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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의 어원

고도인 2006. 6. 22. 20:34
백중의 어원 | 낙서장 2005/08/2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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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은  음력  7월  보름에  드는 속설이며,  백종, 중원,  또는  망혼일이라고  한다.   백종은  이무렵  여러가지  과실  채소가  많이  나와   백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유래된  말이다.   중원은  도가에서   말하는  삼원의   하나로서   이날에  천상의  선관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연유 하였다.   또한  망혼실이라  한  까닭은   망친의  혼을  위로  하기  위해서   술 음식  과일을  차려  놓고  천신을  드린다에서  비롯 되었다.

 

백중의  유래

입하로 부터   시작 되는  여름은  "녀름 짓다"라느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 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어정 7월, 동동  8월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농촌의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 으로는  가을  추수를  앞둔  다리어서   잠시  허리를  필 수  있는  시기 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백중'이라는  속절을  두어  농사일을  멈추고  천신 위례 및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더위로  인해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 하고자  했다.   백중의  유래의  대해  몇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 세시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불가의  중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로  여긴다.   상고 하면  <형초 세시기>에  이르기를   중원일은  승니. 도사, 속인 들이  모두  분을  만들어  이것을  절에  바친다고  했다.

또  상고하면  <우란 분경>에  목련 비구가  오미 백과를  갖추어  분안에  넣어  갖고  시방 대덕에  공양 한다고  하였다.  지금 말한  백중 일이  백과를  가르키는  것이다.   고려  때는  부처를  숭상하고  이날이 오면  항상  우란  분회를  베풀었다.

 

오늘날  불당에서  재를  올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백중의  유래는   불가에서  유래 된 것으로  고려 시대에는   우란 분화르  열어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상의  영전에  바쳤다.    조선시대  때에는  역불 숭유 정책으로  승려들 만의  불교 의식이 되고  말았다.

 

또  조선 후기에  간행된  <송남 잡식>의  기록에  의하면  우란 분회  때  승려드리  발을 닦아  발  뒤꿈치가  하핳게  되어  백종이라  한다는  설도  있으나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편  제주도에는  백중에  관한  섫화가  전해지고  있다.

 

진성기<남극의 민속>(하)에  소개 되고 있는  이  설화에  의하면  백중은  농신으로  상정 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주도의  목동이  곡식과  가축을  지키려고  옥황상제의  명을  어겼는데  이로 인해  노여움을  받아  스스로  자결  하였다.   그후  농민들이  그가  죽은  날인  음력 7월을  백중일 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어  그의  영혼을  위로  하였다." 이렇게  볼 때  백중은  본시  우리나라  고대의  농신  제일  이었던  것이  삼국시대  이 후  불교의  우란 분회의  영양을  받아  그 원래의  의미가  상실 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