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순 전경 ★/●•―‥예 시

예시(豫示) 16 ~ 30 까지

고도인 2008. 7. 16. 16:24

예시(豫示) 16 ~ 30 까지

 

 

16. 증산성사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도수로써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어 물샐 틈 없이 도수를 짜 놓으셨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게 되니라 하셨도다.


17. 증산성사께서 하루는 김형렬에게 “삼계 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후천 선경(後天仙境)을 열어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라고 말씀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제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고 이르시고 그에게 신안을 열어주어 신명의 회산과 청령(聽令)을 참관케 하셨도다.


◐ 末世(말세); 종교에서 신앙의 대상을 같이 하면서 이론을 달리하여 갈라지는 것을 종파라 한다. 종파는 말세가 가까워올수록 기승을 부리고 나타난다. 하지만 ‘일본이 만수요, 만수가 일본이라(一本萬殊, 萬殊一本)’, 즉 ‘한 가지 근본이 만 가지로 다르고, 만 가지 다른 것이 한 가지 근본’이라는 말과 같이 모든 종교는 근본이 같다. 그런데 세계 각 족속들이 자신들이 처한 문화를 바탕으로 신앙의 대상을 대하거나 자신들이 처한 이해(利害)를 따져서 신앙의 대상을 대하다 보니 결국은 사상을 달리하게 되고, 신앙의 근본에 대한 개념의 차이가 생겨나서 이로 인해 각 종교가 각기 다른 형태로 형성되고 그 속에서 종파가 자꾸만 생겨나 난립하게 되었다. 각 종교의 종장들은 이렇게 종파가 난립하는 것을 말세의 징후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해 놓았다.

석가여래는 「오오백세」에서 다섯 번째 500년 때인 말법(末法) 때가 되면,
於我法中鬪諍言頌白法隱沒損減堅固了
어아법중투쟁언송백법은몰손감견고료
     
[-「大方等 大集經 五十五月藏分 分布閻浮提品」 中에서]
라고 하였다. 즉
‘나의 법중에 서로 말로써 투쟁하고 모든 깨끗한 법은 깊이 숨어버린 채 굳어가리라’ 하였으니 이는 자기로부터 나온 불교를 이해하는 방법이 수없이 쪼개져 나가 수많은 종파를 형성하여 세력 다툼을 하리라는 것을 예언해 놓은 것이다.

예수는 「마태복음」24장 23절에서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하였다. 현재 전 세계에 전파되어 있는 기독교는 가톨릭,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침례교, 성결교 등 주요 교파만 해도 100여 개가 되고, 여기에서 또 분파 된 것까지 합하면 350여 개가 된다. 그리고 세계 이곳저곳에서 ‘내가 재림한 메시아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무하마드는 종국에 가면 ‘이슬람교리는 70개로 분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의 예언대로 현재 이슬람은 수니파를 비롯해서 카리즈파, 이스마엘파, 시아파, 이맘파, 자이드파, 두르즈파, 바비파 …… 등 세계 각처에 수십 개의 파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격암유록』「가사총론」중에는,
人道儒와 地道佛이 日落之運 맡은 故로
인도유   지도불   일락지운      고
洛書夜運 昏衢中에 彷徨霧中失路로써
낙서야운 혼구중   방황무중실로
儒彿仙이 各分派로 相勝相利 말하지만
유불선   각분파   상승상리
天堂인지 極樂인지 彼此一般 다 못 가고
천당     극락     피차일반
平生修道 十年工夫 南無阿彌陀佛일세
평생수도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사람의 도리를 밝힌 유교와 땅의 도리를 밝힌 불교가 해가 넘어가는 운을 맞이한 고로 해진 저녁 밤이 닥친 때에 어두운 거리에 방황무중 길을 잃어버림으로써 유 • 불 • 선이 세계 각 나라에 여러 파로 나누어져 서로 이긴다 하고 서로 이롭다 말은 하나 천당인지 극락인지 피차일반 다 못 가고 평생수도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일세’라는 뜻이다.

앞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말세가 되어 종파가 생겨나는 것은 성인들과 예언가에 의하여 이미 예견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때가 되면 누군가 오신다는 것을 가르쳐 놓았다.『전경』「예시」79절에 보면,

증산성사께서 하루는 공우에게 말씀하시길 “동학신자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고, 불교신자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예수신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 누구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고 하셨도다. 라는 말씀이 있다.
기성종교에서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메시아)가 오신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이론과 방법을 달리하므로 종파가 생겨나는 것이다.

※ 무극대운(無極大運); 끝이 없는 큰 운수. 

   천지공정(天支公庭); 천지의 송사를 보는 곳.


18. 증산성사께서 본댁에 간수했던 선대의 교지를 찾아 옥새가 찍힌 부분을 도려내고 불사르신 다음에 그 부분과 엽전을 비단에 싸서 한쪽에 끈을 달아 손에 들고 목에 붉은 베를 매고 딸각딸각 소리를 내시며 시루산을 오르내리면서 큰 목성으로 도통줄이 나온다고 외치시니 이 뜻을 모르고 사람들은 없어진 교지만을 애석하게 여겼도다.


