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을 통해 본 대순진리

[스크랩] 5. 쪽박의 이치가 있는 우금산 개암사(禹金山 開巖寺)

고도인 2008. 1. 12. 19:29
 

5. 우금산 개암사(禹金山 開巖寺)

           전북 부안군 상서면(上西面) 감교리(甘橋里) 714번지.

                                          2007, 3, 5(음4340, 1 16)

⑴ 開巖(개암)이란?


성사께서 開巖寺(개암사)에 가셔서 開闢公事(개벽공사)를 보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開巖(개암)이란? 열 開(개), 바위 巖(암)으로서 ‘ 바위가 열렸다’ 는 意味(의미)이다. 개암사 뒷산 정상에는 마치 “도끼로 깨어 연 듯한 거대한 바위 두 쪽” 이 우뚝 솟아 있다. 이것이 우금암 이다. “바위가 열렸다”는 뜻의 開巖(개암)은 바로 이 우금암의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우금암을 보면, 마치 태초에 盤古(반고)가 도끼를 휘둘러 混沌(혼돈)을 깨고 “天地(천지)를 開闢(개벽)하였다.”는 전설을 연상케 한다.

다시 말해서 우금암의 형상은, “단단하고 큰 바위산이 갈라지고 천지가 열리는 형상” 인 것이다. 禹金巖(우금암)의 禹(우)는 하우씨 禹(우)자로, 요, 순을 받들어 홍수를 다스리고 태평성대를 이룬 우임금을 말한다. 그리고 쇠 金(금)자는 오행 상에서 ‘4· 9金(금)’ 가을을 뜻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개암사 우금산 우금암(開岩寺 禹金山 禹金巖)


따라서 開巖(개암)이란? 우금암을 연다는 뜻으로, 이는 곧 ‘바위 속에 단단히 감춰져 있던 禹(우)임금의 가을 세상을 연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開巖(개암)이라는 뜻은, 이 땅에 강림하신 증산, 정산, 우당중 “세 번째로 오신 분”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임금에 해당하는 분이 우당이신데 우당께서는 쪽박의 이치로 오셨기 때문에 次出朴(차출박)인 두 번째 朴(박)씨 성으로 박 성구도전님이 ‘미륵세존’ 으로서 이분이 바로 4· 9金(금) 후천 가을세상을 열어주는 主體者(주체자)자가 된다.

따라서 開闢(개벽)이란? 미륵세존께서 후천 가을세상을 열어주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 증산성사께서 禹金巖(우금암)아래 開巖寺(개암사)에서 開闢公事(개벽공사)를 보신 것이다.


⑵ 開巖寺(개암사)에서 開闢公事(개벽공사)


공사 3장 27절에 보면 강증산성사께서 무신년(1908년) 7월에, 신 원일을 이끌고 부안 변산 禹金巖(우금암)아래에 있는 開巖寺(개암사)에 가셔서 開闢公事(개벽공사)를 보셨다. 그때 성사께서 원일에게 삶은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과, 청수 한 그릇을 방 안에 차리고 쇠머리를 청수 앞에 진설하게 하신 후에, 원일을 그 앞에 끓어 앉히고 성냥 세 개비를 그 청수에 넣으셨다. 이때 갑자기 풍우가 크게 일어나고 홍수가 창일 하였다.


신 원일에게 말씀하시길,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라. 이제부터 마음을 고치라. 大人(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남 잘되기를 생각하여야 하나니, 어찌 억조를 멸망케 하고 홀로 잘 되기를 도모함이 옳으리오.” 하시니, 원일이 이로부터 두려워하여 무례한 말로 성사를 괴롭게 한 일을 뉘우치게 되었다.


⑶ 楞伽山 開巖寺(능가산 개암사)와 禹金巖(우금암)


개암사는 전북 부안군 上西面(상서면) 甘橋里(감교리)에 자리한 사찰로서, 일주문 현판에는 “능가산 개암사(楞伽山 開巖寺)’라고 적혀 있다.

