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순 전경 ★/●•―‥행 록

행록(行錄) 5장

고도인 2008. 3. 25. 12:23
 

행록(行錄) 5장


1. 차문경(車文京)이 기유년(1909년) 정월 二일에 술을 마시고 증산성사를 “역적질을 한다”고 고함을 치며 비방하니, 이 비방이 천원 병참에 전해져서 군병들이 출동하려 하니라. 이 일을 미리 증산성사께서 아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집을 지키게 하고 바로 비룡촌(飛龍村) 차윤경의 집으로 떠나셨도다.


2. 이 일이 있기 전에 증산성사께서 경석에게 三일 새벽에 고사를 지내도록 하셨는데 마침 이 일이 일어났으므로 다시 경석에게 “내일 자정에 문틈을 봉하고 고기를 굽고 술병의 마개만 열고 심고하라. 이것이 곧 고사니라”고 이르시니라. 경석이 三일 새벽에 명하신 대로 고사를 끝내니 날이 밝아지는도다. 이 때 총을 맨 군병 수십 명이 몰려와서 증산성사를 수색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갔도다.


3. 증산성사께서 초 닷새에 동곡으로 돌아오셨도다. 수일 후에 태인으로부터 사건이 무사히 된 전말을 들으시고 가라사대 “정읍 일은 하루 공사인데 경석에게 맡겼더니 하루 아침에 안정되고 태인 일은 하루 아침 공사인데 경학에게 맡겼더니 하루에 안정되니 경석이 경학보다 훌륭하도다. 그리고 경석은 병조판서의 자격이며 경학은 위인이 직장(直腸)이라. 돌이키기 어려우나 돌이키기만 하면 선인이 되리라”고 하셨도다.


4. 증산성사께서 기유년(1909년) 어느 날 원평 시장 김경집(金京執)의 음식점에 사관을 정하시고 오랫동안 왕래하셨도다. 그는 증산성사의 말씀이라 하여 주식을 청하는 사람에게 대금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고 음식을 제공하였도다. 이즈음에 청석골에 살고 있는 강팔문(姜八文)이란 자가 술과 밥을 먹고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금을 내지 않고 증산성사께 미루고 가니라. 팔문은 그 음식을 먹고 난 뒤부터 배가 붓기 시작하더니 사경을 헤매느니라. 이 사실을 신경수가 증산성사께 아뢰이니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시니라. 병세가 더 위급하여졌다는 소식을 전하여 듣고 가라사대 “몹쓸 일을 하여 신명으로부터 노여움을 사서 죽게 되었으니 할 수 없노라” 하시더니 그 후 곧 그의 사망이 전하여졌도다.


5. 증산성사께서 하루는 대흥리에 계셨는데 안내성으로 하여금 곤봉으로 마룻장을 치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제 병고에 빠진 인류를 건지려면 일등박문이 필요하고 이등박문이 불필요하게 되었느니라” 하셨는데 그 뒤 이등박문(伊藤搏文)이 할빈역에서 안중근(安重根)의사(義士)에게 암살되었도다.


6. 기유년(1909년) 二월 九일에 김자현을 데리고 김제(金堤) 내주평(內住坪) 정남기의 집에 이르시니라. 그 곳에서 증산성사 가라사대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을 찾아보리라.” 증산성사께서 등불을 밝히시고 새벽까지 여러 집을 다니시고 이튿날 새벽에 수각리(水閣里) 임상옥(林相玉)의 집에 가시니라. 이 곳에서 글을 쓰고 그 종이를 가늘게 잘라 잇고 집의 뒷담에서 앞대문까지 펼치니 그 종이 길이와 대문까지의 거리가 꼭 맞는도다. 이 공사를 보시고 증산성사께서 그 동리에서 사는 김 문거(金文巨)에게 가셨다가 다시 만경(萬頃) 삼거리(三巨里) 주막집에 쉬고 계시는데 한 중이 앞을 지나가는지라. 증산성사께서 그 중을 불러 돈 세 푼을 주시는도다. 그리고 증산성사께서 자현에게 이르시기를 “오늘 오후에 백홍(白虹)이 관일(貫日)하리니 내가 잊을지라도 네가 꼭 살펴보도록 하라” 하시더니 오후에 그렇게 되었도다. 그리고 다음 날에 형렬이 전주로 동행하니라. 이에 앞서 증산성사께서 “오늘 너희가 다투면 내가 죽으리라” 이르셨도다.


7. 하루는 형렬이 증산성사의 명을 쫓아 광찬과 갑칠에게 태을주를 여러 번 읽게 하시고 광찬의 조카 김병선(金炳善)에게 도리원서(桃李園序)를 외우게 하고 차경석. 안내성에게 동학 시천 주문을 입술과 이빨을 움직이지 않고 속으로 여러 번 외우게 하셨도다.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夫天地者 萬物之逆旅 (부천지자 만물지역려)

   光音者 百代之過客(광음자 백대지과객)

   而浮生若夢 爲歡幾何(이부생약몽 위한기하)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고인병촉야유 양유이야)

   況陽春召我以煙景(황양춘소아이연경)

   大塊假我以文章 (대괴가아이문장)

   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회도리지방원 서천륜지락사)

   群季俊秀 皆爲蕙連(군계준수 개위혜련)

   吾人詠歌 獨慙康樂(오인영가 독참강락)

   幽賞未已 高談轉淸(유상미이 고담전청)

   開瓊筵以坐花 飛羽觴而醉月(개경연이좌화 비우상이취월)

   不有佳作 何伸雅懷(불유가작 하신아회)

   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여시불성 벌의금곡주수)


