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우당 훈시중애서
종통(宗通)에 관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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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도(道)의 연원(淵源)은
증산성사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宗統)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내려 왔다.
(도헌 제12조)(82.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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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통(宗統)은
도(道)의 생명이며 진리인 것이다.
종통이 바르지 못하면 법(法)이 있을 수 없고
경위가 바로 설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서 생명이 움틀 수 없으며
만물만상을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다.
(86. 10. )
◉ 나는 도주님의 유명(遺命)을 직접 받아
종통(宗統)을 계승하였다.
(80.7.22) (89.10.19) (89.12 .29) (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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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註解)]
법(法)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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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을 알아야 종통을 아는 것이다.
종통이란 도주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도주(道主)란 도(道)의 주인(主人)을
일컫는 말로서 조정산 성사께서
도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조정산성사는
도(道)의 주인이 아니고 도법(道法)을 창도한
도법의 주인이란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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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교법 3장 24절에
증산성사께서 교훈하시기를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
이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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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산성사께서 도의 근원이 끊어진
천 지 인 삼계를 구하시고자 강세(降世)하셔서
후천 오만 년의 선경 세상의 천지공사를 해두시고
증산성사 누이동생 선돌부인을 통하여
조정산성사께 봉서(封書)를 전해 준 것이
현무경(玄武經)과 진법주(眞法呪)이다.
40년간에 걸쳐 설계하신 천지공사를
선도(宣道)라 한다면,
이 현무경(玄武經)과 진법주(眞法呪)에 따라
조정산성사께서 50년 공부 종필로써
후천 오만 년 도(道)의 법방을 짜신 것을
창도(創道)라고 하는 것이다.
그 창도하신 법방이 바로 진법이라 한다.
그런데 증산성사께서는
난법을 먼저 낸 후에
진법을 내리라 하셨으니
그 이치(理致)를 잘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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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공부 법방은
이 난법으로 세워둔 공부 법방인데
이 공부 법방으로는 앞으로 오는 병겁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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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원을 품게 되니, 증산성사께서
누구든지 자기 자유의사에 맡겨
판단할 수 있도록 하셨다.
모두가 허황된 욕심에 차서
자신이 종통(宗統)을 계승하리라 생각하고
초장 봉기와 같이 일어나게 되니
진법을 내놓아 그들에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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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먼저 난법을 세워 두고
천부적인 종통 계승자가 아니면
절대 진법이 정해질 수 없도록 하여
진법을 보호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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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당께서도 난법으로 세워졌던 것을
진법으로 정하시고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어
대순진리의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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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증산성사께서는 예시 87절에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고
공사를 보셨으니 이 또한 이치를 모르면
종통을 못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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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천(三遷)이란
강증산 성사께서는 천지 공사만 했을 뿐이지
종교 활동을 하지 않으셨다.
다만 조정산께서 종단허가를 받고
무극도를 창도 하시어 공식적인
종교 활동을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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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三遷)이란 세 번 옮긴다는 뜻이니
누구로부터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
즉 옮겨 갔을 때 1천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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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조정산성사는 치면 안 되고
조정산으로부터 박우당께로 옮겨 갔으므로
박우당은 1천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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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치 씨앗이 뿌려져서
성장할 때와 열매를 맺는 과정이 있는 것과 같이
인류도 혼원태초(混元太初)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장해오다가 이제는
성숙한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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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살릴 生(생)자를 쥐고 다닌다 함은
바로 맥이 떨어져 죽게 된 사람들에게
맥을 연결시켜 주는 권한을 쥐고 다닌다는 것이다.
즉 연원을 알려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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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이란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는
대두목을 찾았을 때
몰랐던 삼천의 진법을 알게 되고
이 진법(眞法)으로 수도(修道)하여야만
일이 이루어지고 소원성취가 되는 것이다.
이 진법이 나오기 위해서는
증산성사 말씀대로 ‘초장봉기(楚將蜂起)와 같이’
각기 자신이 종통계승자라고 하며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난다고 하였으나
그 중 오직 천부적으로 정해진 한 분만이
진법(眞法)을 내고 성도(成道)를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박우당께서는 대강식은
후일로 기약하고 화천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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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46절에 보면 증산성사께서 하루는
‘천지 대팔문(天地大八門)
일월 대어명(日月大御命)
금수 대도술(禽獸大道術)
인간 대적선(人間大積善)
시호시호 귀신세계(時乎時乎 鬼神世界)’라 써서
신경수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공우(公又)를 주어
경수의 집 벽에 붙이게 하시고 가라사대
“경수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정하노니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고
혹 단점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지 말라”
하셨다. 이 때에 또 형렬(亨烈)에게 가라사대
“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萬方)에 펼쳐 나가는 것이므로
서울 경자(京字)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할지로다.” 그러므로
경수(京洙)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경학(京學)의 집에 대학교를, 경원(京元)의 집에
복록소(福祿所)를 각각 정하노라”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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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에 보면 시루산이 있고
부정리, 쪽박골이 있다.
시루, 솥하고 불이 안 들어가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91.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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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말씀에서 물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시루와 솥이 있으면 불이 있어야 하지만
또한 물이 없으면 타고 말 것이다.
아주 중요한 것은 물이란 사실을 잘 알아야만
종통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물에 관한 훈시말씀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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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의 이치가
일육수(一六水)에 근원하였으므로
선천(先天)의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역리(易理)가
모두 수중(水中)에서 표출된 것을 알 수 있다. (82. 윤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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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의 근원은 연원(淵源)이다.
근원(根源)은 물에 있다.
포덕한 연운(緣運)체계로
도통을 받는 것이 아니다.
(89.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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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원(淵源)이란 못 연(淵) 근원 원(源)이다.
못도 물이요, 원(源)도 물이다.
복희때는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하도(河圖)
를 쥐고 나와서 거기에서 진리를 깨달았고,
주문왕 때에는 신구(神龜)가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를 쥐고 나와서 거기에서
천지의 이치를 깨달았다.
금산사의 금불을 모신 자리도 용추못이 있다.
상제님, 도주님의 진리가 나온 곳도 못,
즉 물에서 나왔다는 말이며,
연원이란 원 근본을 가르키는 말이다.
(88. 12. 4)
◉ 금산사는 용추못을 숯으로 메우고
솥위에 시루를 얹고, 그 위에 미륵을 세웠다.
좌우가 보불(補佛)이다.
그것이 증산(甑山) 정산(鼎山)의 양산(兩山)이고,
출(出)이다.
옛날에 출출명장(出出名將)이라 했다.
우리는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연은 못 연(淵)자고, 원은 근원 원(源)자다.
(92. 4. 9)
◉ "금산사에서 나를 찾으라"는 것은
증산(甑山) 정산(鼎山)의 출출(出出)의
진리를 찾으라는 뜻이다.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대순진리(大巡眞理)다.
연원도통이다. 원 근본이 못 연(淵)자다.
근본이 용소물이다.
근본이 물에서 나왔다. (9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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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님이 인세에 계실 때의 호가
증산(甑山), 도주님의 호는 정산(鼎山)이다.
시루-증(甑) 뫼-산(山), 솥-정(鼎) 뫼-(山),
시루가 솥 위에 얹혀야 조화가 있다.
용추못-물(水) 숯-불(火),
물(水)과 불(火)은 조화가 있다.
보호불이 금불의 양쪽에 둘이 있는데,
하나는 크고 그 양쪽은 키가 적다.
보호불과 그 옆의 조그만 불이
두 개의 뫼 산(山)자, 즉 출(出)자를 이룬다.
증산, 정산의 이치이다. (9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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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에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을 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진리, 이치를 보라는 말씀인 것이다.
