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순 전경 ★/●•―‥예 시

예시(豫示) 61 ~ 78 까지

고도인 2008. 7. 16. 17:22

예시(豫示) 61 ~ 78 까지

 

 

61. 이어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은 여동빈(呂洞賓)의 일과 같으니라. 그가 인간의 인연을 찾아서 장생술을 전하려고 빗장사로 변장하고 거리에서 ‘이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굽은 허리가 곧아지고 노구가 청춘이 되나니 이 빗값은 천 냥이로다’고 외치니 듣는 사람마다 허황하다 하여 따르는 사람이 없기에 그가 스스로 한 노구에게 시험하여 보이니 과연 말과 같은지라. 그제야 모든 사람이 서로 앞을 다투어 모여오니 승천하였느니라.”


62. 또 원평이 지금은 건너다보이나 훗날에는 건너다보이지 않을 때가 오리라. 그러나 또 다시 건너다보일 때가 있으리니 그 때가 되면 세상일이 가까워짐을 깨달을지어다.


63. 증산성사의 부친이 말년에 짚신을 삼아 호구를 하시는 어려운 생활을 하였도다. 그러던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짚신을 삼고 있는 부친을 가리켜 차꼬를 벗는 중이라고 말씀하셨도다.


64. 증산성사께서 객망리 본댁에 돌아와 계실 때에 가족들에게 매사불대자연래(每事不待自然來)라고 이르시고 성회(聖會 : 석환 생가 조부)의 집에 가셔서 영택(永澤 : 석환의 부친)에게 “장차 나를 대신하여 가사를 돌보라. 고목에 꽃이 피리라”고 이르시리라.


65. 속담에 짚으로 만든 계룡(鷄龍)이라고 하는데 세상 사람은 올바로 일러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도다.



◐ 鷄龍(계룡)이란? 鷄(계)는 닭 계인데 닭 酉(유)와 뜻이 같다. 酉(유)는 역학에서 서쪽을 말한다. 그래서 鷄(계)는 西神司命(서신사명)으로 오시는 진인 즉 대두목을 말한다.

[참고]; 격암유록 송가전

誰知烏之雌雄으로 千鷄之中有一鳳에      

수지오지자웅     천계지중유일봉     

어느聖이 眞聖인고 眞聖 一人알랴거든 牛聲入中차자들소

    성   진성     진성일인          우성입중

陷地死地嘲笑中의 是非만혼 眞人일세

함지사지조소중   시비     진인


註(주); 누가 가히 까마귀의 암컷 수컷을 알겠는가. 천 마리의 닭 중에서 한 마리의 봉황이 있느니라. 어떤 성인이 진짜 聖人(성인)이냐 진짜성인 한 사람을 알려거든 소 울음소리가 나는 그 속에 들어가서 찾아보소. 이 분은 이 세상에서 모함 받고 세상에서 비웃음 속에 살고 있는데 이렇게 시비가 많지만 진짜 진인이니라.

라고 하였다. 龍(용)은 우주 삼라만상의 주인을 용으로 표현한다. 후천 용화세상을 미륵세상이라고 하듯이 용은 무극신을 의미한다.

[참고] 격암유록 말중운

靑龍之歲利在弓弓(청룡지세이재궁궁); 靑(청)은 十二月(십이월)로 道(도)를 말한다. 그래서 道(도)의 主人(주인)을 龍(용)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龍華(용화)世上(세상)을 미륵세상이라고 하는데

“龍華(용화)世上(세상)은 궁궁(弓弓=◖+◗=●=무극)에서 이로움이 존재 한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靑(청)은 동쪽이므로 鷄龍(계룡)은 동과 서를 말하는 것으로 계룡산(鷄龍山)하면 兩山(양산)을 말하는 것이 된다. 東(동)은 龍山(용산)이고 西(서)는 鳳山(봉산)인데 鳳(봉)은 새 鳳(봉)이므로 새 鳥(조)와 뜻이 같다. 그래서 봉산은 鳥山(조산)이 된다. 여기에서 龍山(용산)의 山(산)자와 鳥山(조산)의 鳥(조)자를 따서 박우당께서는 나의 뒷사람은 “山鳥(산조)”라고 하였으며 전경 예시 89절에 後人山鳥皆有報(후인산조개유보)하였던 것이다. 증산성사께서는 이것을 “龍鳳(용봉)”이라고 공사로써 예시하여 놓았다.

