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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 三神山(삼신산)을 모시는 광한루 자라돌(鼇石오석)

고도인 2008. 1. 12. 19:33
 

10. 三神山(삼신산)을 모시는 광한루 자라돌(鼇石오석)


⑴ 광한루(廣寒樓)


광한루는 황희가 1418년에 양녕대군의 폐출불가를 주장하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사 남원으로 내려온 뒤, 남쪽으로 2리 떨어진 곳에 지세가 높고 편평하게 넓으며, 앞에는 명주베를 펼쳐놓은 것처럼 물이 흐르고 아름다워 이곳에 조그마한 누각을 세워 ‘광통루’라 한 데서 연유한다.

그후 세종 16년 갑인년(1434년)에 부사 민여공이 주변을 고치고 새로 누각을 중수하였는데, 사치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세종 19년(1437년)에는 부사 유지례가 단청을 하였고, 세종 26년(1444년)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누각에 올라 “호남의 절경으로 달나라에 있는 궁전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라고 감탄한 나머지 이름을 ‘광한루(廣寒樓)’라고 바꿔 불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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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나라에 있는 궁전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유재란(1597년) 당시 남원성에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 그리고 성을 지키는 백성 등 1만여 명이 순절할 때 누각도 소실되었다.

이후 선조 40년(1607년)에 남원부사 원진이 불탔던 광한루 자리에 작은 누각을 세우면서 다시 광한루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상촌 신흠의 「광한루기」에 의하면, 천계(天啓) 6년 병인년(1626년)에 우의정 신흠의 아우인 남원부사 신감이 작은 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복원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철종 6년(1855년)에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이상억이 누각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뒤, 오늘날 현관 옆에 걸려 있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라는 현판을 크게 써서 걸었다. 그리하여 이후 광한루는 ‘호남제일루’라는 별칭으로도 불려 지게 되었다.


⑵ 오작교(烏鵲橋)와 은하수


광한루의 호수는 하늘의 은하수(銀河水)를 상징한다. 이 호수에는 직녀(織女)가 베를 짤 때, 베틀을 고이는 데 썼다고 하는 지기석(支機石)을 호수 속에 넣고, 견우(牽牛)가 은하수를 건너 직녀를 만날 때 사용한 배를 상한사(上漢沙)라 이름하여 호수에 띄워놓았는데, 이것은 바로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烏鵲橋) 전설을 형상화한 것이다.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는 광한루를 구성하는 상징물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은하수는 一(일)이라는 숫자가 만들어진 시원이며 一(일)은 한 개, 또는 한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은하수를 寒水(한수)라고도 한다.

한편 오작교는 선조 15년(1582년)에 부사 장의국이 삼신산(三神山)과 더불어 조성하였으며, 현재 폭 2.8m, 길이 58m, 네 개의 구멍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홍예(虹霓) 다리이다.


조선 세종 때의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 ?~1465)가 편찬한 「천문류초(天文類抄)」에 따르면 ‘쌍무지개가 떴을 때 색깔이 선명하고 성한 것은 숫무지개라 하고 홍(虹)이라 하며, 어두운 것은 암컷이 되니 예(霓)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쌍무지개는 음(陰)과 양(陽)이 사귀어 모인 기운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오작교에는 견우와 직녀의 애절한 사랑이 담긴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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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작교(日月, 즉 음양의 이치가 있는 홍예(虹霓) 다리)


옛날 하늘에는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딸 직녀(織女)와 미천한 소몰이꾼 견우(牽牛)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하였는데, 이를 알게 된 옥황상제가 몹시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서 소를 몰게 하고,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서 베를 짜도록 한 뒤 1년에 오직 한 번, 다리도 없는 은하수에서 만나도록 하였다.

