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을 통해 본 대순진리

[스크랩] 9. 해인사에는 해인경(海印經)이 없다.

고도인 2008. 1. 12. 19:32
 

9. 해인사에는 해인경(海印經)이 없다.


해인경」은 다름 아닌 ‘해인(海印=海人)


이번 순행은 가야산 해인사를 가보고자 한다. 타 지방으로 나가면 풍경을 잘 보아라. 인심과 풍속을 앎이니라. 그리고 산세와 주위를 잘 관찰하고 그 지역의 발음된 이름과 뜻이 담겨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당께서 해인사를 둘러보시고 많은 임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 절에 「해인경(海印經)」이 있는가 알아보라”고 명하셨다. 그러자 임원들이 사찰 내를 두루 다니며 승려들에게 「해인경」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해인사에 그런 경전은 없다고 하였다.

임원들이 돌아와 「해인경」이 없다고 아뢰니, 도전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도전께서 해인사에 「해인경」이라는 불교경전이 없음을 왜 모르시겠는가? 도전께서 찾으라는 「해인경」은 다름 아닌 ‘해인(海印)’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해인(海人)’을 찾으라

 

석가여래가 49년 동안 설법한 ‘「팔만대장경」에 감추어진 가장 큰 비밀’은 다름 아닌 미륵(彌勒)을 찾는 것이다. 이 미륵불은 인류 궁극의 목적지인 극락(極樂)을 열어줄 부처이므로, 미륵이 세상에 출(出)하시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가장 큰 비밀인 것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을 살펴볼 때, 미륵은 해인에서 출(出)한다는 의미이므로, 해인을 찾아야 미륵의 출세(出世)를 맞이할 수 있고, 극락세상으로 인도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 우당께서 찾으라 한 「해인경(海印經)」은 다름 아닌 ‘海人(해인)’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해인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제 해인을 찾는 것이 문제이다. 해인을 찾아야 실제 미륵을 친견할 수 있고, 미륵용화세상으로 인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⑶ 남사고 秘結(비결)에 나오는 해인(海印)


해인은 예부터 수도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고자 한 보배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해인에 관한 전설이나 비결 등이 많이 전해져 왔다. 다음은 조선 명조 때 천문학 교수를 역임했던 격암 남사고의 참서(讖書) 중에 나오는 해인(海印)에 관한 설명이다.

八萬念佛藏經中 彌勒世尊海印出

팔만염불장경중 미륵세존해인출


팔만 가지 부처의 설법을 기록한 경전 중에 미륵세존(彌勒世尊)이 해인(海印)에서 출(出)한다고 하였다.


-『격암유록』 은비가(隱秘歌)


秦皇漢武求하던 不老草不死藥이 어데 있소

진황한무구 불로초불사약

虹霓七色雲霧中에 甘露如雨海印이라

홍예칠색운무중 감로여우해인

火雨露三豊海印이니 極樂入券發行하니

화우로삼풍해인 극락입권발행

化字化字化字印에 無所不能海印이라

화자화자화자인 무소불능해인


진시황과 한무제가 구하던 불로초 불사약이 어디에 있소. 일곱 색깔 무지개가 떠 있고, 운무 자욱한 가운데 비같이 내리는 단 이슬이 해인(海印)이라. 불, 비, 이슬 삼풍(三豊)이 해인이니 극락 들어가는 표를 발행한다. 불로 변화시키고, 비로 변화시키고, 이슬로 변화시키는 인(印)이 바로 무소불능한 해인이라.


-『격암유록』 해인가(海印歌)


化於千萬理有海印 一人擇之化

화어천만리유해인 일인택지화

悔過自責 吸海印無不通知

회과자책 흡해인무불통지


천만 가지 변화되게 하는 이치가 해인에 있다.

한 사람을 택하여 그렇게 되게 하였다.

허물을 뉘우치고 고쳐서 해인을 받아들이면 통하지 못함이 없으리라.


