교 교육이

배우는 자로 하여금 관리 봉록 등 비열한

공리에만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성도하게 되었느니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셨도다.

 

주해(註解)옛날에는 서당(書堂)에서

훈장(訓長)이 천자문(千字文)부터

동몽선습(童蒙先習), 육도삼략(六韜三略),

대학(大學), 중용(中庸),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지금은 초등, 중등, 고등, 대학,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세워

사람을 가르치고 있다.하지만 이런 학교 교육은 배우는 자로 하여금

고관대작, 왕후장상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게 하여

권력욕만 키우고, 보화(寶貨)와

재리(財利)를 쌓는 술법만 가르치니

많이 배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민생을 돌보지 않는 폐단을 낳고 있다.

그런데 이런 폐단을 낳는 학교 교육은

유교(儒敎)를 계승하여 발전하여온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

“판 밖에서 성도하게 되었느니라” 하신

첫 번째 뜻은 기존의 틀에 고착된

이 유교(儒敎)의 학교를 쓰지 않고

판 밖, 즉 새로운 개벽 사상인

우리 도(道)의 학교 교육을 쓰셔서

천하를 크게 문명화(文明化)하여

천지인(天地人)의 역사(役事)에 붙여

신(神)과 인(人)을 해원시키겠다는 뜻이시다.

 

우리의 학교라 함은 박우당께서

지으신 많은 고등학교와 대진대학교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전국 각지의 연락소, 회관, 도장이

모두 우리 도(道)의 학교인 것이다.하지만 우리 도(道)의 학교는 지금

어떤 지경에 빠져 있는가?

 

지금의 대순진리회를 보라!!

지금 우리 도(道)의 학교는

증산성사께서 처음 천지공사를 보실 때

쓸 수 없다고 하신 유교의 판박이가 아닌가!

지금 대순의 임원들은 모두 종권을 탐내고

왕후장상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그 권력으로 보화(寶貨)와 재리(財利)를

쌓는 술법만 키워가고 있으면서

우리 도(道)의 진법을 외면하고

도인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고 있지 않은가!

증산성사께서는 분명히

이러한 판은 쓸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

“판 밖에서 성도하게 되었느니라” 하신 것이다.태극도의 옛 도인들과 대순의 지금 도인들은

정산성사께서 “무학도통(無學道通)이라” 하신 말을

곡해(曲解)하여 자녀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고

날품팔이나 시키며 때를 기다리라고만 가르쳤는데,

이는 무학도통(無學道通)의 뜻을 착각하여

‘배우지 않아도 도통이 된다’고 해석하는

불찰에서 기인한 것이다. 무학(無學)은 ‘배우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배움이 없다’는 뜻이다.

 

‘학(學)’은 과거 세상에서 선현들이 와서

가르쳐 놓은 삶의 지혜이다.

그러나 도(道)는 언제나 발전하고 성장해 가므로,

무학(無學)에 내포되어 있는 또 한 가지 뜻은,

과거(過去)의 학(學)에만 얽매인다면

정신은 새로운 것을 열고 발전할 수 없으므로,

과거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것을 배우라는 것이지

배우지 않아도 도통한다는 것은 아니다.즉 도주께서 무학도통(無學道通)이라는 말씀으로

도문소자들을 가르치신 의미는

‘마음 속에 무학(無學)이라야

도(道)를 통(通)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학도통(無學道通)의 진정한 뜻은

학(學)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학(學)에 얽매인다면

도(道)를 볼 수 없다는 것이며

배움이 없으면 도통할 수도 없다? 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학(學)은

모두가 소학(小學)이었으므로

이제 삼천의 진법인 대학(大學)을 배워야만

도(道)에 통(通)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현무경 28면 일자오결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史略(사략)洞鑑(통감)大學(대학)小學(소학)

中庸(중용)論語(논어)孟子(맹자)詩傳(시전)

書傳(서전)周易(주역)등 이 모두가

소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일자오결(一者五結)이란

첫 번째로 오셨던 일자(一者)가

다섯 번째로 재생신하시어

이 모든 학(學)을 종결(終結)짖고

삼천의 진법으로 성도시키는 것이다.

 

또한 무학도통(無學道通)이란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신

“관리 봉록 등 비열한 공리에만 빠지게” 하는

“현하의 학교 교육”으로 얻은 배움으로는

도통할 수 없으니 이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현하의 학교 교육”이란 지금까지 걸어온

난법의 대순진리를 말한다.