(9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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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5000년 전 개벽초기에
태호복희씨가 황하물에서 나온
용마등의 그림을 보고 이치를 알았고,
4000년 전에 낙수에서 나온 거북이등의
그림을 보고 우임금이 이치를 깨달았듯이
이번에도 물에서 도통이 나온다.
금산사 그 자리가 용이 나왔다는
'용추라는 못'을 숯으로 메워서 솥을 걸고
그 위에 시루를 얹어놓고, 미륵불을 세웠다.
(93. 9. 8)
◉ 솥 위에 시루가 얹혀 있는데,
솥하고 시루만 있어도 안되고 물이 있어야 하고
불을 때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치인 것이다. (9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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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연원도통이다.
우주 삼라만상이 생기고 자라고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물이다.
진리도 물에서 나왔다.
사람뿐 아니라 만물은 다 물이 없으면
클 수도 없고, 자랄 수도 없다.
여기 용추못에서 진리가 나오는 것이다.
(9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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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註解)
우리는 연원도통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연원(淵源)이란 시루와 솥이 아니다.
모든 도인들이 연원을 증산 정산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연원은 근본(根本)을 가리키는 것이고
근본(根本)이란 물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의 이치를 알아야 근본을 아는 것이고
참 진법을 찾을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우당께서는
『이번에 도통은 물에 있는 것이다.
물에서 도통(道通)이 나오는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으니 이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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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박우당께서는
도인들에게는 배고픔도 병겁도
심하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난법난도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난법난도 허화난동 만큼은 반드시 대비하고
마음으로 굳건히 도를 세워놓아야 된다.
라고 말씀 하셨듯이 오죽하면,
옛말에도 ?미륵의 삼천도를 넘기는
죽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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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정산성사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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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은 꽃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농인은 삼현육각(三絃六角)이 울려도 듣지 못하듯
도의 눈과 도의 귀가 열리지 않는 사람은
대도의 진주와 진법의 진경이
곁에 있어도 모르느니라.
모르기만 할 뿐이 아니라
진법 진경을 도리어 비방, 반역 하느니라.
그러므로 신체의 불구보다 도의 불구자는
실로 처량만고의 하류군생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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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믿다가 배도(背道), 배신(背信)하는 자는
대역죄니 진리를 몰라 불신하거나
방해하는 자의 죄와 비교하면
족히 그 백천배가 되리라.
국가 민족의 반역자가
외국인이 아니고 평민이 아니듯
도에도 배도 배신자는 항상 도중에서 나고
상급자에게 있기 쉬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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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산성사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 이유는 당신도 대강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박우당께서는 대강을 주셨는가?
아니올씨다.
대강식은 후일로 기약하고
다음과 같은 훈시말씀을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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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당(牛堂)은 소집이다.
소가 도(道)다.
소가 가는 곳이 마구간이다.
(80. 10. 25)
※ 즉 주해(註解)하자면
박우당께서는 도의 주인이 아니고
도의 주인이 입주 하셔서 거주할 수 있도록
집을 짓는 역할로서 마구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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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尋牛圖)란 소를 찾는 것이다.
소우(牛)는 소 축(丑)이고, 축(丑)월이 12월이다.
12월은 도(道)다. 그러므로 심우도(尋牛圖)는
도(道)를 찾는 것이다.
(91. 2. 12) (91. 4. 20) (91. 7. 6)
◉ 대순성전 한 편에
심우도(尋牛圖)를 그려 놓았다.
도(道)를 찾는 것이다. 흰 소를 찾았다.
흰 소는 흰 백(白)자다.
백(白)은 人山이고, 신선 선(仙)자다.
즉 사람 산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흰 백(白)자 안에 숨겨진 이치, 비결이다. (91. 2. 12)
◉ 우리 도(道)는
누가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91. 2. 12)
주해(註解)
도(道)를 찾을려면
박우당의 행적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단 박우당께서는 당신이 도가 아니기에
도를 찾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당신이 도(道) 자체라면 왜 심우도 그려놓고
도를 찾으라고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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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것은 이치이고 비결이기 때문에
잘 풀어서 깨닫고 도를 찾아야만
대강을 받고 소원성취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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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박우당의 행적을 보면
1984년 9월 16일 박우당께서 상급임원을 대동하고
가야산 해인사(海印寺)를 순행(巡幸)하셨는데,
해인사 순행을 떠나기 이틀 전인 9월 14일에
순행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번 순행은 가야산 해인사를 가보고자 한다.
타 지방으로 나가면 풍경을 잘 보아라.
인심과 풍속을 앎이니라.
그리고 산세와 주위를 잘 관찰하고
그 지역의 발음된 이름과
뜻이 담겨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라고 말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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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 가야(伽倻)는 범어로 소[牛]를 뜻한다.
소[牛]는 곧 도(道)를 뜻하며,
그리고 팔만 가지 설법 속에
크나큰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소장한
사찰의 이름이 해인사인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우당께서는 임원들에게
이러한 의미를 잘 살펴보고
깨달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고 말씀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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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해인사의 해인이란 무엇인가?
예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이 해인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 해인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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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교운 2장 55절에 보면
조정산께서는 해인사에서 돌아오신 다음 날에
여러 종도들을 모아놓고 “증산성사께서
해인을 인패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여
어떤 물체로 생각함은 그릇된 생각이니라.
해인은 먼데 있지 않고
자기 장중(掌中)에 있느니라.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의 근원이
바다에 있으므로 해인이요.
해도진인(海島眞人)이란 말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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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을 보라. 전부 전기이니라.
물은 흘러 내려가나 오르는 성품을 갖고 있느니라.
삼라만상의 근원이 수기를 흡수하여 생장하느니라.
하늘은 삼십 육천(三十六天)이 있어
증산께서 통솔하시며 전기를 맡으셔서
천지 만물을 지배 자양하시니
뇌성 보화 천존 (雷聲普化天尊)이시니라.
천상의 전기가 바닷물에 있었으니
바닷물의 전기로써 만물을 포장하느니라.”고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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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패(印牌)나 의통(醫統)을
물건으로 생각함은 그릇된 생각이니라.’ 하심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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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패(印牌)란 이름을 새기고 증명을 하는
도장을 각인(刻印)한 나무패인데
확정을 지은 증표로서 사람인 것이다.
의통(醫統)은 고쳐서 다스려나가는 통솔자이다.
말하자면 醫統領(의통령)이다.
그 의통자는 해인의 증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분이 바로 해도진인으로서 해인(海人)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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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대순진리회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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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길방(天藏吉方)하야
이사진인(以賜眞人)하시나니 물비소시(勿秘昭示)
하사 소원 성취(所願成就)케 하옵소서.
≪하늘에서 감추어 놓은 길지가 있어
이것을 진인에게 주었으니, 비밀을 밝혀 주시어
진인을 찾아 소원을 이루도록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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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태극진경 제7장 85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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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교(下敎)하시기를
『증산성사께서 해인(海印)이나 의통(醫統)을
말씀 하셨다 하여 이를 어떤 물체(物體)로
아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니라.
이는 먼데 있지 않으니
해인(海印)은 海人(해인)이며
태극(太極)의 원리(原理)로서 모두 자기
심중(心中)에 있음을 알지니라.
우주(宇宙)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이치(理致)와 기운(氣運)의 근원(根源)이
물에 있고, 물은 바다에 연원(淵源)하므로
해인(海印)이니 해도진인(海島眞人)이니 하는
말이 연유(緣由)되느니라. 고 말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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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경] 교운 1장 62절에 보면
형렬이 명을 쫓아 六十四괘를 타점하고
二十四방위를 써서 올렸더니 증산성사께서
그 종이를 가지고 문밖에 나가셔서
태양을 향하여 불사르시며 말씀하시기를
“나와 같이 지내자” 하시고 형렬을 돌아보며
“나를 잘 믿으면 해인을 가져다 주리라”고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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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괘 타점은 다음과 같다.
