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간요법에 널리 사용되었던 물
고서(古書)를 살펴보면, 옛 선조들의 물에 대한 연구가 오히
려 첨단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연구를 능가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직접 몸으로 느끼면서 환자에게 실험하여 체득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의 물에 대한 연구를 보면, 우리 몸에 끼치는 물의 영향을 아주 상세히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생각으로는, 조상들의 물에 대한 연구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고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동의보감』에서, 조개껍질을 밝은 달빛에 비추어서 그것으로 받은 물인 방제수(方諸水)가 눈을 밝아지게 하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어린아이의 열과 목이 타는 것을 낫게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가진 현대과학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내용이다.
하지만 허준 선생이 효과도 없는 것을 『동의보감』에 실어 놓았겠는가?
거기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즉, 물이 가진 치유력은 그 속에 녹아 있는 산소와 미네랄 성분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물속에 담겨진 천지 대자연의 기운(氣運)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바로 위의 ‘방제수’ 같은 경우가 초과학적인 기(氣)의 원리에 의한 것으로, 이미 400여 년 전의 허준 선생은 대자연의 기운이 물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초과학적인 현상 또한 물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성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예로부터 일상에서 가장 애용되었던 물로는 정화수(井華水), 지장수(地漿水), 납설수(臘雪水) 등으로, 이것들은 주로 약 달이는 물이나 차 끓이는 물로 사용되었다.
조선조 궁중의 구전(口傳)인 『내시비전(內侍秘傳)』과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가 애용했던 ‘약차(藥茶)’ 달이는 법에 이러한 물을 사용한 예가 있다.
특히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지장수(地漿水)는 독풀이에 명약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황토 속에 들어 있는 각종 미네랄 성분이 인체의 독을 해독하는 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도홍경(陶弘景, 456~536년)이 저술한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註)』에는 ‘황토땅을 석 자 정도 파고 거기에 샘물을 부어 휘저은 후 한참 후 위에 뜬 맑은 지장수를 토장(土漿)이라 한다’고 쓰여 있다. 지장(地漿)이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에 처음 등장한다.
『신농본초경집주』에는 지장수가 갖가지 버섯의 독을 푼다고 했으며, 또한『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물고기, 짐승 고기, 과일, 야채, 약품, 버섯독의 모든 독풀이를 한다고 기록하였으니 지장수가 한방에서 해독제(解毒劑)로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왕실 주방에서는 봄철에는 짐승이나 물고기의 간을 먹지 않고, 여름에는 염통을 먹지 않고, 가을에는 폐를 먹지 않고, 겨울에는 콩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를 엄격히 지켰다. 그러나 무지한 서민들은 이를 어기고 섭취하여 중독돼 토사곽란이 일어나 죽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기도 했는데, 이때 지장수를 1~2되 마시게 하여 상극성 독기를 풀어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처럼 음식을 먹을 때 금기사항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땅에 떨어져 개미나 벌레가 꼬인 과일을 먹으면 몸이 상한다. 복숭아를 과식하면 열이 난다. 이럴 때에 목욕을 하면 발열하여 병이 난다.
귤이나 유자는 과식하면 임산부에 나쁘다. 오월단오에는 생야채 먹기를 삼간다. 쪽파 생파의 흰 밑동을 꿀과 함께 먹으면 생명이 위독하게 된다. 대추와 파뿌리를 같이 먹어도 병이 난다.
바로 위와 같은 금기사항을 어겨 생명이 위독해졌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지장수를 마시게 했으니, 지장수는 당시의 가장 중요한 비상 처방약이었던 것이다.
지장수를 마시는 방법은 끊여서 마시거나 또는 생수 대신 약제와 함께 달여서 복용했는데, 중국에서 처음으로 완비된 최고(最古)의 의학전서인 『천금방(千金方)』에는 ‘지장수는 오랜 시간 중탕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한편, 『매사집헌방』에도 ‘고기[肉]를 먹고 중독을 일으킬 때에 황토 3되를 물 5되에 풀어 펄펄 끊인 후 물을 가라앉히고 위에 뜬 맑은 물을 한 되 마시라’고 했다.
