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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방립昉立은 조개趙開로다

고도인 2008. 1. 12. 18:14

42. 방립昉立은 조개趙開로다 월수궁月水宮에 잠겼으니

* 趙開(조개); 여근(女根)⇒ 다산(多産), 풍요/ 합(合)

조개는 그 생김새가 여근(女根)을 닮았다 하여 다산(多産)과 풍요의 상징이 되었다. 꿈에 조개를 보면 여자아이를 출산할 태몽이라 하는 것도 조개의 생김새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선사시대에는 조개 껍데기가 화폐로 쓰여 귀하게 여겨졌다.

또한 조개는 조개를 뜻하는 한자어 합(蛤)이 궁궐의 문을 뜻하는 합(閤)과 그 음이 같아 높은 지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민화에서는 새우와 함께 그려진 조개 그림을 하합도(鰕蛤圖)라 하는데, 이를 하합(賀合)으로 해석하여 합(合)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여기에서 합(合)은 합격이 될 수도 있고 남녀의 혼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하합도의 조개를 높은 지위의 상징으로 풀이하면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일이 순조롭기를 기원하는 그림이 된다. 여기에서 새우는 자유자재로 몸을 구부린다 하여 순조로움의 상징으로 쓰인 것이다. 

* 昉立(방립); 원립불은 남상(男像), 사각 갓을 쓴 방립불은 여상(女像)을 의미한다.

* 땅 어머니격인 여상(女像)을 조개에 비유 하였고 陰(음)의 이치이기 때문에 월수궁(月水宮), 또는 廣寒殿(광한전)이라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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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암사 쌍미륵불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광주산맥의 곁가지를 타고 뻗어온 용들이 한양을 만들고 그 꼬리가 머물러 있는 곳이라 하여 용미리라 했단다. 북으로 가는 길목의 용미리를 지나다보면 동쪽 산기슭 소나무 숲 사이에 근년에 지은 아담한 용암사가 있다. 용미리 쌍미륵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불상은 오른쪽 사각형의 갓을 쓴 불상(방립불· 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만 다를 뿐 신체 다른 부위의 조각수법은 왼쪽 불상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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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전에 의하면 원립불은 남상(男像), 방립불은 여상(女像)으로 전하는데 이 불상에는 고려시대 선종(宣宗)과 원신궁주(元信宮主)의 왕자인 한산후(漢山候)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 선종(宣宗, 재위 1084∼1094)은 뒤를 이을 후사가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후궁인 원신궁주(元信宮主)의 꿈에 두 고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 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있다. 먹을 것이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으니 이곳 바위에 두 불상을 새기라. 그리하면 소원을 들어주리라" 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고하자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냈는데 장지산에 다녀온 사람이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서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왕은 즉시 이 바위에 서둘러 불상을 조성케 하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다. 그러자 이때 또다시 꿈에서 본 두 노승이 나타나 " 왼쪽바위는 미륵불로, 오른쪽 바위는 미륵보살로 조성하라" 이르고 는 " 누구든지 여기 와서 공양하고 기도하면 성취하리라. 아이를 바라면 득남을 하고 병을 가진 사람은 곧 쾌차하리라" 말한 뒤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해에 원신궁주(元信宮主)는 곧 胎氣(태기)가 있어 王子(왕자)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한산후는 실재 선종과 원신궁주의 아들로서 선종의 뒤를 이온 현종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전설은 도처에 남아있는 기자전설(祈子傳說)에 불과하지만 구체적인 왕명이 나와 있어 불상의 조성연대를 짐작케 해준다. 또 불상의 옆쪽 벽면에는 200여자의 명문이 희미하게 조각돼 있는데 마멸이 심해 판독은 어려우나 이러한 구전 내용일 것으로 추측 된다. 지금도 이곳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 많이 찾고 있다.

43. 5일10일五日十日 때를 맞아 열고닫고 개합開閤하니

*  5수는 닫는 수요. 10수는 여는 수라. 5와 10은 중앙의 土(토)기운으로 모든 만물은 土(토)기운을 받지 않고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 사람이 손가락으로 수를 꼽을 때 하나부터 다섯까지는 주먹을 쥐어져서 닫히고. 여섯부터 열까지는 손을 펴니 연다고 함. 주일기도

44. 한달이라 여섯번씩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을

* 한 달에 여섯 번이면 30일이다.(크고 작은달이 없어진다.)

* 6☓6은 36으로 1년이면 360일이다.(1년은 360일이 되어 완전한 원형을 이룬다.)

45. 月水精氣월수정기 갈마하니 토기금정土氣金精 길러내어

* 갈마; 넓은 의미로는 불교교단 내부에서의 의식. 작법을 말하지만 불교수행자가 계(戒)를 받거나 참회하거나 할 때의 작법을 말한다. 이 작법에 관계하는 승려를 갈마아사리라고 한다.

