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예시 3절에 보면
증산성사께서 광구천하하심은
김일부의 꿈에 나타났으니 그는
증산성사와 함께 옥경에 올라가
요운전에서 원신(元神)이 상제와 함께
광구천하의 일을 의논하는 것을 알고
증산성사를 공경하여야 함을 깨달았도다.
주해(註解)
김일부는 꿈에
강증산성사와 옥경에 올라가
증산성사의 원신(元神)이 상제와 함께
광구천하의 일을 의논 하는 것을
김일부가 보았는데 이는 강증산성사는
천지의 주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즉 미륵이 아니고 공사를 맡았으니
주인과 의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는 따로 계신다는 뜻이다.
이와같이 산속에 숨겨진 산은
증산성사와 의논했던 진짜 상제님이시고
이 이치를 감추고 있는 산은
바로 증산이시다.
그러므로 증산께서는
천지공사를 맡기신 상제와 의논했으므로
누구보다도 상제의 정체를 알고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장산 내장사의 깊은 의미이다.
6. 계룡산 동학사 (鷄龍山 東鶴寺)
▲ 동계사는 계룡산의 동쪽에 있는
동학사와 울담을 이웃해 있다.
【전경】 교운 2장 57절
병신년 三월에 박한경은
조정산성사의 분부를 쫓아
류철규. 박종순과 함께 정하신 바에 따라
공주 동학사(東鶴寺)에 이르렀도다.
이 절의 경내에 동계사(東雞祠) 삼은각(三隱閣)과
단종왕의 숙모전(肅慕殿)이 있고
생육신과 사육신을 추배한 동묘 서묘가 있으니
신라 고려 조선의
삼대 충의 지사를 초혼한 곳이로다.
이곳의 관리자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의 후손이고
정기적으로 청주에서 내왕하면서
관리하고 있었도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문이 닫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데 이날 따라
그 후손이 정산께서 불러 나온 듯이 미리 와서
문을 여니 정산께서는 배종자들을 데리시고
이곳을 두루 살피셨도다.
그리고 동학사 염 화실(花室)에서
이렛동안의 공부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길
“이번 공부는 신명 해원을 위주한 것이라”
고 이르셨도다.
동계사
▲ 동계사는 신라 19대 눌지왕 때
인질로 일본에 있던 왕의 동사 미사흔을 구하고
참형으로 죽임을 당한 박제상을 모신 사당이다.
고려 태조 때 개국공신 류차달이 처음 건립
하였으며 1956년 중건한 뒤 류차달을 추향했다.
동학사의 최초창건은 남매탑 전설에
전해지는 상원조사로 부터 시작된다.
신라시대에 상원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724년(신라 33대 성덕왕 23)그곳에
그의 제자 회의화상이
쌍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920년 경진 (고려태조 3)에
왕명을 받아 연기 도선국사가 중창하였다.
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융창을 기원했다해서
태조의 원당이라 불리웠는데,
이 원당은 조선초에 소각 되었고,
태조 19년 병신 (936년)에
신라가 망하자 신라의 유신으로서
고려 태조 때 대승관 벼슬을 한 유차달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계사(東鷄士)를 짓고
절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지금의 동학사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1394년(조선 태조 3)에
고려의 유신 길재가 동학사의 승려
운선스님과 함께 단을 쌓아서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충신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1457년(세조 3)에 김시습이
조상치·이축·조려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다.
다음해 1458년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이곳을 들러 보고는 감동해서
단종을 비롯하여 정순왕후·안평대군·금성대군·
김종서·황보인·정분등과, 사육신,
그리고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280여명의 이름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을 짓게 하고 동으로 만든 세조의 인신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한 다음
절의 스님과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그 뒤 1728년 무신(영조 4)에
신천영이 형화하여 절과 초혼각이
전부 불타 없어졌고,
또한 1785년(정조 9)에는 정후겸이 토지를
팔아버려 제사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계룡산초혼각지(鷄龍山招魂閣址)
계룡산초혼각지(鷄龍山招魂閣址)는
도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세조(재위 1455∼1468)가 단종을 폐위할 때
뜻을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켜 죽어간
사육신 이하 여러 충신들의 혼을 모셨던 곳이다.