◐ 증산성사께서 도통줄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려 놓았다. 본댁(本宅)은 도(道)의 근본(根本)을 말씀하신 것이며, 증산성사께서는 도(道)의 근본(根本)이 끊어져 진멸지경에 처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오셨는데 그 근본(根本)을 찾아보니 선대의 교지였다. 교지(敎旨)는 선대의 선령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사령장으로써 선령신들이 가문을 현창하고 후손에게 알려 도(道)를 가르치기 위해 전하여 내려가는 것으로써 자손이 꼭 운수를 받기를 원하는 선령의 뜻과 염원이 담겨 있다. 증산성사께서는 이 교지의 옥새(玉璽)가 찍힌 부분을 도려내고 나머지는 불태우셨는데, 이것은 도(道)의 근본을 찾는 공사를 처결하신 것이다. 그 근본을 찾아 운수를 받으려면 도통줄을 찾아야 한다. 교지를 불태우실 때 옥새가 찍힌 부분을 남겨 놓으신 것은, 이 옥새는 임금의 도장으로써 옥새를 물려주면 왕권을 물려주는 것이다. 즉 종통이 이어지는 것으로써 도통줄이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옥새가 찍힌 부분과 엽전을 비단에 싸서 한쪽에 끈을 달아 손에 들었다는 뜻은 정신과 물질의 조화를 함께 갖고 종통을 행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은 정신이 물질에 지배되어 있거나, 아니면 도를 닦는다 하여 물질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정신과 물질이 합덕(合德)이 되지 못하여 일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根本)을 찾아 정신을 올바르게 만들고(精神開闢정신개벽), 정신이 물질을 충분히 잘 다스려 용도에 맞게 잘 운용(運用)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통줄은 증산성사로부터 전하여져 내려가는데, 목에 맨 붉은 베는 붉을 단(丹), 붉을 주(朱), 단주(丹朱)를 말하고, 목은 목(木)을 말하는데, 단주(丹朱)는 박성구도전님의 전생이 초패왕이시고, 초패왕의 전생이 단주이므로 붉은 베는 박성구도전님을 뜻하고, 목(木)은 목인(木人)으로 박씨(朴氏)이다. 즉 박우당(朴牛堂)을 뜻하는 것이며 시루산은 증산이란 뜻이다. 木(목)에서 삼베(단주丹朱)로 이어지며, 또 목성(木姓)에서 도통줄이 시루산(증산)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목(木)은 목인(木人)이므로 박우당(朴牛堂)이시고, 큰 목성(木姓)은 또 목인(木人)이라는 뜻으로 박성구(朴成九)도전님인 것이다. 시루산을 오르내린 것은 증산께서 갔다가 다시 온다는 뜻이다. 엽전은 現金(현금)이란 뜻인데 금은 서쪽의 서신사명으로 오신 증산을 말한다. 딸각딸각 소리를 낸 것은 쇠(金)소리이고 가을소리이다. 歌乙(가을)은 큰 새의 노래라는 뜻인데 큰 새를 太乙(태을)이라고 한다. 즉 태을주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댁인 증산께서 다시 올 때에 증표인 옥새를 갖고 완성된 태을주로써 놓고 간 병겁을 막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완성된 태을주 23자가 옥새이다.(태을부도 참고)이렇게 도통줄은 시루산(증산)에서 시루산(증산)으로 이어져야만 도통줄이 되는 것이다. 이 뜻을 모르고 사람들은 없어진 교지만을 애석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이 완성된 태을주가 녹줄이고 도통줄이다.

 

                

 

     太乙府圖(태을부도) 증산성사의 친필(이것이 옥새이다)


태을 [太乙];천지만물의 출현 또는 성립의 근원인 우주의 본체를 인격화한 천제(天帝)태일(太一:泰一)이라고도 한다.

도교(道敎)에서는 천제가 상거(常居)한다고 믿는 태일성(太一星:北極星북극성)을 말한다.

또 음양도(陰陽道)에서는 해와 달은 1년에 12번 서로 만나며 그 중  7월에 만나는 곳이 태을로 사방위(巳方位)에 해당된다.

 

19. 모친에게 장삼을 입혀 자리에 앉힌 다음에 쌀 서말로 밥을 지어서 사방에 흩으시고 문수 보살의 도수를 보시니라.


20. 증산성사께서 “강태공(姜太公)이 십 년의 경영으로 낚시 三천 六백개를 버렸으니 이것이 어찌 한갓 주(周)나라를 흥하게 하고 제나라 제후를 얻으려 할 뿐이랴. 멀리 후세에 전하려 함이니라. 나는 이제 칠십이 둔으로써 화둔을 트니 나는 곧 삼이화(三离火)니라”고 말씀하셨도다.


◐ 삼이화(三离火); 주역 8괘에서 三离(삼이)는 동방 木(목)기운인데 문왕 8괘에서 九离(구이)의 火(화)기운으로 바뀌었다. 八(팔)☓九(구)=72 증산 성사께서는 이제 칠십이둔으로 화둔(火遁)을 틀어 선천(先天)의 주역시대에서 후천(後天) 정역시대로 넘어가는 개벽의 공사를 보시고 신인상합 할 새로운 도수를 짜두신 것이다. ‘나는 곧 삼이화(三離火)니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 개벽을 이룩하시는 섭리의 주재자이심을 말씀하신 것으로 김일부 선생이 지은 역(易)의 중궁(中宮)에 2ㆍ7화(火)가 자리하고 있음을 말한다. 일부역(一夫易)은 우주의 주재자가 천지를 개벽하는 역(易)으로써 시루와 솥을 걸어놓고 불을 때고 완성시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연후에 비로소 정역(正易)의 인존시대가 도래되니 1ㆍ6수(水)가 중궁에 들어가는 우물 정(井)자가 되는 것이다. 이 우물 정(井)자는 바둑판의 모양으로 바둑판 360점에 36명씩 즉 일년 360일을 관장하는 군자(君子)가 하루 36명이 자리하면 일만 이천 도통군자가 봉신(封神)을 받게 되어 천지의 운영을 맡아가는 인존시대가 이룩되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선경세상이라 한다. 강태공의 도술은 여기에까지 미쳐 있는 것이니 범인의 생각으로는 가히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21. 그리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문왕은 유리(羑里)에서 삼백팔십사 효를 지었고 태공(太公)은 위수(渭水)에서 삼천육백 개의 낚시를 버렸는데 문왕의 도술은 먼저 나타나고 태공의 도술은 이 때에 나오리라” 하시고 “천지무일월 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 무지인 허영(日月無知人虛影)”이라 하셨도다.


◐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무지인허영(日月無知人虛影); 천지에 日月(일월)이 없으면 빈껍데기요, 일월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빈 그림자이다.

※ 강태공의 72세에  문왕을 만났다. 태공망이 대답하였다.

“낚시줄이 가늘고 미끼가 뚜렷하면 작은 물고기가 물고, 낚시줄이 약간 굵고 미끼가 향기로우면 중치의 물고기가 물고, 낚시줄이 굵고 미끼가 크면 큰 물고기가 물게 마련입니다. 물고기는 미끼를 물고 낚시 줄에 낚이고, 인재는 봉록을 받아먹고 군주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므로 미끼를 드리우면 물고기를 낚아서 쓸 수 있고, 봉록을 내걸면 훌륭한 인재를 얻어서 능력을 쓸 수 있는 것 입니다.” 문왕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면 천하가 돌아와 복종하겠습니까?”

태공망이 대답하였다.


“天下非一人之天下 乃天下之天下也

 천하비일이니천하 내천하지천하야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며, 천하 만백성의 천하입니다.


同天下之利者則得天下 擅天下之利者則失天下

동천하지이자즉득천하 천천하지이자즉실천하

천하의 이익을 백성과 더불어 나누는 군주는 천하를 얻고, 천하의 이익을 자기 마음대로하려는 군주는 반듯이 천하를 잃게 됩니다.


