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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 종통계승의 의미가 담긴 雙磎寺(쌍계사)

고도인 2008. 1. 12. 19:32
 

10. 종통계승의 의미가 담긴 雙磎寺(쌍계사)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지리산자락에 위치

 

⑴ 智異山(지리산) 雙谿(쌍계)의 의미

 

박 우당께서는 해인사를 순행하신 그 다음날인 9월 17일, 임원들을 대동하고 지리산 쌍계사(雙磎寺)로계 순행하셨다. 이곳은 ‘삼신산(三神山) 쌍계사(雙磎寺)’라고 칭하는 곳으로, 과거 정산께서 이곳 영주각(瀛洲閣)에서 7일간 종통(宗統)에 관한 도수를 보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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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신산(三神山)의 의미가 담겨 있는 쌍계사(雙磎寺)


雙谿(쌍계)는 두 계곡, 즉 두 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중곡도장 벽화의 畵牛顧磎(화우고계)의 磎(계)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소(도)가 물을 돌아본다는 뜻인데 소(도)가 물을 찾는다는 것은 물이 道(도)라는 뜻이 되며 다시 말하면 물의 이치로 오는 사람이 도를  밝히므로서 물에서 도가 나오는 이치가 된다. 그래서 두 물이 되며 두 물을 가리켜 양수라 하였고 양수는 쌍계와 같은 뜻이 된다.

박 우당께서는 이번 순행길에 임원들에게 “쌍계사에 담긴 내력(來歷)을 잘 알아두라”고 말씀하셨으나, 임원들은 그것이 종통계승과 깊은 관계가 있는 내용인 줄은 몰랐다.


쌍계사(雙磎寺)의 내력


쌍계사의 특이한 내력은 중국 선종의 육대(六代) 조사(祖師)인 혜능(慧能, 638~713)의 *두정(頭頂)이 봉안되어 있다는 점이다.

쌍계사 청학루(靑鶴樓)를 지나 뒤쪽 계단을 올라가면 금당(金堂)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건물 내부에 혜능대사의 정상(頂相), 즉 두골(頭骨)이 봉안된 석탑이 안치되어 있다.

금당이라 하면 본존불을 안치하는 가람(伽籃)의 중심 건물로서 대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을 말하며, 사찰 내의 모든 건물들이 이 금당을 기준으로 배치된다. 또한 금당(金堂)이라는 명칭은 ‘금색의 본존불’을 내부에 안치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쌍계사에서는 대웅전이 아닌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을 금당이라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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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대(六代)조사(祖師)인 혜능의 두정(頭頂)이 봉안된 금당

   

신라 성덕왕 21년에 왕비(王妃) 김씨는 당나라의 육조 혜능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숭모(崇慕)하여 언젠가 한번 만나고 싶었지만 자신은 여자의 몸으로 먼 길을 갈 수 없었으므로, 의상의 제자인 삼법대사(三法大師)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삼법대사가 육조를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그때는 이미 혜능이 고인(故人)이 된 지 오래되었다. 삼법대사는 실망이 되었지만 할 수 없어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 곡설리(谷雪里) 갈화처(葛花處)에 봉안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삼법대사는 육조 혜능의 정상을 취하여 성덕왕 23년(723년)에 귀국한 후, 꿈속에서 말한 삼신산 눈 쌓인 계곡에 칡꽃이 핀 곳을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이르렀을 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안내하였는데,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정상(頂相)을 석감(石龕, 불상을 넣어두는 감실)에 넣어 땅 밑에 안치한 후, 절을 지어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중국에서 차(茶) 종자를 가져와서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는데, 이때 쌍계사(雙磎寺)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진감국사는 혜능의 두정(頭頂)을 안치한 석감 위에 건물을 짓고 육조영당(六祖影堂)이라 했는데, 후대에 이르러 이곳을 금당(金堂)이라 불렀다.


⑶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 사이에 종통 계승


석가모니로부터 가섭으로 전해진 불교의 종맥(宗脈)은 28대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와서 중국으로 건너오게 되는데, 달마(?~ 528년)는 중국 선종(禪宗)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달마로부터 다시 종맥이 이어져 육대(六代) 조사(祖師)가 된 사람이 바로 혜능이다.

혜능은 이후 중국 선종을 크게 일으켰으며, 중국 불교의 꽃을 피운 사람이다. 이러한 육조 혜능이 오조(五祖) 홍인으로부터 종통을 계승받을 때, 그 상황이 매우 특이하여 「육조단경(六祖壇經)」 등에 널리 전해오고 있다.

