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고사(故事)

●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 고사

고도인 2008. 5. 27. 07:49

강증산 성사께서 말씀하셨다.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라 하였으되

제갈량(諸葛亮)은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와

박전십오경(薄田十五頃)의 탓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느니라.”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라.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가정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와 박전십오경(薄田十五頃)

 뽕나무 800그루와 천박한 밭 15경.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 고사


제갈량이 유비를 만나 천하사를 위해 떠날 때 동생 제갈균에게 당부하여 말하길 ‘내가 유비현덕의 세 번 찾아 주신 은혜를 받으매 아니 갈 수 없어 나갈 터이니, 너는 여기서 부지런히 밭을 갈아 땅을 묵히는 일이 없도록 해라. 내 공을 이루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제갈량에 대해 지은 시가 있으니 이러하다.


미처 집을 나서기 전 돌아올 일 예산했네.

그가 공명 세운 날에 응당 생각나련만

간곡한 임의 부탁 저버릴 길 없어

추풍(秋風) 오장원(五丈原)에 큰 별은 떨어졌네.


여기서 제갈량의 마음과 뜻을 볼 수가 있다. 제갈량이 천하사에 뜻을 두고 혼란한 시국을 평정하여 천하의 창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의(大義)를 가졌다면 다시 돌아올 날을 걱정하여 유상팔백주와 박전 15경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갈량이 유비현덕의 삼고초려에 응한 것은 천하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분연히 일어선 것이 아니라 단지 유비현덕이 세 번이나 자신을 찾아온 간곡한 부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어서이고, 또한 이로써 자신의 뛰어난 재주를 발휘하여 천하를 제패해보고자 하는데 뜻을 두고 있었음을 역력히 읽을 수가 있다.

천하창생을 편히 해주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재주를 세상에 한번 발휘해보고자 하는 공명심에서 나섰고 공을 세우고 나면 미련 없이 다시 돌아올 기약을 내심(內心) 하고 있었으니 천하사를 하러 떠나는 마당에 동생인 제갈균에게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을 맡아 잘 간수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언제까지나 제갈량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유비에게 올린 상소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初城都有桑八百株 薄田十五頃 子孫衣食自有餘饒 不別治生

초성도유상팔백주 박전십오경 자손의식자유여요 불별치생

以長尺寸臣死之日不使廩有餘票庫有餘財以負陛下及卒果

이장척촌신사지일불사름유여표고유여재이부폐하급졸과

如其言

여기언


제갈량이 표상소를 올려 가로되 ‘신이 처음에 성도에다 뽕나무 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을 두어 자손의 의식에 여유가 있으니 달리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자 하지 않겠으며 신(臣)이 죽을 때에 창고에 곡식을 남기고 창고에 재물을 남겨두어 폐하께 부담이 되게 하지 않으리다. 하더니 과연 그 말과 같으니라’ 하였다.

이 상소에는 제갈량의 청렴결백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고는 하지만 그 마음속에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이 떠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을 남겨둔 것은 자신이 공을 이루는 날 다시 돌아가기 위한 기약이고, 자신이 죽을 때에 창고에 곡식을 남기고 창고에 재물을 남겨두어 유비현덕에게 부담이 되게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자신이 혹여 실패하더라도 자손들의 의식에는 여유를 둘 수 있으니 걱정이 없다는 말이다.

즉 제갈량이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을 언제까지나 마음속에서 털어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것은 공명을 세우고 나면 돌아가겠다는 그 마음을 떨쳐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며, 또 자신이 혹여 실패해도 자손의 의식에 염려가 없도록 방비를 미리 갖추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제갈량의 ‘유상팔백주와 박전십오경’은 천하창생들을 염려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공명과 가사(家事)의 안위를 먼저 염두에 두고 있는 소극한 마음의 반영인 것이다.