天有時 地有財 能與人共之者仁也. 仁之所在 天下歸之

천유시 지유재 능여인공지자인야. 인지소재 천하귀지

하늘에는 때[춘하추동]가 있고, 땅에는 재물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능히 함께하여 베푸는 자를 어질다고 합니다. 어짊이 있는 곳에 천하는 돌아갑니다.


免人之死 解人之難 救人之患 濟人之急者 德也.

면인지사 해인지난 구인지환 제인지급자 덕야

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을 살려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풀어주고, 우환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고, 위급한 지경에 빠진 자를 건져주는 자를 덕(德)이 있다고 합니다.

德之所在 天下歸之

덕지소재 천하귀지

덕이 있는 곳에 천하는 돌아갑니다.


同憂同樂 同好同惡者義也 義之所在 天下赴之

동우동락 동호동오자의야 의지소재 천하부지

백성들과 시름을 함께 나누고 즐거움을 함께하며,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함께 미워하는 것을 의(義)라고 합니다.

의가 있는 곳에 천하 사람들이 나아갑니다.


凡人惡死而樂生 好德而歸利 能生利者道也 道之所在 天下歸之

범인오사이낙생 호덕이귀리 능생리자도야 도지소재 천하귀지

모든 사람들은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덕(德)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이익을 쫓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능히 살려주고 이익을 주는 자는 도(道)가 있다고 합니다. 도가 있는 곳에 천하는 돌아갑니다.”


22. 또 말씀하시기를 “신농씨(神農氏)가 농사와 의약을 천하에 펼쳤으되 세상 사람들은 그 공덕을 모르고 매약에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고만 써 붙이고 강태공(姜太公)이 부국강병의 술법을 천하에 내어놓아 그 덕으로 대업을 이룬 자가 있되 그 공덕을 앙모하나 보답하지 않고 다만 디딜방아에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강태공 조작(庚申年庚申月庚申日姜太公造作)이라 써 붙일 뿐이니 어찌 도리에 합당하리요. 이제 해원의 때를 당하여 모든 신명이 신농과 태공의 은혜를 보답하리라”고 하셨도다.


◐ 신농유업(神農遺業); 신농씨(神農氏)는 상고(上古) 천존시대(天尊時代)를 연 삼황(三皇:복희, 신농, 황제) 중의 한 사람으로서 성(姓)은 강(姜)씨이다. 성(姓)으로서는 풍(風)씨가 먼저 있었으나 전하여 오지 못하고 다만 몸에 붙여 풍채(風采), 풍신(風身), 풍골(風骨) 등으로 몸 생김새의 칭호만으로 남아 올 뿐이고 그 다음은 강성(姜姓)이 나왔으니 인류 최초의 성씨(姓氏)이다. 신농씨는 인류 생활의 기반이 되는 농사법(農事法)과 의약(醫藥)을 내놓았다. 그리고 신농씨는 약성(藥性)을 알아내어 가르쳤으니 이것을 적어놓은 책이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다. 이 책은 동양 한의학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교육서(敎育書)이다. 그리고 이 외에도 주조법(鑄造法)를 내놓아 농기구나 칼이나 창 등을 제조하는 공업(工業)의 시초(始初)를 이루었고, 서로간에 물물교환하는 교역(交易)을 가르쳐 상업(商業)의 시초(始初)를 이루었다.

다시 말하면 신농씨는 사회를 이루는 원시 사농공상(士農工商)과 의약(醫藥)의 창시자(創始者)로서 인류의 생활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신농씨의 은혜를 입어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을 모르고, 단지 매약(賣藥), 즉 약방(藥房)에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 써 붙여 신농씨가 물려 준 업이라는 글귀만 남겼으니  세상 사람들은 신농의  그 은혜를 모르는 것이다.

◐ 경신년경신월경신일강태공 조작(庚申年庚申月庚申日姜太公造作); 강태공(姜太公)은 중고(中古) 지존시대(地尊時代)를 연 장본인(張本人)으로서 성(姓)은 강(姜)이요, 이름은 상(尙)이고, 자는 자아(子牙)라 하고, 태공(太公), 여망(呂望), 태공망(太公望) 등으로 불리 웠다. 강태공은 동이(東夷)의 사람으로 곤륜산(崑崙山)에서 수도(修道)하였고, 위수(渭水)에서 10년 간 3600개의 낚싯대를 꺾으며 때를 기다려, 결국 문왕(文王)을 만나고 문왕을 도와서 영대(靈臺)를 지어 신명(神明)을 모시고 이 신명을 땅에 봉(封)하여 지존시대를 열었다. 그후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을 보필하여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대업(大業)을 이루었다. 그는 부국강병술을 펼쳐 주(周)나라를 부흥케 하였는데 후대에 이것을 기록한 책이 육도(六韜)이다. 육도(六韜)의 도(韜)는 화살을 넣는 주머니, 싸는 것, 수장(收藏)하는 것을 말하며, 변하여 깊이 감추고 나타내지 않는 뜻에서 병법의 비결을 의미하며, 󰡔�육도(六韜)󰡕�는 문도(文韜)·무도(武韜)·용도(龍韜)·호도(虎韜)·표도(豹韜)·견도(犬韜) 등 6권 6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육도󰡕�는 치세(治世)의 대도(大道)에서부터 인간학․조직학에 미치고, 정전(政戰)과 인륜(人倫)을 논하여 깊이 있게 가르치고 있다. 이 육도에 진(秦)나라 때 사람 황석공(黃石公)이 강태공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후대에 가르친 삼략(三略)을 더한 육도삼략(六韜三略)은 유명한 병서(兵書)이다. 후대에 한고조 유방을 도와 대업을 이룬 장량이 황석공으로부터 육도삼략을 수업 받았고, 신왕조(新王朝)를 이루었던 자들 중 육도삼략을 공부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후대에 사람들이 강태공의 부국강병술의 덕으로 대업을 이룬 자가 있으되 그 공덕에 대한 보은은 하지 않고 다만 강태공이 고안한 디딜방아에 ‘경신년경신월경신일강태공조작(庚申年庚申月庚申日姜太公造作)’이라고만 적을 뿐이다. 그러니 이것은 강태공이 베푼 은혜를 모르는 소치이다. 그러므로 이제 해원의 때를 맞이하여 진법에 일만 이천 도통군자가 모여들고 그들에 의해 천하에 사농공상이 크게 일어나 지상천국이 이루어지고, 강태공이 내놓은 부국강병술이 크게 일어나 부족함이 없는 도통진경세계가 되니 이것이 바로 신농유업(神農遺業)이고 강태공의 부국강병술이니 이로써 신농과 강태공의 은혜에 모든 인간이 보답하게 되는 것이다.


