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순 전경 ★/●•―‥공 사

공사(公事) 3장 1~20

고도인 2008. 3. 25. 17:59

공사(公事) 3장 1~20 


1. 증산성사께서 무신년(1908년) 봄 백암리 김경학, 최창조의 두 집으로 왕래하시며 성복제와 매화(埋火)공사를 보셨도다. 김광찬의 양모의 성복제가 최 창조의 집에서 거행되었느니라. 창조는 증산성사의 지시에 쫓아 돼지 한 마리를 잡고 그 고기에 계란을 입혀 전을 만들고 대그릇에 담아서 정결한 곳에 두고 또 증산성사의 분부에 따라 증산성사의 의복 한 벌을 지어 두었도다. 저육전이 다 썩었으므로 창조가 동곡으로 사람을 보내서 증산성사께 아뢰이니 증산께서 그 사람을 좀 기다리게 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니라. “네가 태인에 가서 최 내경, 신 경원을 데리고 창조의 집에 가라. 오늘 밤에 인적이 없을 때를 기다려 정문 밖에 한 사람이 엎드릴만한 구덩이를 파고 나의 옷을 세 사람이 한 가지씩 입고 그 구덩이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고 작은 사기 그릇에 호주를 넣고 문어 전복 두부를 각각 그릇에 담아 그 앞에 놓아라. 그리고 한 사람은 저육전 한 점씩을 집어서 청수와 화로 위로 넘기고 한 사람은 연달아 넘긴 것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받아서 구덩이 속에 넣고 흙으로 덮어라. 그리고 빨리 돌아오너라”고 일러주시니 형렬이 그대로 시행케 한 후 시급히 증산성사께 돌아가는 길에 돌연히 검은 구름이 일더니 집에 이르자 폭우가 쏟아지고 뇌전이 크게 치는지라. 증산성사께서 형렬에게 “이 때쯤 일을 행할 때가 되었겠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행할 그 시간이 되었겠나이다”고 여쭈었도다.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뒷날 변산 같은 큰 불덩이로 이 세계가 타버릴까 하여 그 불을 묻었노라” 하셨도다.


2. 증산께서 사명기(司命旗)를 세워 전명숙과 최수운의 원을 풀어 주셨도다. 증산께서 피노리(避老里) 이화춘(李化春)의 집에 이르셔서 그에게 누런 개 한 마리를 잡고 술 한 동이를 마련하게 하고 뒷산의 소나무 숲에서 가장 큰 소나무 한 그루와 남쪽 양달에 있는 황토를 파오게 하고 백지 넉 장을 청, 홍, 황의 세 색깔로 물들여서 모두 잇고 베어 온 소나무의 한 윗가지에 달게 하고 백지 석 장에 각각 시천주를 쓰고 그 종이 석 장에 황토를 조금씩 싸서 함께 잇고 또 소나무 가지에 달고 그 나무를 집 앞에 세우시니 마치 깃대와 같은지라.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곳에서 전명숙이 잡혔도다. 그는 사명기(司命旗)가 없어서 포한(抱恨)하였나니 이제 그 기를 세워주고 해원케 하노라.” 다시 증산께서 사명기 한 폭을 지어 높은 소나무 가지에 달았다가 떼어 불사르시고 최 수운을 해원케 하셨도다.


