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을 통해 본 대순진리

삼각산(三角山)도선사(道詵寺) 1

고도인 2008. 6. 12. 23:51

ㆍ삼각산(三角山)도선사(道詵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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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牛耳洞) 삼각산에 있는 사찰.


삼각산(三角山) 이란 이름으로 부르자

삼각산은 인수봉(仁壽峰), 백운봉(白雲峰), 만경봉(萬景峰)의

세 봉우리가 깎아 세운 듯한 삼각(三角)과 같다하여 붙은  이름으로 고려시대 이래 1천년간 불리어온 북한산의 본래 이름이다


북한산은 본래 산 이름이 아니라 '한강 이북의 한산(漢山) 지역'이란 의미의 지역 이름이었다.

삼국사기에 '북한산'이란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

"진흥왕16년 10월에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彊域)을 획정하였다." 진흥왕은 북한산의 비봉(碑峰)에 올라가 순수비를 세운 것은 분명하다. 조선왕조실록도 '북한산'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삼각산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숙종때 북한산성을 수축한 후에도 '북한', '북한성', '북한산성' 등으로만 일컬어졌다

삼각산이란 명칭은 고종시대까지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북한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높이 836m이다. 최고봉은 백운대(白雲臺)이다. 백운대와 그 동쪽의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萬景臺:일명 국망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삼각산(三角山)이라고도 하고, 화산(華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한다.


중생대 말기에 지층에 파고 든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표면에 드러났다가 다시 풍화작용을 받아 험준한 바위산이 되었다. 서울 근교의 산 가운데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에 오르면 서울 시내와 근교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봉산·북악산·남산·관악산은 물론, 맑은 날에는 강화도·영종도 등 황해의 섬도 보인다. 인수봉은 암벽등반 코스로 암벽등반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 밖에 노적봉(716m)·영봉(604m)·비봉(碑峰:560m)·문수봉(716m)·보현봉(700m) 등 이름난 봉우리만도 40여 개나 된다.


등산 코스는 우이동·정릉·세검정·구파발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진관내동·세검정·성북동·정릉·우이동 등의 여러 계곡도 볼 만하다. 능선에는 북한산성이 8㎞에 걸쳐 펼쳐지는데, 평균높이는 7m이며, 14개 성문 가운데 대남문(大南門)·대서문(大西門)·대성문(大成門)·보국문(輔國門)·용암문(龍岩門)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 터를 비롯해 유명한 북한 이궁지(離宮址)와 진관사· 문수암· 태고사· 원효암· 상운사(祥雲寺)· 도선사(道詵寺)· 승가사· 화계사 등 많은 사찰과 문화유적이 산재한다. 서울 외곽에 있어 연중 등산객과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83년 도봉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도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道詵)이 862년(경문왕 2)에 창건하였다.

도선은 이곳의 산세가 1천 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佛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 내다보고 절을 세운 다음,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磨崖觀音菩薩像)을 조각하였다고 전한다. 그후 조선 후기까지의 중건이나 중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북한산성을 쌓을 때 승병들이 도선사에서 방번(防番)을 서기도 하였다.


1863년(철종 14) 김좌근(金左根)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으며, 1887년(고종 24)에는 임준(任準)이 5층탑을 건립하고 그 속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奉安)하였다. 또, 1903년에는 혜명(慧明)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하고, 1904년에는 국가기원도량(國家祈願道場)으로 지정되었다. 근래에 들어와 호국참회원(護國參會院)을 건립하고 불교의 평화 염원과 실천불교 ·생활불교 운동을 전개하여 현재와 같은 대찰로 발전하였다.


현재 있는 당우(堂宇)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호국참회원·백운정사(白雲精舍)·독성각(獨聖閣)·천불전(千佛殿)·종무소(宗務所)·요사(寮舍) 및 5개의 산문(山門) 등이 있다.


대웅전에는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 내부의 벽에는 달마(達磨)와 혜능(慧能) 및 청담(淸潭)의 영정이 그려져 있으며, 후불탱화(後佛幀畵)·팔상도(八相圖)·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도선사석불이 있다. 이 석불상은 도선이 조각했다는 마애관세음보살상으로, 높이 8.43m이다. 이 석불은 영험이 있다고 하여 축수객이 끊이지 않는데, 석불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대웅전 옆뜰에는 보리수가 있는데, 200여 년 전에 인도에서 온 고승이 심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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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굴의 중앙에는 십일면관세음보살이, 그 오른쪽에는 잔을 든 문수보살이, 왼쪽에는 경책을 든 보현보살이 각각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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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사 제1산문 "도선사 입구 산문(道詵寺 入口 山門)"

  

도선사 입구를 알리는 산문에는 각각 

삼각산=북한산 도선사 (三角山 =北漢山 道詵寺)

입차문내 막존지해 (入此門內 莫存知解)

[이 문 안에 들어오면 잔꾀로서 헤아림을 내지 말라.]


유지자 사경성 일체유심조 (有志者 事竟成 一切唯心造)

[뜻이 있는 사람은 일을 이루어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려있으니]

정신일도 하사불성 (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라는 문구들이 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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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사의 제5문 - 광명문


도선사의 제5문이자 마지막 입구인 광명문에는 각각, "신념무적(信念無敵)만고광명(萬古光明)"란 휘호가 세겨져 있다.


  도선사 광명문을 통과하면 그제서야 본격적인 도선사 경내로서 이곳에서부터 도선사의 가람을 이루는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삼각산 도선사 마애석불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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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이 조각하였다는 마애관음보살상이 바로 이 도선사석불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선대사는 이곳의 산세가 1천 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佛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 내다보고 절을 세운 다음,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磨崖觀音菩薩像)을 조각하였다고 전한다. 그후 조선 후기까지의 중건이나 중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북한산성을 쌓을 때 승병들이 도선사에서 방번(防番)을 서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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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이동 도선사 마애관음보살상(磨崖觀音菩薩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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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각산 도선사 마애석불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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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사 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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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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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사 삼성각내의 나반존자(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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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사 삼성각내의 칠성여래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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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사 삼성각내의 서신(일명 산신=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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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사의 대웅전


도선사의 대웅전은 그 중앙에 "아미타보살(阿彌陀菩薩),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외벽에는 팔상도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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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병,장수,부귀 세가지 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