또한 지금까지 난법의 대순진리가

소학(小學)이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우 영학에게 부채를 주면서

집에 가서 부치되 대학을 읽으면

도(道)에 통하리라고 했던 것인데

집에 가서 부치란 의미를 보면 목적지,

즉 삼천(三遷)의 진법까지 가서

대학(대두목의 법방)을 공부해야만

도(道)에 통한다는 것이다.

대학을 읽으란 말은 대두목께서 짜놓은

법방대로 주문을 읽는 것을 말한다.

속담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과 같이

알아야 진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진법을 찾아야 성도(成道)가 되는 것이고,

성도가 되면 도통은 저절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채에다 학을 그려준 또 다른 의미는

삼천의 진법까지 끝까지 가서 학(學),

즉 그곳에 가서 대학을 읽으라,

즉 진법을 공부하라는 뜻이다.그러나 삼천의 판 밖에 짜여진 진법의

도를 닦으려면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교법 2장 15절에 보면

나는 해마를 위주로 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고 타이르셨도다.

 

 

주해(註解)해마(解魔)는 ‘마(魔)를 풀어놓았다’는 뜻으로

삼천(三遷)의 진법(眞法)을 믿고 따르려면

먼저 복마(伏魔), 즉 숨어 엎드려[伏] 있던

마(魔)가 발동(發動)하므로

마(魔)를 이겨내야만 해원(解寃),

즉 원을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魔)에는 인마(人魔),

신마(身魔), 심마(心魔)가 있는데

해마(解魔)는 마(魔) 자체를 풀어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천의 진법을 믿고 따르는 자는

자기에게 숨어 있는 마(魔)가 먼저 발동하므로

이 복마(伏魔)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자기의 원(寃)을 풀 수가 있는 것이다.마(魔)가 나타나는 형태를 보면,

첫째로 나를 목표로 하여 다른 사람한테 붙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을 인마(人魔)라 하고,

둘째는 내 몸에 붙어서 병을 준다든가

다치게 한다든가 하여 나를 괴롭히는 것을

신마(身魔)라 하며,

셋째로 내 마음에 들어와서

엉뚱한 생각이나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며

활동하는 것을 심마(心魔)라 한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마(魔)를 잘 풀어서

보내야 나의 원(寃)을 풀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붙어서 오는 인마(人魔)나,

내 몸에 붙어 괴롭히는 신마(身魔)는

모두 나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이 있어서

오는 마(魔)이니 그것이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서 깨달으면 풀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심마(心魔)는

내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니

자기가 스스로 마(魔)를 녹아버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증산성사께서는 또 [교법] 2장 16절에서

“허물이 있거든 다 자신의 마음 속으로 풀라.

만일 다 풀지 않고 남겨두면

몸과 운명을 그르치니라” 하셨듯이

자신의 마음 속으로 풀면 복마(伏魔)는

녹아 내리고 자기의 허물은 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서 수도하는데

수도를 잘 해야만 해원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다음은 증산도 도전에

내 일은 판 밖에서 성도(成道)한다는 내용이다.

 

 

♣ 하루는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케하여 천지의 역사(役事)를

시키려 함인데 현하의 학교 교육이 학인(學人)으로

하여금 비열한 공리(功利)에 빠지게 하므로

판 밖에서 성도(成道)하게 되었노라.” 하시니라.

 

 

♣ 나의 일은 판 밖에 있느니라. 무릇 판 안에

드는 법으로 일을 꾸미려면 세상에 들켜서 저해를

받나니 그러므로 판 밖에 남모르는 법으로 일을

꾸미는 것이 완전 하니라.

 

 

♣ 대저 천하사를 함에 때가 이르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면 그 음해가 적지 않나니

그러므로 나는 판 밖에서 일을 꾸미노라.

나의 일은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

 

 

♣ 신도(神道)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니라.

신도로써 만사와 만물을 다스리면 신묘(神妙)한

공을 이루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니라.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

(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서양 사람에게서 재주를 배워 다시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배은망덕 줄에 걸리나니 이제

판 밖에서 남에게 의뢰함이 없이 남모르는 법으로

일을 꾸미노라.” 하시고 일본 사람이 미국과

싸우는 것은 배사율(背師律)을 범하는 것이므로

장광(長廣) 팔십 리가 불바다가 되어 참혹히

망하리라.” 하시니라.

