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고사(故事)

● 정북창 설화(說話)

고도인 2008. 5. 27. 07:24

 

“예로부터 생이지지(生而知之)를 말하나

이는 그릇된 말이라.

천지의 조화로 풍우를 일으키려면 무한한 공력이 드니 모든 일에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정북창(鄭北窓) 같은 재주로도 입산 3일 후에야 천하사를 알았다 하느니라”고 이르셨도다.


정북창 설화(說話)

 

정북창(鄭北窓)은 조선 명종 때의 학자․관리․도인(道人)인 정렴(鄭磏)을 말한다.

정렴의 자는 사결(士潔)이며 호는 북창(北窓)이며, 일명 용호대사(龍虎大師)라고 도 하였다.

정북창은 어릴 적부터 마음을 가다듬어 신(神)과 통할 줄 알았고, 가까이는 동리 집안의 사소한 일에서 멀리는 나라 밖의 다른 나라의 풍토와 기후의 다른 점과 외국인의 말까지도 마치 귀신처럼 잘 알아 맞추었다 한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할 줄 알았고

또 대낮에는 그림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천재요,

그림자가 없는 귀신이었다는 세평을 들을 만하였다.

 

정북창에 관한 설화(說話)는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북창이 14세에 부친 정순봉(鄭順朋)을 따라 중국 북경(北京)을 갔었는데, 이상한 기운을 바라보고 중국에 왔다는 유구(琉球 : 일본 오키나와에 있던 나라) 사람이 정북창을 보고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운명을 점쳤더니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중국에 들어가면 어떤 진인(眞人)을 만나게 될 것이다'고 하더니 당신이 참으로 그 사람이신가봅니다." 하고, 그 자리에서 배우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정북창은 유구말로써 주역(周易)의 요결(要訣)을 가르쳐주었다.

이리하여 외국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앞을 다투어 찾아와 보았다. 북창이 각국의 말로 응대하니 사람들은 깜짝 놀라 이상히 여기지 않는 자가 없고 천인(天人)이라고 불렀다. 한 사람이 자기의 운명을 묻는데, 객관(客館)에서 품팔이로 땔나무를 나르는 사람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눈 익혀 보았더니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당신도 할 말이 있어서인가?" 하니, "그렇습니다." 하였다.

같이 말을 나누어 보니 음양(陰陽) 운화(運化)의 기이한 술법을 잘 통한 사람이었다. 북창이, "당신은 어찌하여 품팔이를 하는가?" 하니, "이렇게 살지 아니하면 저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저는 촉(蜀)나라 사람입니다. 아무 해에는 아무 데로 가게 될 것입니다. 선생은 벌써 만물에 신통하여 무궁한 경지에 들어가셨으니, 「도덕경」(道德經)에 '문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의 일을 다 안다'고 한 말이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인가 봅니다." 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19세 때 국자시(國子試)에 뽑히고는 다시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양주 괘라리(掛蘿里)에 살 곳을 정하고 있었는데, 중종 때에 장악원 주부(掌樂院 主簿)·관상감(觀象監)과 혜민서(惠民署) 교수(敎授)가 되었고, 후에는 포천현감(抱川縣監)이 되었다가 갑자기 벼슬을 버리고 떠나났다.

 

정북창은 천성이 술을 즐기어 두어 말[斗]을 마실 수 있었고 취하지도 않았다. 북창 정염은 스승도 없었으며, 또한 제자도 없었다고 한다. 언제나 스스로 깨닫고 터득하였다. 언젠가 말하기를, "성인은 인륜(人倫)을 중히 여기는데, 석가(釋迦)와 노자(老子)는 마음을 닦아 성불[見性]하는 것만 말하고 인사(人事)의 학문은 빠뜨렸다. 아마 석가와 노자는 대개는 같으면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하였다. 그리고 남과 더불어 말할 적에는 공자(孔子)의 학으로 인륜(人倫)을 행하였다고 하니 그는 유불선에 두루 통달한 도인(道人)이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생전에 지은시에는 그 웅장한 포부가 잘 나타나 있다.


一生讀破萬卷書,       一日飮盡天鍾酒.

일생독파만권서,       일일음진천종주.             

高談伏羲以上事,       俗說往來不掛口.

고담복희이상사,       속설왕래부괘구.

顔子三十稱亞聖,       先生之壽何其久.

안자삼십칭아성,       선생지수하기구.


일생 동안 만 권의 책을 독파하고

하루에 천 잔 술을 마시었네.

복희씨(伏羲氏) 이전 일을 고고하게 담론하고

속설은 입에도 담지 않았네.

