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법(眞法) 진리

[부록] 韓(한)의 본뜻은 井幹(정간)

고도인 2010. 12. 7. 21:36

[부록] 韓(한)의 본뜻은 井幹(정간)

 

韓(한)은?

 

"韓"이라는 문자의 본래 뜻(字源자원)은

"井幹정간(우물 에운 담)"입니다.

"井정 + 幹간"의 조합으로서

"간(幹)"이 성부(聲符)가 되고,

"정(井)"이 의미요소(義符)가 됩니다.

 

"井幹정간(우물 에운 담)"은 말 그대로

우물을 보호하기위해 둘러치는 난간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井(우물)"은

"民"과"國"을 상징하는 고대어이며

"井幹정간"은

"井정(백성/국가)을 지키는 난간(幹)"

즉 "칸(韓=汗khan)"을 의미합니다.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 이지만

정착농경을 하는 영역국가가 생기기 이전에는

수렵유목을 하는 이동국가의 시대였고

그 시대에는 "民민(백성)"이 곧

"國국(국가)"이므로 "民민"과 "國국"이라는

개념이 따로 생겨 날수 없습니다.

때문에 유목민족인 투르크(돌궐)와

몽고어에서'국가'를 의미하는 단어

"일(il)"과 "울루스(ulus)"는

'영역'보다는 이동 유목하는 그 사회적구성원

(유목민 조직) 전체를 의미합니다.

 

고대전승에 의하면

동양에서 영역국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염농(炎農)의 시대부터라고 하며

<환단고기/삼성기下>에 보이는

"與炎農之國劃定彊界여염농지국획정강계

(염농의 나라와 강토의경계를 정했다)"라는 기록은

바로 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國국"과 "民민" 이라는 문자는

이보다도 훨씬 후대에 생겨난 것이고,

"國"과 "民"이라는 文字(문자)가

사용되기 이전에는 당연히

"정(井)"으로써 그 뜻을 표현했습니다.

 

정(井)"이 "民민/國국"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이동유목민이라도 물(水).즉

우물(井)을 중심으로 그 취락이 형성되고

이동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고대 어법을 고스란히 나타내 주는 예가

바로 <환단고기/삼성기上>에 보이는

"鑿子井女井於天坪착자정여정어천평

(천평에 子井자정과 女井여정을 뚫었다)"와

"劃井地於靑邱획정지어청구

(청구에 井地정지를 그었다)"라는 표현입니다.

"井地정지를 그었다"는 말은 곧

"백성/국가의 토지(井地)를

획정했다(열었다)"라는 뜻입니다.

 

염농(神農신농)이래로

'요(堯)' '순(舜)' '우(禹)'등에게는

모두 "신농정(神農井)" "요정(堯井)"

"순정(舜井)" "우정(禹井)"이라는

"우물(井정)"의 전승이 나타나며

신라 시조탄강의 성지를 또한

"나정(羅井)"이라 부릅니다.

 

<삼국사기> 백제 온조 왕조에 보면

"王宮井水暴溢왕궁정수폭일

(왕궁의 우물물이 넘쳤다)"라는 기록이 보이고

이를 일자(日者)가

"대왕이 발흥할 조짐"이라 풀이하는데

기실 이것은 이듬해

마한(馬韓)을 병탄할 조짐을 말한 것으로서

"井정(우물)이 넘친다"는 것은

정확히 "국가(井정)가 발흥할

조짐"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삼국시대 토기나 동기 등에서

흔히 발견되는"井정"자 표시 역시

그 물건이 "국용기물"임을 나타내는

우리 고유의 기호로서,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기 전까지는

오직 고구려만이 사용 할 수 있는

"國국"의 대자(代字)였습니다.

 

(소설가 최인호씨는 이 井정자 표시를

백두산의 '천지(天池)'로 해석해서

"왕도의 비밀"이라는 소설 한편을 쓰고

다큐멘터리도 찍었더군요)따라서

"한(韓)"은 "井幹정간"의 의미로서

"백성/국가를 지키는 난간"이며

고대 알타이어에서"국왕(王)"을 의미하는

일반명사 "칸(khan汗,干)"과 동일어원입니다.

우리말 "간수하다" "간직하다"의

"간-"역시 "kham(汗간=王왕)"을 어원으로 하며,

"건사하다"의 "건-"은

"臣신"의 알타이고

대음 "kheom(컴>컨)"에서 나온 말임,

 

즉 칸(王왕=韓한)"은

백성(井정)을"간수하는 자"이며,

"컨(臣신)"은

백성(井정)을"건사하는 자"라는 뜻임)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한(韓)"은

그 문자 본연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고대 국호 "三韓삼한"에서 취한 말입니다.

 

그런데 "삼한(三韓)"의 기원은 역시 단군왕검의

"조선삼한(朝鮮三韓))"에서 유래된 것으로,

단군왕검은 "조선(朝鮮)"을 세운 후

국가를 "삼한(三韓)"으로 하여금

"분조관경(分朝管境)"하여 다스립니다.

여기서 "삼한(三韓)"은

"번한(番韓)" "진한(眞韓)""마한(馬韓)"을 말하며

"분조관경(分朝管境)"은

"조정을 나누어 국가를 다스린다."는 뜻인데,

즉 세 명의 "칸(王)"으로

나라를 나누어 다스린다는 뜻이고

단군(檀君)은

그중에 진칸(眞韓)에 취임하게 됩니다.

이 분조관경의 체제는 천여 년을 이어가다가

고등(高登)이라는 영웅의 출현으로 인해

"분권관경(分權管境)"의 체제로 바뀌고

결국 국가의 분열로 이어지게 되는데

아마도 이로 인해 "三韓삼한"은

후세사람들에 의해 국호로 인식되게 된듯합니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고대어로 직역하면

"대칸민족(大汗民國=大王民國)"이라는

시대착오적 의미로 분석되는데

장차 통일조국의 국호는

좀 더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국호로

정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중국 춘추시대에도

삼진(三晉)중에 "한(韓)"나라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韓)"이라는 문자의 어원 자체가

중국어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알타이어라는 사실,

그리고 중국어와 한자(진서)는

전혀 별개의 기원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지적해 놓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를 한국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뜻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옛날 배달국 이전에 환국이 있었고

이때의 '환'과 지금의 '한'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환'은 '한의 옛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한국, 환국은

우리말을 한자로 표시한 것에 불과합니다.

한은 순수 우리말입니다.

 

한이라는 말속에는

매우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크다(한껏, 한길. 한가위, 한꺼번에)

2. 같다(한결같이, 한줄기, 한가지, 한배 타다)

3. 중앙(한가운데, 한복판, 한밤중, 한겨울)

4. 오래(한참만에, 한동안)

5. 많다(한량없이, 한없이)

6. 전부(한세상, 한얼)

7. 밝다(환하다)

8. 조금(한풀죽다, 한물가다, 한구석)

9. 바람(한이 맺히다. 한을 풀다)

10. 대략(한 이틀)

11. 제한(한정판, 한해서)

12. 외부(한데 가서 놀아라)

 

 

이 밖에도 많은 뜻이 있으나 분명한 것은

어디서나 부담 없이 사용되며,

모든 것을 포함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중에서 한국의 '한'은

크고 밝고, 가운데, 중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은

크고 밝고 중심인 나라'가 됩니다.

 

옛날의 한국(桓國)은 이러한 나라였으며

지금의 한국(韓國)은 앞으로 이런 나라가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옛날 홍익인간의 정신이 드높았을 때

우리나라는 크고 밝고 중심이 되는 나라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홍익인간의 정신을 되살려

홍익의 문화를 만든다면

진정한 '한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이 고유어로서 가지는

주요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한'은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말로

보통 서양에서는'칸',

동양에서는'한'(일본에서는'간')으로 쓰이고

한반도에서도 '한'으로 사용합니다.

 

① 하늘[天]을 의미하는 경우 -

한인, 한웅 등, 한우물(하늘에 제사 지내는 우물)

 

② 우두머리[首長]를 의미하는 경우 -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마립간)

 

③ 크다[大]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

한밭[大田], 한길[大路] 등

 

④ 하나[一]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

한 나라 (하나의 나라), 한 아버지

 

⑤ 같다[同]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

한 핏줄, 알타이는 한 핏줄, 한 겨레 등

 

⑥ 바르다[正]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

'한복판'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韓國)에서 사용된 한국이라는 말은

위의 여러 가지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상고사학회의 박인수씨는 우물 정(井)자 문양이

고구려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백(河伯)의

후손임을 표시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다.

고구려는 유목민 중에서 가장 먼저

물가에 터전을 잡고 나라를 세웠다.

하백(河伯)은 물의 신(神)으로 유목생활을 하던

고대민족에게는 하느님 같은 존재이다.

그런 뜻에서 우물정(井)은

천상(天上)의 궁궐을 뜻하기도 한다.

경주에서 발견된 호우(壺玗)의 글을 해석해 보면

" 乙卯年國 岡上廣開 土地好太 王壺玗 十,

을묘년(乙卯年) 국강상(國岡上) 광개토지

(廣開土地) 호태왕(好太王) 호우(壺玗) " 가 된다.

