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湫龜谷(용추구곡);
칼봉산(900m)에서 발원하여 옥녀봉을 감싸듯이 흐르는 계곡이다.
24㎞에 걸쳐 와룡추·무송암·고실탄·일사대·추월담·권유연·농완계 등
9개의 절경지가 있어 옥계9곡 또는 용추9곡이라고도 한다.
잣나무숲이 우거지고 암벽과 능선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는
곳곳에 천연 수영장 같은 탕을 만든다. 상류는 접근하기 힘들 만큼
험한 곳이며, 곰바위·소바위·미륵바위·용세수대야바위 등
기암이 몰려 있는 하류의 용추폭포 일대에는 유원지가 있어 행락객이 많다.
계곡을 따라 6㎞ 정도 올라간 곳에 높이 5m의 용추폭포가 있는데,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하며 폭포 옆 경사진 바위의 깊게 파인 자국은 용이 누웠던 자리라고 한다. 주변에 옥녀봉과 칼봉산 자락의 물안골·수락폭포·
경반계곡 등 관광지가 많이 있다. 가평 시내버스터미널에서 승안리행
시내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로 가려면 경춘국도를 타고 가평읍으로 가
북면 방면 363번 지방도로 달리면 용추계곡 안내판이 보인다.
가평 용추계곡 ; 계곡미 살아 있는 천혜의 자연냉장고
가평군은 삼청(三淸)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삼청이란 물이 맑다는 청수(淸水), 공기가 맑다는(淸氣), 마음이 맑아진다는 청심(淸心)을 뜻한다.
수도권에서 괜찮은 계곡이 가장 많은 곳은 가평군이다. 가평군내에는 적목리 방면 무주채폭포계곡, 조무락골, 논남기계곡, 명지계곡, 큰골, 백둔리계곡, 화악리 방면 중봉계곡, 애기골, 홍적이골, 멱골, 싸리골, 달개지골, 수덕산 자락인 소법리계곡 등에 이어 수락폭포가 있는 경반리계곡과 용추계곡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첫손에 꼽는 계곡이라면 용추계곡이다.
용추구곡은 용추폭포에서 약 1km 안쪽인 소바위 부근 무송암(撫松岩·제2곡), 중산마을 앞 너른 개울인 탁영뢰(濯瓔瀨·제 3곡), 탁영뢰 상류 너럭바위 지대 고슬탄(鼓瑟灘·제4곡), 일사대(一絲臺·제5곡), 물안골 합수점 칼봉산산장쉼터 바로 위 추월담(秋月潭·제6곡), 마지막 민가인 이종흥씨 집을 지난 곳인 청풍협(靑楓峽·제7곡), 청풍협 바로 위인 수심이 깊어 물이 까맣게 보이는 곳인 귀유연(龜遊淵·제8곡), 구라우골 입구에서 주계곡 상류로 약 50m 거리 기암괴석지대인 농원계(弄湲溪·제9곡)를 일컫는다. 이렇게 하여 9곡이라 하지만 龍(용)과 龜(구)가 놀았다고 하여 龍湫龜谷(용추구곡)이라고도 한다.
승안천 상류인 용추계곡은 용추구곡 중 제1곡인 와룡추(臥龍湫)에서 생긴 명칭이다. 와룡추(臥龍楸)란 龍(용)과 鳳凰(봉황)누웠다는 뜻이다. 이 와룡추가 유명한 용추폭포다. 용추계곡의 명소들은 조선조 때인 1876년 성재 유중교(省齋 柳重敎) 선생이 이곳 경치에 반하여 이름 지었다 전해진다.
♣ 단군과 승안리 용추계곡 미륵바위 전설
용추계곡은 단군과 용녀가 가족들과 함께 죽은 곳이다.
단군이 나라를 처음 열었을 때 그에게는 중국의 천자를 지내고 있는 친형이 있었다. 그 형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물산이 풍성한 조선을 탐내어 동생인 단군을 괴롭히면서 조선 땅을 탐냈다. 단군에게는 용녀(龍女)와 웅녀(熊女)라는 두 부인이 있었다. 용녀는 동생을 시기하는 중국의 천자를 보고 화를 내면서, "이 땅은 원래 우리가 개척한 땅인데 어찌 넘보려 하십니까? 굳이 욕심이 나신다면 재주와 힘으로 정정당당히 겨루어 차지해 보십시오" 하면서 중국 천자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우선 용녀는 아름다운 국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갖 재주를 동원하여 비를 억수같이 뿌리도록 했다. 여러 날이 지나도록 비가 그치지 않고 홍수가 나서 인명 피해가 속출하자 중국 천자는 그만 주눅이 들어 욕심을 버리고 조선을 넘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비가 내리자 용녀도 어쩔 수 없었다.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자 단군은 가족, 신하들과 함께 돌로 만든 배를 타고 평양에서 춘천으로 피난을 왔다.