원래 이곳은 변한의 왕궁터로서, 계곡의 동편에는 묘암궁을 짓고, 서편에는 개암궁을 지었었다. 이 개암사라는 이름은 634년(백제 무왕 35년)에 묘련왕사가 이곳 변한에 있던 궁전을 절로 고쳐지을 때, 묘암궁(妙巖宮)을 개암사(開巖寺)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능가산 개암사(楞伽山 開巖寺)


그리고 능가산(楞伽山)은 원래 변산(卞山)이었으나 진표율사가 변산(邊山)이라 개칭하였고, 이후 1096년 고려 초기에 원감국사가 개암사에 들어와 폐허가 되다시피 한 불전과 당우를 중수하여 불사를 크게 일으키고 여기서 「대승능가경(大乘楞伽經)」을 강의하면서 산 이름을 ‘능가산’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불사의방(不思議房)이 있는 외변산 그림

]이 능가산은 내변산으로서 예로부터 영주산(瀛洲山)이라 불려오던 곳인데, 불사의방(不思議房)이 있는 외변산과는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한편 진표율사는 선계산(仙溪山) 불사의방에서 수도하여 지장보살로부터 계를 받았으나, 본래 그 뜻이 미륵보살에게 있었으므로 다시 이곳 능가산(변산)으로 옮겨와서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하였다고 한다. 진표가 미륵보살을 친견한 정확한 위치가 능가산의 어느 곳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일설에 의하면 원효암이 있는 개암사 뒷산 우금암(禹金巖)에서 진표율사가 수도를 하였다는 설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진표율사는 능가산 ‘우금암(禹金巖)’에서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표율사가 미륵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능가산의 사찰로 들어갔다는 그 영산사(靈山寺)가 바로 ‘개암사’가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이와 같은 점을 살펴볼 때, 진표는 이곳 개암사의 산내 암자였던 ‘원효방(우금굴)에서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강증산 성사께서는 진표율사가 처음으로 미륵을 친견하고, 후천 가을세상을 여는 개벽(開闢)의 의미를 담은 이곳 ‘우금암(禹金巖)’이 있는 개암사(開巖寺)에서 천지를 개벽하는 공사를 보신 것이다.


강증산 성사로부터 네 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중곡도장의 개문납객기수기연(開門納客其數其然)


강증산 성사께서 개벽공사를 보신 개암사 경내의 ‘산신각(山神閣)’에는 특이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것이 대순진리회 도장에 그려진 ‘개문납객기수기연(開門納客其數其然)’의 벽화와 흡사하다는 사실은 신기할 따름이다.

이 벽화는 최근에 그려진 것으로, 천기자동(天機自動)에 의해 ‘앞으로 전개될 미래의 상황’을 그림으로 예시(豫示)해주고 있다.

‘개문납객기수기연’은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맞으니 그 수가 그러하고 그러하더라’는 뜻이다. 이 벽화는 그림 자체보다는 ‘그 수’에 의미가 있다. 즉 ‘네 사람’을 그려놓고 손님을 맞이한다는 그림으로, 박우당 도전께서 서울 중곡동 도장을 짓고 숭도문(崇道門) 벽에 그린 벽화의 내용과 동일하다. 이것은 천지를 개벽하기 위해 강세하신 강증산 성사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여 후천선경을 열어갈 분이 모두 ‘네 분’이 계신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벽화이다.


                          -미륵불 출세 上(상)편 308p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개암사 산신각의개문납객기수기연(開門納客其數其然)


용장을 들고 계시분이 도덕천존으로 미를


한편 중국의 민가에서 ‘福神(복신)’ 으로 전해져오는 그림이 위의 그림과 매우 닮아 있어 흥미롭다. 여기에서도 세 분의 福神(복신)과 한명의 어린아이가 그려져 있어 그 수가 4명이 된다.