박우당 도전께서 쌍계사를 순행하기 전, 임원들에게 “쌍계사에 담긴 내력을 잘 알아두라”고 하신 뜻은 바로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 사이에 종통이 계승되는 상황을 잘 알아두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신으로부터 종통을 계승받을 사람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을 임원들에게 깨우쳐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즉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아두면 이후 종통이 어떤 사람에게 계승되었는지 쉽게 판단이 서게 될 것이고, 따라서 종맥이 이어진 곳인 연원(淵源)을 찾아 도통(道通)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육조단경」을 통하여 그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범양(范陽)인데, 좌천(左遷)되어 영남(嶺南)의 신주(新州)로 옮겨와 일반 백성으로 살았다.

혜능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늙은 어머니와 함께 남해로 옮겨왔는데, 집안이 몹시 어려워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는데, 혜능은 그 나무를 가져다주기 위해 그 손님과 함께 관숙사(官宿舍)에 이르렀다. 거기서 손님은 나무를 받아가고, 혜능은 값을 받고서 문을 나서려 하는데, 문득 관숙사에 유숙하던 한 손님이 「금강경(金剛經)」을 읽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서는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이내 손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읽고 계십니까?”

손님이 대답했다.

“나는 기주 황매현(黃梅縣) 동쪽에 있는 빙무산(憑茂山)에서 오조 홍인(弘忍)의 설법을 들었는데, 지금 그곳에는 문도(門徒)가 천여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오조대사가 승려나 속인(俗人)을 막론하고 다만 「금강경」을 숙지하고 지성으로 읽으면 곧 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 된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業緣)이 있어서,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을 예배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홍인이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였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저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성불(成佛)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하였다.

홍인은 혜능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성불할 수 있단 말이냐?” 하였다.

그러자 혜능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性品)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오랑캐의 몸인 것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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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능이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을 예배하는 장면


홍인은 함께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것을 보고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앗간의 곡식을 책임지고 있는 중을 불러 혜능을 딸려보내어 그곳에서 일하게 하니,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오조 홍인이 하루는 문도(門徒)들을 다 불러오게 하였다.

문도들이 다 모이자 말하기를, “세간(世間) 사람은 생사(生死)가 가장 큰 일이나 너희 문도들은 종일토록 이 절간에 앉아 공양을 하며 다만 복(福)만을 구할 뿐, 도무지 생사의 고해(苦海)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구나. 너희들의 자성(自性)이 미혹하면 복문(福門)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아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般若)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偈頌) 한 수를 지어 내게 가져오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袈裟)와 법(法)을 부촉하여 육대(六代)의 조사(祖師)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하였다


문도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모름지기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神秀) 상좌가 우리의 교수사(敎授師)이므로, 신수 상좌가 법을 얻게 되면 자연히 따라서 의지하게 될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 하고서는 모든 문도들이 생각을 쉬고 감히 게송을 지어 바치지 않았다.

한편, 이때 상좌인 신수는 생각하였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에서 깨친 게송을 지어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偈頌)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 스님께서 내 마음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겠는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법(法)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어렵게 게송을 지었지만 막상 신수는 홍인 앞에 나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신수 상좌는 밤이 삼경(三更)에 이르렀을 때,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을 적어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는데,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신수가 지은 게송은 다음과 같았다.

身是菩提樹 몸 이것은 보리 나무요

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대와 같다.

심여명경대

時時勤拂式 때때로 부지런히 씻고 닦아서

시시근불식

物使惹塵埃 티끌 먼지가 끼지 말게 하라.

물사야진애


오조 홍인은 아침에, 화공인 노진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楞伽變相)을 그리게 하려 하다가 벽에 적힌 게송을 보았다. 홍인은 그 게송을 다 읽고 나서 화공에게 말하기를 “능가변상을 그리지 않으리라.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凡所有相 皆是虛妄) 하셨으니,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게 하여, 이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이 법을 의지하여 행실을 닦으면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니라” 하였다. 이윽고 홍인은 문도들을 다 불러오게 하여 게송 앞에 향을 사르게 하니,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므로 이에 홍인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라.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리라.”

문도들이 다들 외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하였다.

오조 홍인이 신수를 거처로 불러서 묻기를, “네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으리라” 하였다.

신수가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스승님의 자리를 구함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서 보아주옵소서. 제자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겠습니까?” 하였다. 홍인은 신수에게 말하기를 “네가 지은 이 게송은 견해가 가까이 오기는 했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없는 보리(菩提)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 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 본성(本性)을 보느니라.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게송을 지어서 나에게 와 보여라. 만약 문 안에 들어와서 자성(自性)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袈裟)와 법(法)을 너에게 부촉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신수는 돌아가 며칠이 지나도록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이즈음에 한 동자가 신수의 게송을 외면서 혜능이 일하고 있는 방앗간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이 게송이 견성(見性)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이 동자에게 묻기를 “지금 외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 하였다. 동자가 혜능에게 대답하였다.