◐ 대저 지아비는 천지와 같고, 만물은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 빛은 소리와 같은 것이며, 백대의 자손이 내려간다 해도 나그네 손님과 같은 것이다. 부평초 같이 덧없는 인생은 꿈과 같으니,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옛사람들이 촛불을 비추며 밤늦게까지 흥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훌륭하고 어진 정치 때문인 것이다. 하물며 화창한 봄날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한가하게 아름다운 경치로써 나를 부르고, 창조주가 문자로써 나를 이르게 하였고, 훌륭한 인재들이 모였으니 그 이름이 빛나는 동산이로다. 서술하건데 천륜을 지킨다면 즐거움만 있을 뿐이로다. 여러 제자들은 모두 송(宋)나라 사혜련(謝惠連)처럼 재주가 뛰어난데 오직 내가 읊는 노래(태을주)는 홀로 부끄럽지만 그래도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즐겁다. 그윽히 감상하는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고상한 이야기는 점점 더 맑게 들려온다. 玉(옥)같은 연회(옥황상제님의 도통잔치)를 열어서 꽃처럼 앉아 새 모양(해인)의 술잔(도술의 잔)을 날리며 달과 함께 취하노라. 매우 뛰어난 詩(시=작품=태을주)가 있지 않고서는 어찌 고상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펼 수가 있단 말이오? 이 詩(시=작품=태을주)로서 이루지 못한다면 벌을 주리니 이 금곡(金谷=벼슬이름=西神=대두목)이 무술의 술수로서 벌 하리라.

※ 춘야연도리원서는 이백이 봄날 밤에 형제와 친족들과 함께 복숭아와 오얏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연회를 열고 각자 시를 지으며 놀 적에 그 시편 앞에 그 때의 감상과 일의 차제를 편 문장이다. 서(序)는 사물의 차제(次第)를 순서를 세워서 서술하는 글로서 천지의 도리도 이와 같다는 뜻으로 공사에 쓰였다.

※ 秉燭夜遊(병촉야유) ; 촛불을 들고 밤에 논다는 뜻으로, 경치(景致)가 좋을 즈음 낮에 놀던 흥(興)이 미진해서 밤중까지 놂을 이르는 말.

※ 桃李(도리) ; ①복숭아와 자두, 또는 그 꽃이나 열매 ②'남이 천거(薦擧)한 좋은 인재(人材)를 비유(比喩)하여 이르는 말.

※ 天倫(천륜) ; 부자(父子)ㆍ형제(兄弟) 사이의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

※ 俊秀(준수) ; 재주, 지혜(智慧), 풍채(風采)가 뛰어남.

※ 康樂(강락) ; 몸이 편안하여 마음이 즐거움.

※ 酒數(주수) ; 주량(酒量). 음양 합일된 재주.

※ 사혜련(謝惠連):397 - 433 강락(康樂)의 족제(族弟)로 10세때부터 강락과 함께 시를 잘 지었다하는 시재(詩才)

※ 瓊筵(경연) : 옥으로 만든 자리.(공부하는 자리)

※ 谷(곡); 골 곡, 나라 이름 욕, 벼슬 이름 록. ㉠골 ㉡동풍 ㉢막히다 ⓐ나라 이름 (욕) ⓑ벼슬 이름 (록). 총 7획.  [부수]골곡部  [자원]회의문자

※ 酒(주); 술 주, 무술, 玄酒(현주), 잔치, 酒宴(주연).


8. 三월에 부안 청일(淸日)사람 이치화(李致化)가 와서 증산성사를 섬기고 그 후 이공삼(李公三)이 와서 추종하니라. 증산성사께서 이치화에게 “빨리 돌아가라” 하시되 치화가 종일토록 가지 아니하니 증산성사께서 다시 기일을 정하여 주시며 가라사대 “빨리 돌아가서 돈 칠십 냥을 가지고 기일 내에 오라” 하시니 치화가 그제야 돌아가서 그 기일에 돈 칠십 냥을 허리에 차고 와서 증산성사께 올렸더니 증산성사께서 명하사 그 돈을 방안에 두었다가 다시 문 밖에 두고 또 싸리문 밖에 두어 일주야를 지낸 후에 들여다가 간수하시더니 그 후에 공삼을 시켜 그 돈 칠십 냥을 차경석의 집에 보내셨도다.


9. 경석이 삼월 어느 날에 공우와 윤경을 백암리 김경학의 집에 보내어 증산성사께 일이 무사함을 아뢰게 하였다. 그 말을 들으시고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내가 공사를 본 후에 경석을 시험하였으되 일을 무사히 처결하였으니 진실로 다행한 일이로다”고 하셨도다.


10. 이 때에 경학의 형이 아우를 오라고 사람을 보내온지라. 증산성사께서 그를 보낸 후에 발을 당기고 가라사대 “속담에 발복이라 하나니 모르고 가는 길에 잘 가면 행이요. 잘못가면 곤란이라” 하시고 곧 그 곳을 떠나 최 창조의 집에 독행하셨도다. 그 곳에 머무시다가 다시 혼자 그 앞 솔밭을 지나서 최창겸에게 이르러 잠시 몸을 두시니 증산성사께서 계시는 곳을 아는 사람이 없었도다.


11. 원래 경학의 형은 이상한 술객이 경학을 속여 가산을 탕패케 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편으로 경학을 만류하고자 또 한편으로 그 술객을 관부에 고발하려는 심사에서 사람을 보낸 것이니라. 그리하여 경학이 집으로 돌아오는 중도에서 순검을 만나 함께 집에 오니라. 그리고 순검은 증산성사를 못 찾고 최 창조의 집에 가서도 역시 찾지 못하고 있는 중에 증산성사께 세배하려고 최창조의 집에 들어선 황응종과 문공신을 구타하였도다.