 

즉 ‘고구려 19대 광개토왕이

돌아가신(412년) 3년 후인 을묘년(415)

만주 집안 국강상에 영원히 잠드신

광개토왕을 기념하는 항아리’라는 말이다.

(호우총 발굴보고서. 1948년).

 

맨 끝의 ‘十’ 표는

무덤의 주인이 좋은 곳에 가라는 뜻으로

새긴 문양으로 사람이 태어난 곳

(자궁, 무극의 자리)을 뜻하며

넓게는 우물정(井) 과 같은 의미 이다.

 

 

호태왕(好太王)의 성(姓)은 정(井)씨이다.

 

[井정]或曰黃帝所作(혹왈황제소작)

 

※정(井)자가 들어있으면

황제처소에서 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姓]虞大夫食邑於井. 謂之丘. 後爲氏.

[성]우대부식읍어정. 위지구. 후위씨.

 

※성씨이다.

우대부식읍지가 정(井)이란 곳이다.

 

즉 128가호(家戶)가 되는 취락소(丘)의 이름을

후에 정(井)씨 성(姓)으로 호칭하게 되었다.

 

[黃帝] 古帝名. 姓 公孫. 生於軒轅之丘.

[황제] 고제명. 성 공손. 생어헌원지구.

國於有熊. 故亦曰有熊氏.

국어유웅. 고역왈유웅씨.

 

※황제는 고대의 임금 이름이다.

성은 공손이다.

태어난 곳이 헌원이란 취락소(丘)여서

고대의 원(轅)씨라고도 하였다.

이 나라에는 곰이 살고 있는 연유로

또한 웅씨라고도 호칭하였다.

[複姓]路史云. 軒轅帝初姓. 公孫.

[복성]로사운. 헌원제초성. 공손.

 

※두 글자로 된 성이다.

노사(路史) 즉 송(宋)나라 나필(羅泌)이 지은

책에는 헌원제(軒轅帝) 초성(初姓)이

공손(公孫)이라고 하였다.

 

※ 앞의 글을 체계화하면

황제(黃帝)의 성은 공손 원 웅씨라고 되어 있다.

이 황제소작(黃帝所作)이란 징표가

정(井)자라고 하였고

우대부식읍지가 정(井)인데

이 128가호가 사는 구(丘)부락의 이름인 정(井)이

후에는 성(姓)으로 호칭하게 되었다.

 

중국길림성 환인지방에서

정(井)자가 음각된 토기병이 나왔고

우리나라의 김해(金海) 예안리에서도

토기인 고기대배의 외부측면에

정자가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풍납토성에서도

정자명이 있는 토기병이 발굴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보다 결정적인 증거를 들면

생전에는 영락태왕이고

사후에는 위대한 왕 즉 호태왕의 위패를 씻는

욕기인 청동기 외부 저면의 관(款)자 위에도

우물정(井)자의 마크인 징표가

확실하게 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아

북부여의 17세손인 호태왕은

성이 정(井)씨이고 이 정씨의

궁부(宮府)에서 제작한 기물(器物)이기에

정(井)자의 징표가 각인되어 있다고 보는 바이다.

 

헌원(軒轅)은 지명(地名)인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이다.

진치신정현(秦置新鄭縣)이고 명청속(明淸屬)

하남개봉부(河南開封府)로 되어 있다.

 

※상시대(商時代)의 유물(遺物)이

많이(多量) 출토(出土)된 곳(處所)이다.

 

풍납토성은 낙랑군에 무너지다

 

'井'字가 들어 있으면

황제궁부(黃帝宮府)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대부(虞大夫)의 성(姓)을 후에는

井씨라고 호칭하였다고 되어 있다.

虞(우)씨 성을 가진 황제(黃帝)가 태어난 곳은

헌원지구(軒轅之丘)여서 고대에 원(轅)씨

또는 헌원(軒轅)씨 등으로 호칭하였다.

 

중국문헌에 의하면 황제(黃帝)는

지금부터 4256년전경의 현재의 하남성(河南省)

개봉부(開封府) 지역의 요왕(堯王) 이전의

군주(君主)이고 우(虞)씨 성인

순왕(舜王)의 선조(先祖)로 되어 있다.

이 우황제(虞黃帝)의 성씨가 변하여

井씨가 되었다는 역사적인 기록이다.

 

우씨황제(虞氏黃帝) 궁부(宮府)의 표징(標徵)이

들어있는 토기(土器)가 한반도의 풍납토성,

김해, 길림(吉林)지방에서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이런 토기들이나 청동기등을 제작한 사람들은

모두가 중국황제(中國黃帝)

우씨(虞氏)의 후예들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호태왕(영락태왕)계의

우왕종족(虞王種族)이 한반도로 진입하기 전에

기자계(箕子系)의 우왕종족이 먼저

한반도를 점거하였다는 사실이 되고

풍납토성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王)인

기준(箕準)이 통치한 마한(馬韓)의 것이고

이 풍납토성을 기원전후에 점령할 수 있었던

나라는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낙랑(樂浪)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광개토지호태왕의 성이 정(井)씨라는 근거

 

[井]혹왈황제소작(或曰黃帝所作).

 

*황제(黃帝BC2697-2597)는 헌원(軒轅)이란

구(丘)취락지(聚落地)에 살았다.

``재금하남신정현(在今河南新鄭縣)``

그래서 헌원씨(軒轅氏)라고도 하였고

궁궐(宮闕)에서 쓰는 기물(器物),

의복, 화폐 등도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그

러므로 정(井)자 표시(標示)가 있으면

황제소작이니까 궁궐용 기물이 되는 바이고

또한 정자(井字)는

황제의 이칭(異稱) 성씨(姓氏)도 된다는 뜻이다.

 

정(井)자는 성(姓)이다.

우대부식읍어정(虞大夫食邑於井), 후위씨(後爲氏).

 

*우대부 즉 순임금의 부임지가

정(井)이란 취락지(聚落地)이고

이 취락지의 정(井)이란 이름이 후에는

성씨(姓氏)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리치나 저리치나

정자(井字)가 들어있으면 정자(井字)는

황제의 성씨가 되는 바이고

정자(井字)표시가 되어있는 기물은

궁궐에서 제작한 궁궐용기물이 되므로

이 정자(井字)가 새겨진 기물이

사용된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의 성은

정씨(井氏)가 된다는 결론이다.

사원(辭源)에 의함.

 

 

                               *정(井)자 마크*

 

광개토대왕비와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호우,

중원 누암리 출토 제기(祭器) 등

각종 고구려 유물에서는

정(井)자를 새긴 유물이 발견 됩니다.

우물 정(井)은 사람이 태어난 곳,

북두칠성을 가리킵니다.

 

" 북두칠성은 배달국과 단군조선시대,

그리고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는 물론

고려와 조선의 별이었다.

고조선 시대에 만든 고인돌의 뚜껑돌 위에

이미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

특히 고구려 왕릉의 천장 벽화에서는

북두칠성의 형상이 다량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광개토대왕비 상단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호우,

중원 누암리 출토 제기(祭器) 등 각종

고구려 유물에서는 정(井)자도 함께 발견된다.

 

소설가 최인호씨가 96. 8 SBS가 방영한

「왕도의 비밀」에서

고구려의 상징 문양으로 제기한

우물 정(井)자는

북두칠성이 있는 곳을 나타내는 것이다.

 

최인호씨는 이 井자를

백두산 천지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井을 땅에 적용시킬 때는 맞을 것이나

하늘에 적용시키면

북두칠성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광개토대왕을 비롯한 고구려인들은

스스로를 하늘 북두칠성의 자손

즉 천손민족으로 적고 있다.

고려시대 고분에도

북두칠성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예언편 격암유록과 토정비결에서

말세 도탄의 위기에서 사는 방법으로

한결 같이 석정 水(石井: 돌우물 물)

또는 석정곤(石井崑)이 거론된다.

이 석정수는

바로 북두칠성의 정기가 고인 우물이다.

석정곤의 곤(崑)은 곤륜산의 약자다.

 

옛날 사람들은 북두칠성이

상조금궐 하부곤륜(上照金闕 下覆崑崙: 칠성경)

이라고 하여, 위로는 금궐

(호천금궐: 옥황상제가 계시는 곳)을 비추고

아래로는 땅의 중심인

곤륜산을 비추는 곳에 있다고 하였다.

 

이 곤륜산은 북두칠성의 정기가 비추어지는

지구 모든 산의 조종(祖宗: 아버지격)이다.

명나라 사람 주장춘은

곤륜산의 제4지맥의 왕기(旺氣)가

백두산 지맥을 통해 금강산으로 들어가

증산(甑山)이 모악산 아래에서 출현한다고 하였다.

(참고: 노중평저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

 

井(우물 정)자에 대하여

 

중국 최고(古) 한자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

井 은 한국을 뜻하는 형상 이라고 나온다.

 

[八家一井象 溝韓形 ?之象也 古者伯益初作]

[팔가일정상 구한형 ?지상야 고자백익초작]

8집에 우물이 하나 있는 모습이다.

[한(韓)]을 뜻하는 형태이고

우물에서 물긷는 [두레박]의 형상이다.