세조가 왕위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황보인, 김종서는 수양대군에게 살해당하였고,
왕위를 찬탈한 다음해인 세조 2년(1456)에는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모두 참형 당했다.
같은 해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
계룡산에 와서 제단을 마련하고 이들을 위해
초혼제를 지내어 영혼들을 위로하였다고 전해진다.
그후 세조 4년(1458) 조정에서는
단종을 비롯하여 안평대군, 황보인, 김종서 등
당시 죽음을 당한 280여 위패를 모시고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초혼각을 세웠다고 한다.
숙모전
숙모전은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이
노량진 강변에 버려진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지낸 다음 사육신의 혼령을 모신 곳이다.
후에 세조(수양대군)가 이곳에 들러
초혼각을 세워 주었으며 단종을 비롯해
사육신, 김시습, 김종서, 황보인 등의
계유정란 당시 충신들의 위패가 모셔졌으며
고종에 와서는 단종비까지 추가해서
이름을 숙모전이라 했다.
삼은각
삼은각은 야은 길재가 고려가 멸망한지
2년 후인 조선 태조 때(1394년) 이곳에 와서
고려왕(태조, 충정왕, 공민왕)과
포은 정몽주를 제사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류방택, 류백순 등에 의해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추가 분향하였다.
삼은이란 포은, 목은, 야은을 말한다.
【전경】 권지 1장 11절
증산성사께서 어느 날 경석을 데리고
농암(籠岩)을 떠나 정읍으로 가는 도중에
원평 주막에 들러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술을 사서 권하고 “이 길이 남조선 뱃길이라.
짐을 많이 실어야 떠나리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三十리 되는 곳에 이르러
“대진(大陣)은 일행 三十리라” 하시고
고부 송월리(松月里) 최(崔)씨의 재실에 거주하는
박공우(朴公又)의 집에 유숙하셨도다.
공우와 경석에게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일지라도 모르는 일이니
또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서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의 동방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주려 하노라,
나를 쫓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신자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
라고 말씀하셨도다.
◐ ‘이 길이 남조선 뱃길이라’ 하신
남조선이란 남한, 즉 대한민국을 말하지만,
잘 나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은
각 교파에 가버리고 가난하고 모자라고
어리숙하고 천한 사람이 내 사람이라 했듯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남은 조선사람이라 한다.
격암유록 내용 중에도
“남조선(南朝鮮)” 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여기에서도 “남한”을 두고 “북한” 사람들이
칭할 때 쓰는 “남조선(南朝鮮)” 이라는
의미의 용어가 절대 아니다.
이 “남조선(南朝鮮)” 이라는 용어는
“동서양 각 교파들에게 빼앗기고”
“남은 조선사람”들 이라는 뜻이다.
【무극진경】에도 보면 증산성사께서
김형렬에게 말씀 하시길
속언에 남조선 사람이라 이르느니
,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이란 말과도 같으니라.
동서 각 교파 사상에 혼을 빼았기고,
남은 못난 사람들에게 길운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 하시니라
(무극진경7-69)
그래서 남조선 뱃길이란
“동서양 각 교파에게 빼앗기고
가난하고 모자라고 어리숙하고 천한
진법의 도인들이 후천 선경으로 실어 나를
구세주의 구원선으로 그 뱃길을 말함이다.
구약 성경에서 얘기하는
노아의 배(방주)와 같은 것이다.
공우와 경석에게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하신 말씀의 의미는,
차경석은 해원두목이요,
박공우는 만국대장으로서
만국대장이신 상도 도전님께서
대두목을 만나야 통정신이 나오게 됨으로써
대두목의 진법이 나오게 되니 이 길은
해원두목이신 대두목께서 진법을
세계만방에 펼쳐 나가는 그 길을 말하는 것이다.