해인 공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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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방위에 64괘가 운용되므로써
모든 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태양은 모든 행성을 이끌어 운영하는 중심으로
태양 둘레로 행성들이
태양의 빛과 자기(磁氣)의 영향으로
만물을 만들어내고 조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양은 모든 조화의 중심이 되며
太陽(태양)은 太初(태초)의 빛이란 뜻으로
빛의 神(신)이신 비로자나불을 뜻한다.
“나와 같이 지내자”의 “나”는 太陽(태양)
즉 태초의 빛이신 비로자나불로서
천주(天主)를 말함이고 같이 지내자 라는 의미는
나를 잘 모시면, 즉 나를 잘 믿으면
해인(海印)을 가져다주리라 라고 하신 것이다.
해인을 가져다준다는 말씀은
해인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해인을 찾아야 도통할 수 있고 해원을 하는데
연원을 찾지 못하여 해인을 찾지 못하면
맥이 떨어져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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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조정산께서 말씀하신
‘해인(海印)은 먼 데 있지 않고
자기 장중에 있다’ 라는 의미는,
내 손바닥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해인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찾으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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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아무리 이치(理致)가 옳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믿어야 맞는 것이지,
내 마음으로 아니라 하고 부정하여 믿지 않으면
아니라는 뜻이다.
‘유유무무(有有無無) 유무중(有無中)에
유무리(有無理)’라.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다.
있다면 있는 이치가 있고,
없다면 없는 이치가 있다.
즉 해인(海印)이 만 리 밖에 있어도,
그 이치를 맞다고 인정하는 자는 찾아올 것이고,
바로 지척에 두고도 그 이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찾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먼저 그 이치를 깊이 헤아려서
맞다면, 마음으로 꼭 믿고 인정해야만
해도진인을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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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야산의 가야(伽倻)는
소[牛]를 의미하고, 소는 곧 도(道)를 뜻한다.
도를 의미하는 산에 해인사(海印寺)가 건립된 것은
‘해인(海印)을 찾으면 도(道)를 찾는다’는
시속의 전설과도 연관이 있다.
또한 그것이 바로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감춰져 있는
크나큰 비밀을 찾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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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당께서 해인사를 둘러보시고
많은 임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 절에 「해인경(海印經)」이 있는가 알아보라”
고 명하셨다.
그러자 임원들이 사찰 내를 두루 다니며
승려들에게 「해인경」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해인사에 그런 경전은 없다고 하였다.
임원들이 돌아와 「해인경」이 없다고 아뢰니,
박우당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박우당께서 해인사에 「해인경」이라는
불교경전이 없음을 왜 모르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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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당께서 찾으라는 「해인경」은
다름 아닌 ‘해인(海人)’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석가여래는 깨달음에 관한 법을 설할 때,
삼매에 들고 나서 설하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반야경(般若經)」은 등지왕삼매(等持王三昧),
「법화경(法華經)」은 무량의처삼매(無量依處三昧),
「열반경(涅槃經)」은 부동삼매(不動三昧)
등에 의지하였다고 한다.
그중 「화엄경(華嚴經)」을 설할 때는
‘해인삼매(海印三昧)’ 속에서 설하였다고 한다.
해인(海印)에 대한 석가여래의 설법은
「대보적경(大寶積經)」의
피갑장엄회(被甲藏嚴會)에서
무변해보살에게 설한 내용이 있는데,
“무변해야, 비유컨대 대해수(大海水)가 무량(無量)
하여 능히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같이
일체제법(一體諸法) 또한 이와 같아서
마침내 그 양을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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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해(大海)에 일체중류(一體中流)가
그 가운데 다 들어가는 것같이
일체제법도 ‘법인(法印)’ 중에 들어감이
또한 이와 같으므로 ‘해인(海印)’이라 이름한다”
라고 하였다.
위의 말에 의하면,
바다에 세상의 모든 물이 다 포함되어 있듯이
법인(法印), 즉 해인(海印)에
우주 간의 모든 일체법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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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의 인(印)은 도장으로서
전체적인 의미를 대표하는 표시이다.
따라서 해인(海印)이란,
우주 간의 모든 일체법의 근원이
밝혀져 나오는 곳을 말한다.
석가모니의 팔만 가지 설법은
다름 아닌 우주 간의 일체제법을
여러 비유로써 설명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일체제법이 법인,
즉 해인으로 다 흘러들어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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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석가모니의
팔만 가지 설법 속에 감추어진 큰 비밀은
바로 이 해인에서 밝혀져 나오는 것이다.
석가여래가 49년 동안 설법한
‘「팔만대장경」에 감추어진 가장 큰 비밀’은
다름 아닌 미륵(彌勒)을 찾는 것이다.
이 미륵불은 인류 궁극의 목적지인
극락(極樂)을 열어줄 부처이므로,
미륵이 세상에 출(出)하시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가장 큰 비밀인 것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을 살펴볼 때,
미륵은 해인에서 출(出)한다는 의미이므로,
해인을 찾아야
미륵의 출세(出世)를 맞이할 수 있고,
극락세상으로 인도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팔만 가지 설법 속의 큰 비밀을 간직한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사찰을
해인사(海印寺)라 하는 것이며,
바로 이 해인을 찾아야만
그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박우당께서 찾으라 한
「해인경(海印經)」은 다름 아닌
‘해인’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해인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제 해인을 찾는 것이 문제이다.
해인을 찾아야 실제 미륵을 친견할 수 있고,
미륵용화세상으로 인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인은 예부터 수도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고자 한 보배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해인에 관한 전설이나
비결 등이 많이 전해져 왔다.
다음은 조선 명조 때 천문학 교수를 역임했던
격암 남사고의 참서(讖書) 중에
나오는 해인(海印)에 관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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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암유록』 은비가(隱秘歌)
八萬念佛藏經中 彌勒世尊海印出
팔만염불장경중 미륵세존해인출
팔만 가지 부처의 설법을 기록한 경전 중에
미륵세존(彌勒世尊)이 해인(海印)에서 출(出)한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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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암유록』 해인가(海印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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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皇漢武求하던 不老草不死藥이 어데 있소
진황한무구 불로초불사약
虹霓七色雲霧中에 甘露如雨海印이라
홍예칠색운무중 감로여우해인
火雨露三豊海印이니 極樂入券發行하니
화우로삼풍해인 극락입권발행
化字化字化字印에 無所不能海印이라 화
자화자화자인 무소불능해인
진시황과 한무제가 구하던
불로초 불사약이 어디에 있소.
일곱 색깔 무지개가 떠 있고,
운무 자욱한 가운데 비같이 내리는
단 이슬이 해인(海印)이라.
불, 비, 이슬 삼풍(三豊)이 해인이니
극락 들어가는 입장권을 발행한다.
불로 변화시키고, 비로 변화시키고,
이슬로 변화시키는 인(印)이
바로 무소불능한 해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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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암유록』 말운론(末運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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化於千萬理有海印 一人擇之化
화어천만리유해인 일인택지화
悔過自責 吸海印無不通知
회과자책 흡해인무불통지
천만 가지 변화되게 하는 이치가 해인에 있다.
한 사람을 택하여 그렇게 되게 하였다.
