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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나 전설을

고도인 2006. 7. 13. 18:34

백두산 신화

밭에선 오곡이 무르익고 강에선 고기떼가 헤엄치고 산에선 새와 짐승들이 득실거렸다. 옛날에 이렇듯 풍요하고 살기 좋은 곳이 있었으니 그 고장이 바로 백두산 일대에 자리잡은 오붓한 마을들이었다.

그런데 세상 일은 복잡하게 마련이고 길흉은 서로 다투게 마련이어서 평화롭고 행복하던 여기에 일대 재난이 덮쳐들었다. 하늘에 심술 사나운 흑룡이 나타났다. 검은 구름을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흑룡은 물칼을 휘둘러 이골 저골의 물곬 을 지져놓았다. 곡식들이 노랗게 말라들었고 나뭇잎이 쪼글쪼글해졌다. 밭이란 밭은 갈라져서 거미줄을 늘인 듯하였다.

사람들은 성이 백가라는 장수를 모시고 왕가물과 싸웠다. 샘물줄기를 찾느라고 숱한 사람들이 떨쳐 나섰다. 괭이소리, 삽질소리. 메질소리가 낮에 밤을 이어서 울려 퍼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샘물줄기를 찾아내었다. 콸콸 솟구쳐 오르는 샘물을 보고 사람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들이 금방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청청하던 하늘에 먹장구름이 덮쳤다. 번쩍번쩍 번개치고 우릉우릉 우레 울고 쏴쏴광풍이 휘몰아쳤다. 샘물줄기를 찾아놓은 뒷산 벼랑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다. 광풍은 집채 같은 바윗돌들을 가랑잎 날리듯 하여 샘물 줄기를 덮어놓았다.

날이 개자 남녀노소가 달려 나왔다. 햇볕에 등허리를 지지우며 이를 악물고 파놓은 샘물터가 눈 깜박할 사이에 돌산으로 변한것을 보고 여인들은 눈물을 머금었고 장년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유, 못살 때를 만났구려!"
"흑룡의 조화를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이오. 기가 딱 막히오."

여기저기에서 실망의 찬 한탄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때 바윗돌에 걸터앉은 한 사람만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몸집이 떡구유처럼 우람찬 그는 키가 구척이나 됐다. "헤이 씨!"하고 그는 울분을 토하며 일어나서 제 앞에 있는 바윗돌을 툭찼다. 망짝 같은 돌이 고무공처럼 채여 나갔다. 그가 바로 백장수였다.

"백장수님!"

부름소리를 듣고 돌아서니 가산을 꿍진 이사꾼들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살길을 찾아 떠나야겠수다."

백장수는 눈물이 글썽해서 그들의 손을 잡고 말을 하였다.

"좋을 대로 하소이다. 이 백가가 이렇듯 맥을 못추니 더는 만류할 수 없나이다."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하였다. 백장수는 바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아아! 이를 어쩌노?"하고 머리를 싸쥐었다.
이때 그의 찰에 아리따운 공주가 나타났다.

"공주님께서 어이하여 이 위험한 곳으로 오셨나이까? 어서 피하소서."

백장수는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다.
공주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대가 물을 찾자고 싸우는 일편단심에 감천하였나니 적은 힘이라도 이바지하려고 찾아왔나이다."

이렇게 허두를 뗀 공주는 지난밤에 꿈을 꾼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밤에 금방 잠들었을때였나이다. 하늘에서 칠색 무지개를 정원에 드리우지 않겠나이까. 무지개에 취하여 멍하니 서 있는데 하얀 옷을 입은 늙은이가 금막대기를 짚으며 오셨나이다. '안녕하옵나이까?' 하고 공손히 인사를 드렸더니 '난 하늘의 신선으로서 그대에게 전할 일이 있어서 왔노라. 지금 흑룡이 백두산 일대에 물줄기를 지져놓아서 왕가물이 들었노라. 백장수가 백성들을 거느리고 우물을 파며 물줄기를 찾고 있노라. 그런데 그의 힘이 아직 흑룡을 당할 수 없노라. 그가 흑룡을 이기려면 백두산에 있는 옥장천의 샘물을 석 달 열흘 마셔야 하느니라. 이건 너희 나라의 일이므로 네가 알려야 하노라.' 신선은 금막대기를 휙 젓더니 사라졌나이다. 깨어나니 꿈이었나이다. 그래서 백장군을 찾아왔나이다."
"공주님, 고맙소이다. 소인에게 옥장천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길 바라옵니다."
"우리 함께 가사이다."