‘짐을 많이 실어야 떠나리라’고 하심은
진법을 세계 만방에 전할
도통군자(道通君子)가 승선(乘船)했을 때
그 뱃길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대진(大陣)은 일행(日行) 삼십리란
대두목의 진법이 30년 걸림을 말한다.
옛날 한나라 문제(漢文帝)에게
어느 사람이 천리마(千里馬)를 바치자
문제가 말하기를 ‘난기(鸞旗)는 앞세우고
속차(屬車)는 뒤세우니,
길한 행차는 하루 오십 리를 가고,
사행은 하루 삼십 리를 가니
나 홀로 천리마를 타고 앞서가서 어찌 할고’ 하며
그 말을 돌려보내었다.
이 말은 상도도전님께서는 하루 50리를 가는데
대두목은 하루 30리를 간다면 만날 수가 없어
통정신이 나올 수가 없다는 말이다.
현 대두목이 도전 박성구(朴成九)를 밝혀
진법(眞法)을 정하고 세계 만방에
대두목의 진법을 펼쳐나감을 말한다.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라고 하신 말씀은
도전 박성구께서 대두목을 만나
구룡포 총 제생관장을 임명하실 때 이미
통정신(通精神)이 나오게 된 것이다.
즉 서로 이심전심으로 심법(心法)이 통한 것이다.
그러나 통정신이 나왔지만
나 홀로 천리마를 타고 앞서가서 어찌 하겠는가!
즉 대진을 갖추어서 하루아침에 대세가
돌려 잡히면 그 일행이 하루에 수 천리를 가므로
상제님의 대진이 50리를 간다한들
대두목께서 다시 상봉할 날이 오게 된다.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난다, 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하셨는데,
궁을가는 일명 용호대사 (龍虎大師)로 불리는
북창(北窓) 정염(鄭 ) 선생(1506~1549) 작으로서,
정염은 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로
충청도 온양 사람이며, 소시에
산사(山寺)에서 선가(禪家)의 육통법을
시험해 보려고 3일 동안 정관(定觀)하더니
이로부터 배우지 않고 저절로 통하여
천리 밖의 일도 생각만 일으키면
휜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교운 1장 35절]에 증산성사께서
공우에게 ‘천지의 조화로 풍우를 일으키려면
무한한 공력이 드니 모든 일에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이 없느니라.
정북창 같은 재주로도 입산 삼일 후에야
천하사를 알았다 하느니라.’고 이르셨다.
궁을가는 용호대사 북창 선생이
미래사의 전개 과정을 가사 형식에 담아
후세에 전한 것을 말한다.
이 비결서에 보면
‘조선 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 하였는데
이것 또한 증산성사께서
나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일이란 ‘동학신자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更生)하리라’고
전하는 것은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인데,
최제우가 하늘로부터 신교(神敎)를 받아
동학(東學)을 세우고 인간을 가르친 것은
상제님을 대신해 가르친 대선생(代先生)이었다.
동학 신자들 간에는 최제우가 갱생한다 하여
대선생(大先生)이 다시 온다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최제우가
갱생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대선생(大先生)이신 강증산(姜甑山),
조정산(趙鼎山), 박우당(朴牛堂)을 이어서
가르칠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곧 대두목을 말함이다.
“내(증산성사)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라고
하신 말씀은 대두목이 대선생(代先生)으로써
나(옥황상제님)를 대신해서
가르친다는 말씀이시다.