짚으로 만든 계룡이라고 하였는데 짚은 그 알곡의 결정체가 쌀이다. 짚은 하나의 허상이다. 이 허상인 빈껍데기만 보지 말고 그 내용물을 본다면 쌀이다. 쌀은 米(미)이다. 쌀 米(미)는 우주 8쾌이며 우주 8쾌의 주인이신 미륵을 의미한다. 다시 정리하면 짚으로 만든 계룡이란 천지창조주(미륵)께서 원형이정 천지도수데로 이미 짜놓은 계룡이란 뜻으로 계룡은 바로 천지부모를 뜻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龍(용)은 미륵이신 옥황상제님을 뜻하며 鷄(계)는 鳳(봉)으로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일만이천 도통군자를 이끌어갈 대두목을 말한다. 그래서 예시 40절에 “곤이내짐제지 곤이외장군제지(閫以內朕制之 閫以外將軍制之)” 라고 하였는데 朕(짐=옥황상제님)은 문지방 內(내)에만 통제하고, 장군(대두목)은 문지방 밖을 통제관장 하게 된다. 라고 하였다.

이렇게 올바로 일러주는 데도 세상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고 한탄하신 것이다.


66. 증산성사께서 빗물로 벽에 인형을 그리고 그 앞에 청수를 떠놓고 꿇어앉아서 상여 운상의 소리를 내시고 “이마두를 초혼하여 광주(光州) 무등산(無等山) 상제봉조(上帝奉詔)에 장사하고 최수운을 초혼하여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五仙圍碁)에 장사하노라” 하시고 종도들에게 이십사절을 읽히고 또 말씀하시니라. 그 때도 이 때와 같아서 천지에서 혼란한 시국을 광정(匡正)하려고 당 태종(唐太宗)을 내고 다시 이십사장을 내어 천하를 평정하였으나니 너희들도 그들에게 밑가지 않는 대접을 받으리라”


67. 증산성사께서 또 어느 날 약방 대청에 앉고 류찬명을 마루 아래에 앉히고 순창 오선위기(五仙圍碁), 무안 호승례불(胡僧禮佛), 태인 군신봉조(群臣奉詔), 청주 만동묘(萬東廟)라 쓰고 불사르셨다. 이 때에 찬명이 좀 방심하였더니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길 “신명(神明)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 하셨도다.


68. 또 증산성사께서 용두치(龍頭峙)에 가서 계실 때 하루는 마당에 촛불을 밝히고 천유 일월지명(天有日月之明) 지유초목지위(地有草木之爲) 천도재명고(天道在明故) 인행어일월(人行於日月) 지도 재위고(地道在爲故) 인생 어초목(人生於草木)이라 써서 불사르셨도다. 이 때 구름이 하늘을 덮고 비바람이 크게 일어도 촛불이 요동하지 않았도다. 증산성사께서 찬명이 서북 하늘의 구름 사이에 별 하나가 반짝이고 동남 하늘에 구름이 흩어져 별이 많이 반짝인다고 복명을 들으시고 “서북(西北)에서 살아날 사람이 적고 동남(東南) 쪽에서 많으리라”고 이르셨도다.


天有日月之明 地有草木之爲 天道在明故

천유일월지명 지유초목지위 천도재명고

人行於日月 地道在爲故 人生於草木

인행어일월 지도재위고 인생어초목

≪하늘이 있기에 日月(일월)의 밝음이 있고, 땅이 있기에 草木(초목)이 자란다. 天道(천도)가 존재하기에 고로 밝은 것이고 일월이 있기에 사람이 행해 나간다. 地道(지도)가 존재하기에 고로 사람과 草木(초목)이 살아간다.≫

※ 서북쪽은 주역에서 하늘, 아버지, 가장을 뜻하는 건(乾)방이다. 즉 天主(천주)가 계신 곳.

