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륵 용화세상

(2) 강증산께서 행하신 많은 기행이적

고도인 2009. 1. 28. 12:05

 

(2) 강증산께서 행하신 많은 기행이적

 

 

강증산께서 약방에 계시던 겨울 어느 날

이른 아침에 해가 앞산 봉우리에 반쯤

떠오르는 것을 보시고 종도들에게 말씀하시니라.

 

 

“이제 난국에 제하여 태양을 멈추는 권능을

갖지 못하고 어찌 세태를 안정시킬 뜻을 품으랴.

내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고

담배를 물에 축여서 세 대를 연달아 피우시니

떠오르던 해가 산머리를 솟지 못하는지라.

그리고 나서 강증산께서 웃으며

담뱃대를 땅에 던지시니

그제야 멈췄던 해가 솟았도다.

-「대순전경」권지 1장 27절

 

 

강증산께서 청도원(淸道院)에서 동곡에 돌아와

계시던 어느 날 “풍 · 운 · 우 · 로 ·

상 · 설 · 뇌 · 전(風雲雨露霜雪雷電)을

이루기는 쉬우나 오직 눈이 내린 뒤에 비를 내리고

비를 내린 뒤에 서리를 오게 하기는

천지의 조화로써도 어려운 법이라” 말씀하시고

다시 “내가 오늘밤에 이와 같이 행하리라”

이르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과연 눈이 내린 뒤에 비가 오고

비가 개이자 서리가 내렸도다.

-「대순전경」권지 1장 22절

 

 

강증산께서 어느 해 여름에

김형렬의 집에 계실 때 어느 날 밤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강감찬은 벼락칼을

잇느라 욕보는구나. 어디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며 좌우 손으로 좌우 무릎을 번갈아 치시며

“좋다 좋다” 하시니 제비봉(帝妃峰)에서 번개가

일어나 수리개봉(水利開峰)에 떨어지고 또

수리개봉에서 번개가 일어나 제비봉에 떨어지니라.

이렇게 여러 번 되풀이 된 후에

“그만하면 쓰겠다” 하시고 좌우 손을 멈추시니

번개도 따라 그치는지라.

이튿날 종도들이 제비봉과

수리개봉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번개가 떨어진 곳곳에 수십 장 사이의 초목은

껍질이 벗겨지고 타죽어 있었도다.

-「대순전경」권지 1장 2절

 

 

강증산께서 을사(乙巳)년 봄 어느 날 문공신에게

“강태공(姜太公)은 七十二둔을 하고

음양둔을 못하였으나

나는 음양둔까지 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

-「대순전경」행록 3장 28절

 

 

이와 같이 태양을 멈추시거나

풍 · 우 · 상 · 설 · 뇌전을

자유자재로 일으키고 그치게 하셨으나

일정한 방법이 없이

말씀으로 또는 술잔을 들어 풍우를 일으키시고,

벽력표(霹靂票)를 벽에 붙이시거나

땅에 묻기도 하시어 뇌전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와 같이 강증산께서는 해인(海人)의 권능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海人(해인)을 찾아야만 미륵을 친견할 수가 있고

 

천주이신 彌勒世尊(미륵세존)을 모시고

 

수도하면 도(道)를 통하게 되어

 

대강(大降)을 받을 수 있으므로

 

후천선경에 동참할 수 있으니

 

불로불사(不老不死)하게 되는 것이다.

 

 

강증산께서는 동쪽 땅 끝 조그만 반도국에

머무신 이유는, 조선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무려 930여회에 이르는 외세의 침입으로

핍박당하면서도 민족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심성(心性)이 착할 뿐만 아니라,

 

신명(神明)과 하늘을 잘 섬기는지라

무명의 약소민족인 조선민족(朝鮮民族)을 도와

만고(萬古)에 쌓인 원(寃)을 먼저 풀어주고

세계개벽의 중심국으로 삼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강증산께서 인세로 오셔서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사멸에 빠진 세계창생을

건지는 공사(公事)를 조선을 중심으로 하여

역사(役事)하신 것이다.

 

강증산께서는 특히

“조선과 같이 신명을 잘 대접하는 곳이

이 세상에 없도다”하시며

조선민족을 신명과 하늘을 잘 섬기는

민족이었음을 칭찬하시기도 하였다.

 

강증산 성사는 혼란에 빠진 삼계를 바로잡아

진멸에 처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직접 이 땅에

강세하신 뇌성보화천존(雷聲普化天尊)으로

해인(海人)이시다.

 

이제 우리는 인류를 구하고자 오신

뇌성보화천존(雷聲普化天尊)의 대의에 머리 숙여

예를 올리며 이 분의 뜻을 세계만방에

알려나가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