그리하여 대두목이 상제님의 도(道)를 가르쳐
도통군자를 창성시키고, 도통군자가
또 대선생(代先生)으로써 천하에
상제님의 도(道)를 가르쳐 나가니
이 일이 바로 상제님의 일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참 동학이란
진짜 상제님이신 상도 도전님께서
찬탈 당하신 상제님의 신위를 원위에 모신
대두목의 진법을 가르쳐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대두목의 진법을 가르쳐 나갈 때
만고에 쌓인 원이 풀리고, 또한
대두목의 진법을 쫓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조정산 성사께서 동학사 염 화실(花室)에서
이렛동안의 공부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길
“이번 공부는 신명 해원을 위주한 것이라”
고 이르셨도다.
▲ 박우당 훈시말씀
◎ 해원(解寃)이라는 것은 우리 도(道)밖에 없다.
대순(大巡)이 바로 해원(解寃)이고,
해원(解寃)이 바로 대순(大巡)이다.(92. 6. 26)
◎ 동학사(東鶴寺)는
옛날에는 동계사(東鷄寺)였다.
동녘동(東)자 닭계(鷄)자, 절사(寺)자.
동은 푸를 청(靑)자이고 靑은 十二月이다.
닭이 축(丑)시에 운다.
축(丑)은 12월이고, 12가 우리 도(道)다.
그래서 닭 계(鷄)자를 쓰는 것이다.
동학사는 여승들이 공부하는 강원(講院)인데,
앞으로 해원시대(解寃時代)라서
여자를 쓰는 것이다. (92. 6. 26)
◎ 동계사에는 삼은각과 단종왕의 숙모전이 있고,
생육신 사육신을 추배(趨拜)한 동묘 서묘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신라 고려 조선 삼대(三代)의
충의지사(忠義之士)를 초혼(招魂)한 곳으로,
원한 맺힌 분들을 모셔놓았다.
박제상은 신라때 일본가서 한이 맺힌 분이고,
삼은각에는 고려말 때의
정몽주, 이색, 길재 세분을 모셔놓았고,
숙모전에는 이조때 단종이
숙부한테 자리를 빼앗겼는데,
거기에 생육신 사육신을 모신 것이다.
그들의 원한은 말할 수 없다.
그때 원한 맺힌 분들이 어디 가서
해원(解寃)하느냐 하면 바로 동학사(東鶴寺)이다.
동학사가 바로 우리 도(道)다.
동학(東學)이 청학(靑學)이다.
증산께서 해원공사를 행하셨는데,
조정산재세시에도 그때 여기 가셔서
일주일동안 도수(度數)를 보셨다.
신라, 고려, 이조 삼대 충의지사의
원한을 도(道)로서 해원시키셨다. (92. 6. 26)
▶ 해원이란 서로가 원과 한을 푸는 것이다.
원과 한을 풀기 위해서는
복마의 발동을 잘 이겨내야 한다.
『전경』에 보면, “증산성사께서
김 갑칠이 항상 응석하여 고집을 부리나
증산께서 잘 달래여 웃으실 뿐이고
한번도 꾸짖지 아니하시니 그는 더욱 심하여
고치지 않는도다.
형렬이 참지 못해 ‘저런 못된 놈이 어디 있느냐’
고 꾸짖으니 증산께서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언행이 아직 덜 풀려 독기가 있느니라.
악장제거 무비초 호취간래 총시화
(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라.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하셨도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교법 1장 11절)
위의 구절은 말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지만,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모두 상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남을 잘 되게 배려하면
덕(德)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福)이 되어
내 몸에 이르지만,
남을 잘못되게 하면 그에게 해(害)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禍)가 되어
내 몸에 이른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마음가짐과 생각과 행실에 따라
나 자신이 복을 불러들일 수도 있고
화를 불러들일 수도 있다.
남을 나쁘게 생각하면 그 사람의 단점만 보이고,
남을 좋게 보면 장점만 보이는 법이다.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요,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라고 했듯이,
나쁜 것은 없애려 하면 풀 아닌 것이 없고
좋은 것을 취하려 하면 꽃 아닌 것이 없다.