안자(顔子)는 삼십을 살아도 아성(亞聖)이라 불리었는데,

선생의 나이는 어찌 그리 길더뇨?


그리고서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나니 북창의 나이는 44세였다.

북창이 44세에 죽은 사연에 관한 일화가 전해져 온다.

친구 중 한 사람이 북창을 찾아와서 말했다.

“내가 44세가 되는 모월 모일 죽는다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겠는가?”

그러자 북창이 되물었다.

“그렇게 죽고 싶지 않는가?”

친구는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북창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모월 모일 어느 마을 어느 곳에 가면 수레를 끄는 노인이 한 분 계실 것이네, 자네는 아무 이유도 묻지 말고 그냥 그 노인에게 절을 하게나.”

이 말을 들은 친구가 모월 모일 그 장소에 가니 마침 수레를 끄는 노인이 보이길래 보자마자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인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줄곧 따라다니며 절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노인이 뒤를 돌아보며 그 친구를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북창이 보내서 왔군.”

그 후 그 친구는 44세를 넘기고도 건강히 살았지만, 북창은 44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북창이 친구와 수명을 바꾸었다고들 말을 한다.


그리고 정북창은 충청남도 아산군 송악면 솔리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계수(季嫂)의 아들인 조카는 사랑하지만 정작 자기 자식 둘은 사랑하지 않아서 아내가 불평을 하였다.

정북창이 금강산의 산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밤에 겹으로 병풍을 두르고서 관을 쓰고 머리를 빗질하는 것도 폐하고, 밖을 내다보지도 않은 채 하루종일 고요히 앉아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언젠가 절의 중이 찾아와 질문을 하였는데, 북창이 얘기를 나누다가 “오늘 집에서 일하는 머슴이 술을 갖고 올 것이다”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놀라면서 “아깝구나. 오늘은 술을 못 먹게 생겼구나!” 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집에서 머슴이 도착하여 말하기를, 술항아리를 지고 오다가 고갯마루 밖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항아리를 깨뜨렸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머슴은 아들이 지금 죽게 되었으니 빨리 집으로 가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정북창은 “그 아들은 내가 혼인하기 전에 죽인 두 이방이 복수하려고 나에게서 태어난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오히려 그 자리를 피하여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지방 고을 관찰사로 부임한 적이 있었다. 그 고을에 이방(吏房) 둘이 있었는데 이들은 행정을 하면서 부정한 일로 인하여서 고을에 원성이 자자하였다.

정북창이 관찰사로 부임하여 그들에게 몇 차례 경고를 주었지만 방자한 행동이 고치지 않고 오히려 정북창을 모함하려 들었다. 그들의 진상을 조사해본 결과 이미 전임 관찰사도 모함하여 쫓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들의 수법은 교묘하여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북창의 눈은 속일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북창은 마침내 그들을 참형으로 다스려 죽였다. 그런데 두 이방은 정북창을 극도로 원망하고 복수에 찬 두 눈을 부릅뜨고 죽었다.

얼마 후에 정북창 장가를 가서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 아버지를 노려보는 두 아들의 눈빛이 얼마 전에 처형시킨 이방들의 눈빛과 똑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고 경사라고 하였지만 북창은 내심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미 그 아들들이 복수를 하러온 이방임을 알았기에 조카는 귀여워했어도 자기 자식은 귀여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아들이 어느듯 18세가 되어 과거에 급제를 하여 돌아왔지만 정북창은 금강산에 들어가 나와 보지도 않았다. 과거 급제 얼마후 두 아들이 갑자기 깊은 병이 들어 함께 사경을 헤메자 하인이 급히 북창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자리를 피하고 말았던 것이다.

두 아들이 죽어 장사를 지냈는데 그날 밤 하얀 소복을 입은 두 아들이 무덤에서 나오더니 “앗다! 그놈 참 지독한 놈이다. 우리가 원수를 갚으러 아들로 왔는데도 저렇게 무심하게 대하니 어쩔 수 없다. 그냥 떠나자.” 하고 떠나는 것을 하인이 보고 주인에게 일렀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배우지 않고도 말을 하고 어려서부터 신(神)과 통하였다는 정북창이지만 입산 3일 후에야  천하사를 통하였다고 한다. 그의 나이 25세에 육통법을 시험해 보려고 입산하여 삼일 동안 정관하더니 이로부터 배우지 않고 저절로 통하여 천리 밖의 일도 생각만 일으키면 훤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신기한 능력을 지닌 정북창이지만 입산 3일 후에야 천하사를 알았고 하니 실제 공부하지 않고는 아는 법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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