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법(眞法) 진리

● 후일 내가 출세(出世)한다

고도인 2011. 10. 9. 21:08

● 후일 내가 출세(出世)한다

 

행록 5장 25절

“나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 두라.

후일 내가 출세할 때에

눈이 부셔 바라보기 어려우리라.

예로부터 신선을 말로만 전하고

본 사람이 없느니라.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내가 장차 열석 자의 몸으로 오리라” 하셨도다.

 

[주해(註解)]

 

‘나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두라’ 하심은

용안(龍顔)을 잘 기억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증산께서 당신 재세(在世)시에

당신의 얼굴 모습을 똑바로 보아두고

그 모습을 잘 기억해 두란 뜻이었을까?

그것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후일을 기약한 것이기 때문에 ...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장차 열석 자의 몸으로 오신다고 해서

그 모습 그대로 오시겠는가!!

그리고 열 석자라고 해서

키가 열 석자란 말인가!!

이 말씀의 진의(眞意)를 앞뒤로 살펴보면

그것은 키가 열 석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열 석자(字)를 말하는 것이다.

 

그 글자 열 석자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의

열 석자인데 이것은 최제우가 10여년의

구도(求道) 끝에 기도주 열 석자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기도주 열 석자를 받고서 기도를 했지만

천주(天主)의 정체가 누구인지,

그 대상을 몰랐기 때문에 대강을 받지 못하고

욕속부달(欲速不達)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최제우는 제우강이 되고 말았다.

 

※ 욕속부달(欲速不達) : ①빨리 하고자 하면

도달(到達)하지 못함

②어떤 일을 급(急)하게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함

 

최수운은 경신년(庚申年, 1860년) 4월 초 5일에

하늘로부터 천강(天降)을 받았다고는 했으나

그것은 천강(天降)이 되질 못했다.

왜냐하면 최수운은 하늘의 주인(主人)이

누구신지 밝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유교의 전헌을 넘지 못하여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다가

명부(冥府)에 가서야

천주(天主)의 정체를 알게 된 자이다.

그러니 그는 누구보다도

천주(天主)를 잘 알고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는

그를 증인으로 세우고 결정을 내리신 것이다.

또한 최수운을 증인으로 세우신 것은

대순임원들이 최수운과 같이

하늘의 주인이 누구신지 밝히지도 못하고,

네 패로 나뉘어 종권다툼만을 일삼으며,

기존의 틀을 깨지 못하여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고 있으므로

죽어서 명부전에 가서야 최수운처럼

알게 되리라는 것을 가르치시고 있는 것이다.

 

공사 1장 5절;=에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으니

명부공사가 종결되면 온 세상일이 해결되느니라.”

고 말씀 하셨다.

 

[주해(註解)]

위의 말씀에서와 같이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다는 것은

명부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신명계인데

이 신명계가 착각하여 난이 일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서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신명계에서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얻어서 인간계에 태어났는데

인간계에서는 홍길동이라고 부르지 않고

홍제동이라고 부르고 있다면

신명계에서도 다시 홍길동을 홍제동으로

착각하여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명계에서

강 증산성사는 상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계에서 증산성사를 상제님이라고 외쳐대니

신명계에서도 착각하여 난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증산께서 첫 공사로

명부공사를 보시는데 그것이 바로

신명계에서 상제님의 정체가 누구이신지

그 정체를 밝히고 바로 잡는 것이 명부공사이다.

 

예로부터 일반적으로 명부(冥府)란

인간(人間)이 사후(死後)에 심판 받는

일종의 신명계(神明界) 법정(法庭)으로

믿어져 왔다.

 

그런데 증산성사께서는 이러한 명부(冥府)를

뜯어 고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셨다.

물론 이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선천(先天)의 명부가 착란을 일으켜

온 세상의 질서가 어지러워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제까지의 관념(觀念)은

완전히 바뀌고, 새로운 법리로서

질서가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증산성사께서는

삼계(三界)의 대권(大權)을 주재하시어

선천(先天)의 도수를 뜯어 고치는 공사(公事)를

보셨는데 그 중에서도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시작(始作)에 관한 내용(內容)을

전경(典經)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증산성사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를 잃고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이니라” 고

김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공사1:3)

 

여기서 보면 선천세상(先天世上)이 혼란하여

참혹하게 되었으므로 뜯어 고쳐

후천선경을 여시는 데 그 방법(方法)은

신도(神道)로써 원(寃)을 푸는 것이다.

즉 신명계가 착란에 빠졌기 때문에

신도(神道)가 원(寃)이 맺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명부공사(冥府公事)가

삼계공사(三界公事)의 근본(根本)이라는 데에

그 중요성(重要性)이 있다.

 

상극(相剋)으로 인(因)해

삼계(三界)가 혼란해지고

도(道)의 근원(根源)이 끊어지고 그리하여

결국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에 이르게 된 원인(原因)은

근본적(根本的)으로 명부의 착란이다.

 

이에 대(對)해 증산성사께서는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으니

명부공사가 종결되면 온 세상일이 해결되느니라”고

표현하셨다. 따라서 진멸할 지경에 놓인

천하창생(天下蒼生)을 구(救)하시기 위(爲)해서는

명부(冥府)의 개조(改造)가 필연적(必然的)인데,

그 결과로 증산성사께서는

이 세상에 다시 환생하시어

세상(世上)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인간계의 명부를 바로 잡는 것이

열 석자의 몸으로 오신다는 이치이다.

증산성사께서 명부공사(冥府公事)를 보심으로 해서

천주(天主)님께서 원위(原位)에 모셔지게 되고

또한 천지신명들의 그 개념(槪念)과 역할(役割)이

크게 변화(變化)하고,

위치구조(位置構造)도 또한 전이(轉移)된다.

이것은 단적으로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

내가 천지를 돌려 놓았음을 어찌 알리오.(권지1:4)

라는 말씀에서

그 의의(意義)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천하개병(天下皆病)의 근원지(根源地)이고

천하개조(天下改造)의 시발점(始發點)인

명부의 변화(變化)는

오직 대두목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므로

전무후무한 무극대도의 진법이라고 할 수 있다.

 

명부(冥府)의 구체적인 변화에 대해

전경(典經)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증산성사께서 하루는

<천지대팔문(天地大八門) 일월대어명(日月大御命)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 인간대적선(人間大積善)

시호시호귀신세계(時呼時呼鬼神世界)> 라 써서

신경수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공우를 주어

경수의 집 벽에 붙이게 하시고 가라사대

 

“경수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정하노니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고

혹 단점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지 말라”

하셨도다. 이때에 또 형렬에게 가라사대

“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萬方)에

펼쳐나가는 것이므로 서울 경(京)자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할지로다.

그러므로 경수(京洙)의 집에 수명소를

경학(京學)의 집에 대학교를 경원(京元)의 집에

복록소를 각각 정하노라 하셨도다.” (예시46)

 

위의 말씀에서 보면 증산성사께서

수명소(壽命所), 복록소(福祿所) 등을

재설정(再說定)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즉 신경수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신경원의 집에 복록소(福祿所) 를 장하심으로서,

이전(以前)에는 신명계 명부(冥府)에서

관장되던 일을 인간명부의 차원(次元)으로

옮기시어 실체화(實體化) 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대두목이 계신

서울 경(京)자가 있는 곳에서

진법의 법방이 만방(萬方)에 펼쳐나가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例)를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전경(典經)에는 증산성사께서

죽어 가는 사람을 증산성사의 뜻을 따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살리도록 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때 그는 모친의 위독함을 증산께 아뢰니라.