23. “이제 동양 형세가 위급함이 누란과 같아서 내가 붙잡지 아니하면 영원히 서양에 넘어가리라.” 깊이 우려하시사 종도들에게 계묘년 여름에 “내가 일로전쟁(日露戰爭)을 붙여 일본을 도와서 러시아를 물리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 지난 날 동양의 강대국으로 자리했던 중국은 영국과 아편전쟁을 벌여 패배하였으며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내란을 겪은 뒤라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또한 제2차 아편전쟁이라 불리는 ‘애로우호(Arrow號)’ 사건으로 영ㆍ불 연합군에 의해 북경까지 함락 당한 터라 중국의 자존심은 말이 아니었다.
한번 문이 열리자 서양 열강은 조수(潮水)처럼 밀려들었으며 중국에서 이권(利權) 쟁탈에 열을 올렸다. 누가 보아도 중국은 서양 열강의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상태였다. 이제 중국은 종이호랑이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동양의 강대국으로 군림하기는 고사하고 제 한 몸 챙기기에도 바쁜 처지로 전락하였던 것이었다. 서양은 안심하고 동양을 떡 주무르듯 하여 자신들의 이권(利權)을 챙기고 있었다.
한편 개방 이후 미국의 반식민지 상태로 있다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계기로 혁신하고 발 빠르게 서구 문명을 흡수하여 힘을 축적한 일본은 그들의 영원한 야욕인 대륙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문명개화의 열풍으로 서양의 의식주 생활을 모방하는 풍조가 만연하였고 개인의 자유ㆍ평등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상도 유행하였다. 그러나 급속한 개화로 부작용 또한 많았다. 메이지 유신은 소수의 관료집단이 정권을 독점하여 개혁을 한 것이므로 여기에서 도태된 하급 사무라이들과 소외계층의 불만이 팽배하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정한론(征韓論) 등을 주장하며 불만 세력의 눈을 해외로 돌리려 하였던 것이다.
이때 러시아는 고질적인 ‘얼어붙는 항구’로 인하여 무역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반면 서구의 어느 나라보다도 대륙에 바로 연결되어 동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이점(利點)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는 그들의 꿈인 얼지 않는 항구 부동항(不凍港)을 얻기 위해 남진정책을 추진해야 했다. 이러한 야심은 중국의 약화와 동시에 조선으로 진출하여 동양권 전체를 석권(席卷)할 야욕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러시아의 남진정책과 일본의 대륙진출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양국이 다 발판으로 조선을 삼고자 하였다. 한마디로 조선반도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기에 양국의 정책적ㆍ무력적 충돌지(衝突地)는 한반도였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강증산성사께서는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 즉 계란 위에 계란을 올려놓은 것 같이 누군가가 잡지 않으면 넘어질 위기에 놓여있어 ‘위급하기가 그지없다’ 하시고 계묘년(1903년) 여름에 말씀하시길 "일본을 도와 러시아의 세력을 동양에서 물리치겠다"고 하셨다. 이러한 말을 듣던 당시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돌아서서 “저 거대한 러시아를 저렇게 작은 일본이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실소(失笑)했다.
하지만 1903년 용암포 사건이 터지면서 강증산성사의 말씀이 증명되기 시작했다. 용암포는 압록강 하구에 있는 조그마한 포구로 압록강 유역에서 베어낸 목재(木材) 집하지(集荷地)였다. 이 평화로운 포구가 세계적인 분쟁의 와중에 휘말리게 된 것은 러시아가 이곳에 슬그머니 군대를 진출시켜 무단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무렵 러시아는 만주를 점거하고 한반도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이라 일본 및 영국 등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당황한 일본은 러시아와 외교교섭을 벌여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만주와 한국을 러시아와 일본이 분할 점유하자는 협상안을 러시아에 제의하는 등 일본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미 만주를 점거한 상태이며 한반도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답답할 것이 없었다. 해 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밀고 나갔다. 일본은 약이 오를 대로 올랐다. 어쩌면 러시아로서는 용암포사건을 계기로 전쟁을 유도하려는 속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러시아로서는 자신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이 사건은 단순한 국지적인 분쟁이 아닌 한국을 디딤돌로 만주로 진출하려는 일본과 역시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복속시켜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러시아 사이의 피할 수 없는 대립이었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1903년(계묘년)이 저물고 한반도는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1904(갑진년)년의 새해를 맞았다. 조그마한 사건이라도 터지면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는 곧이어 다가올 러ㆍ일간의 전쟁을 예고하였으며 러일전쟁의 결과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정해질 판이었다. 이것은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종이 러시아 세력을 의지한 결과였다. 아관파천은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국권(國權)을 회복하고 싶었던 고종의 몸부림이었으나 일본대신 러시아를 끌어들여 시쳇말로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꼴이 되어버린 형국이었다. 일본은 아직 강적 러시아를 대적할 힘이 약해 서구 열강의 눈치를 살피며 어떡하든 조선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태였고 북방거인 러시아는 물 만난 고기마냥 성큼성큼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 일본으로서는 뭔가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했다. 이때 일본 국내 여론은 국가의 운명을 건 일전(一戰)을 치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결국
1904년 2월 일본은 중국의 여순항(旅順港)에 입항해 있던 러시아 함대에 선전포고도 없이 선제공격을 퍼부었다. 드디어 러일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전쟁은 2월 8일 일본이 해군을 출동시켜 러시아함대가 정박 중인 요동반도 남단의 여순항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이는 불의의 기습으로 정식 선전포고가 있기 전의 일이었다. 일본은 여순항을 봉쇄해서 러시아의 극동함대를 무력화시키고 해상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4월 하순 한국에 상륙, 북상한 일본 제1군은 5월 초 압록강 연안에서 러시아군과 충돌하여 격파했고, 같은 달 요동반도(遼東半島)에 상륙한 제2군은 남산(南山)ㆍ대련(大連)을 점령하고 여순(旅順)을 고립시켰다. 다시 6월에는 만주군 일본총사령부를 설치하고 15개 사단을 동원하였다. 8월 요동 부근에서 양국군이 첫 번째 대규모적인 접전을 벌였고, 10월에 사하회전투(沙河會戰鬪)가 있었다. 그런데 1905(을사년)년 1월부터 시작한 흑구대전투(黑溝臺戰鬪)를 벌이던 러시아군이 돌연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 전투가 벌어질 때에 맞추어 러시아에서는 1905년 1월 22일(러시아曆 1월 9일)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리는 노동자 학살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사건은 1월 초 프티로프 공장 노동자들이 동료 4명의 해고문제로 파업을 일으키자 이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요구를 적은 청원서를 황제에게 전하기 위해 청원행진을 벌였는데, 황제는 마침 부재중이었고, 경찰과 군대가 이 평화적 행진에 대해 발포하기 시작, 광장의 눈(雪)을 피로 물들였다. 사망자 500∼600명, 부상자 수천 명을 낸 이 사건은 황제에 대한 소박한 노동자의 신뢰를 단숨에 무너뜨리고 이후 러시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이 국내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농민폭동이 거대한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었으며 일부 군대까지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러시아는 국내 사정이 이렇듯 혼란해지자 군대의 반란과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전쟁중인 군대를 국내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 결과 전투는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육전(陸戰)에서 밀린 러시아는 발틱함대를 극동으로 파견하여 육전의 패배를 만회하려 하였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발틱함대 역시 일본에게 궤멸되고 마는데, 이는 강증산성사의 공사에 의한 신묘한 기적, 즉 일본이 지금까지도 신풍(神風, 가미가제)이라고 하는 동남풍 덕택이었다.


