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곧 제사이니라.”
교운 1장 45절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절사를 가르치셨도다.
어느 명절에 이런 일이 있었느니라.
김형렬이 조상의 절사를 준비하였으나
증산성사의 명을 받고 마련하였던 제수를
증산께 가져갔더니 증산성사께서
여러 종도들과 함께 잡수시고 가라사대
“이것이 곧 절사이니라” 하셨도다.
또 차경석도 부친의 제사를 준비하였던 바
그 제수를 증산성사와
여러 종도들과 함께 나눴도다.
이 때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이것이 곧 제사이니라.”고 가르치시니라.
이후부터 형렬과 경석은 가절과 제사를 당하면
반드시 증산성사께 공양을 올렸도다.
▶ 증산성사께서
제사에 쓸 제수를 먼저 드시면서
절사와 제사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다.
과연 제수를 먼저 드신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신명이나
돌아가신 조상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드리는 것을 제사(祭祀)라고 한다.
제사의 종류는 사시제(四時祭),
시조제(始祖祭), 선조제(先祖祭),
묘제(墓祭), 기제(忌祭)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 조상에게 달과 계절,
해가 바뀜을 알리는 동시에
그해 새로난 과일과 농산물을 신에게 올리는
의례로 절기나 명절을 따라 지내는 제사를
절사(節祀) 또는 차례(茶禮)라 한다.
절사는 정월 초하루ㆍ정월보름ㆍ한식ㆍ
삼진ㆍ단오ㆍ유두ㆍ추석ㆍ중양ㆍ
동지 등에 지낸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제사상 앞에서 축문을 읽는다.
축문은 제사를 모시는 자손이
제사를 받는 조상께 제사를 모시는 이유와
조상을 생각하면서 정성껏 음식을 마련했으니
맛있게 드시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다.
제사에 쓰이는 여러 가지 재료를
제수(祭需)라 하며 조리된 음식을
제사 음식이라 한다.
제사를 모시기 전에는 제상에 올릴 음식을
먼저 맛보아서는 안 되며
메(밥), 탕 등은 따뜻해야 하므로
미리 올리지 않는다.
절사 때에는 밥 대신
명절에 먹는 음식을 올리기도 하는데
설날에 떡국, 추석에는 송편 등을
올리는 것이 그 예이다.
이렇게 제사와 절사 때에 올리는 음식은
다르더라도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다.
바로 ‘음복(飮福)’을 한다는 점이다.
음복은 조상께서 내린 복된 음식이라는 뜻으로
조상이 자손들에게 복을 내려주는 것이요
제례를 거치면서 신이 잡수시고
남기신 신성한 음식이다.
그러므로 음복은 조상들의 음덕을 음식으로써
후손들의 몸에 체화하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조상을 잘 섬기고
복을 받으려는 후손들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음복을 끝내기 전에는 제복을 벗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고 예를 갖추었다.
음복이 끝나면 집안이나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풍습이 있으며 제사 음식은
그날 중으로 모두 소비해야 한다는 풍습이 있다.
이는 신(神)의 은택을
묵혀서는 안 된다는 관념에서 나온 것이지만,
또한 음식이 상하기 전에 처분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지역에 따라서는 다음날까지도 어른들을
초대하여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모든 제례의 절차는 마지막 절차인
음복까지 다 하였을 때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경』의 교운 1장 45절 내용을 보면
증산께서는 절사와 제사에 준비된 제수를
제상에 올리기 전에
다른 종도들과 함께 나눠 드셨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신명이나 돌아가신 조상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드리는 것을
제사(祭祀)라 하고,
절기나 명절에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절사(節祀)라 하였다.
『예기: 예(禮)에 관한 경전을 보완(補完)ㆍ주석(註釋)한 중국
고대 유가(儒家)의 경전 』에 의하면
“만물은 ‘천(天)’에 근본하고,
인간은 조상에 근본하니,
이는 ‘상제(上帝)’에 배향되는 까닭이다.
‘교(郊)’제사는 크게 근본에 보답하고
시원(始原)으로 돌이키는 것이다.”라고 하여
‘보본반시(報本反始: 은혜를 입으면 보답할 것을 생각하여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천지와 선조의 은공에
보답함을 이르는 말.)’를
제사의 목적으로 제시하였으며,
만물과 인간조상의 ‘신’이
모두 ‘상제’께 배향된다면,
모든 제사는 인간이
자기 생명의 근원에 보답하는 것이다.
교운 1장 25절에 보면
증산께서 어느 날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만날 사람 만났으니”라는 가사를 아느냐 하시고
“이제부터 네가 때마다 하는 그 식고(食鼓)를
나에게 돌리라” 하시니
공우가 감탄하여 여쭈기를
“평생의 소원이라. 깨달았나이다.”
원래 공우는 동학신도들의 식고와는 달리
“하느님 뵈어지소서.”라는
발원의 식고를 하였었다.
그런데 눈앞에 하느님이 뵈어진 것이다.
즉 증산께서는 천지부모의
지모(地母)이므로
식고를 돌리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인세에 와 계신 그 분과
만날 사람 만나서 제수음식을 드신다면
그만한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예를 들어 자식이 청와대에 근무하는데
그 자식의 ‘빽’으로 청와대 초청을 받아서
대통령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이치와 같다.