옛날에 백익(伯益)이 처음 만들었다.

 

이 말의 뜻은

                

이 모양은 한국을 뜻하는 형상.

이러한 모양이 원래 있었고 - 고대한국의 상징

(고구려 유물에서도 줄줄이 나오는 형태)

 

 

나중에 [순임금]의 신하였던 [백익(伯益)]이

 

                    

 

이러한 형상을 처음 만들었다는 것.

 

[井(정) -금문]

                      

 

 

 

 

                    

 

[井(정) -전서]

 

위와 같이 [井(정)]자의 고대형은 가운데에

[점 , ㅇ, ㅡ]이 있는 것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것들은 [태양]을 뜻한다.

 

즉 井 자 형태가 생겨난 곳(또한 많이 쓰이는 곳)

이 해 뜨는 곳 즉 동방(東方)이라는 표현.

즉 고대한국의 상징인 에다가

이 모양이 [해뜨는 동방(東方)]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중에

[순임금]의 뛰어난 신하였던 [백익(伯益)]이

이러한 형상을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점 찍힌 위 모습은

[백익(伯益)]이 처음 만들었다고

[설문해자]가 말하고 있는 것.

[순임금]은 원래 동이(東夷)민족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백익(伯益)] 역시 그렇다.

井 자형은 고대부터 한국의 상징 중 하나로서

그 명맥이 한(韓)으로 이어져 내려 왔다.

그래서 고구려도 이러한 형태를 즐겨 새겼다.

 

천관서(天官書)에 보면

“북궁(北宮)은 현무다”라는 대목이 있다.

즉 북두칠성을 현무라고 한다.

또한 북두칠성을 우물 井(정)으로 표현 한다.

그러면 현무(玄武)는

우물 정(井)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우물 정(井)은 우물귀틀 한(韓)으로

표현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현무경은 북두칠성을 말하는 것이며

현무경은 한(韓)이라고 할 수가 있다.

 

지금의 한(韓)씨는

고대에는 정(井)씨라고 밝혀졌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 한다.

‘한’을 한자로는 ‘韓’이라고도 쓰는데

‘한’은 ‘크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한’은 ‘우두머리’, ‘수장’을 뜻하기도 한다.

 

고조선시대의 군장들을 ‘한’이라 불렀다.

세 명의 ‘한’들이 다스린 나라라고해서

‘삼한(三韓)’이라 칭했던 것이다.

신라의 왕명이었던 거서간(居西干),

마립간(麻立干)도 모두

‘한’을 의미하는 명칭이었다.

몽골어에도 군장을 ‘한(汗:칸)’이라 하였는데,

칭기즈칸(成吉思汗:Chinghiz Kha Khan)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몽골어가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계통이기 때문이다

 

우물 정(井)자는 북두칠성이 있는 곳을 나타낸다.

북두칠성은 일곱 개의 별이 아니라 9개의 별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잘 볼 수 없는

2개의 별이 더 존재하고 있다.

이 별은 칠성의 첫째별인

천추성의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좌측에 있는 별을 보성(輔)이라 하고

우측별을 필성(弼)이라고 한다.

이 두 별을 합쳐서 좌보우필성이라 한다.

이 별은 천추성을 보필하는 별인데

여기서 우리는 보필(輔弼)이라는

단어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단군 이후 우리 역사상

북두칠성을 가장 숭상했던 나라는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북두칠성을 나라의 징표로 삼았다.

임금 스스로 자신을 북두칠성의 화신으로 생각하여

국강(國罡)이라고 하였다.

 

아마 우물 정(井)자가 들어 있는 토기들은

칠성님께 제를 지낼 때 사용하였던

토기들이 아닌가 한다.

일본에서도 우물 정(井)자가 새겨져 있는

토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고구려군 이 일본을 정복하여 그곳에서

칠성님께 승리에 대한

감사의 제를 올렸다고 볼 수가 있다.

 

북두칠성을 주술적인 말로

‘괴강(魁罡)’이라고 하는데

‘괴강’의 괴(魁)자는 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귀(鬼)자와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두(斗)자가

결합한 문자라고 한다.

즉 칠성의 신명에 잡혔다는 뜻이다.

‘괴강(魁罡)’을 ‘국강(國罡)’으로 고쳐 부른 분은

바로 유명한 광개토대왕이라고 말한다.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괴강(魁罡)의 강(罡)은

사정(四政)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사정이란 자(子:정북), 오(午:정남),

묘(卯:정동), 유(酉:정서)의

네 방위를 말하는 것으로

천지를 바르게 지키고 세운다는 뜻이다.

 

즉 북두칠성의‘천추’ ‘천선’ ‘천기’ ‘천권’을

말하는 것이며 이 네 별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공간을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 하는데

이는 똑바른 정사를 의미한다.

또한 선기옥형이

자시(子時)쯤 부터 땅을 향하게 된다.

이때부터 땅위의 모든 물은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게 되는데

북두칠성 정기를 많이 받고 적게 받음에 따라

물의 맛과 질이 달라진다.

 

밤에 별과 달의 빛을 받고

새벽이슬에 젖은 물을 으뜸으로 치는 이유가

바로 북두칠성의 선기옥형의 기(氣)를 받은 물을

말하는 것으로 북두칠성의 기를 가장 많이 받는

자리를 천일생수(天一生水)하는 자리라고 한다.

이물을 수정자가 내린 북극수라고 하여

가장 좋은 물로 쳤다.

 

종가 댁에 우물이 집안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바로 북극수를 얻기 위함이다.

 

 

곰족(곰손)이란 천손의 또다른 표현이다.

일본에선 고려를 쿠마라고 읽는데,

 

쿠마는 곰을 이르기도 한다.

한국고어인 이들 언어로써

조선의 실체를 더욱 잘 유추해볼수 있는데,

 

곰=북극성-->북두칠성=자미성=천제가 사는곳이다.

그래서 고라는 글자가

태양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다.

태양숭배족인 우리가 신성시하던 북극성,

태양을 나타내는 글자 고와 북극성을 나타내던 곰.

곰은 고의 변형이다.

 

고구려의 구려가 실은 이 쿠마-곰이고,

흉노의 흉 또는 훈도 실은

이 쿠마-곰이던 구와 고의 변형이다.

 

부여의 여나

부여의 지배계급의 주류이던 여나

여의 분파인 흉노와

선비의 알-알지-을지나 다

쿠마-곰이던 려=이=마의 변형이다.

 

고로 곰의 후손인 조선인

(백민-밤하늘 제일 밝은 별,고로 인류의 어둠을

제거하고 문명을 창제한 민족-으뜸민족==>

원씨로 바꾼 북위황족 탁발씨나 원나라를 건국한

몽골족이 원을 쓴 이유=백민,백두민족이란 뜻)=

천인 신인 백민(밝달민족)=천손

 

자금성이라는 이름도

북극성과 그 주변의 별을 가리키는

자휘원(紫微垣)또는 자미성에서 나왔다.

 

곰족(곰손)이란 결론적으로

천손의 또다른 표현이다.

 

초사등 중국25사에서도

조선인의 후예로 말해지는 황제헌원조차 곰족이다.

황제는 유웅씨이고 공손씨로서

희수에 살아 희씨(또한 모용씨 또는 모씨)가 된다.

유웅은 말그대로 웅씨-곰씨==>곰족이라는 의미이며

공손은 곰씨의 후손인

곰손이라는 말로써 역시 곰족이라는 의미이다,

곰손이란 결론적으로 천손의 또다른 표현이다

인류에게 있어 곰자리로 일컬어지던 북두칠성은

인류의 빛이요 숭배대상이었고,

천제가 사는 곳 이었으며,

사람이 죽으면 또한 돌아가는 곳이자 천제를

비롯한 역대 조상들이 살고 있는 천상세계였다.

 

이들 곰족은 환웅천황족을 달리 부르는 표현인데.

한국인의 조상인 웅녀는

실은 천녀인 직녀의 다른 표현일 뿐이며,

마고할매이후의 9환의 시조이던

나반과 아만이 바로 견우와 직녀이며

환웅천황과 웅녀이다.(천신과 천녀)

 

태양족인 고이족(황제 헌원도 고이족의 한갈래로서

서융 화서족, 화서란 중화의 사위란 뜻으로, 당시

황제헌원은 염제신농의 6세손 신농유망의 사위로서

장인나라를 집어삼켰음)으로서

부여족의 한 갈래인 고주몽의 나라가

고려인 것은 고씨의 9려(동이9족=조선9족)로써

밝달민족(려=백민)이기도 하지만,

 

고려란 곰을 나타낸 발음인

고마-구마-쿠마이기 때문으로

국명 자체에 환웅천황족임을 표현한것이며,

자신은 천제에게 제를 지내는 천손족으로서

조상인 천제가 사는

북두칠성=자미성의 후예란 뜻이다.

또한 려(=여=부여,려=마)는

인류의 12조상(12환국)을 탄생시킨 그 마고성이다.

아~위대한 쥬신족(동이 조선)이여~~~~

 

또한 진나라와 신라가

조선의 하나인 진한으로서 진 또는 신인것은,

지금의 북극성인 작은곰자리 알파가

바로 북신 또는 북진이기 때문이다.