東南(동남)쪽은 손방(巽方)이다. 손방(巽方)은 목(木)의 기운이 퍼지는 곳으로 나경패철 24방위로는 진손사(辰巽巳) 3방위이며 동남쪽 45도가 해당된다. 색깔은 녹색(綠色)이다. 계절로는 늦봄에서 초여름(春末夏初춘말하초)까지를 의미하고, 달은 양력 4월과 5월을 나타낸다. 시간으로는 아침 7시부터 오전 11시까지로 진시(辰時, 7시에서 9시까지)와 사시(巳時, 9시에서 11시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음의 기운은 완전히 물러가고 양의 기운이 점차 확장하여 멀리 퍼진다. 초목은 왕성하게 자라며 동물은 번식을 한다. 따라서 일을 확장하려는 사람에게는 좋은 방위다. 巽(손)은 동물로는 닭이다. 닭은 酉(유)이며 때를 알린다. 또한 닭은 계유오덕(鷄有五德)이라 하여 다섯 가지의 자랑을 한다고 한다. 그 다섯 가지는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① 첫째 禮(예), 닭의 볏(벼슬)을 항상 머리위에 달고 있는 것을 일컬어 말하길 '正其衣冠禮之德也정기의관례지덕야(관을 바르게 썼으니 예의가 바르며)' 라고 했다. 이 말은 닭은 항상 벼슬을 달고 다닌다. 그 모습이 언제나 단정하게 관복을 갖추고 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라 해서 '禮(예)'라 불렀다.

② 둘째 信(신), 매일 아침 어김없이 울어대는 것을 두고 말하길 '無違時報信之德也무위시보신지덕야(어김없이 때를 알리는 신의가 있으며) 했다. 닭은 매일 아침 어김없이 울어 사람들을 깨우죠. 하루도 어김없음을 두고 말하길 '信(신)'이라 했다.

③ 셋째 仁(인), 모이를 서로 나누어서 먹는 것을 두고 말하길 '相呼取食仁之德也상호취식인지덕야(서로 불러 먹이를 취하니 어짊이 있음이고) 했다. 닭은 하나의 모이통에 모이를 부어두면 여러 닭들이 싸우지 않고 모이를 쪼아 먹는다. 먹이에 대한 다툼이 없음을 보고 성품이 어질다고 생각하여 '仁(인)'이라 한다.

④ 넷째 智(지), 늘상 주위를 경계하며 둘러보는 것을 두고 말하길 '常戒防衛智之德也상계방위지지덕야(늘상 경계하여 지켜내니 지혜가 있음이요)' 했다. 닭은 자기 새끼를 위해서나, 자기가 속해 있는 무리를 위해 언제나 경계하고 있다.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고 지혜가 있다고 하여 '智(지)'라고 한다.

⑤ 다섯째 義(의), 싸움에 몸을 돌보지 않고 물러서지 않음을 두고 말하길'臨戰不退義之德也임전부퇴의지덕야(싸움에 임했을 때 물러서지 않으니 의리가 있다.)라고 했다. 닭은 싸움에 임했을 시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오로지 싸움에만 임한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義(의)'가 있다고 한 것이다. 이것이 닭의 다섯 가지 덕목을 말한 '계유오덕'이다. 계유봉황식(鷄有鳳凰食):/봉황이 닭장에서 산다. 라고 했는데 → 봉황이 닭장에서 살듯이 훌륭한 사람이 낮은 지위에서 복무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五德(오덕), 五行(오행)의 이치로 오는 五仙(오선)인 천하의 대두목은 궁벽한 곳에서 지낸다. 라는 뜻이다.


69. 이런 일이 있은 후 어느 날에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오늘 청국 만리장 신명이 오리니 잘 대접하여야 하리라”고 이르셨도다.


70. 증산성사께서 구릿골 약방에서 “약장은 안장농이고 신주독(神主櫝)이니라. 여기에 배접한 종이를 뜯을 날이 속히 이르러야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그 후 대흥리에서 고부인에게 “약장은 네 농바리가 되리라”고 이르셨도다.


◐ 약장은 병을 고치는 약을 넣어두는 곳이다. 옥황상제님을 모시면 대병(大病)이 낮게 되는데, 옥황상제님을 모시므로 약장이라는 것이다. 안장농은 ‘장농 안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농’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통상 살림의 근본이 되는 귀중품을 넣어두게 마련이다. 또 신주독(神主)이란 ‘밤나무(栗木)로 신패(神牌)를 만들어서 신주패(神主牌)를 씌우는 독(:나무로 짠 궤)으로써 신주패를 씌워 넣어두는 작은 집’이니 삼신(三神)을 모신다는 뜻이다.

즉 옥황상제님(三神)을 모시는 분이 살림을 맡는다는 뜻이다. 三神(삼신)이신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법이 진법(眞法)인데, 이 眞法(진법)으로 大病(대병)이 든 천하창생을 고쳐서 거느려 나가는 직업이 의통(醫統)이다. 배접한 종이를 뜯으면 이 의통이 나온다는 말씀이시다.