그만큼 진법 도인들은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는데 그 이치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수음식이나 생일 음식을
천하의 대두목이신 관장님과 함께 나눈다면
조상신명들은 감히 신명계에서 옥경대에
얼씬도 못할 터인데 자손을 잘 둔 덕분에
천하의 대두목과 함께 음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인해서 조상신명들은
그 자손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우리자손을 도(道)에서 꼭 성공시켜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어
그 자손이 잘 될 수 있도록
기운을 몰아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이것이 곧 제사이니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그래서 교법 2장 36절에 보면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육십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그렇게 공을 드려도 자손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 같이 공을 드려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요” 하셨던 것이다.
또한 교법 2장 14절에 보면
“이제 각 선령신들이 해원 시대를 맞이하여
그 선자 선손을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덜미를 쳐 내세우나니 힘써 닦을지어다.”
고 말씀하시고
공사 3장 9절에는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이다”고 여쭈니 증산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 라고 말씀 하셨다.
이렇게 볼진대 제수음식은
선령신을 모시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태초의 조상이신
태조(太祖)의 선령신을 섬기는 것이니
어찌 소흘히 할 수 있겠는가?
교운 1장 48절
제수(祭需: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여러 가지 물품이나 음식)는
깨끗하고 맛있는 것이 좋은 것이오.
그 놓여있는 위치로써 귀중한 것은 아니니라.
◐ 제수(祭需)는 제사지낼 때 음식을 말하는데,
깨끗하고 맛있는 것으로 전수하여
올리면 되는 것이다.
또 진설할 때 놓은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식사할 때와 같이
드시기에 좋은 위치대로 진설하고,
얼마만큼 정성을 드려서
올려놓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교운 1장 49절
신은 사람이 먹는 대로 흠향하니라.
◐ 제사상에 음식을 차려 놓으면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신명(神明)은 음식의 기(氣)를 마시는 것이다.
교운 1장 33절
공우가 어느 날 증산성사를 찾아뵈옵고
도통을 베풀어주시기를 청하니라.
증산께서 이 청을 꾸짖고 가라사대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天上(천상) 공정에 참여하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베풀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 편벽됨을 힐난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정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
하셨다.
교운 1장 40절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교운을 굳건히 하시고자
도통에 관한 말씀이 계셨도다.
“지난 날에는 도통이 나지 아니 하였으므로
도가에서 도통에 힘을 기울였으나
음해를 이기지 못하여 성사를 이룩하지 못했도다.
금후에는 도통이 나므로 음해하려는 자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고 하셨도다.
◐ 증산성사께서 모든 사람에게
운수의 가르침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
도통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지난날에는 도통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인계(人界)와 신계(神界)가 서로 떨어져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 닦는 사람이 도통을 하기 위해서
힘을 기울여 수도를 해도
음해(陰害)하는 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일에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인존시대(人尊時代)가 도래되어 사
람이 천지 운영을 맡아가도록 되어 있으므로
도통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다.
따라서 증산성사께서
신인상합(神人相合)을 할 수 있게끔
진법(眞法)으로서 정해 놓았기 때문에
음해(陰害)하려는 자가 도리어
해(害)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운 1장 41절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주면 되려니와
도통 될 때에는 유 불 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
라고 증산께서 말씀하셨도다.
교운 1장 19절
김광찬과 신원일이 증산성사를 모시고 계시던
丁未年(정미년1907) 正月(정월)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그들에게
“귀신은 진리에 지극하니
귀신과 함께 천지공사를 판단하노라”
하시면서 벽에 글을 다음과 같이 써 붙이셨도다.
[지기금지원위대강]
◑ 1907년 정월,
김광찬(金光贊)과 신원일(辛元一)에게
증산께서는 “귀신은 진리에 지극하니
귀신과 함께 천지공사를 판단하노라.”고 하시며,
시천주와 경주용담보은신(慶州龍潭報恩神),
전주동곡해원신이라 쓰신 글을
벽에 붙이시는 일이 있었다.
이 공사의 내용에 대해 그 의미를 유추해보면
경주 용담(龍潭)은 최제우가
제세대도의 계시를 받은 곳인데,
이는 지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보은신(報恩神)이라고 했으므로
경상도 경주의 용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보은신(報恩神)은 천지주인을
말하기 때문에 진짜 미륵을 일컫는 것이다.
그래서 보은(報恩)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에 미륵대불이 있는 것이다.
시천주(侍天主)는 최제우가 받은 주문이지만
천주(天主)가 누구인지 모르고
시천주(侍天主)했기 때문에
욕속부달(欲速不達)이 되었으므로
보은신(報恩神)을 시천주하면
대강이 틀림없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주용담보은신(慶州龍潭報恩神)을
보은신(報恩神)을 시천주(侍天主)하라는
그러한 내용이 숨어있는 공사이다.
그리고 전주동곡해원신(全州銅谷解冤神)
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전라도 전주가 아니라
전 우주 삼라만상을 일컫는 말인 것이며
해원신(解冤神)은 해원두목이신
대두목을 말하는 것이며
동곡(銅谷)은 동곡약방으로
제생관(濟生官)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귀는 현재 대순진리회
입도치성 때 사용되는 녹명지(錄名紙)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내용이다.
천지에 귀신들이 치성(致誠)때
보은신(報恩神) 해원신(解冤神)과 함께
음복을 함께 함으로 해서 귀신들은
경위가 밝으므로 누가 천지의 주인인지
귀신들로부터 판단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 귀신들은 어떤 귀신들이냐 하면
바로 제수음식을 준비한 도인들, 그리고
치성에 참례한 도인들의 선령신을 말한다.