-『격암유록』 말운론(末運論)


위의 설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인(海印)에서 미륵세존이 출세(出世)한다고 하였고, 해인에서 극락으로 가는 입장권을 발행하며, 또한 이 해인은 무소불능(無所不能)하여 능히 행하지 못함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을 택하여 그렇게 되게 한다고 하였으며, 그 해인을 받아들이면 무불통지(無不通知)하여 우주의 모든 진리를 통하지 못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실로 탐나는 보배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⑷ 정만인(鄭萬人) 살만인(殺萬人)


또한 예부터 전해오는 해인에 관한 한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은 조선왕조가 그 운(運)을 다하는 것과 연계지어 꾸며져 있는데, 여기서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 말기, 세도가인 안동 김씨가 정권을 좌지우지하고, 왕의 종친들은 조금이라도 잘못 보이면 역모로 몰려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 가기가 예사이던 시절, 영조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이었던 흥선군은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파락호로, 또 한편으로는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언제나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철퇴를 내리치고 정권을 잡을 야망이 불타고 있었다.

흥선군의 부친인 남연군은 그의 나이 18세 때 돌아가셨는데,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그 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정권을 잡아 왕권을 회복하겠다는 야심으로 명당자리를 구하기 위해 정만인(鄭萬人)이라는 유명한 지관(地官)을 찾아갔다.

흥선군은 “부친의 묘를 이장하려고 하는데 좋은 곳이 없겠는가?” 하고 물었다.

정만인은 말하기를, 충청도 덕산 땅에 “만대에 걸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가 있고, 또 충청도 가야산 동쪽 덕산에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자리[二代皇帝之地]”가 있는데 둘 중 한 곳을 택하라고 하였다.

흥선군이 2대황제지지를 달라고 하자, 정만인은 요구조건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흥선군이 훗날 정권을 잡으면 자신에게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인출(引出) 감독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흥선군이 그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자 그가 자리를 일러주었는데, 가서 보니 그곳은 평범한 산비탈이 아니라 가야사(伽倻寺)라는 유서 깊은 거찰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묘 터는 바로 가야사 보웅전 앞 금탑(金塔)이 있는 자리라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으나, 26세의 혈기 방자한 흥선군은 일을 벌이고 말았다. 그는 우선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 묘를 500리나 떨어진 가야사 뒤쪽 절골로 옮겼다. 그리고 그는 집안의 가보(家寶)로 내려오던 단계(端溪) 벼루를 충청감사에게 뇌물로 주고는 가야사 중들을 쫓아내고 빈집으로 만든 후, 불을 질러 폐사(閉寺)시켜버렸다(「매천야록」에서는 흥선군이 재산을 처분한 2만 냥의 반을 주지에게 주어 불을 지르게 했다고 함).

이리하여 천년고찰 가야사는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절 뒤 금탑만 홀로 남아 있었다.

한편 탑을 헐기 전날 밤에 흥선군의 세 형들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수염이 흰 노인이 나와 “나는 탑신(塔神)이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나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느냐? 만약 끝내 이장을 한다면 너희 형제는 폭사하리니 속히 떠나라”고 하였다. 깜짝 놀라 깬 세 형들이 꿈 이야기를 하니 모두 같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은 대원군은 “그렇다면 이곳은 진실로 명당자리입니다. 명(命)이란 타고난 것인데 어찌 탑신이 관장하겠습니까? 종실이 쇠퇴하여 안동 김씨 문전에서 옷자락을 끌며 구차한 삶을 사느니, 죽더라도 차라리 일시에 크게 일어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형들을 설득했다.

이른 아침에 산에 올라가 탑을 깨뜨리고 보니, 그 자리는 전체가 돌이었다. 도끼로 돌을 내리치니 도끼가 튀기만 할 뿐,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그러자 흥선군은 도끼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나라고 왜 왕의 아비가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하고 소리쳤다. 그 뒤 도끼를 내리치자 바위가 깨졌다.

이장을 마치고 난 후 흥선군은 나중에 다른 사람이 손댈까 염려스러워 철(鐵) 수만 근을 녹여 관곽을 눌러 덮고, 그 위에 강회를 비벼 다져서 봉분을 했다.

흥선군은 이곳에 묘를 이장한 지 7년 만에 둘째 아들 명복을 낳았으며, 명복은 12세 되던 해에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되었다. 그리고 흥선군은 임금의 아버지로 대원군(大阮君)이 되어 안동 김씨들에게 철퇴를 가했다.

이후 아들은 고종황제가 되었고, 손자는 순종황제가 되었으니 정만인의 예언대로 된 셈이다.