그리하여 공주은 백장수를 데리고 옥장천을 향하여 떠났다. 곤주는 책이나 보고 그림이나 그리고 거문고 따위나 뜯는 았가 아니었다. 길을 가다가 깊은 계곳을 만나면 훌훌 날아 넘었다.
백장수는 공주의 재간에 탄복하면서 그를 따라 사흘동안 걷고 걸었다. 얼마나 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깎아지른 벼랑이 앞길을 막아서서 백장수네는 걸음을 멈추었다. 벼랑밑에서는 옥 같은 샘물이 볼롱볼롱 솟아오르고 있었다.

" 이 샘물이 옥장천이오이다."

백장수는 옥장천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샘물가에 엎드렸다. 그는 단숨에 다 마시기라도 할 듯이 꿀꺽꿀꺽 들이켰다.
물을 기껏 마시고 백장수가 일어서자 공주는 ,

" 석달 열흘이 차는 날 다시 오겠나이다."

하고 표연히 사라졌다.
공주가 떠나가자 백장수는 벼랑가에다 작은 막을 치고 쉴새없이 샘물을 마셨다. 과연 석달 아흐레를 마시고 나니 힘미 마구 솟구쳤다. 집채 같은 바윗돌도 공깃돌처럼 다룰수 있었고 하늘 찌르는 노송도 밭고랑 넘듯하였다.

그날 저녁에 말과 같이 공자가 왔다.
백장수는 너무도 반가워서 '공주님!'하고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간 고생이 많았겠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공주의 얼굴에는 친절한 웃음이 남실거렸다.
이튿날까지 석 달 열흘동안 옥장천의 샘물을 마신 백장수는 백두산 마루에 올라가서 삽으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그 삽이 얼마나 컸던지 한 삽을 파내서 던지면 하나의 산봉우리가 우뚝우뚝 일어섰다. 그가 열여섯 삽을 떠서 동서남북으로 벼렸더니 16기봉이 생겨났고 움푹하게 패인 밑바닥에서는 지하수가 강물처럼 속구쳐 올라왔다.
백장수와 공주는 너무도 기뻐서 서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포옹하였다.
이윽하여서야 계면 쩍은 생각이 든 백장수는 공주를 풀어놓으며 말을 하였다.

"공주님! 소인이 너무 경솔하였으니 용서하길 바라옵니다."

공주는 생긋 웃으며,

"아니, 무릎은 왜 꿇고 있나이까? 어서 일어나셔요."

하고 귀밑을 살짝 붉히었다.
그때였다. 졸지에 광풍이 일며 먹장구름이 삽시에 하늘을 덮었다.
동해에 나가서 용왕의 딸을 희롱하던 흑룡은 백두산에 큰물이 났다는 급보를 듣고 부랴부랴 날아왔던 것이다.

"왠 놈이 게서 물줄기를 터지웠느냐? 당장 내 칼을 받아라!"

흑룡은 불칼을 휘두르며 땅이 들썩하게 울부짖었다.
백장수는 추호의 겁도 없이 흰구름을 잡아타고 마는도를 휘드르며 웅전하였다.
흰구름과 검은 구름이 마주치자 뇌성이 울부짖고 하늘이 진동하였다.
공주는 기회를 엿보며 그들의 싸움을 쳐다보았다.
불칼을 휘드르는 흑룡은 하나의 불덩어리 같았고 만근도를 휘두르는 백장수는 하나의 은덩어리 같았다.

백장수와 흑룡은 아무리 싸워도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들이 싸움에 여념이 없을 때 공주는 흑룡을 향하여 연속 단검을 뿌렸다. 단검들이 꼬리를 물고 유성마냥 흑룡을 향하여 날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백장수를 당하기 어렵겠다고 여기던 흑룡은 단검까지 연속 날아들자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백장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만근도로 흑룡의 불칼을 힘껏 내리쳤다. '쟁강!'소리와 함께 불칼이 뭉청 끊어져 땅에 떨어녔다.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흑룡은 삼십육계에 줄행랑이 제일이라고 동해로 꼬리 빳빳이 쳐들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흑룡을 전승한 백장수와 공자가 백두산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는 흙구덩이에 맑은 물이 꽉 차서 넘실거렸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천지가 되었다 한다.