오늘날 조상에 대한 자손으로서의 도리가
있다고는 하나 조상들이 자손이 있다고 하여도
물 밥 한 그릇 못 얻어먹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는
뿌리(本)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각종 화(禍)로부터
가정을 보호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다 죽으리라”고 하신 것이다.(공사 3:9)
행록 4장 44절
이 해 가을 어느 날
증산께서 안내성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부지런히 농사에 힘쓰고
밖으론 공사를 받드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
안으론 선령의 향화와 봉친 육영을 독실히 하여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셨도다.
▶ 선령(先靈)의 향화(香火):
선조(先祖)의 영혼(靈魂)에 제사 지내는 것.
▶ 봉친 육영(奉親育嬰): 어버이를 받들어 모시고,
어린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는 것.
▶ 안내성(安乃成)은 본래 이름이
내선(乃善)으로 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다.
여러 조도들 중에서
어린 시절을 가장 험난하게 보낸 사람이다.
8세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9세 때부터 집을 나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중국에까지 다녀온 끝에
정미(1907)년 41세 때 정읍새재에서
증산성사를 뵙고 따르게 되었다.
안내성 종도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겼고,
잠도 편하게 못 잤다고 하는데
『전경』에는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증산께서 유독 안내성 종도를
천대하고 구박하셨다고 한다.
증산성사께서 안내성에게
“불의로써 남의 자제를 유인하지 말며
남과 다투지 말며 천한 사람이라 천대하지 말며
남의 보화를 탐내지 말라.
보화라는 글자 속에
낭패라는 패자가 들어 있느니라.” (교법 1:38)
증산성사께서
“하도낙서 지인지감 김형렬
(河圖洛書 知人之鑑 金亨烈),
출장입상 김광찬
(出將入相 金光贊),
기연미연 최내경
(旣然未然 崔乃敬),
평생불변 안내성
(平生不變 安乃成),
萬事不成 金松煥)
(만사불성 김송환)이라 쓰셔서 불사르셨다.
(공사 1:30)
◐ 하도와 낙서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김 형렬이가 본보기요,
나가면 장군이요 들어오면 재상인 사람은
김 광찬이로다.
기연미연(긴가 민가 의심 하는것) 하는 사람은
최 내경이고,
평생 변함이 없는 사람은 안 내성이며,
모든 일을 이루지 못할 사람은 김 송환이로다.
▶ 수도의 요체는 안내성이 본보기이다.
증산성사께서 안내성에게 이르시니라.
“시운벌가벌가기측불원(詩云伐柯伐柯其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이 어길 바 없으나
이는 도시 사람이오.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목전의 일만을 쉽게 알고 심량없이 하다가
말래지사(末來之事)가 같지 않으면
그 아니 내 한(恨)인가”를 읽으시니
뇌성이 대발하며 천지가 진동하여 지진이 일어나고
또한 화약내가 코를 찌르는도다.
모든 사람이 혼몽하여 쓰러지니라.
이들을 증산께서 내성으로 하여금
일으키게 하셨도다. (공사 3:21)
◐ 시운벌가벌가(詩云伐柯伐柯)하니
기즉불원(其則不遠);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에
이르기를 도끼자루를 베는데 장단과 굵기는
자신이 들고 있는 도끼자루에 기준하면
되기 때문에 그 기준이 먼데 있지 않다.
※ 伐柯(벌가); 도끼 자루감을 도끼로 벤다는
뜻으로 진리(眞理)는 눈앞에 있는 것이니,
먼 데서 구할 것이 아니라는 비유(比喩)
☉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건마는;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
손에 쥔 도끼자루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도끼자루를 벨 수 있지마는
☉ 이는 도시(都是) 사람이요
부재어근(不在於斤)이로다.;
이는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요
도끼날에 원인이 있지 않다.
(도끼자루를 베는 것은 사람이 베는 것이요
도끼날이 스스로 나무를 베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스승님과 같은 사람이 되려면
닦는 사람이 스승님께서 교훈하신 말씀대로
닦는 사람이 그대로 실행해야 되는 것이요,
교훈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스스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전 빙풍장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셔서
도끼자루를 베려면 손에 쥐고 있는
도끼자루와 똑 같은 것을 베어야 되는 것과 같이
스승님과 같은 사람이 되려면
선생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스승님과 같이
행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 목전지사(目前之事) 쉬이알고
심량(心量)없이 하다가서; 눈앞에 보는 일을
쉽게 알고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하다가서
☉ 말래지사(末來之事) 같잖으면
그 아니 내 한(恨)인가; 끝에 가서 일이
뜻과 같이 잘 되지 않으면
그것이 어찌 한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 末來之事(말래지사): 끝으로 오는 일,
나중에 오는 결과.
(눈으로 직접보고 도끼자루를 베는 것도
잘 살펴보지 않고 아무 나무나 베어
도끼자루로 쓰지 못하게 된다면
그 또한 한탄하게 될 일이 아니겠는가?
도를 이루는 것도 이 같이 쉽게 생각하고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대로 행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행하다가 뒤에 가서
도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면
그 역시 한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 이러므로 세상일이 난지이유이(難之而猶易)하고;
이러므로 세상일이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쉽고(세상일이 비록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깊이 생각하고 법에 따라서
잘 하게 되면 오히려 쉽게 이루어진다.)
☉ 이지이난(易之而難)인줄을 깨닫고 깨달을까?;
쉽다고 생각한 것이
어려운 것인 줄 깨닫고 깨달을까?
(쉬운 일이라 해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힘써 행하지 아니하면 어려운 일보다도
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니 모든 일을
깊이 생각하고 힘써 바르게 잘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일이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도리어 쉽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깨달아서
모든 일을 제 멋대로 행하지 않고
법에 따라 신중하게
행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행록 4장 44절】
이 해 가을 어느 날
증산께서 안내성(安乃成)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부지런히 농사에 힘쓰고
밖으론 공사를 받드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
안으론 선령의 향화와 봉친 육영을 독실히 하여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셨도다.