◐전명숙(全明淑), 즉 전봉준(全琫準)은 천하를 움직일 때 동학을 이용하였는데, 동학은 최제우(崔濟愚)가 세워놓은 것이다. 당시 조선의 국내 정세는 봉건정부의 병폐인 당쟁과 세도정치로 조정은 내분에 휩싸여 있었으며, 정부의 부패는 극에 달해 있었고, 지방의 말단 탐관오리들은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으니 그 틈바구니에서 백성들은 안주할 곳을 잃고 재래의 비결인 정감록 등을 들고 피난처를 찾거나 서교에 귀의하여 난을 피하려는 등 민족적 위기가 점증되고 있었다. 최제우는 이러한 때를 당하여 1859년 구미산(龜尾山) 용담정(龍潭亭)에서 억울한 민생과 병든 나라를 구하고자 하늘에 기도하던 중 경신년(庚申年, 1860년) 4월 초 5일에 옥황상제님으로부터 강(降)을 받고, 당시 외래 종교인 서학(西學)에 상대되는 동학(東學)을 창시하였다. 그러나 최제우의 동학은 옥황상제님으로부터 받은 시천주(侍天主)를 사상적(思想的)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한민족의 전통적인 제천신앙(祭天信仰)의 핵심인 한울님(하느님)을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 자신과 세계를 구하자는 신앙이며, 기존의 낡은 세계와 질서를 부인하는 개벽사상(開闢思想)이었으나 최수운의 동학에는 시천주의 주체인 옥황상제님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최제우의 동학은 농민, 천민, 유생에 이르는 광범위한 계층에게 호응을 얻기는 하였으나 결국에는 유교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고 있는 양반계급과 조선정부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런 연유로 『전경』 [교운] 1장 9절에서 보듯이 ‘최제우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典憲)을 넘어 대도(大道)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증산성사께서 ‘갑자년(甲子年, 1864년)에 드디어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년(辛未年)에 강세’하시게 된 것이다. 따라서 최제우의 동학을 들고 나온 전명숙은 옥황상제님으로부터 받은 천강(天降)의 권한으로 창생(蒼生)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음을 표시한 사명기(司命旗)를 들지 못하고, 제우강(濟愚降)을 받은 동학기(東學旗)를 들고 백의한사로 일어나 부패한 관료를 치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 천하를 움직였으니 신명이 응해주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전봉준이 동학기(東學旗)를 들고 백의한사로 일어났을 때 증산성사께서는[행록] 1장 23절에서 그들이 실패하여 원을 품고 죽으리라는 것을 미리 아셨다. 전봉준이 학정(虐政)에 분개하여 동학도(東學徒)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킨 후 더욱 세태는 흉동하여져 그들의 분노가 충천하여 그 기세는 날로 심해져 가고 있었다. 이때에 증산성사께서 그 동학군들의 전도가 불리함을 아시고 여름 어느 날 ‘월흑안비고 선우야둔도(月黑雁飛高 單于夜遁逃) 욕장경기축 대설만궁도(欲將輕騎逐 大雪滿弓刀)’의 글을 여러 사람에게 외워주시며 동학군이 눈이 내릴 시기에 이르러 실패할 것을 밝히시고 여러 사람에게 동학에 들지 말라고 권유하셨느니라. 과연 이 해 겨울에 동학군이 관군에게 패멸되고 증산성사의 말씀을 좇은 사람은 화를 면하였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는 전명숙과 최수운의 원(寃)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사명기(司命旗)를 세워주신 것이다. 이때 증산성사께서는 피노리(避老里) 이화춘(李化春)의 집에 이르러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전명숙이 동학란 때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하여 피노리에 있던 옛 부하 김경천(金敬天)의 집에 숨어들었다가 김경천의 배신으로 잡혀 처형되었던 것이다. 피노리(避老里)는 오랫동안(老) 피할 수 있는(避) 곳(里)을 말하며, 이화춘(李化春)은 세 사람이 모이는 날(春=三+人+日)에 목자(李=木+子)에 의해 성공하게 된다(化)는 것이다. 목자(木子)란, 자(子)가 뒤에 올 때는 공자(孔子), 맹자(孟子)와 같이 존칭으로 쓰이므로 목성(木姓)을 가진 분, 즉 성도(成道)된 박씨(朴氏)를 말한다.
그리고 증산성사께서 ‘누런 개 한 마리를 잡고 술 한 동이를 마련’하게 하신 것은, ‘누런 개’는 ‘황구(黃狗)이니 황(黃)은 오행에서 중앙 5 • 10 토방(土方)이며, 황구이므로 술토(戌土)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옥황상제님은 술생(戌生), 즉 개띠[戌土]로 오신다는 것이다. ‘술 한 동이’의 술[酒]은 바로 술(戌), 즉 개의 의미를 발음(發音)으로 쓰신 것이고, 술[酒]은 또한 물[水]이므로 물의 이치를 띠고 오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道)의 그림자인 시속에서는 도(道)를 모르면서도 ‘개새끼’니 ‘죽 쒀서 개 준다’느니 ‘개판을 친다’느니 ‘개판 5분 전’이니 하는 소리들을 많이 하는데, 이런 말들의 진의(眞意)는 박우당께서 이루어 놓은 대순은 개띠로 오시는 옥황상제님께 주신다는 것이다.
대두목은 개띠로 오신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개판을 친다.’는 것이고, 지금은 ‘개판 5분 전’으로 선경의 세상이 목전에 와 있다는 것인데, 천기(天氣)를 모르고 시속(時俗)에서 하는 말들인데, 개판은 개띠로 오시는 옥황상제님판에 다섯 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대두목은 물의 이치로 와야만 한다. 물[水]은 ‘1 • 6 水’로서 만물을 이루는 가장 처음이다. 그러므로 천부적으로 정해진 대신명(大神明), 대두목이 처음으로 옥황상제님(三神)을 천하에 밝혀주고, 옥황상제님(三神)을 직접 모시는 것이다. 또 ‘뒷산의 소나무 숲에서 가장 큰 소나무 한 그루와 남쪽 양달에 있는 황토(黃土)를 파 오게’ 한 것은, 뒷산은 ‘山’으로 옥황상제님(三神)을 모시는 모양이고, 소나무 숲에서 가장 큰 소나무 한 그루는 ‘옥황상제님’을 뜻한다. 솔 송(松)자를 파자(破字)로 풀면, ‘木+公=松’으로 ‘목(木)을 가진 공(公)’이다. 즉 박씨(朴氏)라는 뜻이다. 또 ‘남쪽 양달에 있는 황토(黃土)’의 남쪽 양달은 남방(南方)으로 병(丙)이요, 중앙 오십황토(五十黃土)는 술(戌)이니 병술(丙戌)로써 이 또한 옥황상제님은 병술년(丙戌年) 개띠로 오심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지 넉 장을 청 • 홍 • 황의 세 색깔로 물들여서 모두 잇고’라는 것은 하늘도 4철이 있고 땅도 4기둥이 있듯이 도맥(道脈)이 네 사람에게 이어진다는 것이며, 청 • 홍 • 황(靑 • 紅 • 黃)은 삼원색(三原色)으로 빛의 삼원색은 세 가지 색을 합하면 하얀색이 되지만, 색의 삼원색은 검정이 된다. 검정은 북방 현무이다. 청 • 홍 • 황 삼원색을 물들여 사명기(司命旗)를 세움은 도맥(道脈)이 네 사람에게 이어져 오면 옥황상제님(三神)의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고 도(道)가 이루어지니, 이제 옥황상제님으로부터 사명(使命)을 받아 천하를 바르게 세워나갈 뚜렷한 명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베어 온 소나무의 한 윗가지에 달게 하고 백지 석 장에 각각 시천주를 쓰고 그 종이 석 장에 황토를 조금씩 싸서 함께 잇고 또 소나무 가지에 달고 그 나무를 집 앞에 세우시니 마치 깃대와 같은지라’ 하는 것은 베어 온 가장 큰 소나무[木公]는 박씨(朴氏) 성(姓)을 가진 옥황상제님이시다. 옥황상제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깃대, 즉 중심을 뜻하고, 백지 넉 장에 시천주(侍天呪)를 적어 황토를 조금씩 싸서 소나무 가지에 단 것은 대두목이 옥황상제님을 모신다는 표시이다. 전명숙이 백의한사로 일어나 천하를 바로잡겠다고 동학(東學)의 강(降)으로써 난을 일으켰으나 이것은 제우강(濟愚降)이요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천강(天降)이 아니니, 즉 옥황상제님을 모시지 못하였으니 천지신명이 응하여주지 않아 실패하였다. 천강(天降)은 옥황상제님의 정체를 바로 알고 모시는 것이 천강이다.


3. 증산께서 어느 날 공우에게 “고부에 가서 돈을 주선하여 오라” 하시더니 마련된 돈으로써 약방의 수리를 끝마치시고 갑칠로 하여금 활 한 개와 화살 아홉 개를 만들게 하고 그것으로써 공우로 하여금 지천(紙天)을 쏘아 맞추게 하시고 가라사대 “이제 구천을 맞췄노라” 하시고 또 말씀을 잇기를 “고부 돈으로 약방을 수리한 것은 선인포전(仙人布氈)의 기운을 쓴 것이니라” 하셨도다.