이를 들으시고 증산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오늘밤은 명부사자(冥府使者)가 병실에 침입하여

나의 사자의 빈틈을 타서 환자를 해할 것이니

병실을 비우지 말고 꼭 한 사람이 방을 지키면서

밤을 새우라. 하시니라.

보경이 이르심을 좇아 가족 한 사람씩 교대로

잠자지 않고 밤을 새우기로 하고

가족들을 단속하였느니라.

여러 날이 계속되매 식구들이 졸음에 못 이겨

증산성사의 이르심을 잊어 갔도다.

이날 밤 보경이 밤을 지키다가

깜박 잠에 빠졌던 바, 이 때 증산께서

외당에서 급히 소리쳐 부르시니라.

그가 놀라 깨어 보니 벌써 모친은

운명하여 있었도다. 증산께서 말씀하신

나의 사자는 바로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종도)을 가리키신 것이로되 식구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도다.”(행록1:34)

 

또 다른 내용이 있다.

“김갑칠의 형수가 발가락의 종창으로

죽을 고생을 당하고 있는지라

증산께서 소식을 들으시고

그 환부가 용천혈(湧泉穴)이니 살기 어려우리라.

준상(俊相)과 갑칠은 오늘밤 서로 번갈아

환자를 잠에 들지 못하게 하면서 밤을 새우라.

명부사자와 나의 사자중 누가 강한가 보리라.

고 말씀하셨도다.

두 사람은 명을 좇았으나

환자는 한때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정신이 혼몽하고

위독하여지다가 날이 밝으니

차차 정신을 차리는 지라…”(제생21)

 

이 두 내용(內容)을 보면

명부사자(冥府使者)와 증산성사의 사자(使者)

즉 인간으로 오신 증산을 따르는

사람(종도)과의 대립이 존재한다.

이 때 증산성사의 사자(使者)가 정신을 차리고

죽을 사람을 지키게 되면

명부사자(冥府使者)는 혼(魂)을 데려가야 하는

본연(本然)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돌아간다.

이것은 인존시대(人尊時代)이기 때문에

증산께서 환생하신 대두목을 따르는

인간(人間), 즉 제자들이

신명(神明)을 대신(代身)함을 의미(意味)한다.

 

이상(以上)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상(世上)이 혼란한 것은

명부(冥府)의 착란에 연유(緣由)되었기 때문에

명부(冥府)가 고쳐지면

온 세상(世上)이 따라서 고쳐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두목에 의해

인간계의 명부(冥府)는 개조(改造)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개조된 명부(冥府)데로

대두목의 뜻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부(冥府)에 대한 중요성(重要性)을

더욱 깊이 느끼고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의뢰심과 두 마음을 품으면

신명의 음호를 받지 못하나니라.” (행록4:40)

“이제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니라…”(교법2:5)

 

인간의 복록은 내가(대두목) 맡았으나

맡겨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一心)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니라.

일심(一心)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교법2:4) 등과 같이

하신 증산성사의 말씀은

바로 대두목의 뜻임을 자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증산성사는 100년 후의 일을 100년 전에

명부의 착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견하고

당신이 오선(다섯 번째)으로 환생하여

진짜 상제님의 정체를 밝혀 모시므로

명부공사가 종결되며

온 세상일이 해결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판 안에 있는 대순의 법이 아닌

전무후무한 새로운 진법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 정산성사께서는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

(吾道者今不聞古不聞之道也)라

즉 나의 도는 지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옛적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도이다)라고

말씀 하시고 또한 믿고 닦기가 어려우니라』

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증산성사께서는 이것을 100년 전에

공사로서 처결해 놓으셨다.

 

그래서 증산께서 광구천하하심에 있어서

판 안에 있는 법으로써가 아니라

판 밖에서 새로운 법으로써

삼계공사를 하여야 완전하니라 하셨도다.

(예시 4절)

공사 1장 2절에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따라서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느니라.

그것을 비유컨대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 할지라도

자식이 얻어 쓰려면 쓸 때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불안하여

살기란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고 하셨도다.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진법(眞法)은

대순의 도법을 계승함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닌 오로지 대두목에 의해

새로운 도법으로 명부(주문)를 바꾼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명부가 완전하게 자리 잡게 되므로

천주(天主)님의 위상이 회복되고

바로 원의 시발점이었던

단주의 원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주(丹朱)의 후신(後身)으로

오신 상도 도전님께서

‘미륵세존’으로 밝혀져 봉안하시니

이로써 천하(天下)에 도(道)의 근본(根本)이

확립되고 진법(眞法)이 나오게 되었으므로

이것이 바로 신도(神道)를 풀어 조화하여

도수를 굳건히 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신 것이다.

즉 천부적인 종통의 계승에 따라

물샐틈없는 도수가 풀려져 나가게

신도(神道)로써 짜놓으신 것이니 결코

인위적인 조작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후일 내가 출세(出世)’한다 하심은

이렇게 다시 오셔서 열 석자의 천주(天主)를

밝혀 모시고 진법을 내놨는데도

도인들이 인정하려들지 않으나,

후일 머지않아 나의 진법이

세상에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다.

 

이때에는 너희들이 감히 나를

쳐다보지도 못할 것이니 지금 나를

똑바로 보아두고 잘 기억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지금 나를 뛰엄 뛰엄 보지 말고

진실로 이 진법(眞法)을 믿고

가식으로 하지 말고 진심으로 열심히 해서

후회 없도록 명심(銘心) 하라는 뜻이다.

 

출세(出世)라고 하면

일부 종파나 대순진리회 임원들은

‘살아서 다시 돌아오신다’거나

‘다시 태어나신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큰 오류이다.

출세(出世)란 흔히 세간에서

높은 벼슬을 하였거나 사업에 성공하였을 때

‘그 사람 출세(出世)했다’라고 말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의 진면목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

‘후일 내가 출세할 때에

눈이 부셔 바라보기 어려우리라’ 하신 뜻은

삼천(三遷)의 진법(眞法)을

추종(追從)하는 도인(道人)들에게

경각심(警覺心)을 일으키게 해주는 말이다.

 

진법의 도인들이나 혹은 세상 사람들이

단지 인간적으로 믿고 친숙히 따르다가

이 진법을 밝힌 대두목의 정체가 바로

‘만계(萬界)의 해인(海人)’이란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고 출세(出世)하게 되면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예로부터 신선(神仙)을 말로만 전하고

본 사람이 없느니라.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하신 말씀의 뜻은,

예로부터 여러 성인들이 신선을 가르쳤고,

많은 자들이 신선이 되고자 도(道)를 닦았으나

여지껏 신선이 되기는커녕

그 모습을 본 자 조차도 없었지만

이제 누구나 천주(天主)의 정체를 찾아 모시고

진정으로 대두목의 뜻을 받든다면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여지껏은 천주(天主)님의 정체가

밝혀져 나오지 않아 시천주(侍天主)를 하였어도

천강(天降)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천주(天主)님의 정체가

밝혀졌으므로 대두목을 모시고

진실로 대두목의 뜻을 받들어

그 유업(遺業)을 실행해 나가는 자가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고,

이제야 신선을 보게 되는 것이다.