이들의 만남이 너무나 애달파 칠월칠석날에는 지상의 까치와 까마귀가 모두 은하수로 올라가 다리를 만든 연후에 이 다리를 건너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게 하였다. 이때 오랜 세월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만난 견우와 직녀가 흘린 눈물이 비를 이루니, 세상 사람들은 칠석날이면 까치와 까마귀를 볼 수 없게 되었으며, 또한 이날 비가 오는 것은 견우와 직녀가 흘린 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인류가 대우주의 여름시대에서 가을시대로 넘어가 완성을 이루려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반드시 음양이 합일(合一)하여야 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식물이 가을에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의 암술과 수술이 서로 교접이 되어야 하고, 다 자란 남녀가 어른이 되려면 남녀가 혼인을 하여 하나를 이루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제 대우주의 가을에는 신과 인간이 합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양을 이어주는 다리가 있어야 한다. 꽃은 벌과 나비가 그 역할을 하며, 사람은 중매를 서는 사람이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대우주의 가을에 신과 인간이 합일하기 위한 다리(오작교)는 ‘삼신(三神)이 인세에 오셔서 내놓은 도(道)’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삼신을 알아야 이 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깨우쳐주기 위해서 오작교(烏鵲橋)가 삼신산 옆에 있는 것이다.


한편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의 물은, 지리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쪽빛 옥규수 요천의 물을 춘향교 위쪽 지하 수로를 통해 끌어들였는데, 겨울철 잔설이 녹은 물이 유입될 때 가장 맑아, 그때는 2m 깊이의 바닥에 쌓인 나뭇잎 무늬까지도 선명하게 보일 만큼 맑고 깨끗하다. 오행(五行)에서도 물은 북방에 배치되고 겨울을 상징한다.


⑶ 자라돌(鼇石오석)에 담긴 의미


그리고 광한루 호수를 둘러보면 삼신산, 오작교, 자라돌, 상한사와 지기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 속에는 직녀의 베틀을 고인 지기석(支機石)이 놓여 있고, 방장섬과 봉래섬을 잇는 다리에는 견우의 배인 상한사(上漢沙)가 있다.

이처럼 천체(天體)와 우주(宇宙)를 상징하는 광한루원(廣寒樓苑)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바탕으로 한 여러 구조물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 혹은 삼신선도(三神仙嶋)로 불리우는 영주산·봉래산·방장산을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 속에 건설하여 옛 사람들이 생각한 이상향을 현실세계에 구체적으로 표현해낸 정신사적 구조물이다.

박우당 도전께서는 임원들을 대동하고 경내를 두루 둘러보았다. 먼저 전라감사 이서구 선생의 비(碑)와 춘향 사당(祠堂), 오작교 등지를 둘러보시고, 이후 광한전 앞의 연못 안에 있는 섬을 둘러보시더니, 임원들에게 여기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자고 하셨다.


한편 지금까지 박우당 도전께서 임원들을 대동하여 순행하신 곳은 모두 강증산 성사께서 공사보신 성지이던가, 아니면 미륵과 관련한 사찰을 순행하셨는데, 이번에 이러한 것과는 전혀 무관한 남원 광한루를 순행하신 것은 다름 아닌 이 ‘삼신산(三神山)’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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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라돌이 삼신산을 바라보고 병겁을 막았다.


한편 이 연못가에는 매우 특이한 바위가 하나 있다.

광한루 앞 오작교 입구에, 화강암으로 곱게 깎아 만든 ‘큰 자라돌’이 삼신산을 바라보고 금방이라도 뛰어들 듯이 앉아 있다. 이 자라돌은 높이 1.2m, 폭 1.2m, 길이 2.4m의 크기로서, 그 옆에 설명을 적은 석판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자라돌을 두게 된 연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남원지(南原誌)」의 기록에는 오석(鼇石)을 자라로 보느냐, 거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른 두 가지의 전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그 하나는 광한루원이 우주를 상징하는 정원으로 꾸며졌다는 신선사상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원의 풍수지리와 관련된 것이다.

먼저 첫 번째의 경우를 살펴보면, 예부터 동해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자라가 등에 삼신산(三神山)을 업고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광한루 연못에 삼신산을 지은 후로는 계속하여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원인을 분석해본 결과 삼신산을 업고 있는 자라가 없었기 때문에 섬이 불안정하여 그렇다 하여, 이곳에 자라돌을 만들어 삼신산을 지켜보게 한 뒤로부터는 그 천재지변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은 이 오석(鼇石)을 자라가 아닌 거북으로 보는 것인데, 지리산에서 바라봤을 때 동남방에 위치한 남원에는 예부터 지리산에서 동남풍만 불어오면 나쁜 유행병이 퍼져 인명이 상하거나 혹은 화재, 홍수 등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오행설에 의하면, 이러한 동남풍을 제압하려면 동해(東海)에 사는 거북의 힘밖에 없다 하여 광한루에 이 거북상을 만들었다. 그 후 부터는 동남풍으로 인한 천재지변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자라가 삼신산(三神山)을 등에 업고 있다는 전설이 ‘금산사(金山寺)’의 이치와 개태사 ‘삼천일지(三天一地)’의 이치와도 一脈相通(일맥상통)한다는 점이다.