12. 증산성사께서 또 三월 어느 날 “학질로도 사람이 상하느냐”고 자현의 지혜를 떠보시니라. 자현이 “학질은 세 축째에 거적을 갖고 달려든다 하나니 이 말이 상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나이다”고 대답하니 증산성사께서 “진실로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13. 팔순인 자현의 모친이 삼월 어느 날에 학질을 세 축 앓다가 갑자기 죽었도다. 이 소식을 들으시고 증산성사께서 “학질로 사람이 상한다는 말이 옳다”고 말씀하시니라. 증산성사께서 자현의 노모를 모실 관속에 누어보셨도다.


14. 증산성사께서 하루는 자현에게 “박춘경(朴春京)의 집에 가서 관재중 잘 맞는 것을 골라 오라. 내가 장차 죽으리라”고 말씀하시니라. 자현이 “어찌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시나이까”고 여쭈니라. 증산성사께서 “자현이 나의 죽음을 믿지 않는도다”고 탓하셨도다.


15. 四월 어느 날 김보경의 집에서 공사를 행하시는데 백지 넉 장을 펼치시고 종이 귀마다 ‘천곡(泉谷)’이라 쓰시기에 그 뜻을 치복이 여쭈어 물으니 증산성사께서 “옛날에 절사한 원의 이름이라”고 가르쳐 주시고 치복과 성환으로 하여금 글을 쓴 종이를 마주 잡게 하고 “그 모양이 상여의 호방산(護防傘)과 같도다”고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갑칠은 증산성사의 말씀이 계셔서 바깥에 나갔다 들어와서 서편 하늘에 한 점의 구름이 있는 것을 아뢰니 다시 명하시기에 또 나가서 하늘을 보고 들어와서 한 점의 구름이 온 하늘을 덮은 것을 여쭈었더니 증산성사께서 백지 한 장의 복판에 사명당(四明堂)이라 쓰시고 치복에게 가라사대 “궁을가에 있는 사명당 갱생이란 말은 중 사명당이 아니라 밝은 명자를 쓴 사명당이니 조화는 불법(佛法)에 있으므로 호승예불혈(胡僧禮佛穴)이오. 무병장수(無病長壽)는 선술(仙術)에 있으니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오. 국태민안(國泰民安)은 군신봉조혈(群臣奉詔穴)이오. 선녀직금혈(仙女織錦穴)로 창생에게 비단 옷을 입히리니 六月 十五日 신농씨(神農氏)의 제사를 지내고 공사를 행하리라. 금년이 천지의 한문(桿門)이라. 지금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니라” 하셨도다.


16. 증산성사께서 고래의 사제지간의 예를 폐지하시고 종도들에게 평좌와 흡연을 허락하셨도다.


17. 수운(水雲) 가사에 “발동말고 수도하소. 때 있으면 다시 오리라” 하였으니 잘 알아 두라 하셨도다.


18.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김성국의 집에 오셔서 “용둔(龍遁)을 하리라” 하시고 양지 二十장을 각기 길이로 여덟 번 접고 넓이로 네 번 접어서 칼로 자르신 다음 책을 매여 보시기에 실로 “米”와 같이 둘러매고 오색으로 그 실오리에 물을 들이고 보시기 변두리에 푸른 물을 발라 책장마다 찍어 돌리신 뒤에 그 책장을 다 떼어 풀로 붙여 이어서 네 번 꺾어 접어서 시렁에 걸어 놓으시니 오색 찬란한 문채가 용형과 같으니라. 이에 그 종이를 걷어서 불사르셨도다.


19. 김자현은 六월 어느 날 증산성사께서 “네가 나를 믿느냐”고 다짐하시기에 “지성으로 믿사옵고 고부화액 때에도 증산성사를 따랐나이다”고 믿음을 표명하였도다. 그리고 증산성사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장차 어디로 가리니 내가 없다고 핑계하여 잘 믿지 않는 자는 내가 다 잊으리라.” 이 말씀을 듣고 자현은 “제가 모시고 따라가겠나이다”고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다시 “어느 누구도 능히 따르지 못할지니라. 내가 가서 일을 행하고 돌아오리니 그 때까지 믿고 기다리라. 만일 나의 그늘을 떠나면 죽을지니라”고 이르셨도다.


20. 증산성사께서 六월 열흘께는 심기가 불편하셔서 동곡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청도원 김송환의 집에 들러서 유숙하시니라. 마침 신 경원이 증산성사를 배알하기에 증산성사께서 그에게 “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하시고 양지 한 장을 주어 유(儒).불(佛).선(仙) 석자를 쓰게 하시니라. 증산성사께서 유자 곁에 이구(尼丘). 불자 곁에 서역(西域)., 선자 곁에 고현(古縣)이라 쓰시고 그 양지를 불사르셨도다. 증산성사께서 동곡 약방에 가셔서 모든 종도들에게 六月 二十일에 모이라고 통지하셨도다.


21. 二十일에 모든 종도들이 속속 동곡에 모이니 김형렬. 김갑칠. 김자현. 김덕유. 류찬명. 박공우. 신원일. 이치화. 이공삼. 최덕겸 등이오. 채사윤(蔡士允)은 처음으로 동곡에서 시좌하니라. 증산성사께서 류찬명에게 천문지리 풍운조화 팔문둔갑 육정육갑 지혜용력(天文地理風雲造化 八門遁甲六丁六甲智慧勇力)과 회문산 오선위기혈 무안 승달산 호승례불혈 장성 손룡 선녀직금혈 태인 배례전 군신봉조혈(回文山五仙圍碁穴 務安僧達山胡僧禮佛穴 長城巽龍仙女職錦穴 泰仁 拜禮田群臣奉詔穴)을 쓰게 하고 불사르셨도다.