▶ 안내성(安乃成): 네가 뜻을 이루어
편안하다는 뜻으로 본명은 내선(乃善)이다.
▶ 선령(先靈)의 향화(香火):
선조(先祖)의 영혼(靈魂)에 제사 지내는 것.
▶ 봉친 육영(奉親育嬰): 어버이를 받들어 모시고,
어린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는 것.
▶ 과연 무슨 이유로
안 내성 종도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
증산성사께서 안내성 종도에게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셨다.
왜 그랬을까?
【행록 4장 41절】
증산성사께서 어느 날 차경석.
김광찬. 황응종을 앞에 세우고
공우에게 몽치를 들게 하고
윤경에게 칼을 들리고
“너희가 이 이후에도
지금의 스승을 모시고 있듯이 변함이 없겠느냐.
변함이 있으면 이 몽치로
더수구니를 칠 것이오.
이 칼로 배를 가를 것이니라”고
꾸짖기도 하고 타이르시기도 하셨도다.
※ 더수구니: 뒷덜미의 낮춤말,
머리의 뒷부분으로 후두부를 말한다.
※ 앞으로도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
마음에 변함이 없겠느냐?
변함이 있으면 죽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행록 5장 19절】
김자현은 六월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네가 나를 믿느냐”고 다짐하시기에
“지성으로 믿사옵고
고부화액 때에도 선생님을 따랐나이다.”
고 믿음을 표명하였도다.
그리고 증산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장차 어디로 가리니 내가 없다고 핑계하여
잘 믿지 않는 자는 내가 다 잊으리라.”
이 말씀을 듣고 자현은
“제가 모시고 따라가겠나이다”고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다시
“어느 누구도 능히 따르지 못할지니라.
내가 가서 일을 행하고 돌아오리니
그 때까지 믿고 기다리라.
만일 나의 그늘을 떠나면 죽을지니라”
고 이르셨도다.
※ 만일 나를 잊으면
다 죽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공사 3장 9절】
“이 일은 생사의 길을 정함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고 하시니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이다”고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 하시고
접시를 종이에 싸서
주사(朱砂)를 묻혀 책장마다 찍으셨도다.
“이것이 곧 마패(馬牌)라”고 이르셨도다.
▶ 즉 어명(御命)인 것이다.
【권지 1장 11절】
“이 길이 남조선 뱃길이라.”
“대진(大陣)은 일행 三十리라” 하시고
나를 쫓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동학신자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
라고 말씀하셨도다.
▶ 그러나 나를 쫓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라고 하셨다.
【예시 79절】
증산성사께서 하루는 공우에게 말씀하시길
“동학 신자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고,
불교 신자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예수 신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
누구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고 하셨도다.
▶ 누구 한 사람은 바로
진주의 말수를 잡은 사람이다.
이것이 ‘독조사도수’이다.
조사(祖師)는
스승의 원조라는 뜻이고
독조사(獨祖師)는
태초에 그 스승은 한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진주의 말수를 잡은 사람’이
대선생(大先生)으로 대선생(代先生)이며
독조사(獨祖師)인 것이다.
▶ “선생이 곧 만인을 살리는 대선생이시니라”
고 고백하였도다.(행록 4:27)
▶ 无極神 大道德奉天命奉神敎大先生前如律令
무극신 대도덕봉천명봉신교대선생전여율령
무극신(미륵세존님)의 大道德(대도덕)을
천명과 신교로 받들어 대선생의 율법이다.
즉 대선생께서는
선생의 법대로 시행해 나아가라.
【교운 1장 44절】
증산성사께서
“경석에게 책 한 권을 주었으니
그 글이 나타나면 세상이 다 알 것이라.”
말씀하시고 성편된 책을 불사르셨다.
▶ 그 글은 주역의 수리(數理)였으며
여기에서 운수(運數)가 있다고 했으며
‘지기금지원위대강’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세상이 다 되었고
그렇게 기다리던 때가 다 된 것이다.
左旋 四 三 八 天地魍魎主張
좌선 사 삼 팔 천지망량주장
九 五 一 日月竈王主張
구 오 일 일월조왕주장
二 七 六 星辰七星主張
이 칠 육 성신칠성주장
運 至氣今至願爲大降
운 지기금지원위대강
無男女老少兒童咏而歌之
무남녀로소아동영이가지
是故永世不忘萬事知
시고영세불망만사지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 좌선(左旋)은
왼쪽(시계방향)으로 돈다는 뜻이다.
4 · 3 · 8 은 천지를 망량(도깨비)이 주장하고,
9 · 5 · 1 은 일월을 조왕(조왕신)이 주장하며,
2 ·7 · 6 은 성진(별자리)을
칠성(28수)이 주장 한다.
운수는 대강(大降)을 받는 것이다.
남녀노소(男女老小) 아동들이 이 노래를 한다.
그러므로 세상 영원토록 세상만사를 다 안다.
천주를 모시고 조화로써
세상 영원토록 세상만사를 다 안다.
* 천지는 망량이 주장 하지만
천지도 일월이 없으면 빈껍데기라 하였으니
일월은 조왕이 주장한다.
조왕은 조왕신(竈王神)으로
물의 본체 신(神)이다.
즉 수신(水神)으로 해인을 말한다.
수신(水神)은 태을성에 계시는
太乙水(태을수) 神明(신명)으로
태을천상원군이시다.
