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公事) 1장
1. 시속에 말하는 개벽장은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비겁에 쌓인 신명과 창생을 건지는 개벽장(開闢長)을 말함이니라. 증산성사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신 신축(辛丑)년 겨울에 창문에 종이를 바르지 않고 부엌에 불을 지피지 않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음식을 전폐하고 아흐렛동안 천지공사를 시작하셨도다. 이 동안에 뜰에 벼를 말려도 새가 날아들지 못하고 사람들이 집 앞으로 통행하기를 어려워하였도다.
2. 증산성사께서 이듬해 임인년(1902년) 사 월에 김형렬의 집에서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이 때 증산성사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따라서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느니라. 그것을 비유컨대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 할지라도 자식이 얻어 쓰려면 쓸 때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불안하여 살기란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 하시고 “너는 나를 믿고 힘을 다하라”고 분부하셨도다.
◐ 증산성사께서 선천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대 미증유의 법리로써 전혀 새롭게 세상을 여시는 개벽(開闢)을 한다고 하신 것이다. 즉 증산성사께서 행하시는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요, 원래 도수에 정해진 것도 아니요, 운수에 정해져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증산성사에 의해 지어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정산께서 짜놓은 도의 법방을 계승함도 아니고 전무후무한 새로운 법방을 오직 再生身(재생신)으로 다시 오는 증산성사에 의해 짜여 지는 법방이다. 증산성사께서는 인세에 再生身(재생신)으로 강림하시어 상생(相生)의 도(道)를 세우고, 이 상생의 도(道)로써 후천을 열어 조화롭고, 괴로움이 없는, 신선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세워서 진멸지경에 처한 세계의 창생들을 건진다고 하셨다. 이러한 해원공사를 행함에 있어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神道)로부터 그 원(寃)을 풀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신(神)이 뜻한 바가 있어 인세에 왔으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원이 맺혔으므로 도수를 굳건히 정하여 원이 맺힌 신(神)들의 원을 풀고 서로 조화시키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는 저절로 조화롭게 풀려갈 것이니 이것이 천 • 지 • 인 삼계공사라고 하시고, 그 중에 인간계를 다스렸던 명부(冥府)의 신명을 조화하는 명부공사를 제일 먼저 착수하셨다.
3. 증산성사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에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
4. 증산성사께서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수시 수의로 행하셨느니라. 쏟아지는 큰 비를 걷히게 하시려면 종도들에 명하여 화로에 불덩이를 두르게도 하시고 술잔을 두르게도 하시며 말씀으로도 하시고 그 밖에 풍우 상설 뇌전을 일으키는 천계대권을 행하실 때나 그 외에서도 일정한 법이 없었도다.
5.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으니 명부공사가 종결되면 온 세상일이 해결되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뒤부터 증산성사께서 날마다 종이에 글을 쓰시고는 그것을 불사르셨도다.
6. 공사에 때로는 주육과 단술이 쓰이고 증산성사께서 여러 종도들과 함께 그것을 잡수시기도 하셨도다.
7. 증산성사께서 김형렬의 집에서 그의 시종을 받아 명부공사를 행하시니라. 증산성사께서 형렬에게 “조선명부(朝鮮冥府)를 전 명숙(全明淑)으로, 청국명부(淸國冥府)를 김 일부(金一夫)로, 일본명부(日本冥府)를 최 수운(崔水雲)으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노라”고 말씀하시고 곧 “하룻밤 사이에 대세가 돌려 잡히리라”고 말씀을 잇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8. 증산성사께서 임인년(1902년) 가을 어느 날에 김형렬에게 “풀을 한 곳에 쌓고 쇠꼬리 한 개를 금구군 용암리(金溝郡 龍岩里)에서 구하여 오게 하고 또 술을 사오고 그 쌓아 놓은 풀에 불을 지피고 거기에 쇠꼬리를 두어 번 둘러내라”고 이르시고 다시 형렬에게 “태양을 보라”고 말씀하시니라. 형렬이 햇무리가 나타났음을 아뢰이니라. 그 말을 증산성사께서 들으시고 “이제 천하의 형세가 마치 종기를 앓음과 같으므로 내가 그 종기를 파하였노라” 하시고 형렬과 술을 드시었도다.
9. 증산성사께서 어느 날 종도들에게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니라. 천지신명이 모여 증산성사가 아니면 천지를 바로 잡을 수 없다 하므로 괴롭기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고 말씀하셨도다.
10. 증산께서 계묘년(1903년) 정월에 날마다 백지 두서너 장에 글을 쓰거나 또는 그림(府)을 그려 손이나 무우에 먹물을 묻혀 그것들에 찍고 불사르셨도다. 그 뜻을 종도들이 여쭈어 물으니 “그것은 천지공사에 신명을 부르는 부호이노라”고 알려주셨도다.