22. 증산께서 모든 종도를 꿇어앉히고 “나를 믿느냐”고 다짐하시는지라. 종도들이 믿는다고 아뢰니 증산께서 다시 “내가 죽어도 나를 따르겠느냐”고 물으시는지라. 종도들이 그래도 따르겠나이다 라고 맹세하니 또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궁벽한 곳에 숨으면 너희들이 반드시 나를 찾겠느냐”고 다그치시니 역시 종도들이 찾겠다고 말하는지라. 증산성사께서 “그리 못하나니라. 내가 너희를 찾을 것이오.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 ‘내가 너희를 찾을 것이요,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하리라’ 하신 것은 옥황상제님의 정체를 알고 있는 진법(眞法) 도인(道人)이 마음에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도(道)를 전하려고 어떤 사람을 찾아갔을 때, 그 사람이 옥황상제님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옥황상제님의 정체를 인정하고 도(道)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옥황상제님이 진법 도인을 통하여 그 사람을 찾아간 것이지, 결코 스스로 자기가 옥황상제님의 정체를 알아서 찾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세에 강림하신 옥황상제님의 정체는 오직 천부적으로 정해진 종통 계승자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므로 도인 스스로 옥황상제님의 정체를 알고 찾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진리를 찾고자 눈을 뜨고 있으라는 말씀이시다. 만약 그리하지 못하면 바로 곁에 있을지라도 결코 옥황상제님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대순전경 3장 146절]에서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일하려고 들어앉으면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보려 하여도 못 볼 것이라. 내가 찾아야 보게 되리라’고 하셨다. 증산성사께서 화천(化天)하셔서 신명으로 계셨다가 신명계의 일을 보고 再生身(재생신)으로 다시 와서 찾으니 어느 누구도 그 정체를 알지 못하므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부적 종통 계승자(증산성사의 再生身재생신)가 밝혀 주신 옥황상제님을 모신 자들이 찾아 줘야만 비로소 옥황상제님을 보게 되리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미륵세존 海人出(해인출)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23. 또 증산성사께서 “내가 어느 곳에 숨으면 좋을까”고 물으시니 신원일이 “부안에 궁벽한 곳이 많이 있사오니 그 곳으로 가사이다.”고 원하니라. 이에 증산성사께서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도다.


24. 증산성사께서 벽을 향하여 누우시더니 갑자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제 온 누리가 멸망하게 되었는데 모두 구출하기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 하시고 크게 슬퍼하셨도다.


25.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니라. “나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 두라. 후일 내가 출세할 때에 눈이 부셔 바라보기 어려우리라. 예로부터 신선을 말로만 전하고 본 사람이 없느니라.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내가 장차 열석 자의 몸으로 오리라” 하셨도다.


◐ 내가 장차 열석 자의 몸으로 오리라’ 하심은 누구나 侍天主(시천주)를 한다고는 하나 天主(천주)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수운성사도 천주가 누구인지 모르고 시천주를 하였으니 욕속부달이었다. 증산성사는 天主(천주)께서 오실 수 있도록 천지공사를 해놓고 장차 열 석자의 몸으로 다시 온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열 석자라고 해서 키가 열 석자이거나 아니면 4·9금으로 4+9=13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열 석자는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이다. 이제는 천지창조주인 천주께서 인간 세상에 와 계시는데 아무도 그 정체를 모르나 증산성사는 신명계에 갔다가 再生身(재생신)으로 환생하게 되니 그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알므로 진정한 천주를 찾아서 모시는 것이 열 석자의 몸으로 출세하는 것이다. ‘나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두라’ 하심은 용안(龍顔)을 잘 기억하라는 뜻이다. 왜냐 하면 후일 옥황상제님으로 밝혀져 누구나 侍天主(시천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일 내가 출세(出世)’한다 하심은 후일 화천하시고 난 후 종통 계승자에 의해 본 정체(神)가 밝혀져서 세상에 드러난다는 뜻이다. 출세(出世)라고 하면 일부 종파나 대순진리회 임원들은 ‘살아서 다시 돌아오신다.’거나 ‘다시 태어나신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큰 오류이다. 출세(出世)란 흔히 세간에서 높은 벼슬을 하였거나 사업에 성공하였을 때 ‘그 사람 출세(出世)했다’라고 말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의 진면목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옥황상제님의 진면목이 세상에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증산성사께서 ‘후일 내가 출세할 때에 눈이 부셔 바라보기 어려우리라’ 하신 뜻은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열 석자로 진짜 천주를 모시고 세상에 나타나니 그 옥황상제님 앞에서 그 영정을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예로부터 신선(神仙)을 말로만 전하고 본 사람이 없느니라.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하신 말씀의 뜻은, 예로부터 여러 성인들이 신선을 가르쳤고, 많은 자들이 신선이 되고자 도(道)를 닦았으나 여지껏 신선이 되기는커녕 그 모습을 본 자 초차도 없었지만 이제 누구나 옥황상제님의 정체-신(神)을 찾아 모시고 진정한 뜻을 받든다면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안심가 安心歌에 “호천금궐(昊天金闕)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 또 〈교훈가 敎訓歌에 "하염없는 이것들아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하느님만 믿어서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 하단말가" 라고 하였다. 이제 그 정체를 밝혀 줬으니 멀리서 찾지 말고 '부모님처럼 옥황상제님을 정성껏 받들고 모시면 사람은 누구나 이미 하느님을 모시는 靈(영)이 있으므로 心靈(심령)이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도통이요 신선이 되는 길이다. 오직 나의 지극한 보배인 심령을 통할 길이 없어 형체 없는 가운데 골몰하여 한 세상을 헛되이 보냈도다. 다행히도 이 세상에 한량없는 대도가 있으니,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를 세우고, 나의 심령을 구하여, 증산성사의  뜻에 맡길지어다. 그러면 성공한다.