이 그림에서 보면 三神(삼신)이 어린아이에게 복숭아를 주고 있다. 복숭아는 桃花樂園(도화낙원)을 의미 하는데,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 용화세상, 즉 극락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도 예로부터 깨달은 자들은 장차 새 세상이 열리는 開闢(개벽)이 올 것을 알았으며 , 또한 그때가 되어 도화낙원에 동참하기위해서는 “반드시 네 분을 찾아야 함” 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이와 같은 그림을 남겼던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의 민가에서 전해오는 福神(복신)그림


이 세 분 중에 좌측 노란 옷을 입고 조롱박이 달린 龍杖(용장)을 들고 계시분이 “道德天尊(도덕천존)”으로서 중국에서는 흔히 태상노군이라 하는데, 태상노군은 “도솔천의 天主(천주)” 로 표현 되어 있다. 이분이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세존” 이시다.


강 증산성사께서 개벽공사를 본 개암사에 이러한 벽화가 그려져 있음은, 강 증산성사께서 먼저 인세에 오셔서 천지를 개벽하는 공사를 보시고, 이후 그 짜여진 도수에 따라 세 분이 차례로 종통을 계승하여 그 大業(대업)을 마무리함으로써 도화낙원이 건설 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하늘의 뜻인 것이다.


⑹ 오선위기도(五仙圍碁圖)는 증산성사의 개벽공사


한편 포천도장에 그려져 있는 ‘오선위기도(五仙圍碁圖)’는 강증산

성사께서 개벽공사로써 세계 대세를 돌려 잡으신 것을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국’에 비유하여 표현한 벽화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포천도장에 그려져 있는 ‘오선위기도(五仙圍碁圖)


그런데 포천도장의 그림과는 달리 개암사 ‘산신각’ 벽화에서는 벌써 한 신선은 떠나고 없으며 ‘주인 신선’도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 있다. 이것은 이미 바둑이 끝나고 정리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제는 바둑돌과 바둑판이 주인에게 돌려져야 할 도수(度數)가 온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개암사 산신각의 오선위기 벽화


이렇게 산신각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이러한 세상이 “네 분”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지며, 또한 그때는 오선위기의 도수가 마무리 되어 우리나라가 上等國(상등국)이 되는 國運(국운)이 돌아온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능가산 개암사 산신각의 오선위기 벽화

                  2007, 3, 5(음4340, 1 16) 폰 사진



이 벽화에서 보면 한 신선은 판 밖에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을 터인데, 이곳 개암사 산신각에 이러한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이것은 오직 천기자동(天機自動)에 의한 영감으로 된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다.


⑺ 변산은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 등의 이름도 가졌다.


대로변에서 개암사까지 약 3km.

백제 부흥운동을 벌이며 최후의 격전을 벌인 주류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울금산(우금산) 그 아래 개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남사고는 이렇게 말했다.“내 책 ‘남격암’을 살펴보게나. 부안엔 호암(壺岩)이 있고 그 아래 변산 동쪽은 몸을 숨기기에 정말 적합하구나라고 했지.” 라고 했다고 한다.


.“노령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러 서해 가운데로 파고들어간다. 서·남·북 3면은 모두 바다다. 이곳은 많은 봉우리와 허다한 골짜기로 돼 있는데 변산 이라 부른다.” 맞는 말이다. 변산은 3면이 바다에 닿아 있고 봉우리와 골짜기가 유난히 많다.

● 변산은 백두대간의 서자


변산의 멧부리는 노령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백두대간의 계보를 자세히 적은 ‘산경표(山經表)’에도 변산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고지도를 보더라도 변산은 홀로 떨어진 외로운 산이다. 말하자면 백두대간의 서자인 셈이다.