백장수와 공주는 흑룡이 다시는 백두산에 와서 물줄기를 지져놓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천지 속에다 수정궁을 지어놓고 살았다고 한다.

 

 

가믄장 아기

옛날에 거지 부부가 딸 셋을 낳았습니다.
첫째 딸은 은그릇으로 먹여 살려 은장아기, 둘째 딸은 놋그릇으로 먹여 살려 놋장아기,
셋재 딸은 검은 나무 그릇으로 먹여살려 가믄장아기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이 가믄장아기가 복덩이였는지 부부은 셋째 딸을 낳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자가 된 거지 부부가 딸들의 효심을 시험해보기 위해 딸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너는 누게 덕에 살암서?"

은장아기와 놋장아기가 대답했습니다.
"하느님, 지하님, 부모님 덕으로 잘 산다"

하지만 가믄장아기는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하느님, 지하님, 부모님 덕도 있지만 내 배꼽 밑의 선긋믓 덕으로 잘사오"

그 말에 거지 부부의 화를 산 가믄장아기는 불효를 했다하여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떠돌던 가믄장아기는 마를 캐던 마둥이 삼형제를 만나게 되어 막내 마둥이와 부부가 되어 함께 마를 캐러 다니게 됩니다. 어느날, 그들이 마를 캐는데 파낸 구덩이에서 금덩이가 쏟아져 나와 가믄장아기와 마둥이는 큰 부자가 됩니다.

거지 부부는 가믄장아기를 쫓아낸 후 다시 거지가 되고 눈까지 멀어 두 딸들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가믄장아기는 맹인 잔치를 열어 부모를 기다리고, 잔치 마지막 날 가믄장아기의 부모가 찾아오자 가믄장아기는 그들에게 술을 권하며 자신이 쫓겨난 가믄장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러자 부부가 놀라 딸을 보려는 순간 그들의 눈이 뜨여 앞을 볼 수 있게 되고, 거지 부부와 가믄장아기는 죽을 때까지 잘 살았다고 합니다.

 

 

박혁거세 신화



박혁거세(朴赫居世) 신화도 다른 건국신화들과 공통적으로 천신(天神)이 강림하여 나라를 세운 줄거리 형태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다른 건국신화와는 다른 박혁거세 신화의 자체 특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는 씨족사회(氏族社會)가 연합되어 하나의 왕국으로 뭉쳐져 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고 둘째는 다른 신화들과는 달리 박혁거세 신화는 우물에서 태어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신라인들의 성역이 우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는 같은 날에 신비롭게 태어난 알영과 혼인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다른 신화들과는 다른 특색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혁거세(朴赫居世) 신화의 가장 큰 특색은 박혁거세 주검이 분리되는 데에 있다. 이 부분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시체분리 모티브와 연관되며 신라(新羅)인의 도래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진한(辰韓)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첫 번째가 이씨의 조상인 알평이 다스리는 알천 양산촌인데, 알평은 하늘에서 표암봉으로 내려왔다.두 번째는 정씨의 조상인 소벌도리가 다스리는 돌산 고허촌으로, 소벌도리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왔다.세 번째가 손씨의 조상인 구례마가 다스리는 무산 대수촌으로, 구례마는 하늘에서 이 산으로 내려왔다.네 번째가 최씨의 조상인 지백호가 다스리는 취산 전지촌인데 지백호는 하늘에서 화산으로 내려왔다.다섯 번째가 배씨의 조상인 지타가 다스리는 금산 가리촌으로, 지타는 하늘에서 명활산으로 내려왔다.여섯 번째는 설씨의 조상인 호진이 다스리는 명활산 고야촌인데 호진은 하늘에서 금강산(경주 북쪽에 있는 산)으로 내려왔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룻날 여섯 마을의 족장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알천 언덕에 모여 회의를 하였다.