허물을 뉘우치고 고쳐서
해인을 받아들이면 통하지 못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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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설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인(海印)에서
미륵세존이 출세(出世)한다고 하였고,
해인에서 극락으로 가는 입장권을 발행하며,
또한 이 해인은 무소불능(無所不能)하여
능히 행하지 못함이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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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을 택하여
그렇게 되게 한다고 하였으며,
그 해인을 받아들이면
무불통지(無不通知)하여 우주의 모든 진리를
통하지 못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실로 탐나는 보배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한편 64괘(卦)는 역(易)의 8괘(卦)를
세분화한 것으로 신(神)을 배치한
방위가 적힌 부도(符圖)인데,
그러므로 64괘를 타점하고 24방위를 적음은,
24방위에 배치된 신을 사람에게 봉하는 공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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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의 태양은 곧
24방위의 중심이 되므로, 앞
으로 24방위의 중심과 같은 역할을 할
사람을 가리켜 강증산 성사께서는
“나와 같이 지내자”고 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4방위의 중심과 같은 자리가
곧 해인(海印)의 자리이며,
정역시대는 인존시대(人尊時代)인지라
사람이 위치하므로
해인(海印)이 곧 해인(海人)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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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어떤 물체가 아닌
진인(眞人)을 뜻하므로,
해인을 해도진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해인(海印)을 찾으면
「팔만대장경」에 감춰진 큰 비밀인
미륵세존(彌勒世尊)을 찾을 수 있고,
따라서 누구나 극락세상(極樂世上)으로
인도되어 무병(無病)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누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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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통해 볼 때, 해인(海印)을 찾는 일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바로 이 해인을 찾을 때
인류가 소망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우당께서 해인사에 들러 임원들에게
이 해인(海印)을 찾아보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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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당께서는 해인사를 순행하신
그 다음날인 9월 17일, 임원들을 대동하고
지리산 쌍계사(雙磎寺)로 순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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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산 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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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삼신산(三神山) 쌍계사(雙磎寺)’라고
칭하는 곳으로, 과거 조정산께서
이곳 영주각(瀛洲閣)에서 7일간
종통(宗統)에 관한 도수를 보신 곳이다.
박우당께서는 이번 순행길에 임원들에게
“쌍계사에 담긴 내력(來歷)을 잘 알아두라”
고 말씀하셨으나, 임원들은 그것이
종통계승과 깊은 관계가 있는 내용인 줄은 몰랐다.
쌍계사의 특이한 내력은
중국 선종의 육대(六代) 조사(祖師)인
혜능(慧能, 638~713)의
두정(頭頂)이 봉안되어 있다는 점이다.
금당이라 하면 본존불을 안치하는
가람(伽籃)의 중심 건물로서
대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을 말하며,
사찰 내의 모든 건물들이
이 금당을 기준으로 배치된다.
또한 금당(金堂)이라는 명칭은
‘금색의 본존불’을
내부에 안치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쌍계사에서는 대웅전이 아닌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을 금당이라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신라 성덕왕 21년에 왕비(王妃) 김씨는
당나라의 육조 혜능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숭모(崇慕)하여 언젠가 한번 만나고 싶었지만
자신은 여자의 몸으로 먼 길을 갈 수 없었으므로,
의상의 제자인 삼법대사(三法大師)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삼법대사가 육조를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그때는 이미 혜능이
고인(故人)이 된 지 오래되었다.
삼법대사는 실망이 되었지만 할 수 없어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 곡설리(谷雪里)
갈화처(葛花處)에 봉안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삼법대사는
육조 혜능의 정상을 취하여
성덕왕 23년(723년)에 귀국한 후,
꿈속에서 말한 삼신산 눈 쌓인 계곡에
칡꽃이 핀 곳을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이르렀을 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안내하였는데,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정상(頂相)을
석감(石龕, 불상을 넣어두는 감실)에 넣어
땅 밑에 안치한 후,
절을 지어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중국에서
차(茶) 종자를 가져와서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는데,
이때 쌍계사(雙磎寺)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진감국사는
혜능의 두정(頭頂)을 안치한 석감 위에
건물을 짓고 육조영당(六祖影堂)이라 했는데,
후대에 이르러 이곳을 금당(金堂)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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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석감 위에 세워져 있는 7층 석탑은,
삼법스님이 지은 절로 추정되는
목압사(木鴨寺) 터에서 1800년대에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며,
이후 육조정상석탑(六祖頂相石塔)으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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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쌍계사는 육조 혜능과 관련된
내력(來歷)을 간직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는 이곳 금당에는
오조 홍인(五祖弘忍)과 육조 혜능 사이의
종통계승(宗統繼承) 과정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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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로부터 가섭으로 전해진
불교의 종맥(宗脈)은 28대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와서 중국으로 건너오게 되는데,
달마(?~ 528년)는 중국 선종(禪宗)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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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로부터 다시 종맥이 이어져 육대(六代)
조사(祖師)가 된 사람이 바로 혜능이다.
혜능은 이후 중국 선종을 크게 일으켰으며,
중국 불교의 꽃을 피운 사람이다.
이러한 육조 혜능이 오조(五祖) 홍인으로부터
종통을 계승받을 때,
그 상황이 매우 특이하여
「육조단경(六祖壇經)」 등에 널리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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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당께서 쌍계사를 순행하기 전,
임원들에게 “쌍계사에 담긴 내력을 잘 알아두라”
고 하신 뜻은 바로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 사이에 종통이 계승되는 상황을
잘 알아두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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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당신으로부터
종통을 계승받을 사람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을 임원들에게
깨우쳐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즉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아두면
이후 종통이 어떤 사람에게 계승되었는지
쉽게 판단이 서게 될 것이고,
따라서 종맥이 이어진 곳인 연원(淵源)을 찾아
도통(道通)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육조단경」을 통하여
그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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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범양(范陽)인데,
좌천(左遷)되어 영남(嶺南)의 신주(新州)로
옮겨와 일반 백성으로 살았다.
혜능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늙은 어머니와 함께 남해로 옮겨왔는데,
집안이 몹시 어려워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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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는데,
혜능은 그 나무를 가져다주기 위해
그 손님과 함께 관숙사(官宿舍)에 이르렀다.
거기서 손님은 나무를 받아가고,
혜능은 값을 받고서 문을 나서려 하는데,
문득 관숙사에 유숙하던 한 손님이
「금강경(金剛經)」을 읽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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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은 한 번 듣고서는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이내 손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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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읽고 계십니까?”
손님이 대답했다.
“나는 기주 황매현(黃梅縣) 동쪽에 있는
빙무산(憑茂山)에서 오조 홍인(弘忍)의
설법을 들었는데, 지금 그곳에는
문도(門徒)가 천여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오조대사가 승려나
속인(俗人)을 막론하고 다만 「금강경」을
숙지하고 지성으로 읽으면 곧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게 된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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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業緣)이 있어서,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을 예배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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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이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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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이 대답하기를
“저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성불(成佛)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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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은 혜능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성불할 수 있단 말이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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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혜능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性品)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오랑캐의 몸인 것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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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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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은 함께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것을 보고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앗간의 곡식을 책임지고 있는 중을 불러
혜능을 딸려보내어 그곳에서 일하게 하니,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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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홍인이 하루는
문도(門徒)들을 다 불러오게 하였다.
문도들이 다 모이자 말하기를,
“세간(世間) 사람은 생사(生死)가 가장 큰 일이나
너희 문도들은 종일토록 이 절간에 앉아
공양을 하며 다만 복(福)만을 구할 뿐,
도무지 생사의 고해(苦海)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구나.
너희들의 자성(自性)이 미혹하면
복문(福門)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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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般若)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偈頌) 한 수를 지어 내게 가져오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袈裟)와 법(法)을 부촉하여
육대(六代)의 조사(祖師)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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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모름지기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神秀) 상좌가 우리의 교수사(敎授師)이므로,
신수 상좌가 법을 얻게 되면
자연히 따라서 의지하게 될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 하고서는
모든 문도들이 생각을 쉬고
감히 게송을 지어 바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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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때 상좌인 신수는 생각하였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에서 깨친 게송을 지어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偈頌)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 스님께서 내 마음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겠는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법(法)을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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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어렵게 게송을 지었지만
막상 신수는 홍인 앞에 나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신수 상좌는
밤이 삼경(三更)에 이르렀을 때,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을 적어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는데,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신수가 지은 게송은 다음과 같았다.