24. 또 증산성사께서 “이제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대신문(大神門)을 열어 사십구일을 한 도수로 하여 동남풍을 불어 일으켜 서양 세력을 꺾으리라”고 말씀하시고 공사를 행하셨다.


◐ 육전(陸戰)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하여 러시아는 당시 세계 최고의 무적함대였던 발틱함대를 출동시켰다. 거대한 발틱함대(38척)로 한반도 전체를 포위하여 제해권을 장악함으로써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겠다는 계책이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세력의 팽창을 견제해 오던 영국은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는 터라 수에즈 운하의 관리를 맡고 있던 영국이 러시아 함대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막아 버렸다. 수에즈 운하(지중해 홍해 인도양 연결)가 막힘으로써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지름길을 놔두고 아프리카 대륙 희망봉을 돌아가는 기나긴 항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항로의 대부분 지역이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함대는 중도에서 물자를 보급 받는 것이 불가능하였음은 물론 오히려 함대의 동정이 속속 일본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아프리카 남단의 케이프타운(희망봉)을 돌아 베트남까지 오는데 3개월이 걸렸다. 긴 여정 끝에 식량은 물론 물도 바닥나고 연료조차 다 떨어졌다. 겨우 우방(友邦)인 프랑스에 도움을 청하여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던 베트남 캄란(Cam Ranh)에서 물과 식량, 석탄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베트남을 떠난 함대는 일본과 조선의 사이에 있는 대한해협으로 향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사기(士氣)는 저하되어 버렸다.

그때 일본 해군사령관인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같은 꿈을 꾸었다 한다. 거대한 발틱함대가 대한해협으로 일렬로 줄지어 들어오는 꿈이었다. 사령관은 “이것은 하늘의 계시다”고 하면서 작전을 구사했는데 일명 ‘T자 작전’이었다. 세로로 일(1)자로 들어오는 함대를 한 일(一)자로 막는다는 전술이었다. 이 작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이 구사한 작전으로 일명 학익진(鶴翼陣) 전법이라는 것이다.
도고 사령관은 평생 정계와는 관계를 갖지 않은 순수한 군인으로 일생을 마친 사람인데 평소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전술을 깊이 연구하였고 러일전쟁 때 러시아의 무적함대를 맞아 학익진 전법을 응용하여 싸웠다. 이 전술은 일렬로 늘어서 있다가 적군이 사정권(射程圈) 안에 들어오면 양쪽으로 갈라져 포위한 후에 집중 사격하여 궤멸시키는 전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최신 무기로 무장한 발틱함대에 비하면 일본 함대는 수적으로 열세에다가 티(T)자로 막게 되면 표적이 넓어 100% 당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터무니없이 불리한 전술이었다.
발틱함대는 몰래 등화관제를 하고 대한 해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군기(軍氣)가 해이해진 위생선(衛生船)이 등화관제를 하지 않아 일본군에 발각되자 공격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꿈에서 본대로 일렬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미리 준비하여 횡으로 늘어선 일본의 전투함들은 포문을 열고 빗발치듯 포탄을 쏘아댔다. 일렬로 들어오므로 하나의 표적만 잡으면 전체가 표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가로로 늘어선 일본의 전투함들은 일제히 공격을 하였기 때문에 러시아의 함대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러시아의 함대는 조준(照準)을 정확히 하기는 했으나 실제 포탄을 쏘자 번번이 빗나가고 말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때 아닌 동남풍이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는 5월 27일, 28일이라 여름에 불어오는 동남풍이 세차게 올라올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자 배는 심하게 흔들렸고 포탄은 표적을 명중시키지 못했다. 이 바람이 아니었으면 일본 해군은 러시아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바람을 신(神)이 보내준 바람이라 하여 신풍(神風;가미가제)이라 한다. 말 그대로 그 때의 동남풍은 신풍(神風)이었다.
결국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38척으로 출정하여 2척이 살아남는 참패를 당하였다. 예상을 뒤엎고 육전과 해전에서 모두 패배한 러시아는 기진맥진했다. 일본 또한 전력면에서 소모가 너무 심하여 버티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에게 중재를 부탁했고 러시아도 이를 받아들여 협상에 들어가고 휴전이 이루어졌다. 만약에 그 때 신풍(동남풍)이 불지 않았더라면 러시아는 해전(海戰)으로 육전(陸戰)의 열세를 만회하여 한반도에서 다시 주도권을 잡았을 것이다.
한반도를 포위하여 일본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위에서 러시아의 육군이 밀고 내려오면 일본은 ‘독안에 든 쥐’의 형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결과는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일본이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만약에 일본이 패하고 러시아가 이겼다면 한국은 일본이 아닌 러시아의 식민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극동아시아는 러시아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고 동양 전체가 서양에 잠식당하는 결과를 빚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동양은 그 인종과 민족의 보존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강증산성사께서 공사를 보시어 서세동점(西勢東占)의 흐름을 차단하고 동양을 건져내신 것이다.
또한 러일전쟁의 결과가 일본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궤멸시킨 직접적인 계기가 된 신풍(神風)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복잡한 국제정세와 러시아의 국내정세가 일방적으로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 이는 모두 강증산성사의 공사에 의한 신명(神明)이 역사한 결과였던 것이다.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강증산성사께서 공사보신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게 된 것이며, 누란지세와 같던 동양의 형세가 고비를 넘기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바로 강증산성사께서 대신문(大神門)을 열어 신명을 움직였으므로 일어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명계의 일이라 인간으로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지라 민생(民生)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많은 무리와 사건을 일으키게 되었지만 이런 와중에도 세상은 강증산성사께서 처결하신 여러 가지 공사에 의하여 변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25. 증산성사께서 계묘년에 종도 김형렬과 그 외 종도들에게 이르시니라. “조선 신명을 서양에 건너보내어 역사를 일으키리니 이 뒤로는 외인들이 주인이 없는 빈집 들듯 하리라. 그러나 그 신명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제 집의 일을 제가 다시 주장하리라.”