 

● 해원상생(解冤相生)의 대의(大義)

 

대의[大義]란 사전적 의미를 보면

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큰 도리. ➁ 같은 말: 대의(大意).

 

사자성어로 ‘대의통천(大義通天)’이란 말이 있다.

즉 '큰 뜻을 따르면 하늘과 통한다.'라는 뜻이다.

 

 

                             해원상생(解冤相生)

 

인간은 자기 도량에 따른

기획의 설계가 의욕(意欲)의 발동인데,

그 의욕의 발동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간의 의욕이란

제한이 없어서 허영과 야망으로 넘쳐

허황된 꿈으로 사라지기 쉽다.

 

이와 같이 허황된 꿈으로 끝나게 되면

드디어 실망과 후회는 물론

자기도 남도 원망하게 되어 한을 품게 된다.

 

즉 서로가 분수를 망각하고 허영과 야망으로만

일관(一貫) 하게 되면 급기야는 서로가

피해를 입게 되어 원망을 낳게 되고,

이러한 원망은 남을 미워하거나

남에게 해독(害毒)을 끼치거나

언덕(言德)을 베풀지 않는 등의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 서로 간에 척(慼)이 생겨

풀지 못할 원한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생사존망(生死存亡)에는

협동ㆍ도덕이 기본이 되어 있으므로,

무엇보다 인간의 의욕(意欲)의 발동을

반성하고 조정하여 마음을 닦고

성품을 단련[修心煉性수심연성]하여

허영과 야망을 경계하고 분수에 합당케 하여

후회 없도록 하는 것이

해원(解寃)의 묘사(妙事)인 것이다.

 

증산성사께서 “속담에 ‘무척 잘 산다’ 이르나니

척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다.

남에게 원억(冤抑)을 짓지 말라.

척이 되어 갚나니라. 또 남을 미워 말라.

그 신명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

등등의 말씀은 해원상생의 윤리를

생활화 하여 실천토록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해원(解寃)은 척을 푸는 일이며

척을 맺는 것도 ‘나’요,

척을 푸는 것도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풀므로써 상대는 스스로 풀리게 되므로

양편이 척이 풀려야 해원(解寃)이 되고,

해원이 되면 자연히 상생(相生)이 되어

상부상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부상조하는 마음은

공존공영(共存共榮)의 화평세계를 건설하는

바탕이 되므로 해원상생의 윤리는

인류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실천윤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해원상생의 윤리를 천하만민으로 하여금

생활화하여 실천토록 함으로써

온 세계가 상생(相生)의 화평세상이 건설되도록

하는 것이 해원상생의 대의(大義)인 것이다.

 

※ 해원상생(解寃相生) : 맺힌 원을 풀어 없애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

※ 보은상생(報恩相生) : 은혜에 보답하고

서로 같이 잘살아 가는 것.

 

● 대의(大義)라 함은 제생 43절에 보면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인위양 신위음 음양상합연후 유변화지도야

不測變化之術 都在於神明 感通神明然後

불측변화지술 도재어신명 감통신명연후

事其事則謂之大仁大義也

사기사즉위지대인대의야

事有決斷然後 有變化之道也

사유결단연후 유변화지도야

春夏秋冬秋爲義 義則決斷也

춘하추동추위의 의즉결단야

 

사람은 양이며 신은 음이다.

신과 사람이 서로 상합한 연후라야

변화의 도(道)가 있는 것이다.

측도 할 수 없는 변화의 도술은

都(도)에 있는 神明(신명)에서 비롯되며,

이 神明(신명)과 감통한 연후라야

일을 일대로 정당(正當)하게 행(行)할 수 있으니

즉 이것을 대인(大仁) 대의(大義)라고 하느니라.

일에 있어서 결단이 있은 연후라야

변화가 있으므로 도(道)라고 하는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중에 가을은 의(義)이며,

의(義)란 즉 결단(決斷)인 것이다.

 

대인(大仁)은 천지의 주인이신

천주(天主)를 뜻하는 것이며

대의(大義)는 서신사명을 맡은 대두목이다.

그래서 대인(大仁) 즉

미륵세존과 통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大義) 즉 대두목과 통해야

의통이요 도통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주이신 도전님과 통하는 것이 아니고

그 대두목신명과 통해야 도통을 한다는 내용으로

이것이 바로 대의명분(大義名分)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은

의리 의(義)자 하나로도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도원결의로 죽을 때까지

그 의리를 지키던 유비·관우·장비 3형제는

후세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리를 일깨워 준다.

어떠한 재물이나 사회적 지위 명예,

이러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명분은

일찌감치 이들에게선 거리가 멀다.

오직 나라에 충성하는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

그들은 의리 하나로 뭉쳤을 것이다.

 

요즈음 의(義)자를 마음속에 되새겨 본다면

친구간의 의리, 선·후각 간의 의리,

도(道)의 의리, 어느 것 하나

잃어버리기 아까운 진정한 나의 재산이다.

친구들에게 도(道)에 대해 말을 했을 때

대부분의 친구들은 피하였으나

한 친구만은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나 하고

항상 신경써주며 나의 길을 막았을 때

처음엔 귀찮고 멀리하고 싶었으나

나중에 생각하니 그래도 진정한 의리를 생각하여

그렇게 말렸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고마웠다.

 

그러나 만약 내가

그에게 도(道)를 바르게 알려만 주었어도

해원상생의 대도(大道)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니 내 자신이 너무 부족하게만 느껴졌고

이것이 의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정으로 광구천하의 큰 뜻을 생각한다면

진법진리(眞法眞理)를 올바르게 전하여

포덕(布德)을 하는 것이 진정한 의리이다.

 

그리고 도인들 간에도 서로가 겸허한 마음으로

예의(禮義)로써 본분을 다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온다 해도

서로가 서로를 믿는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의리(義理)가 될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 계층의 사람도

남이야 어떻든 나 자신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심으로 가득 차있다.

친구의 우정 또한

물질로 거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적이 되어 서로가 미워하고

시기하는 상극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옆에서 사람이 쓰러져도 알 바가 아니고,

나이 드신 어른들의 힘겨운 모습을 보면서도

모른 척 하는 개인주의 풍조가 만연한 것이

오늘날의 실상이다.

점점 더 의로운 모습은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상생윤리를 온 천하에 알림으로써

나보다는 남을 위하는 마음이 앞서야 될 것이며

또한 우리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의(義)를 일깨워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인존시대로서

가을 법이 의(義)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결단이기도 하다.

 

맺고 끊음을 바로 할 줄 아는 수도인으로서

한 사람이라도 더 올바른 마음을 갖게 하여

후천 선경에 동참케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부터 그릇된 마음을 버리고

천지 공사의 일꾼으로써 순결한 마음으로

수도(修道)에 전념할 때다.

 

증산성사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슬퍼하신 그 마음을

이젠 조금이나마 내 가슴속에 느낀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포덕(布德)을 해야 한다.

용이 물을 구하기 위해

가시밭길도 마다 않고 가듯이

올바른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어떠한 난관도 극복한다는 자세로 나아가야겠다.