1865년(고종 2년), 대원군은 남연군묘 맞은편에 있는 서원산 기슭에 절을 짓고 보덕사(報德寺)라는 이름을 내렸다. 절터를 빌려서 권력을 잡았으므로 그 은덕에 보답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조선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살만인(殺萬人)해야만 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독일 무역상인 오페르트가 부친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오페르트를 안내한 자가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지자, 진노한 흥선대원군은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에 들어갔다. 그때 흥선대원군은 살만인(殺萬人)을 ‘만 명을 죽여야 한다’고 해석하여 6년에 걸쳐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을 죽였는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하기를, 부친의 묘 자리가 2대까지 황제가 내려가는 자리라면, 그후는 영속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이씨 왕조가 끊어진다는 의미였다.

이 모든 것은 정만인의 소행인지라, ‘속았다’ 하고 보니 살만인(殺萬人)은 바로 ‘정만인(鄭萬人)을 죽이라’는 뜻임을 그제야 깨닫고, 해인사로 사람을 보내 정만인을 잡아오게 하였으나 그는 이미 해인사의 보물인 해인(海印)을 훔쳐 달아난 뒤였다고 한다.

한편 정만인은 해인을 훔쳐 어느 한 해도(海島=섬)로 들어가 장차 계룡산(鷄龍山)에 도읍을 열기 위해 대사(大事)를 꾸미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은, 이것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리고자 했던 게 틀림없다.

위의 내용을 보면, 해인을 찾기 위해서는 정만인이 해인을 훔쳐서 들어갔다는 해도(海嶋)를 찾아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해인은 바로 해도진인(海島眞人)을 찾아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해도진인이란 해도(海嶋=嶋)에 있는 진인(眞人)이란 말도 되지만, 섬 도(嶋)자의 의미를 가진 진인(眞人)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하튼 해인을 찾기 위해서는 해도(海嶋)로 가야 하며, 해도진인을 만나야 함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강증산 성사의 말씀 중에도 ‘해인(海印)을 가져다주리라’는 말씀이 있다.


⑸ 해도진인(海島眞人)을 통하여 표출


교운 1장 62절에 보면 형렬이 증산성사의 명을 좇아 64괘를 타점하고 24방위를 써서 올렸더니 성사께서 그 종이를 가지고 문 밖에 나가셔서 태양을 향해 불사르시며 말씀하시기를, “나와 같이 지내자” 하시고 형렬을 돌아보며 “나를 잘 믿으면 해인(海印)을 가져다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위 성사의 말씀으로 미루어보더라도, 해인은 수도의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실로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64괘(卦)는 역(易)의 8괘(卦)를 세분화한 것으로 신(神)을 배치한 방위가 적힌 부도(符圖)인데, 이것은 3,000년에 한 번 변천하게 되어 있다.

5,500년 전 복희(伏羲)가 지은 희역(羲易)은 신봉어천(神封於天)이라, 신(神)을 하늘에 봉(封)하는 방위이며, 3,000년 전 문왕(文王)이 지은 주역(周易)은 신봉어지(神封於地)라, 신을 땅에 봉(封)하는 방위이다. 그러나 앞으로 열리는 정역(正易)은 신봉어인(神封於人)이라, 신을 사람에게 봉하는 것이다.

강증산 성사께서 천지공사를 보심으로써 신을 땅에 봉하였던 주역시대는 가고, 신을 사람에게 봉하는 정역시대가 도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64괘를 타점하고 24방위를 적음은, 24방위에 배치된 신을 사람에게 봉하는 공사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의 태양은 곧 24방위의 중심이 되므로, 앞으로 24방위의 중심과 같은 역할을 할 사람을 가리켜 강증산 성사께서는 “나와 같이 지내자”고 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4방위의 중심과 같은 자리가 곧 해인(海印)의 자리이며, 정역시대는 인존시대(人尊時代)인지라 사람이 위치하므로 해인(海印)이 곧 해도진인(海島眞人)이 된다.

해인이란 바다 해(海), 도장 인(印)이다. 말 그대로, 바다의 도장으로, 바다에 도장을 찍어놓은 것과 같은 ‘섬[嶋]’을 말한다. 그러므로 해인(海印)은 해도(海嶋)이고, 이는 어떤 물체가 아닌 진인(眞人)을 뜻하므로, 해인을 도진이라고 하는 것이다.