11. 증산성사께서 어느 날 종도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었도다. 이후에 일용 백물이 모두 핍절하여 살아 나갈 수 없게 되리니 이제 뜯어고치지 못하면 안 되느니라” 하시고 사흘 동안 공사를 보셨도다. 증산성사께서 공사를 끝내시고 가라사대 “간신히 연명은 되어 나가게 하였으되 장정은 배를 채우지 못하여 배고프다는 소리가 구천에 달하리라” 하셨도다.
12. 증산성사께서 김병욱에게 “이제 국세가 날로 기울어 정부는 매사를 외국인에게 의지하게 됨에 따라 당파가 분립하여 주의 주장을 달리하고 또는 일본과 친선을 맺고 또는 노국에 접근하니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느냐”고 물으시니 그가 “인종의 차별과 동서의 구별로 인하여 일본과 친함이 옳을까 하나이다”고 증산성사께 대답하니 증산성사께서 “그대의 말이 과연 옳도다” 하시고 서양세력을 물리치고자 신명공사를 행하셨도다.
13. 이제 동양(東洋)형세가 그 존망의 급박함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있으므로 증산성사께서 세력이 서양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공사를 행하셨도다.
14. 증산성사께서 을사년(1905년)에 함열에 계실 때이니라. 형렬을 비롯한 종도들을 거느리고 익산군 만중리(益山郡 萬中里) 정춘심의 집에 가셔서 춘심을 명하사 선제를 지내리니 쇠머리 한 개를 사오게 하고 백지 한 권을 길이로 잘라 풀로 이어 붙이고 절반을 말아 두 덩이로 만들고 한 덩어리씩 각각 그릇에 담아두셨도다. 증산성사께서 밤중에 앞 창문에 두 구멍을 뚫고 쇠머리를 삶아서 문 앞에 놓고 형렬과 광찬으로 하여금 문 밖에 나가서 종이 덩어리를 하나씩 풀어서 창구멍으로 들여보내게 하시고 문안에서는 종이 끝을 다시 말으시더니 종이 덩어리가 다 풀리니라. 별안간 천둥과 같은 기적소리가 터지니라. 이 소리에 외인들도 놀랐도다.
15. 그리고 증산성사께서 정성백에게 젖은 나무 한 짐을 부엌에 지피게 하고 연기를 기선 연통의 그것과 같이 일으키게 하시고 “닻줄을 풀었으니 이제 다시 닻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자 별안간 방에 있던 종도들이 모두 현기증을 일으켜 혹자는 어지럽고 혹자는 구토하고 나머지 종도는 정신을 잃었도다. 이 공사에 참여한 종도는 소진섭(蘇鎭燮), 김덕유(金德裕), 김광찬(金光贊), 김형렬(金亨烈), 김갑칠(金甲七), 그리고 정성백(鄭成伯)과 그의 가족들이었도다. 덕유는 문밖에서 쓰러져 설사를 하고 성백의 가족은 모두 내실에서 쓰러지고 갑칠은 의식을 잃고 숨을 잘 쉬지 못하는지라. 이를 보시고 증산성사께서 친히 청수를 갑칠의 입에 넣어 주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니 바로 그는 깨어 나니라. 차례 차례로 종도들과 가족의 얼굴에 청수를 뿌리거나 마시게 하시니 그들이 모두 기운을 되찾으니라. 덕유는 폐병의 중기에 있었던 몸이었으나 이 일을 겪은 후부터 그 증세가 없어졌도다. 이것은 무슨 공사인지 아무도 모르나 진묵(震黙)의 초혼이란 말이 있도다.
16. 병오년(1906년) 정월 초사흘에 김형렬과 김성환의 부자와 김보경의 부자와 김광찬의 숙질이 동곡에서 증산성사를 시좌하고 증산성사의 명하신 대로 하루 동안 말도 아니하고 담배도 끊고 있을 때 증산성사께서 이틀 후에 여러 종도를 둘러앉히고 당부하시기를 “오늘 호소신이 올 것이니 너희는 웃지 말라. 만일 너희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웃으면 그 신명이 공사를 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것이고 그가 한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지 모를 일이니 깊이 명심하고 주의하라.” 종도들은 깊이 명심하고 조심하더니 갑자기 성백이 큰 웃음을 터뜨리니 모두 따라 웃은지라. 그날 오후에 성백은 별안간 오한을 일으켜 심히 고통 하더니 사흘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노라니 증산성사께서 성백을 앞에 눕히고 글 한 절을 읽으시더니 그가 바로 쾌유하였도다. 증산성사께서 날마다 백지에 그림 같은 약도와 글자를 써서 불사르셨도다.