 

※ 결론적으로 의(義)라 함은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명분이 아닌데도

끊지 못하고 동조(同調) 한다는 것은

의(義)를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가 없다.

옳은 것을 알았다면 굳건히 지키고 이것을

잘 못 판단하여 옳은 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옳다고 의리(義理)를 지킨다고 하는 이들에게

정도(正道)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올바로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의(義)를 세우는 것이요,

의리(義理)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옳은 것을 알았다면 바로 판단하여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을 의(義)즉 결단이라 한다.

사사로운 정에 끊지 못하는 것은 의가 아니다.

※ 결단(決斷): ①결정(決定)하여 단정(斷定) 지음

②옳고 그름과 착함과 악함을 재결(裁決)함

 

그리고 행록 2장 4절에 보면

❮그들에게 일시 천하통일지기(一時天下統一之氣)

와 일월 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 주어서

역사케 하고자하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인(仁)이니라. 만일 ‘인’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가 다 저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인’자를 너희들에게 붙여 주노니 잘 지킬지어다.”

고 이르시고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 될 것이오.

저희들은 일만 할 뿐이니 모든 일을 밝게 하여

주라. 그들은 일을 마치고 갈 때에 품삯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덕하게 하라” 하셨도다.

 

이 말씀에서 인(仁)이란 바로

천지의 주인을 말하는데

이 인(仁)을 일본에게 붙여 주어서

그들이 천지의 주인을 모신다면

우리에겐 도통군자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며 그 주인을 영세불망 잊지 않고

모시기만 모시면 만사지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좌상에서 득 천하 하는 것이다.

 

그리고 都(도)에 있는 神明(신명)으로부터

술법이 나온다고 하였는데

도(都)란 바로 천지의 주인(主人)을 말하며

신명(神明)은 그 천지의 주인으로부터

명을 받아 기운을 내려주는

대두목 신명(神明)으로

태을천상원군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은 도(都)자에 관하여

박우당께서 밝히신 내용이다.

 

[개유보] 113P 신미년(1991년) 2월 12일 훈시

 

설령 아니라 그래도

내 말이라면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맡을 도(都)字』옥편에도

그런 도(都)자가 없더라고 박성구가 말한다.

그럼 내가 그걸 말하려고

일부러 만들었단 말인가?

내가 확인해봤어.

시봉시켜서 옥편 들여다봤는데

거기에 총(總)자로 나와 있다.

거느릴 총(總), 총지휘, 총재.

모두 도(都), 맡을 도(都)자지.

거느릴 도(都). 총(總)이란 모두 도(都)자여!

전(典)이란 법전(法典)자

법이 되고 “주장 주(主)”, “주인 주(主)”다.

모든 걸 주장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셨듯이 도전(都典)은 천지의 주인이다.

이렇게 박우당께서는 쪽박의 이치로서

도전이란 직책을 임시로 맡았다가

진짜 주인에게 넘겨주는 내용이다.

 

그래서 박우당께서는 훈시 말씀에

 

“우당(牛堂)은 소집이다.

소가 도(道)다.

소가 가는 곳이 마구간이다.” (80. 10. 25)

 

“대순성전 한 편에 심우도(尋牛圖)를 그려 놓았다.

도(道)를 찾는 것이다.

흰 소를 찾았다.

흰 소는 흰 백(白)자다.

백(白)은 人山이고, 신선 선(仙)자다.

즉 사람 산(山)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흰 백(白)자 안에 숨겨진 이치, 비결이다.”

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91. 2. 12)

 

또한 교운 2장 41절

포유문에 나오는 의(義)를 살펴보면

 

幸於此世有無量之大道 正吾之心氣 立吾之義理

행어차세유무량지대도 정오지심기 입오지의리

求吾之心靈任上帝之任意 洋洋上帝在上浩浩道主奉命

구오지심령임상제지임의 양양상제재상호호도주봉명

 

의리(義理)아닌 의리(義理)를 지킨다고

이렇게 한 세상을 헛되이 보냈으나

다행히도 이 세상에 한량없는 대도가 있으니,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義理)를 세워서,

나의 심령(心靈)을 구하여,

해인(海人) 의 뜻에 맡길지어다.

해인(海人)께서는 드넓은 세상에 계시고

광대(廣大)하신 천주(天主)의 명을 받는도다.

 

포유문에 나오는 성구(聖句)이다.

박우당께서는 이 성구에 대하여

“조정산성사의 포유하신 인도에 따르라.”

하시며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다.

<83.5.23>(『대순지침』p.90)

 

포유문(布喩文)은 창생들에게 도(道)를

일깨우기 위하여 널리 고(告)하는 글이다.

조정산께서는 이 글에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라고 원하는 것이 명예와 영화이나

그것은 얻기가 어려운데,

그 까닭은 도시 다른 데 있지 않고

지름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지름길은 다른 데서 구할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에게는

무한무량한 지극한 보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심령(心靈)이라

심령과 통하면 귀신과 더불어 수작할 수 있고

만물과 더불어 질서를 함께할 수 있다 하셨다.

사람들은 지극한 보배인 심령에 통할 길을 몰라

형적 없는 곳에 골몰하여 일생을 헛되이 보내는데,

다행히 이 세상에는

증산께서 펼쳐놓으신 상생의 대도가 있으니

자신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를 세우고, 심령을 구하여

해인(海人=대두목)의 임의에 맡김으로써

극락 오만 년의 청화세계에

동참하게 되리라고 선포하셨다.

이것이 포유문의 대략의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도인들의 수도생활에

경종을 울리는 성구가

“正吾之心氣立吾之義理求吾之心靈任上帝之任意”

정오지심기립오지의리구오지심령임상제지임의

이다.

나의 지극한 보배가 심령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과 통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심령과 통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소용이 없게 된다.

 

나의 심기(心氣)를 바르게 한다는 것은

마음에는 양심과 사심이 있는데

마음의 발로(發露)에

물욕에 의하여 일어나는 사심을 버리고

정직하고 진실한 양심을 회복하여

마음을 올바르게 먹으라는 의미이다.

 

나의 의리(義理)를 세운다는 것은

나의 언어ㆍ행동ㆍ처사가

크고 작은 의리를 지켜나가는 방향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친우에 대한 의리는 신의(信義)이고

부부지간의 의리는 열(烈)이며,

부모님에 대한 의리는 효(孝)이고

국가사회에 대한 의리는 충(忠)이며,

상제님과 도에 대한 의리는 대의(大義)이다.

인사도리(人事道理)로 충ㆍ효ㆍ열을 행하고

천지의 은혜에 대한 천지보본(天地報本)의 대의로

상제님께 성ㆍ경ㆍ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입오지의리(立吾之義理)의 뜻이다.

 

나의 심령(心靈)을 구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배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심령이니,

진귀한 보배로 다른 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나의 심령을 구하라는 의미이다.

 

해인(海人-대두목)의 임의에 맡긴다는 것은

대두목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정신을 모아

단전에 연마하는 것이 수도인데,

대두목을 가까이 모신다는 것은

본질에 있어서 대두목의 뜻을 모시는 것이다.