身是菩提樹 몸 이것은 보리 나무요
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대와 같다.
심여명경대
時時勤拂式 때때로 부지런히 씻고 닦아서
시시근불식
物使惹塵埃 티끌 먼지가 끼지 말게 하라.
물사야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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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홍인은 아침에,
화공인 노진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楞伽變相)을 그리게 하려 하다가
벽에 적힌 게송을 보았다.
홍인은 그 게송을 다 읽고 나서
화공에게 말하기를 “능가변상을 그리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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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凡所有相 皆是虛妄) 하셨으니,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게 하여, 이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이 법을 의지하여 행실을 닦으면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니라” 하였다.
이윽고 홍인은 문도들을 다 불러오게 하여
게송 앞에 향을 사르게 하니,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므로 이에 홍인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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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라.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리라.”
문도들이 다들 외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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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홍인이 신수를 거처로 불러서 묻기를,
“네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으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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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가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스승님의 자리를 구함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서 보아주옵소서.
제자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겠습니까?” 하였다.
홍인은 신수에게 말하기를
“네가 지은 이 게송은 견해가
가까이 오기는 했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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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없는 보리(菩提)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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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문 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 본성(本性)을 보느니라.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게송을 지어서 나에게 와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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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문 안에 들어와서 자성(自性)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袈裟)와 법(法)을 너에게 부촉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신수는 돌아가 며칠이 지나도록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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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에 한 동자가 신수의 게송을 외면서
혜능이 일하고 있는 방앗간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이 게송이 견성(見性)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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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이 동자에게 묻기를
“지금 외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 하였다.
동자가 혜능에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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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르는가?
큰스님께서 말씀하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자 한다 하시고, 문도(門徒)들로 하여금
각기 게송 한 수씩 지어와서 보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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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큰 뜻을 깨쳤으면 곧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대의 조사(祖師)로 삼으리라 하셨는데,
신수(神秀)라고 하는 상좌가 문득
남쪽 복도 벽에 모양 없는
게송[無相偈] 한 수를 써놓았더니,
오조 스님께서 모든 문도들로 하여금
다 외게 하시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나고 죽음을 벗어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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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서 방아 찧기를 여덟 달 남짓 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보질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주게.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어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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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 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하였고,
글자를 알지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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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은 또한 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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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自性)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느니라.’
혜능은 이러한 뜻을 게송으로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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菩提本無樹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 명경은 역시 대가 아니다.
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 어느 곳에 티끌 먼지가 끼겠는가?
하처야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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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是菩提樹 마음 이것은 보리 나무요
심시보리수
身爲明鏡臺 몸은 밝은 거울대라.
신위명경대
明鏡本淸淨 밝은 거울은 본래 청정하거니
명경본청정
何處染塵埃 어느 곳에 티끌 먼지 더럽히리오.
하처염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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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은 자신의 게송을 남겨두고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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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안의 대중들은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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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조 홍인은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고,
곧 혜능이 큰 뜻을 깨쳤음을 알아챘으나,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눈치 챌까 두려워하여
대중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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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또한 깨달은 바가 아니로다!” 하고
신발을 벗어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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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본 문도들이 혜능을 비웃기 시작하였다.
이에 홍인은 비로소 마음을 놓고
당우(堂宇)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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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홍인은 조용히 방앗간을 찾았다.
“방아는 다 찧었느냐?”
“다 찧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키질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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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vml]--><!--[endif]--> 방아는 다 찧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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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를 다 찧었느냐’는 말은
마음의 번뇌의 껍질은 다 벗었느냐는 말이었으며,
키질만 하면 된다는 것은
번뇌는 다 벗었으나 본성(本性)을 밝히기 위해서는
껍질을 키질해줄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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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행자가 있었으나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지를 못했다.
혜능의 마음을 알아차린 홍인은
주장자로 절굿대를 세 번 치고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돌아갔다.
이것은 삼경(三更)의 깊은 밤에
뒷문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 것 역시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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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이 삼경 깊은 밤에
조사당의 뒷문으로 찾아갔다.
홍인은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불러들여
「금강경」을 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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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은 ‘머물지 않는 곳에
그 마음이 생긴다(應無所住而生其心)’는
구절에 이르러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혜능이 그날 밤으로 법(法)을 전해 받았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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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오조 홍인은 ‘단박에 깨치는 법(頓法)’과
‘가사(袈裟)’를 전하며 말하였다.
“네가 육대 조사(六代祖師)가 되었으니
가사(袈裟)와 발우(鉢釪)로써
신표(信標=증표)를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法)은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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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홍인은 또 말하기를
“혜능아, 예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마치 실낱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이곳을 떠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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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vml]--><!--[endif]--> 사(袈裟)와 발우(鉢釪) 이곳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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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은 가사와 발우와 법을 받고
그 밤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홍인은 그날 밤, 몸소 구강역(九江驛)까지
혜능을 전송해주며 처분을 내리기를,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3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 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
그리고 가사와 발우는 더 이상 전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육조 혜능은
오조 홍인을 하직하고 곧 떠나서 남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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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이 가사와 법을 가지고 떠났음을 알게 된
수백 명의 문도들이 뒤를 쫓아와서,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발우를 빼앗고자 하였다.
그러나 혜능을 잡지 못하고
계속 뒤쫓고만 있었는데,
오직 한 스님이 혜능이 떠난 지
두 달 가량 되어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을 때
고갯마루까지 쫓아 올라와서
혜능을 덮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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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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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혜명(惠明)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이었는데, 혜명은
그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한 스님이었다.
육조 혜능이 곧 가사와 발우를 바위 위에 두고
혜명에게 “가져가라”고 하였으나
바위에 붙은 가사와 발우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여기서 문득 깨달은 혜명이 말하기를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法)을 구함이요,
그 가사와 발우는 필요치 않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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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혜명에게 전하니,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에 마음이 열렸으므로,
육조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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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혜능은 남방으로 내려가 15년 후,
광주 법성사(法性寺)에서 비로소
법(法)을 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선종(禪宗)을 크게 융성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가사와 발우는
전해져 내려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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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내용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오조 홍인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는
상좌였던 신수(神秀)를 인정해주고
혜능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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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자기만족에 빠진 신수 상좌와,
신수의 견해에 현혹된 문도들의 시기심으로 인해
육조 혜능이 저해를 받지 않도록
감싸고 보호키 위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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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방앗간으로 찾아간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의 대화는
일반인으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서로 간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하는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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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으로 찾아간 홍인에게 혜능이
가르침을 구하자 홍인은 곧 그 뜻을 알아차리고,
삼경이 다 된 깊은 밤에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오라고 하였다.
혜능이 삼경이 다 된 밤에 홍인의 처소를 찾아가자
「금강경」을 강설해주고 말하기를,
“내가 당번(幢幡:긴 장대에 부처의 위덕과 공덕을 수놓아 매단 깃발)을
날린 지 벌써 30년이 흘렀다.
이제야 내가 전해받은
법(法)을 전수할 그릇을 만났다.
그것이 바로 혜능 너이다.
너는 이제 육조(六祖)가 되었으니
가사(袈裟)와 발우(鉢釪)로써 그 증표를 삼아라”
하고 가사와 발우를 전하고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는 심법(心法)을 전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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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후 신수가 게송을 지어
다시 홍인을 찾아가니, 홍인이 말하기를
“이미 법을 전하였다” 하였다.
그러자 신수가 “가사와 발우는 어찌하였습니까?”
하자 “능(能)한 자가 가져갔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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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신수는 일어나 나와
“남방 오랑캐가 가사를 훔쳐갔다” 하며
사람을 보내어 찾아오게 하였던 것이다.