그리고 춘천을 떠나 다시 피난 온 곳이 승안리 용추계곡 미륵바위가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도착하자 신하들은 굶주림과 병으로 하나 둘씩 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홍수 때문에 모든 곡물이 다 떠내려갔고 병이 창궐하여 단군과 그의 가족들도 이곳에서 모두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군이 묻히신 곳이 바로 이 승안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미륵바위가 있는 곳에 멈추니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는 것이었다.
그때 돌배에다 싣고 온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등 12지신의 짐승들이 석상으로 변했고, 단군이 묻힌 이곳이 우리나라 중심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용추계곡은 가평군청 앞을 지나 약 1km 가면 용추계곡 하류인 계량천을 건너는 계량교가 있다. 계량교를 건너 왼쪽 골목길로 약 4km 간 용추폭포에서부터 용추계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계량교라는 다리이름이 남아 있듯이 용추계곡은 옛날 계량내로 불리던 곳이다. 옛날 냇물이 하도 맑아 달이 뜨면 계수나무가 냇물에 비친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 전해진다.
연인산 장수능선이 북으로 병풍을 친 듯 이어지고, 서쪽은 연인산에서 매봉으로 이어지는 우정능선이, 남쪽으로는 매봉에서 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에워싸인 용추계곡이 유일하게 숨통을 트는 곳이 승안리다.
용추계곡은 칼봉산(900m)에서 발원하여 옥녀봉을 감싸듯이 흐르는 계곡이다. 24㎞에 걸쳐 와룡추·무송암·고실탄·일사대·추월담·권유연·농완계 등 9개의 절경지가 있어 옥계9곡 또는 용추9곡이라고도 한다. 잣나무숲이 우거지고 암벽과 능선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는 곳곳에 천연 수영장 같은 탕을 만든다. 상류는 접근하기 힘들 만큼 험한 곳이며, 쥐바위·소바위·미륵바위·용세수대야바위 등 기암이 몰려 있는 하류의 용추폭포 일대에는 유원지가 있어 행락객이 많다. 계곡을 따라 6㎞ 정도 올라간 곳에 높이 5m의 용추폭포가 있는데,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하며 폭포 옆 경사진 바위의 깊게 파인 자국은 용이 누웠던 자리라고 한다. 주변에 옥녀봉과 칼봉산 자락의 물안골·수락폭포·경반계곡 등 관광지가 많이 있다. 가평 시내버스터미널에서 승안리행 시내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로 가려면 경춘국도를 타고 가평읍으로 가 북면 방면 363번 지방도로 달리면 용추계곡 안내판이 보인다.
★ 미륵바위의 유래
용추계곡 미륵바위(2007년 5월 29일 촬영)
현재 용화정사를 운영하는 박옥자씨(2007년 5월 29일 촬영)
용추계곡에 미륵바위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박옥자라는 분이다.