◐ 강증산성사의 천지공사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인 것이다. 세계대전이 일어날 당시 유럽인의 이상심리는 바로 신명들의 움직임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이 신명들은 강증산성사께서 서양으로 건너보낸 조선신명들로서 그 중에서도 조선으로 와서 극진한 대접을 받던 관운장 신명인 관성제군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니 강증산성사께서 종도들에게 “그 신명이 이 지방에 있지 않고 멀리 서양(西洋)에 가서 대란을 일으키고 있나니라”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관성제군이 서양에서 역사한 것을 이름이다. 강증산성사께서 조선신명을 서양으로 건너보내 역사하게 한 것은 서양 세력을 분산시켜 동양으로부터 서양 세력이 물러가게 함과 동시에 향후 세계대세를 오선위기로 돌리려는 공사의 일환이었다.


26. 또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장차 청일 사이에 싸움이 두 번 나리니 첫번에는 청국이 패하리라. 다시 일어나는 싸움은 십 년이 가리니 그 끝에 일본이 쫓겨 들어가려니와 호병(胡兵)이 들어오리라. 그러나 한강(漢江)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고 하시고


◐ 중일전쟁은 1937년에 일어났다. 중일전쟁은 1937~1945년 까지 9년에 걸쳐서 진행된 지루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전에 만주사변이 먼저 일어났으며, 그 연장선에 중일전쟁이 있고, 나중에는 태평양 전쟁에 포함되었으며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다.

첫 번째 청·일 사이의 싸움은 청일전쟁(1894~1895)을 말하는 것이고, 다시 일어나는 싸움은 중일전쟁(1937년)을 말하는 것이다.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일본에게 패한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중일전쟁은 2차대전과 함께 끝이 났으니 일본은 중일전쟁 끝에 쫓겨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호병이 들어온다고 한 것은 6·25전쟁 때 중공군의 참전을 말하는 것이며 한강 이남을 범하지 못한다 하심은 남한이 공산화되지 않고 자유진영에 속하게 됨을 예언하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초판 『전경』 예시 26절에는 원래 앞에 제시한 구절 뒤에,
“······ 미국은 한 손가락을 퉁기지 아니하여도 쉬이 물러가리라.”
라는 구절이 있었다. 그러나 3판부터는 이 구절을 기재하지 않았다. 이 말씀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반미(反美)’라는 말만 나와도 국적(國賊)으로 간주되던 살벌한 시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숨기고 있던 말이었으나 지금의 현실은 이 말씀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강증산성사님의 천지공사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27.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고 말씀하시더니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거동의 모양을 이루고 허공에 벌려 있더니 사라지는도다.


28. 증산성사께서 종도들을 데리고 계실 때 “현하 대세가 오선위기(五仙圍碁)와 같으니 두 신선이 판을 대하고 있느니라.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는데 한 신선은 주인이라 어느 편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다만 대접할 일만 맡았나니 연사에만 큰 흠이 없이 대접만 빠지지 아니하면 주인의 책임은 다한 것이로다. 바둑이 끝나면 판과 바둑돌은 주인에게 돌려지리니 옛날 한 고조(漢高祖)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으되 우리나라는 좌상(座上)에서 득천하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 한 신선은 주인이라! 누가 주인 일까? “우리나라는 좌상(座上)에서 득천하 하리라”고 하셨는데 좌상이란 앉은자리라는 뜻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盤石(반석)을 말하는 것이며 “반석(盤石)’은 기초가 되는 돌” 로서 맷돌로 치면 맷돌의 밑짝이 되는 것이다. (행록 1장15) 증산께서는 돌로 만든 “맷돌 밑짝의 가운데 중쇠를 이빨에 물고 올리시니”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중쇠란 중앙의 쇠(金금)란 뜻이며  西神司命(서신사명), 즉 金神司命(금신사명)으로 오신 증산께서 중앙(황금=중쇠)으로 다시 와서 반석(盤石), 다시 말하면 영원히 변치 않는 초석이 된다는 뜻이다. 또 공사3장 28절에『문 밖에 있는 반석 위에 그림을 그리고 점을 찍고 나서 종이에 태을주와 김경흔(金京訢)이라 써서 붙이고 일어서서 절하며 “내가 김경흔으로부터 받았노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문밖이란 판밖이란 뜻이며 再生(재생)身(신)으로 오시는 증산께서는 중앙에서 중쇠가 되어 태을주로 득천하 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 하면 증산성사께서는 『네 종도를 약방 네 구석에 각각 앉히고 자신은 방 가운데 서시고 “二七六 九五一 四三八”을 한 번 외우시고』하시었는데 이는 바로 주역을 말하는 것이다. 주역이란 좌선을 하는 것이고 정역은 우선을 하는데 주역과 정역은 맷돌과 같은 이치로서 맷돌 밑짝과 같은 주역은 중쇠가 되어 고정되어 있고 실제로는 맷돌 윗 짝인 정역이 우선을 하므로 ‘기동북이고수 이서남이교통(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이 되어 득천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운 1장 44절에

左旋  四三八     天地魍魎主張 (좌선  사삼팔     천지망량주장)

      九一     日月竈王主張       (구오일     일월조왕주장)