곧 섬 도(嶋)자의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강증산 성사께서 가져다준다고 한 해인은 곧 해도진인을 만나게 해주신다는 것이니, 그를 만나야 정역시대를 맞이하여 신명(神明)을 봉함받아 새로운 운수(運數)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모든 뜻은 지상의 해도진인(海島眞人)을 통하여 표출되고 실행되어 나오므로 해인이요, 하늘의 모든 조화가 해인으로 인해 이루어짐으로 해인조화(海印造化)가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는 것이다. 또한 해인(海印)을 찾으면 「팔만대장경」에 감춰진 큰 비밀인 미륵세존(彌勒世尊)을 찾을 수 있고, 따라서 누구나 극락세상(極樂世上)으로 인도되어 무병(無病)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을 통해 볼 때, 해인(海印)을 찾는 일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바로 이 해인을 찾을 때 인류가 소망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⑹ 노무현 대통령이 헤인사에 보내온 국태민안발원문


[청와대] 뉴스 ‘ 노 대통령,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의식법회'에 국태민안발원문 보내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2월 7일 오후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거행된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의식법회'에 국태민안발원문을 보냈다. 이 국태민안발원문은 다른 복장 유물과 함께 비로자나불상에 영구 봉안된다.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이 보내온 국태민안발원문의 전문.


자비광명으로 중생의 앞길을 밝혀주시는 비로자나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출가와 고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생명존중과 화합, 상생의 정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냈고,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국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국력이 가장 융성한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세계 10위의 경제와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나라로 우뚝 섰습니다.

이 모두가 부처님의 높으신 공덕과 우리 국민의 저력 덕분입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이제 개혁과 통합을 통해 묵은 과제를 극복하고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런 선진한국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특권과 차별이 발붙이지 못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대결과 배제가 아니라 공존하고 협력하는 문화, 독선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다른 주장과도 합의를 이뤄내는 관용의 문화가 정착되기를 발원합니다.

과학기술혁신과 인재양성, 시장개혁을 통해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특히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이 한층 더 나아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노와 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생과 연대, 양보와 타협의 실천으로 더불어 잘사는 나라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남북이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지킬만한 넉넉한 힘을 가지고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세계 속에 당당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부처님의 광명으로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옵소서!

나무비로자나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⑺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Vairocana)은 태양의 빛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쌍둥이 목조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은 지덕의 빛으로 온 세상을 두루 비춘다는 부처.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미륵불을 달리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대일여래(大日如來 Dainichi-nyorai)와 같은 부처다. 산스크리트어에서는 마하바이로차나, 즉 「위대한 빛의 창조자」. 홍법대사弘法大師(空海)에 의하면, 모든 종교에 있어서 신과 악마는 모두 대일여래의 현신이고, 대일여래의 몸은 우주 그 자체다.

법신불 [法身佛]은 불교의 삼신불(三身佛) 가운데 하나로 우주의 진리를 그 자체이다. 한국에서는 비로자나불을 뜻하며 다른 삼신불의 응신(應身)과 보신(報身)의 모체가 된다. 불교 초기에는 석가모니 한 사람만을 부처로 보았으나, 석가모니가 입적한 뒤에는 신격화되어 절대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후에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던 석가모니만을 부처로 신격화하여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원한 과거부터 이미 성불(成佛)한 부처가 존재하였고 미래에도 존재하여 인간을 교화할 것이라는 미래불, 과거불 관념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부처를 구원의 법신불, 또는 미륵불이라 한다. 법(dharma)이란 가상에 불과한 현상세계의 진실된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현실과 대조되는 진여(眞如)를 의미한다. 그것은 우주 만유의 실체로서 현실적이며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 진리이다. 법신불은 이 법을 인격화한 것으로 모든 인간에게 영원불멸하게 존재하고 줄거나 늘어나지 않고 시작과 끝이 없는 존재이다.