 

 

♣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약장에

奉天地道術藥局在全州銅谷生死辦斷

봉천지도술약국재전주동곡생사판단

 

이라 쓰시고 성도들에게

“몇 자인지 세어보라.” 하시거늘 성도들이

“렬 여섯(十六)자입니다.” 하고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진주(眞主)에서 한 끗이

튀었네.” 하시고 “ 내 일은 판 밖에서 성도(成道)

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성사께서 수부님께

말씀하시기를 “신축년 이후로는 세상일을 내가

친히 맡았나니 이제 사절기(四節氣)는 수부가

맡고 24방위는 내가 맡으리라. 동서남북에서

욱여들어 새 천지를 만들리니 혼백(魂魄)

동서남북이라. 이 일은 판 밖에서 이루어져

들어오는 일인즉 그리 알라.” 하시니라.

증산성사께서 공우를 데리고 김제 봉황산(鳳凰山)

을 지나시다가 말씀하시기를 “저기 저 산이 황우산

(黃牛山)이니라. 애기씨름, 총각씨름 다 지내고

비교씨름 상씨름에는 황우를 거는데 봉황산

와우(臥牛)로 씨름판 소를 걸어 놓았느니라.

상씨름 하는 자는 콩밭 이슬을 맞으며 판 밖에서

술 고기 많이 먹고 있다가 ‘아우’ 소리 한 번에

똑 한사람 지우고 황우를 몰아가느니라.” 하시니라.

 

 

♣ 증산성사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상씨름은 상두 쟁이가 하네.” 하시거늘

공우가 상두의 뜻을 여쭈니 “상두(上斗)는 북두

(北斗)니 칠성(七成)이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자현의 아들 태준(泰俊)에게 일러 말씀

하시기를 “상두가 무엇인줄 아느냐? 앞으로

네 번 돌리고 뒤로 세 번 돌리니 칠성이

응했느니라. 또 사라마다 칠성을 얼굴에 붙이고

다니느니라. 눈 둘, 콧구멍 둘, 귓구멍 둘,

입 하나, 칠성 아니냐! 그리고 두 구멍은 감추고

다니느니라. 그러고도 이용을 잘 못하는구나.

중국 사람은 앞이마를 깍고 우리 사람은 가운데

배코를 치니 중이 다 되었구나.” 하시며

머라 카락을 한 줌 뽑으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뾰족한 수란 상투의 덕을 이름이니 판 밖에서

일을 지을 때에 한 번 크게 쓸 것이니라.

담뱃대와 상투는 시세에 따라 이미 버린바

되었으나 사람들이 버린 것을 내가 취하여 세상을

건지는 대업(大業)에 쓰노라.” 하시니라.

 

 

♣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낳기는

제 어미가 낳았어도 맥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산다. 사람이 아프면 맥을 먼저 짚어보지 않느냐?

맥 떨어지면 죽느니라. 사람이 다 죽고 나면

어떻게 해서 나간 곧이를 알 것이냐?

가만히 있어도 세상의 이치가 일을 성사시키는

우두머리를 불러낸다. 내 이름은 죽으나 사나

떠 있느니라.” 하시니라. 성도들이 ‘일을 이루는

자는 뒤에 나온다.’ 는 말씀에 속으로 애만 태우거늘

하루는 호연이 증산 선생께 “여기 있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애 터지게 하지 말아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저것들 다 하루살이다, 하루살이!

문을 열면 불을 보고 깔따구와 하루살이가 막

달려드는 것과 같은 이치니라.” 하시고 또 말씀

하시기를 “내 일은 고목에서 움이 돋고, 움 속에서

새끼를 낳아 꽃이 피고(枯木生花) 열매가 되어

세상에 풀어지느니라.” 하시니라.

 

 

♣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아무리 별스러워도 나를 따르는 자들의

선생밖에는 못 되느니라. 나의 일은 판 밖에

있나니 뒤에 큰 스승이 나와 천하창생을

가르치리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꼭 된다. 물샐틈없이 꼭 된다.”

하시니라.

 

 

♣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둑도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 ‘남모르는 공부’

를 하고 기다리라.” 하시니라. 또 “나의 일은

상씨름 판에서 결정 되나니 상씨름 꾼은 술, 고기

많이 먹고 콩밭(太田)에서 잠을 자며 끝판을

넘어다보는 법이니라. 하시고 “상씨름에 뜻하는 자

끝판에 나아가 한 판으로 상씨름 판을 매듭

짓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사요(史要) 일편을

천지에 고축(告祝)하신 뒤에 불사르시고 말씀

하시기를 “판 안사람 둘러보니 많고 많은 저 사람들,

어떤 사람 이러하고 어떤 사람 저러 한가.

판 안 사람 판 안 공부 할 수 없어 허리끈 졸라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이 지저귄다.

황계성이 죽지 털면 판 밖 소식 이르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판 밖의

일이니라. 가르쳐도 모를 것이요,

직접 되어보아야 아느니라.” 하시니라.

