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증산 성사께 김형렬이
“고대의 명인은 자나가는 말로 사람을 가르치고
정확하게 일러주는 일이 없다고 하나이다”고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실례를 들어 말하라고 하시므로 그는
“율곡(栗谷)이 이순신(李舜臣)에게는 두율천독(杜律千讀)을 이르고
이항복(李恒福)에게는 슬프지 않는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이 좋으리라고
일러주었을 뿐이고 임란에 쓰일 일을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고 아뢰이니라.
그의 말을 듣고 증산성사께서 “그러하리라.
그런 영재가 있으면 나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 슬프지 않는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의 고사
이율곡(李栗谷)은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나 반대파의 주장에 밀려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가 임진란 10년전으로 그는 삼사(三司)의 탄핵으로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인 파주로 낙향하였다. 그리고 율곡은 그의 5대 조부 이명신이 지어 놓은 낡은 정자를 헐고 다시 지었다. 이 정자는 임진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높은 언덕위에 지어진 정자로써 율곡은 어릴 때 부터 이 정자에 올라 시를 짓고 학문을 연마한 곳이고, 또한 여기서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기도 하다. 율곡이 정자를 다시 지을때 기둥과 도리, 들보와 석가레 등 자재를 온통 관솔로만 썻다. 그래서 “정자가 너무 사치스럽지 않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율곡은 단지 “훗날 긴히 쓰일 데가 있을 것이다.”라고만 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율곡은 화석정(花石亭)에 들러 묵상 할 때면 언제나 기름걸레로 마루 바닥과 기둥을 닦으라고 시켰다.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 물으면 그저“훗날 긴히 쓰일 데가 있을 것이다”라고 만 답하였다.
그리고 임진란이 일어나기 8년전 율곡은 세상을 떠났다. 율곡이 세상을 떠나기전 유언하기를 “내가 떠나더라도 정자에 일년에 한번씩 꼭 기름을 칠하라”고 하였다.
임진란이 일어나자 무방비상태에 있던 조선은 맥없이 왜군에게 패퇴하여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로 몽진길 에 올랐다. 선조의 몽진일행은 벽제관에서 황급히 점심을 먹고 임진강에 도달한 시간은 한밤중이 되어서 였다. 이날은 하루 종일 큰비가 내린데다 그믐밤이라 칠흑같이 어두워 배는 보이지 않고 왜군들이 뒤쫓고 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는지라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 이때 피난길을 안내하던 도승지 이항복은 문득 율곡선생이 생전에 한말이 떠올랐다. “화석정이 훗날 긴히 쓰일데가 있을 것이다.”
백사 이항복은 율곡이 아꼈던 제자중의 한사람이었던 것이다. 이항복은 지체 없이 사람을 시켜 “강 언덕 위에 정자가 있을 것이니 찾아서 불을 지르라”고 하였다.
절벽위 화석정에 불을 질러 강바닥을 대낮같이 밝힌후에야 겨우 배를 찾아 선조일행은 무사히 임진강을 건널수 있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선조에게 이항복은 율곡선생이 화석정을 관솔로 다시 짓고 매년 기름을 칠하게 하였다고 아뢰자 선조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율곡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 이강을 건너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하고 하소연 하였다고 한다. 이와같이 율곡은 이미 선조가 임진강을 건너 피난 할 것까지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지나는 말로만 대답할 뿐이었다.
이율곡은 이와 마찬가지로 이항복에게 “슬프지 않은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이 좋으리라”고 가르쳤고, 이순신에게는 ‘두율천독(杜律千讀)’만 가르쳤으나 이것이 훗날 임진란을 당하여 크게 쓰일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율곡의 이 애매모호한 말은 훗날 임진란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크게 쓰이게 되었다.
이항복에게 일러준 가르침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감동시켰으며, 이순신에게 말해준 두율천독은 해전(海戰)에서 크게 쓰여 왜의 보급로를 끊음으로써 왜군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아무런 대비책도 없던 조정에서는 북으로 도망가며 한편으로 명(明)에 원군(援軍)을 청하였다. 그러나 명군은 처음부터 남의 나라 싸움에 분투하고자 하는 마음도 크게 없었으며 게다가 구원병을 이끌고 온 이여송(李如松)은 의주로 피난 온 선조의 볼품없는 몰골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가려 하였다.
다급해진 이항복은 좋은 꾀가 생각났다. 이항복은 선조에게 막사 내에서 항아리를 끌어안고 울라고 하였다. 항아리에 머리를 박고 울면 그 소리가 웅장하게 나므로 이항복은 이여송으로 하여금 선조가 외모는 보잘 것 없지만 속은 웅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선조는 슬프지 않는데 어떻게 우느냐고 하며 울지 않자 이항복은 꾀를 쓸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율곡이 말해준 ‘슬프지 않은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이 좋으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항복은 수건에 고춧가루를 싸서 선조에게 눈을 닦으라고 하였다. 선조는 이항복이 시키는 대로 고춧가루를 싼 수건으로 눈을 닦자 눈에서 절로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한 번 눈물이 나자 선조는 그동안 쌓였던 어려움과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 항아리를 끌어안고 엉엉 울어대니 그 소리가 이여송의 막사에까지 울려 퍼졌다.
이여송이 그 소리를 들으니 용성(龍聲)인지라 깜짝 놀라 어떤 위인이길래 이렇게 울음소리가 우렁찬가 알아보라 하니 선조의 막사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에 이여송은 선조의 몰골은 형편없어도 그 마음에 품은 웅지(雄志)는 크다 하여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왜병을 물리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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