 

진또는 신으로 읽히는 진한의 진이란 글자이다.

고로 신라는 진라-진나-지나인 것이며

(지나의 새로운 나라 신라)

 

韩이란 글자와 汉이란 글자의 차이는,

韩이란 삼한이나 쥬신족등

공통성을 나타내는 글자에 주로 쓰이고,

 

汉이란 주로 그러한

한(韓)의 연방체제에 속한 특정지역의 독립성,

지방성을 나타내는 글자에 주로 쓰였다.

또한, 짝뚱한인 한족출현으로

한이 야만, 비열, 야비, 노예란 뜻을 갖아

비하성 언어로 폄하- 색한, 취한, 치한, 한간등

중국도 아시아각국도 동일하게 사용하였다.

 

예)한수, 한성, 한나라

(본래 주로 사천성의 일부인 한주를 중심으로

크게는 역시 현 사천성의 일부인 촉주와

감숙성과의 경계인 한중을 포함하여~)

 

한중-중국 섬서성 남부에 있는 도시,

한수 상류 북안으로 자고이래로 산세가 험악해서

먹자니 그저 그렇고 버리자니 아까운 지역으로

소문나서 촉지방에서 광활한 관중평야와

섬서등을 차지하기위한 요충지이기도 하다.

 

한주 유방==>촉차지=>한왕에 봉해져 한중차지.

유비-촉을 차지, 촉한건국.

왕건-촉을 차지, 촉국 건국, 패망,

한주(송악군)을 궁예에게 헌납하고

신하가 되었으나, 반란으로 고려건국.

촉은 초나라의 영토~~~

초의 직계 신라(노, 라씨~~~)

 

고구려와 고려의 [북극3성·북두칠성] 이

바로 조선의 3한을 나타낸 3신의 별자리로써,

 

조선이 3신1체의 동방천제사상을 가지고

조선을 3한9주천하(72개국~220여개국)로 나눠

삼한관경제를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들 3신을 보위하는 사명을

삼한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래서 9이는 9곰족이며 9천손족이고!~~~

-려-마==>구마=곰이므로

3한9주는 삼신의 9천손의 영토란 의미인 것이다.

 

용자리 알파별이 북극성이었던 5천여년전

용새인 삼족오를 용으로 숭배하던 민족 한민족~

 

한은 어디까지나 우리 고유의 「한」으로

상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조 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알타이어족들이「한」을 일반적으로

크다든지 우두머리라고 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몽고족이 나라의 왕 이름을 오고타이한,

몽케한, 쿠빌라이한이라고 불렀고

또 나라의 이름을 챠카타이한, 오고타이한,

깊챠크한, 일한 등으로 불렀다.

여기서 보는 왕과 나라 이름의

접미어(接尾語)「한」은 전부

크다든지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이 같은 「한」에 관하여 독일의 Karl Lokotsch가

그의 어원학 사전에서 말한 것을 보면,

「한」은 비단 동북아시아에 국한되어 씌어진

말이 아니라 동남 아시아 즉 파키스탄의

팥한(Pat-Han)과 같은 것을 비롯하여

동부 유럽에까지 파급되었다고 하였다.

즉 러시아말, 루마니아말, 불가리아말, 체코 말에

「한」(han)의 어원이 남아 있는가 하면

독일말, 불란서 말에도 그 흔적이 있다고 했다.

 

이 같은 「한」의 세계적 파급이

징키스칸에서 쿠빌라이한에 이르는

약 70년사이에 유럽과 아시아대륙에 걸친

광대한 대제국을 세우고 모든 문명 지역을

통일한데 그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동안 세계를 거의 다 누빈 「한」은

우리나라에서도 몽고족과 같이

크다, 우두머리다 라는 의미로 씌어졌다.

우선「한」은

한민족의 건국신화에 깊이 스며있었다.

건국신화의 주인공이 「한얼」신이다.

이 「한」은 크다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세 신이

큰 하나의 한얼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 신이라 함은 환인, 환웅, 한배검 이다.

이것을 「삼신」이라고 부른다.

이 삼신이 바로 한얼이 된다.

이 같은 한얼신을 모르면

한국의 개국역사를 알 수 없게 된다.

한얼신의 사상적 배경이

한민족의 순수한 정신적 뿌리인 「한」이다.

 

한얼 다른 말로

삼신에 대한 내용을 환단고기에서 본다.

아득한 옛날에 아래위와 사방도

구별할 수 없이 캄캄할 때

다만 하나의 밝은 빛을 비쳐 주는

삼신(한얼)이 하늘에 있었다.

주체(主體)는 일신이므로 개별적 신은 아니다.

그러나 작용상으로는 삼신이다.

이 한얼신은 만물을 발생시키고 세계를 통치하는데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형체는 볼 수 없으나,

저 높은 하늘에서 항상 밝은 빛을 보내주는

신비적 묘리를 보여주었다.

만물에 대한 길흉화복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길한 것을 땅에 내려 보내면서

나쁜 것을 막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더운 열을 발사하여

만물을 육성시키면서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

 

한민족의 개국 신화의 중심 내용은

주체의 일신과 작용의 삼신이다.

「한」이 없이는

일신과 삼신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큰 하나의 입장에서

삼신은 항상 일신으로 돌아간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일신을 한얼이라고 한다.

 

「한얼」은 작용상으로 삼신이 되는데 이것은

오늘도 한민족의 정신생활을 크게 지배하고 있다.

 

애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은

삼신이 점지하여 애기를 낳도록 기원을 하며 또 애기들을 기르는데 있어서 악운과 잡귀들을 몰아내서

건강하게 자라게 빌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삼신은 마치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나

소아과 의사와 같이 볼 수 있다.

이렇게 한민족은 줄잡아 6천년 동안

개국역사의 힘을 입어 오늘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으로 본다.

이 같은 삶의 정신적 뿌리가 되는 것이「한」이다.

 

그 다음 크다는 의미로

중국 삼국지(三國志) 한전(韓傳)을 보면

「한」에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 마한,

둘째 진한, 셋째 변한 이다.

「한」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한계로 하고

남쪽은 왜(倭)와 접경되어 면적이

사방 4천리쯤 된다.

 

이 세나라 이름에 붙은 접미어의 「한」은

크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따라서 큰 나라가 된다.

 

다산 정 약용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보면

옛날에 대륙에서 남쪽을 향해 내려온

한민족이 그들의 우두머리를 부를 때

「한」을 붙여서 호칭하였는데

이러한 통치 형태에서

「한」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했다.

또 「만주원류고」의 조선고사고에서도

「한」은 동북아시아에서 구주를 부르는

공통어로 씌어졌다고 하였다.

 

옛날에 한민족이 우두머리 신을 부를 때

「한」의 접미어를 붙여서 부른 것을

중국 고대문헌에서 불 수 있다.

중국 구당서열전(舊唐書列傳)고구려조에 의하면

그 나라의 풍속에 여러 가지 신을 모시는

음사(淫祀)가 많다고 하였다.

즉 별의 신, 해의 신, 달의 신,

가한신(可汗神), 기자신 등이다.

 

여기서 가한신은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한」을 접미어로 하여

고구려 왕국을 세운

임금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드린 것이다.

따라서 가한신은 고구려의 모든 신 가운데

서 그 이상 더 없는 우두머리 신이 된다.

그 신은 개국을 하여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최대의 존경심과 숭배심을

가지게 되는데서 생긴 우두머리신의 이름이다.

 

이 가한은 몽고말의 칸(khan)을

중국 사람들이 한자로 적은 것이다.

chingis khan을 성길사한(成吉社汗)이라고

부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khan, chan, hahn들은 우랄 알타이어인

우리고대어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옛날에 한인들이

나라의 관급(官級)을 정하는 데 우두머리라고 하는

의미를 가진 「한」을 사용한 것을 본다.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30년)에

나라의 관제를 만드는데

17개의 직명(職名)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서 제 일급의 직명을 서발한,

서불한이라고 불렀다.

 

한국 고대 문헌에서 「한」을 한자로 적은 것은

이미 앞에서 말한 한수 한(漢)자와

나라한(韓)자 이외에 글 한(翰), 땀 한(汗),

성할 한(邯)자 등이 있다.

이것을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한 것을

그대로 전용한 것이다.

의미상으로는 조금도 다름이 없다.

 

앞에서 본바와 같이

「한」으로 불리웠던 신의 이름,

나라의 이름, 관제의 직급 이름 등은

옛날에 사용되고 만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그 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안방에 삼신 할머니를 모시고

주로 자녀에 대한 복을 비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개국신인 한얼에 그 뿌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국과 더불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한민족의 순수한 고유의 토속신앙이다.

지금 한국은 외래 종교의 집산지로 되어 있다.

한국에 없는 종교는 특수한 관계를 제외하고는

세계 어느 지역에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말은 종교 가운데서

이 나라의 주인 종교를 찾는다면

그것은 한얼교이다.

크다고 하는 「한」에 뿌리를 박은

삼신은 수 천년 동안 한민족의 신앙생활을

일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삼신의 역사적 유래가

실로 유구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정신적 배경이 되는 것은 물론 「한」이다.