정감록의 길지는 대부분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에 확실하게 능선이 닿은 적자(嫡子)들이다. 그렇다면 서자 격인 변산은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어 길지로 거론된 것일까?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절경이 이어지는데 이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변산의 산세는 용맥이 강이나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갑자기 멈춰선 경우에 해당해, 이른바 산진수회처(山盡水回處)의 명당이란다. 변산은 바다를 끼고 도는 외변산과 남서부 산악지의 내변산으로 구분한다.

변산에서 풍수지리를 본다는 어느 지관의 말을 들어보면,


“ 옛 말이 조금도 틀린 게 없어요. 우리가 사는 이 변산은 아주 옛날서부터 미륵님이 나타나신 땅이고, 관세음보살님의 성지요. 원효, 진표, 진묵 등 큰 스님들도 많이 오셔서 도를 닦으신 것만 봐도 이게 보통 땅이 아닌 것은 틀림없어요! 근세엔 증산교를 세운 강일순이도, 원불교의 소태산도 다 여기 변산서 도를 닦았단 말이죠. 그 분들이 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 분들인데 왜 다른 명당 다 놔두고 부안을 왔겠어요? 정감록에도 길지라고 나와 있단 말이에요. 미륵님이 현신하신 곳이니까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봐요.”


⑻ 內邊山(내변산)과 外邊山(외변산)名의 유래 

내변산을 형성하는 최고봉 의상봉 (509m)과 쌍선봉 (459m), 옥녀봉, 관음봉(433m) 등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묶어 ‘해변에 있는 산’이라는 말을 이 곳 山(산) 지명으로 만들어 놓았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반도. 바닷가의 채석강과 적벽강을 중심으로 한 외변산과 연봉과 이들로 만들어진 계곡과, 담 및 소의 내변산으로 나누어 놓았다. 금강산과 설악산이 `내, 외’가 붙는 것을 봐도 이 변산의 안과 밖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⑼ 海邊은 해왕(海王)의 度數(도수)에 응한다.


부안 변산에 二十四 혈이 있으니 이것은 회문산의 혈수의 상대가 되며 海邊에 있어 해왕(海王)의 도수에 응하느니라.

회문산은 산군(山君), 변산은 해왕(海王)이니 증산성사께서 그 정기를 뽑으셨다. (공사 3;6절)

☞ 변산에 있어 해왕에 응 한다 함은 산군의 이치로 오시는 미륵세존께서는 물의 이치인 해왕에 응 한다는 뜻이다. (음양합일)


♣ 무극진경 8장 68절(대순전경과 무극진경 비교)


하루는『천하자기신(天下自己神) 고부운회(古阜運回) 천하음양신(天下 陰陽神)전주운회(全州運回) 천하통정신(天下通精神) 정읍운회(井邑運回) 천하 상하신(天下上下神) 태인운회(泰仁運回) 천하시비신(天下是非神) 순창운회(淳 昌運回)』라는 글을 쓰셔서 태우시고 말씀하시기를『회문산에 24혈이 있고 변 산에 24혈이 있어 각기 사람의 몸의 24추(24군데의 사람의 정기가 모인자리)에 응하여 큰 기운을 간직하였으니 이제 회문산은 산군(山君), 변산은 해왕(海王) 의 도수로 정하여 삼계공사에 그 기운을 쓰노라.』하시니라.

⑨:041『이 세상이 너무 악하여 몸 둘 곳이 없으므로 장차 깊이 숨으려 하느니 어디가 합당 하뇨?』하시므로 원일이『변산 속에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곳이 많사오니 그 곳이 좋으리이다.』하였으나 아무 말씀도 없으시니라.


⑽ 변산 호암(壺岩 = 병바위) 십승지


변산 (邊山)은 서쪽.남쪽.북쪽은 모두 바다이고 산 안에는 많은 봉우리와 수많은 구렁이 있는데 이것이 변산이다.

굴바위로 불리는 변산 호암. 굴 입구의 모습이 호리병을 닮았다.