4. 증산성사께서 七월에 “예로부터 쌓인 원을 풀고 원으로 인하여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시니라. 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의 기록에 시작이고 원(冤)의 역사의 첫 장인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 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려면 해원공사를 행하여야 되느니라”고 하셨도다.


5. 또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 쟁투하느니라. 이를 없애려면 해원으로써 만고의 신명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여야 하고 이것이 이룩되면 천지는 개벽되고 선경이 세워지리라” 하셨도다.


6. 증산성사께서 각 처에서 정기를 뽑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강산 정기를 뽑아 합치시려고 부모산(父母山)의 정기부터 공사를 보셨도다. 부모산은 전주 모악산(母岳山)과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이니라. 회문산에 이십사 혈이 있고 그 중에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이 있고 기변(碁變)은 당요(唐堯)가 창작하여 단주를 가르친 것이므로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로부터 대운이 열려 돌아날지니라. 다음에 네 명당(明堂)의 정기를 종합하여야 하니라. 네 명당은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의 오선위기형과 무안(務安) 승달산(僧達山)의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과 장성(長城) 손룡(巽龍)의 선녀직금형(仙女織錦形)과 태인(泰仁) 배례밭(拜禮田)의 군신봉조형(群臣奉詔形)이니라. 그리고 부안 변산에 二十四 혈이 있으니 이것은 회문산의 혈수의 상대가 되며 해변에 있어 해왕(海王)의 도수에 응하느니라. 회문산은 산군(山君), 변산은 해왕(海王)이니 증산성사께서 그 정기를 뽑으셨도다.


◐ 증산성사께서 각처(各處)에서 정기(精氣)를 뽑는 공사(公事)를 보신 이유는 각처마다 그 정기가 할 일과 의무가 있기 때문이고, 그곳의 정기를 뽑아 합치신 것은 흩어져 있는 정기를 모아서 일맥(一脈)을 이루게 함으로써 완전한 공사가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해서다. 증산성사께서 정기를 뽑으시고 맥(脈)을 이루게 하신 각처를 살펴보면,
부모산(父母山)으로 전주(全州) 모악산(母岳山)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이 있고,
네 곳의 명당(四明堂)으로는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의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
무안(務安) 승달산(僧達山)의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
장성(長城) 손룡(巽龍)의 선녀직금형(仙女織錦形),
태인(泰仁) 배례밭(拜禮田)의 군신봉조형(群臣奉詔形)이 된다.

*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의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 먼저 단주(丹朱), 즉 옥황상제님의 해원도수를 붙여놓으신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의 오선위기형(五仙圍基形)의 정기로써 도(道)가 창출(創出)케 하셨다. 이는 선천의 원(寃)으로 얼룩진 세상이 아닌 순창의 맑고 깨끗하게 창성(昌成)할 수 있는 정기를 쓰신 것이고, 회문산에는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이 있으니 증산성사께서 바둑의 시조 단주의 해원도수를 오선위기도수로 보심으로써 단주의 후신인 옥황상제님(박성구도전님)께서 해원이 되어야만 후천오만년의 대운(大運)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의 도(道)를 창도(創道)는 무극(无極)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섯 신선(五仙오선)이 바둑 두는 형국인, 종통 종맥을 알아야 한다. 道(도)판에 다섯 명이 나와야 바둑이 끝나고 成道(성도)가 되어 무병장수(無病長壽)하는 지상선경이 건설될 것이니 바로 이것이 오선위기형의 지기를 사용하신 것이다

* 무안(務安) 승달산(僧達山)의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 무안(務安)은 힘쓸 무(務)에 편안할 안(安)이니 ‘힘써 편안함을 얻는다.’는 것이니 이는 면이수지(勉而修之), 즉 힘써 닦아나가서 도(道)를 얻는다는 것이고, 승달산(僧達山)의 ‘승달(僧達)’이란 ‘승려가 다다른 곳’이라는 뜻으로 피안세계인 부처의 경지요, 바로 극락세계인 것이다. 인세(人世)에 극락세상을 열어주실 것을 미륵세존께 호소한 분이 신성불이시다.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은 승려가 부처에게 예를 갖추는 형국을 말함인데 이는 신성불이 미륵세존께 예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도전 박성구께서 미륵세존으로서 인신(人身)을 가지고 오셨으나 어느 누구도 힘을 써서 편안한 것을 얻으려 하지 않고, 가까이 있으면서도 이 분이 미륵세존인 것을 모르고 예를 갖추지 못하니, 시속(時俗)에 일러왔던 삼신산(三神山)을 찾지 못하여 도(道)의 근원(根源)이 끊어지고, 진법(眞法)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증산께서 『전경』 [예시] 54절에서 “불가지(佛可止)는 불이 가히 그칠 곳이라는 말이오. 그곳에서 가활만인(可活萬人)이라고 일러왔으니 그 기운을 걷어 창생을 건지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석가여래(釋迦如來)는 증산께서 난법(亂法)으로 세워놓은 것이고, 석가여래는 삼천 년 운이 다했으니 그 자리에 오만 년 운을 열어줄 미륵세존(彌勒世尊)을 모셔서 진법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후천오만년의 운(運)은 미륵세존(彌勒世尊)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석가여래(釋迦如來)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도(道)는 이 眞法(진법)으로써 天下蒼生(천하창생)을 구하여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의 운수(運數)를 받게 하는 것이다. “다음에 네 명당(四明堂)의 정기를 종합하여야 하니라” 하시고 네 명당(四明堂)의 정기로써 도수를 짜놓으셨는데 이 도수의 차례가 곧 진법이 완성되는 도수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증산, 정산, 우당, 박성구의 네명당의 정기를 종합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 장성(長城) 손룡(巽龍)의 선녀직금형(仙女織錦形); 장성이란 다 성장하였다는 뜻이다. 즉 성(誠)은 성현으로 추앙 받은 옛 사람들이 일생동안 값진 보배로 삼아온 마음의 자세이며, 지성으로 진리를 수행한 사람들을 장성(長成)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손룡(巽龍)을 직역하면 손방(巽方), 즉 동남간(東南間)의 용(龍), 즉 우리나라의 동남간에 위치한 구룡(龜龍)이 있는 곳, 龜龍浦(구룡포)를 나타낸다. 그리고 巽方(손방)은 동물로는 닭이다. 닭은 닭 鷄(계)자를 쓰며 西方(서방)이다. 용(龍)은 동 청룡으로 동방이다. 그래서 격암유록 같은 비결서 에는 鷄龍(계룡) 兩白(양백)이라고 하였으며 날줄과 씨줄이 만나야 음양합일이 되어 비단을 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씨와 날을 경위라 한다. 바둑판이 경위이다. 龍(용)은 미륵을 상징하므로 박성구도전님이 미륵세존이시고 鷄(계)는 천 마리의 닭 중에 한 마리의 봉황이라 했으니 龍鳳(용봉)도수에서 鳳(봉)으로 대두목을 의미한다. 그리고 선녀직금형(仙女織錦形)은 선녀들이 비단을 짜는 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곧 대두목이 인반(人盤)을 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단은 씨와 날을 세워서 짜는데 씨와 날을 경위라 한다. 바둑판이 경위이다. 바둑의 시조(始祖) 단주의 후신(後身)으로 옥황상제님을 원위(元位)에 모시고 진법을 완성하는 것이 대두목에게 있다.