 

현재 한국 사람들이 나라의 이름을 부르는데

「한」을 처음이나 끝에 붙여서 한국 또는

대한이라고 자랑스럽게 부르는 것은

우연적 사실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유래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한민족의 순수한 정신적 뿌리인

「한」에 깊은 내력이 있었던 것이다.

크다는 의미를 가진

「한」에 관계가 있다고 하면 한국, 대한은

전부 큰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한」의 정신적 뿌리를 가지고 살아온

한민족이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를 큰 나라라고

부르기 좋아했던 것을 역사에 나타난 많은

여러 나라의 이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한」의 측면에서 보면,

고구려, 고려, 조선이라는 이름은

실은 큰 나라를 두고 한 말이다.

높을 고(高)자는 우두머리나 크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이다.

 

아침조(朝)자도

매우 밝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이다.

환히 밝은 것은 크다는 것을 의미 한다.

따라서 이 세 나라는 궁극적으로는

큰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한민족들이 다른 민족에 비해

유달리 자기의 나라를 큰 나라라고 부른 데는

어떤 사상적 배경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한」이다.

이런 점에서 「한」은 한민족의 국명을 꿰뚫은

역사적 유래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은 동북아시아에서

정치형태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자기가 속해 있는 군주를 부를 때

「한」을 붙여서 불렀다.

이러한 「한」이 신라에서는 비단 왕은 아니지만

우두머리 관제의 직급인 서발한,

서불한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앞에서 말했는데

그것이 지금은 한자리로 전해지고 있다.

 

흔히 우리 생활주변에서 정치적 용어로서

한자리를 했다는 말을 듣는데

그것은 우두머리, 큰 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른 말로 1급 직명을 의미한다.

「한」은 이렇게 옛날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같은 의미의 다른 소리로 전해지고 있다.

한자리가 옛날의 서발한, 서불한과 의미가

같다고 하면 이것은 「한」이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오랜 역사적

유래성을 밝혀 주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의 어원과 역사적 유래를 말함에 있어서

한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은

「한」은 유구한 역사속에서

그 발전에 심한 기복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이 생동하였던 시대에는

찬란한 문화를 형성하였고 이와 반대로

그렇지 못했던 시대에는 침체되고 말았다.

 

전자의 경우는

지금 요령성 일대에서 발굴되는 지하의 문화재이고

후자의 경우는

외래사상의 강세이다.

물론 신라 이차돈의 역사적 사실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위정자들이

외래 사상을 받아들일 때 학문적 의미를 떠나서

정치적 도구로 수용했던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조선조에 있어서 계급성이 강한

유교를 받아들인 것은 위정자들이

그들이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는데

그 이상 더 좋은 도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 안에서

「한」사상이 그 본래의 빛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사상이 유교의 천(天),

불교의 제석천(帝釋天),

도교의 옥황상제(玉皇上帝)등에 대한 것을

그 자체 안에 내포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면

이단사설이라고 하여 양심 있는 학자들을

가차 없이 정치적 유배를 시켰다.

 

또 설상가상으로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식민지 통치시대에는 일제가

「한」을 말살시키는 불행한 시대도 있었다.

일예를 들면

「한」이 사상적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신문이름,

대한 매일신보를 매일신보로,

대한신문을 한양신문으로,

대한민보를 민보로 고쳐서

한을 활자 매체에서 지워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을 연구할 수도 없고

또 알 수도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한」은 앞에서와 같은

불우한 비극의 역사속에서도 그 맥이 끊이지 않고

한민족의 정신적 뿌리로서 오늘 그 정체를

나타내면서 그 본래의 빛을 보여주고 있다.

「한」사상은 하나의 철학으로서

체계화 조직화되어 있다.

이제 「한」은 한민족의 주체사상으로

세계무대에서 자기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이 「한」은 옛날부터 한민족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초석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을 외면한

어떠한 한국인의 주체사상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한」이 본래의 빛을 나타냈을 때에는

정치적 독립성과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나라가 강하였지만 그렇지 못하였을 때

국가의 독립성과 문화의 자주성을 잃고

나라가 약해져서 비극의 역사 속에 빠지고 말았던

사실을 깊이 명심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 보면

「한」은 한없이 깊고 넓어서

실로 한마디의 말속에

여러 가지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해의 편의상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면

일반적 의미와 본질적 의미가 된다.

 

전자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크다,

우두머리다 라는 것과 또 높다,

전체적인 하나라는 것 등이다.

차례대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공간적 개념으로서 「한」은 크고 넓은 것이다.

크다고 하는 「한」은

위와 아래 좌우로 퍼져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을 접두사,

접미사 등으로 써서 크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 보기로서 한민족은 종족의 이름을,

나라의 이름을, 글자의 이름을, 철학의 이름을,

종교의 이름 등을 부를 때

종족으로는 한민족이라 하고,

나라로서는 한국이라 하고,

글자로서는 한글이라 하고,

철학으로서는 「한」철학이라 하고,

종교로서는 한얼교라고 부른다.

 

이것은 전부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것이 허다하게 많다.

 

즉 한강, 한밭 등과 같은 것이다.

「한」의 공간적 의미의 개념에서는

일체 양면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한길의 「한」은 넓다는 뜻이고

한가운데 「한」은 가운데를 의미한다.

전자는 밖으로 퍼져나가는 개념이고

후자는 가운데로 모여드는 개념이다.

다 같이 크고 넓다는 뜻을 가지게 된다.

한 둘레, 한 바퀴와 같은 것이다.

 

우두머리가 「한」의 뜻이 된다는 것은

사회현상에 있어서 하나의 종족이나

온 누리의 가운데서 최고성을 띤 존재를

보통 우두머리라고 부른다.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의 환인, 환웅, 한배검은

우두머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수없이 많다.

비근한 예로서

한 집안에 할아버지와 같은 것 등이다.

높다는 것은

「한」의 공간적 개념 안에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자연현상에서 높은 산을 한라산이라 부르고

또 높은 허공을 하늘이라고도 한다.

이 같은 산과 하늘의 개념 밑바닥에는

「한」이 그 정신적 배경이 되어 있다.

시간적 개념으로서의 「한」에도

높다는 뜻이 들어 있다.

우리사회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중이

고승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까닭에는

역시 「한」의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

 

끝으로 전체적 하나이다.

「한」을 양적 의미에서 보면

서로 상반된 두 개념을 동시에 의미 한다.

 

바꾸어 말해서 「한」은 쉽게 하나를 의미하나

그러나 동시에 「한」은 많음을 뜻한다.

그래서 「한」은 전체적 하나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한」은 야누스와 같이

상반되는 의미의 양면적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일(一)과 다(多)와 같은 것이다.

 

「한」은 자기 자체 안에

독립성(獨立性)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은 본질상 하늘도 땅도 생기기 이전에

홀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만물에 대한

근원적인 실재가 있었는데

이것은 하늘과 땅보다 더 이전에 생겼던 것이다.

 

그것은 소리 없이 고요하기도 하며눈으로 볼 수 있는 형체도 없는가 하면하늘과 땅 사이에 있어서 그

쪽이 될 만한 아무 것도 없었다.

 

이것은 옛날만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한」은 홀로 있게 된다.

이와 같이 독립적 정체로서

우주삼라 만상의 근본적 실재가 된다.

 

「한」은 항존성(恒存性)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은 아득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또 어느 때나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자기의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절대로

자체의 변화를 하지 않는 존재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해서 기후나 계절의 변화나

장소의 상황에 따라서 변화를 하지 않는다.

이것을 「한」의 항존성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한」의 근본 본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변화를 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에 있어서 모든 만물은

변화를 통해서 성장과 발전을 하는 것이

만물의 변천사이다.

이같이 무상한 변화를 하는 가운데서

오직 변화를 하지 않는 것이 「한」이다.

 

「한」은 자기 본질상 그 기능에 의하여

보편성(普遍性)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은 전일적인 위대한 힘을 가지고

모든 만물에 전부 관계하고 있다.

즉, 큰 물건, 작은 물건의 대소의 관계,

또 어두운 곳, 밝은 곳의 명암(明暗)의 관계

등에서 생기는 차별 같은 것을 떠나서

그 힘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

마치 태양이 자기의 빛을

모든 만물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고루고루 비쳐주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한」은 좋고 나쁜데 대한

모든 차별상 같은 것을 초월하여

어느 하나의 물건도 빼놓지 않고 관계를 가진다.

이것을 「한」의 보편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한」이 없는 어떠한 물건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한」은 본질상 티끌과도 함께 한다.

부잘것 없는 티끌과도 함께 하면서 언제나

그 맑고 깨끗한 본질을 더럽히는 일이 없으며

또 변화시키는 일도 없이 만물과 공존을 하는

보편적 존재이다.

 

「한」은 불멸성(不滅性)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의 본질은 가변적 존재이다.

자연세계나 인간세계에 있어서

모든 만물은 역사성과 시간성의 제한을 받아서

자연히 소멸되고 마는데

「한」은 시간성에서 생기는 제한성이나

소멸성을 받는 일이 없다.