증산성사께서 약방 벽 위에 ‘사농공상(士農工商) 음양(陰陽),

기동북이고수(氣東北而固守) 이서남이교통(理西南而交通)’과 그밖에 여러 글을 많이 써 붙이시고 백지(白紙)로 배접(背接)한 뒤에 김자현에게 명하시어 배접한 종이 위를 뜻 가는 대로 밥 사발을 대고 오려 내게 하시니 음(陰)자가 나타나거늘 가라사대 ‘정(正)히 옳도다. 음과 양을 말할 때 음자를 먼저 읽나니 이는 지천태(地天泰)니라’ 하셨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은 사상(四象)이요, 음양(陰陽)은 중앙 자리의 태극(太極)이다. 즉 사농공상과 의통(醫統) 직업을 적어 두셨는데, 지천태(地天泰)란 정역(正易) 팔괘이므로, 후천 오만 년의 새로운 직업인 의통과 사농공상이 정역의 법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즉 후천은 인존시대이고, 사람으로서 사농공상을 써서 후천을 다스려 나가는 것이 정역(正易)이라는 것이다. 기동북이고수(氣東北而固守)이서남이교통(理西南而交通)은 金火交易(금화교역)으로 좌상에서 得天下(득천하)하는 것을 뜻한다.

배접한 종이를 뜯으면 정역으로 짜여진 후천의 사농공상과 의통 직업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속히 나와야만 천하창생들이 후천의 법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뜯는 자가 바로 고부인(高夫人), 즉 대두목인 것이다. 대두목이 후천의 새로운 직업인 정역의 법리로 짜여진 의통과 사농공상으로 천하창생을 다스려 천하의 살림을 살아 나가는 것이다.

대흥리(大興里)에 고부인이 있는데, 대흥리란 크게 흥한다는 것이고, ‘약장이 고부인의 농바리’가 된다 하심은, 농바리는 한 아이의 등 양쪽에 한 아이씩 농을 실은 것처럼 매달려 노는 놀이를 말하는 것으로 고부인(대두목)이 삼신(三神:옥황상제님)을 모신 약장(안장농)을 농바리처럼 매고 다니며 대병이 든 천하창생들을 의통(醫統)으로 고치고 거느려서 새로운 사농공상을 세워 후천 오만 년의 살림을 살아나간다는 뜻이다. 즉 의통령(醫統領)이시다.


71. 다시 약방에 이르사 여덟 종도를 벌려 앉히고 사물탕 한 첩을 지어 그 첩면에 인형을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두르시면서 시천주를 세 번 외우신 후에 종도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여 라고 말씀하셨도다. “남조선 배가 범피중류(泛彼中流)로다. 이제 육지에 하륙하였으니 풍파는 없으리로다.” 하셨도다.


72. 또 말씀하시기를 “스물네 가지 약종만을 잘 쓰면 만국의원이 되리라” 하셨도다.


◐ 도(道)라는 것은 전 우주, 천지를 의미한다. 전 우주의 변칙조화를 가져오는 것을 도(道)라 한다. 5일이 한 후(候)이고 이것이 셋이 합해지면 15일로써 한 절후(節候)이고 이 절후가 음양으로 30일이 한 달이다. 한 달에 후(候)가 여섯이고 절후(節候)가 둘이다. 한 달이 셋이 모여서 봄(1, 2, 3월) 여름(4, 5, 6월) 가을(7, 8, 9월) 겨울(10, 11, 12월) 4철(哲)이 되고 1년이 되는 것이다. 1년에는 72후(候)가 있고 24절후가 있으며, 12달이 있는 것이다. 시간이 모여서 날이 되고, 날(日)이 모여서 달이 되고, 달(月)이 모여서 1년(年)이 된다. 이것을 도(道)라 한다. 그러므로 24가지 약종이란 24절후로써 도를 의미한다. 도(道)를 알면 만국의원이 된다는 것이다. 즉 철을 알아야 도를 깨달을 수 있고 도를 깨달아야 도가 무엇인지 의통이 무엇인지 깨달아서 의원이 되지, 철을 모르면 의원이 될 수가 없다는 뜻이다.


