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쪽박의 이치로 미륵의 출현을 알리는 미륵리 미륵불
⑴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
박우당 도전께서 탄강하신 충북 괴산군 방곡리에서 10여km 떨어진 중원군 상모면에는 미륵리(彌勒里)라는 마을이 있고, 그곳에 미륵사(彌勒寺)라는 폐허가 된 사찰 터가 있다. 예전에 미륵사가 있었던 바로 이곳에 10여m에 이르는 거대한 미륵불상이 서 있다.
이 미륵불상이 언제 조상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석불의 모양 등으로 볼 때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미륵석불 외에도 비바람에 닳고 닳은 석탑과, 탑의 몸체는 없어진 채 거북 모양의 귀부만 남아 있는 탑 등이 옛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 해주고 있다.
한편 이 미륵사 옆으로는 하늘재를 넘나드는 길이 있다. 하늘재는 신라 아달라왕 때인 156년에 뚫린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로서 조선시대에 문경새재가 놓이기 전에는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울로 올라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즉 고려시대까지는 가장 큰 길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그 길목에 있던 미륵사는 당시 크게 번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미륵사가 이후 어떻게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지금은 석실과 함께 미륵불상만이 고즈넉이 서 있다. 그런데 이끼가 앉아 있는 몸체 부분과는 달리, 얼굴 부위만은 이끼가 끼지 않고 하얗게 되어 있어 신비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미륵불상은 우리나라 미륵불상 중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누이인 덕주공주와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덕주공주는 월악산 덕주사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磨崖佛)을 조성하였고, 태자는 이곳에 북쪽을 향하여 미륵불(彌勒佛)을 조성하여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설처럼 실제 두 불상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미륵리(彌勒里) 미륵사지(彌勒寺地) 彌勒佛(미륵불)
월악산 덕주사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磨崖佛)을 조성
⑵ 용장을 들고 천도복숭아를 들고 계신 분이 미륵
한편 박우당 도전의 모친인 김씨는 이곳 미륵불에 기도하여 박우당 도전을 잉태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미륵리의 미륵불은 박우당 도전과 많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곳에 있는 하늘재는 백두대간인 소백산을 넘는 고개로서, 풀이하면 ‘하늘을 넘는 고개’가 된다. 이 고개를 넘으면 바로 미륵리(彌勒里)가 있다. 하늘 고개를 넘어 미륵리를 찾아간다는 의미인 것이다. 미륵리는 미륵이 있는 마을이다. 미륵이 있는 마을이 바로 도솔천(兜率天)이 아닌가? 그러므로 하늘 고개를 넘어 도솔천의 미륵을 찾아간다는 의미를 이 지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미륵리에서 지릅재(질러가는 고개)를 지나면 수안보 온천이 나오고, 수안보 온천을 지나면 박우당 도전의 고향 마을인 방곡리가 박달산(朴達山, 825m) 아래 아늑히 자리잡고 있다. 박달산이란 말 그대로 ‘박씨(朴氏)가 도달(到達)한다’는 의미이다.
예부터 전해오는 삼신(三神) 그림을 보면, 그 그림에 나오는 세 분 중 호리박이 달린 용장(龍杖)을 들고 천도복숭아를 들고 계신 분이 반드시 있는데, 그분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彌勒)이다. 용장에 매달린 호리박은 곧 박씨(朴氏)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당께서는 쪽박의 이치이므로 두 번째박 , 즉 또 오는 박이라야만 된다. 이것은 미륵이 박 성구도전님이다 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것이다.
⑶월악산과 포암산
인근의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등과 함께 조령5악으로 손꼽히는 포암산(961.7m)은 월악산국립공원 내 충주시 상모면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이곳의 하늘재는 본디 한훤령으로 불리어졌으며 조선시대에 조령관문이 뚫리기 전까지 한반도의 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로서 그 역할이 사뭇 지대했던 고개이다. 또한 하늘재 밑의 미륵사지는 고려 초기에 조성되었던 약 4천여평 규모의 대찰로 주흘산을 진산으로 하여 좌우로는 신선봉과 포암산을 끼고 멀리 월악산을 조산으로 하는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상의 일부 구간인 포암산은 산행 들머리인 미륵리에서 바라보면 육산(肉山)처럼 보이지만 문경시쪽에서 보면 큰 바위산임을 알 수 있다. 이 산 정상에 서면 벌재재에서 황장산과 대미산을 거쳐 서쪽으로 힘차게 달려드는 백두대간과 문경분지를 조망하기 좋다.
포암산의 本來(본래) 이름은 '베바우산'으로, 우리 고유어를 한자어로 풀어 쓴 것이다. 베바우산이란 허연 삼베(布) 같은 천을 두른 산이란 뜻을 지녔는데, 허연 삼베는 바위 절벽을 의미한다. 이처럼 험한 바위산인 포암산은 부근의 월악산, 주흘산, 신선봉 등과 더불어 '조령 5악'으로 불리는데, 산세가 험한 대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쌍봉 낙타 등처럼 생긴 포암산은 우금암과 비슷한 형상이다.
⑷ 땀 흘리는 미륵리 미륵불
(충주=연합뉴스) 민웅기 기자
충북 충주시 상모면 중원미륵리 사지(사적 제31 7호)에 있는 미륵석불 입상(보물 제96호) 머리 부분에서 5일째 땀(?)이 흘러내려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근에 있는 사찰 세계사와 주민들에 따르면 이 미륵불은 지난 9일부터 이마 왼 쪽 부분에서 눈 위까지와 머리 뒷부분, 옆머리 등 4곳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
왼 쪽 부분에서 땀 흘리는 미륵리 미륵불
이 같은 소문이 퍼지자 주민과 외지 관광객들이 이 진기한 장면을 보기 위해 몰려들어 평소 한적했던 사찰 인근이 인파로 붐비고 있다. 몰려든 사람들은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미륵불 머리 부분에 수분이 스며들 만한 곳? 없음에도 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신기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노인들 중에는 1950년 6.25 사변과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 때 이 같은 현상 이 있었다며 좋지 않은 징조라고 걱정하는 이도 있으나 다른 노인들은 이 주장이 근 거가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원인을 알 수 없어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에 자 문을 요청했다"면서 "물기 성분 등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일신라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이 석굴은 1977년 이후 3차례의 발굴조사 결 과 큰 돌을 쌓아올린 뒤 나무로 지붕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지붕은 없어지고 석축과 미륵불,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제95호) 등이 전해 온다.(사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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⑸ 口(구)멍으로 보이는 미륵리 미륵불
월악산 미륵리 미륵불이 구멍으로 보인다.
口(구)는 사람이 생명을 유지 하는데 필요한 구멍이다.
들어가는 구멍(입)이 있어야 하고 또한 나오는 구멍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곳도 구멍(生門생문)으로 나오는 것이며, 한 생명이 끝나면 또다시 구멍(死門사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천지만물이 시작되는 원리도 이 구멍의 이치이다.
사람은 그 곳을 자궁이라 하며, 우주의 이치로 보면 그곳을 자미궁이라 부른다. 또한 은어를 써서 계곡이라 하였다.
⑹ 미륵 미륵사지에 있는 거대한 거북 모양의 바위다.
⑺ 온달(보름달)장군이 가지고 놀던 공기 돌 이었다고 한다,
고 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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