이분의 고향은 함경도인데 광복이후에 강원도 화천에 정착하여 살면서 어느 암자에서 천일기도를 하던 중 어느 날 계시를 받았는데 “가평 용추계곡에 들어가서 미륵을 찾으라.” 고 하였다고 한다. 가평 용추구곡은 한국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자신을 인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평 용추계곡으로 들어 왔으나 그때 당시엔 길도 없고 계곡만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용추계곡 근처에 토를 닦고 기도를 하였더니 “ 나를 세상 밖으로 해를 보게 해 달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으므로 여기, 저기 지원을 요청 하였다고 한다. 면장한테도 부탁을 해보고, 군수한테도 부탁을 해 보았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던 면장이나 군수가 몹시 아프거나 죽어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부임한 군수가 하도 이상히 생각하여 청와대에 보고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에는 박정희정권시절이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인정을 하고 軍(군) 인력과 장비를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軍(군)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지금의 미륵바위 자리를 팠는데 미륵바위와 봉황새가 나오고 돌배와 열두 동물의 석상이 함께 출토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거대한 미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조그마한 남근석이 나오므로 실망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미륵바위와 봉황새가 출토 될 때에 태양이 두 개 떠 있었고 눈이 부실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밝았다고 한다. 이때에 매스컴이나 모든 종교계에서 떠들썩하였다고 한다. 이 뉴스가 외국에까지 알려지자 중국의 모택동이가 박옥자씨를 초청 하였다고 한다. 출토된 봉황새하고 같이 와 달라고... 그래서 봉황새를 갖고 중국을 방문하여 모택동을 만났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택동이가 봉황새를 탐내고 갖고 싶어 돈까지 지불하고 가질려고 하였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리고는 “이 봉황새는 조선에 있어야지 여기에 있으면 안된다.” “앞으로 조선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 “하늘이 조선을 보호하는 나라다” “조선은 미륵이 오실 나라다.” 라고 말을 하고 봉황새를 사진만 찍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한편 박정희도 당시 돈으로 3000만원을 지원 할테니 사찰을 지어서 잘 모시라고 하였으나 흐지부지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박옥자씨는 자기 집에다가 봉황새와 단군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봉황새에는 天乙(천을)이라고 쓰여 져 있다고 한다.
현재 박옥자씨는 승안리 용추계곡 미륵소 근처에서 단군과 마고(痲姑) 등을 모신 龍華井寺(용화정사)를 운영하고 있다. 용화(龍華)라는 용어 자체가 미륵과 관련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때당시 열두 동물들의 석상이 출토 되었는데 현재는 쥐 바위하고 소 바위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때 범 바위가 출토 될 때에 범 바위에는 금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범 바위를 폭파시켜서 금을 채취해 갔는데 이 금덩어리를 가져간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다 죽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의 석상은 도굴꾼들에 의해서 가져갔거나 장마에 소실되고 지금은 쥐 바위와 소 바위만 남이 있다.
12동물 중에서 쥐(子) 바위(2007년 5월 29일 촬영)
12동물 중에서 소(丑) 바위(2007년 5월 29일 촬영)
봉환새 바위와 두 동자신(2007년 5월 29일 촬영)
한편 박옥자씨는 지금도 방문객들에게 자기가 받은 계시를 들려준다. 미륵불이 지금도 계시를 하는데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도 없이 다 죽는다고 한다. 그러나 미륵을 모시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살린다고 전한다.
통일탑 뒷면에 새겨져 있는 홍익인간제세(2007년 5월 29일 촬영)
이제는 석가불이 끝나고 비로자나불을 모셔야만 산다고 한다. 2007년 우리가 방문 했을 때에 “이제는 미륵이 나와야 된다.” 라고 하면서 강조를 한다.
박옥자씨는 한글을 배우지도 못했고 쓸 줄도 전혀 모른다고 한다. 오직 기도 끝에 계(戒)를 받아서 길을 잘 닦아 놓았는데 그 후로 이제는 다른 사람들만 잘 살고 자기는 못 산다고 푸념을 한다. 그러면서 내가 어디서 글을 보았겠느냐 신명이 알려 주니까 아는 것이지.... 하며 그때를 회상하며 “봉황새와 미륵이 나올 때는 눈이 부셔 아무도 쉽게 쳐다 볼 수가 없었어” 한다. 그리고 박옥자씨는 미륵바위도 집에다가 모실려고 하였으나 미륵께서 “나를 물이 잘 보이는 곳에 모셔라” 고 하여 지금의 이곳에 그냥 그대로 모셨다고 한다.
학자들에 의하면 단군이 죽어 묻힌 미륵바위 부근이 우리나라 중심이라는 전설은 묘하게도 풍수지리에서 한반도의 정중앙으로 보는 화악산과 맞아떨어진다. 예부터 화악산 최고봉(신선봉)을 가운데 中(중) 자를 써서 中峰(중봉)이라 부른 것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전남 여수에서 북한 중강진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선이 국토자오선 127도30분 선이다. 그리고 북위 38도선을 그으면, 두 선이 만나는 곳이 화악산이다. 여기에다 평북 삭주에서 경남 울산으로, 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선을 그었을 때 그 두 선이 국토자오선과 38도선이 만나는 곳인 화악산에서 만나 신기하기만 하다. 미륵바위, 소바위, 쥐바위는 구종점인 조옥동과 지금의 버스종점인 경기도 공무원휴양소 주차장 사이에 있으므로 구경하려면 조옥동에서 버스를 내려 종점 방향으로 걸어야 된다.