"우리에겐 백성을 다스릴 임금이 없소. 그래서 백성들은 제멋대로 행동하여 질서가 잡혀지지 않고 있소. 이제 우리에게도 임금님이 있어야겠소."

"그래야지요. 임금님을 모시고 나라를 세워 도성을 갖추어야 합니다.""우리 임금님은 마음이 어질고 슬기롭고 덕과 용기를 갖춘 인물이라야 하오.""그런데 그런 인물을 어디서 찾는단 말이오?" 이런 논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회의 장소인 알천 언덕에서 남쪽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양산 기슭에 이상한 기운이 보였다.

"저것이 무엇이오?""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봅시다.""앗! 저기 양산촌 나정 우물가에 신비한 오색 광채가 뻗치고 있소.""흰 말 한 마리가 거기에 대고 절을 하고 있어요.""그렇군요!""무슨 징조일까?" 그들은 오색 광채가 뻗치고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흰말이 절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 보니 흰 말 앞에는 자줏빛 알 하나가 놓여 있었다.말은 몰려온 사람들을 보더니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사람들이 그 알을 깨어 보니 생김새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모든 사람들은 놀랍고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우선 목욕부터 시킵시다." 누군가 말하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알에서 나온 아기를 데리고 가서 동천 냇물에 목욕을 시켰다.깨끗이 씻긴 아기의 몸에서는 광채가 났고 새와 짐승들이 모여들어 춤을 추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햇빛과 달빛이 더욱 밝아지기까지 하였다.그러자 아기의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고 지었다.여섯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임금님을 내려 주었다고 생각을 했다.

"이제 임금님이 내려오셨으니 마땅히 덕이 있는 왕후를 찾아 짝을 지어야 하오."

백성들의 바람대로 같은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 우물가에 한 마리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그 아기의 얼굴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이 생겨서 사람들이 곧 아기를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로 데려가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떨어졌다.부리가 빠진 시냇물이라 해서 시내의 이름을 발천이라고 했습니다.여섯 마을의 족장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두 아기를 받들어 길렀다.사내아이가 태어난 알의 모양이 박과 같았기 때문에 성을 박씨라고 지었고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지었다.13세가 되던 해 여섯 마을 족장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받들고 알영을 왕비로 삼아 나라를 세우니 기원전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처음에 나라 이름을 '서라벌', '서벌', '사라', '사로'라고 하다가 '계림국'이라고도 고쳤으나 후세에 와서 '신라'라는 이름으로 정했다.혁거세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째 되던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간 뒤 7일 만에 죽은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그 후 왕비도 왕을 따라 곧 세상을 떠났다.이에 백성들은 땅에 흩어진 왕의 몸을 한 자리에 모아 장사를 지내려 하였다.그런데 큰 뱀이 나타나 쫓아다니며 왕의 몸을 한자리에 모으지 못하게 방해했다.그래서 백성들은 혁거세왕의 머리와 팔다리를 따로따로 다섯개의 무덤을 만들고 그것을 사릉(蛇陵)이라고 했다.혁거세왕의 뒤를 이어 태자 남해가 왕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

 

 

 

동명왕 신화(東明王神話) (주몽 신화)





고구려(高句麗)는 곧 졸본 부여(卒本扶餘)다. 혹 지금의 화주(和州)니 성주(成州)니 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졸본주는 요동(遼東)의 경계에 있다. 국사 고려 본기(本記)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시조 동명왕(東明王)은 성(姓)은 고씨(高氏)요,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이 보다 앞서, 북부여 왕 해부루(解夫婁)가 동부여로 피해 가고, 부루가 죽자 금와(金蛙)가 왕위를 이었다.