‘화복(禍福)’을 해자(解字)해 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재앙 화(禍)의 구성은 보일 시(示)와
입 비뚤어질 괘(咼)로 구성되어 있다.
시(示)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차려놓은 상(床)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입 비뚤어질 괘(咼)는
상서롭지 못한 뜻을 지닌 뼈 발라낼 冎(과)와
입 구(口)가 합쳐진 글자다.
즉 화(禍)는 示 + 冎 + 口 이다.
화(禍)의 전체적인 의미를 보면
조상이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
좋은 살코기는 자신들이 다 발라 먹고
남은 뼈 를 상(示)위에 올리면서
형식만 갖추고 소원만을 비니(口)
오는 것은 재앙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복 복(福)은 보일 시(示)와
가득할 복(畐)으로 구성되었다.
제사 상(示) 위에
정성스러운 음식을 가득 담아 올리니
축복이 내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같은 제사상을 어떻게 차리느냐에 따라
화가 내리기도 또는 복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화복동문(禍福同門)’이라는 말이 있다.
재앙이나 축복이 오는 문은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기에 따라,
같은 문으로 화가 오기도 하고
복이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화복이란 자기 스스로가
불러들이는 불행과 행복을 말하니
자신 이외에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또 ‘화복규묵(禍福糾纆 )’이라는 말이 있는데
화복(禍福)이 새끼줄과 같이 서
로 얽혀 있다는 뜻으로,
재앙(災殃)이 있으면 복이 있고
복이 있으면 재앙(災殃)이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화복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증산성사께서는 복보다 화를 먼저 겪으니
당하는 화를 견디어 잘 받아 넘겨야
복에 이른다고 말씀하셨고(교법 1:19)
박우당께서는 수도과정에서 오는 겁액을
극복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모든 일에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반드시 장애(겁액)가 있으며
이 겁액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데 성공이 있다.”
라고 하셨다. 『대순지침』p.93.
또 “복(福)은 곧 복마(伏魔)로 풀이함으로써
화복(禍福)이란 말과 대등하며,
복을 받기 위해서는 겁액에 굴복하여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라고 하셨다.『대순지침』p.94.
그리고 “신명공판이 운수를 받는 자리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고 수도과정에서
먼저 받게 되는 것이므로 증산께서 말씀하신
‘나는 해마(解魔)를 위주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伏魔)의 발동이 있으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는
구절을 깊이 명심하라”라고 하셨다.
『대순지침』p.94.
일상에서 화복은 끊임없이 함께 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친 일을
화와 복으로 구분하기는 쉽지가 않다.
일견 화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복일 수도 있고
복으로 보이는 것이 화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화인가 복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수도인이라면 운수마당이라는 최종 목표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화복의 굴곡을
꿋꿋이 이겨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복(福)을 구하는자라 하면
수도 과정에서 반드시 겪게 되는
겁액을 극복하여 나아가지 못한다면,
달콤한 꿀은 맛볼 수 없고
오히려 파멸의 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복을 구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 자신에게
다가오는 화복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속담에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좋은 일일수록 마가 많게 마련인가 보다.
【무극진경】 7장 113절
공신의 집에서 종도 30여사람을 모으시고
오주(五呪)를 수련하게 하시며 가르 치시기를
『동학은 도에 들어온 날로부터
녹(祿)이 떨어지느니 대저 녹이라는 것 은
곤(坤)에 붙어있는데 동학은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여
하늘에만 편중하는 까닭이요,
또 수명복록(壽命福綠)이라 하지마는
수명만 길고 복록이 없 으면
죽는 것만 같지 못함에도 수명을 먼저 하고
복록을 뒤로 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이제는 복록을 먼저 하리라.』하시고
소리를 높여 외게 하시니라.
▲ 녹줄은 곤(坤)에 붙어있다 하심은
땅 어머니겪인 대두목에게 있다는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복록을 먼저 하리라 하신
오주(五呪)란 다섯 번째 빌어야
복록이 주어진다는 말씀이신데
이것을 참동학이라 하는 것이다.