* 土氣金精(토기금정); 중정(重精)은 금정(金精)이니 금생수(金生水)의 원리다.

토기(土氣)는 중기(重氣)요 금기(金氣)는 경기(輕氣)라. 토생금(土生金)하니 황토(黃土)이다. 중앙의 5· 10土(토)가 가을의 金(금)기운으로 추수하는 이치.

46. 후천도수後天度數 삼십육三十六은 중앙中央에 태을太乙이라

* 중앙은 항상 들이다. 5와10, 戊(무)己(기), 구진등사, 청룡황룡.

47. 존주의리存主義理 높았으니 노중연魯仲連의 기상氣象이오

* 存主義理(존주의리); 주인이 존재하기에 오로지 한사람의 임금만을 섬긴다는 의리.

(대두목은 오로지 옥황상제님 한분만을 받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

* 魯仲連(노중현, BC 305~BC 245, 제나라의 책사); 진(秦) 나라는 무도(無道)한 나라다. 만일 천하의 사람들이 진 나라를 천자로 하는 일이 있다면 나는 동해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을 것이다. 십팔사략에 나오는 말로 노중현은 오로지 한나라의 임금만을 섬긴다는 뜻. 우리나라 노(魯)씨의 선대는 중국 주나라의 노백리다. 그의 후손 노중연(魯仲連)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노씨의 시조가 된다. 노중련의 손자 노계(魯啓)가 강화군에 봉해지면서 강화노씨가 비롯된다.

48. 채석강埰石江에 비쳤으니 이태백李太白의 풍류風流로다

* 채석: 채석장에서 석재를 떠냄.(채석장= 바둑판)(석재= 바둑돌)(강= 강 신농씨)

* 李 太 白(이백, 701-762); 名(명)는 백, 字(이름)는 太白(태백), 號(호)는 靑蓮居士(청련거사), 중국 四川(사천)출생, 42세 까지 隱士(은사-벼슬하지 않고 숨어 사는 선비), 42세에 翰林供奉(한림공봉)되었으나, 讒言(참언-거짓 꾸며 남을 나쁘게 일러 바치는 말)의해, 長安(장안)에서  추방되여, 방랑과 불행한 생활로 62세로 그의 생애를 끝냈다. 한국에 잘 알려진 시인으로 望瀘山瀑布(망로산폭포), 山中問答(산중문답), 峨眉山月歌(아미산월가), 春夜落城笛(춘야낙성적), 秋浦歌(추포가), 등 많은 시를 남겼다.

* 비로나나불인 강 신농씨가 강림 하셨으니 이 태백이가 풍류를 읊던 시절과 같다.

49. 소월동산小月洞山 적벽강赤壁江은 임술칠월 소동파壬戌七月 蘇東坡요

* 조 정산성사의 그 도는 오직 한사람의 임금을 섬겨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 赤壁(적벽); 중국 양쯔 강(揚子江) 남안에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강변에 웅장하게 솟아 있으며, 지세가 험준하다. 208년(前漢 建安 13)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 5만 명이 조조(曹操)에 대항하여, 수륙 양쪽에서 조조의 20만 명 대군과 싸워 화공(火攻)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부터 위(魏)·촉(蜀)·오(吳)의 3국이 정립되었다. 강변 바위에는 해서(楷書)로 '赤壁(적벽)'이라 새겨져 있다.

* 壬戌七月(임술칠월); 1600년 전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에는 견우(牽牛)와직녀

(織女)가 만나는 그림이 있다, 하늘의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가 음력으로 7월 7일이 되는 오늘 만나는 것이다, 왜 이날을 명절로 삼았는가, 1년 농사일을 대강 끝내고 이날부터 여름휴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칠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호미 '서(鋤)'자를 써서 '세서절'(洗鋤節)이라고도 한다,'호미를 씻는 날' 이다, 호미를 들고 일하던 머슴들이 농사일을 끝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날은 노동을 하던 하인과 머슴들에게 반가운 날이기도 하였다, '견우' 와 '직녀' 라는 표현도 노동과 관련이 깊다, 견우는 남자가 소를 몰고 하던 농사일을 상징하고, 직녀는 여자가 옷감을 짜는 일을 상징한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데는 남녀가 노동을 멈추고 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천문학(古天文學)에서 보면 자미원(紫薇垣) 한가운데에 있는 천황대제(天皇大帝:북극성)와 북두칠성이 만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음력으로 7월 6일 저녁부터 만나기 시작한다, 6일 저녁은 칠석날의 전야제였다, 칠석 명절은 6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기망(旣望)인 16일까지 계속 되었다, 합하면 모두 11일을 명절로 여겼던 셈이다,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첫대목이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기망(七月旣望)'으로 시작된다, 칠월기망은 음력 7월 16일이고, 이날은 칠석축제의 마지막 날이면서 달이 밝기 때문에 배를 띄워놓고 놀았던 것이다, 고대 농경사회의 달력에서는 보름달이 기점이 된다, 정월 보름이 1년을 시작하는 '대보름'이라면, 7월 보름은 전반기를 마감하고 후반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축구에 비유하면 '하프타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7월 보름을 '백중(百中)'이라고 불렀다, 모든 절기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이를 종합하면 칠석 전날부터 백중 다음날 까지는 고대사회에서 농사일을 일단 끝내고 쉬던 날이다, '정역' 에서는 이 기간을 '농부세서 세공성(農夫洗鋤 歲功成)'이라고 노래하였다, '농부가 호미를 씻으니 그해의 일이 이루워 졌네!'.