한편 금산사에서 시루와 솥과 숯을 떠받들고 있는 ‘물’을 광한루에서 삼신산을 받들고 있다는 ‘자라돌’과 비교해보면, 자라는 현무(玄武)이고, 현무(玄武)는 북방 1· 6 수(水)를 뜻하므로 이 역시 물의 이치로 오는 사람이 三神(삼신=미륵세존)을 받들어 모시게 된다는 이치가 담겨져 있다.

즉 광한루에서 삼신산(三神山)을 받들고 있는 자라[현무]는, 금산사 이치로 보면 시루와 솥과 숯을 떠받들고 있는 물과 그 역할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반드시 ‘五仙(오선=오룡=오로 봉)’이 될 때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시루(증산)와 솥(정산)이 일을 하려면 나무(木목=우당)가 있어야 하고, 나무가 있으면 불(火화=박 성구도전님)을 붙여야 한다, 이 불의 열기를 받아 물[용추못=해인=대두목]이 모든 것을 익혀서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륵삼존불과 나반존자가 모셔진 논산 개태사의 현판에 ‘삼천일지(三天一地)’라고 적혀 있는 것도 이와 일치하는 이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삼신 하느님(三位一體神(삼위일체신=미륵세존)을 받드는 한(一) 분이 지상(地上)에서 삼신(三神)의 뜻을 세상에 실현시켜 나간다는 것이 삼천일지에 담겨진 이치이다.

이처럼 삼천일지의 이치는 금산사(金山寺) 이치와도 일치하고, 남원 광한루에 있는 삼신산(三神山)과 오석(鼇石)의 이치와도 일치하고 있다.

옛 선현들이 제각기 만들어놓은 구조물이 그 이치에 있어서 서로 부합되고 있음이 신기할 따름인데, 이 세 구조물이 건립된 배경의 밑바탕에는 삼신산(三神山)의 전설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삼신산의 전설은, 앞으로 이 땅에 삼신(三神)이 강림한다는 깊은 이치를 간직한 채 수천 년을 전해져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사실들이 하나의 빈틈도 없이 일치하는 것을 여합부절(如合符節)이라고 한다.


⑷ 삼신산 [三神山]이란?


삼신산; 天祭(천제)는 전통적으로 山(산)에서 드린다. 그런데 물이 있는 곳에서 드린다. 을지문덕 장군이 3월16일 천제를 드린 血溝(혈구) 강화도는 물에 둘러싸인 작은 섬이며, 10월 3일 천제를 드린 백두산은 산봉우리가 물을 둘러싸고 있다.

물은 근원이며 생명의 근원이고 山(산)은 모든 힘을 統一(통일)시키는 産室(산실)이다. 다시 말해 물은 생명의 뿌리인 아버지를 뜻하고 산은 임금을 뜻한다. 선왕 선대의 백성들이 예부터 삼신에게 제사지내는 성스러운 땅을 가리켜 三神山(삼신산)이라 했다.

태백산이 홀로 곤륜의 이름을 누르고도 남음이 있는데 옛날의 삼신산이란 곧 태백산이며 또한 지금의 백두산이다. <신시본기>

강화도에서 천제들 드린 산의 이름은 머리를 뜻하는 마리산이다. 그런데 삼신산인 백두산을 또한 ‘개마, 해마리’라고 부른다. 개는 ‘개 술’로서 ‘개복’이란 뜻이니 “모두 행복하다”는 말이며, 마는 ‘말 오’로서 ‘융비’라는 뜻으로 “창연히 날아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해마리’란 ‘우두머리 태양’을 말한다. 개마와 해마리는 비슷한 음으로 하나는 간지로서 하나는 삼신의 이치로서 그 의미를 밝힌 것이라 하겠다.