 

다시 말해서 「한」은 모든 다른 생명체처럼

삶에 대한 시간적 한계가 없다.

사람의 경우만 보더라도 장생불사를 하지 못하는

운명적이 존재임에 반하여, 「한」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 영원적인 존재가 된다.

영원불멸적인 「한」의 본질은

스스로 분열되거나 손상되는 일이 없다.

 

또 없어지지 않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상의

혜택을 입어서 더 커지는 일도 없다.

이렇게 「한」은 자기 자체에

더하나 덜함이 생기지 않으므로

병들어 소멸되는 일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을 「한」의 불멸성이라고 한다.

 

「한」은 자능성(自能性)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립적인 활동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물건의 영향을 받는 일이 없이

자발적으로 모든 현상을 펴나가는 존재이다.

다른 물건에 의존되어 활동하는 것이 아니므로

능동적인 힘을 가지고 움직이는 존재이다.

그래서 자능성 존재라고 부른다.

 

이것은 마치 유럽의 근세 철학사에서 보는

대륙의 합리론자 가운데 한 사람인

G.W.Leibniz의 단자론(monaden)과도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그가 말한 단자는 자기 자체 안에

자능성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단자는 「한」처럼 독립적 활동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물건의 영향을

받는 일이 없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이 단자는 어떠한 물건도 출입할 수 있는

창문이 없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한」과 상통점을 가지게 된다.

 

자능성을 가지 「한」이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때가 있는데

그것은 누가 그렇게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또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은 본질사 자체적인

동정(動靜)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닫고 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존재이다.

 

이 같은 현상은 운동의 자능성 의미와

원리에 의하여 그렇게 되고 만다.

이런 의미의 「한」의 운동은

자연적으로 외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불가피한 운동으로 나타나는

자능성 의미의 존재이다.

 

끝으로 「한」은 신비성(神秘性)의미를

그 자체 안에 내포하고 있다.

「한」은

신비적 존재이므로 그 형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자체 안에 형체에 대한 본질과

온갖 물건의 모양이 있다.

「한」은 아득히 멀고 그윽히 어두운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신비로운 원기가 있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변함이 없다.

따라서 그 이름은 사라지는 일이 없다.

사라지지 않는 「한」으로부터

천지만물의 시초를 찾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모든 형이상학적 신비로운 현상은

「한」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은 있지 않는데 없고

또 모든 만물을 포용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한」은 신비적인 의미가 아주 강하다고 해서

없는 것으로 말해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만물이 「한」에 의하여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체 없는 모양이요

또 물체의 모습이 없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잇다.

이런 상태는 황홀하여 어리둥절하게 되니

신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이 신비성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은

하늘과 땅이 아직 생기기 전에 먼저 존재하여

거기서 하늘과 땅이라는 두 개의 형태가 생겼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늘이니 땅이니 하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

형태가 없는 「한」과

형태가 있는 하늘과 땅은

실은 그 근본은 같은 것이다.

 

있다, 없다 또 하늘과 땅이라는 이름이

다를 뿐이지 양자는

같은 하나의 근본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의 신비성 의미를 보게 된다.

「한」의 개념은 바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하나와 둘, 하나와 셋 혹은 하나와 많음이

종합되어 단 한마디로 표현된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심오한 신비성 의미를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과 하늘과 땅의 관계가 큰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은 앞의 일반적 의미에서 말한 대로

그것은 전체적인

큰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전체적 큰 하나라는 것은 질적 의미에서

여러 가지 신비적 의미의 심오성을 나타내 준다.

그것을 웅변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 한국의

대표적 경전인 천부경과 삼일신고의 내용이다.

두 경전의 중심 내용이 신비적이라는데

특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개체와 개체는 서로 분리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 큰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이

한국경전의 중심 내용이다.

따라서 그 연구방법이

분석적이 아니라 종합적이다.

「한」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종합적 연구방법에서

신비성 의미가 많이 수반되는 것을 본다.

 

「한」의 다른 소리지만 같은 뜻「한」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서 그 소리를 다르게 불렀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달라졌는가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람이 바뀌어 지면 사상이나

말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역사에서 흔히 본다.

 

시대 변천에 따라서

사상이 낡아서 가감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말도 시대적 유행성이나 사람의 구미에 따라서

그 소리를 다르게 나타낸다.

비근한 한가지 예를 들면 「편지」를

「서찰」이라고 부른 것과 같은 것이다.

 

「한」이 수천년 동안 흘러내려 오는 과정에서

이런 사상성과 언어성 변천의 논리에서

탈피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상에 대한 언어의 표현성은

고정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성을 내포한 가변적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입각하여

「한」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가

앞에서 말한 일반적인 의미보다

차원이 높은 철학적 심오성의 측면에서

소리는 달라도 뜻은 같다는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민족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안에

일(一)이 11개가 있다.

이것은 전부 「한」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한」의 다른 소리이다.

이렇게 「한」을 의미하는「일」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는

물리학적 의미의 숫자가 아니다.

 

시간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의미의 하나이다.

수에는 세가지 존재양식이 있다.

즉 차례수, 곱수, 무한수이다.

보기를 들어 말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ㄱ. 차례수··· 차례를 가리키는 단위로서의

"하나"다. 이것은 1+1=2의 존재 양식.

 

ㄴ. 곱 수··· 모든 수의 포괄적인 수로서의

"하나"다. 이것은 1×1=1의 존재 양식.

 

ㄷ. 무한수··· 시간 공간을 초월한 영원으로서의

"하나"다. 이것은 1+1의 존재 양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은 물론 끝에서 말한 무한수이다.

따라서 그 뜻이 매우 심오하다.

이런 점에서 「한」과 「일」은

비록 나타나는 소리는 다르지만

의미상으로 조금도 다르지 않다.

따라서 양자는 다 같이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신비적 존재의 뜻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한」과 「일」에서

형이상학적 심오성을 보게 된다.

 

같은 뜻을 가진「한」과 「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다고 하니 무한한 것이다.

무한은 깊은 의미에서 있음을 초월한 없음이다.

진리는 실체가 없으므로

없음 속에 빈 것으로 있다.

「일」이 처음이 없다고 하는 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한」은 없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새길 수 있다.

비롯은 비어있는 것에서 얻어진 것이란 뜻이다.

따라서 빔은 없음이요 없음은 있음이 된다.

 

「일」과 「한」은

빈 가운데서 비롯은 되었으나

비움에서 얻었으니 없음을 극복하면서

없음과 있음을 다 가지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기고,

없음은 있음에서 나온다.

없음과 있음은 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뿌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음동의(異音同義)라고 하는

「일」과 「한」은 있음과 없음을 떠난

궁극적 실재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일」과 「한」의 중국 한자어 음이다.

이러한 「일」은 「한」의 입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말과 글로서 다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뿌리이며

또 우리의 인식과 지각을 초월해 있다.

양자는 다 같이 혼연일체속에서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의 힘을 발휘하여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질서와 법칙을 만들어서

만물이 생성 변화를 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천부경에서 보는 「일」은 같은 의미를 가진

「한」의 다른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삼국사기를 보면 고운 최 지원(857~?)이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말하기를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道)가 있다.

이를 풍류(風流)라 하는데

이 가르침을 설치한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실로 이것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민중과

접화되어 이를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하였다.

이 「도」는 「한」을 의미한 것이다.

 

물론 「도」와 「한」이라는 소리는 다르지만

근본적인 뜻은 같다.

양자의 관계는 마치 물건을사고 파는 시장을

저자라고 부른 것과 같은 것이다.

 

「한」과 「도」는

의미상 한 업이 크다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양자를 사상을 담고 넣는 그릇이나 포대에

비유한다면 그 그릇과 포대는 한없이 큰 것이다.

아래위와 사방과 같은 방향성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상을

자기 자체 안에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고운 최 치원은

이 도안에 삼교 즉 유교, 불교, 도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은 처음과 끝이 없는 존재이므로

모든 사상이 여기서 나온다.

따라서 「도」와 같이 삼교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최 치원이 말한 현묘한 「도」는

「한」과 의미상으로 같은 것이 된다.

 

현묘한 「도」와 「한」이 소리는 다르지만

뜻은 같다는 다른 한 가지 점은 양자가 다 같이

조화성(調和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릇이 크면은 여러 가지 사상이

한데 모여서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적은 그릇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도」에 삼교가 내포되어 있다는 말은

삼교 사상이 조화를 했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즉 집안에서는 부모에 효도를 하고,

밖에 나아가서는 국가에 충성을 하는 것은

공자의 유교와 같은 것이고,

무위(無爲)의 일을 하고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도교와 같은 것이고,

여러 가지의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석가의 불교와 같다.

이것은 삼교의 사상을 큰 하나로

조화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 것이다.

 

전체적인 큰 하나라고 하는 「한」은

자기자체 안에 조화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에 있어서

조화의 원리를 많이 적용하였다.

전자의 경우 대우주를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체로 보았다.

후자의 경우 훌륭한 사람들이

사상을 조화의 산물로 보았다.

 

마치 교향악단의 음악 소리와 같이 생각한다.