73.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현묘 불칙한 공이 이룩되나니 이것이 곧 무위화니라. 신도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가 돌아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지나간 임진란을 최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에 불과하고, 진묵(震黙)이 당하였으면 석달이 넘지 않고, 송구봉(宋龜峰)이 맡았으면 여덟 달에 평란하였으리라. 이것은 다만 선․불․유의 법술이 다른 까닭이니라. 옛적에는 판이 좁고 일이 간단하므로 한가지만 써도 능히 광란을 바로 잡을 수 있었으되 오늘날은 동서가 교류하여 판이 넓어지고 일이 복잡하여져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능히 바로 잡지 못하리라.

최풍헌은 선조(宣祖)가 피난 간 의주로 가서 거지차림으로 막사를 돌며 “나에게 병권을 주면 왜적을 3일에 물리치리라.” 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그를 믿어주지 않자 그는 병권을 얻지 못하여 역사(役事)를 하지 못했다. 만약 최풍헌이 병권(兵權)을 가졌더라면 당시 왜적이 3파로 나뉘어 공격해오는 길목에 서서 적장의 목을 하루에 한 명씩 베어버리면 사흘 만에 전쟁을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진묵은 불도(佛道)에 통한 자라 그 법술이 신통하였으나 역시 전쟁에 나설 수 없었고, 송구봉 역시 서자 출신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으므로 나설 수 없었다. 다만 송구봉은 거북선의 설계도를 이순신에게 넘겼다는 다음과 같은 전설(傳說)이 전한다.
이순신이 12, 3세 때의 일이었다.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하였으며 친구들과 함께 진(陣)을 치고 진법(陣法) 연습을 하곤 했다. 하루는 송구봉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목도하였다. 송구봉은 이순신의 진법놀이를 지켜보다가 자기의 집에 다녀갈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이순신이 밤에 송구봉의 집을 찾아갔더니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방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벽에 구선도(龜船圖), 즉 거북선 그림이 걸려 있었다. 훗날 이순신은 무과에 급제하여 여수 수사로 부임하여 여수 둔덕재의 소나무로 어려서 본 그림대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그런데 거북선에 있는 여덟 개의 구멍 중 한 개의 용도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를 일이었다. 이순신은 다시 송구봉을 찾아 물었더니 그 구멍은 사청목(蛇聽目)이라 하였다. 뱀은 눈으로 소리를 듣기 때문에 바깥의 말을 듣기 위해서 한 구멍을 만들어 두어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임진란 때 적군을 벌벌 떨게 했던 거북선이 완성되었다.
또한 율곡은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나 반대파의 주장에 밀려 실패하고 단지 이항복에게 “슬프지 않은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이 좋으리라”고 가르쳤고, 이순신에게는 ‘두율천독(杜律千讀)’만 가르쳤으나 이것이 훗날 임진란을 당하여 크게 쓰일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율곡의 이 애매모호한 말은 훗날 임진란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크게 쓰이게 되었다.
이항복에게 일러준 가르침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감동시켰으며, 이순신에게 말해준 두율천독은 해전(海戰)에서 크게 쓰여 왜의 보급로를 끊음으로써 왜군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아무런 대비책도 없던 조정에서는 북으로 도망가며 한편으로 명(明)에 원군(援軍)을 청하였다. 그러나 명군은 처음부터 남의 나라 싸움에 분투하고자 하는 마음도 크게 없었으며 게다가 구원병을 이끌고 온 이여송(李如松)은 의주로 피난 온 선조의 볼품없는 몰골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가려 하였다.
다급해진 이항복은 좋은 꾀가 생각났다. 이항복은 선조에게 막사 내에서 항아리를 끌어안고 울라고 하였다. 항아리에 머리를 박고 울면 그 소리가 웅장하게 나므로 이항복은 이여송으로 하여금 선조가 외모는 보잘 것 없지만 속은 웅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선조는 슬프지 않는데 어떻게 우느냐고 하며 울지 않자 이항복은 꾀를 쓸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율곡이 말해준 ‘슬프지 않은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이 좋으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항복은 수건에 고춧가루를 싸서 선조에게 눈을 닦으라고 하였다. 선조의 눈에서 절로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한 번 눈물이 나자 선조는 그동안 쌓였던 어려움과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 항아리를 끌어안고 엉엉 울어대니 그 소리가 이여송의 막사에까지 울려 퍼졌다.
이여송이 그 소리를 들으니 용성(龍聲)인지라 깜짝 놀라 어떤 위인이길래 이렇게 울음소리가 우렁찬가 알아보라 하니 선조의 막사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에 이여송은 선조의 몰골은 형편없어도 그 마음에 품은 웅지(雄志)는 크다 하여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왜병을 물리쳐 주었다. 또 이순신은 거북선을 이끌고 남해 해전에서 승승장구 왜군을 물리치자 왜군은 보급로가 끊어지는 등 큰 타격을 입게 되었는데 이때 왜군의 계략에 빠진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니 이순신은 삭탈관직 당하였고 이후 다시 복귀되었으나 원균은 이미 수백 척의 배를 잃어버렸고 그 자신도 죽어버렸다.
남은 배는 겨우 12척이었다. 조정에서는 싸울 수 없다고 하였으나 이순신은 아직 12척이나 남아있으므로 싸울 수 있다고 하며 전투에 임했다. 적군은 수백 척의 배로 몰려왔고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져 있었다. 이때 이순신은 병사들에게 칼로 뱃전을 두드리면서 두보(杜甫)의 시를 외우도록 하였다. 두보 시의 특징은 비장미(悲壯美)이다. 그러므로 두보의 시를 읽게 되면 사람의 마음이 비장해져 자신도 모르게 힘이 충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보의 시를 읽는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衝天)하였고,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선을 물리치는 사상(史上) 유례없는 대전과를 올렸다.