17. 김광찬, 신원일, 정성백, 김선경, 김보경, 김갑칠, 김봉규등 여러 종도들이 이월 그믐에 동곡에 모였느니라. 다음 달 이튿날 증산성사께서 공사를 보시기 위하여 서울로 떠나시면서 전함은 순창(淳昌)으로 회항하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키라고 이르시고 각기 자기의 소원을 종이에 기록하라고 모여 있는 종도들에게 명하시니 그들이 소원을 종이에 적어 증산성사께 바치니 증산성사께서 그 종이에 안경을 싸시고 남기, 갑칠, 성백, 병선, 광찬을 데리고 군항(群港)으로 가서 기선을 타기로 하시고 남은 사람은 대전(大田)에서 기차를 타라고 이르신 후에 이것을 수륙병진이라고 이르셨도다. 그리고 증산께서 원일에게 “너는 입경하는 날로 먼저 종이에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고 정서하여 남대문에 붙이라”고 명하셨도다. 원일은 곧 여러 사람과 함께 대전으로 떠났도다.
◐ 증산성사께서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 공사를 보시기 위해 동곡에서 서울로 떠나셨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공사를 보신 것은 [예시 46절]에서 보면 ‘법(法)이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萬方)에 펼쳐 나가는 것이므로……’라고 하셨다.
법(法)은 진법(眞法)으로써 옥황상제님의 정체가 밝혀져 모셔져야 진법(眞法)이 나오는 것이다. 이 眞法(진법)이 서울로부터 세계만방으로 펼쳐지므로 서울로 올라가는 공사를 보신 것이다. 서울은 도읍(都邑)인데, 도자(都字)는 도읍 도자로써 천자소거(天子所居)라 하였다. 즉 천자가 계신 곳이란 뜻이다. 천자(天子)는 하느님아들(대두목)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 천자(天子)로서 서울에 입경(入京)하는 공사를 행하신 것이다. 조정산께서도 천자(天子)로서 서울에 입경(入京)하는 공사를 행하셨다. ([교운 2장 39절] 조정산성사께서 태인과 서울 도염동에 오르내리시다가 겨울에 태인에 머무셨도다. 서울에서의 공부는 그 내용이 알려져 있지 않았도다.) 박우당께서도 천자(天子)로서 서울에 입경(入京)하셨다. ([91년 2월 12일 훈시]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란 수륙병진 도수를 보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부산에서 나왔을 때 서울로 오지 않았느냐. 배가 꼭 바다의 배를 의미함은 아니다. 모든 법(法)은 서울에서 만방으로 나간다 하였다.) 이제 옥황상제님의 정체가 밝혀져 진법이 정해졌다. 이 진법(眞法)이 세계만방으로 펼쳐져 나가기 위해서 포항 구룡포(龜龍浦)에서 서울(京)에 입경(入京)하는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도수로 그것이 바로 대두목께서 옥황상제님으로부터 제생관장을 命(명)받고 구룡포(말점도)에 들어갔다가 49일간 공부하고 서울로 입성하여 천자부해상도수를 끝낸 것이다. 그래서 眞人(진인)의 眞法(진법)이 서울로부터 세계만방으로 뻗어 나간다고 하신 것이다.
• 증산성사께서 서울로 떠나시면서, ‘전함(戰艦)은 순창(淳昌)으로 회항(回港)하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키라’고 하셨다. 전함(戰艦)이란 전투함이다. 그러므로 천자(天子=대두목)가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서울로 입경(入京)하는 배는 전투함이라는 것이다. 전함이라 하여 바다의 배를 의미함이 아니라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올라가는 진법도인(眞法道人)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로 입경할 때는 마(魔)가 발동하여 갖은 풍파가 일어나므로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여야 한다. 이것을 두고 [채지가] ‘뱃노래’에서는,
범피중류 띄워놓니 춘수선녀 천상좌라
걸주풍파 일어난들 이배파산 어이하리
라고 하여 많은 마(魔)의 발동이 있음을 시사(示唆)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투 자세를 갖추라는 말씀이시다. 그리고 순창(淳昌)으로 회항(回港)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순창으로 돌아온다는 말씀으로 순창은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 있다.
[예시 28절]에서 보면,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을 데리고 계실 때 ‘현하 대세가 오선위기(五仙圍碁)와 같으니 두 신선이 판을 대하고 있느니라.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는데 한 신선은 주인이라 어느 편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다만 대접할 일만 맡았으니 연사에만 큰 흠이 없이 대접만 빠지지 아니하면 주인의 책임은 다한 것이로다. 바둑이 끝나면 판과 바둑돌은 주인에게 돌려지리니 옛날 한 고조(漢高祖)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으되 우리나라는 좌상(座上)에서 득 천하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옥황상제님을 서울 경자(京字) 가진 서울에 모시고 나면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올라갔던 진법도인(眞法道人)들이 진법을 세계만방으로 펼쳐 나가서 오선위기의 도수와 같이 도인들에 의해서 득천하(得天下)하는 도수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기 종이에 소원을 적어 증산성사께 바치니 그 종이에 안경을 싸셨다. 안경은 모든 상황을 똑똑히 잘 보자는 것이며, 안경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므로,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경이 믿음의 대상이듯이 소원을 성취하려면 옥황상제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가져야 함을 뜻한다.