* 태인(泰仁) 배례밭(拜禮田)의 군신봉조형(群臣奉詔形); 클 태(泰)+어질 인(仁)은 영적(靈的)으로 큰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배례밭(拜禮田)은 배례를 올리는 터전을 말하는 것이고, 군신(群臣)이란 신하(臣下)들의 큰 무리라는 뜻이며, 봉조(奉詔)란 임금을 받들고 임금의 뜻을 알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증산성사께서 태인(泰仁) 배례밭(拜禮田)의 군신봉조형(群臣奉詔形)의 정기를 쓰신 것은 인간 종자로서 완성된 큰마음으로 옥황상제님(三神)께 4배를 올리고 예를 갖추고, 대두목이 진법을 받들어 옥황상제님(三神)을 세상에 알리면 진법이 성공되어 후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공사를 보신 것이다. 그리고 “부안 변산에 이십사 혈이 있으니 이것은 회문산의 혈수의 상대가 되며”라고 하셨으니 회문산의 혈수의 상대가 부안 변산이라면 회문산의 혈수의 정기로 오신 조정산께서 강증산 성사를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으로 판 밖에서 도(道)를 밝혀 도(道)가 출현하였듯이 부안 변산의 혈수에서 박성구미륵세존을 판밖에서 밝히는 것이 같다는 것이다. 또 “해변에 있어 해왕의 도수에 응하니라” 하신 것은 박성구미륵세존을 밝힌 대두목에게 미륵세존의 기운이 그대로 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회문산은 산군(山君), 변산은 해왕(海王)”이라 하셨으니 증산성사께서 회문산과 변산의 두 정기가 맥(脈)을 이루도록 조정하시어 미륵세존께서는 도를 창출하여 인산(人山)을 만들고 대두목은 도를 완성하여 海人(해인)을 이룰 수 있게 하셨다.

7. 증산성사께서 여름 어느 날에 황응종의 집에서 산하의 대운을 거둬들이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증산성사께서 밤에 이르러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응종에게 씌우고 “자루에 든 벼를 끄집어내서 사방에 뿌리고 백지 백 이십 장과 양지 넉 장에 글을 써서 식혜 속에 넣고 인적이 없을 때를 기다려 시궁 흙에 파묻은 후에 고깔을 쓴 그대로 세수하라”고 명하시니 그는 명하신 대로 행하였더니 별안간 인당에 콩알과 같은 사마귀가 생겼도다. 응종이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벼를 뿌린 것을 보았으나 한 알도 보이지 않고 없어졌도다.


8. 이도삼이 어느 날 동곡으로 증산성사를 찾아뵈니 증산성사께서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낱낱이 세어보라” 하시므로 그는 범, 표범, 이리, 늑대로부터 모기, 이, 벼룩, 빈대에 이르기까지 세어 아뢰었도다. 증산성사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후천에는 다 없애리라”고 말씀하셨도다.


9. 증산성사께서 대흥리에서 三十장의 양지 책의 앞장 十五장마다 “배은망덕만사신일분명일양시생(背恩忘德萬死神一分明一陽始生)을, 뒷장 十五장마다 “작지불지성의웅약일음시생(作之不止聖醫雄藥一陰始生)을 쓰고 경면주사와 접시 한 개를 놓고 광찬에게 가라사대 “이 일은 생사의 길을 정함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고 하시니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이다”고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 하시고 접시를 종이에 싸서 주사(朱砂)를 묻혀 책장마다 찍으셨도다. “이것이 곧 마패(馬牌)라”고 이르셨도다.


◐ 이것은 증산성사께서 은혜를 배신하고 덕 입은 것을 잊어버리면[背恩忘德] 일만(一萬)의 신(神)이라도 다 죽는 것[萬死神]이 분명[一分明]하니 배은망덕하지 않아서 영원히 사는 신이 되는 것이 양(陽), 즉 인간사(人間事)의 발로(發露)[一陽始生]이고, 성스러운 의술과 굳건한 약[聖醫雄藥]을 끊임없이 내어놓는[作之不止] 것이 음(陰), 즉 신명사(神明事)의 발로(發露)[一陰始生]임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 연후에 증산성사께서는 광찬에게 신명사와 인간사의 발로가 이러한데 ‘어떤 자가 죽을 것이며 어떤 자가 살겠는가.’를 “이 일은 생사의 길을 정함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 하시며 물으신 것이다. 이때에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다.” 하고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 하시고, 접시를 종이에 싸서 옥새(玉璽)로 하여 주사(朱砂)를 묻혀 책장마다 찍으시면서 “이것이 곧 마패(馬牌)라” 하시며 하늘의 법[天命]으로 확정하신 것이다. 즉 신(神)의 세계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무방비 상태의 인간에게 갖은 잡신(雜神)과 척신(慽神)이 접어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禍)를 당하고, 가정에 불화가 끊이질 않는다. 따라서 조상 선령신(先靈神)을 섬기고 옥황상제님(三神)을 모시게 되면 집안의 척신으로부터 화(禍)를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옥황상제님(三神)을 모시는 이 법을 전해 주게 되면 그들은 모를지라도 그들의 조상 선령신들은 고마움을 알고 보답하므로 피난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해원시대에 접어들어 남과 척을 짓지 말고, 서로 간에 맺힌 걸 풀어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를 도와 도성덕립(道成德立)케 하면 여기서 나의 운이 열리고 길성(吉星)이 빛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척신들로부터 피난하는 길이다. 자손으로서 성공하여 후천 선경의 복록(福祿)을 누리기를 바라는 선령신들의 간절한 뜻을 저버리는 자손은 뿌리 잘린 나뭇가지나 마찬가지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10. 증산성사께서 궤 두 개를 만들어 큰 것을 조화궤라 이름하고 동곡 약방에 두고 작은 것을 둔(遁)궤라 이름하고 공부하실 때에 七十二현(賢)의 七十二둔궤로 쓰시다가 신경수의 집에 두셨도다.