그것은 해원상생ㆍ보은상생의 양대진리로

창생을 교화하고 세상을 정화하여

지상선경을 이룩하시려는 대두목의 큰 뜻을

쉼과 틈이 없이 늘 잊지 않고

성ㆍ경ㆍ신으로 받드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의 심령을 대두목의 임의에 맡기는

삶을 사는 것이 도통진경에 이르는 첩경이다.

 

도통진경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박우당께서는

“대두목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언행과 처사가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세립미진(細入微塵)되고,

마음이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되었을 때

도통진경에 이르니라.

<80.7.22>”(『대순지침』 p.39)고 훈시하셨다.

 

내 마음이 무욕청정하게 되는 것은

기도 수련만을 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두목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항상 잊지 않고 나의 언행과 처사를

그 말씀에 일치하게 생활화하여

사소하고 세세한 곳에까지 미치고,

또한 대두목의 말씀에 일호의 차착이 없이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곧 내 마음을 무욕청정하게 하여

도통진경에 이르는 길이 되는 것이다.

 

나의 심령을

대두목의 임의에 맡기는 삶을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우리 도인들이 수도생활을 하면서

대두목의 의지에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킨다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대두목의 임의에 맡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인사(人事)가 대두목께서 대순하신 진리대로

이룩되어가는 것임을 확신하고

우리 자신이 대두목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자각에서 나오는 삶의 태도가

범사에 감사하는 자세이다.

『대순지침』에도 “대두목의 은혜에 감사하고

친은(親恩)에 보답하는 심신일여(心身一如)의

수신이 되어야 한다.

<83.10.26>”(『대순지침』 p.50)고 하여

감사와 보은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대두목의 의지에

우리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키는 삶을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도적(道的) 낙관주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증산성사께서는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공사 1장 3절)고 하셨고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교법 3장 4절)고 하셨다.

또한 증산성사께서

“나는 생ㆍ장ㆍ염ㆍ장(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교법 3장 27절)고

하셨듯이 이 세상의 인사(人事)가

증산성사의 무위이화의 권능이 구현되는 것임을

자각하고 천리(天理)에 맞게

무욕청정한 마음으로 인사도리를 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무위이화의 삶이다.

 

대두목의 의지에 우리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키는

삶을 산다는 것은 또한 늘 웃음을 잃지 않고

기쁨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증산성사께서는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으리라.”(교법 1장 4절)고 하셨고,

조정산성사께서는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

(吾道者今不聞古不聞之道也)라

믿고 닦기가 어려우니라.”(교운 2장 18절)고

하셨는데, 내 자신이

상제님의 상생대도에 인연이 되어

지금 여기서 수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실로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상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박우당께서 말씀하시길

“인류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隣保相助)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의 무한대한 진리에 있음을 이해하라.

<80.9.23>”(『대순지침』 p.20)고 하셨다.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의 무한대한 진리에

나의 의지를 일치시킨다면

나의 마음은 바다와 같은 광대한 수용성으로

내적인 평화와 기쁨의 상태를 체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예시 30절에 보면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제재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仁愛)를 베풀어

의(義)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라고 하였듯이 의로운 사람이 되어

성숙된 인간으로 거듭나야만 알곡이 되어

후천 선경에 참례자가 될 것이다.

 

※ 의(義)로운 자가 아니면

신명의 도움을 절대로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모두 다 그 본성에서는

죽음보다는 삶을 원하고,

미완성보다는 완성을 원한다.

그래서 우리 수도인(修道人)들은

이렇게 천지가 성공하는 때에

인간으로 완성(完成)되고자

성도(成道)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큰 열매로 완성될 수가 있을까.

『전경』말씀 에서 보여 지듯이

먼저 우리들 스스로가

의(義)로운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겠다.

『전경』에 의(義)란

불수전시전비왈의(不受全是全非曰義)라 하셨다.

 

봄에는 씨 뿌리는 것이 의(義)이고,

여름에는 뙤약볕과 태풍을 견디며

성장하는 것이 의(義)이고,

가을엔 큰 열매를 맺는 것이 의(義)이다.

늘 전적으로 옳거나,

또는 전적으로 틀리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

경우에 어긋남이 없이

그때에 가장 적합한 것이 의(義)이다.

 

따라서 의로운 사람이란

편견과 고집, 아집 없이 천지가 원하는 때에

천지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옳을진대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극복하고

끝내는 이루어 내고야 마는 사람이다.

 

천지가 성공하는 때에

천지의 성공을 도수에 맞게

한 치의 어그러짐도 없이

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다.

 

엄청난 자연의 변화 가운데서 죽어가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진정코 의(義)로운 사람이다.

 

우리가 도안에서 도법(徒法)을 통(通)해

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힘쓸 때

천지신명(天地神明)의 도움을 받아,

음양합덕, 신인(神人)조화로써

완성되어질 수 있으며 신인상합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참된 열매 맺어 성공해야 할 때이다.

 

살아 성공하는 진법(眞法)의 도(道)안에서

신명(神明)나게 바르게 수도(修道)하여

천지에 도움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교법 3장 47절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때때로 시를 읽어 주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깨우치게 하셨도다.

 

非人情不可近 非情義不可近

비인정불가근 비정의불가근

非義會不可近 非會運不可近

비의회불가근 비회운불가근

非運通不可近 非通靈不可近

비운통불가근 비통령불가근

非靈泰不可近 非泰統不可近

비령태불가근 비태통불가근

 

◐ 사람이 정이 아니면 가까이 가지 말고,

인정이 있으되 의롭지 못하면 가까이 가지 말고,

인정도 있고 의(義)가 있으되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면 가까이 하지 말며,

인정도 있고 의(義)도 있고 모임도 있으나

운영이 되지 않으면 가까이 하지 말고,

인정도 있고 의(義)도 있고

모임도 있고 운영이 잘 되더라도

서로 통하지 않으면 가까이 하지 말라.

인정도 있고 의(義)도 있고 모임도 있고

운영이 잘 되고 서로 통하더라도

영(靈정신)이 있지 아니하면 가까이 하지 말며

인정도 있고 의(義)도 있고 모임도 있고

운영이 잘 되고 서로 잘 통하고

영(靈신앙의 대상)이 있으되 그 영(靈정신)이

크지 않으면 가까이 하지 말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다 갖추어 졌으되

크게 거느려 나가지 못하면

가까이 하지 말 것이니라.

 

不受偏愛偏惡曰仁 不受全是全非曰義

불수편애편오왈인 불수전시전비왈의

不受專强專便曰禮 不受恣聰恣明曰智

불수전강전편왈예 불수자총자명왈지

不受濫物濫欲曰信

불수남물남욕왈신

 

◐ 치우쳐 사랑하거나

치우쳐 미워하지 않는 것을 일러 인(仁)이라 하고,

전적으로 긍정하거나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것을 일러 의(義)라 한다.

지나치게 강직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아첨 하지 않는 것을 일러 예(禮)라 한다.

너무 방자하게 귀가 밝거나 너무 방자하게

눈이 밝지 않는 것을 일러 지혜(智)라 하고,

재물을 함부로 주거나

재물을 함부로 바라지 않는 것을

일러 신(信)이라 한다.