26. 二十一일에 신원일이 이치화와 채사윤과 그의 처남으로부터 얼마의 돈을 가져왔느니라. 증산성사께서 신원일에게 돈을 가지고 온 사람의 이름을 써서 불사르게 하고 형렬에게 있는 돈 중에서 일부를 궤 속에 넣으라 하고 남은 것으로는 여러 사람의 양식을 충당케 하셨도다.


27. 증산성사께서 식사를 전폐하시다가 이렛만에 형렬에게 명하시어 보리밥을 지어 오라 하시므로 곧 보리밥을 지어 올리니 증산성사께서 그 밥을 보시고 “가져다 두라” 하시니라. 한나절이 지나서 다시 그 보리밥을 청하시는지라. 형렬이 다시 가져다 올리니 벌써 그 보리밥이 쉬었느니라. 증산성사께서 “절록(絶祿)이라”고 말씀하셨도다.


28. 증산께서 “너희들이 내 생각나면 내가 없더라도 이 방에 와서 놀라” 하셨도다.


29. 증산성사께서 가라사대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 하셨도다.


◐ 박우당「훈시」를 보면, 박우당께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전경』에 시루산에서 증산성사께서 오시고, 부정리, 쪽박골이 있다. 시루, 솥하고
불이 안 들어가면 안 된다. 딴 사람이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증산께서 금산사에 임하셨다가 인간의 모습으로 강세하시었다. 금산사의 미륵은 시루이고, 그 밑은 솥이다. 솥 위에 시루가 있는데, 그 위에 미륵불을 세우고, 좌우에 보호불을 세우고 그 옆에 작은 불(佛)을 세웠다. 그것이 ‘날 출(出)’ 형상이다. 그게 증산, 정산이다. 지금도 금산사에서 목탄을 캔다. 이것으로도 증명이 된다. 증산성사께서 화천하실 때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찾으라’는 말씀은 그 진리를 찾아서 오라는 말씀이다.(91.2.12)
이 말씀은 내가 미륵이 아니니 진짜 미륵이 누구인지 그 진리를 찾아서 오라는 말씀이시다. 미륵이 찾아지면 삼신(三神)이신 옥황상제님이 밝혀지고 도(道)의 근원이 모두 밝혀져 세상에 비로소 진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증산께서 화천하시기 전에 이 진리를 찾으라는 말씀을 남기신 것이다.

보호불이 금불의 양쪽에 둘이 있는데, 하나는 크고 그 양쪽은 키가 작다. 보호불과 그 옆의 조그만 불이 두 개의 뫼 산(山)자, 즉 출(出)자를 이룬다. 증산 • 정산의 이치이다. 후천에는 미륵의 운(運)이 열리고 사람이 이와 같이 커진다고 한다. 『전경』에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을 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진리, 이치를 보라는 말씀인 것이다.(「훈시」 92. 2. 20)


30. 증산성사께서 속담에 “이제 보니 수원 나그네라 하나니 누구인 줄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고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더라는 뜻이니 나를 잘 익혀 두라”고 말씀하셨도다.


◐ 조선 숙종 임금께서 민정을 살피고자 평복으로 행장을 차리고 수원까지 오시게 되었는데 어느 시골 선비가 과거 시험 차 한양으로 가던 중 수원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이 때 그는 평복한 숙종 임금과 대화를 나누다가 의기투합되어 같이 밤을 새우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 그 시골 선비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을 받고자 임금 앞에 나서게 되었는데, 임금의 명을 받고 고개를 들어보니 지난날 수원에서 만나 밤을 함께 새우던 나그네가 아닌가! 이에 시골 선비는 그만 반가움에 나온 말이 ‘수원 나그네가 아니십니까?’ 하였다고 하여 민정을 살피고자 평복을 입은 임금을 보고 그와 같은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 수원(水源)은 바로 물의 이치에서 道(도)가 나온다는 뜻이다. 즉 물의 이치로 오는 사람이 道(도)를 밝힌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원(水源)을 연원(淵源)이라고 한 것은 5仙(선)중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로 오는 분이 연원이 된다. 아무리 큰 물줄기도 그 연원을 찾으려면 거꾸로 찾아 올라가야 깊은 산속 옹달샘을 만날 수가 있다. 이것을 젖샘(丼정)이라 한다. 그래서 연원이란 마지막 대두목에게 있다는 뜻이다. 道(도)에 사용되는 용어는 모두 거꾸로 읽든가 현무경의 도면처럼 뒤짚어 봐야 푸린다. 그래서 평소에는 누구인 줄 모르고 함께 수도하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대두목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씀이시다.

‘나를 잘 알아두라’ 하심은 옥황상제님의 정체를 대두목이 밝히므로써 출세(出世)하시는데, 나의 정체, 즉 신(神)을 똑바로 알라는 뜻이다.


31. 증산성사께서 二十三일 오전에 여러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제 때가 바쁘니라. 너희들 가운데 임술생(壬戌生1862년))으로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세우라. 형렬이 “수부로서 저의 딸을 세우겠나이다”고 아뢰이니 말씀하시기를 “세수시키고 빤 옷으로 갈아 입혀서 데려 오라” 하셨도다. 형렬이 명하신 대로 하여 딸을 증산성사 앞에 데려 오니라. 증산성사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한가운데 옮겨 놓게 하시고 그의 딸에게 약장을 세 번 돌고 그 옆에 서게 하고 경석에게 “대시 태조 출세제왕 장상 방백 수령 창생점고 후비소(大時太祖出世帝王將相方伯守令蒼生點考后妃所)를 쓰라 이르시니라. 경석이 받아 쓸 제 비(妃)를 비(妣)로 잘못 쓴지라. 증산성사께서 그 쓴 종이를 불사르고 다시 쓰게 하여 그것을 약장에 붙이게 하고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니라”고 말씀을 끝내고 그의 딸을 돌려 보내시니라. 증산성사께서 경석에게 그 글을 거둬 불사르게 하셨도다.