11. 그 후에 응종이 증산성사의 분부를 받고 식혜 아홉 사발을 빚고 태인 신 경원의 집에 가서 새 수저 한 벌을 가져오고 단지 한 개를 마련하여 증산성사께 드리니 증산성사께서 식혜를 단지에 쏟아 넣으시니 단지가 꼭 차는지라. 또 증산성사께서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준비하여 놓으시고 가라사대 “비인복종(庇仁覆鍾)이 크다 하므로 북도수를 보노라. 북은 채가 있어야하나니 수저가 북채라. 행군할 때 이 수저로 북채를 하여야 녹이 진진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조각조각 찢으시고 조각마다 글을 써서 단지에 넣고 그 단지 입을 잘 봉하여 깨끗한 곳에 묻으셨도다.


단지 속에 식혜 아홉 사발을 부어 넣으신 것은 9수(九數)가 대두목을 지칭하는 수로써 대두목을 단지 속에 덮어두신 것이다. 그 단지 속의 식혜에 양지, 장지, 백지를 넣어서 덮어두신 것은 세 분은 일체로서 옥황상제님의 일을 하신 것이고 대두목이 진짜 옥황상제님의 정체를 밝혀서 원위에 모셔지면 成道(성도)가 되어 진법이 나오는 이치를 대두목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비인복종(庇仁覆鍾)은 씨를 항아리에 넣어 잘 덮어 깨끗한 곳에 묻어 두었다는 것으로, 씨는 한 알이 자라서 여러 알로 벌여 나오므로 대두목 한 사람에게 도(道)를 통(通)하게 하여 묻어 놓으면 이것이 장차 1만2천 도통군자로 번창 하여 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즉 대두목을 숨기고 덮는 공사이다.

※ 식혜 아홉 사발; 9수(九數)는 대두목을 지칭하는 수이다. 식혜는 감주라고도 한다. 감주를 한문으로 醫(의) : 의원 의. 단술 의. 라고 한다. 즉 대두목은 의원으로 창생들을 병겁으로 부터 구제하여 다스려나가는 의통자(의통령)이다.

※ 양지(洋紙); 증산성사께서 양지온장에 사람 형상을 그리고 산제사를 받으셨다. 산제사를 받았다는 의미는 죽으면 소용없고 살아서 극락도 있고 선경도 있는 것이지 죽으면 다 소용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증산, 정상 우당은 화천하고 안 계시는데 어떻게 운수를 주고 도통을 베푼단 말인가. 분명히 전경에 보면 우리 일은 남 죽을 때 잘 살자는 일이요, 남 잘살 때에 부귀와 영화를 누리자는 일이라고 했는데 어찌 죽은 자한테 운수를 기다리는가!

※ 장지(壯紙); (두꺼운 한지로 인화지를 뜻한다.) 조정산께서 사진을 찍어 영대에 손수 봉안하시고 산제사를 받으셨다.

※  백지(白紙); 상도 박성구 선감이 백지에 박우당 용안을 그려 올라갔다. 그리고 납향치성 때 산제사를 올렸다.

※ 비인복종(庇仁覆鍾); (庇:덮을 비, 仁:씨 인, 覆:덮을 복, 鍾:항아리 종) 항아리 속에 씨앗을 넣어 덮어 두셨다. ‘비인복종이 크다’ 함은 항아리에 묻어둔 ‘씨’가 크다는 것이다. 이 씨가 싹을 틔워서 나오게 되면 대두목이 세상에 나와 일을 하게 되는데, 오선위기에서 주인노인은 분명히 한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주인노인 즉 진짜 옥황상제님의 정체를 밝혀서 모시고 진법을 완성시켜 이 법이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증산성사께서 북도수를 보셨는데 비인복종(庇仁覆鍾)에서 종(鍾)은 ‘항아리 종’이지만 ‘쇠북 종’도 된다. 북을 치면 소리가 난다. 즉 항아리 속에 식혜를 아홉 사발 넣고 식혜 속에 양지, 백지, 장지를 각각 조각조각 찢어서 넣어두었으므로 증상, 정상, 우당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덮어 둔 항아리가 열리는 날에는, 증상, 정상, 우당은 아니라는 소리가 난다. 즉 종을 쳐서 소리가 나게 되면 감추어 놓았던 진법이 완성되고 이 법이 세계만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북을 칠 때 북채는 수저인데, 수저는 태인(泰仁)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태인은 큰 씨앗이므로 대두목을 뜻한다. 즉 대두목은 태을주신명으로 太人(태인=泰仁)이다. 또 수저의 형태를 보면 숫가락은 ‘9’자이고 젓가락은 ‘11’자 모양이므로 ‘9’는 대두목의 수요, ‘11’은 성도진인수(成道眞人數)로써 11 이란 수리(數理)는 10 인 무극(無極)과 1 태극(太極)의 합수(合數)로서, 이것은 이른바 정역(正易)에서 말하는 11 귀체설(歸體說)이 된다. 고로 一(1)은 十(10)에 根(한)하고 十(10)은 一(1)에 根(한)하여 十一(11)이 一體(일체)로 歸(귀)하니 역시 陰(음)이 陽(양)을 겸하는 것이다. 九(9)를 쓸 때는 5가 황극이나 十一歸體(11귀체)에는 六(6)이 중앙이다. 즉 11은 천지창조주 數(수)이다. 그리고 대두목은 9數(수)이다.