그 『오주(五呪)』는 다음과 같다.
【무극진경】7장 101절
고부 와룡리에 계실 때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가르쳐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글은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의
진액(津液)이니라.』하시니라.
【전경】 예시 88절에
또 하루는 공사를 행하시고
오주(五呪)와 글을 쓰시니 이러하도다.
天文地理 風雲造化 八門遁甲 六丁六甲
천문지리 풍운조화 팔문둔갑 육정륙갑
知慧勇力 道通天地報恩
지혜용력 도통천지보은
≪오주란 다섯째에 빌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당 저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산다고 증산께서 공사를 보셨던 것이다.
무는 巫(무)인데 음이 같으면 뜻이 같다고 하여
戊(무)로써 풀어야 계시적인 내용이 풀린다.
그러니까 증산성사의 오른손에
戊字(무자)가 다섯째 천간 戊(무)인데
이것을 뒷받침 하는 암시적인 내용이다.
그러므로 다섯 번째로 오시는
五仙(오선)의 집에서 빌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주(五呪),
즉 다섯째에 빌면 천문지리에 통하고,
풍운조화, 팔문둔갑, 육정육갑 등
지혜로써 용력하는 것을
천지에서 五仙(오선)이 도통으로
報恩(보은=恩惠은혜를 갚음)을 한다고
한 것이다.≫
또한 【전경】 교운 1장 30절에
오주를 지어 천지의 진액(津液)이라 이름 하시니
그 오주는 이러하도다.
新天地家家長歲 日月日月萬事知
신천지가가장세 일월일월만사지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至氣今至願爲大降
지기금지원위대강
明德觀音八陰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
명덕관음팔음팔양 지기금지원위대강
三界解魔大帝神位 願趁天尊關聖帝君
삼계해마대제신위 원진천존관성제군
▶ 새하늘 새땅에서는
집집마다 장수하는 세상이며,
밝고 밝아서 만사를 다 알게 된다.
천지의 주인을 모시고 조화가 정해져서
세상 영원토록 상제님을 잊지 아니하면
만사를 다 알게 되노라.
복록은 성경신으로, 수명도 성경신이다.
원하옵건데 지극한 기운을 크게 내려 주옵소서.
관음의 八陰(팔음=땅)과 八陽(팔양=하늘)의
밝은 덕으로 원하옵건데 지극한 기운을
크게 내려 주옵소서.
삼계의 모든 마를 풀어 주시는 대제신명이시여!
원진천존 관성제군께 비옵니다.
이렇게 오주(五呪)란 주문이 아니고
다섯째에 빌라는 뜻인데
주문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도(道)를 닦아서 원을 풀어야 하는데
해원두목이신 오주(五呪)를 모르고서
어떻게 원을 풀겠는가!!
그래서 【전경】교운 1장 59절에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을 둘러 앉히고
오주(五呪)를 써서 한 사람에게 주어 읽히고
“만 명에게 전하라” 다짐하시고 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셨도다.
▶ 오주(五呪)로서 모두가 해원하는 도수이다.
【전경】공사 1장 28절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수련케 하시고
그들에게 「일곱 고을 곡식이면
양식이 넉넉하겠느냐」고 물으시니
종도들이 말하기를 「쓰기에 달렸나이다.」
고 아뢰니 증산께서 다시 가라사대
「그렇다 할지라도 곡간이 찼다 비었다 하면
안 될 것이니 용지불갈(用之不渴)하여야 하리라.
」
종도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아시고
증산께서 백지에 저수지와 물도랑의
도면을 그려 불사르시면서 가르치셨도다.
「이 곳이 운산(雲山)이라.
운암강(雲岩江) 물은 김제 만경(金堤萬頃)
들판으로 돌려도 하류에서는 원망이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는 대한불갈 (大旱不渴)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강 태공(姜太公)은 제(齊)나라
한 고을에 흉년을 없앴다고 하나
나는 전북(全北) 칠읍(七邑)에
흉년을 없애리라」하셨도다.