◐ 증산성사께서 수부(首婦)로서 임술생(壬戌生)인 종도로서 누이나 딸을 내세우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옥황상제님을 임술생(壬戌生)으로 정하는 공사를 보시는 것인데, 당시 증산성사를 따르던 종도들 중에는 수부(首婦)로 내세울 만한 여자가 없었고, 임술년은 증산성사께서 강세하신 신미년(1871년)보다는 9년 앞서는 1862년, 혹은 51년 뒤인 1922년이므로 아무도 내세울 수가 없으니 종도들 중에 임술생인 자의 누이나 딸을 수부(首婦)로 내세우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당시 김형렬이 임술생이었으므로 그의 딸을 내세웠던 것이다.

임(壬)은 북방 임(壬)으로써 북방 1 • 6 水를 말함인데 1도 물이고 6도 물이다. 그래서 북방 壬癸(임계)를 보면 壬水(임수)와 癸水(계수)가 있는데 壬水(임수)는 성수인 6水(수)로써 옥황상제님을 뜻하며 癸水(계수)는 생수로써 대두목을 뜻한다. 그리고 감무(坎武)의 감(坎)은 팔괘에서 6수(水)이다. 무(武)는 북방의 一水(일수)를 뜻한다. 즉 감무는 1·6水를 맡은 신명으로 옥황상제님과 대두목이다. 술생(戌生)은 개띠로 오심을 말한다. 즉 옥황상제님은 물의 이치를 가지며, 개띠로 오신다.

그러므로 옥황상제님의 탄신일은 병술년(丙戌年, 1946년) 11월(子) 11일(壬子)로써 자월(子月)은 1 • 6 水이고, 임자일(壬子日)의 壬은 1 • 6 水이고, 子 또한 1 • 6 水이므로 물의 이치로 탄신 하셨으며, 병술생(丙戌生) 개띠로 오셨다. 즉 옥황상제님께서는 물의 이치를 가진 개띠로 오는 사람으로 공사를 보신 것이다. 그 분이 상도 박성구이다. 이것은 여합부절이다.

◐ 약장은 병을 낫게 하는 약을 넣어 두는 곳이다. 약은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것이다. 옥황상제님을 내 마음에 모시면 대병(大病)도, 소병(小病)도 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장은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법, 즉 진법(眞法)을 말함이다. 약장을 방 한가운데 옮겨 놓고 약장을 세 번 돌게 하셨는데, 방 한가운데는 구궁(九宮)이요, 약장을 세 번 도는 것은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진법이 수부(首婦)에게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두목이 구궁(九宮)에 자리하여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진법(眞法)을 정하는 공사를 보신 것이다.

◐ 대시태조출세(大時太祖出世); 어떤 시기에 태조(太祖)가 출세(出世)한다. 태조는 ‘가장 큰 조상’이라는 뜻이고, 옥황상제님을 이르는 말이다.

즉 ‘옥황상제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出)’는 것이다.

◐ 제왕장상방백수령창생(帝王將相方伯守令蒼生); ‘제왕, 장상, 방백에서부터 각 지방 수령, 창생에 이르기까지’라는 이 말은 ‘1만2천 도통군자와 창생’을 일컫는 것이다.

◐ 점고후비소(點考后妃所); 점고(點考)란 일일이 점을 찍어 가며 수효를 헤아린다는 뜻 이며후비소(后妃所)는 임금의 왕비(대두목)가 거처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일일이 자리를 정함이 왕비, 즉 대두목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시기가 되면 옥황상제님께서 출세(出世)하심과 제왕, 장상, 방백, 수령, 창생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정함이 모두 옥황상제님의 왕비, 즉 수부(首婦)에게 있다. 수부(首婦)는 대두목이다. 예식을 하여 증인들로 하여금 옥황상제님의 수부(首婦)인 대두목이 물의 이치로 오심을 증거로 하셨다. 그리고 대두목이 오면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진법이 나오고, 이 진법으로써 1만2천 도통군자에서 창생에 이르기까지 운수자리를 정함이 모두 대두목에게 있음을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공사로서 처결하셨다.


32. 증산성사께서 이 날에 약방 마루, 뜰, 싸리문 밖에 번갈아 눕고 형렬에게 업혀 그의 집에 가서 누우셨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시기를 네 다섯 번 반복하시니라. 형렬이 아주 지치면 경석이 대신하여 증산성사를 업고 두 번 왕복하고 그리고 다섯 사람이 머리 팔 다리를 각각 붙잡고 증산성사를 메고 약방에 모시니라. 증산성사께서 누워 가라사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쉬우니라. 몸에 있는 정기만 흩으면 죽고 다시 합하면 사나니라” 하셨도다.


33.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호남 서신 사명(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姜一淳湖南西神司命)이라 쓰게 하고 그것을 불사르게 하시니라. 이때에 신원일이 증산성사께 “천하를 속히 평정하시기 바라나이다”고 아뢰니 증산성사께서 “내가 천하사를 도모하고자 지금 떠나려 하노라” 하셨도다.