“너는 모르는가? 큰스님께서 말씀하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자 한다 하시고, 문도(門徒)들로 하여금 각기 게송 한 수씩 지어와서 보이라 하셨다. 그래서 큰 뜻을 깨쳤으면 곧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대의 조사(祖師)로 삼으리라 하셨는데, 신수(神秀)라고 하는 상좌가 문득 남쪽 복도 벽에 모양 없는 게송[無相偈] 한 수를 써놓았더니, 오조 스님께서 모든 문도들로 하여금 다 외게 하시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나고 죽음을 벗어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이에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서 방아 찧기를 여덟 달 남짓 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보질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주게.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어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라고 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 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하였고, 글자를 알지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혜능은 또한 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自性)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느니라.’

혜능은 이러한 뜻을 게송으로서 말하였다.


菩提本無樹(보제 본 무수 )

깨달음이란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심은 것이 없음 이다.

明鏡亦非臺(명경 역 비대)

맑은 거울도 역시 근본적인 토대가 아니다.

本來無一物(본래 무 일물)

본래 처음에 올 때는 하나의 물건도 없었는데

何處惹塵埃( 하 처야 진애)

어느 곳에 티끌만한 먼지가 끼겠는가?

心是菩提樹(심시 보리 수)

마음을 옳게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본래 처음에 태어날 때의 그 마음으로 끌어 올리는 경지 이다.

身爲明鏡臺(신위 명경 대)

그러면 몸은 맑은 거울처럼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明鏡本淸淨(명경 본 청정)

맑은 거울은 본래부터 맑고 밝은 청정한 것이었으니

何處染塵埃(하처 염진 애)

어느 곳에 티끌 먼지 더럽히리오.


※ 菩提(보제); 범어 ‘bodhi'의 音譯(음역).

세속적인 번뇌를 끊고 얻는 깨달음의 경지.

혜능은 자신의 게송을 남겨두고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절 안의 대중들은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겼다.

그러나 오조 홍인은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고, 곧 혜능이 큰 뜻을 깨쳤음을 알아챘으나,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눈치 챌까 두려워하여 대중에게 말하기를, “이도 또한 깨달은 바가 아니로다!” 하고 신발을 벗어 지워버렸다. 이것을 본 문도들이 혜능을 비웃기 시작하였다. 이에 홍인은 비로소 마음을 놓고 당우(堂宇)로 돌아갔다.

그후 홍인은 조용히 방앗간을 찾았다.

“방아는 다 찧었느냐?”

“다 찧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키질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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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인은 주장자로 절굿대를 세 번 치고는 뒷짐을


방아를 다 찧었느냐’는 말은 마음의 번뇌의 껍질은 다 벗었느냐는 말이었으며, 키질만 하면 된다는 것은 번뇌는 다 벗었으나 본성(本性)을 밝히기 위해서는 껍질을 키질해줄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바로 옆에 행자가 있었으나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지를 못했다.

혜능의 마음을 알아차린 홍인은 주장자로 절굿대를 세 번 치고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돌아갔다. 이것은 삼경(三更)의 깊은 밤에 뒷문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 것 역시 알 수가 없었다.

혜능이 삼경 깊은 밤에 조사당의 뒷문으로 찾아갔다. 홍인은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불러들여 「금강경」을 설하였다.


이 마음은 그곳으로 가고 싶다.

 

혜능은 ‘머물지 않는 곳에 그 마음이 생긴다,(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왕이생기심)’ 는 구절에 이르러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즉 다시 말하면 “응하지도 않았고 가보지도 않았지만, 이 마음은 그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는 뜻이다. 혜능이 그날 밤으로 법(法)을 전해 받았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이내 오조 홍인은 ‘단박에 깨치는 법(頓法)’과 ‘가사(袈裟)’를 전하며 말하였다.

“네가 육대 조사(六代祖師)가 되었으니 가사(袈裟)와 발우(鉢釪)로써 신표(信標=증표)를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法)은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오조 홍인은 또 말하기를 “혜능아, 예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마치 실낱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이곳을 떠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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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法)은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며”            “속히 이곳을 떠나라”

 

혜능은 가사와 발우와 법을 받고 그 밤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홍인은 그날 밤, 몸소 구강역(九江驛)까지 혜능을 전송해주며 처분을 내리기를,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3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 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 그리고 가사와 발우는 더 이상 전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육조 혜능은 오조 홍인을 하직하고 곧 떠나서 남쪽으로 갔다.

혜능이 가사와 법을 가지고 떠났음을 알게 된 수백 명의 문도들이 뒤를 쫓아와서,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발우를 빼앗고자 하였다. 그러나 혜능을 잡지 못하고 계속 뒤쫓고만 있었는데, 오직 한 스님이 혜능이 떠난 지 두 달 가량 되어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을 때 고갯마루까지 쫓아 올라와서 혜능을 덮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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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혜명에게 전한다.