그 때 한 여자를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만나 물으니,

"나는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柳花)입니다. 동생들과 놀러 나왔다가 하느님의 아들인 해모수(解慕漱)를 만나 웅신산(熊神山) 밑 압록(鴨祿)가에서 같이 살았는데, 그는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중매 없이 남을 따라간 것을 책망하여 여기에 귀양 보낸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금와(金蛙)가 이상히 여겨 유화를 집에 두었더니, 햇빛이 비쳐 몸을 피해도 좇아가며 비추었다. 이로 해서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 들이나 되었다. 왕이 버려서 개,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으며, 길에 버리면 소나 말이 피해 가고, 들에 버리면 새와 짐승이 덮어 주었다. 왕이 깨뜨리려 해도 깨어지지 않으니 도로 어미에게 주었다. 어미가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기골이 영특하고 기이하여 7세에 벌써 보통 사람과 다르게 뛰어났다.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百發百中)하였다. 속담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

금와에게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주몽과 같이 놀면 그 재주가 늘 따라가지 못하였다. 맏아들 대소(帶素)가 왕에 말하되,

"주몽은 사람의 소생이 아니니, 만약 일찍 없애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사옵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왕은 듣지 않고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주몽은 좋은 말을 알아보아 조금씩 먹여 여위게 하고 나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했다. 왕은 살찐 것을 타고 여윈 것은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의 어미가 왕의 다른 아들들이 여러 장수와 함께 주몽을 장차 해치려 함을 알고,

"이 나라 사람들이 너를 해치려 하니, 너의 재주와 지략으로 어디로 간들 안 되겠느냐? 속히 일을 꾸며라."

라고 하였다.

이에 주몽이 오이(烏伊)등 세 사람의 벗과 엄수(淹水)에 이르러 고하되,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손자다. 오늘 도망하고 있는데 뒤쫓는 자가 따라오니 어찌하리오?"

하니, 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놓아 주었다. 주몽이 건너자 다리는 사라지고 쫓아오는 군사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졸본주에 이르러 도읍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짓지 못하여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국호(國號)를 고구려(高句麗)라 하였다. 고씨(高氏)로 성을 삼았으니, 그 때 나이 12세였다.

바리데기 신화

 

전설의 고향에서도 나왔던이야기입니다


옛날옛적 인간 땅 삼나라에 오구대왕이라는 임금이 살았는데,
나이가 찼는데도 장가를 가지 않고 혼자 살았다. 신하들과 백성들의 성원에 결혼하기로 한 왕은 나라 안 여러 처녀중에서 왕비감을 고르는데, 길대라는 처녀가 슬기롭고 아름다워서 오구대왕 마음에 쏙 들었다.
왕비를 길대로 정하고 낳을 받아 혼례를 준비를 하는데, 이때 하늘 세상 천하궁에 사는 가리박사라고 하는 점쟁이가 삼나라에 들어렀다.
대왕궁에 와서 혼례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대왕님, 대왕님, 지금 길대아기씨와 혼례를 올리시면 딸 일곱을 낳으실 것이요, 기다렸다가 내년에 혼례를 올리시면 아들 일곱을 낳으실 것입니다"

하였다. 오구대왕이 그 말을 듣고 그냥 웃어 넘겼다

"딸 일곱이 아니라 일흔일곱을 낳는다 해도 내년까지 못 기다리겠다. 어서 혼례 준비를 하여라"

그래서 칠월칠석으로 날을 받아 혼례식을 올렸다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은 부부가 되어 금실이 좋게 살았고 그해 겨울이 가고 봄이 되어 길대부인의 배배 불러오더니 달이 차서 첫아이를 낳았는데. 낳고 보니 딸이었다.

"첫딸은 복덩이 딸이니라. 본이름은 청대공주요 별명은 해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은 기뻐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앞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다.
그 이듬해 또 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에도 딸이었다.

"둘째딸은 살림 불릴 딸이니라. 본 이름은 홍대공주요 별명은 달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은 기뻐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뒷산에 별궁을 직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다.
그 이듬해 도 아이를 낳았더니 이번에도 딸이었다

"셋째 딸은 노리개 딸이니라. 본이름은 녹대공주요 별명은 별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은 기뻐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동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다.
그 이듬해에도 딸을 낳았는데

"넷재딸은 재롱둥이 딸이니라, 본 이름은 황대공주요 별명은 물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은 기뻐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서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다. 그 이듬해 또 아이를 낳았는데. 그 역시 딸이었다

"다섯때 딸은 덤으로 얻은 셈치자꾸나. 본이름은 흑대공주요 별명은 불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이 조금 섭섭해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남산에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다. 그이듬해 또 아이를 낳았는데. 그도 역시 딸이었다.