태을천상원군은 위로는 옥황상제님을 받들고
아래로는 36조를 거느리는 자미제군으로
칠성을 관장하시는 분이다.
【예시 21절】
“문왕은 유리(羑里)에서 삼백팔십사 효를 지었고
태공(太公)은 위수(渭水)에서
삼천육백 개의 낚시를 버렸는데
문왕의 도술은 먼저 나타나고
태공의 도술은 이 때에 나오리라” 하시고
“천지무일월 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 무지인 허영(日月無知人虛影)”이라 하셨다.
◐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무지인허영(日月無知人虛影):
천지에 일월(日月)이 없으면 빈껍데기요,
일월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빈 그림자이다.
그 일월의 이치를 밝히는 지인(知人),
즉 진주(眞主)를 잡은 대두목이 계시기에
천지가 밝아지고 칠성도 빛이 난다.
● 강태공의 도술은 이제 나타나리라
후대 사람들은 강태공이
단지 주나라 문왕을 도와
상(商)나라 주왕을 멸하고
그 공로로 제나라에 봉해진 현자라고만 알뿐이고
봉신(封神)을 하고 지존시대(地尊時代)를
열은 사실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한다.
5500여 년 전 복희(伏羲)는
황하에서 용마(龍馬) 등에 그려진
하도(河圖)를 보고 팔괘[八卦, 희역(羲易)]를 지어
신명을 하늘에 봉(封)했는데
이로써 천존시대(天尊時代)가 열렸다.
그러나 이 천존시대는
때가 되면 바뀌게 되어 있다.
즉 천존시대는 희역의 섭리로써
봄철과 같은 태동의 섭리인 것이다.
인류역사의 태동기에 필요한 섭리이다.
봄이 다가고 나면 여름이 오듯이
희역의 섭리는 때가되면
주역(周易)의 섭리로 바뀌어야 했던 것이다.
즉 주역은 역사에 있어서
여름철의 성장기의 섭리가 된다.
주역은 문왕(文王)이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그려진 낙서(洛書)를 보고
지은 팔괘(八卦)로써 유리(羑里)에
유폐되어 있는 동안에 완성하게 된다.
강태공은 신명을 땅에 봉(封)하고 지존시대를
열어야했으므로 신명을 봉할 새로운
역(易)을 가진 자를 만나야만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강태공이 위수(渭水)에서
10년 간 3600개의 낚싯대를 버리며
때를 기다린 것은 결국
지존시대를 열 수 있는 새로운 역(易)을
가진 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역사적 사실로만 보자면
문왕이 강태공과 같은 현자(賢者)를 찾아
주왕을 멸하고 통일 대업을 이루는 것이겠지만
실재는 그와 반대로 강태공이 문왕을 낚기 위해
위수에서 10년간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봉신방(封神榜)은
땅에 신(神)으로 봉(封)할 365명의 명단을 말한다.
신을 봉하자면 일단 인간이 죽어서
혼(魂)만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죽어 신이 되어야 된다.
그리고 그것도 보통 신으로는 되지 않고
충분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주왕의 폭정과
문왕의 역성혁명 중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
강태공은 문왕을 도와 주왕을 멸하는 과정에서
그 임무를 완수해 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강태공의 10년 동안 위수에서
낚시를 한 것은 봉신(封神)을 하고
지존시대를 열 도수(度數)를 짜는 과정이고
그 끝에 문왕을 만나
주역(周易)의 괘상(卦象)에 따라
봉신(封神)을 실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증산 성사께서
“강태공(姜太公)이 십 년의 경영으로
낚시 三천 六백개를 버렸으니
이것이 어찌 한갓 주(周)나라를 흥하게 하고
제나라 제후를 얻으려 할 뿐이랴.
멀리 후세에 전하려 함이니라.”하신 것은
이러한 강태공의 봉신(封神)으로
지존시대(地尊時代)를 열어 3000년간
인간의 운수를 이끌어 온 것을 말함이다.
지존시대의 모든 운수는 땅에 봉해진
신명의 기운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살아서는 집터 보고
죽어서는 묘터를 보며
이사를 할 때도 방위를 따져서
이사를 가는 이유 등은 모두
지존시대에 신명이 땅에 봉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국운(國運)까지도
지기(地氣)의 영향을 받았으니
도읍을 정할 때 지관의 말을 따른 것도
모두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존시대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바뀌게 되어 있다.
이제는 정역(正易)이 나타나고
정역에 의해 인간에게 봉신(封神)을 하는
인존시대(人尊時代)가 도래되는 것이다.
정역에 의한 인존시대는
가을철의 결실과 완성을 결정짓는 섭리가 된다.
그러므로 천존시대와 지존시대는
바로 이 인존시대의
결실을 보기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강태공의 10년 경영으로
위수에 3600개의 낚시를 버린 것은
먼 훗날 인존시대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인존시대는 인간에게 신(神)을 봉(封)하는 것으로
신인상합(神人相合)이 되어
신선(神仙)이 실현되는 것이다.
‘문왕의 도술은 먼저 나타나고
강태공의 도술은 이제 나타난다’함은
다름이 아닌 문왕의 주역은
지존시대를 열어 3000년 동안
인류가 지기의 영향으로 살아가게 한 것에 있고,
강태공의 도술은 지존시대 3000년 동안에
유ㆍ불ㆍ선의 도(道)가
지기(地氣)를 타고 일어나게 하고
선천의 유ㆍ불ㆍ선도에 도통(道通)을 한
신(神)들이 이제 후천의 인존시대를 맞이하여
수도 완성된 인간에게
봉신(封神)이 되도록 한 것이다.