그의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혜명(惠明)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이었는데, 혜명은 그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한 스님이었다.

육조 혜능이 곧 가사와 발우를 바위 위에 두고 혜명에게 “가져가라”고 하였으나 바위에 붙은 가사와 발우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여기서 문득 깨달은 혜명이 말하기를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法)을 구함이요, 그 가사와 발우는 필요치 않습니다.” 하였다.

육조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혜명에게 전하니,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에 마음이 열렸으므로, 육조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였다.


심법전수는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이후 혜능은 남방으로 내려가 15년 후, 광주 법성사(法性寺)에서 비로소 법(法)을 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선종(禪宗)을 크게 융성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가사와 발우는 전해져 내려가지 못하였다.

앞의 내용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오조 홍인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는 상좌였던 신수(神秀)를 인정해주고 혜능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이것은 자기만족에 빠진 신수 상좌와, 신수의 견해에 현혹된 문도들의 시기심으로 인해 육조 혜능이 저해를 받지 않도록 감싸고 보호키 위함이었던 것이다.

한편 방앗간으로 찾아간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의 대화는 일반인으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서로 간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하는 대화였다. 방앗간으로 찾아간 홍인에게 혜능이 가르침을 구하자 홍인은 곧 그 뜻을 알아차리고, 삼경이 다 된 깊은 밤에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오라고 하였다. 혜능이 삼경이 다 된 밤에 홍인의 처소를 찾아가자 「금강경」을 강설해주고 말하기를, “내가 *당번(幢幡)을 날린 지 벌써 30년이 흘렀다. 이제야 내가 전해받은 법(法)을 전수할 그릇을 만났다. 그것이 바로 혜능 너이다. 너는 이제 육조(六祖)가 되었으니 가사(袈裟)와 발우(鉢釪)로써 그 증표를 삼아라” 하고 가사와 발우를 전하고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는 심법(心法)을 전수해주었다.


한편 이후 신수가 게송을 지어 다시 홍인을 찾아가니, 홍인이 말하기를 “이미 법을 전하였다” 하였다. 그러자 신수가 “가사와 발우는 어찌하였습니까?” 하자 “능(能)한 자가 가져갔다” 하였다.

그러자 신수는 일어나 나와 “남방 오랑캐가 가사를 훔쳐갔다” 하며 사람을 보내어 찾아오게 하였던 것이다. 이에 혜명이 사람들을 이끌고 혜능을 쫓아왔으나 가사와 발우는 결코 빼앗아가지 못하였다. 힘이 장사였던 혜명이 가사와 발우를 들 수 없었던 것은 이미 혜능에게 신명(神明)이 옮겨갔음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혜능이 육조(六祖)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법전수는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여 법이 전해져 내려간 것이다. 반면 신수는 아무리 실력이 있고 세력이 있다고 하여도 오조 홍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오조와 통하지 못했던 것이며, 또한 욕심으로 가사와 발우를 차지하려 하여도 신명이 용납치 않았던 것이다.


박 우당께서는 드러내어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미 이때부터 내심 종통계승자를 찾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쌍계사를 순행하신 것은 당신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할 사람도 혜능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경우를 당할 것을 예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조 홍인이 하였던 것처럼 감추어야 하고 덮어야 하며 또 시기하는 자들의 저해로부터 보호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홍인과 혜능이 심법(心法)으로 법(法)을 전하였듯이 이번에도 심법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이며, 또한 가사를 전하고 법을 전하여 종맥(宗脈)의 증표를 삼았듯이 뚜렷한 증표와 법을 전하여야만 한다. 그러한 계획과 생각으로 쌍계사를 방문하시면서 수립해 가셨던 것이다. 박 우당께서는 이후 1986년에 5월에 또 한 차례 쌍계사를 방문하셨다. 이것은 쌍계사에 담긴 의미처럼 종통계승이 또 한 번 있기 때문일 것이다.

⑹ 어머니 산의 지리산, 어머니 같은 마애불

한반도의 어머니산 지리산은 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 경남 하동, 산청, 함양 등 3개도 5개군 15개면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그 둘레만도 850리에 달한다. 영험한 기운의 지리산은 삼국시대에는 불교의 탯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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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 산의 지리산, 어머나 같은 마애불 ♣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한국 8경의 하나이고 5대 명산 중 하나로, 웅장하고 경치가 뛰어나다.

남한 제2의 고봉 천왕봉(1,915m), 노고단(1,507m)으로 이어지는 1백리 능선에 주능선에 만도 반야봉(1,751m),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10여개나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다. 하나는 낙동강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고 도인

출처 : 고도인의 해인海人으로 가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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