"어허, 이것 낭패로다 아기라고 하는것은 아들 낳으면 딸도 낳고 딸 낳으면 아들도 낳는줄 알았더니,. 우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딸만 내리 여섯을 낳는단 말인가 여섯때딸은 과연섭섭이 딸이로구나. 본 이름은 백대공주요 별명은 흙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이 몹시 섭섭해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북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다.
그 이듬해가 되자마자 오구대왕이 올해에는 꼭 아들을 보리라 하고 길대부이과 더불어 동개남상주절, 서개남금수절, 영험있다는 삼신당을 찾아다니며 공을 들였다. 금돈 삼백 냥과 은돈 삼백냥에 이슬맞힌 쌀 석 섬 서 말을 바치고 밤낮으로 공을 들였더니 하루는 길대부인이 잠간 조는 사이에 꿈을 꿨다.
하늘에서 청룡.황룡이 날아와 품에 안기고 양무릎에 흰 거북과 검은 거북이 앉고 양어깨에 해와달이 돋아나는 꿈을 꿨다. 오구대왕에ㅔ 그 말을 했더니 대왕도 똑같은 꿈을 꿨다는 것이다
그러고얼마 안되어 길대부인은 또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그 역시 딸이었다

"에잇, 이제 딸이라는 말 듣기도 싫고 딸아이 얼굴 보기도 싫다. 당장 갖다버려라."

오구대왕이 역정을 내어 벼락같이 호령을 하여, 어느 영이라 거역할까, 하릴없이 아기를 갖다 버리는데, 마구간에 버리니 말이 쫓아 나오고, 외양간에 버리니 소가 쫓아 나왔다. 오구대왕이 또 벼락같이 호령을 하기를

"그런데 버릴것이 아니라 머리가서 아주 돌아오지 못하도록 옥함에 깊이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내라"

하기에 하릴없이 옥함에 아기를 넣었다. 본디 아들 낳으면 덮어주고 입혀주혀고, 비단 공단 포대기와 바지저고리를 만들어 뒀던 그 옥함에다 아기를 넣었다. 이때 길대부인이 울면서 오구대왕에게 간청했다.

"여보시오 대왕님. 버릴떄 버리더라도 아기 이름이나 지어주오"
"버릴 아이 본이름이 무슨 소용 있으리요, 본 이르은 그만두고 별명만 지어 주되 바리데기라 하시오"

바리데기를 실은 옥함은 물결을 타고 자꾸 자꾸만 떠내려 갔다. 몇날 며칠을 떠내려가다가 어느 마을에 닿았는데, 이때 마침 그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로 강에 나왔다가 옥함을 건져서 마을로 가지고 갔다. 마을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러나 옥함에 있는 자물쇠를 열수가 없었다.
이때 어느 거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 마을을 지나가다가 그 자리에 왔다. 이 두사람이 옥함에 가까이 오자 그 자물쇠는 열렸고 마을사람들은 그 거지노인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그 아이를 기르게 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버지 오구대왕이 몹쓸 병이 걸려서 앓아 눕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약을 다 써보아도 효과가 없었다.그러던중 천하궁 가리박사가 와서 점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대왕님 대왕님 이 병에는 약이 소용없고 단 한가지 약만 효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천서역국 동대산에서 솟아나는 약물입니다"

길대부인이 생각끝에 자신의 딸들에게 그 약을 구하러 갈수있냐고 물었지만 다들 거부했다. 다들 못간다는 것이다. 길대부인은 탄식하며 생각하던중 낳자마자 버렸다. 바리데기가 생각났다. 길대부인은 행장을 꾸려 바리데기를 찾아나서기 시작했고 많은 시간이 걸린끝에 바리데기를 찾았고. 바리데기는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를 위해 약을 구하러 서천에 간다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


바리데기는 만은 고생끝에 그 약을 찾았고 죽은 사람의 뼈를 살리는 뼈살이꽃, 죽은사람 살을 살리는 살살이꽃,죽은 사람 피를 살리는 피살이꽃, 죽은사람의 숨을 살리는 혼살이꽃을 함께 들고 오구대왕의 나라도 돌아왔지만 이미 그는 죽었고 그에 충격박은 길대부인도 한날한시에 죽었다. 바리데기는 앞에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여를 세워 자신이 따온 꽃들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은 살아났고 바리데기가 가져온 약물을 오구대왕에게 먹이자 병도 씻은듯 나았다.