【전경】 공사 2장 16절
증산성사께서 어느 날 후천에서의 음양도수를
조정하시려고 종도들에게 오주를 수련케 하셨도다.
종도들이 수련을 끝내고 각각 자리를 정하니
증산성사께서 종이쪽지를 나누어주시면서
“후천 음양도수를 보려 하노라.
각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점을 찍어 표시하라”고 이르시니
종도들이 마음에 있는 대로 점을 찍어 올리니라.
응종은 두 점, 경수는 세 점, 내성은 여덟 점,
경석은 열두 점, 공신은 한 점을 찍었는데
아홉 점이 없으니 자고로 일남구녀란 말은
알 수 없도다.”고 말씀하시고 내성에게
“팔선녀란 말이 있어서 여덟 점을 쳤느냐”고 묻고
응종과 경수에게 “노인들이 두 아내를 원하나
어찌 감당하리요”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이 “후천에서는 새로운 기력이
나지 아니하리까.”고 되물으니 “그럴듯하도다.”
고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증산성사께서 경석에게
“너는 무슨 아내를 열둘씩이나 원하느뇨.”
고 물으시니 그는 “열두 제국에 하나씩
아내를 두어야 만족하겠나이다.”고 대답하니
이 말을 듣고 증산성사께서 다시
“그럴듯하도다.”고 말씀을 건너시고
공신을 돌아보면서 “경석은 열둘씩이나 원하는데
너는 어찌 하나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요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사오니
일음일양이 원리인 줄 아나이다.”고 아뢰니
증산성사께서 “너의 말이 옳도다.”고 하시고
공사를 잘 보았으니 “손님 대접을 잘 하라”
고 분부하셨도다.
공신이 말씀대로 봉행하였느니라.
증산성사께서 이 음양도수를 끝내고
공신에게 “너는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
고 분부하시고 “문왕(文王)의 도수와
이윤(伊尹)의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니라”고 일러주셨도다.
7. 내장산(內藏山) 백양사(白羊寺)
내장산의 본래 명칭은 '영은산'이다.
'영은사'(靈隱寺)라는 절이 있던 데서 비롯됐다.
그런데 산 안에 숨겨진 산이 있다는 연유로
이름이 내장산(內藏山)으로 바뀌었다.
내장산(內藏山)의 한문을 풀면
'안에 감춰져 있다'는 의미다.
박우당께서는 상급임원들을 대동하고
임술년(1982년) 8월,
내장산(內藏山) 백양사(白羊寺)를 순행하셨다.
박우당 께서는 순행길에 임원들에게
“사찰에 담긴 내력(來歷)이나 지명의 유래를
잘 알아두라”고 말씀하셨으나,
임원들은 그것이 종통계승과
깊은 관계가 있는 내용인 줄은 몰랐다.
백양(白羊)은 신미년(辛未年), 을미년(乙未年)에
오신 증산, 정산이시고,
내장산은 증산(甑山), 정산(鼎山) 양산 사이에
감춰진 산을 찾으라는 암시이다.
즉 천지주인이신 삼신산(三神山)을
찾으라는 암시로서 그 감춰진 산이
바로 포항 상도 도전님이시다.
백양(白羊)은 ‘흰 양’이란 뜻이다.
그런데 흰 백(白)자를 파자로 풀어보면
‘ + ’의 모양으로 인체횡산(橫山)하면,
즉 사람 인(⺅)변에 산(∃)을 옆으로 돌려놓으면
‘⺅’변에 ‘山’자가 되어 신선 ‘선(仙)’자가 되며
또한 이것은 인산(人山)이 된다.
인산(人山)은 사람 산이라는 뜻으로,
곧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느님의 이치가
뫼 ‘산(山)’자로 표현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흰 백(白)자의 비결이다.