 

【예시 45】증산성사께서

태인(泰仁) 도창현(道昌峴)에 있는 우물을 가리켜

‘이것이 젖(乳)샘이라’고 하시고

‘도는 장차 금강산 1만2천 봉을 응기하여

1만2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

그러나 후천의 도통군자에는 여자가 많으리라’

하시고 상유도창 중유태인 하유대각

(上有道昌 中有泰仁 下有大覺)이라고

말씀하셨도다.

 

[주해]태인(泰仁)이라 한다면

인(仁)은 씨종자 인(仁)이고,

태(泰)는 클 태(泰)자로써

인간의 큰 씨종자를 의미하고

도창현(道昌峴)은

도(道)를 창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도를 창성시킬 큰 인간의 씨종자를 의미한다.

도를 창성시킬 씨종자의 의미로

우물(井)을 가리켜 이것이 젖(乳)샘이라고 하셨다.

젖은 생명을 주는 양식이다.

젖 속에 양분이 있으니

생명의 근원인 도(道)가 있다는 말씀이다.

즉 우물(井)의 물에서

모든 도(道)의 이치가 표출되어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이

‘큰 씨종자[泰仁]’인 것이다.

‘물에서 도가 나온다’ 함은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께서

박성구도전님의 정체가 미륵세존이심을 밝힘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완성된 도(道)가 나온 것이다.

 

• 상유도창(上有道昌)   먼저 도창(道昌),

도를 번창시키는데 있고,

 

• 중유태인(中有泰仁)   내적으로 태인(泰仁),

큰마음을 갖는데 있으며,

 

• 하유대각(下有大覺)

그리고 대각(大覺), 도를 크게 깨닫는 것이다.

 

【교운1장 34절】

또 증산성사께서 말씀을 계속하시기를

‘공자(孔子)는 72명만을 통예시켰고,

석가는 500명을 통(通)케 하였으나

도통을 얻지 못한 자는 다 원(寃)을 품었도다.

나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

누구에게나 마음을 밝혀 주리니

상재는 7일(七日)이요, 중재는 14일(十四日)이요,

하재는 21일(二十一日)이면 각기 성도(成道)하리니

상등은 만사를 임의로 행하게 되고,

중등은 용사에 제한이 있고,

하등은 알기만 하고,

용사를 뜻대로 못하므로

모든 일을 행하지 못하느니라’ 하셨도다.

 

[주해]공자(孔子)는 3000명의 제자에게

유도(儒道)를 닦게 하여 72명만을 통예시켰으며,

석가(釋迦)는 5만 명의 제자에게

불도(佛道)를 닦게 하여 500명만 통하게 하였으니,

도통(道通)을 얻지 못한 자는

다 원(寃)을 품었다는 것이다.

 

그 때는 지존시대(地尊時代)인지라

신명이 땅에 봉(封)하여져 있으므로

공자(孔子)가 정기를 받고 태어난

니구산의 봉우리 숫자가 72봉이므로

72명밖에는 통예할 수 없었고,

석가모니가 정기를 받고 태어난 석정산은

봉우리 숫자가 499봉이므로

499명밖에는 불도에 통예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이고,

신명(神明)이 사람에게 임하기에

증산성사께서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

누구에게나 신명(神明)을 봉(封)하여

도에 통하도록 공사를 행하셨으니

상재는 7일이며, 중재는 14일이면 되고,

하재는 21일이라야

각자가 성도(成道)가 된다는 것이다.

성도가 되면 상등 사람은

만사를 임의로 용사할 수 있지만

중등 사람은 용사에 제한이 있으며,

하등 사람은 알기만 하고

용사를 뜻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공사 2장 13절】

증산성사께서 농암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허미수(許眉 )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의 1만2천 고물은 녹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金剛山) 1만2천 봉은 겁기가 붙어 있으니

이제 그 겁기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네가 김광찬 • 신원일과 함께

백지 일방촌씩 오려서 시(侍)자를 써서

네 벽에 붙이되

한 사람이 하루 400자씩 열흘에 쓰라.

그리고 그 동안 조석으로 청수 한 동이씩 길어

스물네 그릇으로 나누어 놓고 밤에

칠성경(七星經) 삼칠편을 염송하라’ 명하시니라.

형렬은 명을 좇았으되

신원일이 즐거이 행하지 아니하므로

증산성사께 아뢰이니 증산성사께서는

‘정읍 이도삼을 불러서 행하라’ 분부하시니라.

 

형렬은 그를 데려다가 열흘 동안

분부대로 행한 후에 김갑칠을 보내어

일을 마쳤음을 증산성사께 아뢰게 하였더니

증산성사께서 갑칠에게

양(羊) 한 마리를 사 주며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라’고 이르셨도다.

 

[주해(註解)]

강선루(降仙樓)는 광해군(光海君)이 창건하여

허미수(許眉 )가 중수한 것으로써

평안남도 성천읍(成川邑)

비류강(沸流江)가 언덕에 있는 수각인데

관서팔경중의 하나이며,

국내에서 으뜸가는 누각이다.

고물이란 우물마루 즉,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널빤지를 가로세로로 놓은

마루의 귀틀 두 개 사이의 구역을 말함이다.귀틀은 마루청을 놓기 전에

먼저 굵은 나무로 가로 세로로 짜놓은 틀이다.

 

우물(井)은 도를 창성시킬 씨종자의 의미로

우물(井)을 가리켜 이것이 젖(乳)샘이라고

하셨으니 이 우물이 바로 한우물이다.

왜냐하면 우물 정(井)이나

우물귀틀 한(韓)이 뜻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한 우물에서 도가 창성되는 것이다.

 

이 고물이 1만2천이라하니

마루청의 칸수가 1만2천이라는 말이다.

한 칸에 한 명이 앉을 수 있으니

1만2천 자리를 말함이다.

강선루(降仙樓)란 신선(仙)이 내린다는 누각이니,

1만2천 신선(仙)이 내려 앉는 자리에는

녹(祿)줄이 붙어 있다.

즉 1만2천 도통군자들의 운수자리는

후천의 복록(福祿)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강산(金剛山) 1만2천 봉에는

도통군자의 정기가 서린 곳인데

그 정기에는 겁기(劫氣)가 붙어 있다.

조상 선령신(先靈神)들이 60년 동안을

온갖 공덕을 들여 쓸만한 자손을 하나 타내어

이 세상에 내려 보내고,

운수자리를 매길려고 갖은 정성을 다하여

도문(道門)에 입도(入道)시켜

지극히 보살피고 계신다.

 

그러므로 도인들의 운수 뒤편에는 보이지 않는

선령신들의 음덕(陰德)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선령신(先靈神)들은

선천의 상극세계(相克世界)에서 살아오며

서로간에 원( )이 맺히고

척(慽)이 생겨 겁액(劫厄)이 가득하니

그 자손의 운수(運數) 길에 영향이 가므로

금강산 1만2천 봉에는

겁기(劫氣)가 붙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무뿌리의 나쁜 영향이

가지와 열매에까지 미치게 되니,

그 겁액이 도통군자가 될 자손에게까지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인들의 수도 과정에

이러한 겁기로 말미암아

지극히 어려움을 겪게 되겠기에 증산성사께서

그 겁기(劫氣)를 제거하는 공사를 행하셨다.