이렇게 해서 오구대왕이 병을 고치고 그 뒤로 바리데기는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잘 살았다고 한다.

 

《유충렬전》

중국 명나라 홍치(弘治) 연간에 유심(劉尋)의 아들 충렬은 골격이 준수하고 문장과 병법에 통달하였다. 유충렬의 아버지는 간신 정한담과 최일귀의 모반심을 충간하다가 오히려 연북(燕北)으로 유배된다. 한편 정한담 일파는 후환이 두려워 충렬의 집을 불지르고 모친까지 살해한다. 그 후 충렬은 강승상(姜丞相)에게 구원되어 그의 사위가 되나, 장인 역시 천자에게 충간하다가 유배당하자, 자신은 도승 밑에서 수학하면서 후일을 기다린다. 마침내 충렬은 정한담이 호국(胡國)과 밀통하여 황성(皇城)을 쳐서 천자를 사로잡고 항복을 받으려 할 때 반군을 쳐 없애고 나라를 바로잡는다. 대사마(大司馬) 대장군이 된 유충렬은 아버지와 장인도 구하고 부귀공명을 길이 누렸다.


《신유복전》

전라도 무주(茂朱) 땅 신진사의 유복자 신유복(申遺腹)은 다섯 살 때 편모(偏母)마저 여의고 천애고아가 되어 걸식하는 신세였으나, 상주(尙州) 목사의 도움으로 이섬(李蟾)의 사위가 된다. 그러나 유복이 걸인이었다 하여 멸시를 받다가 처가에서 내쫓긴 이들 부부는 산기슭에 움막을 치고 살게 되는데, 아내의 권유로 유복은 7년 기약을 하고 원광대사(圓光大師)를 찾아가 무예와 글을 익힌 끝에 과거에 급제하여 수원(水原) 부사가 된다. 그리고 지난날 자기를 천대하였던 장인과 처제들을 따뜻이 대한다. 마침내 병조판서에까지 오른 유복은 명나라에 가서 변방의 병란을 평정하는 공을 세우고 금의환향,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는 이야기이다.

임진왜란 이후, 청나라를 멸하고 명나라를 부활시킨다는 조선의 일반적인 사조가 투영된 작품이다.


《임경업전》

임경업은 비범한 인물로서 무과에 급제한다. 사신 이시백의 무관으로 명나라에 가게 된다. 가달의 침입을 받은 호국이 명에 구원병을 청하자, 임경업이 명군을 이끌고 출전한다. 그는 용맹을 떨치어 호국을 구하고 귀국한다.
호국이 힘을 길러 조선을 침략하려 하자, 조정에서 임경업을 의주 부윤으로 보내 방어하게 한다. 호국군은 임경업이 두려워 의주를 피하고, 바다로 침입해 조선왕의 항복을 받고 회군한다. 임경업은 회군하는 호국군을 섬멸하려 했으나, 인질로 잡혀 가는 왕자들 때문에 포기하였다.
호왕이 임경업을 제거하려고 그에게 명나라를 치도록 요구한다. 임경업은 우방인 명나라를 칠 수 없어 명과 내통하여 거짓 항복을 받고 귀국한다. 임경업의 내통 사실을 안 호왕이 그를 잡아들인다. 임경업은 명나라로 도망하여 명군과 함께 호국을 치려다가 승려 독보의 배반으로 호국에 잡힌다. 호왕은 임경업의 당당한 태도에 감복하여 그를 인질로 잡았던 왕자들과 함께 조선으로 돌려 보낸다.
조선의 김자점은 역모에 방해가 될까 하여 그를 살해한다. 임금은 임경업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김자점을 문초하여 죽인 다음, 임경업의 충의를 포상한다.


《조웅전》

주인공 조웅과 문황제(文帝)의 태자가 간신 이두병의 발호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후일을 기약하고 작별한다. 방랑하던 조웅이 장소저를 만나 장래를 약속한 뒤, 위기에 빠진 태자를 구출하고 수십만 대군으로 간신 이두병을 무찔러 송나라를 회복시킨다는 이야기이다.