 " 자칫 배수진을 처야 할 외통수의 땅이지만 비결은 이런 "변산의 호암 (壺岩 = 병바위) 아래" 가 십승지라 했다. '남사고비결' 은 여기에다 단서조항을 넣고 있다. "탐라 (제주)가 다른 나라 땅이 되면 그렇지 않다." 변산에서 호암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발음만 듣고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은 보안 (保安) 면 호암 (虎岩) 리다. 호랑이와 호리병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우선 바위부터 찾는다. 우금산성에 우금바위가 있다. 우금바위 동남편이 개암사 계곡이다. 이곳은 너무 좁고 동쪽 김제평야와 얼굴을 맞대고 있다. 군부대의 초소로 제격이다. 우금산성 북쪽, 상서면 통정리에서 우슬재를 넘으면 쇠뿔바위을 만나게 된다.


변산에서 가장 높다는 의상봉을 왼쪽에 끼고 있는 쇠뿔바위, 청림리의 주산 (主山) 이다. 심상치 않다. 당연히 우공 (牛公) 이 먹을 식량 (잡초더미) 이 있어야 한다. 남쪽에 자그마한 노적봉이 있고 동리 이름도 노적이다.

고광충 (57) 씨는 "부안 고을에서 첫 손꼽는 마을이 노적" 이라고 한다. 진사 급제자가 가장 많았고 유명 부자는 이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뒷말은 이곳이 십승지가 아님을 전한다. "6.25때 수복이 가장 늦었고 궁궐같은 기와집들은 모두 불타버렸다" 고 한다. 이제 남은 것은 '굴바위' 를 끼고 있는 보안면 우동 (牛洞) 리다.

이곳은 이성계가 젊은 시절 무예를 닦았다고 전해지는 성계골과 실학의 문을 연 반계 유형원이 경국 (經國) 의 꿈을 펼치던 곳. 이 마을 북쪽에 옥녀봉이 있고 그 줄기 끝이 굴바위다. 우동제방에서 바라보면 굴바위 입구의 모양이 영낙 없는 호리병 모양이다. 우동리는 전형적인 三胎氣(삼태기)기형 지형이다. 앞이 터진 것 같으나 천마산이 막고 있다. 가히 욕심 없이 살 수 있는 전원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굴바위로 불리는 변산 호암. 굴 입구의 모습이 호리병을 닮았다.


⑾ 통일(統一)하려면 부모산(父母山)으로 비롯


무극진경 2장 28절

『전주(全州)의 모악산(母嶽山)은 순창(淳昌)의 회문산(回文山)과 서로 마주 서서 부모산(父母山)이 되었으니 부모(父母)는 일가(一家)의 장(長)으로서 가족(家族)을 양육통솔(養育統率)함과 같이 땅의 지운(地運)을 통일(統一)하려면 부모산(父母山)으로 비롯하여야 하느니라.

이제 모악산(母嶽山)을 주(主)로 하고 회문산을 응(應)으로 하여 산하(山河)의 기령(氣靈)을 통일(統一)하리라.

또 수운가사(水雲歌詞)에『산하대운(山河大運)이 진귀차도(盡歸此道)라.』하고 궁을가(弓乙歌)에『사명당(四明堂)이 갱생(更生)하니 승평시대(昇平時代) 불원(不遠)이라.』함과 같이 사명당(明堂)을 응기(應氣)시키되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五仙圍碁)로 시비(是非)를 끄르고 무안(務安)의 승달산(僧達山) 호승예불(胡僧禮佛)로 앉은 판이 되며, 태인(太仁) 배례(拜禮)밧의 군신봉조(群臣奉詔)로 인군(人君)을 내고 장성(長城)  손룡(巽龍)의 선녀직금(仙女織錦)으로 비단 옷을 입히리니 이로써 밑자리를 정하여 산하대운(山河大運)을 돌려 발음(發蔭)하게 하리라.』하시니라.



                                                                              고 도인




출처 : 고도인의 해인海人으로 가는 카페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