麻姑(마고)의 의미
수풀당의 이름은 수풀인데, 수풀에는 서울이라는 의미가 있다. 역사가 이고선은 그가 쓴 <조선기>에서 서울이라고 하였다. 울자에 수풀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풀당은 <서울도당>이라는 뜻이다.
수풀당에 모신 분을 아기씨라고 하는데, 아기씨의 아기는 여신이라는 뜻이다. 경상도에서 아지매를 여신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기씨는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이므로 이 여신은 독신 여신을 의미하고, 아지매는 시집을 간 부인이므로 아기가 하나 딸린 젊은 부인을 의미한다. 일본 왕실에서도 여신을 아지매라고 한다. 아지매가 삼신이다. 우리가 아기씨를 애기씨라고 사투리로 발음하는데, 애기씨에는 여신이라는 의미가 없다.
아기씨가 거느린 두 분의 젊은 아기씨를 물아기씨라고 하는데, 아기씨와 물아기씨라는 용어를 혼용하여 쓰기도 한다. 물은 물 건너왔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 그러므로 물아기씨라고 할 때는 물 건너 온 처녀 여신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물 건너온 그 물을 우리는 용궁이라고 한다. 용궁은 황해를 의미한다. 황해의 서쪽에는 물아기씨들이 떠나 온 삼신산이 있다. 삼신산에는 마고가 살고 있다. 마는 베를 짜는 삼을 의미하는 말이고, 고는 시루에 신대를 꽃아 놓고 기도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라, 이 또한 여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고는 베를 짜면서 시루에 떡을 쪄놓고 기도하는 여신인 것이다.
동양 별자리에 자미원 울타리에 직녀가 있는데, 서양별자리에서 이 직녀를 베가라고 한다. 베가는 베를 짜는 집안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 직녀가 서양으로 건너가서 베가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주의 중심인 자미원에는 마고가 거느리는 별자리가 있다. 이 별자리를 북극오성이라고 하는데, 우리 조상과 일본사람의 조상은 마고별자리를 황후라고 하였고, 중국 사람의 조상은 후궁이라고 하였다. 황후가 거느린 별을 서자 천제 태자라고 하는데, 서자는 배달나라를 세운 한웅천왕의 별이고, 천제는 한국을 세운 한인천제의 별이고, 태자는 단군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별이다. 이 별자리를 서양천문에서는 작은곰별자리라고 한다.
하늘에서 직녀성, 베가성, 황후성, 후궁성으로 불리는 마고를 마자는 빼고 여신이라는 뜻으로 고로 부르기 시작하다가 언제부터인가 곰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들 온조와 함께 백제를 세운 소서노가 마고를 숭상하여 백제의 도읍을 정하면서 도읍의 이름을 한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곰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한성이란 은하수울타리라는 뜻이다. 은하수를 바라보는 곳에 직녀가 있으므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볼 수 있다.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 물아기씨들을 다른 곳으로 파견할 때 이들이 건너는 바다를 용궁이라고 하였다. 이곳이 사해용왕이 지키는 곳이므로 용궁이라고 한 것이다. 물아기씨들이 용궁을 건너면 용궁아기씨라고 불렀고, 물아지매가 용궁을 건너면 용궁부인 용태부인이라고 하였다.
아기씨를 대궐에 모신 분이 백제를 세운 소서노로 생각이 가는데, 그를 처녀의 신상으로 만들어 모셨으므로 곰으로 불리다가 공주로 음차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아기씨를 공주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용왕을 다스리는 분을 하백이라고 하는데, 하백은 인류의 시조인 나반이 칠월칠석날 은하수를 건너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해주는 분이다. 나반이 하나님을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 지루한 유월 장마가 끝난다. 하백의 따님을 하백녀라고 하는데, 하백녀는 물아기씨라는 뜻이다.