      二七六     星辰七星主張     (이칠육     성신칠성주장) 이라고 하였으며 좌선 하는 것은 북두칠성이다. 교법 3장 36절에 천하의 대세가 가구판 노름과 같으니 같은 끝 수에 말 수가 먹느니라. 하였듯이 말수는 9수이며 9는 훔치훔치가 들어간 완성된 23자 태을주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을주는 수저이며 복채라고 하였으니 이 완성된 태을주 하는 곳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교운 1장 47절에 류찬명은 도통이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에 있으리라는 가르침을 증산성사로부터 받았느니라. 하였는데 이 말씀도 도통은 주역에 있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중앙의 중쇠 자리가 5수이다. 5수는 증산 오른손의 戊(다섯째 무)이며 오선위기에서 다섯째로 오는 사람이며 오룡 허풍의 오룡이며 일자오결의 오결이다. 그래서 공사 3장 33절에 『증산께서 하루는 무당도수라 하시며 고부인(高夫人)에게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치시며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 하시고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요 나는 천하 일등재인이라 이당 저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고 하셨도다.』고 하신 것이다. 또 교운 1장 30절에 五呪(오주)를 지어 천지의 진액(津液)이라 이름 하시고 그 오주는 明德觀音八陰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명덕관음팔음팔양 지기금지원위대강)三界解魔大帝神位 願趁天尊關聖帝君(삼계해마대제신위 원진천존관성제군)이라고 하였다. 즉 다섯 번째의 주인공은 관음이며 관성제군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五呪(오주)란 다섯 번째에 빌어야 된다는 뜻이며 그 五呪(오주)는 예시 88절에 聖師醫統 慶州龍潭(성사의통 경주용담)이라 하였으니 그 사람은 경주 용담사람이며 대 스승으로 의통자 즉 해인이라는 것이다. 그라고 천지는 망량이 주장한다고 하나 천지도 일월이 없으면 빈껍데기라 하였던 것이며 일월은 竈王(조왕)이 주장 한다고 하였는데 竈王(조왕)이란 부엌을 관장하는 신으로 물의 本體(본체)神(신)을 말한다. 그리고 부엌이란 모든 음식을 조리하는 곳으로 먹어야 산다는 이치가 붙어 있고 또 성진은 칠성이 주장한다고 하나 성진은 북두 9성이다. 감추어져 있는 2성을 모르면 소용없는 것이다. ‘별자리 과학’에서 북두구성이란 생소한 이름이다. 몇 년 전 세계 천문학계에는 북두칠성의 여섯 번째 별자리 옆으로 두개의 별이 붙어 다닌다는 보고가 나왔다. 망원경과 관측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그러나 이미 동양의 천문학에서는 옛부터 북두구신(北斗九辰)이라 하여 북두칠성이 아니라 북두구성으로 불러왔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구려 시대부터 자체 별자리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갖고 있을 정도로 천문학이 발달했다. 천문학의 르네상스는 15세기 세종 때였다. “북두의 나머지 두 개의 성은 결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동양학에서 관이 열린다고 하는데, 참선과 수행 끝에 보이게 된 게 아닐까 짐작한다. 동양의 별자리는 인간세계의 축소판이었다. 일제 때 수많은 자료를 빼앗기고, 한문 연구가 쇠퇴하며 고서 해석을 못하고, 서양 천문학의 방법론이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맥이 끊긴 것이다. 그러므로 북두구성의 감추어져 있는 2성이 바로 음양이며 천지부모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사 2장 16절에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요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사오니 일음일양이 원리인 줄 아나이다.”고 아뢰니 증산께서 “너의 말이 옳도다.”고 하시고 공사를 잘 보았으니 “손님 대접을 잘 하라”고 분부하셨도다. 공신이 말씀대로 봉행하였느니라. 증산성사께서 이 음양도수를 끝내고 공신에게 “너는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고 분부하시고 “문왕(文王)의 도수와 이윤(伊尹)의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니라”』고 하셨던 것이다. 또 행록 3장 28절에 “강태공(姜太公)은 七十二(72)둔을 하고 음양둔을 못하였으나 나는 음양둔까지 하였노라”고 말씀하셨으니 나는 8음 8양 관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공사 2장 3절에 “바둑의 시조 단주(丹朱)의 해원도수를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려 함이라. 다섯 신선 중 한 신선은 주인으로 수수방관할 뿐이오. 네 신선은 판을 놓고 서로 패를 지어 따먹으려 하므로 날짜가 늦어서 승부가 결정되지 못하여 지금 최 수운을 청하여서 증인으로 세우고 승부를 결정코자 함이니 이 식혜는 수운을 대접하는 것이라” 말씀하시었다. 그러니 한사람은 주인이고 한사람은 손님인데 그 손님은 최수운으로 주인이 손님인 최수운에게 식혜로써 대접을 한 것이다. 식혜란 감주이며 단술이라고 하는데 醫統(의통)의 醫(의)자가 의원 의, 단술 의 무당 醫(의)字(자)이다. 즉 다시 말하면 주인이 손님에게 의통으로서 대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공숙(韓公淑)은 붓을 집으니라. 이십팔장과 이십사장을 마치기까지 종이쪽지를 집으니 벼룻집 속에 넣었던 종이쪽지가 한 장도 어기지 않았도다.” 고 했는데 붓은 글을 쓰는 도구이므로 사철이 바뀐 뒤에 다시 올 때에는 글로써 밝고 공정하게 밝힌다는 뜻이며 그 사람은 韓(한) 씨임을 암시 한 것이다. 또 당시의 벼룻집의 안에는 벼루, 먹, 먹물, 붓, 작은 칼 등의 용도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말은 각기 자기가 무엇이라고 주장하나 붓을 잡은 한공숙(韓公淑)이 모든 이치를 밝힌다는 뜻이다.

※ [참고] 북두구성; 북두칠성의 구성, 생성 원리가 ‘천지와 오행기운을 주관한다. 우리가 요일을 쓸 때에 일월을 쓰고(천지는 쓰지 않는다) 오행을 쓴다. 일요일, 월요일 하고서 그 다음에 화수목금토를 쓴다. 지금 우리 시간의 책력이 7일 도수로, 칠성 도수로 일주일을 한주로 끊어가지고 생활을 하는데, 그 구성 자체도 보면 천지일월 그리고 오행을 붙인 것이다. 칠성에는 칠성여래 대제군(七星如來 大帝君)이 있고 옥황상제가 계신다. ‘자미성(紫微星)’에서 ‘자(紫)’라고 하는 것은 붉을 자 자로서 단주가 계신 곳이다. ‘자미제군(紫微帝君)은 북두(北斗)의 제성(帝星)이며, 북두의 主宰者(주재자)이고, 뭇별의 임금(君父)이다.(紫微帝君者, 乃北斗之主宰, 衆星之君父也.) 따라서 자미제군은 북두구진과 삼태성의 수장(首)이다.(所以引紫微爲九辰三台之首也)’ 그러므로 자미제군은 뭇별들의 수장으로서 옥황상제를 모신다. 북두구신(北斗九辰)중천대신(中天大神)이란 중천(中天)은 하늘(天)의 중앙(中央)을 의미한다. 『북두본명연생경(北斗本命延生經)』에 "중천(中天)은 북두(北斗)의 중앙이다."라고 했다. 위로는 옥황상제님을(高尙玉皇고상옥황)을 받들고, 밑으로는 36조(曺=36명의 신명)를 거느린다. 이는 자미궁(紫微宮)에 계신 紫微帝君(자미제군)이 중생들이 생(生)한 선악(善惡) 장부를 관장하며, 모든 신선(神仙)들의 벼슬이 오르내리는 것을 알리는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상원구기(上元九炁) 사복천관(賜福天官) 요령원양대제(曜靈元陽大帝) 자미제군(紫微帝君)이라 부른다. 칠성은 이 모든 별자리의 머리, 중심이기 때문에 천상의 황극이다. 천체 우주의 별자리에서의 황극이 칠성이다. 그래서 이 칠성 기운을 크게 받는 사람이 맷돌 밑짝의 중쇠를 물어 들어 올린 증산으로 우주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또한 북두칠성을 현무라고 하며 우물 丼(정)자로 표현 한다. 북극성은 태을성으로 물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증산의 再生(재생)身(신)은 丼(정)씨 즉 우물귀틀 韓(한)씨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한공숙(韓公淑)의 韓(한)씨에게 공사를 본 것이다. 칠성의 위치는 북방이다. 모든 변화의 始原(시원)이다. 그리고 마지막 돌아가는 자리가 원시반본의 道(도)에 의해서 북방이다. 그래서 북방이 중천이 된다. 중천은 모든 하늘의 중심이란 뜻이다. 칠성은 국자모양으로 태을주이다.