제갈량의 모사(謀事)가 신에 가까울 만큼 뛰어났다고 하지만 이런 소극적인 마음에는 신명(神明)들이 응해줄리 만무한 것이다. 그 뜻이 천하창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의(大義)에 있지 않았기에 제갈량이 꾸민 모사에 신명이 응해주지 않게 되자 결국 천하사(天下事)를 성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제갈량이 호로곡(葫蘆谷)에서 사마의(司馬懿) 삼부자를 화공작전을 써서 꼼짝없이 죽게끔 만들었으나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려 사마의 부자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이 때 제갈량이 하늘을 우러러 한 말이 ‘모사재인(謀事在人)이요, 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 하였다. 즉 사람이 일을 꾸며도 이루고 말고는 하늘에 있다는 말이다. 제갈량의 신과 같은 재주라도 신명이 응해 주지 않으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오장원(五丈原) 전투에서 사마의(司馬懿)가 천문을 보아 제갈량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지연작전을 써서 제갈량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제갈량이 죽자 전투를 치루어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그 아들 사마소(司馬昭)가 위(魏)를 도와 촉한(蜀漢)을 멸망시키고, 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위제(魏帝)로부터 황제자리를 양위 받아 제위에 올라 동진(東晋)을 세우고 사마의를 선제(宣帝)로 받들었으니 결국 천하는 사마씨(司馬氏)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갈량의 재주는 뛰어 났으나 그가 품은 뜻이 혼란한 시국을 평정하여 창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의(大義)보다는 자신의 재주를 발휘하려는 공명심과 가사의 안위에 연연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그의 모사에 신명이 응해주지 않아 대사를 그르치고 말았던 것이다.

조정산께서 말씀하시길

‘천하사(天下事)를 도모(圖謀)하는 자는 모름지기 하우씨(夏禹氏)를 본(本) 받을 지니라’ 증산성사께서도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니라’ 하시고 제갈량의 성공하지 못한 고사(古事)를 말씀하셨거니와 ‘하우씨(夏禹氏)는 구년치수(九年治水)하는 사이 삼과기문(三過其門)하되 불입기문(不入其門)하였으므로 왕천하(王天下)하였느니라.

하우씨(夏禹氏)인들 구년 동안 어찌 처자식이 그립지 않았으랴’ 하셨다.

천하를 건지려는 뜻을 둔 자가 나의 한 개인적인 가사에 치우친다면 천하사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가사를 져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천하(天下)도 역시 하나의 큰 가정이므로 천하사의 책임을 맡은 자는 천하의 큰살림을 모두 살펴야 하는 것이지 개인적인 살림에 연연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우씨(夏禹氏)는 구년치수를 하는 동안 자기 집 앞을 세 번 지나칠 일이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것이 어찌 하우씨가 집안 식구들을 위하는 마음이 없어서이겠는가. 그러나 천하창생의 목숨을 책임진 자가 개인의 정에 이끌리어 마음에 편중을 두고 내 가정을 먼저 살핀다면 가정을 두고 치수(治水)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누구인들 개인의 사사로움이 없는 자가 있겠는가. 그 사사로움을 모두 채우고자 하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재 살 길만 챙기느라 바빠서 천하창생을 구하는 치수(治水) 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의 고사에서 보았듯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박전십오경과 유상팔백주를 두어 자손의 의식은 여유가 있으니 자신의 생활은 조금도 염려가 없다고 장담하였으니 제갈량이 과연 천하창생의 배를 불리고자 하였겠는가? 창생을 구하고자 하는 뜻이 없는 곳에 신명이 응할 리가 만무한 것이니 천하사를 성공시킬 수 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사를 하는 자는 천하에 공평하게 처사하는 것이지 내 가정의 안위에 우선을 두어 편중을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우씨는 천하창생을 구제하고자 하는데 뜻을 두고 천하사에 공평무사하였을 따름이요. 사사로운 감정을 조금이라도 두지 않았으므로 천하의 왕(王)이 되었으니 천하사에 뜻을 둔자라면 이 두 가지 고사를 잘 생각하여 마음가짐에 본(本)을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