•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을 데리고 군항(群港)에서 기선(汽船)을 타고 올라가시는데, 군항(群港)은 군산항(群山港)이다. 기선(汽船)을 타고 올라가신다. 기(汽)는 (水) + 氣, 즉 수기(水氣)이다. 그러므로 기선이라는 실질적인 배를 말함이 아닌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이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올라감을 의미한다. 또 남은 사람은 대전(大田)에서 기차(汽車)를 타고 올라가는데 대전(大田)이란 궁궁(弓弓)의 이치로 십승(十勝)을 의미한다. 즉 ‘十’은 경위를 말하며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경위와 이치가 있는 곳이다. 옥황상제님 모시는 경위와 이치가 있는 사람이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서울로 입경하는데, 기차(汽車)를 타고 올라가므로 역시 실제적인 기차를 말함이 아닌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이 옥황상제님 모시는 경위를 가지고 올라감을 의미한다. 기선(汽船)으로 가고 기차(汽車)로 가므로 수륙병진(水陸竝進) 도수이다.
•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을 남대문에 붙이라’고 하셨다. 천자(天子=하느님아들)께서 바다(海) 위를 떠서 올라간다는 것이다. 바다(海)는 물이고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을 뜻한다. 즉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이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남대문에 글을 붙인 것은, 남(南)은 여름세상이므로 옥황상제님께서 여름 세상에 오셔서 가을 세상의 후천 오만 년 운을 열어 주셨음을 알리라는 것이다.
18. 증산성사께서 군항으로 떠나시기 전에 병선에게 “영세화장건곤위 대방일월간태궁(永世花長乾坤位 大方日月艮兌宮)을 외우라”고 명하시니라. 군항에서 종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바람을 걷고 감이 옳으냐 놓고 감이 옳으냐.” 광찬이 “놓고 가시는 것이 옳은가 생각하나이다”고 대답하거늘 증산께서 다시 종도들에게 오매 다섯 개씩을 준비하게 하시고 배에 오르시니 종도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항해중 바람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심하게 요동하는도다. 종도들이 멀미로 심하게 고통하므로 증산께서 “각자가 오매를 입에 물라”고 이르시고 갑칠로 하여금 종이에 싼 안경을 갑판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바다 위에 던지게 하였으되 그가 북쪽을 분간하지 못하여 망설이고 있는지라. 증산성사께서 다시 갑칠을 불러 들여 “왜 얼른 던지지 못하느냐”고 꾸짖으시니 그는 그대로 아뢰었도다. 증산께서 “번개 치는 곳에 던지라”고 이르시니 그는 다시 갑판에 올라가니 말씀이 계신 대로 한 쪽에서 번개가 치는 지라. 그 곳을 향하여 안경을 던졌도다.
◐ 병선에게 ‘영세화장건곤위 대방일월간태궁(永世花長乾坤位 大方日月艮兌宮)을 외우라’고 명하셨다. 병선에게 외우게 하신 것은 병선(兵船)의 음(音)을 빌어 공사를 보신 것이다. 병선(兵船)은 전함(戰艦)이다. 이 배가 나아가면 영원한 후천 문명의 꽃이 장구하고, 건곤(乾坤)이 바로 서서 후천 정역시대가 열리고, 세계만방(萬放)에 음양(日月)이 합덕 되며, 선천은 진동태서(震東兌西)였으나 후천은 간동태서(艮東兌西)로써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배가 나아감에 바람을 놓고 가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입성(入城)시에는 많은 풍파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파를 대비하여 오매 다섯 개씩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오매는 신경(神經) 안정제이다. 즉 신명(神明)을 말함이다. ‘오매 다섯 개’라고 하심은 다섯은 중앙 오십토이고 믿을 신(信), 즉 五仙(오선)의 다섯 번째 대두목을 믿으라는 것이다. 또 寤寐(오매)는 잠에서 깨나라 이다. 즉 고정관념을 버리고 깨우치라는 말이다. 배가 심하게 요동하여 멀미로 심히 고통 하는 것은 입성시에 도인들이 많은 풍파를 겪으며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인데 이 때 ‘오매를 입에 물라’ 하심은 五仙(오선)의 다섯 번째 대두목을 믿고 주문을 하면 안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원을 적은 종이에 안경을 싸서 북쪽을 향해 던지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경이 없이는 안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경이 있으면 보이므로 안경이 믿음의 대상이다. 소원을 적은 종이로 싼 안경을 북쪽으로 던지라고 하였는데 북쪽은 1 • 6 水이므로 물의 이치로 온 대두목을 찾으라는 것이다. 대두목을 찾으면 옥황상제님을 찾아 모시고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북쪽을 분간치 못한다는 것은 1 • 6 水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을 분간치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 번개 치는 곳으로 던지라고 하셨다. 이 상황에서 번갯불은 등대와 같다. 등대는 운항하는 배의 길잡이다. 등대는 바로 증산성사의 말씀이다. 전경의 이치와 경위로 보라는 말씀이다. 안경을 던졌다 함은 믿음과 이치를 통했을 때 몸과 마음을 받칠 수 있다는 것이다.