한사람의 악기에서 나는 소리 보다

많은 사람의 악기에서 나는 소리가

커다란 하나로 조화되었을 때

고상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위대한 사상은

여러 사람들 것이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화사상은 최 치원의 현묘의 「도」에서 보는

조화사상과 근본적인 내용에서 다르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현묘의 「도」를

「한」으로 보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본다.

 

최치원의 현묘한 「도」를 말함에 있어서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심오한 주체성을 말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한민족의 주체성

다시 말해서 한국 민족의 정신적 뿌리가

중국이나 인도에서 들어온 외래 사상이 될 수

없다고 하여 독자적인 형이상학적 심오성을 가진

현묘한 「도」라고 한 점은 높이 평가된다.

 

유교의 인(仁), 불교의 자비심

그리고 도교의 「도」는

한국 민족의 주체사상을 세우는데

하나의 참고는 될 수 있어도

그대로 한민족의 정신적 뿌리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고 현묘한 「도」라고 한 것은

배달민족의 수 천년의 정신생활을 일관해 온

「한」을 의미한 것으로 믿어진다.

 

물론 노자의 「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 더 크고 높은 심오성의 내용을 가진 것이

필요하였기에 「도」에 현묘를 붙였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이러한 여러 가지의 복합적

내용을 감안할 때 분명히 현묘의 「도」는

「한」을 뜻하는 것으로 믿어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다.

 

그 다음 대(大)는 일반적인 의미상으로나

내면적인 심오성 의미상으로나

「한」을 의미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에 대한 한가지 보기를 들면

원효(617~686)가 말한

대승(大乘)의 정의와 같은 것이다.

크다고 할까 하니 어느 구석진 곳에라도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고,

작다고 할까 하니 어느 큰 것이라도

감싸지 못함이 없다.

있다 할까 하니 그 한결같은 모습이 텅 비어 있고,

없다고 할까 하니 만물이 다 여기에서 나온다.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어

감히 이를 대승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한」의 본체를 형체와 질량이 없고,

둥글어서 모도 없으며, 상하와 사방도 없으니

비고 빈 것이기는 하나 존재하지 않음이 없고

감싸지 않음이 없다고 하는 뜻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다.

따라서 「한」과 「대」는

소리는 다르지만 근본적인 뜻은 같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은 때와 사람에 따라서

「대」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최남선(1886~1957)의 불함문화론에 의하면

백(白)은 「한」의 표현이다.

그는 푸른 늘을 의미하는 Tengri에서 시작하여

붉사상 혹은 불함문화론을 전개하였다.

붉은 몽고말의 Tengri에서 유래된 것으로써

밝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한」의 다른 소리이다.

밝은 것은 한없이 큰 것이다.

 

육당은 동북아시아 일대에 산천이름과

사람의 성과 이름 등에 붉(白)자가 많다고 했다.

백두산·태백산·백마강·이태백·백모모 등 유달리

「백」자를 넣은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이것은 「한」의 일반적인 의미에서 크다, 높다,

우두머리라고 하는 의미에서 쓴 것이다.

따라서 「백」은 「한」의 뜻을 가지고

그 소리를 다르게 낸 것이 된다.

 

백이 「한」이고 「한」이 백이라는

같은 의미를 가진다면 「한」사상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화로서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발달상으로나 계통상으로 보아

「한」의 문화의 영역은 카스피해와 흑해 부근인데

조선과 그 자매관계에 있는 일본 및 동부지나는

물론이고 장백산의 만주, 몽고, 중앙 아시아의

서쪽 등을 그 분포 범위로 본다.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최 남선의 불함문화론이다.

그에 의하면

"불함문화는 인류의 영아기의 모습을

보유함으로써 아득한 기원을 짐작케 한다.

원시 인류가 아직 극히 좁은 지역 안에

살고 있었을 때의 중요한 유물인 듯한 것을

불함문화 안에서 찾을 수 있다." 했다.

이런 점에서 ''한''과 ''백''의 관계는

다른 소리의 같은 의미라는 단순성을 떠나서

높은 차원의 연구가 필요하게 된다.

 

그 다음 많다고 하는 다는

''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른 소리의 같은 의미가 된다.

전체적 하나라는 뜻에서 ''다''에는

양적 의미와 질적 의미의 두 가지 있다.

전자에서는 많다고 하는 의미의 ''한''이 되고

후자에서는 항상 하나(一)를 전제하게 된다.

그래서 다즉일(多卽一)이 된다.

 

많은 것이 하나고 하나가 많다고 할 때

''다(多)''자와 ''일''은 이원적 대립이 없다.

그래서 양자는 아무런 모순과 갈등이 없이

큰 하나로 합쳐진다.

이런 의미의 다와 일은

한이 양면에서 보아도 무방하다.

''한''철학에서 조화나 통일의 원리를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이면서 많고 많으면서 하나라고 하는

이 명제는 매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동양과 서양철학의

주요 연구 과제가 되어 있다.

서양철학에서는 보편과 특수,

불교철학에서 삼론종의 경우 진제와 속제의 문제로

신유교에서는 이(理)와 기(氣)로 첨예화 되었다.

 

이렇게 철학은 하나와 많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그 중심과제가 되어 있다.

이것을 풀 수 있는 원리는

한철학의 일즉다와 다즉일에 있다고 본다.

한의 다른 소리나 같은 의미의 문제는 위에서

말한 몇 글자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밖에도 많이 있다.

전(全), 원(圓), 홍(弘) 등이다.

이렇게 한은 소리가 다른

같은 의미의 한자를 사용하여

오랫동안 한민족의 정신생활을 일관하여

현재에 이루고 있다.

 

''한''의 독자적 문화권은

아득한 옛날에 시베리아가 따뜻했던 때가 있었다.

기원전 1200년경에 농업과 목축으로 생활하면서

고도의 청동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중국의 문화와는 별개 적인 것이다.

여기서 다시 중국 동북지방에 남하했다.

이것을 지금 중국 요령성 일대의 땅속에서

발굴되는 청동기 문화가 대변해 주고 있다.

이 문화에 대한 주인공이 동이족이었다.

 

Altai어족의 하나인 동이족은

옛날에 나라를 세운 우리 민족의 조상이다.

''한''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는

하나의 문화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입증해 줄 수 있는 것이 앞에 말한 지금

중국 요령성 일대에서 발굴되는 청동검,

세문경(細文鏡), 대형제단(大形祭檀)등에

원형이 나타나 있는데 이 원형(圓形)은

한없이 크다는 ''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같은 ''한''의 의미는

중국 고대 문헌의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요령성은

동이족이 문화적 활동을 했던 중심지역이다.

중국정사(中國正史)에서

동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다.

여기는 한국 고대 문화와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동이족이 세운 고조선의 문화는

그 독자성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한 독자성은 여러 가지 중에서

효의 한가지 사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당시 중국의 효는 부모형제와의 이원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반면에 동이족의 효는

부모 형제와의 친애관계에 있어서 조금도 금이

생기지 않는 전체적 하나라는 일자상(一者像)을

보여준 점에서 그 뿌리가 다르다.

 

이러한 효에 대한 윤리 사상은

황하유역의 문화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동이족이 세운 ''한'' 문화권의 독자적인 것이다.

이러한 윤리사상을 중국사람들이

부러워했던 것을 본다.

후한서에 의하면

이른바 중국 사람들이 윤리적 예의를 잃으면

네 개의 동이족에서 구하라고 했다.

 

여기서 네 개의 동이족이라 함은

이에는 아홉 종족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네족을 의미한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동이족의 독자적인 윤리도덕을

부러워했던 한가지를 보기를 더 소개하면

 

공자도 구이(九夷)에 살고 싶어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보아 ''한''에 뿌리를

박은 동이족의 효의 윤리사상은 하나의

독자적 문화권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효에 대한 ''한''의 문화권을 말함에 있어서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말하고 있는 유교의 효와

동이족이 말한 효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효의 사상을 말하면

연쇄 반응적으로 중국 유교를 생각하는 것은 본다.

유교가 없는 한민족의 효와 사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한민족은 수천년 전부터

효에 대한 주체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아 유교가

불교와 더불어 한국에 들어온 것이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 2년이라고 한다.

 

그 햇수가 지금으로부터

약 160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

약 3천여년 전에 한민족은 이미

오늘 우리가 말하는 우수한 효의 사상을 가지고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의 극지한 효심에는

중국의 공자도 감탄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본다.

 

중국 문헌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의하면

공자가 고대 한 인들이 부모가 돌아가긴 뒤에

거상(居喪)을 잘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즉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이

부모의 상을 잘 치러 삼일동안 게을리 하지 않고

석달동안 상복을 벗지 않고,

초하루 보름과 제삿날이면 슬퍼하면서

삼년동안 근심 걱정을 하니 동이의 아들이다.

 

이 공자가 한 말을 깊이 음미할 여지가 있다.

옛날에 중국처럼

예법이 까다로운 나라도 별로 없었다.

그 나라에 예의(禮儀)가 3백가지가 있었고

또 위의(威儀)가 3천가지가 있었다.

부모의 효도에 대한 것만 보더라도

효경(孝經)에 말하기는

다섯가지 형벌에 속해 있는 것이 3천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서

부모에 대한 불효이상 더 큰 죄가 없다.