강태공이 3600개의 낚시를 위수에 버리면서
짜둔 도수는 바로 신인상합 할
유불선의 도통신들을 준비함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준비가 되었으니
강증산 성사께서는 이제 칠십이둔으로
화둔(火遁)을 틀어 선천(先天)의 주역시대에서
후천(後天) 정역시대로 넘어가는
개벽의 공사를 보시고
신인상합 할 새로운 도수를 짜두신 것이다.
‘나는 곧 삼이화(三離火)니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 개벽을 이룩하시는
섭리의 주재자이심을 말씀하신 것으로
김일부 선생이 지은 역(易)의 중궁(中宮)에
2ㆍ7화(火)가 자리하고 있음을 말한다.
일부역(一夫易)은 우주의 주재자가
천지를 개벽하는 역(易)으로써
시루와 솥을 걸어놓고
불을 때고 완성시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연후에 비로소 정역(正易)의 인존시대가
도래되니 1ㆍ6수(水)가 중궁에 들어가는
우물 정(井)자가 되는 것이다.
이 우물 정(井)자는 바둑판의 모양으로
바둑판 360점에 1명씩 즉
일년 360일을 관장하는 군자(君子)가
봉신(封神)을 받게 되어
천지의 운영을 맡아가는
인존시대가 이룩되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선경세상이라 한다.
강태공의 도술은 여기에까지 미쳐 있는 것이니
범인의 생각으로는 가히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 강태공과 문왕의 고사
※ 강태공의 72세에 문왕을 만났다.
강태공(姜太公, BC 1212(?)~BC 1073)은
중국 상(商)나라 사람으로
본래 성은 강(姜)씨이고 이름은 상(尙)이며,
자는 자아(子牙)이다.
그의 조상이 우(禹)임금의 치수 사업을 도운
공로가 있어 하(夏)시대에 여(呂),
지금의 하남성 남양 서쪽 땅에 봉해 졌으므로
여(呂)씨가 되었다.
그러므로 여상(呂尙)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왕의 아버지 태공(太公)이 오래도록 기다리며
바라던[望] 사람이라 하여 태공망(太公望)
또는 강태공(姜太公)이라고 불렀다.
그는 젊어 시절에는
곤륜산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전해지며,
이후 나이가 들도록 벼슬을 하지 않고
동해가에 숨어살면서 매일 위수(渭水)에 나가
낚시만 하였는데,
미끼가 없는 곧은 낚시 바늘을
수면으로부터 석자 가량 떨어진 허공에
드리운 채로 낚시를 하였는데
10년 동안을 이와 같이 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가 문왕을 만나는 10년 동안을
위수에서 낚시를 하며 하루에 하나씩
낚시대를 위수에 버렸으니
3천 600일을 이와 같이 하였다.
맹자(孟子) 「이루(離婁)」에는
“태공이 은나라 주왕(紂王)의 폭정을 피해서
동해가에 살다가 문왕이 떨쳐일어나자,
천하의 존경을 받는 원로로서 귀의하였다”
라고 하였다.
문왕(文王)은 성이 희(姬)씨로 이름은 창(昌)이다.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의하면,
그는 용의 얼굴에 범의 어깨를 하고
신장이 10척이었으며
가슴에 4개의 젖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면서
백성들의 고통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주(周) 왕조 시조 후직의 13대손 고공단부는
덕을 쌓아 많은 사람들의 인심을 얻고 있었는데
훈육 융적의 공격을 받아
기산으로 옮겨가 정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성곽과 가옥을 건축하고
읍을 나누어 백성을 다스렸으며
오관유사를 설치한 후 국호를 주(周)라 하였다.
당시 주는 은나라 제후국의 하나였다.
고공단부의 손자 희창(姬昌)은
기산(岐山) 아래에 나라를 세우고
선행하고 바른 정치를 폈다.
그가 바로 주문왕이다.
당시 은(殷)나라의 28대째 마지막 군주가 된
주왕이 제위에 올랐다.
주왕(紂王)은 수(受)라고도 하며
제신(帝辛)이라고도 한다.
생몰연대는 미상이며 제을(帝乙)의 아들이다.
제을이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하여
중국역사상 유명한 폭군으로 기록되었다.
33년간 재위하였다.
주왕은 신체가 장대하고 외모가 준수하며,
맨손으로 맹수를 사로잡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또 총명하고 재치가 있으며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다.
그는 여러 차례 산동성의 동이(東夷)를 공격하여
많은 노예들을 포로로 잡아왔다.
그는 또 동남쪽에도 주의를 기울여
중원문화를 회하(淮河)․장강(長江) 유역으로
전파함으로써 통일 중국의 면모를 갖추는데도
어느 정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주왕은 본성(本性)이 황음무도하고
포악하였으므로 이후 달기(妲己)라는 요녀에게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고 폭정을 일삼았다.
詩經 「大雅篇」에는 ‘고대 중국 하(夏),
은(殷), 주(周)의 3왕조 중
은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 음주(淫主)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 온 달기(妲己)라는
희대의 요녀 독부였다’라고 전한다.
기주에 흉년이 들어 주왕에게
공물을 진상을 할 수가 없게 되자 주왕은
격분하여 군사를 이끌고 기주를 정벌하려고 하자
유소씨는 자신의 외손녀 달기를 보내어
주왕의 마음을 달래려고 하였다.
달기를 본 주왕은 한 눈에 반해,
얼마 안가서 자신의 정실부인을 폐하고
달기를 정실로 맞아들인다.