19. 이튿날 배가 인천에 닿으니 일행은 배에서 내려 기차로 바꿔 타고 서울에 이르니 광찬이 마중 나와 증산성사를 황교(黃橋)에 사는 그의 종제 김영선(金永善)의 집으로 안내하였는데 원일은 남대문에 글을 써 붙이고 먼저 와 있었도다.
◐ ‘배가 인천에 닿으니’라고 하는 것은 인천은 배가 들어오는 국제항이고, 또 인천은 국제공항이 있으므로 전 세계의 관문인 것이다. 즉 1만2천 도통군자들이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천하에 도(道)를 전하러 드나들며, 전 세계의 물류가 드나드는 서울(京)의 첫 관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모든 창생들이 옥황상제님을 찾으러 이 관문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기차로 바꿔 타고 서울에 이르렀다 함은 새로운 기운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며, 서울에 이르렀다 하심은 서울에 모셔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법이 세계만방으로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황교(黃僑)는 중앙 오십 토의 다리이므로 세계의 중심에서 모든 사람의 환영을 받는다는 것이다. ‘남대문에 글을 써 붙이고 왔다’ 함은 남대문은 여름의 큰 관문이란 뜻으로 여름 세상에 옥황상제님께서 강림하셨음을 알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후천 가을 세상을 열어놓으셨으므로 후천 가을 세상에 영원히 모셔진다는 것이다.
20. 증산성사께서 십여일 동안 서울에 계시면서 여러 공사를 보셨도다. 영선의 이웃에 사는 오 의관(吳議官)이 삼년전부터 해솟병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매우 신고하고 있던 터에 증산성사께서 신성하심을 전하여 듣고 증산성사를 뵈옵기를 영선에게 애원하기에 영선이 그것을 증산성사께 전하니 증산성사께서 의관을 불러 글을 써주시고 “이것을 그대가 자는 방에 간수하여 두라” 이르시니 그는 황송하게 여기고 이르신 대로 행하였느니라. 그는 그날부터 잠에 들 수 있더니 얼마 후에 해소도 그쳐 기뻐하도다.
◐ 이제 모든 법은 서울(京)에서부터 세계만방으로 나가면 만국의원이 되는 것이다. 병들고, 가난하고, 약한 천하창생들을 구제하여 후천 선경을 건설해 나가니, 천하창생들이 옥황상제님의 무량하신 덕화를 입어 기뻐하는 것이다. 글을 써주시고 ‘이것을 그대가 자는 방에 간수하여 두라’는 것은 태을주를 써주셨는데 앞으로 집집마다 태을주를 하게 된다는 것이며, 태을주를 하게 되면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다.
21. 갑칠은 전주를 떠날 때부터 설사하는 것을 참다가 증산성사께 아뢰니 증산성사께서 “이로부터 설사가 멎고 구미가 돋으리라”고 말씀하시고 크게 웃으시니라. 갑칠이 증산성사의 신성에 대한 확신이 설사를 멎게 하였느니라. 증산성사께서 서울에서 여러 공사를 보시던 어느 날 해솟병에서 제생(濟生)된 오 의관의 아내가 다년간의 지병인 청맹으로 앞을 잘 못 보는지라. 그 여인이 또한 병을 고쳐 주시기를 애원하거늘 증산성사께서 그 환자의 창문 앞에 이르러 환자와 마주 향하여 서시고 양산대로 땅을 그어 돌리신 후 돌아오시더니 이로부터 눈이 곧 밝아졌으니 오 의관의 부부가 크게 감읍하고 지성으로 증산성사를 공양하였도다.
22. 증산성사께서 어느 날 벽력표를 땅에 묻고 나서 종도들에게 “모두들 제각기 흩어져서 돌아가라. 십년후에 다시 만나리라. 십 년도 십 년이요. 이십 년도 십 년이요. 삼십 년도 십 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여쭈기를 “사십 년은 십 년이 아니 오니까.” 이에 증산성사께서 “사십년도 십 년이나 그것을 넘지는 않으리라”고 말씀 하시고 모두 돌려보내시니라. 증산께서는 오직 광찬만을 데리고 며칠 더 머무시더니 광찬에게 돈 백 냥을 주시면서 “네가 먼저 만경(萬頃)에 가서 나의 통지를 기다리라” 이르셨도다.