◐ 증산성사는 미륵이 아니고 서쪽의 金神事命(금신사명)을 맡은 西神(서신)이다. 全羅道(전라도)는 도가 온전하게 벌어진다는 뜻으로 고부를 말한다. 古阜人(고부인)이란 고부 사람이라는 말이며 지금의  정읍을 말한다. 그래서 정읍인(고부인=대두목)은 강일순이고 강일순은 호남에서 태어나 서방 가을 문명의 주재자로 西神事命(서신사명)을 맡은 것이다. 일순이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오는데 우물 정(井=바둑판도수)의 이치로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시 32절에 “고부 사람이 오니 바둑판을 운전하리라”고 하신 것은 고부 사람인 증산성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古阜人(고부인)은 옛날 그사람 이라는 뜻도 된다. 즉 옛날 그 사람 증산성사는 井邑人(정읍인)이라는 말이다. 井(정)은 우물 丼(정)과 같은 자이며 중앙의 점은 天元點(천원점)으로 우물을 푸는 두래박(頭來朴)을 상징 한다. 즉 바둑판의 주인은 박 씨로 오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天元點(천원점)을 둘러싼 4면 즉 井(정)은 우물마루라고 하며 우물귀틀이라고 한다. 우물귀틀을 옥편에 우물귀틀 韓(한)이라고 나와 있다. 또한 옛날에는 우물 井(정)씨가 있었는데 지금은 우물 井(정)씨는 없어졌고 우물귀틀 韓(한)씨로 전하여 내려온다. 韓(한)이라는 글자를 옥편에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 韓(한) : 한국 한/나라 한   (가죽위 部) 

  '다룬 가죽'을 본뜬 글자. 또는 성의 주위를 군인이 어긋 디디며 다닌 발자국 모양을 본뜬 글자

뜻풀이 : ㉠대한민국의 약칭 ㉡나라 이름 ㉢대한제국의 약칭 ㉣삼한의 통칭

㉤전국 칠웅의 하나 ㉥주나라의 제후국 ㉦우물 난간

*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가죽위(韋☞가죽)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부수(部首)를 제외(除外)한 글자 (간)으로 이루어짐. 에운다는 뜻을 가진 韋(위)와 음을 나타내며 동시(同時)에 우물 구덩이의 뜻을 나타내는 부수(部首)를 제외(除外)한 글자 (간)으로 이루어짐. 우물가를 에워싸는 우물난간의 뜻.

출처; http://handic.daum.net/dicha/view


34. 二十四일 이른 아침에 경석을 불러 흘겨보시면서 “똑똑치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이냐”고 나무라셨도다.


35. 증산성사께서 수박에 소주를 넣어서 우물에 담그었다가 가져오게 하셨도다. 그 수박을 앞에 놓고 가라사대 “내가 이 수박을 먹으면 곧 죽으리라. 죽은 후에는 묶지도 말고 널 속에 그대로 넣어두는 것이 옳으니라” 하셨도다. 증산성사께서 약방 대청에 앉아 형렬에게 꿀물 한 그릇을 청하여 마시고 형렬에게 기대어 가는 소리로 태을주를 읽고 누우시니라. 이날 몹시 무더워 형렬과 종도들이 모두 뒤 대밭가에 나가 있었도다. 응종이 증산성사께서 계신 방이 너무 조용하기에 이상한 마음이 들어 방을 들여다보니 증산성사께서 조용히 누워 계시는데 가까이 가서 자기의 뺨을 증산성사의 용안에 대어보니 이미 싸늘히 화천(化天)하신지라. 응종이 놀라서 급히 화천하심을 소리치니 나갔던 종도들이 황급히 달려와서 증산성사의 돌아가심이 어찌 이렇게 허무하리오 하며 탄식하니라. 갑자기 뭉게 구름이 사방을 덮더니 뇌성벽력이 일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화천하신 지붕으로부터 서기가 구천(九天)에 통하는도다. 때는 단기 四천 二백 四십二년 이조 순종 융희 三년 기유 六월 二十四일 신축 사시이고 서기로는 一九0九년 八월九일이었도다.


36. 이 때에 여러 종도가 떠나고 김형렬․차경석․박공우․김자현․김갑칠․김덕찬 등 여섯 사람만이 증산성사를 지켜보니라. 부친이 고부 객망리 본댁으로부터 동곡에 오시고 형렬은 뜻밖의 변을 당하여 정신을 수습치 못하는지라. 종도들이 궤 속에 간수하였던 돈으로 치상을 끝내고 남은 돈을 본댁으로 보냈도다.


37. 치상 후에 형렬과 경석은 증산성사의 부친을 모시고 객망리에 가서 모친을 조문하고 다시 정읍 대흥리에 가서 증산성사께서 간수하신 현무경(玄武經)을 옮겨 썼도다.


38. 증산성사께서 거처하시던 방에서 물이 들어 있는 흰 병과 작은 칼이 증산성사께서 화천하신 후에 발견되었는데 병마개로 쓰인 종이에 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

≪좋은 꽃에는 좋은 열매가 열고, 흉한 꽃에는 흉한 열매가 열린다.≫ 의 글귀와 다음과 같은 글들이 씌어 있었도다.


病有大勢 病有小勢(병유대세 병유소세) ≪병에는 큰 세력을 가진 것이 있고 작은 세력을 가진 것이 있다.≫

大病無藥 小病或有藥(대병무약 소병혹유약)

≪큰 병에는 약이 없고 작은 병에는 약이 있다.≫

然而大病之藥 安心安身(연이대병지약 안심안신)

≪그러나 대병의 약이 되는 것은 마음을 안정하고, 몸을 안정하는 것이다.≫

小病之藥 四物湯八十貼(소병지약 사물탕팔십첩)

≪작은 병의 약은 사물탕(숙지황·백작약·천궁·당귀로 지은 한약, 보혈(補血)에 쓰임)팔십 첩이다.≫

祈禱(기도)≪옥황상제님께 고하여 비는 것을 말한다.≫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至氣今至願爲大降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지기금지원위대강

≪하늘의 주인이신 옥황상제님을 모시고 조화가 정해져서 세상 영원토록 옥황상제님을 잊지 아니하면 만사를 다 알게 되오니 원하옵건데 지극한 기운을 크게 내려 주옵소서.≫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대병출어무도 소병출어무도)

≪큰 병은 도를 잃음으로 해서 나오고 작은 병도 도를 잃음으로해서 나오는 것이다.≫

得其有道 則大病物藥自效 小病物藥自效(득기유도 즉대병물약자효 소병물약자효)