이처럼 지장수가 비상 처방약으로 널리 사용된 이유는 땅속의 대자연의 기운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장수에 포함된 게르마늄을 비롯한 풍부한 미네랄 성분이 갖고 있는 강력한 치유효능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보더라도 ‘좋은 물’은 생명을 살리는 약(藥)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울에 자주 내리는 눈 중에서도 동지(冬至) 후 세 번째 미일(未日)인 ‘납일(臘日)’에 내리는 눈을 납설(臘雪)이라 한다.
우리 선조들은 이날 눈이 내리면 ‘돈이 내린다’ 하여 빈 그릇을 모조리 동원하고 심지어는 이불보까지 마당에 깔고 눈을 받았다고 한다. 이 눈을 녹여 만든 물이 납설수(臘雪水)이다.
이미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눈[雪]이라는 것은 내리던 비가 찬 기운을 받아 뭉쳐서 된 것으로서, 육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하늘과 땅 사이의 정기(精氣)를 받았다고 했다.
이런 성질을 가진 눈 중에서도 동지 후 셋째 미(未)일인 납일에 내린 눈을 녹인 것이 납설수인데, 이것은 여러 가지 독을 푸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했다.
옛날 잘사는 집에서는 양(陽)독대와 함께, 음(陰)독대도 마련해 놓았다. 음독대는 별당 뒤 볕이 들지 않는 응달의 지하에 파묻은 장독대를 말한다.
바로 이 음독대에 납설수를 담아 놓고 사용했는데, 이 물로 술을 담그면 쉬지 않고, 차를 끓이면 맛이 좋으며, 약을 달이면 약효가 더 나고, 이 물로 담근 장으로 간을 맞춘 음식은 쉬지 않으며, 여름에 화채를 만들어 먹으면 더위도 타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봄에 오곡의 씨앗을 납설수에 담갔다가 논밭에 뿌리면 가뭄을 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납설수를 돗자리에 뿌려두면 파리, 벼룩, 빈대 등이 생기지 않는 살충수가 되고, 눈을 씻으면 눈에 핏발을 없애주는 안약수가 되었다. 또한 머리를 감으면 윤기가 더 나고, 얼굴을 씻으면 살결이 희어지면서 기미가 죽는 화장수라고 하였다.
옛 속담에 ‘섣달에 눈이 오지 않으면 시앗 바람이 분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납설수를 받지 못해 거칠어진 얼굴색 때문에 ‘부인들이 낭군을 잡아둘 수 없게 된다’ 해서 생긴 속담일 것이다. 이러한 납설수의 효능은 최근에 각광 받고 있는 육각수(六角水)와 비슷하여 깊이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조선조의 『왕실 양명술(王室 養命術)』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약석(藥石)과 약수(藥水)로 모든 병을 치료․예방하는 선술철학[仙道]이라 할 수 있으며, 결국 그 목적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위한 양생(養生)에 있었다.
그리고 지장수, 동향 납설수, 서향 납설수, 바다개흙, 쌀겨, 볏짚 삭은 물, 석류 등은 조선조 왕궁에 상주하던 궁녀들의 최고 미용소재 물질이었다.
통상 500여 명에 달했던 궁중 여인들은 몸을 예쁘게 가꾸기 위해, 뛰어난 해독효과를 가진 지장수나 납설수를 입속에 담았다가 상대방의 얼굴과 등, 엉덩이(볼기)에 뿌려주는 품앗 서비스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지장수나 납설수가 피부 속의 각종 불순물과 독소들을 배출시킴으로써 아름답고 탐스러운 피부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방제수, 지장수, 납설수 등은 우리 조상들이 민간요법으로 널리 사용하였는데, 이것들의 공통점은 ‘강력한 해독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해독기능은 이들 물속에 포함된 풍부한 산소와 미네랄 성분에 의해서, 그리고 거기에 담겨진 대자연의 맑은 기운에 의해서 발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물들이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여러 질병에 대한 치유․예방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이처럼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좋은 물이 강력한 치유효과를 가진 최고의 약(藥)이 됨을 알고 생활 속의 모든 질병에 널리 이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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