* 蘇東坡(소동파); 중국 천재시인 소동파가 천년을 뛰어넘어 전하는 웃음과 감동의 仙(선)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칭송될 정도로 유명한 서예가였다. 게다가 유학, 요리 등 에서도 능력을 발휘했으니 한마디로 빼어난 팔방미인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안석의 말대로 몇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사람이 바로 소동파이다. 우리들에겐 적벽부를 지은 시인으로 많이 알려진 소동파의 삶은 유교 사상을 근간으로 불교, 도교 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선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보여줬고 선과 인생을 가장 잘 결합시킨 삶을 살았다.  올바른 말을 하는 그의 곧은 성격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좌천도 당하고 유배도 당했지만 그는 한번도 그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누명을 쓰고 죽음의 직전까지 가는 고초를 당하고 나서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고 시를 통해 진실을 말했다. 세상에 대한 실망을 시로 짓고 관직에서 물러나 책이나 읽으며 남은여생을 평화롭게 보내고 싶어 했던 소동파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세속의 복잡한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수많은 힘든 시기들이 그를 나약하게 만든 대신 오히려 선에 대해 깨우침을 주었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알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세상의 일은 한바탕 큰 꿈이니 인생은 얼마나 처량하던가" 라는 말을 너무도 절절히 느끼게 된 소동파 였다. 자신을 모함한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가난한 살림에도 오히려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 임술칠월:壬戌(1802)년 七月 소동파의 나이가 47세 때.

* 태극진경 113: 적벽부라 함은 소동파 자신이고 객이라 함은 여동빈이니 그가 仙術(선술)로 동파를 仙境(선경)까지 데리고 가 구경시켜줌이니라. 하시니라.

50. 사가보월思家步月 청소림靑所林은 두자미杜子美의 사향思鄕이라       

* 태을성에 계시는 태을성 두우군은 밝은 발밤에 거닐면서 고향집(생가)을 생각하니   도(옥황상제님)가 떠올라서 생각해보니 과거에 도수 보던 고향  이더라는 뜻.

* 思家步月(사가보월); 집을 그리워하며 달밤에 거닒.

* 靑所林(청소림); 靑道(청도)는 본래부터 그곳에 있었다.

* 杜子美(두자미); 성당(盛唐)때 시인(詩人). 시성(詩聖)이라고도 함. 자미(子美)는 그의 자(字) 두보의 字가 자미이다. 두보가 달빛아래 거닐면서 자기집(고향)을 생각하는 내용. ❉ 杜子(두자)는 태을성의 있는 斗柄(두병). 子(자)로 비유하였음.

* 思鄕(사향); 고향(故鄕)을 그리며 생각함.

51 추풍월야초병산秋風月夜楚兵散하니 수식계명 산월명誰識鷄鳴 山月明고

* 하룻밤 새에 난세에 주장하던 자들이 흩어지니 엉뚱한 곳에서 달이 밝을 줄이야. 다시 말하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도가 밝아진다는 뜻이다.

* 하룻밤 가을바람이 불어 초나라 군사가 흩어지니 하필이면 계명산에 달이 밝을 줄 누가 알 수 있으리요?

52. 달아달아 밝은 달아 후천명월後天明月 밝은 달아

* 달은 우리 지구촌 인간들에게 꿈과 이상을 샘솟게 하는 상상의 상징이며 이상세계를 구상시켜준다. 달은 사회인들에게도 이상적인 꿈을 꾸게 하지만 우리 수도인들에게도 道理(도리)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달은 후천을 상징하며 이상향의 세계이다.

출처 : 고도인의 해인海人으로 가는 카페
글쓴이 : 高 道 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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