※ 만경(萬頃)이란 호남가에 잘 나와 있다.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고향(光州故鄕)을 보려하고
제주어선(濟州漁船)을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 갈 제
흥양(興陽)에 돋은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있고,
고산(高山)의 아침 안개 영암(靈岩)에 둘러있네.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 예악(聖君 禮樂)을 장흥(長興)하니
삼태육경(三台六卿)은 순천심(順天心)이요.
방백수령(方伯守令)은 진안(鎭安)군이라.
고창성(高敞城)에 높이 앉아 나주풍경(羅州風景) 바라보니
만장운봉(萬丈雲峰)은 높이 솟아 층층(層層)한 익산(益山)이요.
백리 담양(白里潭陽) 흐르는 물은 구부구부 만경(萬頃)인데,
용담(龍潭)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진안처(鎭安處)며,
능주(綾州)의 붉은 꽃은 곳곳마다 금산(錦山)인가.
남원(南原)에 봄이 들어 각색화초(各色花草) 무장(茂長)하니
나무 나무 임실(任實)이요. 가지 가지 옥과(玉果)로다.
풍속(風俗)은 화순(和順)이요. 인심(人心)은 함열(咸悅)인데
이초(異草)는 무주(茂朱)하고, 서기(瑞氣)는 영광(靈光)이라.
창평(昌平)한 좋은 시절 무안(務安)을 일 삼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은 낙안(樂安)이요.
부자형제(父子兄弟) 동복(同福)이로구나
강진(康津)의 상가선(商賈船)은 진도(珍島)로 건너갈제
금구(金溝)의 금(金)을 일어 쌓인 게 김제(金堤)로다.
농사(農事)하는 옥구백성(沃溝百姓) 임피사의(臨陂蓑依) 둘러입고
정읍(井邑)의 정전법(井田法)은 납세인심(納稅人心)순창(淳昌)이라.
고부(古阜) 청청(靑靑) 양유읍(楊柳邑)은
광양(光陽) 춘색(春色)이 팔도에 왔네.
곡성(谷城)의 묻힌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 제가(齊家) 이 아닌가?
호남(湖南)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全州) 백성(百姓)거느리고
장성(長城)을 멀리 쌓고 장수(長水)를 돌고 돌아
여산 석(礪山 石)에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 꽂았으니
삼천리(三千里) 좋은 경(景)은 호남(湖南)이 으뜸이라.
거어드렁 거리고 살아보세.
* 이 노래의 가사를 지은 사람에 대해 국악보(國樂譜)에는 이 서구(李書九1754∼1825)가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다른 고을처럼 제 고장에 대한 노래가 없는 것을 아쉬워 하여 지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신재효(申在孝) 계통에서는 신(申)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호남가가 함평에서 머리를 잡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있으나 다음과 같이 귀결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함평(咸平)이라는 이름이 호남에서 제일 좋기 때문인 것이다. "咸"은 모든 것이 가득차고 원숙함을 뜻하며 "平"은 평탄할 평, 바를평, 다스릴 평, 화할 평,고를 평, 쉬울 평, 거듭 풍년들 평 등의 뜻을 가지고 있고 제왕(帝王)의 가장 보람된 꿈인 태평성세를 내포하고 있다. 모든 것이 두루 화평 스럽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천지(天地),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없고 이러한 속에서 늙은 노인네가 빛고을(光州) 고향의 길을 떠나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함평이 맨 먼저 노래되었을 것이다.
23. 四월 어느 날 형렬이 증산성사로부터 말씀을 들으니라.“내가 이제 화둔(火遁)을 쓰리니 너의 집에 화재가 나면 온 동리가 다 탈 것이요. 그 불기가 커져서 세계민생에게 큰 화를 끼치게 될지니라.” 형렬이 말씀대로 앞날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놀라며 가족을 단속하여 종일토록 성냥과 화롯불에 마음을 쏟게 하였도다.