물아기씨가 삼신산을 출발하여 도착하게 되는 곳을 영주瀛洲라고 불렀다. 제주도를 영주라고 하는데 이는 마고가 물아기씨를 보낸 섬이라는 뜻이다. 물아기씨가 세상으로 갈 때는 오리가 따라간다. 오리가 직녀인 마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오리를 뜻하는 부鳧자는 오리를 신으로 모신다는 뜻이고, 장차 태어날 봉황鳳凰의 모체가 된다. 또한 오리를 뜻하는 압鴨자는 들판에 세운 솟대를 의미한다. 오리를 한 마리 앉힌 솟대는 마고솟대를 의미하고, 오리 3마리를 앉힌 솟대는 물아기씨를 모신 삼신솟대를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는 수풀당이라는 이름에서 우리 무교신앙의 태고시대 역사를 알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수풀당이라는 이름이야 말로 귀중한 종교문화유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용추계곡 미륵바위 (2007년 5월 29일 촬영)
용추계곡 미륵바위 2007년 6월 18일 촬영
용추계곡 미륵바위 2007년 6월 18일 촬영
용추계곡 미륵바위 2007년 6월 18일 촬영
가평읍 승안리 용추계곡에 있는 통일탑아래 모셔져 있는 관음상
콧수염이 나 있는것이 이색적이며 손에는 물병을 들고 있다.
◆ 龍湫龜谷(용추구곡)의 의미 ; 용소(龍沼)와 龜沼(구소).
의역 한다면 용추는 남근을 의미하고 구곡은 여근을 의미 한다.
남근을 불알 추라고도 하며, 불알의 끝을 龜頭(귀두)라고 한다.
또한 자라가 목을 쭉 내밀었을 때도 龜頭(귀두)라고 한다.
그리고 자라가 목을 쭉 당겨서 집어넣었을 때는
여근의 계곡(사타구니=中谷)을 닮았다 하여 龜谷(구곡)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의미로 용추는 용 龍(용)자와 새 隹(추)자로
용과 봉황(새중의 새)을 뜻한다.
즉 龍鳳(용봉)을 말하는 것이다.
龍鳳(용봉)이란 전경 예시 89절에 나오는 山鳥(산조)를 의미 한다.
山鳥(산조)는 다시 미륵과 관음으로 해석이 된다.
그래서 용추계곡에는 미륵과 관음이 모셔져 있다.
이 음양이 상합하는 때에는 세계가 통일이 되리라.
미륵바위 건너편에 있는 통일탑(2007년 5월 29일 촬영)
앞에서 보면 웅녀像… 뒤에서 보면 단군像
용추계곡 미륵바위 (2008년 3월 18일 촬영)
미륵바위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정면에서 보면 사람얼굴이지만 남쪽이나 북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남근 형상이다.
이 바위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박옥자라는 분이다. 이분의 고향은 함경도인데,
광복 이후에 이곳으로 와 정착했다고 한다.
이 바위를 캘 때 단군의 현몽을 받았다고 하여 자신의 몸주신으로 생각하고 있다.
가평 용추계곡이 한국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자신을 인도했다는 것이다.
현재 승안리 미륵소 근처에서 단군과 마고(痲姑) 등을 모신 용화정사를 운영하고 있다.
용화(龍華)라는 용어 자체가 미륵과 관련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앞쪽에서 보면 웅녀의 상이지만 뒤쪽에서는 오른편이 단군,
왼편이 용녀(龍女)를 각기 상징한다는 것이다.
미륵바위의 주위에는 계곡에서 주워온 편석을 쌓아 놓았다.
바다속의 말미잘(남근을 닮았다)
미륵바위는 약간 비켜 남쪽에서 보거나 북쪽에서 보면 이것은 영락없이 거대한 남근 형상이다.
약 2m 가까이 되는 높이에 귀두 부분으로 갈라진 비율이 거의 남근을 닮아 있다.
남근을 불알이라고 하듯이 미륵을 불이라고 한다.
미륵은 불의 神, 즉 빛의 神 이었다.
옛날에는 불을 불씨라고 하여 화로에 담아 놓고 알불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것을 씨 불알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남근석을 미륵바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뒤쪽에서 보면 바위가 둘로 갈라진 형태다.
왼쪽이 중심이고, 오른쪽에 조그만 사람이 붙여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왼편을 단군이라고 하고, 오른편을 용녀의 상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이 바위에는 주로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사람과 불치병에 걸린 사람,
그리고 사업 번창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물론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없을 때인 새벽에 주로 찾는다.
그러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은 아침에도 찾아와 치성을 드린다.