74. 또 지난 임진왜란 때 일본 사람이 우리 나라에 와서 성공치 못하고 도리어 세 가지의 한만 맺었으니 소위 삼한당(三恨堂)이니라. 첫째로 저희들이 서울에 들어오지 못함이 一한이요. 둘째는 무고한 인명을 많이 살해되었음이 二한이오. 셋째는 모 심는 법을 가르쳤음이 三한이라. 이제 해원 시대를 당하여 저들이 먼저 서울에 무난히 들어오게 됨으로써 一한이 풀리고, 다음 인명을 많이 살해하지 아니 함으로써 二한이 풀리고, 셋째로는 고한 삼년(枯旱三年)으로 백지 강산(白地江山)이 되어 민무 추수(民無秋收)하게 됨으로써 三한이 풀리리라.


◐ 왜로서는 피를 토하고 통곡할 노릇이었다. 전쟁은 이기지도 못하고 엉뚱하게 모심기를 가르쳐 오히려 조선의 농업을 발전시키고 또한 총력을 기울여 전쟁을 치른 탓에 왜의 인명피해 및 물자 소모가 엄청났다. 왜(倭)로 보아서는 아무런 소득 없이 희생만 가져온 전쟁이었으며 국제적으로 망신만 당하는 꼴이었던 것이다.
이 때 맺은
원(寃)을 훗날 일본은 조선침략으로 풀어내었으며 조선에 가해진 가혹한 식량공출과 자원수탈로 일본은 임진란 당시에 진 빚을 받아가게 된 셈이었다. 실제 개화기의 조선은 무방비상태였으며 일본은 조선의 빗장을 열기만 하면 되었다.
게다가 개화기의 일본은 약진이 눈부셨고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서울 입성은 아무런 방해도 없었으며 인적·물적 손실도 없는 가운데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그로써 일한(一恨)과 이한(二恨)이 풀리고 일제시대에 강행된 엄청난 양의 식량 공출로 수백 년 전 모심기를 가르쳐 준 한을 풀었던 것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은 조선에서 유독 식량을 탐하여 공출을 강행하였으며 조선의 농민들은 농사를 짓고도 타작을 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것이 없어 마치 흉년을 당한 듯 하였으며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겨우 연명하였으니 실제 강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무가 껍질이 벗겨진 채로 허옇게 드러나는 백지강산(白地江山)이 되었으며 민무추수(民無秋收)한 셈이었던 것이다.

※ 白地江山 民無秋收(백지강산 민무추수); 강산이 벌거숭이가 되어, 즉 삼천리강산에 농사지은 것이 없으니 백성들이 추수할 것이 없도다.


75. 용력술을 배우지 말지어다. 기차와 윤선으로 백만근을 운반하고, 축지술을 배우지 말라. 운거(雲車)를 타고 바람을 제어하여 만리 길을 경각에 왕래하리라.


76.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앞으로 술수를 거두리라고 이르시니라.


77. 선천에는 백 팔 염주였으되 후천에는 백오 염주니라.


78. 사십팔장을 늘어 세우고 옥추문을 열 때에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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