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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공명의 속수지지(束手之地)

고도인 2008. 1. 8. 11:47

 

 

束手之地葛公謨計不能善事 

         속 수 지 지 갈 공 모 계 불 능 선 사

         瓦解之餘韓信兵仙亦無奈何

         와 해 지 여 한 신 병 선 역 무 내 하


두 손이 묶인 상황에서는 제갈공명이 일을 꾸며 계획한다 하여도 능히 일을 잘 할 수 없고, 병사가 흩어진 연후에는 병선이라는 한신이라도 어찌할 수 없다.


제갈공명의 신과 같이 뛰어난 재주라도 수족이 되어줄 사람이 없으면 쓰지 못하고, 아무리 병사를 잘 다루는 한신이라도 병사가 흩어지고 없어진 연후에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이다.


제갈공명의 속수지지(束手之地) 고사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山野)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陣)’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軍糧輸送路)의 요충지인 ‘가정(街亭:韓中의 東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街亭)을 잃으면 촉나라의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책(重責)을 맡길 만한 장수가 마땅치 않아서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 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街亭)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습니다.”

제갈량은 마속에게 임무를 맡기기로 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협로(峽路)를 사수만 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욕심을 내어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다 진을 쳤다. 그러나 마속의 생각과 달리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로 산 위를 공격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산 위에서는 식수가 끊겼고, 다급해진 마속은 전병력을 동원해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위나라 용장 장합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마속이 실패한 지경에 이르자 제갈량의 계책(計策)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결국 전군(全軍)을 한중(韓中)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갈량은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지만 군율을 어긴 마속을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제갈량의 뛰어난 계책일지라도 그 수족이 되는 장수가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마치 손발이 묶인 지경이 되어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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