24. 증산께서 이 달 그믐에 동곡으로 돌아오신 다음날 형렬을 데리고 김광찬이 가있는 만경에 가셨을 때에 최익현이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키니 때는 모를 심는 시기이나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인심이 흉흉하여 사람들이 직업에 안착치 못하고 의병에 들어가는 자가 날로 증가하여 더욱 의병의 군세가 왕성하여지는지라. 증산께서 수일간 만경에 머무시면서 비를 흡족하게 내리게 하시니 비로소 인심이 돌아가 농사에 종사하는 자가 날로 늘어나더라. 이 때 최익현은 의병의 갑작스러운 약세로 순창에서 체포 되니라. 그가 체포된 소식을 들으시고 증산성사께서는 만경에서 익산 만중리 정 춘심의 집으로 떠나시며 가라사대 “최익현의 거사로써 천지신명이 크게 움직인 것은 오로지 그 혈성의 감동에 인함이나 그의 재질이 대사를 감당치 못할 것이고 한재까지 겹쳤으니 무고한 생민의 생명만을 잃을 것이니라. 때는 실로 흥망의 기로이라 의병을 거두고 민족의 활로를 열었느니라”고 하셨도다.
25. 증산성사께서 종도와 함께 계실 때 김광찬에게 “네가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아느냐”고 물으시니 그가 “촌 양반으로 아나이다”고 대답하니라. 다시 증산성사께서 물으시기를 “촌 양반은 너를 어떠한 사람이라 할 것이냐.”광찬이 여쭈니라. “읍내 아전이라 할 것이외다.”그의 말을 들으시고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촌 양반은 읍내의 아전을 아전놈이라 하고 아전은 촌 양반을 촌 양반놈이라 하나니 나와 너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해원하리라” 하셨도다.
26. 증산성사께서 개고기를 상등인의 고기로써 즐기셨도다. 종도가 그 연유를 묻기에 증산성사께서 “이 고기는 천지 망량(魍魎)이 즐기니 선천에서는 도가가 기(忌)하였으므로 망량이 응치 아니하였나니라”고 말씀하셨도다.
27. 증산성사께서 순창 농암(籠岩) 박장근의 집에 가셔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곳에 큰 기운이 묻혀 있으니 이제 그 기운을 내가 풀어 쓰리라. 전명숙과 최익현이 있었으되 그 기운을 쓸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여 동학이 성공하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도다.
28. 하루는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수련케 하시고 그들에게 “일곱 고을 곡식이면 양식이 넉넉하겠느냐”고 물으시니 종도들이 말하기를 “쓰기에 달렸나이다”고 아뢰니 증산성사께서 다시 가라사대 “그렇다 할지라도 곡간이 찼다 비었다 하면 안 될 것이니 용지불갈(用之不渴)하여야 하리라.”종도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아시고 증산성사께서 백지에 저수지와 물도랑의 도면을 그려 불사르시면서 가르치셨도다. “이 곳이 운산(雲山)이라. 운암강(雲岩江)물은 김제만경(金堤萬頃) 들판으로 돌려도 하류에서는 원망이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는 대한불갈(大旱不渴)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강태공(姜太公)은 제(齊)나라 한 고을에 흉년을 없앴다고 하나 나는 전북(全北) 칠읍(七邑)에 흉년을 없애리라” 하셨도다.
◐ 용지불갈(用之不渴)은 쓰고 또 써도 마르지 않는다는 뜻이고 취지무궁(取之無窮)은 취하고 또 취해도 무궁하여 다함이 없다는 뜻으로 풍요를 상징하는 경구이다.
29. 증산성사께서 어느 날 종도들이 “중천신은 후사를 못 둔 신명이니라. 그러므로 중천신은 의탁할 곳을 두지 못하여 황천신으로부터 물과 밥을 얻어먹고 왔기에 원한을 품고 있었느니라. 이제 그 신이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이로부터는 중천신에게 복을 주어 원한을 없게 하려하노라.”는 말씀을 증산성사로부터 들었도다.
30. 증산성사께서 ‘하도낙서 지인지감 김형렬, 출장입상 김광찬, 기연미연 최내경, 평생불변 안내성, 만사불성 김송환,(河圖洛書 知人之鑑 金亨烈, 出將入相 金光贊 旣然未然 崔乃敬, 平生不變 安乃成, 萬事不成 金松煥)’이라 쓰셔서 불사르시고 날이 저물었을 때 쌀 열 말씩을 종도들에게 나누어서 덕찬과 형렬의 집에 보내셨도다.
◐ 하도와 낙서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김 형렬이가 본보기요, 나가면 장군이요 들어오면 재상인 사람은 김 광찬이로다. 기연미연(긴가 민가 의심 하는것) 하는 사람은 최 내경이고, 평생 변함이 없는 사람은 안 내성이며, 모든 일을 이루지 못할 사람은 김 송환이로다.
31. 또 가라사대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에서는 불을 때지 않고서도 밥을 지을 것이고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서도 농사를 지을 것이며 도인의 집집마다 등대 한 개씩 세워지리니 온 동리가 햇빛과 같이 밝아지리라. 전등은 그 표본에 지나지 않도다. 문고리나 옷걸이도 황금으로 만들어질 것이고 금 당혜를 신으리라” 하셨도다.