이에 혜명이 사람들을 이끌고 혜능을 쫓아왔으나
가사와 발우는 결코 빼앗아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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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장사였던 혜명이
가사와 발우를 들 수 없었던 것은
이미 혜능에게 신명(神明)이
옮겨갔음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혜능이 육조(六祖)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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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심법전수는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여 법이 전해져 내려간 것이다.
반면 신수는 아무리 실력이 있고
세력이 있다고 하여도 오조 홍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오조와 통하지 못했던 것이며,
또한 욕심으로 가사와 발우를 차지하려 하여도
신명이 용납치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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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당 도전은 드러내어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미 이때부터 내심 종통계승자를
찾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쌍계사를 순행하신 것은
당신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할 사람도
혜능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경우를 당할 것을
예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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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홍인이 하였던 것처럼
감추어야 하고 덮어야 하며 또 시기하는 자들의
저해로부터 보호해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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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홍인과 혜능이 심법(心法)으로
법(法)을 전하였듯이 이번에도
심법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이며,
또한 가사를 전하고 법을 전하여
종맥(宗脈)의 증표를 삼았듯이
뚜렷한 증표와 법을 전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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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계획과 생각을 쌍계사를 방문하시면서
수립해가셨던 것이다.
박우당 도전께서는 이후 1986년에 5월에
또 한 차례 쌍계사를 방문하셨다.
이것은 쌍계사에 담긴 의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도(道)의 종통은
그에 걸맞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전해 받을 수 없음을
지나간 불교역사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강증산성사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종통계승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천부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주장할 수는 없는
여합부절의 증거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통계승자를 정하여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때에 그 사람을 찾아서 승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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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승계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심법전수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조정산께서도 화천(化天) 직전
박우당 도전을 향해 “도적놈”을
크게 세 번 부르는 역설적인 방법으로써
종통계승을 마무리했던 것이고
박우당 도전 역시 수많은 임원들 앞에서
온화하셨던 평소 모습과는 달리
“역적, 난동자”라는 격한 표현을 쓰시며
조정산성사께서 쓰신 역설적 방법으로
일반적인 문자(文字)의 경계를 벗어나
대도(大道)의 종맥을 전해주셨던 것이다.
그 역설법이란
박우당은 쪽박의 이치로 오셨기 때문에
쪽박이란 박을 둘로 쪼개도
둘 다 박이라는 뜻이다.
즉 박우당이 미륵이라면,
박우당을 미륵이라고 밝힌
박성구현도전님 당신도 미륵이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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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미륵이신데 내가 미륵이다 하고
직설적으로 말을 할 수 없으므로
역설법을 이용하여 박우당을 미륵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강증산성사께서
또 오는 박으로 두 번째 朴(박)인 박공우에게
만국대장 박공우라고 공사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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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당께서는 이른바
역설법(逆說法)을 활용한 독특한 방식으로
종통을 정해주셨기 때문에 그 당시 훈시내용을
이러한 심층을 기준으로 한 역설(逆說)로
대입(代入)시켜 분석해보면 종통에 관련한
모든 수수께끼가 홀연히 풀리는 것이다.
그들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밉다”라고 한 “표현”을 정말 미워서
밉다는 “말”로 알아들은 것이다.
즉, 기(氣)로써 듣지 않고
‘귀’로만 들은 것이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시선이 모두 쏠려
대인(大人)의 진의(眞意)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교외별전(敎外別傳):
문자를 떠나 마음에서 마음으로 별도로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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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인심(直指人心):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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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로써 가르침을 세울 수 없다.
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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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종맥을 이와 같이
대다수 제자들을 향한
‘모습’만 취하였을 뿐
그들의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
이치를 ‘알아듣는’ 사람끼리
1 : 1방식으로,
즉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전해졌던 것이다.
2. 물에서 도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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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도(道)는 진리(眞理)가 중요하다.
공부를 해서 조금 안다고 하여
그것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진리가 나오기 전에 허(虛)가 동한다고 한다.
거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
(92. 3. 18)
◉ 도(道)는 어려운 것이다.
알면 똑똑히 알고,
모르면 배우고 믿어 나가면 된다.
(91. 2. 12)
◉ 도(道)를 모르면 행하기가 어렵고 알면 쉽다.
진리를 옳게 안다면 어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확실하게 안다면 쉬운 것이다.
(89. 4. 12) (91. 2. 20) (9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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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인이라면 도를 통하는 것이다.
도(道)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어렵지,
도통(道通)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도통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도통이 나오긴 나와야만 된다.
올바른 수도를 해서,
도통을 하는 것이 어렵지
도통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9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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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道)라는 것이 진리이고 경위이다.
통한다는 것이 정당한 진리에 통한다는 것이지,
마음만 닦아서 신통(神通)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眞理)에 통하는 것이 도통(道通)이다.
(89. 6. 4) (9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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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통이란 도를 통하는 것이다.
우주삼라만상의 이치를 다 알고,
진리를 작용하고 움직이는 것을 도통이라 한다.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원래, 진리는 용추물에 있다.
그 진리에 통하는 것이 도통이다.
(9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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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연원도통인 것이다.
이번에 도통은 물에 있는 것이다.
물에서 도통(道通)이 나오는 것이다.
(93. 9. 8)
◉ 대강식(大降式)이 있다.
거기서 운수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봉강식(奉降式)으로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9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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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란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92.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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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교운 1장 4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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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주면 되려니와
도통 될 때에는 유 불 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
라고 증산께서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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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고,
대두목에게 도통하는 방법을 일러 주신다는 것은
종통 종맥이 삼천(三遷)으로 대두목에 이르러야
법(法)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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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은 맥(脈)이다.
전기 줄, 핏줄과 같이
전기가 통하는 맥이 전기 줄이고,
피가 통하는 맥이 핏줄이다.
도통줄이란 도가 통하는 맥을 말한다.
그 맥을 대두목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 맥은 대순하신 진리로
五行(오행)의 五運(오운)으로
五仙(오선)이 나와야만 도수가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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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천부의 종맥이 이어져야만
이것이 바로 도통줄인 것이다.
五仙(오선)인 대두목에까지 이르러야만
모든 법(法)이 완성(完成)되어
도통하는 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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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通(도통)이란 道(도)와 通(통)하는 것이다.
도(道)는 신(神)이다.
즉 도(道) 하면 천주(天主)의 신(神)을 말한다.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과 통하는 것이 도통이다.
그러므로 도통하는 방법은
상제님을 모시고 수도(修道)하는 것이다.
수도 없이는 도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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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성사께서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
하신 말씀은
증산성사께서 본인도 도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정산성사께서도 도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우당께서도 도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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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도 도인들은
조정산께서 도통을 준다고 믿었고,
대순진리회 임원들은 박우당께서
도통을 준다고 가르쳐 왔었다.
이것이 명백히 잘못 되었음을
“각자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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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성사께서 난법(亂法)으로 세워놓은 것이
진법(眞法)으로 바뀌어 정해져 내려오는데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즉 종통이 세 번 옮겨지면서
법이 세 번 바뀌어야 법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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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법이 정해지는 것이다.
즉 도를 창도하신 조 정산으로부터
삼천의 이치를 알아야만
그 삼천의 진법으로 도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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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삼천의 이치를 증산성사께서
공사로서 밝혀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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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교운 1장 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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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성사께서 무신년(1908년) 四월에
전주에 가셔서 여러 종도들로 하여금
글월을 정서하게 하시리라.
증산성사의 말씀에 따라 광찬은
김 병욱의 집에 머물면서 증산성사께서 전하는
글을 일일이 등사하고 형렬은 증산성사를 따라
용머리 주막에 가서 증산성사로부터 받은 글월을
광찬에게 전하느니라.
광찬은 그 글월을 정서하여 책을 성편하였도다.