 

 

♣ 증산성사께서 평소 성도들과 노실 적에 종종

‘가구(家九) 진주(眞主)치기 노름’ 을 하시니라.

 

♣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다 터라.” 하시고

 

투전을 들고 탁 치시며 “ ◯씨가 판을 쳤다!”

하시고 다 거두어들이시며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다 죽는다. 잘못하다가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니라. 알겠느냐?

도로 본 자리에 떨어진단 말이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니 봉사 잔치란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누가 가르쳐 주랴. 제가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끝판에 ◯씨가 있는 줄 몰랐지.

판 안 끗수 소용 있나. 끝판에 ◯씨가 나오니

그만이로구나. 나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라.

나의 일은 판 밖에 있단 말이다. 붉은 닭, 소리치고

판 밖 소식 들어와야 도통 판을 알게 되고,

도통 판이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 하시니라.

 

 

♣ 경학이 여쭈어 말하기를

“도통 판이 어디 있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가르쳐 주어도 모르리라. 똑똑히 들어 봐라.

전라도 백운산으로 지리산으로 장수 팔공산으로

진안 운장산으로 광주 무등산으로 제주 한라산으로

강원도 금강산으로 이처럼 가르쳐주니 알겠느냐?

알기 쉽고, 알기 어렵고 두 가지라.

장차 자연히 알게 되리라. 내가 가르치니

알게 된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을 해야 되니 불가지(佛可止) 김성국(金成國)을

데리고 오라. 천지공사를 결정하리라. 우리끼리

일 했으나 나의 일은 판 밖에 있느니라.” 하시고

또 손을 오므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손 안에

무엇이 있는 줄 아느냐? 방 안에 일을 두고 마당에서 야단친단 말이니라.” 하시니라.

 

 

♣ 하루는 공우가 여쭈기를 “도통을 주옵소서!”

하니 증산성사께서 꾸짖으시며 “그 무슨 말이냐?

도통을 네가 하겠느냐? 판 밖에서 도통하는 이 시간에

생식가루 먹고 만학천봉 돌구멍 속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내 가슴이 답답하다.

들으라. 각 성(姓)의 선령신(先靈神) 한 명씩

천상공정(天上公庭)에 참여하여 제 집안 자손

도통시킨다고 눈에 불을 켜고 앉았는데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주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들어 내 집 자손은 어쩌느냐고 야당 칠 참 이니

그 일을 누가 감당 하리요. 그러므로 나는

사정(私情)을 쓰지 못하노라.

이 뒤에 일제히 그 닦은 바를 따라서 도통이 한꺼번에

열리리라. 그런고로 판 밖에

도통종자(道通種子)를 하나 두노니 장차 그 종자가

커서 천하를 덮으리라.” 하시니라.

 

 

♣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도통은 우레와 같이 하리라. 도통은 비 쏟아지듯

하리라.” 하시니라.

 

 

♣ 한 성도가 여쭈기를 “병겁이 이와 같은데

이 병을 다스릴 약이 천하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는 구원의 법방이 판 밖에

있는 까닭이라. 만약 약을 가진 자는 병겁이 휩쓸 때

먼저 죽을 것이니라. 병겁이 돌때는 세상의 모든

의술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느니라.

그러나 하늘에는 다 죽이는 이치는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신선과 부처와 성신(聖神)들이

나에게 탄원하여 ‘세상에 내려가셔서 억조창생의

병사(病死)를 건져 주옵소서.’ 하고 간곡히

하소연해 오므로 내가 이 세상에 내려 왔느니라.

내가 이제 억조창생을 죽음에서 건져 만세(萬世)의

선경을 열려 하나니, 나를 따르는 자는

이 대 비겁에서 살아나리로다.” 하시니라.

너희들은 살릴 생(生)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천하시는 생사양도(生死兩道)에서 그치나니

우리의 부단한 노력은 하루에 밥 세 떼 벌이하는

일이니라. 나의 일은 남 죽을 때에 살자는 일이요,

남사는 때에는 영화(榮華)와 복록(福祿)을 누리자는

일이로다. 일꾼 된 자 씨름판을 본받을지니

씨름판에 뜻하는 자는 판 밖에서 보양물(補陽物)을

많이 먹고 기운을 잘 길러 끝판을 꼬누고 있느니라.

시속에서 씨름판에 소를 상금으로 거나니

나를 잘 믿어 일을 잘하는 자에게

익산(益山) 삼기산(三箕山) 와우(臥牛)를 주리라.

