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증산 성사께서 동곡에 머무실 때
그 동리의 주막집 주인 김사명(金士明)은 그의 아들 성옥(成玉)이 급병으로 죽은 것을 한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도저히 살 가망이 보이지 않자 아이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업고 동곡 약방으로 찾아왔도다. 증산께서 미리 아시고 “약방의 운이 비색하여 죽은 자를 업고 오는도다”고 말씀하시니라. 성옥의 모는 시체를 증산 앞에 눕히고 눈물을 흘리면서 살려주시기를 애원하므로 증산께서 웃으시며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눕히고 배를 밀어 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 “미수(眉叟)를 시켜 우암(尤菴)을 불러라”고 외치고 침을 흘려 죽은 아이의 입에 넣어주시니 그 아이는 곧 항문으로부터 시추물을 쏟고 소리를 치며 깨어나니라. 그리고 그 아이는 미음을 받아 마시고 나서 걸어서 제 집으로 돌아가니라.
● 미수(眉叟)를 시켜 우암(尤菴)을 불러라
미수(眉叟)는 허목(許木, 1595∼1682)의 호로 경서(經書)와 학문(學問)이 출중했던 거유(巨儒)로 남인(南人)의 영수였으며, 우암(尤庵)은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호로 서인(西人)의 거두이자 노론(老論)의 영수(領袖)로 특히 예론(禮論)에 밝았던 인물이다.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항상 주장이 상반되는 정적(政敵)관계였다.
조선조의 현종 숙종조 사이, 노론과 남인 간의 당파 싸움이 한창 치열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노론의 기둥인 송시열이 그만 병이 들어 눕게 되었다. 우암 송시열은 정객으로서 뿐만 아니라, 유학자로서도 일세를 풍미한 큰 인물이려니와,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청렴한 선비로서, 또 기골이 장대하고 역발산의 괴력을 지닌 장사로서도 일화를 많이 남긴 인물이다.
그는 좀 특이한 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했는데, 매일 아기의 오줌(童尿)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다른 건강을 과시하곤 했는데, 추운 겨울에 냉방에서 잠을 자도 그로 인해서 오히려 방안이 훈훈해졌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같이 절륜한 체력을 지녔던 그가 막중한 정사를 앞에 두고 그만 병으로 눕게 되었는데 백약이 무효하였다. 그는 스스로 자기의 병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아들을 불렀다. “지금 곧 미수대감께 가서 내 병세를 소상히 말씀드리고 화제약방문를 좀 얻어 오너라.” 미수가 누구인가?
그는 바로 당시 우암의 최대 정적인 남인의 영수(領首) 허목(許穆)을 말함이다. 당시 우암과 미수는 각기 노론과 남인을 이끌면서 대왕대비의 복상(服喪)문제를 비롯해서 대소 정사(政事)에 크게 대립하고 있었다. “아니, 장안에 허다한 의원들을 놔두고 왜 하필이면 미수대감에게 화제를 부탁하십니까? 천부당 만부당한 분부이십니다. 만일 화제에 독약이라도 넣으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가족들은 한결같이 펄펄 뛰었다. 그러나 우암은 가족들의 청을 못들은 체 하고 큰 아들에게 채근하였다. “어서 가서 미수대감을 뵙고 오너라.”
아들은 하는 수 없이 허목을 찾아가 우암의 병세를 이야기 하자 그것은 오줌을 지속적으로 마신 결과에서 오는 요독(尿毒)으로 인한 중독증세라고 하며 화제를 지어주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허목이 적어 준 화제를 보니 약재 중에 독약인 비상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설마 했던 일인데 실제로 독약이 들어 있는 것을 본 가족들은 대경실색하였다.
“보십시오. 당초에 저희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는 아버님을 독살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아무리 남인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우암은 가족들이 허목을 성토하는 것을 크게 꾸짖고, 곧 화제대로 약을 지어오게 하였다. “아니, 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독약이 든 약을 잡수시다니요?” 가족들이 극구 나서서 우암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였으나 우암은 끝내 독약이 든 약을 마시고야 말았다. 우암은 곧 쓰러져야 했으나, 이러한 가족들의 우려와는 반대로 오히려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것은 바로 독으로 독을 중화시키는 이독치독(以毒治毒)의 방법으로 극약처방이다.
우암은 미수가 의술에 밝고 공명정대한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미수는 또한 우암의 덕망과 도량을 믿었기에 화제를 물리치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것이다. 미수와 우암은 경륜과 포부가 달라 정파(政派)를 달리하고, 정사(政事)를 논함에 있어서는 갑론을박하여도 인격적으로 서로 믿고 존경하며 아껴주는 도량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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