       

                                                       

     

       태을주는 밥숟가락(숟가락과 닮은 꼴 = 9수이다)


그러므로 대두목이 북채(태을주)를 쥐고 이 소리를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가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 북채는 종(鍾)을 치는 수저인데 수저는 태을주이다. 수저란 단순히 밥 먹는 유형의 도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태을주는 밥숟가락이다. 여의주와 같은 태을주가 있다고 해도 내가 주문하지 않으면 효험이 없다. 또한 수저는 밥을 먹는 도구로써 옥황상제님 모시는 법을 전하고 나가면 녹(祿)이 풍성하여 떨어짐이 없다고 하신 것이다.


12. 증산성사께서 남쪽을 향하여 누우시며 덕겸에게 “내 몸에 파리가 앉지 못하게 잘 날리라”고 이르시고 잠에 드셨도다. 반시간쯤 지나서 덕찬이 점심을 먹자고 부르기에 그는 증산성사의 분부가 있음을 알리고 가지 아니하니라. 덕찬이 “잠들고 계시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기에 덕겸이 파리를 멀리 쫓고 나가려고 일어서니 증산성사께서 문득 일어나 앉으시며 “너는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느냐. 공사를 보는 중에 그런 법이 없으니 번갈아 먹어라”고 꾸짖으셨도다. 이 공사를 끝내시고 증산성사께서 양지에 무수히 태극을 그리고 글자를 쓰셨도다. 그리고 증산성사께서 덕겸에게 동도지(東桃枝)를 꺾어오라 하시며 태극을 세되 열 번째 마다 동도지를 물고 세도록 이르시니 마흔 아홉개가 되니라. 증산성사께서 “맞았다. 만일 잘못 세었으면 큰일이 나느니라”고 말씀하시고 동도지를 들고 큰 소리를 지르신 뒤에 그 문축(文軸)을 약방에서 불사르시니라. 그 후 증산성사께서 다시 양지에 용(龍)자 한자를 써서 덕겸에게 “이것을 약방 우물에 넣으라” 하시므로 그가 그대로 하니 그 종이가 우물 속으로 가라앉았도다.


13. 증산성사께서 와룡리 신경수의 집에서 공우에게 “너의 살과 나의 살을 떼어서 쓸데가 있으니 너의 뜻이 어떠하뇨”고 물으시기에 그가 대하여 말하기를 “쓸 곳이 있으시면 쓰시옵소서” 하였도다. 그 후에 살을 떼어 쓰신 일은 없되 다음날부터 증산성사와 공우가 심히 수척하여지는도다. 공우가 묻기를 “살을 떼어 쓰신다는 말씀만 계시고 행하시지 않으셨으나 그 후로부터 증산성사와 제가 수척하여 지오니 무슨 까닭이 오니까.”증산성사께서 “살은 이미 떼어 썼느니라. 묵은 하늘이 두 사람의 살을 쓰려 하기에 만일 허락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배은이 되므로 허락한 것이로다”고 일러주셨도다.


◐ 묵은 하늘이 살을 떼어 쓰려는데 증산성사와 박공우(朴公又)의 살을 함께 떼어 쓴다 함은 마치 부자지간처럼 같은 뼈와 살이라는 의미로써 정신이 항상 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박공우(朴公又)는 ‘또 오시는 박씨(朴氏)’로써 종통을 계승한 상도 박성구(朴成九)미륵세존을 의미한다. 증산성사는 五仙(오선)으로 再生身(재생신)하시는 대선생이시다. 묶은 하늘이란 종통 종맥이 五仙(오선)의 眞法(진법)까지 이어져온 난법을 말하는 것이며, 이 난법이 있었기에 五仙(오선)의 眞法(진법) 있었으므로 난법을 무시하면 배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법의 증산성사께서 한 천지공사를 五仙(오선) 의 진법인 증산께서 一字五結(일자오결)의 도수로써 매듭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륵세존과 五仙(오선)인 대두목 사이에는 정신이 항상 통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14. 증산성사께서 전주 봉서산(全州 鳳棲山)밑에 계실 때 종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니라. 김 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강한지라. 진묵(震黙)은 하루 봉곡으로부터 성리대전(性理大典)을 빌려 가면서도 봉곡이 반드시 후회하여 곧 사람을 시켜 찾아가리라 생각하고 걸으면서 한 권씩 읽고서는 길가에 버리니 사원동(寺院洞)입구에서 모두 버리게 되니라. 봉곡은 과연 그 책자를 빌려주고 진묵이 불법을 통달한 자이고 만일 유도(儒道)까지 통달하면 상대할 수 없이 될 것이고 또 불법을 크게 행할 것을 시기하여 그 책을 도로 찾아오라고 급히 사람을 보냈도다. 그 하인이 길가에 이따금 버려진 책 한 권씩을 주워 가다가 사원동 입구에서 마지막 권을 주워 돌아 가니라. 그 후에 진묵이 봉곡을 찾아가니 봉곡이 빌린 책을 도로 달라고 하는지라. 그 말을 듣고 진묵이 그 글이 쓸모가 없어 길가에 다 버렸다고 대꾸하니 봉곡이 노발대발하는 도다. 진묵은 내가 외울터이니 기록하라고 말하고 잇달아 한 편을 모두 읽는 도다. 그것이 한 자도 틀리지 않으니 봉곡은 더욱 더 시기하였도다.