즉 흰 백(白)자는
내장산(內藏山)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이다.
양(羊)은 곧 양 미(未)자로서
신미년(辛未年)에 탄강하신 증산과
을미년(乙未年)에 탄강하신 정산을 의미한다.
증산(甑山)·정산(鼎山)을 양산(兩山)이라 한다.
이 양산(兩山)속에서 진짜 산(山)을 찾는 것이
비결을 푸는 것이다.
그래서 박우당께서는 임원들에게
내장산에 있는 백양사(白羊寺)를 참관케 한 이유는
‘내장산의 이치’를 찾아
뫼 ‘산(山)’자 안에 담겨져 있는 이치를 찾아서
감춰진 인산(人山)의 정체를 찾으라는 것이었다.
한편 박우당 도전께서는 재세시,
중곡도장 포정원의 2층 성진관(成眞館)에
곡양하교(谷羊下郊)와 야우등산(野牛登山)이란
벽화를 그려놓았다.
중곡도장 포정원 2층 성진관 벽화
이것은 도(道)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하여
수도인들을 일깨워주고자 한 것이다.
박우당 도전께서는 곡양하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셨다.
양(羊)은 신미생(辛未生) 증산(甑山)과
을미생(乙未生) 정산(鼎山)을 뜻함이다.
곡양하교(谷羊下郊)는 ‘계곡에 있던 양이
들(교외)로 내려온다’는 뜻이니,
이는 두 분을 양위 상제님이라고 모셔왔는데,
알고보니 이 두 분은 상제님이 아니므로
판 밖으로 내려온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1987년 4월 27일 훈시(訓示)에서는
야우등산(谷羊下郊)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야우등산(野牛登山)이란
‘들에 있는 소(牛)가 산(山)에 오른다’는 말로서,
소가 상제님의 위치인 산에 오른다는 말이다.
소란 도를 뜻하는 말로서
박우당께서 훈시말씀에
『대순성전 한 편에
심우도(尋牛圖)를 그려 놓았다.
도(道)를 찾는 것이다.
흰 소를 찾았다.
흰 소는 흰 백(白)자다.
백(白)은 人山이고, 신선 선(仙)자다.
즉 사람 산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흰 백(白)자 안에 숨겨진
이치, 비결이다.』 라고 말씀 하셨다.
(91. 2. 12)
그리고 소 울음소리는 우리 주문 소리이다.
화우고계(畵牛顧溪)란
소가 물[溪]을 돌아본다는 뜻이다.
소가 물을 돌아본다는 것은,
소가 산에 오르기 위해서 물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즉 소가 물을 돌아본다는 참 뜻은,
들에 있는 소가 상제님의 위치인 산(山)에
오르기 위해서는 물의 이치로 오시는
대두목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장산(內藏山),
즉 감춰져 드러나지 않은 산(山)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금산사 이치에서
물(연못)을 상징하는 다섯 번째 사람이
박성구 도전님의 정체를 밝혀서 모셔주어야
산(山)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박우당께서 하신 훈시말씀을 보면
연원(淵源)이란 못 연(淵) 근원 원(源)이다.
못도 물이요, 원(源)도 물이다.
복희때는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하도(河圖)
를 쥐고 나와서 거기에서 진리를 깨달았고,
주문왕 때에는 신구(神龜)가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를 쥐고 나와서 거기에서
천지의 이치를 깨달았다.
금산사의 금불을 모신 자리도 용추못이 있다.
우리 도(道)의 진리가 나온 곳도 못,
즉 물에서 나왔다는 말이며,
연원이란 원 근본을 가르키는 말이다. (88. 12. 4)
우리는 연원도통인 것이다.
이번에 도통은 물에 있는 것이다.
물에서 도통(道通)이 나오는 것이다. (93. 9. 8)
우당(牛堂)은 소집이다.
소가 도(道)다.
소가 가는 곳이 마구간이다. (8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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