증산성사의 명대로 책이 성편되니
증산성사께서 광찬에게 세상에 나아가
그 글을 전함이 가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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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찬이 증산성사의 존의에 쫓을 것을 여쭈니
증산성사께서 그에게 “경석에게 책 한 권을
주었으니 그 글이 나타나면 세상이 다 알 것이라.”
말씀하시고 성편된 책을 불사르고
동곡으로 떠나셨도다.
책 중에 있는 글이 많았으되 모두 불사르셨기에
전하지 못하였고 한 조각만이
종도의 기억에 의해서 전하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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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之商職也 農之工業也 士之商農之工職業也
사지상직야 농지공업야 사지상농지공직업야
其外他商工留所 (疑有闕文)萬物資生
기외타상공유소 (의유궐문)만물자생
羞耻放蕩神道統 春之氣放也 夏之氣蕩也
수치방탕신도통 춘지기방야 하지기탕야
秋之氣神也 冬之氣道也 統以氣之主張者也
추지기신야 동지기도야 통이기지주장자야
知心大道術 戊申十二月二十四日
지심대도술 무신십이월이십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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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士)와 상(商)은 직(職)이요,
농(農)과 공(工)은 업(業)이다.
사(士)와 상(商), 농(農)과 공(工)을
직업(職業)이라 한다.
그 외 다른 것은 상공에 속한다.
(글이 빠진 것 같아 의심스럽다.)
만물은 바탕을 타고 생겨난다.
羞恥(수치)스러운 일은
철을 알아야 도통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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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은 만물을 싹 튀우는 放(방)이고.
⤍ 여름기운은 만물을 기르는 蕩(탕)이고,
⤍ 가을기운은 만물을 성숙케 하는 神(신)이며,
⤍ 겨울기운은 본 체질로 환원하는 道(도)이고
⤍ 중앙은 이 모든 것을 통솔해 나가는
統(통)이니라. 이렇게 사상이 지난 이후라야
도통을 주장하는 주장자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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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은 중앙의 기운으로서 중앙에서
도통을 主將(주장)하는 主將者(주장)가 나오므로
이 주장자의 마음을 알아야 대 도술에 통한다.
1908년 12월 24일공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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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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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신도통(우주의 4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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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哲(철)을 알아야
道統(도통)을 한다고 분명히 밝혀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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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道(도)가 成道(성도)가 될려면
五行(오행)의 氣運(기운)이 돌아야 하므로
五仙圍碁(오선위기) 度數(도수)에
붙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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節侯(절후)란 24절후 4계절을 말한다.
이 사계절을 사철이라고 하는데
사철을 전반기 후반기로 나뉜다.
사철이 변화 하는 것을 모르면 철부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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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四季(사계)가 변화 하는 것이야 알지마는
우주의 사계가 변화 하는 것을 알아야
도통을 한다고 하였는데 사람(四覽)이
이것을 모르니 수치스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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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四覽)은
四季(사계)를 볼 줄 안다고 해서
사람(四넉사, 覽볼람)이라고 하였는데
사계(四季)를 볼줄 모르니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도인이 도통을 받겠다고 수도를 하면서
철을 모르고 있으니 도통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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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교법 1장 6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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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日修身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신천재보 백년탐물일조진
此身不同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차신부동금생도 갱대하생도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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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수도하여 도(道)를 닦은 것이
천년(千年)의 보배가 되고,
백년 탐한 물건(도통)이 하루아침에 티끌이로다.
이 몸을, 만일 금생에 제도치 못하고 보면
다시 어느 生(생)을 기다려 이 몸을 제도 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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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하면
도인들이 100년 동안 탐하여 온 물건이 도통인데
이 100년 안에는 이루어지지 않으니
100년을 티끌처럼 날려 보내고
증산 화천 100년 후 3년만 수도(修道)해도
1000년의 보배가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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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100년 동안 탐했던 도통을
3년 수도하여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때에 태어나서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하면 즉 도통하지 못하면
과연 어느 때를 기다려 도통을 하겠는가!
기회는 한번이지 두 번 다시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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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권지 2장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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稚子哭問母何之 爲道靑山採藥遲
치자곡문모하지 위도청산채약지
日落西山人不見 更將何說答啼兒
일낙서산인불견 갱장하설답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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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가 울면서
엄마가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
청산에 약을 캐러 가서 늦는다고 하였다.
해는 서산에 지고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장차 다시 물으면
다시 무슨 말로 우는 아이에게 대답을 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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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이 말씀은 도인들이 박우당께서
운수 줄줄 알았는데 운수를 안주고 가셨으니
변명하기를 신명계가서 도통이란 약을 가지고
다시 와서 준다고 달랬는데 계속 오지 않으니
이번에는 무슨 말로 도인들에게
변명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은 소용없고
세상에 살아 있어야 운수도 주고
도통도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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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中李白酒中伶 一去靑山盡寂寥
시중이백주중령 일거청산진적요
又有江南楊進士 鷓鴣芳草雨蕭蕭
우유강남양진사 자고방초우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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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잘 짓고 술을 벗 삼던 이태백도
청산에 한번 들어가더니 입적하여 고요하구나.
또 강남에 양진사도 청산에 한번 들어가더니
녹음방초 우거지고 비바람은 부는데
그 쓸쓸함이 자고새와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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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말씀은 박 우당이 운수 줄줄 알고
좋아하고 믿고 따랐는데
청산에 한번 들어가더니 죽어서 말이 없는데
왜 죽은 사람을 믿고 기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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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기를 바란다면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오듯이 증산성사의 再生身(재생신)을 찾아라.
그러면 나로 하여금 오래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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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다시 말하면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운수도 줄 수 없으니 소용없다.
강남 갔던 제비가 즉 강증산께서
박씨를 물어 오는데 놀부박이 아닌 흥부박을
잡아야 천년의 보배가 된다.
놀부박은 박우당을 뜻하고
흥부박은 또오는 박으로 미륵세존님이시다.
그래서 박우당은 쪽박의 이치로 오셨고
이 쪽박의 이치를 깨달아야만 도통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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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에 시루산-부정리-쪽박골이 나오는데,
쪽박이란 박을 쪼갰을 때 생기는
두 개의 박을 말한다.
그러므로 또 박(朴)씨가 있는 것이다.
박 공우(朴 公又)는
공(公)자는 '그대 공자'이고,
우(又)자는 '또 우자'이다.
말 그대로「또 박공(朴公),
또 박씨」를 말하는 것이다.
비결에 나오는 차출박(次出朴)과 동일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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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행록 1장 4절】
이 시루산 동쪽들에 객망리(客望里)가 있고
그 산 남쪽으로 뻗은 등(燈)판재 너머로
연촌(硯村) 강동(講洞) 배장골(拜將谷)
시목동(枾木洞) 유왕골(留王谷) 필동(筆洞)등이
있으며 그 앞들이 기름들(油野)이오.
그리고 이 들의 북쪽에 있는 산줄기가 뻗친 앞들에
덕천 사거리(德川四街里) 마을이 있고
여기서 이평(梨坪)에 이르는 고갯길을 넘으면
부정리(扶鼎里)가 있고
그 옆 골짜기가 쪽박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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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註解)
(시루산 - 부정리 - 쪽박골이로다.)
* 시루산 [甑] - 강일순의 호가 증산(甑山),
* 부정리 [鼎] - 조철제의 호가 정산(鼎山)으로
양산(兩山)의 이치(理致)이고
* 쪽박골 [朴] - 쪽박은 박을 쪼갰을 때 생기는
두 개의 박을 말한다.
그래서 양박(兩朴)의 이치(理致)이다.
한 박(朴)씨는 박우당(朴牛堂)이시고 또
한 박(朴)씨는 박성구(朴成九)이시다.