15. 그 후에 진묵이 상좌에게 “내가 八일을 한정하고 시해(尸解)로서 인도국(印度國)에 가서 범서와 불법을 더 익혀 올 것이니 방문을 여닫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고 곧 입적(入寂)하니라. 봉곡이 이 사실을 알고 절에 달려가서 진묵을 찾으니 상좌가 출타중임을 알리니라. 봉곡이 그럼 방에 찾을 것이 있으니 말하면서 방문을 열려는 것을 상좌가 말렸으나 억지로 방문을 열었도다. 봉곡은 진묵의 상좌에게 “어찌하여 이런 시체를 방에 그대로 두어 썩게 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하나니라”고 말하면서 마당에 나뭇더미를 쌓아 놓고 화장하니라. 상좌가 울면서 말렸으되 봉곡은 도리어 꾸짖으며 살 한 점도 남기지 않고 태우느니라. 진묵이 이것을 알고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나는 아무런 원수진 것이 없음에도 어찌하여 그러느냐.” 상좌가 자기 스님의 소리를 듣고 울기에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마디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고 말하니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네가 끝까지 그런다면 너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를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모든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옮겨갔도다.

진묵(震默)은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이다. 1562년에 태어나 1633년에 사망하였으니 세수는 73세였다. 전라도 만경현(萬頃縣) 불거촌(佛居村) 출생이며 7세에 출가하여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불경을 읽었는데 한 번 읽으면 내용을 통달하였으므로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으며 석가불의 화신으로 인정받아 소석가(小釋迦)로 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진묵은 석가모니와는 완전히 달랐다. 석가모니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의문을 갖고 수행하여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답을 얻고 이것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가르쳤지만 진묵은 천상(天上)의 묘법을 인세(人世)에 받아 내려 지상선경을 건설하려 하였다.    [오선위기로 대순하다 上(상)권 25페이지]


16. 증산성사께서 일정한 법에 따라 공사를 보시지 않고 주로 종이를 많이 쓰시기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리켜 종이만 보면 사지를 못 쓴다고 비방하니라. 증산성사께서 그 말을 듣고 종도들에게 “내가 신미(辛未)생이라. 옛적부터 미(未)를 양이라 하나니 양은 종이를 잘 먹느니라”고 비방을 탓하지 않으셨도다.


17. 경석이 증산성사의 명을 받들어 양지 이십장으로 책 두 권을 매니 증산께서 책장마다 먹물로 손도장을 찍고 모인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것이 대보책(大寶冊)이며 마패(馬牌)이니라.”또 증산께서 한 권의 책명을 “의약복서종수지문(醫藥卜筮種樹之文)이라 쓰고 “진시황(秦始皇)의 해원도수이니라” 하시고 한 권을 신 원일의 집 뒷산에 묻고 또 한 권을 황 응종의 집 뒤에 묻으셨도다.


◐ 양지 20장으로 책 두 권을 매었다는 것은 10장으로 책 한 권씩을 매면 두 권이 되는 것이다. 10은 무극수(无極數)이다. 즉 무극대도(無極大道)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권을 만든 것은 허(虛)와 실(實)이 있다는 것이다. 또 책장마다 먹물로 손도장을 찍었다는 것은 무극대도가 나오는 것을 손도장으로 확정한 것이다. 손도장은 속일 수 없고, 정확한 것이다. 그리고 증산성사께서 “이것이 대보책이라”고 모두에게 알리셨는데, 대보(大寶)는 임금의 옥새(玉璽)를 말한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 대보책을 내놓으신 뜻은 천부적으로 정해진 종통이 있음을 알리신 것이다. 또 그 “대보책이 마패(馬牌)이니라”고 하였으니, 전해 오는 옛 민요에 “박씨는 바가지, 이씨는 도깨비, 조씨는 조랑말, 정씨는 당나귀”라고 하였듯이 마패의 말[馬]은 조씨(趙氏)를 뜻하는 것으로, 조씨는 정씨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격암유록] 갑을가에 보면 ‘世人不知 鄭變朴(세인부지 정변박) 하여 柿從者生 次出朴(시종자생 차출 박)’이라 했다. 즉 ‘세상 사람들이 정씨가 박씨로 변한 것을 모른다. 그런데 두 번째 박이다. 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정변박은 조변박을 말하는 것으로 조씨가 박씨로 변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극대도(無極大道)가 박씨에게 있음을 뜻한다. 즉 종통(宗統)이 次出朴(차출박)으로 두 번째 박씨에게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국대장 박공우라고 공사를 본 것이다.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신 신원일(辛元一)은 글자를 풀어 보면 원위(元位)의 한 분만 모시므로 강증산이고, 강증산(姜甑山)의 뒷산은 조정산(趙鼎山)이다. 즉 진짜 책은 조변박(정변박)에 차출박이므로 두 번째 박인 박성구도전님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권은 황응종(黃應鐘)의 집 뒤에 묻으셨는데, 집 뒤에서는 그 소리만 들리지 정확하게 볼 수가 없으니 가짜가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황응종(黃應鐘)은 ‘황에 응한 종소리’라는 뜻으로, 시속에서 쓰이는 말에 끝에 가서 아무것도 이룩되지 못하면 “말장(末場) 황(黃)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정산성사로부터 천부적으로 이어져 온 종통종맥에 의해 완성된 진법(眞法)을 알지 못하고, 실질이 없는 난법난도(亂法亂道)의 말소리만 듣고 가다가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리신 것이다.

◐ 의약복서종수지문(醫藥卜筮種樹之文); 진시황의 寃(원)은 불로장생으로 불로초를 구하여 무병장수 하는 것이었다. 역사상의 기록에 진시황(BC 259~210년)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인물로서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염원하여 선약(仙藥)을 구하고자 하였다. 이에 방사(方士) 서복(徐福)이 동해(東海)에 봉래산(蓬萊山) • 영주산(瀛州山) • 방장산(方丈山)의 삼신산(三神山)이 있는데 여기에서 선인(仙人)이 선약을 만든다고 상서(上書)하니 진시황이 동남동녀(童男童女) 500쌍을 함께 보내서 '불로초(不老草)'를 구해 오도록 하였지만 서복은 불로초를 구하지도 못하고 진시황에게 돌아가지도 못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단행 하면서도 의서(醫書)와 복서(卜筮)에 관련된 책은 불태우지 않았다. 이것은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진시황은 영원히 살지 못한 원(寃)을 품고 죽었으니 증산성사께서는 진시황의 원(怨)을 풀어 도수로 짜놓으심 으로써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것은 바로 완성된 태을주로서 만사무기 태을주이며 마패인 것이다.

