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법(眞法) 진리

[스크랩] 진묵(震黙)과 성리대전(性理大典) 80권

고도인 2016. 1. 26. 20:38

5.



【공사 3장 14절】


증산성사께서 전주 봉서산(全州 鳳棲山)밑에 계실 때

종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니라.

김 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강한지라.

진묵(震黙)은 하루 봉곡으로부터

성리대전(性理大典)을 빌려 가면서도

봉곡이 반드시 후회하여 곧 사람을 시켜 찾아가리라

생각하고 걸으면서 한 권씩 읽고서는 길가에 버리니

사원동(寺院洞)입구에서 모두 버리게 되니라.

봉곡은 과연 그 책자를 빌려주고 진묵이 불법을 통달한 자이고

만일 유도(儒道)까지 통달하면 상대할 수 없이 될 것이고

또 불법을 크게 행할 것을 시기하여

그 책을 도로 찾아오라고 급히 사람을 보냈도다.

그 하인이 길가에 이따금 버려진 책 한 권씩을 주워 가다가

사원동 입구에서 마지막 권을 주워 돌아 가니라.

그 후에 진묵이 봉곡을 찾아가니

봉곡이 빌린 책을 도로 달라고 하는지라.

그 말을 듣고 진묵이 그 글이 쓸모가 없어

길가에 다 버렸다고 대꾸하니 봉곡이 노발대발하는 도다.

진묵은 내가 외울터이니 기록하라고 말하고

잇달아 한 편을 모두 읽는 도다.

그것이 한 자도 틀리지 않으니 봉곡은 더욱 더 시기하였도다.


【공사 3장 15절】


그 후에 진묵이 상좌에게

“내가 八일을 한정하고 시해(尸解)로서 인도국(印度國)에 가서

범서와 불법을 더 익혀 올 것이니 방문을 여닫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고 곧 입적(入寂)하니라.

봉곡이 이 사실을 알고 절에 달려가서 진묵을 찾으니

상좌가 출타중임을 알리니라.

봉곡이 그럼 방에 찾을 것이 있으니 말하면서 방문을 열려는 것을

상좌가 말렸으나 억지로 방문을 열었도다.

봉곡은 진묵의 상좌에게 “어찌하여 이런 시체를

방에 그대로 두어 썩게 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하나니라”고

말하면서 마당에 나뭇더미를 쌓아 놓고 화장하니라.

상좌가 울면서 말렸으되 봉곡은 도리어 꾸짖으며

살 한 점도 남기지 않고 태우느니라.

진묵이 이것을 알고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나는 아무런 원수진 것이 없음에도 어찌하여 그러느냐.”

상좌가 자기 스님의 소리를 듣고 울기에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마디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고 말하니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네가 끝까지 그런다면 너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를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모든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옮겨갔도다.

◐ 진묵(震默)은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이다.

1562년에 태어나 1633년에 사망하였으니 세수는 73세였다.

전라도 만경현(萬頃縣) 불거촌(佛居村) 출생이며

7세에 출가하여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불경을 읽었는데

한 번 읽으면 내용을 통달하였으므로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으며

석가불의 화신으로 인정받아 소석가(小釋迦)로 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진묵은 석가모니와는 완전히 달랐다.

석가모니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의문을 갖고 수행하여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답을 얻고

이것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가르쳤지만

진묵은 천상(天上)의 묘법을 인세(人世)에 받아 내려

지상선경을 건설하려 하였다.   

 [오선위기로 대순하다 上(상)권 25페이지]
(2015.11.6.)


출처 : 고도인의 해인海人으로 가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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