그래서 양산 양박(兩山 兩朴)의 이치(理致)를
양산박(兩山朴)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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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의 이치(두 개의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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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격암유록 갑을가(甲乙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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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자생(枾從者生) 차출박(次出朴)
세인부지(世人不知) 정변박(鄭變朴)
(해석) : 감나무를 따르는 자는 산다.
감나무는 또 오시는 박(朴)씨이다.
세상사람들은 정(鄭)씨가 박(朴)씨로 변한 것을 모른다.
* 감은 우주를 상징한다.
그래서 감나무를 따르는 자는 산다. 가 아니라
우주의 주인이신 만국대장을 따르는자,
즉 천주(天主)를 모시는 자는 산다. 라는 뜻이다.
* 차출박(次出朴) - 차(次): 다음차, 둘째차,
출(出): 날출.즉 두번째 출(出)하는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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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결을 풀어보면,
예언서에서 말하는 정도령의 정씨가 아니라
그 정도령은 박씨로 변해서 오시는데
첫 번째 박씨가 아니고 두번째로 오시는
박씨를 따르면, 즉 모시면 산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두 번째 박씨가
우주의 주인으로서 만국대장이시니
이 분을 시천주(侍天主)해야만 산다는 예언이다.
【전경 예시 38절】
어느날 증산성사께서
차 경석의 집 서쪽 벽에 이십사장과
이십팔장을 써 붙이고 박 공우의 왼팔을 잡고
「만국대장(萬國大將) 박 공우(朴公又)」라고
음성을 높여 부르셨도다.
이후에 공우가 어디로 떠나려면 문밖에서
방포성(放砲聲)이 갑자기 울리곤 하였도다.
• 만국대장(萬國大將)이라 함은
天下萬國(천하만국=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의
大將(대장)이란 뜻으로
宇宙(우주) 森羅萬象(삼라만상)의
主人(주인)이신 옥황상제님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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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우(朴公又)의 의미는
박우당(朴牛堂) 다음에
‘또 오는 박씨’인 박성구(朴成九)도전님,
그대가 만국대장(萬國大將)이다.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또 오는 박씨’인
박성구(朴成九)도전님께서
宇宙(우주)森羅萬象(삼라만상)의 主人(주인)으로
옥황상제님이신데 이 분이
만국대장(萬國大將)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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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대두목은 만국대장(萬國大將)이 아니고
道(도)의 主人(주인)이
만국대장(萬國大將)이라는 뜻이며
대두목은 만국대장(萬國大將)의 命(명)을 받고
만국대장(萬國大將)을 모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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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십사장(二十四將)과
이십팔장(二十八將)을 차경석의 집 서쪽 벽에
써 붙였는데 이 말씀의 의미는
서쪽은 증산성사께서 사명을 갖고 오신 방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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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록 5장 33절에
“전라도고부군우덕면객망리강일순호남서신사명
(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姜一淳湖南西神司命)”
이라고 하였듯이 이는
이십사장(二十四將)과 이십팔장(二十八將)을
증산성사께 붙여주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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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車京石(차경석)의 집에서 공사를 본 이유는
車(차)는 수레 車(거)자로
한 바퀴 순회하여 온다는 뜻이며,
또한 별주부전에 나오는 자라 차 씨라고도 한다.
자라는 북방 1·6수의 물을 상징한다.
즉 이 말은 증산께서는 一巡(일순)하여
물의 이치로 온다는 뜻이
車(차)라는 글자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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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京(경)은 서울 京(경)자로
모든 법은 서울로부터 퍼져 나간다 했으니
증산께서 一巡(일순)하여 물의 이치인
다섯 번째 五仙(오선)으로 오시는데
다시 오실 때에는 眞法(진법)이 새로이 정해져서
그 眞法(진법)이 서울로부터
세계만방으로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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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石(석)자는 돌 石(석)자 인데
돌은 바둑돌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돌이
후천 정역세상인 바둑판을 운전한다는 뜻이다.
즉 증산께서 물의 이치인 五仙(오선)으로
다시 와서 후천 정역세상을 이끌어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진법(眞法)이 서울로부터
세계만방에 퍼져 나간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숨겨진 뜻을 車京石(차경석)이라는
이름에다가 공사를 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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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이십사장(二十四將)과
이십팔장(二十八將)에 대해서 알아보면
이십사장(二十四將)은 천하가 어지러울 때
당태종 이세민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였던
장수들로써 사후(死後) 24절후를 맡은
이십사절후(二十四節候) 신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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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장(二十八將)은 천하가 어지럽자
후한의 광무제를 도와 천하를 평정하였던
장수들로써 사후(死後)에
28수를 맡은 이십팔수(二十八宿) 신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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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성사께서는 이러한 장수신명들의
우두머리로서 삼계대권을 주재하는
구천응원뇌성보화 천존 神將(신장)인 것이다.
이것은 신장주(神將呪) 주문에 잘 나와 있는데
그 주문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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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신장주(神將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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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옥경천존신장 천상옥경태을신장
상하변국뇌성벽력장군 백마원수대장군
뇌성벽악장군 악귀잡귀금란장군
삼수삼계도원수 지신벽력대장군
천지조화풍운신장 육정육갑둔갑신장
태극두파팔문신장 음양오행조화신장
삼태칠성제대신장 이십팔수제위신장
이십사절제대신장 감아미성 조아대력
역발산 오봉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강성상제 칙속칙속 음음 급급 여률령 사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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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듯이 증산성사께서는
산도 뽑을 수 있는 큰 힘(능력)을 가진 분으로
모든 신장들을 통솔하시는 장수신명이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vml]--><!--[endif]-->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신장(옥추보경)
그리고 증산성사께서는
『전경』 「예시」 34절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문자로서도
능히 사물을 기록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에 없는 말로 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위 사진은 옥추보경에 나오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신장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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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능화』가 쓴 조선도교사의 내용이다.
『이능화』가 쓴 조선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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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은 내용을 보더라도 증산성사께서는
뇌성보화천존(雷聲普化天尊)이시지 상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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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창도하신 조정산께서
강증산 성사의 정체를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이라 밝혔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그 이름이 神將(신장)의 이름인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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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이란
고서(古書) 『옥추보경(玉樞寶經)』,
『삼성보전(三聖寶典)』 등과
중국의 사대 기서(奇書) 중에 하나인
『서유기(西遊記)』에도 기록되어 있는
神將(신장)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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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증산께서는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니라.
괴롭기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
고 말씀하셨도다.(공사 1:9)
그러므로 공사를 맡긴 주인(主人)은 따로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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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교의 삼신(三神):
상청(上淸)의 원시천존(元始天尊)과
옥청(玉淸)의 영보천존(靈寶天尊)과
태청(太淸)의 도덕천존(道德天尊)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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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천존은 도교에서 만신(萬神)의 제왕이신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뜻하며,
영보천존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을 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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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세종(明世宗)이 지은 「옥추보경서설」에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상거옥청지경 총사오뇌 섭복제마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上居玉淸之境 總司五雷 攝伏諸魔,
즉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은 옥청경에 계시며,
다섯 뇌전을 맡아 계시고,
모든 마(魔)를 굴복시켜 다스리신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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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천존은 도교의 지존신(至尊神)으로
「태상노군개천경」에 의하면,
천지개벽 이후 주(周)나라 초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하강(下降)하여 사(師)가 되었으며,
매 차례마다 경문(經文) 1부씩을 토해놓아
군왕과 백성을 교화하고 세상일을 다스려,
그들로 하여금 생존을 얻게 하였다고 한다.
달리 교화주(敎化主), 구세주(救世主)라고
표현되어 있다.
한편 「서유기」에는
‘도솔천의 천주(天主)’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불교의 ‘미륵세존(彌勒世尊)’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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