 

이렇게 부모에 대한 효의 윤리사상이

강한 나라에 태어난 공자가 고대 한인들이

부모의 생전과 사후의 차별이 없는 효심에 대하여

절찬한 것을 보아 뿌리깊은 우리 고유의

효의 사상이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한민족의 효의 사상을 중국 유교에서 말하는

효의 사상으로 보는 것은

한국의 상고사를 모르는데서 오는 소치이다.

 

''한''의 문화권에 뿌리를 박은 한민족의 효는

유교에서 수용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의 효가 유교의 효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동양문화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의 문화권의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를 중국문화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영국의 사학자 토인비와 같은 사람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앞에서 이미 소개한 중국문헌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즉 후한서에 중국의 예의가 타락하면

동이족에서 구하라는 말은 한국의 효가 유교의

효보다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대 한인들의 효가

유교의 효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하나의 문화권이 형성되려고 하면

반드시 자기의 주체사상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없는 어떠한 문화권도 기대하지 못한다.

동이족의 주체사상인 ''한''은

효에 두가지 유형이 있다고 보았다.

부모에 대한 생전의 효와 사후의 효이다.

이것을 둘로 나누어 보지 않고

전체적인 큰 하나로 본다.

이 전일논리는 생전의 효도는 잘하였지만

사후의 효도를 잘하지 못하면 불효로 본다.

또 반대로 생전의 효도는 잘하지 못하였으나

사후의 효도를 잘했다 하더라도 역시 불효로 본다.

 

따라서 ''한''철학에서 말하는 효는

부모와 생전과 사후의 구별이 없이

부모를 잘 보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하나로 보는 ''한''의 효심은

육체와 정신의 양면을 나누어 생각하지 못한다.

부모에 대한 정신적 효도는 잘하지만

육체적 효도는 못하면 불효로 본다.

반대로 육체적 효도는 극진하지만

정신적 효도를 하지 못하면 역시 불효로 보았다.

 

사람의 진정한 삶이란 육체적으로 잘 먹고 잘 입는

것만이 아니라고 하는 반면 정신적으로

마음이 편한 것만이 다라고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육체적인 효와 정신적인 효는

별개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하나로 합치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철학의 효심이다.

이러한 효의 사상에서는

이것은 아니지만 저것이고

또 저것은 아니지만 이것이라고 하는

일방부정과 타방긍정이라고 하는 논리가

절대로 용납되지는 않는다.

 

''한'' 문화권에서 보는 효심은

상고시대만이 아니라 그 후 시, 소설, 문학 등을

통하여 전승된 역사적 사실에서 많이 본다.

 

육체적 효심과 정신적 효심이

둘로 나누어 질 수 없다는 것을 한가지 소개하면

신라의 진성왕때에 효종랑이

남산의 포석정에서 놀고 있을 때

문객들이 그 곳으로 빨리 달려갔는데

그 가운데서 두 사람만이 늦게 왔는데

효종랑(孝宗郞)이 늦은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을 했다.

분황사 동쪽 마을에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나이가 20세 가량 되었습니다.

눈먼 어머니를 껴안고 서로 목놓아 슬피 울고

있었으므로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어머님과 같이 울고 있는 여자의 집은

매우 가난해서 빌어서 어머니를 봉양한 지가

몇 해 되었는데 마침 흉년을 만나 걸식으로써는

살아갈 수 없었으므로 남의 집에 품팔이로

팔리고 곡식 30석을 얻어서 주인집에 맡겨 놓고

일을 하였습니다.

날이 저물면 쌀을 싸가지고 집에 와서

밥을 지어먹고 어머니와 같이 자다가

새벽이면 주인집에 가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지 며칠만에 어머니가 말씀하기를

지난날에는 거친 음식을 먹고도

마음이 편안하였는데 요즘의 좋은 쌀밥은

속을 찌르는 것 같으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고 했습니다.

여인은 자기가 한 일을 사실대로 말했더니

어머니가 통곡을 했으므로 여인은 자기가 다만

어머니의 구복을 봉양만을 하고

마음을 평안하게 하지 못했음을 탄식하며

서로 붙잡고 울고 있는데

그것을 보느라고 늦었다고 대답했다.

 

위에서 본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그 뿌리가 ''한''에 있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나누어 놓고

효도도 거기에 따라서 한다는 것을

전체적인 큰 하나를 정신적인 배경으로 하는

''한''철학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육체와 정신은 비록 개념은 다르지만

그것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고 하는 원리에 의하여

부모에 대한 효심을 정립하는 것이

''한''의 효심이다.

 

고대 한민족의 효심에는 특색이 있었다.

인간이 활동하는 것을

심리적 측면에서 보면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즉 스스로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시켜서 하는 것이다.

전자는 도의적 규범 같은 것을 초월하여 스스로

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행동임에 반하여

후자는 윤리적 법규의 지배를 받아

길은 하고 싶지 않지만 법규의 제약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하는 행동이다.

 

양자의 행동은

그 결과가 질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스스로 하는 행동에는

인간의 잠재력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시켜서 하는 행동에서는

그런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부모에 효도를 하는데 이 인간 행동의

두 가지 유형은 그대로 적용이 된다.

그래 한인들이 부모에 효도를 할때

누가 시켜서 한 수동적 행동이 아니라

부모의 효도에는 물불을 가릴 수 없다는

능동적 행동 있던 것이다

이러한 효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전의 효와 사후의 효를

똑같이 생각했던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부재감이나 거리감 때문에 효심이

소흘해 질 수 있는 것이 조금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러한 효심의 특색은 남들의 절찬을 받으면서

하나의 문화권 중심내용을 이루었다.

 

''한''에서 낳아서 거기서 자라서

다시 ''한''으로 돌아간다는 정신으로

산 동이족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와 너는 양립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산다고 보았다.

전체적인 튼 하나라는 의미에서 보면

어떤 한 사람의 이익이나 편리를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 것을

커다란 미덕으로 생각했다.

 

그것을 ''한''이 정신적 배경이 되어 있는

동이족의 문화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즉 중국문헌에 의하면 ''동이족''이 사는 지역에는

문을 열어 놓고 살아도 서로 남의 것을 탐내는

법이 없고 또 서로 간에 예의범절이 극진하여

관혼상제를 후하게 하며 그 천성이 유순하고

어질다는 기록이 많다.

 

동이족 문화권의 정신적 뿌리인 ''한''은

아름다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애정심이나 이해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준법정신도 겸비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법 만능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한서(漢書)에 의하면

동이족은 법금 8개 조항만 전해지고 있다.

 

제1항은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에 처한다.

제2항은 남을 구타하여 부상을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해야 한다.

제3항은 남의 물건을 도적질한 자는

그 집의 노예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일정한 재물로 배상을 해야한다.

이 세 가지 조항의 내용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존재와 소유의 질서를

''한''의 정신으로 확립시킨 것으로 본다.

 

이런 여러 가지 점들을 감안해 보아 ''한''은

훌륭한 하나의 독자적 문화권을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자유발언 1989년 10월호 게재)

 

결론적으로 `한(韓)`이란

하나[一], 같다[同], 크다[大], 많다[多],

중앙[中], 임금[皇], 하늘[天], 광명[明]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의 정신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광명사상이며

이것이 우리 한민족 사상의 원형(archetype)이다.

백[白]의 민족이나 배달의 민족이라 불리는 것도

다 광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스스로

`광명`을 상징하여 '한'이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쓰는 말이 무엇일까?

아마 한이라고 말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한식, 한복, 한약, 한글, 한옥, 한강,

한겨레, 한식구 등등 중요한 모든 단어에

한이 들어가 있다.

 

한은 약 34내지 37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 환하다, 크다, 가운데, 우두머리,

전체, 일부분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한없이 크다, 한없이 작다'라는 말에서처럼

극소에서부터, 극대까지를 아우르는 말로

전체 속의 개체, 개체 속의 전체라는

철학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은 모든 생명의 근원 자리로

시작도 끝도 없는,

시공을 초월한 도(道) 자리이며,

무의 자리인 것이다.

한을 통해서 모든 만물이 나왔고

다시 한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한이 아니면

도(道)가 나올 수 없고 원시반본이 될 수가 없다.

 

한을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고,

부처라고도 할 수 있고,

진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

또는 하나님은 모두 이 한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는 원래 한의 나라,

즉 하늘 나라인 한국이며

한에서 나온 민족인 한민족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한이라는 뿌리를 잃고 살아 왔다.

그래서 이 민족과 인류는 인간성 부재로

인류의 생존 자체가 불안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다시 한으로 돌아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

 

한의 성격은 조화와 화합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한의 이치 속에서

도(道)를 찾음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희망해 봅니다.

 

결국 증산성사께서 남겨 놓으신 현무경은

북두칠성을 말하는 것이고

북두칠성은 또한 정(井)으로 표현 하였으며

정(井)은 다시 한(韓)을 의미 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일자오결(一字五結)이라고 하여

1은 한을 의미하므로 한이 다섯 번째에 모든 것을

매듭짓고 성도(成道)시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