개마라고도 하는데 개마는 해마리의 전음이며 고어에 흰 것을 일러 ‘해’라 하고 머리를 일러 ‘마리’라 한다. 백두산의 이름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신오제본기>

그 외에도 우리민족은 천제를 지낸 곳에는 어김없이 삼신과 광명을 뜻을 담은 이름을 많이 남겼으니, 백두산, 마리산, 태백산, 국동대혈, 기린굴, 우두산, 등이 그것이다. 옛날 위나라에서는 삼신산인 백두산을 ‘태황’이라고 하였다.

나라 남쪽에 도태산이 있는데 위나라 말로 태황이라 하며 호랑이, 표범, 곰, 이리가 있으나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신시본기>

태황은 원래 ‘동황태일’의 줄임말이다. 이 동황태일은 초나라 노래에도 등장하는데 이 동황태일은 우리 동방의 태일사상이 그들의 땅에 전해진 것이다.

이것이 비록 진나라의 정삭을 물려받은 것이긴 하나 또한 동황태일을 숭배하여 존경하고 치우천황을 공경하여 제사를 지낸 것이다. <신시본기>

참고자료 : 개벽실제상황, 환단고기, 우주변화의 원리

출처; (http://cafe.naver.com/jaoji.cafe); 네이버 치우천황카페.


박우당 도전께서는 수도인들에게 이러한 이치를 일깨워줌으로써 이 땅으로 삼신(三神=미륵세존)께서 강림하셨음을 깨우치게 하고, 또한 그 이치 속에서 종통을 계승할 사람을 찾아 맥(脈)을 이음으로써 모두가 대운(大運)을 받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⑸ 광한루원(廣寒樓苑)과 이서구(李書九)


한편 광한루원(廣寒樓苑)에는 특이하게도 비석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 비석군(碑石群)이 있는데, 그중에는 정조와 순조 때 두 번에 걸쳐 전라 관찰사를 지낸 이서구(李書九)의 비(碑)도 있다.

이서구는 「채지가(採智歌)」를 지은 작자라고 전하는데, ‘채지가’는 ‘지혜를 캐는 노래’라는 뜻이다.

이 노래의 내용은 세 분 하느님과 대두목이 오시는 비결과 1만2천 도통군자의 창성과 수도과정을 주로 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서구가 전라감사를 지내던 시절에 어느 날 말을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하늘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와 가던 길을 멈추고 말에서 내려 도포자락에 노래를 받아 적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채지가」라고 한다.

그 비결을 풀어 그 뜻을 얻으면 가히 신선(神仙)이 될 수 있다 하여 수도인들 사이에 많이 전하여오는 노래이다.

광한루와 관계된 한 소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⑹ 채지가 내용 중 南(남)江(강)鐵橋(철교)

廣寒澱(광한전)에 높이올라 月宮(월궁)仙女(선녀) 맞이하세

달가운데 癸水(계수)羅戊(나무) 桑桑枝(상상지)를 꺾어다가

머리위에 丹粧(단장)하고 神仙(신선)仙女(선녀) 짝을지어

初演禁闕(초연금궐) 높은곳에 우리上帝(상제) 玉皇上帝(옥황상제)

仙童(선동)仙女(선녀) 데리고서 四拜(사배)드리러 올라가세

맑고맑은 月宮(월궁)世界(세계) 兩親(양친)父母(부모) 모셔다가

天年萬年(천년만년) 살고지고 無窮無極(무궁무극) 極樂(극락)일세


올라가세 올라가세 다리없어 어이갈고

칠월칠석 烏鵲橋(오작교)는 牽牛(견우)織女(직녀) 걷는 다리

萬里(만리)中元(중원) 昇平橋(승평교)는 문장호걸 걷는 다리

燮先師(선사)의 光度橋(광도교)는 唐名皇(당명황)이 걷던 다리

靑雲(청운)祿水(녹수) 落水橋(낙수교)는 과거선비 걷던 다리

우리다리 어디있노 大綱(대강)鐵橋(철교) 바라보니

이다리는 뉘다린고 井(정)山(산)도의 놋다리라.

 

                                                                                   고 도인


출처 : 고도인의 해인海人으로 가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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