주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도읍의 남쪽에 길이 3리, 높이 1000척의
녹대(鹿台)와 적성루(摘星樓)를 지었다.
또한 창고에는 백성들로부터
수탈(收奪)한 전백(錢帛)과 곡식이 산처럼 쌓였고,
국내의 온갖 진수기물(珍獸奇物)은
속속 궁중으로 징발되었다.
또 국력을 기울여 호화찬란한 궁정을 짓고
미주와 포육으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었다.
그 못 둘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의 한 무리가 음란한
북리무악(北里舞樂)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주왕의 가슴에 안긴 달기는 몰아(沒我)의
황홀경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 때로는 낮에도 장막을 드리운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벌이는 광연(狂宴)이
주야장천(晝夜長川) 120일간이나 계속되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이를
장야지음(長夜之飮)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주왕은 달기의 말에 따라
포락지형(炮烙之刑)이란 형벌을 만들어
제왕의 행동을 비방하는 자들을
불충자로 몰아 포락(炮烙)의 형을 가하였다.
포락지형이란 속이 빈 구리
기둥[銅柱]을 숯불로 달구어 걸쳐놓고
그 위에 기름을 바르고 기둥을 건너면
석방시키겠다는 조건을 내리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는 형벌이다.
죄인이 미끄러운 구리 기둥을 건너다가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 죽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모습을 달기와 주왕은
즐기며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같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광태(狂態)를 보다 못해 간언을 하였던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다.
주왕의 이복형 미자계(微子啓)가
여러 차례 그에게 충고를 하였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자계는 하는 수 없이 도성을 떠나 숨고 말았다. 주왕의 삼촌 비간(比干)이 그에게 충고를 하자
그는 노하여 “당신은 성인인가 보오.
성인의 심장은 구멍이 일곱 개라던데
당신의 심장에 구멍이 몇 개인지
내가 한번 봐야겠소!”라고 하면서 부하에게 명하여
비간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어 죽여 버렸다.
비간의 참살 소식을 들은 기자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미친 척하며
남의 종노릇을 하였는데 결국
주왕이 그마저 잡아서 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
구후(九侯)는 달기의 계략에 빠져
묶인 채로 소금에 절여져 죽었으며
시체는 젓갈로 담겨져서
여러 제후들에게 보내어졌다.
참다못한 악후(鄂侯)는 주왕에게
그의 악행을 간하다가 잡혀나가서는 말려 죽었다.
서백 희창[후에 문왕]은
구후와 악후가 끔찍한 꼴로
자신의 앞에 놓여지니 분노하였다.
이에 북쪽을 다스리는 제후 ‘숭후 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달기에게 아부하여
희창이 구후의 젓갈을 받지 않았다는 소식을
주왕과 달기에게 고했다.
끌려나간 서백은 주왕에게 직간(直諫)하길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夏)나라 걸왕 때에 있다
[殷鑑不遠 在夏侯之世(은감불원 재하후지세)]”
라고 하였다.
이 말은 “600여 년 전에 은왕조의 시조인
탕왕(湯王:주왕의 28대 선조)에게 주벌당한
하왕조의 걸왕(桀王:주왕과 대동 소이한 폭군음주)
을 거울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뜻이다.
분노한 달기는 당장 희창을 죽이라고 하지만
대신들이 나서서 극구 반대하자
주왕은 희창의 세력이 크니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유리(羑里)에 유폐시켰다.
이때가 BC 1144년으로 희창은
3년간 유리에 갇혀 있으면서
팔괘(八卦)를 깊이 연구하여
384효(爻)를 짖고 주역(周易)을 만들었다.
후에 희창의 장자 백읍고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주왕의 배알하러 갔다가
그의 준수한 모습에 달기가 반해 유혹하였지만
넘어오지 않자 달기는 그를 모함해 죽인다.
그리고 주왕(紂王)에게 간하여
백읍의 시신으로 만두를 만들어
희창에게 먹이라고 하였다.
주왕은 평소 희창이 점술에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내심 두려워하던 터라
이를 시험해볼 요량으로 백읍(伯邑)의 시신으로
고기만두를 빚어 그 아버지
희창[文王]에게 보내어 먹이라 하였다.
한편 희창[文王]은 아침에 쾌를 뽑아
점을 쳐본 결과 그 아들이 죽고 그 시신이
삶겨서 자신에게 돌아 옮을 알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자기 아들의 골육(骨肉)으로 빚은
만두를 가져오나, 희창은
이를 짐짓 모른 체 하고 만두를 삼킨다.
여기서 아는 체 하다가는 자신이
다시는 여기서 나갈 수 없음을 알았기에
적지 않은 눈물을 삼켰지만
마음에 울분을 참으며 겉으로는 태연한 체 하였다.
주왕(紂王)은 희창[文王]이 아주 순수히
고기만두를 먹어치웠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희창을 대현철(大賢哲)이라고 하더니
자기 아들의 골육(骨肉)으로 빚은 만두조차도
모르고 먹는데 알기는 무엇을 안단 말인가’
하고 경계심을 풀게 되었다.
얼마 후 희백의 신하들은
그를 석방시키기 위하여 많은 미녀와 명마,
진귀한 보석 등을 모아서 주왕에게 바치자
주왕은 희창이 구금 중에도 전혀
원망의 빛이 없고, 또 별로 두려워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를 석방하고
다시 서백에 임명하였다.
석방되어 귀국하는 서백 희창[문왕]은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여정에 올랐다.
기산으로 돌아온 희창은
주족(周族)을 강성하게 만들어
주왕을 멸하고 천하를 구할 결심하였다.