대개 백일기도를 드려야 기본인데,
요즘은 사람들이 빠른 소원성취를 기원하기 때문에 주로 49일 정도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속담에 ‘잘되면 제 탓이요,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한다.
정성이란 뿌리에다 거름을 주듯이 내조상께 정성 드리는 것이고,
그 위로는 태초의 조상이신 하느님께 정성드리는 것이다.
[참고]
무극진경 제 8장 : 22
궤 안에는 '오강록(烏江錄)' '설문(舌門)' '반구제수(半口齊水)' '천문지리 풍운조화(天文地理 風雲造化)' '팔문둔갑 지혜용력(八門遁甲 智慧勇力)' 등의 글을 쓰시고 글자마다 화각(火刻)하신 다음, 내부 정면의 문자 주위에 24점을 주사(朱砂)로 돌려 찍으시며 '이 궤는 나의 도지(道旨)와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遁櫃)'니라.' 하시니라. (무극진경)
정산께서 둔궤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사배를 올리시므로 일동도 따라 올리고 내부를 살피니 그 안에는 양피(羊皮) 한 장과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들어 있으니라. 내부 정면 중앙에는 '오강록(烏江錄)', 그 좌측에 '설문(舌門)', 우측에 '반구제수(半口齊水)', 좌면에는 '천문지리 풍운조화(天文地理 風雲造化)', 우면에는 '팔문둔갑 지혜용력(八門遁甲 智慧勇力)'이라는 화각서(火刻書)가 있고 정면 문자 주위에는 주사(朱砂)로 24점이 선명하게 찍혀 있으니라.
상우가 지난 봄에 둔궤의 내부를 살피고 그 신비에 감동한 이래, 그 비의(?意)를 깨닫기에 골몰하다 못하여 연말 어느 날 정산께 오강록과 설문의 뜻을 신중히 여쭈니 '오강록(烏江錄)은 나의 비결이고 설문(舌門)은 너희 비결이니 더는 묻지 말라.' 하시니라. 다시 여쭈기를 '양피는 미생(未生)의 뜻이옵고, 24점은 사철의 뜻이오며 반구제수(半口齊水)는 선생님의 존함(尊啣)이 분명하오나 반개국(半開菊)의 뜻은 무엇이옵나이까? 하교하여 주옵소서.' 하니 '국화는 9월 5일에 반쯤 핀다는 뜻이니라. 그러나 이런 일에 몰두하면 수행에 방해되니 근신하고 수구여병(守口如甁)하라.' 하시니라.
'한패공(漢沛公)의 성공은 신모야곡(神母夜哭)에 있고, 한광무(漢光武)의 성공은 적복부(赤伏符)에 있으며, 나의 성공은 오강록(烏江錄)에 있느니라.'
'주회암의 무이구곡(武夷九曲)과 송우암의 화양구곡(華陽九曲)이 좋다 한들 어찌 나의 감천구곡(甘川九曲)만 하랴? 내가 초패왕 강동자제(江東子弟) 8천인의 '해원도수' 로 이제 8백호의 천장길방을 여는 공사를 마쳤으니 이는증산성사께서 짜 놓으신 오강록도수에 맞았느니라. 증산성사께서 일찍이 허령부로서 태인도장, 지각부로서 회문도장을 점지하신 허령도수와 잠룡지각도수의 공사를 마쳤으니 이제는 그대들이 현무경 신명부를 보라. 무이구곡을 좌서(左書)하신 이 길방 명당 보화성역(普化聖域) 청학동(靑鶴洞)에 그대들이 살게 되었으니 다시 천은(天恩)에 보은하는 뜻으로 사은숙배(謝恩肅拜)를 올려야 할지니라.'
'용마(龍馬) 신귀(神龜)는 모두 물에서 나왔고 또 하우씨의 9년 치수는 낙서에 유래함이나, 나의 5만년 후천대운(後天大運)은 오강록(烏江錄)에 유래함이니라. 낙수와 오강은 강하(江河)의 중류이나 이곳 감천용담은 황하(黃河)와 낙수(洛水)로 통하는 낙동강과 동해의 수회처(水廻處)니라.' (태극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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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고(痲姑)는 칠성여래불이며 太乙神(태을신)이다,
2008년 3월 21일 금요일 시냇가 하얀집에서 고도인(고완영)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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