 

공사 내용을 보면 김형렬과 김광찬,

신원일 3명에게 흰 백지를 일방촌(3×3㎠)씩 오려

모실 시(侍)자를 써서 네 벽에 붙이되,

한 사람이 하루 400자를 써서

열흘 동안을 쓰게 하니,

한 사람당 4000자를 써서

3명이면 모두 1만2천 모실 시(侍)자를 써서

네 벽에 붙이게 된다.

즉 1만2천 명은 주인(主人)을 모시는

도통군자들을 의미한다.

이것을 네 벽에 붙인다 함은

후천 정역은 인존시대(人尊時代)로써

사람이 사계절을 맡아 운영하고,

천지사방을 다스리므로

사방에 자리를 배치하신 것이다.

그리고 조석으로 청수 한 동이씩 길어

스물네 그릇으로 나누어 놓고

밤에 칠성경(七星經) 삼칠편을 염송토록 하셨다.

 

청수 한 동이는 수기(水氣)를 가진 대두목이고,

스물네 그릇에 나누어 담음은

수기(水氣)가 24방위의

24절후에 영향을 미쳐 다스리는 것이데,

24방위에는 각 방위별로 도통군자가 자리한다.

즉 대두목이 24방위의 도통군자를 다스려

1년 24절후를 운행해 나가는 것을 말함이다.

칠성경을 염송토록 함은

대두목 자리인 태을성(太乙星 ; 북극성)은

칠성(七星)을 움직여 24절후의 기운을 다스리는데

앞으로는 24절후를 인간이 운행하므로

주문으로써 칠성신명을 응기 시켜

24절후 기운을 다스리는 것이다.

신원일(辛元一)이 즐거이 행하지 않자

정읍(井邑) 이도삼(李道三)을 불러서 행하였다.

 

원일(元一)은

원위(元位)에 한 분만 모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명이 응하지 않아

즐거이 행하지를 못한 것은

그 신앙의 대상이 잘못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즉 신앙의 대상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로만 모시기 때문에

신명이 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도삼(道三)을 불러 행하였는데,

 

도삼(道三)이란?

도가 삼천(三遷)이라야 원위(原位)의 한 분이신

신앙의 대상이 밝혀져 완성이 된다는 의미이다.

즉 삼천(三遷)의 진법(眞法)을 찾아서 수도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갑칠에게 양(羊) 한 마리를 사주시면서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라’고 하셨다.

양(羊)은 신미년(辛未年), 을미년(乙未年)에

오신 증산(甑山), 정산(鼎山)을 의미하나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라’ 했으니

조정산께서는 아니고 바로 증산성사의

출세(出世)를 기다리라는 말씀이시다.

 

공사 3장21절에는

 

“이제 천하에 물 기운이 고갈하였으니

수기를 돌리리라” 하시고

피란동 안씨의 재실(避亂洞. 安氏齋室)에 가서

우물을 대(竹)가지로 한 번 저으시고

안내성에게 “음양이 고르지 않으니 재실에 가서

그 연고를 묻고 오너라”고 이르시니

그가 명하신 대로 재실에 간즉

재직이 사흘 전에 죽고 그 부인만 있었도다.

그가 돌아와서 그대로 아뢰이니 증산성사께서

들으시고 “딴 기운이 있도다. 행랑에 가보라”고

다시 안내성에게 이르시니 내성은 가보고 와서

“행랑에 행상(行商)하는 양주가 들어 있나이다”고

아뢰니라. 그 말을 들으시고 증산성사께서

재실 청상에 오르셔서 종도들로 하여금

서천을 향하여 만수(萬修)를 크게 외치게 하시고

“이 중에 동학가사를 가진 자가 있느냐”고

물으시는도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그것을 올리니 증산성사께서 책의 중간을 갈라

“시운벌가벌가기즉불원(詩云伐柯伐柯其則不遠)

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이 어길 바 없으나

이는 도시 사람이오.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목전의 일만을 쉽게 알고 심량없이 하다가

말래지사(末來之事)가 같지 않으면

그 아니 내 한(恨)인가”를 읽으시니

뇌성이 대발하며 천지가 진동하여 지진이 일어나고

또한 화약내가 코를 찌르는도다.

모든 사람이 혼몽하여 쓰러지니라. 이들을

증산께서 내성으로 하여금 일으키게 하셨도다.

 

주해(註解)

 

“이제 천하에 물 기운이 고갈하였으니

수기를 돌리리라” 하신 뜻은

선천은 수기가 말랐으므로 수기를 돌리지 않으면

모든 생명체는 죽게 되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이다.

그런데 그 물이 오염 되어 인류는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수기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예시」51절에 보면

“천지에 수기가 돌 때 만국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통어하게 되나니 수기가 돌 때에

와지끈 소리가 나리라”라고 하셨다.

 

우물을 대(竹)가지로 한 번 저으신 것은

댓가지로 저은 대로 물은 돌아가는 것이다.

우물물은 우물 정(丼)자로 표기 되고

우물 정(丼)은 우물귀틀 한(韓)과도 의미가 같다.

 

그리고 대나무는 일(一)자로 표현 되며

일은 하나이고 하나는 한이라 한다.

대나무는 한씨를 상징하는 것이 되니

한(韓)씨가 수기를 돌리는대로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씨가 수기를 돌리는 피란동으로

피란을 가야 안전한 것이다.

 

「공사」3장 20절에 보면

“지금은 천지에 수기가 돌지 아니하여

묘를 써도 발음이 되지 않으리라.

이후에 수기가 돌 때에 땅기운이 발하리라.”

고 하셨는데 이제 그 때가 되었기 때문에

수기가 돌게 되어 땅 기운이 발하게 될 것이다.

 

증산성사 말씀대로 수기가 마른다는 것은

지구가 사막화된다는 뜻이다.

사막화가 된다는 것은

밤낮의 일교차가 커진다는 뜻이다.

낮은 뜨겁고 밤은 추운 현상이다.

사막지대의 예를 들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기상에 대해

조그마한 식견만 가지고 있어도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어림짐작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농사꾼으로서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길

장차 밥 찾는 소리가 구천(九天)에 사무치리니

어찌 경홀히 하리요.

쌀 한 톨이라도 하늘이 아느니라. 고 하셨다.

 

피란동 안씨의 재실(避亂洞. 安氏齋室)이란

재실(齋室)은 문묘에서 유생들이

공부(工夫)하는 집이란 뜻으로

“의약복서종수지문”의 마패를 갖고 계신

스승 밑에서 천주(天主)를 모시고

공부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안씨(安氏)의 의미를 보면

편안할 안(安)자와 성 씨(氏)이다.

즉 이들은 불로불사의 길을 가고 있으니

아주 편안한 자들이 되는 것이며

인류의 씨종자가 되는 것이다.

 

우물물을 댓가지로 한 번 젓고

‘음양이 고르지 못하다’고 한 것은

재직이가 죽고, 그 아내만 남았으니

음양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랑에 딴 기운이 있으니 가보라고 하셨다.

가보고 와서 안 내성이 여쭈기를

“행랑에 행상(行商)하는 양주가 들어 있나이다”고

아뢰었는데 이 말씀의 의미는

후천은 정음(正陰)과 정양(正陽)의 도수인데

음양이 무너졌으니 딴 기운을 찾아보라 한 것이다.

그 딴 기운이란 바로 양주(兩主)이다.