그에게는 많은 신하와 장수들이 있었지만,
전체를 통괄할 수 있는 인재가 없어
그러한 사람을 백방으로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선친이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 영호진(令狐津)의
나루터에 있는데 선친의 뒤에는
수염과 눈썹이 하얀 노인이 서있었다.
선친은 문왕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창아 너를 보필해줄 지혜로운 자가
주나라로 올 것이니라.
주나라는 그로인해 흥할 것이니라.”
참으로 기이한 꿈이었다.
이 위대한 현인이 자기의 나라 어디엔가
살고 있다고 들은 듯 하였다.
그러나 자세히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희창은 시종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사냥을 다니며 마음속으로
늘 현인(賢人)을 갈구하였다.
다음은 『 육도삼략(六韜三略) 』 「
문사(文師)」편에 나오는 문왕이
강태공을 만나는 장면이다.
어느 날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가려 하였다.
이에 사관 편(編)이 거북점을 보더니 읖조렸다.
田于渭陽 전우위양
위수가에 사냥을 나가시면
將大得焉 장대득언
풍성한 수확이 있을 것이라네
非龍非彲 비룡비리
용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니며
非虎非熊 비호비웅
호랑이도 아니고 곰도 아니지요
兆得公侯 조득공후
어진 현인을 만나게 될 조짐이니
天遺汝師 천유여사
이는 하늘이 내려 주신 훌륭한 스승이라네.
문왕이 묻기를 “점괘가 참으로 그러한가?”
사관 편이 대답하길
“저의 선조인 사관 주가 우임금을 위하여
점을 쳐서 명재상 고요를 얻었을 때의 점괘가
이와 견줄만 합니다” 하였다.
문왕은 사흘 동안 목욕재계한 다음
수렵용 수레와 말을 타고
위수의 북쪽으로 사냥을 나갔다.
문왕은 위수에서 띠풀을 깔고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고
한참을 살펴보았다.
그 노인은 괴이하게도 미끼가 없는
곧은 낚시를 수면 위에 석자가량 떨어진
허공에 드리운 채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현인으로 직감한 문왕이 다가가
정중히 인사하며 물었다.
“낚시를 즐기시는가 봅니다.”
태공망이 대답하였다.
“소인은 자기의 일이 이루어짐을 즐거워하고
[소인락득기사(小人樂得其事)],
군자는 자기의 뜻이 이루어짐을 즐거워한다
[군자락득기지(君子樂得其志)]고 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낚시를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문왕이 물었다.
“이와 비슷하다는 말은 무슨 뜻 입니까?”
태공망이 대답하였다.
“낚시에는 세가지 모책이 있습니다.”
후한녹봉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모책과
많은 상을 내려 병사들이 목숨을 바치게 하는
모책과 벼슬을 주어 신하들에게
충성을 다하게 하는 모책입니다.
대저 낚시라는 것은
이것을 구하여 얻는 것인지라
그 담긴 뜻이 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가히 커다란
이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문왕이 “거기에 담긴 깊은 이치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태공망이 대답하였다.
“낚시줄이 가늘고 미끼가 뚜렷하면
작은 물고기가 물고,
낚시줄이 약간 굵고 미끼가 향기로우면
중치의 물고기가 물고,
낚시줄이 굵고 미끼가 크면
큰 물고기가 물게 마련입니다.
물고기는 미끼를 물고 낚시 줄에 낚이고,
인재는 봉록을 받아먹고 군주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므로 미끼를 드리우면
물고기를 낚아서 쓸 수 있고,
봉록을 내걸면 훌륭한 인재를 얻어서
능력을 쓸 수 있는 것 입니다.”
문왕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면
천하가 돌아와 복종하겠습니까?”
태공망이 대답하였다.
“天下非一人之天下 乃天下之天下也
천하비일이니천하 내천하지천하야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며,
천하 만백성의 천하입니다.
同天下之利者則得天下 擅天下之利者則失天下
동천하지이자즉득천하 천천하지이자즉실천하
천하의 이익을 백성과 더불어
나누는 군주는 천하를 얻고,
천하의 이익을 자기 마음대로하려는 군주는
반듯이 천하를 잃게 됩니다.
天有時 地有財 能與人共之者仁也.
천유시 지유재 능여인공지자인야.
仁之所在 天下歸之
인지소재 천하귀지
하늘에는 때[춘하추동]가 있고,
땅에는 재물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능히 함께하여
베푸는 자를 어질다고 합니다.
어짊이 있는 곳에 천하는 돌아갑니다.
免人之死 解人之難 救人之患 濟人之急者 德也.
면인지사 해인지난 구인지환 제인지급자 덕야
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을 살려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풀어주고,
우환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고,
위급한 지경에 빠진 자를 건져주는 자를
덕(德)이 있다고 합니다.
德之所在 天下歸之
덕지소재 천하귀지
덕이 있는 곳에 천하는 돌아갑니다.
同憂同樂 同好同惡者義也 義之所在 天下赴之
동우동락 동호동오자의야 의지소재 천하부지
백성들과 시름을 함께 나누고 즐거움을 함께하며,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함께 미워하는 것을
의(義)라고 합니다.
의가 있는 곳에 천하 사람들이 나아갑니다.
凡人惡死而樂生 好德而歸利
범인오사이낙생 호덕이귀리
能生利者道也 道之所在 天下歸之
능생리자도야 도지소재 천하귀지
모든 사람들은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덕(德)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이익을 쫓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능히 살려주고 이익을 주는 자는
도(道)가 있다고 합니다.
도가 있는 곳에 천하는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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