※ [참고]; 태극진경 8장 2절 72. 하루는 말씀하시기를『진주는 내가 잡고 이제 뽑기까지 하였으니 까기만 하면 되는데 까기는 여반장(如反掌)이니 너희들이 하라. 진주(眞主)란 낙서(洛書)의 법(法)이니 낙서(洛書) 구궁(九宮)의 수(數)가 팔방(方)이 모두 오십임이니라. 또 낙서(洛書)의 좌선(左旋) 우선(右旋)하고 상생상극(相生相剋)하는 이치(理致)도 너희들이 깨달아야 하느니라.』하시며 낙서(洛書) 구궁도(九宮圖)를 가르치시니 다음 표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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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巽4 ㅣ 離9 ㅣ 坤2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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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震3 ㅣ 中5 ㅣ 兌7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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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艮8 ㅣ 坎1 ㅣ 乾6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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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하도수 55와 낙서수 45를 합하여 2로 나눈 50(大衍之數대연지수)을 기본으로 하여 태극인 1(體)을 빼고 49개(用)의 수로 괘를 뽑아서 점단한다.≫

※ [참고]; -  洛書와 人體의 生命科學  -

 河圖에 관한 이론을 서술하다 보면 낙서를 빠뜨릴 수가 없으며,  古來로 史書에서도 병기(倂記)되어 왔으니 史記의 孔子世家와, 淮南子의 眞訓에서 뿐만 아니라 주역의 繫辭傳,  漢書의 五行志등에서 河圖와 洛書는 태평치세에 있어서 상서로운 것으로 표현하였고, 聖人이 그 이치를 본받았다고 하였다. 하도와 마찬가지로 낙서의 이치는 陰陽과 五行의 이치, 천체와 지구의 공전과 자전하는 이치, 인체의 생명과학적인 이치가 내함 되어 있으니  이 또한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는 것에 뒤지지 않고 비례하여 그 진리적 가치가 더욱 뚜렷해져 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河圖의 五行은 左旋(좌선)하여 相生을 이루며, 洛書의 五行은 右旋(우선)하여 相剋을 이루고 있다고 말하여 오고 있다. 이 보다 더욱 깊은 이치가 낙서속에 숨어있으니, 天體는 陽으로써 左로 맴돌고(左旋), 땅은 陰으로써 우측으로 구른다(右轉)는 이치인 것이다. 陽은 그 성질이 左旋하며 上昇하니 天을 뜻하고 陰은 그 성질이 右轉하며 下降하니 地를 뜻하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으니, 人體의 生命科學과 洛書의 理致를 정확하게 응용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9. 증산성사께서 매양 뱃소리를 내시기에 종도들이 그 연유를 여쭈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우리 나라를 상등국으로 만들기 위해 서양신명을 불러와야 할지니 이제 배에 실어 오는 화물표에 따라 넘어오게 됨으로 그러하노라”고 하셨도다.


조선을 상등국으로 만들어 후천선경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 실제로 일을 하는 신명들은 진묵이 서양으로 거느리고 간 도통신과 이마두에 의해 서양으로 건너가 산업혁명을 일으킨 문명신, 그리고 강증산성사의 명을 받고 서양에 가서 역사하던 조선신명들은 이제 이들 신명들이 한국으로 넘어와 국민들과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일을 하여 한국이 전후(戰後)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낼 것임을 알려주신 말씀이다. 그렇게 하여 대한민국의 국운이 상승일로에 서면서 동시에 천하의 대세가 돌려 잡힐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30. 증산성사께서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제재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라고 말씀하셨도다.


◐ 여기에서 서신(西神)은 누구인가?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호남 서신 사명(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姜一淳湖南西神司命)이다. 즉 서신(西神)이란 가을을 맡은 신명이란 뜻이므로 가을은 큰 새의 노래 즉太乙(태을)이니 태을주신명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증산께서는 태을천상원군으로 만유를 제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23자 완성된 태을주법방으로 기도를 하면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의 감응(感應)이 있으리라. 천지를 개벽하는 공사를 조선에서 보신 강증산성사께서는 후천가을세상을 열어주시는 의미로 서신사명(西神司命)을 띠고 이 땅에 오셔서 무극대운을 열어주셨다. 지금은 우주변화의 원리상 우주의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지금까지 생성의 원리가 주축을 이루었으나 이후의 시대는 후천으로 수장(收藏)의 원리가 주축이 되는 것이다. 즉 가을은 결실과 수확의 계절이다. 여름내 무성하게 자라던 들판의 곡식과 나무들이 이제 알곡과 쭉정이로 나누어져 알곡은 거두어 씨종자로 남고 쭉정이는 한데 모아 불태워 버리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후천운이 다가오니 이제 알곡이냐 쭉정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편에 서냐에 따라서 차후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므로 가을은 생사의 기로에서 결단을 내려 생사를 판단하는 의(義)의 세상이기도 한 것이다. 쓸 데 있는 것은 남기고 쓸 데 없는 것은 버리는 것이 의(義)의 세계이다.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의즉결단(義則決斷)이라고도 하였다. 이제 선천의 낡은 껍데기는 버리고 새로운 운수를 맞이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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