≪그 도를 얻은 즉 대병에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효과가 있으며 소병 역시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효과가 있다.≫

至氣今至四月來 禮章(지기금지사월래 예장)

≪지극한 기운이 4월에 이르니 예를 명백히 하라.≫

醫統(의통)

≪무도병을 고쳐서 거느려 나가는 직업을 말한다. 의통을 잘 알아 두라.≫

忘其父者無道 忘其君子無道 忘其師者無道

망기부자무도 망기군자무도 망기사자무도

≪그 아비를 잊은 자는 무도요, 그 임금을 잊은 자는 무도요,

그 스승을 잊은 자는 무도한 것이다.≫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

세무충 세무효 세무열 시고천하개병

≪세상에는 충도 효도 열도 없어졌으므로

천하가 다 병든 것이다.≫

病勢(병세)≪병의 형세.≫

有天下之病者 用天下之藥 厥病乃兪(유천하지병자 용천하지약 궐병내유)

≪천하에 병자가 있으면 천하의 약을 쓰는데, 뼛속 깊이 박힌 병은 이에 낫게 된다.≫

聖父(성부)≪무극신=옥황상제님≫

聖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在全州銅谷生死辦斷

성자 원형이정봉천지도술약국재전주동곡생사판단

≪‘聖子(성자) 즉 천자’께서 원형이정의 天地(천지) 道(도)를 써서 고치는 약국이 있으니 전주 동곡에서 생사판단이 있다..≫

聖身(성신)≪성스러운 나의 몸≫

※ 全州(전주)는? 全(전) 宇宙(우주)를 말하는 것이고 銅谷(동곡)은? 銅(동)은 쇠이므로 쇠는 西方(서방) 4․.9金(금)으로 가을을 뜻하는 것이다. 哥乙(가을)은 큰 새의 노래라는 뜻이고 큰 새를 太乙(태을)이라고 한다. 즉 그 새의 노래는 태을주를 말하는 것으로 그 태을주는 谷(곡)에서 흘러나온다.

이 태을주로 생사판단이 있다.

大仁大義無病(대인대의무병)

≪크게 어질고, 크게 의로우면 병이 없다.≫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

≪삼계(천계, 지계, 인계)에 덮어 놓은 마를 관장하시는 대제군은 원진천존 관성제군이시다. 지금 주문에 삼계해마(三界解魔)로 한다. 삼계해마는 마(魔)를 풀어놓았다는 것이다.≫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지천하지세자 유천하지생기)

≪천하의 형세를 아는 자는 천하의 살아가는 기운을 가지고 ≫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암천하지세자 유천하지사기)

≪천하의 형세에 어두운자는 천하에 죽는 기운이 접어든다.≫

孔子魯之大司寇(공자노지대사구) 

孟子善說齊梁之君(맹자선설제양지군)

西有大聖人曰西學(서유대성인왈서학) 

東有大聖人曰東學 都是敎民化民(동유대성인왈동학 도시교민화민)

近日日本文神武神 幷務道通(근일일본문신무신 병무도통)

≪공자는 노나라의 대사구라는 벼슬을 하였으나, 맹자는 제나라와 양나라의 임금에게 선을 가르쳤도다. 서양에 대성인이 있어 가르치니 서학이요, 동양에 대성인이 있어 가르치니 동학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전혀 새로운 교화로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조화로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머지않아 가까운 날에 일을 본(日本일본) 文臣(문신), 武臣(무신) 神明(신명)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도통에 힘쓰게 된다.≫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 無依無托 不可不文字戒於人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 무의무탁 불가불문자계어인

宮商角微羽 聖人乃作 先天下之職 先天下之業 職者醫也 業者統也

궁상각치우 성인내작 선천하지직 선천하지업 직자의야 업자통야

聖之職聖之業(성지직성지업)

≪조선국(朝鮮國)에 모든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 신명이 있다. 이 신명들이 의탁할 곳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문자로써 사람에게 알리노라. 그 문자는 바로 주문과 전경이다. 궁상각치우는 성인이 만들었다. 황제 헌원이 봉(鳳)의 울음소리를 듣고 음율을 조정하여 오음(五音)을 지었다. 궁상각치우는 오음의 음율이다. 사람은 오음의 소리와 말로써 모든 기운을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주문(呪文)으로써 겁액을 물리치고, 교화(敎化)로써 정신과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하늘 아래(天下) 첫 번째(先) 직(職)이요, 하늘 아래(天下) 첫 번째(先) 업(業)이 있다. 직(職)이란 고칠 의(醫)요, 업(業)이란 거느릴 통(統)인 것이다. 즉 직업(職業)이란 의통(醫統)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모셔 주고 교화를 해 나가는, 즉 바로 고쳐서 거느려 나가는 직업(職業)이 의통(醫統)이다. 이것이 성인(聖人=황제헌원)의 직업(職業)이다. 후천은 인존시대이다. 즉 사람에게 신명이 봉(封)해지고 사람이 천지를 맡아 나간다. 그러니 의통은 사람을 올바르게 고쳐서 진실(眞實)되게 하여 거느려 나가는 직업이므로, 의통(醫統)은 성인의 직업으로 사람이다.

※ 참고; [만법전] 생로가
‘직업을 어서 찾소, 직업(職業)이자 의통(醫統)일세.’

♣ [2005년 12월 9일 훈시말씀]

궁상각치우 성인내작(宮商角徵羽 聖人乃作) 이거든.

오음이여. 황제헌원씨가 봉의 울음소리를 듣고 5음을 만들었어.

가야금 그 소리여. 지금 소리여. 다 가잖아.

그 소리에 뭐가 있느냐? 하면 의통이 있다.

의는 직이여, 업은 통이라 한다. 직업을 의통이라 한다.

가야금 그 소리=>태을주소리=>의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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