 

양주(兩主)는 주인이 둘이라는 뜻으로

천지부모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분 하느님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월대어명”이라 하지 않았는가?

 

또한 행랑(行廊)은 아랫사람들이 사는

거처를 말하는 것이며 그리고 행상(行商)은

일반적으로 생산자로부터 사들인 물품을 여러

지방을 널리 돌아다니며 파는 상인을 가리킨다.

 

다시 부연 설명 하자면

스승 밑에 있는 제자들(행랑객)이

천지부모 두 분 주인(양주)을 모시자고

여러 지방을 널리 돌아다니며 포덕(행상)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비유를 들어 공사를 보신 것이다.

 

이로써 천지의 음양인 두 분이

바로 서게 됨으로써 천지의 모든 음양이

고르게 되는 것이다.

 

종도들로 하여금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만수(萬修)를 크게 부르게 한 것은,

서신사명으로 오신 증산성사께서 밝힌

진법(眞法)의 도(道)를, 제자들은 후회 없이

만족 할 수 있도록 닦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학가사에

“시운벌가벌가(詩云伐柯伐柯)하니

기즉불원(其則不遠)이라 이는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에 이르기를“

도끼자루를 베는데 장단과 굵기는

자신이 들고 있는 도끼자루에 기준하면

되기 때문에 그 기준이 먼데 있지 않다.

 

※ 伐柯(벌가); 도끼 자루감을 도끼로 벤다는

뜻으로 진리(眞理)는 눈앞에 있는 것이니,

먼 데서 구할 것이 아니라는 비유(比喩).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건마는,

이것은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

손에 쥔 도끼자루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도끼자루를 벨 수 있지마는,

 

이는 도시(都是) 사람이요

부재어근(不在於斤)이로다.

 

이는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요

도끼날에 원인이 있지 않다.

 

※도끼자루를 베는 것은 사람이 베는 것이요

도끼날이 스스로 나무를 베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스승님과 같은 사람이 되려면

닦는 사람이 스승님께서 교훈하신 말씀대로

닦는 사람이 그대로 실행해야 되는 것이요,

교훈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스스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전 빙풍장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셔서

도끼자루를 베려면 손에 쥐고 있는

도끼자루와 똑 같은 것을 베어야 되는 것과 같이

스승님과 같은 사람이 되려면

선생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스승님과 같이

행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목전지사(目前之事) 쉬이알고

심량(心量)없이 하다가서;

눈앞에 보는 일을 쉽게 알고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하다가서 큰 코 다친다.

 

※말래지사(末來之事) 같잖으면

그 아니 내 한(恨)인가;

 

끝에 가서 일이 뜻과 같이 잘되지 않으면

그것이 어찌 한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말래지사란 끝으로 오는 일로서

나중에 오는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눈으로 직접보고 도끼자루를 베는 것도

잘 살펴보지 않고 아무 나무나 베어

도끼자루로 쓰지 못하게 된다면

그 또한 한탄하게 될 일이 아니겠는가?

 

도를 이루는 것도 이 같이 쉽게 생각하고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대로 행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행하다가

뒤에 가서 도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면

그 역시 한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정말로 한탄할 일이다.

 

이러므로 세상일이 난지이유이(難之而猶易)하다.

즉 이러하므로 세상일이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쉽다는 것이다.

 

즉 세상일이 비록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깊이 생각하고 법에 따라서 잘하게 되면

오히려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지이난(易之而難)인줄을 깨닫고 깨달을까?

쉽다고 생각한 것이

어려운 것인 줄 깨닫고 깨달을까?

 

쉬운 일이라 해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힘써 행하지 아니하면

어려운 일보다도 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니

모든 일을 깊이 생각하고

힘써 바르게 잘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일이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도리어 쉽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깨달아서

모든 일을 제 멋대로 행하지 않고

법에 따라 신중하게

행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종운(鍾韻) 해설

 

鍾聲鳴兮여 宇宙警應이로다.

종성명혜 우주경응

第一鳴兮여 天氣下降하고

제일명혜 천기하강

第二鳴兮여 地氣上昇하고

제이명혜 지기상승

第三鳴兮여 人道中正하고

제삼명혜 인도중정

第四鳴兮여 造化始定하니 萬有具備로다.

제사명혜 조화시정 만유구비

 

鍾聲이 幾何오 十五相續이라 其理如何오

종성 기하 십오상속 기리여하

八卦相하고 九宮成數로다.

팔괘상 구궁성수

縱橫運用하여 十五成眞이라

종횡운용 십오성진

眞法如是하니 是曰眞理로다.

진법여시 시왈진리

 

(해설)

 

종소리의 울림이여

온 누리가 미혹에서 깨어나리라.

 

첫째 울림이여, 천기(天氣)가 내려오고

둘째 울림이여, 지기(地氣)가 오르고

셋째 울림이여, 인도(人道)가 바로 서고

넷째 울림이여, 천지의 이치가 근본적으로

바로 잡히고 만물 만상이 질서를 갖추리로다.

 

종소리는 몇 번이나 울리는가.

15번이 계속된다.

그 이치는 어떠한가.

팔괘가 서로 상응하고 구궁의 수를 이룬다.

구궁의 수가 종횡으로 운영하여

15의 오묘한 수치를 이룸으로

이것을 일러 진법이라 한다.

 

■ 15의 수리(數理)적 의미(우주의 운행원리)

 

낙서의 수리적 배치는

대원종(大願鍾)의 종운(鍾韻)에 나오는

‘팔괘상탕하고 구궁성수로다

종횡운 용하여 15성진이라’의 구절과 부합 된다.

인류의 크나큰 원(願)을 담은

대원종의 종운을 보면

 

종성(鐘聲)이 기하(幾何)오

십오상속(十五相續)이라

기리여하(其理如何)오 하고

구궁성수(九宮成數)로다

종횡운용(縱橫運用)하여

십오성진(十五成眞)이라

진법여시(眞法如是)하니

시왈진리(是曰眞理)로다

 

여기서 팔괘(八卦)는 하도(河圖),

구궁(九宮)은 낙서(洛書)와 관계가 있다.

하도의 팔괘가 체(體)라면

낙서의 구궁은 용(用)을 의미한다.

팔괘가 중앙 5를 얻어 구궁이 되어

용사(用事)를 하는 것이다.

이 때 수의 배치가 중앙에 5가 있고

종횡으로 합이 15가 된다.

 

천지 만물의 생성과 운행원리인 이 15수는

오행의 5가 삼변(三變)하여 생긴 수로서

생성 변화의 수리(數理)가 된다.

예를 들면, 5일이 세 번 합해지면 15일이 되는데

이때마다 절후(節侯)가 되며

각 절후마다 신명이 날씨를 담당한다.

 

그래서 절후가 변화의 마디가 됨에 따라

15일마다 날씨의 변화가 선명(鮮明)하게 된다.

달도 15일이 되면 만월(滿月)이 되어

달의 진면목(眞面目)이 드러난다.

 

15수는 팔괘와 구궁의 합작품으로

시간과 공간의 원리 즉, 우주의 원리를 의미한다.

그것도 온 우주에 꽉 차있는 진리(眞理)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로 우주자연이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이 진리요 진법인 것이다.

 

 

                  2011년 10월 09일 고도인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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