32. 증산성사께서 “이제는 해원시대니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 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고 박공우에게 말씀하시니라. 이 때 공우가 증산성사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나는데 두 노파가 증산성사의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기에 증산성사께서 길을 비켜 외면하셨도다.
33. 또 공우를 데리고 정읍으로 향하실 때 증산성사께서 “마음으로 천문지리를 찾아보라” 하시기에 공우가 머리를 숙여서 풍운조화를 생각하니라. 증산성사께서 별안간 공우를 돌아보시며 “그릇되게 생각하고 있으니 다시 찾아라.” 이르시니 그는 놀라서 어찌 할 바를 모르다가 그릇되게 생각한 것을 뉘우치니라. 그는 다시 천문지리를 마음으로 찾다가 정읍에 이르니라. 이날 밤에 증산성사께서 눈비가 내리는 것을 내다보시면서 공우에게 “너의 한 번 그릇된 생각으로써 천기가 한결 같지 못하다”고 책망하셨도다.
34. 하루는 종도들이 증산성사의 말씀을 쫓아 역대의 만고명장을 생각하면서 쓰고 있는데 경석이 증산성사께 “창업군주도 명장이라 하오리까”고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그러하니라” 말씀하시니라. 경석이 황제(黃帝)로부터 탕무(湯武) 태공(太公) 한고조(漢高祖)등을 차례로 열기하고 끝으로 전명숙을 써서 증산성사께 올리니 증산성사께서 그에게 “전명숙을 끝에 돌린 것은 어찌된 일이뇨”물으시니 경석이 “글을 왼쪽부터 보시면 전명숙이 수위가 되나이다”고 답하였도다. 증산성사께서 그 말을 시인하시고 종도들을 향하여 “전명숙은 만고명장이라. 백의 한사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를 움직였도다”고 일러주셨도다.
35. 증산성사께서 어느 날 경석에게 가라사대 “전에 네가 나의 말을 쫓았으나 오늘은 내가 너의 말을 쫓아서 공사를 처결하게 될 것인 바 묻는 대로 잘 생각하여 대답하라”고 이르시고 “서양 사람이 발명한 문명이기를 그대로 두어야 옳으냐 거둬야 옳으냐”고 다시 물으시니 경석이 “그대로 두어 이용함이 창생의 편의가 될까 하나이다”고 대답하니라. 그 말을 옳다고 이르시면서 “그들의 기계는 천국의 것을 본뜬 것이니라”고 말씀하시고 또 증산성사께서 여러가지를 물으신 다음 공사로 결정하셨도다.
36. 증산성사께서 앞날을 위하여 종도들을 격려하여 이르시니라. “바둑에서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라. 남이 모르는 공부를 깊이 많이 하여 두라. 이제 비록 장량(張良) 제갈(諸葛)이 쏟아져 나올지라도 어느 틈에 끼어 있었는지 모르리라. 선천개벽 이후부터 수한(水旱)과 난리의 겁재가 번갈아 끊임없이 이 세상을 진탕하여 왔으나 아직 병겁은 크게 없었나니 앞으로는 병겁이 온 세상을 뒤덮어 누리에게 참상을 입히되 거기에서 구해낼 방책이 없으리니 모든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중히 여기지 말고 의통을 잘 알아 두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봄으로부터 이 동토에서 다른 겁재는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남았으니 몸 돌이킬 여가가 없이 홍수가 밀려오듯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 바둑을 두는데 수(數)가 높은 사람이 이긴다는 뜻이다. 그 數(수)는 한 數(수)이다. 수(數)가 도(道)이며 이치(理致)를 말한다. 즉 이치가 밝은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水(수)의 이치를 알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남이 모르는 공부를 깊이 많이 하여 두라고 하신 것이다. 앞으로는 병겁이 온 세상을 뒤덮어 누리에게 참상을 입히되 거기에서 구해낼 방책이 없으리니 모든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중히 여기지 말고 의통(醫統)을 알아 두라고 하셨다.
[만법전] 대명가
오지제자는 일심으로 봉명하고 순일진심으로 의통을 잘 기억하라
수한도병의 겁재가 서로 치번하야 그칠 새 없이 인세를 진탕하나
아직 병겁은 크게 없었나니라 시운이 자래하야 천지가 회운당래에는 무섭고 두렵고 눈으로 볼 새 없고 입으로 말할 새 없고 귀로 들을 새 없고 약을 쓸 새 없고 권리로 부술 새 없고 기운도 당할 새 없고 크고 무서운 병겁이 전 세계를 맹습 할 때 몸 도리킬 여가 없고 홍수 밀듯 하리니 모든 기사 묘법을 다 버리고 의통을 잘 알아 두었다가 죽는 사람을 많이 살리라 인명을 많이 살리면 복록줄이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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