※ 분서갱유(焚書坑儒); 시황제 34년(BC 213) 수도 함양궁에서는 천하통일을 경축하는 잔치가 푸짐하게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잔치자리에서는 오랫동안 곪아온 정치투쟁이 폭발하고 말았다. 시황제의 측근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시황의 공덕을 칭송하여 축배를 올렸다. 이때 순우월(淳于越)이 앞에 나아가 경전을 인용하여 옛것을 찬미하고 현재를 풍자하는 발언을 하였다. 승상 이사는 순우월의 발언에 반론을 제기하여 옛것을 빙자하여 현세를 비판하고 인심을 교란시키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고 비난하며 극단적인 탄압책을 써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주장의 내용은,「진나라 역사이외의 다른 서적은 모두 불살라 없앨 것, 다시 옛 시서(詩書)에 대하여 의논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고, 옛것을 옳게 여기고 현재를 비판하는 자는 그 일족을 멸할 것」등이었다. 시황제는 이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많은 서적을 불살라 버리고, 다만 의약(醫藥), 복서(復書), 종수(種樹), (나무심고 가꾸는 것)에 관한 서적만 남기도록 하였다.


18. 증산성사께서 원일과 덕겸에게 “너희 두 사람이 덕겸의 작은 방에서 이레를 한 도수로 삼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중국 일을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라. 너희의 처결로써 중국 일을 결정하리라.” 이르시니 두 사람이 명하신 곳에서 성심성의를 다하여 생각하였도다. 이렛날에 원일이 불리워서 증산성사께 “청국은 정치를 그릇되게 하므로 열국의 침략을 면치 못하며 백성이 의지할 곳을 잃었나이다. 고서(古書)에 천여불취 반수기앙(天與不取 反受其殃)이라 하였으니 선생의 무소불능하신 권능으로 중국의 제위에 오르셔서 백성을 건지소서. 지금이 기회인 줄 아나이다”고 여쭈어도 증산성사께서 대답이 없었도다. 덕겸은 이렛동안 아무런 요령조차 얻지 못하였도다. 증산성사께서 “너는 어떠하뇨” 하고 물으시는 말씀에 별안간 생각이 떠올라 여쭈는지라. “세계에 비할 수 없는 물중지대(物衆地大)와 예락문물(禮樂文物)의 대중화(大中華)의 산하(山河)와 백성이 이적(夷狄..오랑캐)의 칭호를 받는 청(淸)에게 정복되었으니 대중화에 어찌 원한이 없겠나이까. 이제 그 국토를 회복하게 하심이 옳으리라 생각하나이다.” 증산성사께서 무릎을 치시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재판을 올바르게 하였도다. 이 처결로써 중국이 회복하리라” 하시니라. 원일은 중국의 해원공사에만 치중하시는가 하여 불평을 품기에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순망즉치한(脣亡則齒寒)이라 하듯이 중국이 편안하므로써 우리는 부흥하리라.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의 조공을 받아 왔으므로 이제 보은신은 우리에게 쫓아와서 영원한 복록을 주리니 소중화(小中華)가 곧 대중화(大中華)가 되리라.”일러주셨도다.


◐ 천여불취 반수기앙(天與不取 反受其殃); 하늘이 주는 것을 갖지 않으면 그로인한 화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 중국은 황제헌원으로부터 발원하여 찬란한 문명을 형성하며 5000년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나라이다. 증산께서 중국 해원공사를 보신 이후 청나라 황제 광서제가 붕어(崩御)하고, 광서제가 후사(後嗣)가 없자 동생 순친왕의 아들 부의(溥儀)가 1908년 겨우 세 살의 나이에 서태후(西太后, 1835~1908)의 지명으로 12대 청나라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광서제가 붕어(崩御)해 그에게 응기해 있던 황극신(皇極神)이 대한제국으로 옮겨왔으므로 황제로서의 기운은 상실된 것이다. 부의(溥儀)는 결국 신해년(辛亥年,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辛亥革命)에 의해 1912년 여섯 살에 황제에서 퇴위되었다. 이로써 청나라는 멸망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황제국으로서 옥황상제님(강 신농씨=보은신)과 대두목(황제헌원=해원신)이 탄강하는 나라이다.『운수는 열려도 자신이 감당치 못하면 본곳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혹,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기도 하리다. 잘 믿을 지어다』(교법 2장 38절)내용이다. 하늘이 내려준 복록과 인간완성의 길을 알면서도 나태하여 그것을 받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기의 운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 물중지대(物衆地大); 나는 물건(物件)이 많고 지역(地域)이 또한 넓음을 말한다.

※ 순망즉치한(脣亡卽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린 것이니 중국이 편안하고 부흥하므로 우리나라가 편안하리라고 하셨다. 중국은 우리 이웃의 대륙 국가로써 풍부한 물적,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증산께서는 우리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중국의 원(寃)을 풀어 안정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조공을 받아 왔으므로 이제 報恩神(보은신)은 우리나라에 보은하게 되므로 이것을 되돌려 받게 되는 이치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해원을 하는 것이다.

※ 禮樂文物(예락문물) ; 예의, 예술, 문명의 물건을 말한다.

                                                                            

19. 종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일본 사람이 조선에 있는 만고 역신(逆神)을 거느리고 역사를 하니라. 이조개국이래 벼슬을 한 자는 다 정(鄭)씨를 생각하였으니 이것이 곧 두 마음이라. 남의 신하로서 이심을 품으면 그것이 곧 역신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역신이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들도 역신인데 어찌 모든 극악을 행할 때에 역적의 칭호를 붙여서 역신을 학대하느뇨. 이러므로써 저희들이 일본 사람을 보면 죄 지은 자와 같이 두려워하니라”고 말씀하셨다.


20. 또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공우에게 “태인 살포정 뒤에 호승예불(胡僧禮佛)을 써 주리니 역군(役軍)을 먹일만한 술을 많이 빚어 넣으라” 이르시니라. 공우가 이르신 대로 하니라. 그 후에 증산성사께서 “장사를 지내 주리라”고 말씀하시고 종도들과 함께 술을 잡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증산성사께서 “지금은 천지에 수기가 돌지 아니하여 묘를 써도 발음이 되지 않으리라. 이후에 수기가 돌 때에 땅기운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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