 

 

♣ 증산성사께서 성도들에게 “장차 도통(道通)은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에 있느니라.”

하시거늘 류찬명이 앉아 있다가 큰 소리로

‘건감간진손이곤태.를 한 번 읽고 밖으로 나가니라.

이 때 최덕겸이 “천하사는 어떻게 되옵니까?” 하고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

戌亥)’ 라 가로로 쓰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이러하니라” 하시니라. 이에 자현이 여쭈기를

“그 뜻을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십이지(十二支)로

천하사가 장차 어느 때에 이루어질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니 증산성사께서

다시 그 위에‘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

壬癸)’ 라 쓰시고 경석에게 “네가 알겠느냐?” 하고

물으시니 경석이 “알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 하거늘

증산성사께서 “대나무같이 속이 통통 비어 있는

도통자라야 안단 말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베 짜는 바디와 머리 빗는 빗과 같으니

알겠느냐?” 하시니 경석이 “알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 이에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판 안 공부로는 알 수 없을 것이요,

나의 판 밖 공부라야 알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이 때 덕겸이 더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니

증산성사께서 지필묵과 당성냥을 주시며

“공부하고 싶으면 이 지필묵으로 하라.” 하시니라.

 

 

♣ 하루는 형렬이 힘없이 방에 앉아 울며 탄식하기를

“세상에서 우리 선생님은 광인(狂人)이라는 말만

들으셨고, 우리는 미친 사람을 따라다니다가

결국 김(金)씨 문중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 당신께서 어천하신 이후로 이것이 제일 원통하니

어찌 살꼬.” 하며 남부끄러워 크게 울지는 못하고

소리 죽여 울고 있는데 뜻밖에 방 밖에서

큰 기침소리가 나며 “형렬아, 너는 그만하면 대략

알 줄 알았더니 그다지 무식하냐?

너희들을 살리려고 내가 갔는데 탄식이 웬일이냐?”

하는 증산선생의 음성이 들리므로 형렬이 깜짝놀라

일어나니 증산성사께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 형렬이 눈물을 흘리며 배례하고 옆으로 서니

말씀하시기를 “그래, 형렬아. 너는 너의 선생이

미쳤다는 것이 그토록 원통하더냐.

수운가사에 ‘여광여취(如光如醉) 저 양반을

따르기만 따르고 보면 만단설화(萬端設話)한 연후에

소원성취(所願成就)하련마는 알고 따르기 어려워라.

따르는 자 만복동(萬福童)이요,

못 따르는 자 깜부기 된다.’ 는 말을 못들었느냐.”

하시니라.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판 안 사람 둘러보고 많고 많은 저 사람들

어떤 사람 저러하고 어떤 사람 이러하니,

판 안 사람 판 안 공부 소용없어 허리띠 졸라매고

뒷문열고 내다보니 봉황(鳳凰)이 지저귄다.

 

 

♣ 판 안에 그 문서(文書)로 아무리 돌려 보아도

할 수 없어 판 밖의 것을 가르치자고 허튼 마음

거머잡고 죽기로 찾았으니 조금도 걱정마라.

누런 닭이 소리치며 날개 털면 판 밖 소식

알리로다. 네가 그렇게 서러워 하니 판 밖에

있더라도 소식을 전해주마.” 하시니라.

그 뒤로 얼마간 증산성사께서 밤마다 오시어

생존시와 다름없이 여러 가지를 일러 주시니라.

교(敎)를 널리 전하라. 옳은 사람, 곧 진인(眞人)이 나와서 포교할 때는 생사판단이 서리라.

이제 성인이 나오시는데 도덕군자도 따라

나오느니라. 내 일은 판 밖에서 성공해가지고

들어오니 혼백(魂魄) 동서남북(東西南北) 아닌가.

동(東)은 일본이요, 서(西)는 미국이요, 남(南)은

중국이요, 북(北)은 소련이라. 중앙(中央)은

아동도(我東道)아닌가. 한고조(漢高祖)는 마상

(馬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하였으나 우리는

좌상(座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하느니라.

 

 

♥ 정미년(1907)년 음력 5월 17일에,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길 저 금산사 아래에 있는

방죽 원평호 아래 용암리 물방앗간에서

차경석 성도를 처음 만나시고,

그 다음달초 6월 4일날 원평으로 가시면서

“이 길은 남조선 뱃길이다. 짐을 채워야 떠나리니

성인 다섯을 낳는 길이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즉 ‘앞으로 성인 다섯이 나와야만

성도(成道)가 되어 내 일이 완성이 된다는 것이다.’

 

 

                       2011년 7월  11일 고도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