법신에 관한 내용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잘 나타나 있는데, 신라의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법신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하고 지복(至福)한 덕성을 모두 갖춘 존재라고 하였다. 법신은 ①큰 지혜이자 광명[大智慧光明]이고 ②세상의 모든 대상계를 다 비추어 모두 알게 되며[偏照法界] ③있는 그대로를 진실되게 알며[眞實識知] ④추함이 없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며[自性淸淨心] ⑤영원하고 지복을 가지며 자유자재하고 번뇌가 없으며 ⑥인과(因果)에 의해서 변하거나 움직이지 않고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는 결코 찾을 수 없고 중생의 마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어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법신은 수행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며 깨달음에 이른 모든 부처와 중생의 모습 자체이다. 법신불은 불상으로 만들어져 대중의 신앙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⑻ 해인사에서 펼쳐진 칠월칠석 문화축제(비로자나 데이)

                            =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음력 칠월칠석인 29일 오후 3시 국립공원 가야산 해인사 일원에서 '비로자나 데이'(VIROJANA DAY)라는 이름으로 문화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는 사랑·만남·생명이라는 주제로 이날 밤 늦게까지 계속되며, 경내와 암자 곳곳에서 소규모 콘서트와 각종 공연이 진행했다.


'비로자나 데이' 행사는 지난해 해인사에서 발견된 쌍둥이 목조 비로자나불(883년)에서 착안해 준비됐다.

쌍둥이 비로자나불은 학계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불상으로 확인돼 주목을 받았으며, 이 축제는 비로자나불의 존재를 대중적으로알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비로자나는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태양' '광명' 등을 의미한다.

행사 주최 측은 "기록에 따르면 쌍둥이 비로자나불은 여름에 제작됐고, 통일신라 진성여왕과 정치가이자 문학가였던 김위홍과의 사랑이야기가 깃들어 있어 '사랑과 만남'의 날인 칠월칠석에 축제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ckch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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⑼ 세계일보 "견우·직녀 만나듯… 짝 찾아드립니다”


 “음력 칠월 칠석은 아름다운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단 하루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사랑과 만남’의 날입니다. 이런 뜻 깊은 날에 미혼 남녀가 만나 진정한 배우자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칠월 칠석(7월31일)을 앞두고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원혜 스님(사진)이 미혼 남녀들의 짝을 찾아주기 위해 30일 경내 보우당에서 ‘견우와 직녀의 아름다운 만남―선남선녀 인연 맺기’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사찰의 문화행사는 봉은사 외에도 해인사가 29일 경내와 가야산 국립공원 집단시설지구에서 ‘비로자나데이’ 문화행사를 연다. 법보종찰(法寶宗刹)로 불리는 해인사는 이날 현존 최고의 목조비로자나 쌍둥이 불상을 조성한 신라 진성여왕과 각간 위홍의 사랑, 국운 융성에 대한 염원을 기리기 위해 ‘사랑과 만남, 생명’을 주제로 한 ‘비로자나데이’ 행사를 개최한다.


12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봉은사는 해마다 ‘선남선녀 인연 맺기’ 행사를 열어 젊은 남녀 50쌍에게 짝을 찾아주고 있다. 고찰에서 미팅 페스티벌을 개최해 불교의 가르침을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전하겠다는 의도다.


행사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견우와 직녀 커플이 탄생할 수 있도록 미혼 준비교실과 연계시켜 운영한다. 참가자들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 조별로 주제토론과 게임 등을 진행하며, 베스트 커플과 MVP, 인기커플도 선정해 시상한다.


원혜 주지 스님은 “봉은사가 ‘견우와 직녀의 아름다운 만남’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가볍고 즉흥적인 만남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불교적인 만남과 인연의 귀중함을 일깨우는 데 있다”고 말했다. 또 미혼 남녀들이 건전하고 뜻깊은 자리를 통해 배우자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도 행사 개최의 한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원혜 주지 스님은 이날 인연을 중요시하는 불교적 가르침을 특강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오용승(45) 교육과장은 “칠월 칠석은 예부터 건전한 사랑의 약속을 나누는 날로 여겨져 왔으나, 오늘날 이런 전통이 사라지면서 밸런타인데이와 같이 국적을 알 수 없는 상업성만이 판치고 있다”며 “전통적인 만남의 문화행사를 통해 젊은 미혼 남녀들이 인연의 귀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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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도인

 

출처 : 고도인의 해인海人으로 가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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